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신인은 실로 든든한 뒷배를 갖고 있었다.그녀와 노승아의 관계는 매우 가까웠고, 이전에는 노승아의 작품에서 하녀 역할을 맡았던 적도 있었다.그 신인이 장다희를 대신한 것은 장다희에게 확실히 모욕을 안겨준 셈이었다.온지유는 장다희에게 이 사실을 귀띔해 주었다.이 뉴스가 터졌을 때, 장다희도 어느 정도의 여론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설령 그것이 잠깐의 소동에 그치더라도 말이다.최소한 대중에게 확실한 장면을 남겨야 했다.이전의 장다희라면 분명 이런 일은 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녀가 빠르게 묻혀버린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연기 외에는 자신을 마케팅하는 데 서투르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번에는 장다희가 병원에 입원했다.사람들은 장다희가 자본을 등에 업고 투입된 신인에게 자리를 빼앗겨 울화통에 병원에 실려 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이런 상황이 연결되면서, 네티즌들의 분노는 더 커졌다.장다희는 처음부터 끝까지 늘 참고 견뎌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화려한 자가 모두에게 찬사를 받지는 않지만, 약자는 분명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불러일으킨다.드라마에 대한 여론의 압박이 점점 커졌다.네티즌들은 드라마 공식 계정까지 달려가 악플을 쏟아냈다.결국 공식 계정은 댓글을 차단해 버렸다.이것이 바로 온지유가 원했던 효과였다.어차피 마지막에 드라마가 성공할지는 관객이 결정하는 것이니, 자본도 자신의 손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마침 장다희도 이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온지유는 재빨리 그녀를 찾아갔다.그 시각 장다희는 병상에 누워 TV를 보고 있었고, 그것은 온지유가 본 장다희의 가장 편안해 보이는 순간이기도 했다.그녀는 수년간 연기 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다."왔네요, 지유 씨."장다희는 미소를 지었다."사실 다희 씨도 잘할 수 있었네요, 다만 너무 고집을 부렸을 뿐이죠.”온지유가 말했다."지유 씨가 말했잖아요, 계속 약자처럼 굴면 안 된다고."장다희는 요령을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이용할 수 있는 건 다 이용해야죠.
진송이는 마음이 여려 이런 큰 압박 속에서 주연을 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그녀는 이미 상상했다. 드라마가 방영되면 분명 사람들이 엄청나게 욕할 거라고.“언니, 차라리 언니가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진송이는 이전에 자신감이 컸던 만큼 크게 위축되었다."언니가 연기하면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을 거예요!"노승아는 화를 내며 말했다."지금 날 장다희 따위와 비교하는 거야?"진송이는 더욱 겁을 먹으며 말했다."아니에요, 그런 뜻이 아니에요. 언니가 훨씬 낫죠. 처음부터 주연을 맡으셨잖아요. 장다희보다 언니가 훨씬 대단해요."이 말은 노승아의 기분을 조금 누그러뜨렸다. 노승아는 분노를 억누르며 다시 물었다."그 기자에 대해 어떻게 알았어? 같이 있는 걸 보기라도 했어?""그 기사는 KTBC의 사람이 쓴 거예요."진송이는 추측했다."분명 그 기자와 관련되어 있을 거예요."노승아는 이 결과를 어느 정도 예상하였지만, 온지유가 이런 방식으로 그녀의 영역을 침범할 줄은 몰랐다. 그녀가 정말로 자신에게 선전포고하려는 걸까?하지만 지금, 온지유에게는 그럴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노승아는 이 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온지유의 건강에 관한 소문을 전혀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노승아의 얼굴은 어두워졌고, 그녀는 빠르게 답이 알고 싶었다.최근 장다희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있었고, 노승아는 그녀가 아마 여이현이 입원해 있는 그 병원에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노승아는 둘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꼭 확인하고 싶었다.그 시각, 온지유는 인터넷에서 상황을 살펴보고 있었다.장다희는 온지유가 자기 일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물었다. "여 대표님은 지유 씨가 하는 일들에 대해 알고 있나요?""굳이 이현 씨에게 숨길 생각은 없었어요."온지유가 조용히 대답했다.온지유에게는 남자의 의견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장다희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제 일 때문에 두 분이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온지유는 장다희가 참 불쌍하다고 느꼈다.어렸을 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그래서 안전감이 부족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일도 더 많이 참아내려 했을 것이다.온지유는 참지 못하고 장다희의 팔을 끌어안으며 말했다."다 지난 일이에요. 앞으로는 더 좋은 날들이 올 거예요. 언젠가 다희 씨도 여우주연상을 탈 걸요."장다희는 웃으며 말했다."지유 씨는 나한테 기대가 참 크네요.""어렸을 때부터 고생해 왔잖아요. 못 해낼 일이 어디 있겠어요?"장다희는 온지유를 점점 더 좋아하게 되었다. 어쩌면 온지유가 늘 큰 격려를 해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미 인내하는 법은 많아 배워 왔지만, 온지유는 장다희에게 승리의 의지를 불러일으켰다.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가난과 배고픔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바로 그때, 노승아가 병원에 도착했다.그녀는 마침 장다희와 온지유가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온지유가 멀쩡히 걸어 다니고, 기운도 넘쳐 보이는 모습에 그녀는 당혹스러웠다.어디가 잘못된 것일까?하지만 노승아는 곧 온지유의 손에 있는 구슬을 눈치챘다. 순간, 노승아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고, 곧바로 온지유에게로 다가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이거 어디서 난 거예요?"온지유는 장다희와 이야기하고 있다가 갑자기 누군가의 부름에 뒤돌아보니 그곳에는 노승아가 서 있었다.온지유는 즉시 노승아의 손을 뿌리치며 차갑게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노승아가 다시 물었다."내가 물어보잖아요. 이 구슬 어디서 난 건지.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거예요?""내가 왜 당신 질문에 대답해야 하죠?"온지유는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정말로 자신이 막무가내로 나올 정도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이 구슬은 인명진의 거잖아요."노승아는 이미 알아챘고, 비웃으며 말했다."왜 인명진이 당신을 도와주는지 알겠네요. 둘 사이에 이런 연결고리가 있었을 줄이야!"온지유는 갑자기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만약 노승아가 그 일당과 관련이 있다면, 인명진이
노승아는 장다희가 한 번 부딪히자마자 온몸이 부서질 듯한 모습을 보이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당황하기 시작했다."그만 찍어요! 저 여자가 연기하는 거예요, 난 건드리지도 않았다고요. 장다희가 나에게 부딪힌 거라고요, 난 자기방어를 했을 뿐이에요!"온지유는 급히 장다희를 부축하며 말했다."이미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잖아요. 왜 아직도 다희 씨를 괴롭히려는 거예요? 완전히 은퇴해야만 만족할거에요?"“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노승아는 온지유도 함께 헛소리하는 것을 보고 더욱 당황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상황에서 노승아는 더 이상 변명할 수 없었다.너무 방심했다.둘은 변했다. 이제는 교활해져서 노승아를 함정에 빠뜨리려 했다."기다려 봐요, 두고 보죠!"노승아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이 두려워 그 자리를 떠났다노승아가 떠난 후, 온지유는 장다희를 부축해 안으로 들어갔다. 상황을 연출하는 김에 끝까지 연기하기로 했다. 하지만 장다희는 온지유의 손을 잡고 말했다.그녀는 무언가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노승아의 힘이 그렇게 셌어요? 손에 멍이 들어있어요."온지유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자신의 팔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멍이 들었다. 하지만 색은 옅고 통증도 없었다."어머,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요."온지유도 요즘 자신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느꼈다.아무 이유 없이 멍이 생기는 이유가 무엇일까.노승아의 힘이 아무리 세도 결국 여자일 뿐인데, 이렇게 멍이 들 정도로 쥐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장다희는 걱정하며 말했다."노승아가 한 말도 좀 이상해요. 마치 무언가 알고 있는 것처럼, 그 눈빛은 마치 지유 씨가 어떤 끔찍한 일을 겪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 같았어요!"온지유도 그 느낌을 느꼈다."돌아 가면 몸 상태를 체크해 봐야겠어요."팔의 멍은 몸이 보내는 경고 신호일 수도 있었다.온지유가 막 장다희를 방으로 돌려보내려던 그때, 여이현이 이미 병실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용경호가 예의를
여이현은 급히 온지유를 안아 들고 의사를 찾으러 갔다.온지유는 응급실로 옮겨졌고, 의사들이 그녀의 상태를 검사하기 위해 줄줄이 따라 들어갔다.여이현은 문밖에서 초조하게 서 있었다.마음이 조여들어 한치도 긴장을 풀 수 없었고, 손바닥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어딘가 온지유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십여 분 후, 의사가 나와서 여이현에게 말했다."환자에게서 특별한 문제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검사 결과가 매우 건강한 상태입니다. 갑작스러운 실신의 원인은 알 수 없으나, 부인께서 몇 군데 멍이 들어 있고, 그 멍의 원인이 이상하다는 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부인의 목 뒤쪽에서 바늘자국을 발견했습니다."의사의 말을 듣고 여이현의 얼굴은 더욱 심각해졌다.증상을 찾지 못하는 것이 가장 위험한 상황이었다.여이현은 병실로 들어가서 온지유의 야윈 얼굴을 바라보았다.최근 들어 그녀는 많이 야위었다.임신 자체도 매우 힘든 일인데, 이제는 다른 증상까지 더해졌다.이 일이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다.여이현은 온지유의 손을 꼭 잡고, 얼굴을 어루만졌다.“형, 상황은?"지석훈이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다.그는 온지유의 창백한 얼굴과 상태를 보고, 확실히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여이현이 말했다."단기적인 실신이었고, 아직 원인을 찾지 못했어."지석훈도 의사였지만, 이 부서의 책임자는 아니었다.그는 온지유를 다시 검사한 후, 팔에 있는 멍을 발견했다. 이런 증상은 이전에 본 적이 없었다."독에 중독된 건 아닐까?"여이현도 그 가능성을 떠올렸다. 이것이 가장 나쁜 시나리오였다.만약 중독이라면, 독을 주입한 사람을 찾아야 해독제를 구할 수 있었다.게다가 그 독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최근 온지유가 납치된 적이 있어."여이현은 그들이 온지유에게 어떤 독을 주입했을 가능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지석훈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지유 씨에게 독을 주입했다면, 형에게 경고하려는 거야. 상대방이 약점을 잡은 거지!"여이현은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가능성은 그 사람밖에 없다.여이현은 온지유가 점점 야위어 가는 모습을 보며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여기서 지유를 지켜봐 줘, 어디 좀 다녀올게.여이현은 온지유의 아파트로 가기로 결심했다.그는 그 남자가 그곳에 있을 것임을 확신했다.지석훈은 여이현이 어디로 가려는지 몰랐지만 일단 대답했다."그래."분명 납치 당시 온지유는 피해를 보았을 것이다.온지유가 독에 중독된 것을 알아채고 그 독을 억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현재로서는 어떠한 희미한 희망이라도 놓칠 수 없었다.여이현은 아파트로 돌아와 온지유의 옆집을 바라보았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는 서둘러 문을 두드렸다.1분도 채 되지 않아 문이 열렸다.인명진은 집에 있었다. 그는 여이현이 자신을 찾으러 올 것을 알고 있었는지 전혀 놀라지 않은 채 말했다.“들어와요”여이현은 그의 창백한 얼굴과 쇠약한 몸을 보며 말했다."그 구슬은 당신이 온지유에게 준 건가요?"인명진은 여이현에게 물 한 잔을 건네며 말했다."그 구슬은 원래 온지유의 것이었어요."여이현은 다시 물었다.“전 온지유의 친구 중에서 당신을 본 적이 없어요."인명진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난 친구로 여길 만한 사람이 아니에요. 본디 빛을 볼 수 없는 존재니까요."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그렇게 정의하고 있었다.그는 항상 어둠 속에 있어야 했고 누구와도 떳떳하게 친구가 될 수 없었다.그는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아왔고 더 이상 친구가 필요하지 않았다.하지만 온지유만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여이현은 그 손목의 상처와 피를 흘린 흔적을 발견했다. 자기 피를 사용한 것일 테다."왜 병원에 가지 않는 거죠?""내가 바로 의사이기도 하니까요."인명진이 담담하게 대답했다."나보다 내 몸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어요."여이현이 말했다."그렇다면 당신도 온지유가 중독된 것을 이미 알고 있었군요. 그 구슬은 온지유를 살리기 위한 것이었죠."인
그 이름은 부대에 있을 때부터 이미 들어본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 사람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당신도 그를 본 적이 없나요?"여이현이 물었다.인명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는 진짜 모습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아요. 바이러스를 연구하며 몸도 꽤 강하죠.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건 이 정도에요."이 범죄 조직에 얽히면 일이 심각해진다.온지유도 과거에 그 사건에 연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그녀가 고등학교 시절 한여름 동안 실종된 것과도 일치한다. 그 당시 범죄 조직 하나가 잡혔고,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었으며, 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지금 그중 하나가 다시 나타나려고 하고 있다.그리고 그 '법로'라는 사람은 여전히 법을 피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다.여이현은 인명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걸 내게 털어주고, 조직의 보복은 두렵지 않나요?"인명진이 웃으며 말했다."이미 말했잖아요, 내가 살아가는 목적은 그녀를 위해서예요. 그리고 나는 약인이에요. 약인을 하나 키우는 데는 많은 정력이 필요하니 나를 쉽게 건드리지는 못할 거예요."그는 온지유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는다.이런 충성심은 여이현마저 놀라게 했다. 둘 사이에는 그가 관여하지 못한 다른 어떤 인연이 있었다.조금은 질투가 났다."지금도 의식이 없나요?"인명진이 물었다."갑자기 쓰러졌어요."인명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걱정했다.여이현이 결심했다."당신이 온지유를 도왔으니, 나도 당신을 자유롭게 해줄 방법을 찾아보죠. 지금은 해독제를 찾아야 해요."인명진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해독제라면, 아마도 그녀가 가지고 있을 거예요.""누구죠?"...온지유는 하루 밤낮을 내리 잠만 잤다.여이현도 하루 밤낮을 그녀 곁을 지켰다.그녀가 잠에서 깨지 않는 한 여이현은 긴장을 늦출 수 없었고, 잠도 자지 않았다.온지유가 깨어난 것은 정오였다.온지유는 눈을 뜨면서도 여전히 피곤함을 느꼈다.손가락을 움직여 보니, 누군가가 손을 잡고 있었다.온지유
온지유는 더 이상 격한 감정을 보이지 않고 차분해졌다.여이현이 자신을 오랫동안 걱정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더 이상 상처 주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온지유는 여이현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말했다."이제 다투지 말아요. 무슨 일이든 잘 이야기해 봐요, 네?""그래야지."여이현이 조용히 대답했다.온지유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왜 한마디만 해요? 혹시 기분이 안 좋은 거예요?""아니야."여이현이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다투지 말자고 하는데 어떻게 기분이 나쁠 수 있겠어."온지유는 그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만약 이미 나와 헤어지려고 마음먹었다면, 이제 와서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다 무의미한 거 아니에요?""그럴 리 없어."여이현이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우리는 절대 헤어지지 않을 거야.""정말 나랑 이혼하지 않을 거예요?"이 문제로 둘은 여러 번 다투었었다.온지유도 이혼을 여러 번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여이현이 자신을 위해 했던 일들을 생각해 보니, 그녀도 이해하게 되었다.모든 상황은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다.앞으로도 여이현 같은 사람을 만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마음 한구석에는 아직 그를 놓지 못하는 마음이 남아 있었다.배 속의 아기도 아빠가 필요했다.건강한 가정에서 자라는 것이 혼자서 키우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하지만 그래도 여이현의 진심을 확인하고 싶었다.더 이상 일방적으로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이혼하지 않을 거야."여이현이 조용히 말했다."생각해 봐, 계속 이혼하자고 떠들었던 건 너야. 나는 한 번도 그런 말 한 적 없어."온지유는 그가 전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당신이 내게 그런 생각을 심어줬잖아요. 우리의 결혼은 그저 하나의 거래라고 했고, 무정한 말들을 했잖아요. 내가 아무리 자존심이 없어도, 거기에 대고 죽을힘을 다해 매달릴 수는 없어요. 당신도 나랑 잘해보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던 거 아니에요?"온지유는 처음에는 그와 잘해보려는 생각이 있었다.지금은 그가
대신 일을 해줄 사람이 넘쳐나는데 뭐하러 본인이 고생하냐는 식으로 말하는 박은희에 나도현은 그저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다.“어머니, 시은이 몸 상태도 고려해주셔야죠. 시은이가 최근 4년간 하민이를 위해서 밤낮없이 일만 해온 거 어머니도 잘 아시잖아요. 저랑 같이 살게 된 지도 얼마 안 됐는데 여유를 즐길 틈도 없이 또 덜컥 아이를 가져서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도 여자니까 임신과 출산의 고생을 누구보다도 잘 아실 거 아니에요.”나도현의 그 한마디에 박은희도 할 말이 없었다.나도현은 박은희가 조금 망설이는 것 같아 냉큼 말을 이어갔다.“만약 하민이가 혼자라서 외롭다고 하면 당연히 둘째든 셋째든 낳을 테니까 그 점은 시름 놓으세요. 하지만 시은이와 저의 계획을 물으신다면 그건 그냥 순리에 맡기고 싶어요.”“알겠어, 그럼 너희 뜻대로 해.”박은희는 나도현이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더 밀어붙였다간 양시은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일까 봐 더 말하지 않기로 했다.그제야 박은희는 은근히 걱정됐다.“내가 이렇게 급해 했다고 시은이가 또 오해하진 않겠지?”“그럴리가요. 시은이는 어머니 마음을 이해할 거예요. 그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그런 사람이 아니란 것도 잘 알고 있을 거예요.”나도현이 박은희의 어깨를 토닥이며 별다른 말도 하지 않았을 때 양시은이 박은희를 향해 걸어왔다.양시은이 자신에게 미소를 짓는 것을 보자 박은희는 그제야 무겁게 가라앉았던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박은희는 나도현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넌 시은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서 바람을 좀 쐬고 들어와. 회사 일은 절대 걱정하지 말고 둘만의 시간을 좀 보내. 네가 그랬잖니, 그동안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고. 그러니까 이제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현재를 즐겨.”“알겠어요.”나도현은 대답과 함께 양시은에게 다가갔고 둘은 알게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함께 올라갔다.양시은이 단미주와 합작한 프로젝트로 인해 업계의 많은 사람은 양시은을 다시 볼 것이다.양시은은 그 결과에 대해
하민은 박은희와 함께 지낸 지 3년이나 되었고 이 집에서 제일 친한 사람이었다.하지만 하민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갈망했다.그래서 양시은과 나도현은 퇴근하는 대로 집으로 돌아와 하민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가끔 학부모의 참여가 필요한 활동은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하지만 너희들도 보다시피 하민이도 나를 잘 따르고 나도 시연이 널 도와서 아이를 잘 돌봐주잖니. 지금 너랑 도현이도 시간이 있고 하민이도 학교에 다니니까 내가 돌봐줄 수 있을 때 딱 둘만 더 낳는 건 어떠니? 그럼 우리 집안도 더 복작거리고 좋을 것 같은데 말이야.”양시은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을 때 나도현이 말을 가로챘다.“싫다는 게 아니에요. 다만 저랑 시은이는 아직은 하민이만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 아이 일은 나중에 더 말하는 거로 해요.”나도현은 하민이 한 명에게도 제대로 된 사랑을 못 주고 있는데 둘째까지 낳아버리면 하민이가 원래도 부족했던 사랑을 나눠줘야 할 것처럼 느낄까 봐 걱정됐다.“왜? 너희 둘 중에 누가 아프기라도 한 거야?”박은희는 말은 그렇게 해도 눈길은 이미 나도현에게 향해있었다.양시은은 이미 하민이를 낳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박은희의 시선을 느낀 나도현은 어쩔 수 없이 말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맞아요, 제 몸에 문제가 생겼어요. 최근 4년간 병원에 다니고 있었고 일도 바빠서 제 정자 생존율이 엄청나게 낮아졌어요.”그 말을 들은 박은희가 침착할 리 없었다.박은희는 당장 나용민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당신이 기를 쓰고 도현이에게 회사를 물려주려고 부담을 주니까 도현이 몸이 망가졌잖아요. 지금 당장 회사 업무를 이어받아서 책임지고 도현이 좀 푹 쉬게 해줘요. 국가 정책도 개방된 마당에 애가 하나밖에 없는 게 말이 돼요?”박은희에게는 나도현이 유일했다. 애당초 박은희는 나도현이 양시은과 사귈까 봐 온갖 방법을 다 대며 노력을 했지만 결국 나도현은 그런 박은희의 노력을 무시하듯 박은희의 뜻대로
그 순간 양시은은 단미주를 흘겨보았다. 차디찬 양시은의 눈빛이 이미 모든 걸 설명하고 있었다.양시은이 설령 지금 나진 그룹의 비서가 아니라고 해도 대학을 나온 사람인데 PPT 하나 만들 줄 모른다는 게 말이 될 리가 없었다.단미주는 잠시 멈칫하더니 물었다.“그냥 궁금해하는 것도 문제가 되나요?”양시은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이윽고 양시은은 단미주를 회의실 안으로 안내했고 단미주가 그렇게나 기다리던 PPT를 그녀의 눈앞에 보란 듯이 전시해두었다.양시은은 미소를 띠며 단미주에게 물었다.“단미주 씨, 무슨 문제라도 있을까요?”양시은은 단미주와의 합작이 절대 쉽지 않을 것을 직감하고 그녀가 제기할 모든 문제점을 예상해 아주 작은 방면들까지 철저히 준비했다.게다가 그날은 단미주도 나도현에 대한 은근한 마음을 드러냈었지만 나도현은 양시은 때문에 단미주에게 더는 반응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단미주도 양시은이 자신을 통해 양시은이라는 사람을 증명하고 싶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단미주는 양시은이 얼마나 문제를 전면적으로 바라보는지를 깨달았고 덩달아 양시은이 훌륭한 여자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단미주는 양시은의 치밀함에 진심으로 탄복하였고 마침내 나도현이 왜 양시은을 선택했는지도 알게 되었다.“이 프로젝트에 서명할게요. 그리고 앞으로 더는 양시은 씨를 난감하게 하지도 않을게요.”“벗이 늘어나는 건 어떻게 보나 적이 늘어나는 것보단 이득이죠. 단미주 씨도 상당히 능력 있는 사람이에요.”양시은도 그 순간에는 진심으로 단미주를 칭찬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미주는 자신이 결코 양시은의 칭찬을 받을만한 사람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양시은 씨, 그동안 제가 양시은 씨에게 했던 무례한 행동들에 대해 사과할게요.”말을 마친 단미주는 정말로 90도 인사를 하며 사과를 했다.회의실에는 다른 사람들도 있었지만 단미주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단미주 역시 업계에서 꽤 유명한 사람인데 그런 단미주가 양시은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리라고는 그 누구도
나도현은 결코 쉽게 알려주지 않았다. 양시은은 작게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설레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비장하게 찾아보라고 말한 것 치고는 그리 깊은 곳에 숨긴 것도 아니었다.막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 양시은은 침대 밑에서 나도현의 마지막 서프라이즈를 찾아냈다.그건 다름 아닌 사진 한 장이었다.사진 속 양채은과 엄마 문해미가 해외의 유명한 철탑 아래에서 해맑게 웃고 있었다.잠시 얼어붙었던 양시은은 이내 눈시울을 붉히며 목멘 소리로 나도현에게 물었다.“채은이랑 엄마는 어떻게 찾은 거야?”나도현은 양시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양시은을 반쯤 안은 상태로 사진을 들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내가 찾은 게 아니야. 정확히 말하면 이 사람들이 날 찾은 거지.”이윽고 나도현이 설명해주었다.그 사진은 바로 어제 받은 산 건너 물 건너온 우편이었다.지금처럼 인터넷이 발전한 시대에 우편을 사용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이미 해외에서 이곳까지 넘어오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테니 지금 당장 그곳에 가서 사람을 찾는다고 해도 찾지 못할 게 뻔했다.나도현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내 생각엔 그 사람들이 시은이 네 생일을 기억하고 일부러 시간을 철저히 계산해서 너한테 이 사진을 보낸 것 같아.”나도현의 말을 끝으로 양시은은 사진을 액자에 넣어 침대 머리맡 탁자 위에 세워두었다.양시은은 하루 만에 초안 수정을 마쳤다.철저하게 시간 계산을 마친 단미주가 때마침 하이힐을 도각거리며 나진 그룹에 들이닥쳤다.“어떻게 됐어요, 양시은 씨. 제가 준 프로젝트에 대한 방안이 생기긴 했어요?”양시은이 막 대답하려고 할 때 단미주는 새로 바꾼 네일아트를 자랑이라도 하듯 손을 휘저으며 멋대로 말을 가로챘다.“방안이 생기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저도 일부러 사람 난감하게 하는 악취미는 없어서요.”양시은은 어이가 없다 못해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단미주 씨는 정말 본인이 요구한 조건들이 사람을 난감하게 만들지 않았다고 생각하나요?”“당연하죠.”단미주는 비웃음과 함
양시은은 커다란 장미꽃 다발을 보고는 물었다.“도현 씨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거지?”“그래서 꽃다발도 준비했는데 한 번만 봐주면 안 될까?”나도현은 자상하게 웃으며 양시은에게 말했다. 업무 중일 때는 그토록 차가운 사람에게 이렇게나 다정한 모습이 있을 거라고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얼마 후 양시은은 나도현의 손에 들린 꽃다발을 받아 들고 말했다.“할 수 없지 뭐...”양시은이 아직 뽀로통한 걸 본 나도현은 고개를 돌려 또 살짝 웃어 보였다.하민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손가락 틈새로 둘을 훔쳐보았다.온지유는 일부러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두 사람 사이가 여전히 좋은 건 잘 알겠어요. 아무리 그래도 저희까지 찬밥신세로 만들어야 하겠어요? 지금 먹지 않으면 음식도 다 식을 것 같으니까 빨리 앉아요.”양시은은 하민을 챙겼고 그제야 함께 서 있던 사람들도 모두 앉아서 식사를 시작했다.가정부가 보이지 않자 양시은은 이 많은 음식을 누가 준비했는지 궁금해져 몇 번 더 두리번거리다가 온지유에게 물었다.“지유 씨가 이 음식들을 모두 준비한 거예요?”온지유는 별이에게 음식을 집어다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부는 제가 했어요. 그리고 나머지 일부분은 시은 씨 남편이 준비한 거예요.”그러고는 손으로 나도현을 가리켰다.양시은은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물었다.“오늘 온종일 회사에 있지 않았어?”나도현은 많이 해본 듯 익숙한 손놀림으로 양시은에게 국을 퍼주고는 대답했다.“일부는 사전에 준비해야 하는 것들도 있어. 그래서 내가 특별히 세프님도 찾아가서 어떻게 하는지 배워왔단 말이야. 그리고 미리 해서 냉장고에 숨겨뒀지.”양시은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만 뻐끔거릴 뿐이었다. 마음속으로는 감동이 밀려왔지만 그와 동시에 웃음이 터질 것 같기도 했다.양시은은 자칫 자신도 잊어버릴 뻔한 생일을 그들이 자기 몰래 이렇게나 정성 들여 준비해준 게 고마웠다.아무래도 양시은이 꽤 오랫동안 생일을 챙기지 않은 탓에 그 감동이 더 큰 것 같았다.그건 그렇
초안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던 나도현은 뻐근한 눈을 비비고는 이내 눈을 뜨고 양시은을 향해 웃어 보였다.“작은 문제들이 있는 거 빼고는 전반적으로 참 괜찮은 초안이야.”양시은은 바로 고쳐야 할 점들을 물어보았다. 그 모습은 마치 공부를 사랑하는 학생 같았다.그리고 양시은의 선생님이라고 봐도 무방한 나도현 역시도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자신의 학생에게 아낌없이 전수해주었다.둘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오후 내내 초안을 토론했다.양시은은 만족스러운 피드백을 얻어내고 나서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초안을 들고 곧장 수정하러 달려갔다.양시은은 그렇게 꼬박 저녁까지 초안을 수정했다.일을 마친 나도현은 아직도 컴퓨터 앞에서 고개를 박고 초안 수정하기에 여념이 없는 양시은을 발견하고는 난감한 듯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양시은을 자리에서 일으켰다.양시은은 갑자기 붕 뜬 상반신에 놀라 얼떨떨해했다.“뭐 하는 거야, 도현 씨. 난 아직 일이 남았단 말이야.”나도현은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지금이 몇 신지 직접 봐.”양시은은 시간을 확인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탓에 하마터면 나도현과 부딪칠뻔했다.“하민아!”순간 놀라서 이마를 탁 친 양시은은 뒤늦게 이미 가정부에게 대신 하민이를 데리러 가달라고 부탁했던 것이 생각났다.양시은의 기색을 확인한 나도현은 굳이 묻지 않아도 양시은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결국 나도현은 난감하단 듯이 말했다.“하민이를 데리러 가지 않아도 퇴근은 해야지. 무작정 야근한다고 내가 야근 수당을 챙겨주는 것도 아니잖아.”말을 끝낸 나도현은 무 뽑듯 양시은을 의자에서 일으켰다.양시은은 회사를 떠나면서 이처럼 미련이 뚝뚝 떨어지기는 처음이었다.(그 사람의 초안이 거의 다 완성됐는데...)하지만 양시은을 퇴근시키려는 나도현의 태도는 굳건했다.출퇴근 시간이라 돌아가는 길에 차가 막혔다.양시은은 그다지 일에 집착하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미처 끝내지 못하고 퇴근한 일에 대한 미련은 진작에 없어진
나도현은 그저 한쪽에 두었던 기획서를 빼갈 뿐이었다.자신이 오해했음을 깨달은 단미주는 머쓱함을 숨기려 애써 진정하며 나도현이 움직임을 슬쩍 살피고는 말했다.“이 프로젝트는 원래부터 도현 씨에게 맡기려고 했던 거니까 프로젝트를 받아들일지 아닐지만 말해줘요!”양시은은 나도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다만 양시은은 아침부터 찾아와 시비를 걸고 대놓고 불만을 드러낸 단미주의 뜻대로 일이 흘러가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제멋대로인 사람에게 조금의 틈도 허락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나도현은 양시은을 한번 보고는 입꼬리가 휘게 웃으며 그녀를 달래듯 말했다.“제 생각엔 가능할 것 같아요.”그 말은 양시은에게 하는 말이었다.하지만 단미주는 자신에게 하는 말인 줄 알고 아까의 울분은 금방 잊어버리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양시은 씨 들었죠? 도현 씨가 당신 직속 상사인 것도 맞죠? 직속 상사도 받아들인 마당에 당신이 더 할 말은 없겠죠?”단미주는 이미 자신이 양시은의 갑이라도 된 것처럼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비록 사실이기는 했으나 콧대 높은 모습이 퍽 얄미운 것만은 사실이었다.양시은이 작게 미간을 찌푸렸을 때 나도현은 단미주를 보며 입을 열었다.“단미주 씨, 제가 이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다고 해서 단미주 씨가 나진 그룹에서 멋대로 행패를 부려도 된다는 뜻은 아닌데요. 그러니 제 비서에게도 예의를 갖춰주세요. 그러지 않으면 사람을 불러 단미주 씨를 이곳에서 끌어낼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주세요.”단미주는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뻐끔거리더니 순식간에 낯빛이 어두워졌다.양시은은 나도현 덕분에 꽉 막힌 것 같던 가슴이 조금 전보다 매우 후련해졌고 이 프로젝트를 받아들이는 것도 아까만큼 싫진 않았다.“알겠습니다, 승낙하겠습니다.”양시은은 그렇게 말하며 나도현의 손에서 기획안을 가져왔다.단미주는 양시은과 나도현을 번갈아 가며 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럼 절 실망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거예요, 양 비서님.”단미주가 나가
단미주는 담담히 말했다.“아무도 안 배워줬다면 지금 배우면 되겠네요. 전에 서비스업 할 때 어땠는지 잘 알잖아요. 이제 나도현 씨랑 결혼했다고 태도를 바꾸겠다는 거예요? 사람은요, 초심을 버리면 안 되는 거예요.”나도현은 클럽 안까지 따라오려고 했다. 하지만 양시은이 거절하고 그를 밖에 세워뒀다. 그걸 모르는 단미주는 그녀 혼자 있는 게 만만해 보였는지 처음부터 줄곧 막말을 쏟아냈다.“단미주 씨, 제가 오늘 왜 여기 왔을 것 같아요?”양시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예리한 시선으로 단미주를 바라봤다.단미주는 비웃는 표정으로 대꾸했다.“제가 그것도 알아야 해요? 여기 온 이상 똑똑히 기억해요. 저는 갑이고, 양시은 씨는 을이에요.”갑과 을이라는 표현에 양시은은 피식 웃음이 터졌다.“협력이 성사됐나요? 제가 협력 얘기는 없던 거로 하자면 어떡할 건데요. 저도 단미주 씨랑 꼭 협력해야 한다는 의무는 없어요.”양시은은 단미주의 거만한 태도가 못마땅했다. 단미주가 조금은 자중하다가 협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뒤에야 빈정대려나 싶었는데, 예상과 달리 시작부터 전혀 자제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그렇다면 양시은도 더 이상 배려할 필요가 없다.“협력할 마음이 없는 것 같으니, 저도 여기 있을 이유가 없겠어요. 단미주 씨, 앞으로 저를 계속 괴롭히려 든다면 저도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퇴로는 마련하고 이러는 건지 모르겠네요.”그 한마디를 남기고, 양시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섰다. 그런데 문을 나서려던 찰나 나도현이 문간으로 들어서는 게 보였다.그의 시선은 아주 날카로웠다. 양시은은 그가 분명 단미주에게 따지러 왔다는 걸 직감했다.얼마 전 연회장에서, 나도현은 단미주를 크게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 줬다. 하지만 단미주는 전혀 자중하지 않고 또다시 양시은을 건드렸다.나도현은 입가에 냉소를 띠었다.“협력이라는 것도 결국 내 아내를 곤란하게 하려는 속셈 아니었나요? 근데 왜 이어가지 않아요?”단미주는 그가 밖에서 기다리고만 있으리라 생각했지, 직접
그날 연회장에서, 사람들은 나도현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대놓고 양시은을 무시했다. 하물며 그가 없는 틈을 노려 양시은에게 험한 말을 하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나도현은 양시은의 손을 꼭 잡으며 부드러운 눈빛을 보냈다.“우리 예전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잖아. 이제 겨우 함께하게 됐는데 내가 널 지키고 싶은 마음도 알아줘. 무슨 일을 겪든 나한테 꼭 말해 줘. 말 안 해주면 내가 모르고 지나갈 테고, 그럼 너 혼자서 괜한 고생할 거잖아.”차분하고도 따뜻한 나도현의 목소리가 귀에 맴돌았다.양시은은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네 마음 다 알고 있어. 그런데 이번 협력은 정말 내 실력을 증명할 기회라고 생각해.”스스로 능력을 입증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까.양시은은 나도현의 곁에서 누구도 의심하지 못할 당당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그 여자랑 협력한다고 해서 뭘 증명할 수 있는데? 시은아, 내가 있으면 굳이...”나도현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양시은이 손으로 그의 입술을 막았다. 더는 말하지 말라는 뜻이었다.나도현의 생각은 그녀도 알았다. 그래서 조곤조곤 설명하기 시작했다.“단미주 씨는 나를 무시하고 있어. 만약 이번 기회에 단미주 씨의 기를 꺾으면 아무도 날 얕볼 수 없을 텐데, 넌 어떻게 생각해?”양시은의 의도는 너무나 단순하고 직설적이었다.나도현은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악감정을 품은 사람의 생각은 쉽게 바꿀 수 없어. 네가 아무리 잘해도 끝없이 딴지를 걸 거야. 넌 그냥 네가 해야 할 일을 잘하면 돼. 굳이 모두를 설득할 필요는 없어.”그의 부모만 해도 양시은에게 엄청난 편견이 있었다. 비록 지금은 편견을 내려놓고 하민에게 관심을 쏟고 있지만 말이다.어찌 됐든 유언비어는 끊임없이 생기는 법이라, 양시은이 모든 공격을 다 막기에는 무리가 있었다.“아니, 난 이미 마음먹었어. 말리지 말아 줘.”양시은은 결심이 확고했다. 나도현도 억지로 막을 수 없음을 잘 알았다.“그래. 그렇다면 내가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