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아가 진심으로 사죄한다는 듯 고개를 숙이자 여이현이 나서며 카메라에 대고 말했다.“오늘 기자회견은 독 같은 건 애초에 없었고 누가 누구를 시해하려는 행동도 없었음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제목 어그로는 자제 부탁드립니다.”표정을 굳힌 채 검은 아우라를 뿜어내며 180㎝가 넘는 큰 키로 기자들을 압도하는 그 포스에 온지유는 어딘가 씁쓸했다.이렇게 노승아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 그녀의 편을 들어주는 남자가 저한테만 매정한 것이 서운했다.아마도 여이현을 저렇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노승아뿐인 것 같았다.온지유가 그만 돌아서려 할 때 화면에 또 다른 자막이 달렷다.이번에는 카메라가 노승아가 아닌 여이현의 얼굴을 잡으며 물었다.“여 대표님이 오늘 노승아 씨를 대변하는 건 공적인 마음입니까 아니면 사적인 마음입니까?”“둘 다라고 해두죠.”여이현의 말이 흘러나옴에 따라 자막도 바뀌는 것을 본 온지유는 갑자기 무언가가 심장을 짓누르는 것만 같이 답답해졌다.“그럼 노승아 씨와 앞으로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시단 말씀인가요?”그 질문에 노승아는 여이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말을 가로챘다.“이건 저희 둘만의 사적인 얘기인 것 같네요, 만약 좋은 소식이 있다면 꼭 여러분께 전해드리겠습니다.”말을 마친 노승아가 여이현의 팔짱을 끼며 다정하게 올려다보는 모습에 온지유는 더 보고 있을 수가 없어 몸을 돌렸다.하필 오늘따라 검은색과 흰색으로 맞춰 입어 더욱 선남선녀같이 잘 어울렸다.“저기요, 계산 안 해요? 안 살 거면 빨리 비켜요! 다들 여기서 줄 서고 있잖아요!”그때 뒤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호통에 온지유는 생각을 접고 말했다.“봉투 주세요, 큰 걸로요.”노승아와 여이현 사이는 어차피 뻔한 결말이었다. 여이현이 해외에서 돌아온 노승아를 위해 매니지먼트를 차려주고 그녀만을 케어해 줄 때부터 둘이 잘 될 거란 걸 예견해왔었기에 온지유는 점점 이런 상황에 익숙해지고 있었다.기자회견이 아니라 결혼 발표를 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사이였다.그래서 온지유는
노승아가 차에서 내리려 할 때 그녀에게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노승아 씨, 택배 왔는데 좀 많아요. 내려와서 받아가세요.”노승아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택배기사를 볼 수 있었다.작은 끌차에 택배를 빼곡히 채운 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었다.노승아는 이때다 싶어 여이현에게 부탁을 해왔다.“오빠, 나 좀 도와줄 수 있어요? 집에 조명이 고장 나서 전구 좀 샀거든요.”여이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에서 따라 내려서는 노승아의 집으로 향했다.5분 뒤, 노승아의 집에 들어온 여이현은 배진호에게 눈짓했다.그리고 그 의미를 알아차린 배진호는 팔을 걷고 나서서 전구를 갈기 시작했다.온지유에게 전화를 하려고 여이현이 금방 뒤를 돌았을 때 노승아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블루베리 주스를 여이현의 셔츠 위로 쏟아버렸다.언짢아진 여이현의 미간을 찌푸리자 노승아는 바로 자책하며 사과를 해왔다.“미안해요, 오빠. 이 블루베리 주스는 내 친구 회사에서 직접 만든 거라 나한테 보내준 건데 맛있는 것 같아서 오빠도 주려고 했는데... 나는 진짜 왜 이렇게 제대로 하는 일이 없을까요?”“괜찮아.”여이현은 천천히 말하고는 블루베리 주스에 흠뻑 젖은 옷보다 바닥에 놀린 유리 조각에 먼저 시선을 돌렸다.그때 노승아가 허리를 굽혀 유리 조각을 쓸어 담으며 말했다.“근데 오빠 옷... 우리 집에 일회용 가운 있으니까 일단 가서 씻어요, 오빠 집 가려면 아직 한참 있어야 하잖아요. 배 비서님한테 깨끗한 옷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면 되잖아요, 나는 이거 먼저 치울게요.”그런데 바닥을 치우던 노승아가 갑자기 손가락을 잡으며 신음을 내뱉었다.그 칠칠찮은 모습에 여이현은 낮게 잠긴 목소리로 한소리 했다.“그냥 입주 가정부를 구하는 게 어때? 집에 밴드 있어?”“혼자 지내는 거 좋아해요, 밴드는 아마 있을 텐데, 내가 찾아볼게요.”“어딨는데, 내가 가져올게.”짤막하게 말하던 여이현은 피가 멈추지 않는 노승아의 손가락을 보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너 지금 못 찾잖아, 그러
여이현은 몇 초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3일 뒤 F 국 가는 티켓 끊어놔, 온지유 이름으로.”“네.”배진호의 대답이 들리자 차에서 내린 여이현은 수려원 안으로 들어갔다.그 사이 주방에서 바쁘게 돌아다니던 온지유는 여이현이 현관을 지날 때 마침 다 된 음식들을 들고나오며 말했다.“왔어요? 마침 준비 다 했는데, 얼른 밥 먹어요.”여이현을 한번 쳐다본 온지유는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그런데 여이현은 또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눈썹을 치켜세우고 온지유에게로 다가갔다.온지유도 그제야 여이현 셔츠에 번진 자국을 볼 수 있었다.“아주머니, 가서 남은 음식들 좀 들고나와 주세요.”“당신은 일단 가서 씻어요, 옷은 내가 찾아놓을게요.”온지유는 말을 하며 앞치마를 벗었다.여이현 옷에 가득한 자국에 대해서는 일절 묻지 않고 표정도 평온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참다못한 여이현이 입을 열었다.“온지유, 너는 네가 정말 좋은 아내라고 생각해?”여이현과 말다툼을 하고 싶지 않았던 온지유가 차분함을 유지한 채 답했다.“말하고 싶으면 당신이 알아서 말하겠죠.”온지유의 말은 여이현이 말하지 않는 일이면 굳이 물을 필요도 없다는 뜻이었다.그리고 여이현이 노승아와 같이 있다 온 걸 알기에 온지유는 그 자국의 출처가 알고 싶지도 않았다.“석훈 씨한테 연락할까요?”“됐어.”말을 마친 여이현은 온지유를 지나쳐갔지만 온지유는 이내 그 뒤를 따라가 갈아입을 옷을 찾아주었다.그렇게 검은색 홈웨어를 든 온지유는 화장실 문을 두드리고 말했다.“옷 여기 찾아놨어요.”“들고 들어와.”여이현의 말에 온지유는 한숨을 쉬며 화장실 문을 열었지만 입구에만 서 있었다.그런 온지유를 본 여이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내가 팔이 그렇게 길진 않아.”그 말에 온지유가 할 수 없이 몇 발자국 더 가자 여이현은 온지유를 끌어당겨 벽에 붙이고는 도망가지 못하게 가두어버렸다.열기로 가득한 욕실에서 고개를 숙인 채 드러낸 온지유의 목선은 오늘도 여이현을 흔들어놓았다.
온지유 한번 바로 본 여이현이 차갑게 말했다.“들어오라고 해.”그에 온지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술만 말아 물고 있었는데 그사이에 안으로 들어온 노승아가 여이현에게로 다가왔다.온지유는 노승아를 보진 않았지만 그녀의 앙칼진 목소리가 귓가에서 울리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오빠, 옷 가져왔어요.”집으로 온 노승아는 이미 초록색 원피스로 갈아입고 있었고 그 위로 여전한 웨이브 머리를 하고 있어 사람이 더 날씬해 보였다.“뭐 이런 거로 여기까지 직접 와.”그때 온지유는 무의식적으로 여이현을 바라봤다.표정은 아까와 다름없었지만 말은 노승아를 걱정하는 듯한 내용이었다.“내가 직접 안 가져오면 마음이 불편해서요. 그런데 밥 먹고 있었네요, 이거 온 비서님이 하신 거죠? ”“응.”여이현이 담담히 대답하자 노승아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온지유를 바라보며 물었다.“온 비서님, 나도 먹어봐도 돼요? 나 오늘 마침 시간도 비는데, 요리 좀 가르쳐 주면 안 돼요?”“수저 준비해 줄게요. 요리 배우는 건 제가 좀 바빠서 시간이 없네요.”단호하게 거절한 온지유가 아주머니를 불렀다.“아주머니, 여기 수저 좀 준비해 주세요.”“네, 사모님.”아주머니가 이내 수저를 들고 오자 노승아는 자연스레 여이현의 옆자리로 가 앉았다.온지유는 아무리 여이현과 결혼한 거나 다름없는 사이라 해도 아직까지 외부에 알려진 여이현 부인은 자신이었기에 이렇게 위아래 모르고 달려드는 노승아가 못마땅하여 아주머니에게 말했다.“아주머니, 과일 좀 부탁해요. 노승아 씨 식사 끝나면 드리세요.”물론 노승아도 온지유의 뜻을 알아차렸지만 시치미를 떼고 갈비를 집어 먹고는 말했다.“고마워요, 비서님. 와, 근데 요리 엄청 잘하시네요,나 좀 가르쳐주면 안 돼요?”노승아는 여우답게 먼저 온지유를 추켜세우고 바로 부탁을 해왔다.“오빠, 언니 일 좀 쉬게 해줘요, 네?”노승아가 여이현을 보며 애교를 부리는 모습에 온지유가 입을 열었다.“밥 다 먹으면 가르쳐 줄게요.”노승아의 부탁이라면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는 온지유에 열이 받은 노승아는 얼굴이 점점 달아올랐다.하지만 그녀의 이성이 침착하라고 얘기해주고 있었기에 노승아는 표정을 굳히고 말을 이었다.“그렇게 잘난 척할 건 없지 않나, 오빠가 당신을 외부에 공개한 적도 없잖아요. 그리고 오빠가 더 감싸는 건 저예요.”말을 마친 노승아는 과일칼을 집어 들고 온지유에게 건네며 말했다.“비서님, 이제 야채 써는 것 좀 알려줘요.”온지유는 그 칼을 받아들지 않고 미간을 찌푸리며 아주머니를 불렀다.“아주머니, 나는 인내심이 없어서 아주머니가 노승아 씨한테 야채 손질하는 법 좀 가르쳐줘요.”온지유가 칼을 받지도 않고 가르치려 들지도 않는 걸 본 노승아는 표정이 굳어졌다.제 계획을 실행할 수 없게 되자 흥미가 사라진 노승아는 칼을 도마 위로 던지며 말했다.“됐어요, 내가 일이 있는 걸 깜빡했어요, 나중에 다시 와서 배울게요.”아까는 배우겠다더니 이렇게 갑자기 말을 바꾸는 노승아를 아주머니도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그때 거실로 나온 노승아는 제가 여이현에게 가져다준 옷이 소파에 던져져 있는 걸 보았다.그리고 마침 온지유가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그에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난 노승아는 그 옷을 가지러 가는 척하며 뒤로 넘어지며 테이블 위에 물건들을 떨어트렸다.그리고 이내 붉어진 눈시울을 하고 소리를 질렀다.“온 비서님, 이건 내가 오빠한테 미안해서 가지고 온 거예요. 나 가르치기 싫으면 아까 바로 거절하지 오빠 앞에서는 알겠다고 하다가 왜 이제 와서 나를 밀치는 건데요?”가수가 배우 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물오른 연기를 보여주는 노승아에 온지유는 헛웃음이 나왔다.“노승아 씨, 여이현 씨가 누굴 연기 선생님으로 붙여준 거예요?”온지유는 무릎에 손을 올린 채 몸을 앞으로 숙이며 얼굴에는 웃음을 띠고 물었다.물론 그 웃음 속에 가소로움이 담겨있는 걸 노승아도 보아냈지만 노승아는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 나 가르치기 싫어서 아주
여이현의 말에 노승아와 온지유 모두 의아했다.여이현의 옆에서 오랜 시간 같이 지내오며 비서일까지 하며 봐온 여이현은 이런 상황에서 온지유에게 노승아를 일으킬 것을 명령하는 게 정상인데 오늘은 아주머니에게 명령하는 게 이상했다.하지만 온지유는 별생각을 하지 않고 핸드폰만 들여다봤다.온지유는 나서서 자신의 결백을 밝히지도 않고 가만히 CCTV 영상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어차피 CCTV 만 보면 노승아의 만행이 다 드러날 테니까.그리고 노승아도 마찬가지로 여이현의 달라진 태도를 느낄 수 있었다.지금의 여이현은 노승아를 믿지 않고 있었다. 여이현의 차가워진 말투에서 그걸 느낄 수 있었다.그래서 노승아도 도박을 하고 있었다.2분 뒤, 경호원이 CCTV를 들고 나타났다.CCTV에는 노승아가 온지유를 지날 때 뒤로 넘어지는 게 찍혀있었다. 누군가에게 밀린 듯이 찍힌 영상이었다.그에 여이현은 차가운 표정으로 온지유를 보며 말했다.“사과해.”이건 명령이었다.CCTV가 있다고는 하나 가족들의 사생활을 위해서 360도 다 찍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사각지대에 노승아와 온지유가 찍혀 버린 것이다.하지만 여이현은 제가 직접 본 걸 토대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또 노승아는 여전히 자신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녀의 편을 들 수밖에 없었다.“싫다면요?”온지유는 여이현을 올려다보며 말했다.온지유가 아무리 괜찮은 척해도 그녀도 사람이었다.여이현이 불륜녀를 집에까지 끌어들이고 저더러 그에게 요리까지 가르치게 하고 이번에는 사과까지, 이미 온지유가 참을 수 있는 한계는 벗어난 지 오래였다.“오빠, 난 온 비서님 이해해요. 내 잘못이에요. 오빠랑 내가 너무 가까워서 그러는 걸 거에요.”그때 노승아가 또 끼어들며 불난 집에 부채질해댔다.그 말에 여이현의 눈빛이 점점 더 차가워지자 온지유가 헛웃음 터뜨리고는 말했다.“이건 애초에 노승아 씨 잘못이잖아요.”다른 사람의 가정을 깨뜨리는 불륜녀 주제에 당당한 게 화가 났던 온지유가
온지유는 아까도 이걸 발견했지만 노승아가 여이현이 저한테 화를 낼 거라는 착각을 하고 돌아가게 내버려 두었다.“그럼 아까는 왜 얘기 안 했어?”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여이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그에 온지유는 비아냥 대듯 말하고는 여이현을 지나쳐갔다.“여이현 씨가 이미 나를 안 믿는데 내가 뭐라고 한들 그 마음이 바뀌겠어요?”여이현은 말을 마치고 멀어져가는 온지유를 잡지도 못했고 그녀를 불러세우지도 못한 채 시선을 온지유의 등에 고정하고만 있었다....여이현이 담배에 불을 붙이자마자 노승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스피커 핸드폰으로 전화를 받자 노승아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나왔다.“오빠, 온 비서님한테 너무 뭐라 하지 마요. 내 잘못이에요. 이젠 내가 오빠 찾는 횟수도 좀 줄여볼게요.”“그러는 게 좋을 거야.”방금 까지만 해도 온지유에게 사과를 하라 지시하던 남자의 태도가 불과 몇 분 만에 바뀌자 어리둥절한 노승아였다.설마 자신을 믿지 않는 건가.아닌데, 그렇다기엔 CCTV에 다 찍혀있었기에 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그래서 노승아는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입을 열려 했다.그런데 그때, 여이현이 먼저 차가운 말을 내뱉었다.“노승아, 더는 내 한계를 시험하지마.”말을 마친 여이현이 전화를 끊었고 핸드폰 너머에서 들리는 신호음 소리에 노승아는 잠시 벙쪄있었다.무슨 일이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지만 노승아는 여기서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다시 여이현 옆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 노승아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온지유를 치워 낼 생각이었다.한편 담배를 다 핀 여이현은 아주머니를 불렀다.“위에 좋은 걸로 뭐 좀 만들어줘요. 지유 줄 거로요.”원래도 위가 좋지 않았는데 노승아가 온 뒤로는 통 밥을 먹지 않았던 온지유가 걱정되어 한 부탁이었다.“네,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1인분 정도는 빠르게 만들어 낸 아주머니가 온지유의 방으로 들고 들어가려 하자 여이현이 그를 불러세웠다.“잠깐만요.”여이현은 바로 음식을 받아들고 자신이 직접 2층으로
여이현은 음식을 온지유 앞에 들이밀며 말했다.“내가 먹여줘야 해?”차분하게 내뱉는 그 말에 온지유는 그가 정말 먹여줄 거라 생각 못 하고 냉정하게 거절했다.“먹고 싶지 않은 것도 당신이 주면 나는 억지로 먹어야 해요? 나는 그 정도 자유도 없는 사람이에요?”그 말에 여이현은 말없이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온지유 입가에 가져다 댔다.매일 같이 마주하던 차가운 눈이 아니라 온기가 있는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상대에 온지유는 이 상황이 어리둥절해 났다.“밥은 먹어야지.”여이현은 평소와 달리 차분하게, 또 다정하게 말했다.그런 상황이 누구보다 불편했던 온지유는 숟가락을 빼앗듯이 받아들며 말했다.“내가 알아서 먹을게요.”여이현이 또 먹여주겠다고 나설까 봐 온지유는 허겁지겁 음식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그 모습을 본 여이현은 웬일로 물까지 건네주었다.“천천히 먹어, 목 막히겠다.”목이 막힌다기보다 여이현의 행동에 놀란 게 더 문제였던 온지유가 무슨 말이라도 하려 하자 여이현이 그녀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배 비서한테 티켓 끊어놓으라고 했어.”“F 국 가는 티켓이요?”“응.”믿기지 않는다는 듯 묻는 온지유에 여이현이 긍정의 대답을 해왔다.“부모님께 말씀드려놔, 너랑 내가 같이 사라지면 실종됐다고 걱정하실 수도 있잖아.”“네.”온지유는 입술을 말아 물며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아무래도 여이현은 병을 줬으니 약이라도 주려 하는 것 같았다.하지만 이번 여행이 둘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 될 것이다. 온지유는 더 이상 여이현을 따라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때 여이현이 입을 열며 조심스레 말했다.“아까 CCTV 볼 때 네가 말이 없어서 인정하는 건 줄 알았어. 앞으로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바로바로 얘기해줘.”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여이현은 제 눈으로 본 것만 믿는 사람이었기에 아까 상황에서도 자신이 본 걸 토대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나한테 해명하는 거예요?”온지유는 오늘따라 이상한 행동을 하는 여이현을 올려다보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