"그럴 리가요?"온지유는 이런 인명진을 본 적이 없었다.왜 그가 자신이 싫어질까 봐 두려워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인명진은 그런 두려움을 가질 이유가 없는 사람 같았다.하지만 지금은 인명진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우선이었다.온지유는 부드럽게 말했다."일단은 제 말을 따라줘요. 먼저 상처를 치료해 줄게요."인명진은 여전히 망설였다.하지만 온지유는 그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의연히 그를 돕기로 결심했다.온지유는 그의 옷을 풀고 그의 상처들을 바라보았다.하얀 피부에 깊게 새겨진 상처들에 온지유의 마음도 덩달아 쓰려왔다.그의 테이블 위에는 약이 놓여 있었다.온지유는 약을 가져와 조심스럽게 그의 상처에 발랐다.그리고 물었다."어제 나를 보러 왔었나요?"인명진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온지유는 그의 상처를 치료하며 지난 며칠 동안 일어난 일들을 정리하고 다시 묻기 시작했다."어제 나를 보러 왔었죠. 나를 보러 왔지만 마주치지는 않았어요. 그때는 상처가 없었을 텐데, 그 후에 다친 거네요. 내가 납치된 이후예요. 그 빨간 머리 여자, 홍혜주 씨 맞죠? 당신과 아는 사이였어요. 나를 납치한 사람이죠. 당신과 그 사람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이 상처들도 그 사람들 때문인가요?"온지유의 추측일 뿐이었다.하지만 그 추측은 거의 다 맞았다.인명진은 상황을 숨기고 싶었지만 동시에 온지유에게 진실을 말하고 싶기도 했다.그는 조용히 말했다."맞아요, 홍혜주.""그럼..."온지유가 그날을 떠올리며 말했다."그럼 그날 택시를 운전했던 사람도 홍혜주였나요?""그래요."인명진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내가 지유 씨를 구할 수 있었던 거예요."온지유는 인명진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혹시 우리... 작은 방에서 만난 적 있나요?"이 말에 인명진은 온지유를 바라보며 그녀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확인하려 했다.그러나 온지유의 눈빛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온지유는 모든 것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온지유는 그에 깜짝 놀랐다."지금 뭐 하려는 거예요?”온지유는 인명진의 가슴을 밀어내며 물었다.인명진의 눈빛이 어두워지며 차갑게 말했다."낯선 남자의 방에 이렇게 무턱대고 들어오다니, 위험할 거란 생각은 안 했나 봐요?"온지유는 대답했다."알고 지낸 지 꽤 됐잖아요.""내 정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데?"온지유는 입술을 꾹 다물고, 한치의 두려움 없이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당신이 제게 감히 뭘 할 수 있는데요?""당신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 쳐도, 나한테 뭘 어떻게 할 수 있는데요?"온지유는 인명진의 위협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그러자 되려 인명진의 시선이 복잡해졌다.온지유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오자, 그는 반대로 한 발짝 물러섰다.온지유는 그가 단지 말로만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인명진이 정말로 해칠 마음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그녀를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인명진은 결국 소파에서 일어나며, 자기가 졌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지유 씨 말이 맞아요. 어떤 상황에서도 저는 당신을 해칠 수 없어요."온지유도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그날 홍혜주도 나를 해치지 않았어요."인명진이 말했다."그 일은 더 이상 신경 쓰지 말아요.""저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아요."온지유가 계속해서 말했다."기억이 단편적이긴 하지만, 저도 알아요. 저랑 인명진 씨, 그리고 홍혜주 씨가 예전에 만난 적이 있다는걸요. 우리가 어떤 곳에 있었든 간에, 난 나왔잖아요. 두 분은 나올 수 없는 거예요?"온지유는 인명진과 홍혜주도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그들도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인명진은 온지유를 바라보며 말했다."지유 씨와 저희는 달라요.""왜 다르죠?"인명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그만하고 이젠 돌아가세요."인명진은 온지유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려는 듯했다.온지유를 더 이상 위험에 빠뜨릴 수 없었다.온지유는 인명진의 상처를 바라보다가, 그의 손을 보며 물었다."전에 손에 끼고 있
용경호는 온지유를 보자마자 말했다."사모님, 이제야 오셨네요. 문을 두드리러 가려던 참이었어요."온지유는 인명진과 만난 일은 말하지 않았다."편집장님과 얘기하다가 좀 오래 걸렸어요. 이제 가요."용경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온지유가 가까이 다가오자 피 냄새를 눈치채고 물었다."사모님, 어디 다치신 건 아니죠?""아니에요."온지유는 자신에게 인명진의 향이 배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덧붙였다."아마도 대표님의 몸에 묻은 냄새일 거예요."용경호는 크게 의심하지 않았지만, 온지유의 손목에 새롭게 생긴 구슬 한 줄을 눈여겨보았다.온지유는 가는 내내 그 구슬을 만지작거렸다.왜 인명진이 이걸 주었을까?온지유는 자세히 살펴보다가, 그 구슬 안에 옅은 붉은 빛이 서려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원래 이런 모습이었나?온지유는 이해할 수 없었다.온지유는 인명진의 과거에 대해 많은 의문을 품고 있었고, 이번 일로 또 하나의 의문이 추가되었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명진이 그녀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다.길을 가던 중, 공아영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지유 씨, 장다희 씨의 역이 빼앗겼어요!"이 소식에 온지유는 적잖게 놀랐다."누가, 어떻게 빼앗은 거예요?"공아영이 대답했다."저도 잘 모르겠어요. 분명 누군가 다희 씨를 겨냥해 뒤에서 조종하고 있어요.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뒷배가 있는 거예요."온지유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장다희는 방금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에, 분명히 역할을 따낼 수 있었을 것이다.실력이 출중한 그녀가 역할을 못 따낼 리가 없다.만약 정말로 뒤에서 자본이 개입한 것이라면, 장다희와 대립할 수 있는 가장 명백한 인물은 노승아일 것이다.온지유는 상황을 조금 더 생각해 보았다.장다희가 맡을 예정이었던 역할은 현대극의 여주인공이었다.하지만 장다희가 배제되고, 신인 배우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그 신인은 예전엔 주로 하녀 역할을 했던 배우였다.이 사실을 확인한 온지유는 공아영 못지않게 충격
장다희는 고개를 들고 온지유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지유 씨가 저를 도와준다고요?"장다희는 연예계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좋고 나쁜 사람들,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그랬기에 쉽게 사람을 믿지 않았다.물론, 온지유는 예외였다.장다희는 온지유가 자기편인 것을 알고 있었다.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온지유의 도움 덕분에 영상도 성공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하지만 연예계에서는 이런 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지유 씨, 제가 지유 씨를 믿지 않는 게 아니에요. 전 연예계의 규칙을 너무 잘 알고 있어요."장다희는 잠시 망설이다가 덧붙였다."지유 씨가 여 대표와의 관계가 간단하지 않다는 것도 알아요. 비록 공개적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아는 사람들은 아마 대표님의 그 신비로운 아내가 당신이라는 걸 의심할 거예요."온지유는 부정하지 않았다."맞아요, 그 사람이 바로 나예요."장다희는 미소를 지었다."정말 감쪽같이 숨기고 있었네요. 여 대표의 비서가 그의 아내일 줄은 누가 알았겠어요.""하지만 알다시피, 노승아 씨는 여 대표의 회사 소속이고, 그 신인도 마찬가지예요. 나를 도와주는 건 여 대표와 대립하게 되는 거예요."장다희는 이 점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다."우리는 그를 이길 수 없어요. 게다가 두 분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거예요."여이현이 그들의 관계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은 온지유가 그의 마음속에서 그리 깊은 위치를 차지하지 않았음을 의미할 수도 있었다.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회사의 이익이 걸린 문제에서 여이현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알 수 없다.장다희는 온지유가 진정으로 자신을 도와줄 의향이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그러나 온지유는 결심을 굳혔다.예전에는 능력이 없어서 도울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또 노승아가 자신을 만만하게 보지 않게 하고 싶었다."노력해 보지 않으면 어떻게 알겠어요?"온지유의 눈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다희 씨도 쉽게 포기할 사람은 아니잖아요. 억울
장다희와 헤어진 후, 온지유는 바로 행동에 나섰다.온지유는 공아영에게 전화를 걸었다."기사를 하나 써줘요. 장다희 씨의 역할이 빼앗긴 건 자본이 개입한 결과라는 내용으로. 자본이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식으로 써주세요."온지유가 말했다.공아영은 잠시 망설였다."정말 그렇게 써도 돼요? 그 신인은 지유 씨 남편 회사 소속인데요."공아영은 혹시나 여이현에게 피해를 줄까 봐 두려웠다.그를 적으로 돌리면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었다.온지유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사업 세계에서는 경쟁이 일상이고, 부부 사이도 예외가 아니었다."괜찮아요, 써요.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질게요."공아영이 대답했다."알겠어요. 그럼 그렇게 쓸게요. 나중에 여 대표가 물어보면 내 탓은 하지 말아요!"공아영은 여전히 그에게 두려움을 느꼈다."그럴 일 없어요. 우리는 공평한 경쟁을 하는 거니까요."공아영은 의문을 품었다."지유 씨가 이렇게 다희 씨를 도와준다는 건, 뭔가 합의라도 한 거예요?""맞아요."이제 그들은 같은 배를 타고 있었다.장다희의 영광과 수치는 이제는 온지유와도 관련이 있었다.온지유는 마치 장다희의 매니저와 같은 위치에 있었고, 그런 만큼 모두가 그 관계를 무시할 수 없었다.병원으로 돌아온 온지유는 여이현이 무거운 표정임을 보았다.온지유가 돌아오자 여이현이 물었다."장다희를 만나고 왔다며?"온지유는 용경호를 힐끔 쳐다보았다.용경호는 서늘함을 느끼며 온지유의 시선을 피했다.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그가 있는 한, 온지유의 모든 동선을 보고해야 했다."맞아요."온지유가 대답했다."다희 씨와 잠깐 이야기를 나눴어요."여이현은 둘의 얘기가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감지했다."이제 연예계에도 관심이 생겼나?"온지유는 대답했다."관심이라기보다는, 업무상 필요로 만난 거예요. 다희 씨와 업무적으로도 연관이 있으니까요."여이현은 이 일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는 듯 말했다."남의 일에 관여할 필요는 없어.”온지유는
여이현은 온지유가 자신에게 경고하고 있음을 눈치챘다.그는 일단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장다희는 우리 회사의 아티스트가 아니야. 네가 정말로 관심이 있다면, 우리 회사에서 몇 명을 소개해 줄 수도 있어."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같은 선상에 있지 않았다.여이현은 온지유가 이쪽에 관심이 생겼다고 생각하며, 잠시 재미 삼아 하다가 질리면 그만둘 거라고 여겼다.그러나 온지유는 한 번 결심하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사람이었다.그리고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중도에 포기하지 않았다.여이현의 제안을 온지유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잠시 생각한 후, 온지유는 말했다."이렇게 하죠. 사적인 일과 공적인 일은 구분해요. 나와 장다희 씨의 관계에 이현 씨가 끼어들 필요는 없어요."여이현이 물었다."정말 장다희와 손을 잡아야겠어?""난 다희 씨의 가능성을 믿어요.""노승아에 대한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고?"여이현이 다시 물었다.온지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여러 번 자신을 납치했던 사람은 노승아일 가능성이 컸다.이 사실을 여이현에게 말해야 할지 망설였다.혹시 자신을 편들어줄지?하지만 증거가 없어서 말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이상 이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납치 사건이 없었더라도, 노승아가 계속해서 온지유를 도발했기 때문에 더 이상 참을 수는 없었다.온지유는 자신을 위해서도 싸워야 했다.또 장다희가 다시 일어나겠다는 생각이 있는 한, 온지유는 이 일을 계속해야 했다. 결국 이 협력은 둘 모두에게 이득이 될 것이다.온지유는 말했다."노승아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 없어요."여이현은 온지유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할지 걱정되어 당부했다.“노승아를 건드리지 마, 알겠어?"온지유는 그 말이 듣기 싫었다.그가 온지유에게 건드리지 말라고 하는 건, 사실 노승아를 걱정해서 하는 말일 것이다.온지유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여이현도 온지유의 표정 변화를 감지했지만, 말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그는 온지유의 손을 잡아 끌어안으
그 신인은 실로 든든한 뒷배를 갖고 있었다.그녀와 노승아의 관계는 매우 가까웠고, 이전에는 노승아의 작품에서 하녀 역할을 맡았던 적도 있었다.그 신인이 장다희를 대신한 것은 장다희에게 확실히 모욕을 안겨준 셈이었다.온지유는 장다희에게 이 사실을 귀띔해 주었다.이 뉴스가 터졌을 때, 장다희도 어느 정도의 여론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설령 그것이 잠깐의 소동에 그치더라도 말이다.최소한 대중에게 확실한 장면을 남겨야 했다.이전의 장다희라면 분명 이런 일은 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녀가 빠르게 묻혀버린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연기 외에는 자신을 마케팅하는 데 서투르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번에는 장다희가 병원에 입원했다.사람들은 장다희가 자본을 등에 업고 투입된 신인에게 자리를 빼앗겨 울화통에 병원에 실려 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이런 상황이 연결되면서, 네티즌들의 분노는 더 커졌다.장다희는 처음부터 끝까지 늘 참고 견뎌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화려한 자가 모두에게 찬사를 받지는 않지만, 약자는 분명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불러일으킨다.드라마에 대한 여론의 압박이 점점 커졌다.네티즌들은 드라마 공식 계정까지 달려가 악플을 쏟아냈다.결국 공식 계정은 댓글을 차단해 버렸다.이것이 바로 온지유가 원했던 효과였다.어차피 마지막에 드라마가 성공할지는 관객이 결정하는 것이니, 자본도 자신의 손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마침 장다희도 이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온지유는 재빨리 그녀를 찾아갔다.그 시각 장다희는 병상에 누워 TV를 보고 있었고, 그것은 온지유가 본 장다희의 가장 편안해 보이는 순간이기도 했다.그녀는 수년간 연기 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다."왔네요, 지유 씨."장다희는 미소를 지었다."사실 다희 씨도 잘할 수 있었네요, 다만 너무 고집을 부렸을 뿐이죠.”온지유가 말했다."지유 씨가 말했잖아요, 계속 약자처럼 굴면 안 된다고."장다희는 요령을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이용할 수 있는 건 다 이용해야죠.
진송이는 마음이 여려 이런 큰 압박 속에서 주연을 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그녀는 이미 상상했다. 드라마가 방영되면 분명 사람들이 엄청나게 욕할 거라고.“언니, 차라리 언니가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진송이는 이전에 자신감이 컸던 만큼 크게 위축되었다."언니가 연기하면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을 거예요!"노승아는 화를 내며 말했다."지금 날 장다희 따위와 비교하는 거야?"진송이는 더욱 겁을 먹으며 말했다."아니에요, 그런 뜻이 아니에요. 언니가 훨씬 낫죠. 처음부터 주연을 맡으셨잖아요. 장다희보다 언니가 훨씬 대단해요."이 말은 노승아의 기분을 조금 누그러뜨렸다. 노승아는 분노를 억누르며 다시 물었다."그 기자에 대해 어떻게 알았어? 같이 있는 걸 보기라도 했어?""그 기사는 KTBC의 사람이 쓴 거예요."진송이는 추측했다."분명 그 기자와 관련되어 있을 거예요."노승아는 이 결과를 어느 정도 예상하였지만, 온지유가 이런 방식으로 그녀의 영역을 침범할 줄은 몰랐다. 그녀가 정말로 자신에게 선전포고하려는 걸까?하지만 지금, 온지유에게는 그럴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노승아는 이 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온지유의 건강에 관한 소문을 전혀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노승아의 얼굴은 어두워졌고, 그녀는 빠르게 답이 알고 싶었다.최근 장다희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있었고, 노승아는 그녀가 아마 여이현이 입원해 있는 그 병원에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노승아는 둘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꼭 확인하고 싶었다.그 시각, 온지유는 인터넷에서 상황을 살펴보고 있었다.장다희는 온지유가 자기 일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물었다. "여 대표님은 지유 씨가 하는 일들에 대해 알고 있나요?""굳이 이현 씨에게 숨길 생각은 없었어요."온지유가 조용히 대답했다.온지유에게는 남자의 의견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장다희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제 일 때문에 두 분이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니에요. 저는 그냥... 그냥 적응이 안 된 것뿐이에요.”여희영은 어디에라도 숨고 싶었다. 광고부 직원인 그녀는 이태훈과 나눌 만한 얘기가 없었고 여이현이 왜 자신한테 이 일을 시켰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후 그룹과 어떤 광고 협력이 있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불안한 마음으로 회의실에 들어갔을 때, 여이현이 회사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희영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여희영 씨, 아니... 여 본부장님, 차 한잔하실래요?”이태훈은 여희영이 여이현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했다.이태훈이 무엇을 원하는지 여이현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도 자신의 의도를 숨길 필요 없었다.차 한 잔 마시자 이태훈은 술을 마신 듯 어지러웠다. 하지만 그는 여이현이 이런 방법을 쓸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차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이태훈 씨, 무슨 프로젝트를 논의하시려고 오신 건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여희영은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만약 자신이 맡은 업무가 아니면 핑계를 대고 거절할 생각이었다.이태훈은 일어나서 물 한 잔을 마셨지만 어지러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그는 화가 나서 실눈을 뜬 채로 몇 걸음 걸어가 여희영 앞에 섰다.“여희영 씨, 지금 뭐 하려는 겁니까? 제가 여진 그룹을 너무 높게 평가한 건가요?”“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여희영은 이태훈의 경멸스러운 말투를 듣고 그를 밀쳐내며 한쪽으로 물러섰다.“이태훈 씨, 계속 사적인 얘기를 하실 거면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저는 시간이 많지 않거든요.”“차에 약을 탄다는 건 저한테 뭐라도 해보겠다는 거 아닌가요?”이태훈은 비웃으며 두 걸음 다가가 그녀를 벽에 밀어붙였다. 그리고는 얼굴을 가까이 대며 말했다.“그런데 만약 저랑 희영 씨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면 저야 너무 좋죠. 하지만 그 대신 앞으로 희영 씨와 여진 그룹에 대한 생각이 바뀔 것 같네요.”그 말을 들은 여희영은
집에 돌아온 뒤, 온지유는 여이현과 간단히 통화하고 변호사를 시켜 박민정에게 연락을 보냈다.이 일은 이렇게 그녀의 손에서 완벽하게 끝을 맺었다.일을 끝낸 뒤에 온지유는 아이 방을 찾아가 애가 한창 꿈나라 여행 중인 걸 확인한 뒤 내려와서 저녁준비를 했다.방문이 닫히자마자 자고있던 별이가 침대에서 일어나 작은 소리로 소곤소곤 속삭였다.“외할아버지, 아까 말한 거 할아버지는 다 들으셨어요?”“그럼, 다 들었지. 누가 너희를 괴롭힌다며?”“그래요, 외할아버지. 외할아버지는 꼭 우리를 도와주셔야 해요. 누구도 우리 엄마를 괴롭히지 못하게요, 우리 엄마가 괴롭힘당하면 외할아버지가 괴롭힘 당하는 거랑 같아요.”법로가 입을 열기도 전에 별이가 말을 이었다.“외할아버지 돈 많아요? 엄청 엄청 아주 많이 있어요? 저 먼저 빌려줄 수 없어요?”“이 할아버지는 돈 좀 있으니 별이는 걱정하지 마. 돈 문제든 아니든 이 할아버지가 꼭 너를 도와주마. 넌 기다리고 있거라, 다 이 할아버지가 알아서 할 터이니”법로는 즉시 사람을 경성으로 보냈다.별이의 말이 맞았다. 온지유를 건드리는 건 그를 건드리는 거와 다름없었다.전화를 끊고 법로는 온지유에게 전화하려 했으나 별이의 당부가 생각나 결국 비밀을 지켜주기로 했다.그는 홀연 일어나 결국 비밀리에 일을 처리하기로 했다. 경성으로 가는 사람에게 시켜 어둠 속에서 일을 해결하기로 결저했다.한편 여진그룹 쪽, 여이현은 금방 장 사장을 접대해 보낸 뒤 건물 최고층에서 그가 떠나는걸 지켜보고 있었다.그는 비서에게 지시했다.“이태훈에게 연락해. 장 사장이 우리를 찾아 협조하겠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줘.”네 하고 나간 비서가 몇 분 후 돌아와 보고했다.“대표님, 이태훈 씨 지금 오고 있답니다. 그리고 여희영 씨께서 회사에 계시는지 궁금해하십니다.”“알려줘, 고모님께서 지금 회사에 있다고. 그리고 고모님께 연락 넣어서 지금 당장 회사로 오라고 해. 내가 급한 일로 부른다고 하면 될 거야.”일을 간단히 처리한 후, 여이현
장 사장은 온지유의 눈길에 잔뜩 겁을 먹었다. 오랫동안의 판매 경험 덕분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겁을 먹고 줄행랑을 놓았을 것이 분명하다.한참 넋 놓고 있던 장 사장은 웃는 얼굴로 여이현에게 다가가서 물었다.“대표님, 정말 부탁합니다. 저도 방법이 없어서 그래요.”“예전에 이씨 그룹과 일을 함께하지 않으셨나요? 왜 지금은 하지 않으시죠?”여이현은 돌려 물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대답을 기다렸다.장 사장은 안색이 많이 굳어지더니 오랜 고민 끝에 한숨을 길게 내쉬고 입을 열었다.정상적인 관계라면 이리도 입을 열기 힘들 리가 없었기에 여이현은 무언가 눈치를 채고 눈빛으로 온지유에게 조사하라고 명령을 내렸다.이때 온지유의 핸드폰이 울렸다. 별이 선생님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실례합니다. 밖에서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온지유는 회의실을 떠나서 전화를 받고 물었다.“선생님, 저는 별이 엄만데요. 무슨 일이죠?”“별이 어머니, 학교에 한 번 와보셔야 될 거 같아요. 별이가 같은 반 친구와 싸워서 애가 다쳤어요. 지금 애 부모님께서 꼭 별이 어머니를 만나고 싶다고 하세요.”‘별이가 어떻게 애들이랑 싸울 수 있을까? 개학한 지 얼마 안 되는데. 아직 서먹서먹할 텐데 무슨 일로 싸웠지? ”온지유가 급히 학교에 도착하자 사무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사과 필요 없어요! 배상해요. 배상!”들어 본 적 없는 낯선 목소리라 누군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온지유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만약 저희 별이 잘못이라면 얼마든지 배상해드릴게요. 하지만 별이 잘못이 없다면 저희는 배상할 생각 없어요.” “그쪽이 누군데요?”날카로운 목소리의 주인은 기세등등하여 콧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솟아있었다.이 틈을 타 온지유는 그 여인을 찬찬히 살펴보았다.붉은색 원피스에 흰 진주 목걸이, 펜던트 귀걸이 그리고 다이아몬드반지 부잣집 집안임이 분명했다.“성함이 어떻게 되시죠?”온지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상대방의
여희영은 원망의 눈길로 여이현을 바라보았다.온지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희영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해줬다.“죄송해요. 이현 씨도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어젯밤에 잘 못 잤죠? 돌아가서 푹 휴식하세요. 제가 점심을 맛있게 차려드릴게요.”“그래도 네가 젤 좋아.”여희영은 온지유의 볼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고 들뜬 마음으로 올라갔다.온지유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하는 여이현이 꼭 무슨 꿍꿍이가 있는 상인 같아 보였다.그녀는 여이현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껴안고 온몸을 기댔다.“대표님, 무슨 좋은 일이 있어요?”사랑하는 이가 품속에 있는데 남자로서 참을 수 없었던 여이현은 그녀를 꼭 껴안고 진한 키스를 했다.“말해, 도대체 무슨 일인데?” 키스할 때마다 산소 부족이 오는 온지유는 성난 말투로 물었다.여이현이 그녀 귓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어제 고모를 구해준 사람은 이태훈이야.”이태훈? 온지유는 한참을 생각해서야 이태훈이 이씨 가문 도련님이라는 것이 생각났다.‘갠 좀 곤란한 성격인데. 이게 좋은 일이랑 뭔 상관이지?’온지유는 여이현에게 묻고 싶었지만, 그의 미소를 보는 순간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고모님 젊은이들에게 인기 많네요? 근데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죠?”최승현 하나로도 벅찬데 이씨가문까지 더해진다면 여이현과 온지유가 나선다고 해도 방법이 없다. 이씨 가문 지금의 지위로 그런 더러운 수단을 써서 돈을 끌어모을 리는 없었기 때문에 여이현은 이태훈을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가령 진짜 음모가 있다면 여진그룹을 해치워버리는 길밖에 남지 않았다.여이현은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아닐 거야. 그냥 우연이야. 두 사람의 인연이라고 해야 적합하나?”“인연인지 아닌지 좀 있다가 알게 될 거잖아. 얼른 옷이나 바꿔. 오늘 만날분은 예전에 이씨 가문과 일을 같이 해봤던 분이야. 그분에게서 정보를 깨여낼 수도 있겠다.”여이현은 그 말을 듣고서야 이번 미팅이 생각나 고개를 끄덕이며 온지유에게 칭찬의 키스를 했다
이태훈은 집사로부터 아침밥을 받아쥐더니 하나하나 밥상 위에 올려놓았다. 집사는 이태훈의 이런 세심한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도련님, 제가 할게요.”집사는 여희영이 진짜 이태훈의 여자친군지 아니면 그냥 소개팅을 피하려고 찾아온 가짜인지 떠보기 시작했다.이태훈은 그런 집사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었기 때문에 한껏 굳어진 표정으로 대답했다.“왜요? 제가 제 여자친구를 돌봐주겠다는데 뭐가 문제에요? 제가 몇 년 동안 집을 떠나있으니 규칙을 다 잊으셨나 보네요.”“아닙니다. 전 다만 도련님을 위해서 일을 해주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도련님이 혼자 하실 수 있다니 저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이태훈은 집사를 향해 손짓하고 침대 옆에 앉아 여희영에게 죽을 먹여줬다.“조심해요. 죽이 뜨거워요. 이 죽은 몸이 좋은 죽이에요. 더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요. 제가 다 가져다드릴게요.”“알겠어요. 그럼 약속한 거예요. 두말하기 없기인 거 아시죠?”‘어차피 연기하는데 더 실감이 나게 하면 좋지.’여희영은 애교 넘치는 눈빛으로 이태훈을 바라보았다. 이 장면을 목격한 집사는 이씨 가문 전체에 이 사실을 알렸다.집사가 떠난 한참 뒤에도 이태훈은 여전히 여희영에게 아침을 먹여주고 있었다. 여희영은 그의 손길을 뒤로 피했다.그녀의 거부에 이태훈은 동작을 멈추고 웃음기 찬 얼굴로 아침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그럼 혼자 드세요. 아 맞다. 제 이름은 이태훈이고 경성 이씨 가문 넷째예요. 들어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아요. 신분은 어르신들이 주신 거니 자랑할 바는 아니죠.”“그러면 뭐가 자랑거리라고 생각해요?”여희영은 당연히 이씨 가문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이씨 가문은 후배들에게 아주 엄격하다고 많이 들어봤지만 직접 만나볼 기회는 없었다.이태훈이 처음 만나는 이씨 가문 사람이라 그녀는 호기심이 찬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해낸 사업이야말로 진정한 자랑거리죠. 진정한 사나이가 되려면 가문의 힘을 빌면 안 되죠.”말을 하던 이태
“괜찮아. 별일 없을 거야. 근데 이씨 가문 도련님이 경성으로 돌아왔을 줄이야.”남자가 돌아설 때 여이현은 그가 이씨 가문 도련님 이태훈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이태훈은 자유롭기를 좋아하고 규정에 구속되지 않으며 어렸을 때부터 세계 일주를 다닌 유명한 사람이었다.벌써 이렇게 컸을 줄이야.이씨 가문은 후배들의 교육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가문이라 유용한 인재가 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인품은 꼭 합격 되어야 했다.여이현은 그런 이태훈이 여희영에게 해코지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었고 설마 진짜 일이 벌어졌다면 이씨 가문 이태훈과 여희영이 혼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밀어붙일 것이다. 그는 여씨 가문과 연을 이을 생각을 하며 가볍게 웃었다.“하지만 대표님, 저놈들이 술잔에 탄 약이 효과가 강하다고 소문난 약이에요. 정말 괜찮을까요?”부하의 말에 여이현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정말 무슨 일이 발생하게 될 게 아닌가 생각했다.병원 안, 이태훈이 응급실 문어구에서 기다리며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전화 너머에서 무슨 얘길 했는지 이태훈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졌다.“그 말인즉 할머니께서 꼭 저에게 소개팅을 시켜주시겠다 하셨다고요? 하지만 전 다른 사람에게 정해지는 운명이 싫어요. 좀 도와주세요. 이번 일만 해결해 준다면 제가 호텔 본부장 자리를 내줄게요. 금방 개업한 그 호텔 있잖아요. 매출이 아주 좋대요.”상대방이 뭐라 했는지 이태훈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대답했다.“저에게 방법이 있었으면 지금 이러고 있겠어요?”이때 응급실 문이 열리고 의사 선생님들이 밖으로 나왔다. 이태훈은 전화를 끊고 급히 다가가서 물었다.“의사 선생님, 어떻게 됐어요?”“약 때문인 거 같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악효과가 좀 강해서 이미 주사를 놓았으니 좀 기다려 보시면 될 거에요. 내일 아침까지 이상이 없으시다면 퇴원해도 좋습니다. 여전히 불편하시다면 약을 더 주사해야 합니다.”이태훈은 고개를 끄덕이고 의사 선생님이 떠난 뒤 병실로 들어갔다.
술을 마신 여희영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주량으로 이 정도 술을 마시고 취할 리가 없을 텐데 술에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이미 늦었다. 눈앞이 희미해지고 머리가 어지러워지며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최승현이 술잔에 약을 탓 것이 틀림없다.여희영은 아무 생각 없이 이현에게 물었다.“이현 씨, 오늘 차 갖고 오셨나요? 제가 갑자기 몸이 좀 불편해서 절 데려다주실 수 있나요?”이현은 최승현과 아이컨택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었다.“당연하죠. 전 술을 마시지 않았잖아요.”그리고 여희영을 부축하여 연회장을 떠났다. 그는 여희영이 경계심을 늦춘 틈을 타서 최승현에게 은밀히 눈치를 줬다. 눈치를 받은 최승현은 다른 출구로 떠나 미리 차에서 대기하고 있었다.여희영은 이현 자동차 조수석이 앉아있는 최승현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최승현 씨가 왜 이곳에 있죠?”“아, 최승현 씨는 제 친구예요. 저와 함께 왔으니 같이 떠나는 거예요. 여희영 씨 걱정하지 마세요. 먼저 여희영 씨를 데려다주고 최승현 씨를 데려다줄 거에요.”남자의 말에 여희영은 무언가 깨달은 듯 남자가 부축하고 있는 손을 뿌리치고 경계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 두 사람은 공범임이 틀림없었기 때문에 같은 차를 타고 가면 무슨 봉변을 당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여희영은 신속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사람을 찾아 도움을 청하려고 했다.최승현이 그녀의 의도를 눈치채고 낮은 목소리로 이현에게 말했다.“얼른 안으로 끌어오지 않고 뭐해?”그 말을 들은 이현이 여희영을 잡으러 다가오자 여희영은 큰소리로 외치며 도움을 청했다.“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이때 호텔 안으로부터 구석에 남아있던 남자가 뛰쳐나왔는데 누군가 그보다 더 빨랐다.그 남자는 호텔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나와 이현을 제압하고 여희영을 등 뒤에 감춰 보호했다.최승현은 차에서 내려 차가운 눈길로 갑자기 뛰쳐나온 남자를 보며 말했다.“사람을 도와주기 전에 그쪽이 그만한 실력이 있는지 생각해보고 해요.”말을 마
“괜찮아요. 기사 아저씨께서 한 번만 내면 된다고 하셨잖아요. 제 것만 낸 거로 하면 되죠. 돌려 주지 않으셔도 돼요.”최승현은 택시비를 내고 차에서 내려 여희영에게 차 문을 열어줬다.차에서 내리자마자 이 장면을 목격한 온지유는 아무 생각 없이 달려가서 여희영을 몸 뒤로 숨겼다.“두 사람이 왜 같은 차에서 내려요?”온지유는 질투 난 듯 잔뜩 뾰로통한 얼굴로 최승현을 바라보았다. 여희영은 마음속으로 그녀의 연기에 감탄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최승현은 낮은 소리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제가 그쪽을 온지유 씨라고 부를까요? 아니면 사모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그 말에 두 사람은 조각상처럼 굳어졌다. 최승현은 진실을 알고 있었으면서 모르는 척했다.여희영은 그런 최승현이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아 그를 무시하고 온지유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여희영 씨, 전 여희영 씨를 진심으로 좋아해요. 여희영 씨가 저에게 못되게 굴더라도 저는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여희영 씨를 제 여자로 만들 거에요!”고래고래 소리치는 최승현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이리로 주의를 기울이며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여희영은 최승현이 큰소리를 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온지유와 함께 여이현을 찾으러 올라갔다.연회가 열리는 곳은 교외에 있는 바캉스 호텔이었다. 주최 측에서는 호텔 전부를 연회장소로 정해서 사람들이 마음껏 즐기도록 만들었다.홀로 연회장에 들어선 여희영은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각양각색의 남녀들이 모여있는 연화장은 마치 소개팅을 하는 것 같았다.이때 그녀 눈이 들어온 간판이 그 추측을 실증해줬다. 그제야 여이현이 왜 온지유를 참가 못 하게 막으려 했는지 깨달았다.“아가씨, 저와 함께 춤을 추실 수 있나요?”어떤 남자가 다가오더니 젠틀하게 초대를 보내왔다.여희영은 기분전환을 하려고 연회에 참가했기 때문에 소개팅할 마음이 없었다.여희영은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누군가는 일부러 연회에 참가했다.“이분은 여희영 씨라고 여진그룹 여
“어머, 네가 마음 많이 썼네. 나도 깜박하고 있었는데. 맞아. 예전에는 파리에서 생활하고 싶었지 하지만 지금은 너도 알다시피...”여진숙이 더는 입을 열지 않았지만 모두 원인을 알고 있었다.이때 온지유가 여진숙에게 선물 상자를 가져다주며 말했다.“이 얘긴 그만하는 게 어때요? 자 이건 저희가 준비한 선물이에요. 한번 열어보세요. 맘에 드시는지.”여진숙이 상자를 열자 그 속에는 열쇠와 부동산 계약서가 들어 있었다. 부동산 계약서에 쓰여있는 파리 주소를 보자 여진숙은 너무 기쁜 나머지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온지유가 여진숙의 모습을 보고 다가와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해줬다.“사람이 필요하시다면 어머님께서 직접 고르시고 말씀하세요. 의료팀도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이현 씨가 모두 준비해뒀어요.”여희영은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에 어리둥절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녀는 이번 가정모임에서 여진숙이 수작을 부릴 것 같아서 여이현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았다.파리에서 자리 잡고 살 기회를 얻은 여진숙은 그 자리에서 여씨 가문을 여이현에게 전부 넘겨주고 모든 재산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했다.지금부터 여진숙은 남은 세월을 편안히 누리고 재단의 일에 손을 뗄 것이다.세 사람이 모임 장소에서 나오자 여희영은 더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인제야 비로소 여진 그룹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올 수 있다.“이현아, 정말 대단해. 근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어? 여진숙이 파리에 가고 싶어 한다는 거 말이야.”그녀는 여이현이 그처럼 세심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온지유도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여이현을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여이현은 차에 시동을 걸고 어느 정도 주행한 뒤에야 입을 열었다.“서찬이 찾아갔을 때부터 눈치챘어요. 그래서 제가 사람을 불러 간병인을 매수했죠. 서찬이 떠나자마자 간병인 쪽에서 정보를 입수했어요.”‘그렇구나.’두 사람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