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이현이 온지유의 엉덩이에 한 대 때렸다.쓰라리게 아프다.“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여이현이 차답게 말했다.잠시 후.온지유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다. 피부도 여리고 여이현의 손길에 어쩔 줄 몰라 했다.“그만… 제발… 그만해요…”여이현은 머리카락이 헝클어진 채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고, 볼은 빨갛게 달아오르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는 온지유를 보았다.셔츠는 허리에 걸쳐 있었고, 스타킹은 이미 여이현에게 찢어져 있었다.온지유는 눈물을 흘리고, 코도 빨개지고 모습은 마치 괴롭힘을 당하는 듯한 애처로운 모습이었다.여이현은 이 모습을 보고 안쓰러운지 온지유를 품에 안고 앉았다.온지유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너무 많이 울어서 목도 쉬었고, 시선도 흐릿했다.온지유는 여이현 품에 안겨 산산조각 난 인형처럼 반항할 힘도 잃었다.여이현이 온지유한테 옷을 입히고 품에 안은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얌전하게 굴었다면 뒷일은 없었을 거야.”온지유는 여이현이 무엇 때문에 성질이 나는지 몰랐다.또 자기는 뭘 잘못했는지…지금은 여이현을 사람이 아니라 짐승처럼 느껴질 뿐이다.아주 위험하다.어쩌면 처음부터 여이현을 건드린 것이 잘못일지도 모른다.여진그룹에 들어오지 말았어야 했고, 여이현의 비서가 되지 말았어야 했다. 결혼은 더더욱 하지 말았어야 했다.여이현은 온지유를 안고 회사를 떠났다.온지유는 울다가 지쳐서 여이현 품에서 잠들었다. 속눈썹에도 눈물이 맺혀있었다.여이현의 전화가 계속 울리고 있었다.벨 소리에 온지유는 미간을 찌푸렸다.여이현은 한 번 보고 전화를 받았는데, 노승아의 목소리가 들여왔다.“오빠, 언제 올 거예요?”“오늘은 안 돼.”“내일은요?”노승아는 아직 기대 중이다.오늘 여이현이 아마 법원에 이혼 수속을 밟으러 갔을 거로 생각했다.노승아는 여이현과 온지유가 오늘부로 드디어 끝나는 것을 알고, 바로 자기를 찾아갈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밤이 되어도 기다린 사람이 오지 않았다.그래서 전화로 물어보려고
여이현은 변우석이라는 남자에 대해 매우 궁금했다.도대체 누구인데 온지유가 지금까지 잊지 못하는 건지.이 남자 정체가 뭐자? 온지유를 단념시키면, 자기랑 이혼할 생각도 하지 않을까?…온지유는 자기 두 손과 발이 모두 묶인 채 새장에 갇힌 악몽을 꿨다.주변에는 아무도 없다.그리고 아무도 그녀를 신경 쓰지 않는다.온지유는 깊은 어둠 속에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었다.온지유는 악몽에서 깨어나 숨을 몰아쉬며 얼굴에 식은땀을 맺혔다.온지유는 일어나 한참을 진정해서야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둘러보니 낯선 곳이었다.방안에는 난방이 되어 있고, 온지유는 이불을 덮고 있으며, 안에는 치마를 입고 있었다.꿈속의 치마와 똑같았다.그래서 아주 당황했다.‘정말 갇힌 건 아니겠지?’온지유는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와 문밖으로 달려갔다.문을 열고 보는데, 이곳의 모든 것이 매우 낯설었다.왜 자고 일어났는데 여기에 있는 건지…어제 여이현과 함께 있었는데, 아주 무서웠다.여이현한테 압박감을 느꼈다. 온지유는 그런 느낌이 매우 싫었다.“왜 맨발로 나왔어?”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소리를 듣자 온지유는 갑자기 굳어져서 무의식적으로 팔을 움츠러들고 뒤를 돌아보는데, 여이현이 서 있었다.이 순간 온지유는 정말 새장에 갇힌 느낌이 들었다.어제 꾼 악몽처럼 말이다.새장에 갇혀서 아무 데도 갈 수 없다.온지유는 무의식적으로 벽을 짚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무서운 듯이 여이현의 얼굴을 봤다.여이현도 그녀의 이상함을 알아챘다. 자기를 마치 귀신 보는 마냥 쳐다보았다.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다.여이현은 천천히 걸어가서 눈썹을 찡그리며 온지유의 빨갛게 언 발을 보았다.“나올 때 신발 신어.”온지유는 여이현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호흡도 제대로 못 하고 굳어졌다.온지유는 다시 여이현의 품에 안겼다.그녀는 온몸이 뻣뻣해져서 여이현이 무엇을 하려는지 경계하며 쳐다보았다.여이현은 온지유를 안고 방으로 데려가 신발을 신겨주었다.온지유는 그제야 그의 목
온지유는 여이현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온지유도 가만히 있고 죽기만을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새장 속의 새는 온지유랑 어울리지 않는다.온지유도 원하지 않는다.여이현은 온지유가 감정이 격해지고 자기를 매우 경계하는 것을 보았다.여이현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온지유, 똑바로 알아둬. 너는 내 아내야. 무슨 애완동물이야. 나랑 같이 있는 것이 이상한 것도 없어.”예전에도 이렇게 함께 있었는데, 온지유가 이렇게 흥분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도대체 무엇 때문에 변한 거지?여이현도 알지 못했다.온지유는 이불을 꽉 쥐고 물었다.“법원은 언제 가요?”“그렇게 급해?”“네.”온지유가 말했다.“이미 약속한 날짜면 지키는 게 상식입니다.”여이현은 그윽한 눈빛으로 온지유를 뚫어지게 쳐다보는데, 온지유가 예전의 그 온지유가 아니었다.온지유는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고만 했다.“그 변우석이라는 남자 때문이야?”“네. 아시잖아요. 제가 변우석 좋아한다는 거…”여이현은 얼굴이 어두워져 말투도 차가웠다.“온지유. 너 지금 나 속이는 거야?”온지유는 순식간에 경직되었다.“그 변우석이라는 남자는 한 번도 네 앞에 나타난 적이 없는데, 계속 나를 속인 거야?”온지유는 고개를 들었다.“저 조사했어요?”“아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데, 조사해야 하지 않겠어?”여이현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온지유는 입술을 오므리고 말하지 않았다.만약 여이현이 예전처럼 다정하게 온지유를 대해 주면 그 변우석이 바로 여이현이라고 알려 줬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원하지 않는다.지금은 여이현 곁에서 떠나고 싶어 했고, 자유로운 삶을 원한다.사랑도 더는 하고 싶지 않는다.게다가 온지유가 임신까지 했는데, 여이현이 자기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온지유 혼자서도 아이를 키울 수 있다.배가 불룩해지기 전에 온지유는 반드시 이혼하고 홀로 생활해야 한다.“말해봐. 변우석이 누군데? 어떻게 된 거야?”여이현은 이상했다. 조사로 봐서는 온지유가 어렸을
여이현은 갑자기 말을 바꿨다.“말 안 해도 돼. 앞으로 이혼 소리도 그만하고. 그냥 여기서 지내!”온지유는 놀라서 감정이 격해졌다.“여이현 씨! 그게 무슨 말이에요!”“내 말 들어.”여이현은 온지유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아직 밥 안 먹었지. 배고프지? 내가 가사도우미보고 네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했어. 내려가서 밥 먹자.”온지유는 여이현이 이런 수법에 넘어가지 않을 줄은 몰랐다.온지유가 여이현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적다.여이현이 온지유 마음속에 다른 사람이 있다고 화가 나서 바로 이혼할 거로 생각했다.그들 모두 각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하지만 여이현은 이혼보다 온지유를 걷혀있으려고 했다.온지유는 마음이 조급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혼이다.“여이현 씨. 왜 저랑 이혼을 안 하는 거죠? 제가 뭘 어떻게 해야 이혼할 수 있는지 알려주세요.”여이현은 온지유의 손을 잡고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말했잖아, 지금은 시간이 없어.”“언젠간 시간이 날 수 있잖아요.”온지유는 여이현의 뒤를 따라갔다.“아직 네 자리를 대신할 사람도 못 찾았잖아. 그럼 그전까지 내 옆에 있어야지. 이혼 얘기는 나중에 얘기하자.”“제 자리를 대신할 사람만 있으면 되는 거죠?”온지유가 계속 물었다.온지유는 단지 답을 원할 뿐이다.“그때 가서 얘기하자.”여이현은 온지유의 뒤통수를 가볍게 두드렸다.“일단 밥 먹자.”“약속 지키셨으면 좋겠어요!”온지유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원하지 않는다.온지유는 이혼할 날짜와 퇴사할 날짜를 정확하게 알고 싶었다. 그래야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여이현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뜻밖에 환경이 매우 좋다는 것을 알았다.밖에는 연못과 숲이 있고, 넓고 조용하며, 휴양지가 따로 없었다.가사도우미들이 반찬을 이미 다 만들어 놓았다.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갓 해놓은 반찬들이다.여이현의 말대로 모두 온지유가 좋아하는 음식이다.온지유는 일부러 여이현을 멀리해서 앉았다
“아니에요. 누가 하든 다 똑같아요. 그냥 오늘 제가 배가 고파서 평소보다 잘 먹는 거예요.”온지유는 여이현이 자기한테 그렇게 신경 쓰는 것을 원치 않았다.온지유를 너무 신경 써줘도 좋지 않다.신경을 쓰는 만큼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피곤한데 쉬러 가도 될까요?”온지유가 물었다.“그래.”여이현이 대답했다.온지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서둘러 위층으로 올라갔다.내일 일어나면 회사에 가고,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그리고 퇴근하면 드디어 집에 갈 수 있다.방에 돌아온 온지유는 긴장이 풀렸다. 그런데 온지유의 뒤를 따라 여이현도 따라 올랐다.방문이 열리고, 온지유는 뒷걸음을 쳤다.“무슨 일로 들어왔어요?”“여기가 안방인데 내가 여기 안 들어오면 어디 가?”여이현이 당연하게 말했다.“그럼, 제가 객실로 갈게요.”온지유가 가려고 하자 여이현이 온지유의 손을 붙잡았다.“왜 갑자기 멀리하려고 그래? 3년이나 같이 지냈는데, 우리가 언제 각방을 써봤어?”여이현은 자기와 온지유의 사이가 변함이 없다고 생각했다.이혼하지 않는 한 변한 것은 없을 것이다.하지만 온지유가 여이현과 각방을 쓰려고 하니 그건 안된다.온지유는 무의식적으로 여이현을 피하려 했다. 더 이상 부부처럼 살 수 없다고 느꼈다.같이 자는 것도 동상이몽이다.“얼른 자.”여이현이 담담하게 말했다.“어느 쪽에서 자고 싶어?”온지유는 입을 오므리고는 결국 같이 자기로 했다.“이쪽이요.”그쪽은 문이랑 가까워서 온지유가 행동하기 편했다.여이현도 받아들였다.“알았어.”여이현은 시계를 한 번 보고 아직 일러서 티브이를 켰다.“아직 시간도 일러서 티브이 좀 보자.”여이현은 온지유의 반대편에 가서 옆으로 누웠다.온지유는 여이현을 보고 움직이지 않았다.“뭐해? 와서 누워.”티브이에는 한창 청춘물이 방영하고 있는데, 여자들이 즐겨 보는 그런 드라마이다.온지유도 여자이고, 여이현은 그녀가 좋아할 거로 생각해서 다른 걸로 바꾸지 않고 같이 보려고 했다
온지유의 행동에 여이현은 뜻밖이었다.“왜?”온지유는 당황해서 손을 따라서 배를 쓰다듬었다. 정말 배가 좀 커졌나?아직 배가 커질 때가 아니다.온지유와 눈이 마주친 여이현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온지유를 바라보았다. 온지유는 그 눈빛에 더 긴장돼서 말했다.“오늘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가 봐요. 피곤해요. 얼른 주무세요.”말을 마치고 온지유는 누워서 눈을 감고 여이현의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여이현은 온지유를 바라보며 전보다 좀 통통한 몸매를 보는데, 확실히 예전의 마른 모습보다 훨씬 예뻐 보였다.하지만 온지유의 반응이 그를 의심에 빠뜨렸다.온지유는 예전과 달라졌다.하지만 그 달라진 게 너무나도 많았다.예를 들어, 전처럼 그렇게 성심성의껏 여이현을 대하지 않고, 이혼하고 싶고 회사까지 그만두려고 한다.한순간에 완전히 달라진 것 같았다.여이현도 아주 어색하다.여이현도 같이 누워서 온지유를 곱게 감쌌다.이렇게 안으면 온지유가 좀 더 편안하게 잘 수 있게 한다.아마 여이현의 삶에는 온지유가 정말 없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온지유는 일찍 일어났다.회사에 엄청나게 가고 싶어 했다.회사를 그만둘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회사가 가장 편한 곳이 될 줄은 몰랐다.온지유는 여이현과 함께 차를 타고 회사로 갔다.다행히 여이현은 공과 사가 분명한 사람이라 근무시간에 사적인 일을 처리하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온지유는 사무실로 돌아와 어제 정리한 이력서를 챙기고 면접 회의에 참석했다.수많은 이력서 중 20개만 골랐다.“온 비서님. 정말 그만둘 거예요?”이윤정은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매우 놀랐다.“네.”온지유는 이윤정을 바라보며 말했다.“지금 면접하러 갈건데, 같이 가실래요?”온지유는 여진그룹에서 7년 동안 근무했다.회사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여이현의 신뢰를 얻었는데, 회사를 그만둔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다.이윤정은 고민에 빠졌다.“온 비서님이 그만두면 전 어떡해요. 대표님한테 죽어요.”이윤정은 온지유처럼
온지유가 수첩을 봤다.수첩에 흰색 티셔츠 한 장 적어놨다.틀리지 않았다.이건 예전의 여이현이다. 가장 심플한 옷차림이다.그때 여이현은 아주 의기양양했다.온지유가 어떻게 수첩에 이걸 메모할 수 있겠는가?이 수첩도 오래된 것 같은데, 아마 미처 긋지 못했나 본다.“온 비서님?”이채현은 온지유가 잠시 정신 줄이 놓인 것을 알아채고 온지유를 불렀다.온지유는 정신을 차리고 가볍게 웃었다.“잘못 적었네요. 그으세요.”“네.”이채현이 대답한다.대표님이라는 사람이 옷차림이 그렇게 심플하다고는 생각도 안 했다.이채현은 이제 졸업했지만, 학습 능력은 매우 뛰어났다.온지유는 이채현이 여이현의 일을 잘 처리할 거로 생각했다.온지유가 여이현에게 적절한 사람을 찾아주면, 온지유를 풀어줄 수 있다.온지유는 자리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이채현은 그런 온지유를 보고 걱정한 듯 물었다.“온 비서님. 어디 불편하세요?”온지유는 다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아니에요. 일 보세요.”발소리가 멀리서부터 가까이 들려왔다.“온 비서님. 반 시간 뒤에 회의가 열릴 예정입니다. 준비하세요.”배진호가 전했다.“네.”온지유는 일어나서 회의 준비를 했다.온지유가 고개를 돌리자, 여이현이 눈앞에 서 있었다.그의 눈동자에는 아직도 차가운 기운이 가득했다.“대표님. 새로 온 비서입니다. 이름은 이채현입니다.”“대표님 안녕하세요. 배 비서님 안녕하세요.”이채현이 인사를 했다.여이현은 표정이 차가웠다. 아예 이채현을 쳐다보지도 않고, 차갑게 말했다.“온 비서님이 데려온 사람이니 잘 알려주세요. 제가 뭘 싫어하는지 제일 잘 알고 계시니, 실수하지 않도록 하세요!”말을 다 하고 여이현은 떠났다.온지유도 이게 자기를 경고하는 거라고 알고 있다.온지유는 이채현을 책임지고, 새로 온 사람이라고 실수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눈치가 빠른 이채현은 여이현이 떠난 후 온지유에게 말했다.“온 비서님, 걱정 마세요. 제가 잘 배워서 곤란할 일 만들지 않을게요.”“그럼 더할
여이현이 입을 열었다.“그럼 여러분들이 말하는 것처럼, 제가 새로운 비서를 찾는 것도 여러분들한테 동의를 구해야 합니까?”“저희가 언제 그런 말을 했나요.”이채현은 여이현이 자기를 언급하자 침묵 속에서 입을 열었다.“안녕하십니까. 저는 새로 온 비서, 이채현이라고 합니다. 만나게 돼서 영광입니다.”그들의 시선은 모두 이채현을 향했다.다들 어디서 온 계집애가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이채현은 다들 자기를 쳐다보자, 자신감이 생겨서 계속 말을 이어갔다.“대표님이 가장 높은 위치에 계시고, 여러분은 대표님의 말씀을 들으셔야 한다고 봅니다. 대표님이 회의를 여는 것도 여러분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결정권은 대표님이 가지고 계십니다. 대표님이 이러시는 이유도 다 회사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대표님을 믿으시고, 대표님의 능력을 믿으십시오. 계속 반대의 말씀을 하시는 건 혹시 다른 마음을 먹고 계시는 건 아닌지요?”이채현의 말을 들은 여이현은 보이지 않는 웃음을 지었다.이채현의 말에 다들 압박감을 느꼈다.온지유는 자기도 회의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없는데, 이채현이 대단하다고 느꼈다.이채현이 상황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여러 주주를 의심했다.그리고 그들을 긴장하게 했다.“무슨 말이야. 우리야 당연히 대표님을 존중하고 있지.”“대표님, 헛소리 듣지 마세요. 우린 그냥 걱정돼서 물어본 겁니다.”이채현의 말에 서둘러 해명했다.“앉으세요. 이채현 씨.”여이현은 이채현의 말에 그냥 담담하게 한마디만 했다.“네.”이채현은 말을 듣고 앉았다.온지유는 여이현을 바라보는데 의외였다. 여이현은 원래 버릇없고 규칙이 없는 사람을 싫어했었다.정말 주주 간에 문제가 생긴 걸까.여이현은 사람들이 맞장구치는 것을 보고, 그 화살이 자기에게 쏠릴까 봐 두려워했다.그러나 최현욱의 안색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여이현은 그런 최현욱을 보고 물었다.“최 대표님. 무슨 질문이 있으시면 말씀하세요!”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이현과 맞장구치고 있는데, 혼자 반대
“나도 엄마가 왜 그곳에 있었는지 몰라. 내가 발견했을 때 잘 지내지 못한 것 같았어. 누더기를 입은 채 구석에서 쓰레기를 뒤적거리고 있더라고.”말을 꺼내는 양시은의 목소리엔 떨림이 가득했다. 나도현은 그런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익숙한 온기에 양시은은 점차 진정되기 시작했고 두 사람은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그해 아주머니가 실종되었을 때부터 어딘가 이상했어. 하지만 아직 상태도 안 좋으신 것 같으니까 내일 인명진 씨를 불러 봐달라고 하자.”“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양시은은 문해미가 있는 방을 힐끗 보았다. 나도현은 그런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녀를 달래주려고 했다.“괜찮을 거야. 아주머니를 찾은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기쁜 일이잖아.”양시은은 그의 위로에 고개를 끄덕였다.다음 날 오후, 인명진은 집으로 방문해 진찰해달라는 나도현의 부탁이 담긴 연락을 받게 되었다.비록 그는 정신과 의사가 아니었지만 난치병에 관해서는 계속 이런저런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해미를 보게 되었을 때 그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그런 그의 모습을 본 양시은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우리 엄마는 어떤 상태인 거예요?”“상태가 아주 나빠요. 거의 한계에 달했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뇌 신경 쪽에 일정한 정도의 손상을 입은 것 같아요. 비록 추측이긴 하지만 80, 90% 확신하고 있어요.”인명진이 솔직하게 말해주자 옆에 있던 테이블이 흔들렸다. 나도현은 얼른 양시은은 부축해주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양시은은 이미 테이블과 함께 중심을 잃고 쓰러졌을 테니까.“어떻게 그럴 수가...”그녀는 넋을 잃은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눈물이 주체하지 못하고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분명 애타게 찾던 문해미를 찾았건마는, 겨우 어머니와 만나게 되었건마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응당 기뻐하고 좋아해야 할 순간에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양시은은 행여나 그 사람이 사라지게 될까 봐 얼른 달려갔다.“엄마, 여기는 왜 여기에 계시는 거예요?”그녀는 노인을 붙잡으며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상대가 자신을 반겨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상대는 그녀를 엄청 두려워하고 있었다.“때리지 마세요. 바로 자리를 옮길 거니까 때리지 말아 주세요.”“엄마, 제가 엄마를 왜 때려요. 저 시은이잖아요. 엄마 딸 양시은.”“전 그쪽을 몰라요...”양시은은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을 모른다니... 어떻게 그럴 리가 있겠는가. 그녀는 절대 사람을 착각했을 리가 없었고 눈앞에 있는 사람은 분명 그녀의 어머니였다.속이 뒤집힐 것 같았지만 자신을 너무도 두려워하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최대한 다정하고 온화한 어투로 말했다.“전 엄마를 해치지 않아요. 그러니까 다시 한번 제 얼굴 봐주세요.”그 말을 들은 뒤 한참 지나서야 상대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사실 세월의 흔적이 많은 얼굴은 아니었다. 다만 몸에 맞지 않는 남루한 옷 탓에 행색이 더러워 보였을 뿐이었다. 양시은은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그녀의 어머니는 아주 오래전에 실종되었다. 줄곧 찾아다녔지만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고 죽기 전까지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이곳에서 어머니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엄청난 기쁨을 느꼈지만 어머니의 행색과 상태를 보니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대체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상대는 양시은을 멍하니 보았다. 어딘가 익숙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양시은, 시은아... 시은이니?”“네, 엄마. 저 시은이에요.”양시은은 감격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택시를 잡자 기사는 옷차림이 초라한 그녀의 어머니 문해미를 대놓고 싫어하는 티를 냈다.“아가씨, 대체 어디서 이런 쓰레기를 주워온 거예요? 이런 쓰레기는 내 차에 태울 수 없어요.”“왜 태울 수 없는 건데요. 이미 제 돈을 받으셨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태울 수 없다고요?”양시은은 차가운 눈빛으로 운전기사를
양시은이 미간을 찌푸렸다.“말은 제대로 하셔야죠. 기세등등하게 쏘아붙이던 건 그쪽 아니었나요?”“그건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죠.”장이정이 힘을 세게 줘서 조금 아팠는지 유준이 투덜댔다.“엄마, 아파요.”그녀는 급히 손을 뗐고 얼굴에는 미안해하는 기색이 가득했다.“미안해, 유준아...”유준은 장이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귀여운 목소리로 괜찮다고 했다.유준의 위로 덕분에 장이정은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양시은은 그 틈을 타서 말했다.“저에 대해 뭔가 오해가 있는 거 같네요.”“무슨 오해요? 유 할머니가 당신들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리고 당신들처럼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괴롭히는 건 너무 손쉬운 일이잖아요.”장이정이 비웃었다.역시 그 일 때문이었다.다행히도 양시은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병원을 떠날 때, 양시은은 병원 기록을 하나 가져갔다.“장이정 씨, 이걸 보고 얘기해 보세요.”양시은은 병원 기록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장이정 앞으로 밀었다.장이정은 눈꺼풀이 살짝 떨렸으나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그때 양시은은 장이정의 품에 안긴 유준이가 장이정이 옆에 놓은 과일과 우유에 시선이 꽂힌 것을 보았다.“먹고 싶어?”“아니요. 먹고 싶지 않아요. 이건 엄마가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하던 거예요.”유준은 고개를 저었지만 시선은 여전히 그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가난한 집의 아이는 일찍 철이 든다.양시은은 한숨을 쉬고 죄책감을 느끼는 장이정을 보며 말했다.“먹어도 돼. 다 먹으면 또 있어.”“정말요?”유준은 장이정의 허락을 구했다.유준의 간절한 눈빛을 본 장이정은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낡은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저소득층이라 소비를 줄이기 위해 받은 선물은 다시 선물로 다른 사람에게 보내곤 한다.평소에도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없다.어른들은 참을 수 있지만 아들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장이정은 유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유준이 우유
양시은은 차준기에게 부탁해 그 집 사람들의 서류를 손에 넣었다.차준기는 그녀의 질문에 약간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이걸 왜 필요하신가요?”양시은은 대충 변명을 해버리고는 그 집 사람들의 주소를 받은 후, 택시를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그 집 사람들은 아주 오래된 건물에 살고 있었는데 이곳의 건물들은 벽지나 페인트가 벗겨지고 건물이 많이 낡아서 대부분 철거 예정이었다.그리고 또 이 동네에서 사는 대부분 사람들은 철문을 사용하고 있는 듯했다.양시은은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구세요?”양시은은 밖에서 기다리자 곧 앞치마를 입은 여성이 나왔다. 그녀의 이름은 장이정이었다. 집 앞에 서 있는 낯선 사람을 본 장이정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양시은을 바라보았다.그녀는 길에서 산 우유 한 상자와 과일을 들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따뜻한 나눔 활동을 하고 있어서요.”그렇게 해서 여성이 문을 열었다.장이정은 그녀가 가져온 물건을 받으면서 환하게 웃었다. 경계심도 조금은 풀린 듯했다.“아직도 이런 활동이 있군요. 정말 오랜만이에요. 이 동네 사람들이라면 다 가질 수 있는 건가요?”“아직은 이곳만 있어요.”양시은이 그 집 안에 들어가 앉겠다고 제안하자 장이정은 그녀를 집 안으로 들였다.그녀는 앉자마자 집 안부터 훑어봤다.평범한 가정집의 인테리어에 벽에는 몇 층 벽지가 덮여 있었지만 심하게 낡은 벽을 가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양시은은 감탄하며 눈길을 돌렸다.“지금도 이런 낡은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죠.”“좋은 집에 살 수 있다면 누가 이런 헌 집에 살겠어요.”장이정은 한숨을 쉬며 차를 따랐다.양시은은 고마움을 표한 후, 조금 더 신중하게 물어봤다.“그럼 왜 여기서 안 나가시나요? 요즘은 집 구하기도 쉽고 여기도 철거된다고 들었거든요. 철거가 성공하면 큰돈을 받을 수 있지 않나요?”“그 돈이 얼마나 된다고...”장이정은 말을 멈추고 양시은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런 걸 묻죠?”양시은은 약간 당
양시은은 일단 속마음을 잠시 억누르기로 했다. 그리고는 먼저 유 할머니에게 간병인을 찾아주었다.유 할머니에 관한 일 처리를 끝내고 나서야 양시은은 경찰서로 향했다.오성 구역에서 소란을 피운 사람들은 한 달 동안 계속 구속되어 있었고 아직도 풀려나지 않은 상태였다.회사로 돌아온 양시은은 나도현부터 찾았다.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양시은은 먼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나는 유진혁 뒤에 최종 보스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유진혁은 소란을 일으킨 주모자였고 나머지 사람들은 대부분 그가 부추긴 사람들이었다.나도현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모든 일이 너무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 같았다. 주민들의 불만이 갑작스레 생겨나고 나서 유 할머니가 병을 앓자 갈등이 더욱 커졌다. 이 모든 것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양시은은 오늘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를 간결하게 전했다. 그리고 유진혁에 대해 다시 언급했다.“유진혁의 최근 거래 내역을 확인해 봐. 만약 의심스러운 입금 내역이 있다면 거의 확실하다고 보면 돼.”“이미 확인했어.”나도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정리된 자료를 건네주었다.“이게 유진혁의 모든 자료야. 계좌는 모두 확인했는데 최근에는 큰 수입이 없더라고.”양시은은 빠르게 자료를 훑어봤다.자료는 매우 명확했다. 유진혁은 직업이 없는 백수였고 생계는 모두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는 소위 말하는 등골브레이커였다. 그래서 그가 가지고 있는 카드들은 대부분 정지 상태였으며 수입도 전혀 없었다.지출은 꽤 크고 가끔 큰 금액이 빠져나갔는데 전부 도박에 쓰인 돈이었다.양시은은 그 서류를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유 할머니께서 열심히 저놈을 먹여 살리는데 정작 그는 아픈 어머니를 한 번도 찾아가지 않는다니?”그녀는 순간 모든 것을 깨달았다. 간호사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도 이해가 갔다.자신의 부모가 그런 대우를 받았으면 그 누구라도 화가 날 것이었
인명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성이 ‘나’이신 변호사분 얘기인가요?”양시은은 시선을 돌렸다. 그가 바로 맞히자 조금 민망했다.다행히 인명진은 더 깊이 파고들지 않고 오히려 그녀에게 여러 가지를 알려주며 나도현에게도 조언해 주었다. “나도현 씨는 일중독을 빨리 고쳐야 해요. 이렇게 계속 가면 아무도 그를 도울 수 없을 거예요.”인명진을 보내고 나서 양시은은 병실로 향했다.그 환자는 성이 유 씨였고 나이는 65세였다.이 나이에 심장병을 앓고 있다는 건 매우 위험하다. 조금만 잘못하면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나도현은 이 환자를 매우 신경 쓰고 있었다.병실도 최고급으로 배정되어 있었고 의료비도 모두 가불해주었다.그렇기에 소란을 피우려던 그 남자는 정말로 뻔뻔한 사람이다.“보호자 대신 보살피는 간병인이세요? 보호자랑 연락을 해서 병원에 오시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어머니이신데 어떻게 이렇게 방치해두겠어요? 너무 불효인 것 같아요.”“전 간병인이 아닌데요...”간호사는 당황한 기색이었다.그러자 양시은은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된 사연을 설명했다.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잘못 알아봤네요. 저는 보호자가 보낸 간병인인 줄 알고...”양시은은 그녀의 말투를 눈치채고 미묘하게 물어보았다. “그 보호자께서 자주 안 나오시나요? 제가 알기론 그분이 어머니의 병을 많이 걱정하고 있는 것 같던데요.”그가 어머니의 병을 걱정한다며 난리를 치면서 최근에는 몇 번이나 사람을 다치게 할 뻔했으니.“그게 무슨 소리예요? 진짜 걱정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아무 연락도 없었겠어요? 그냥 외면한 거죠, 그건 완전히 배은망덕한 사람이에요.” 간호사는 이 일을 말할 때,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졌다.양시은은 그 말을 통해,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조금씩 알아 나가게 되었다.그 말로는 어머니를 무척 걱정한다고 말했던 남자가 어머니가 입원한 이후로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어머니는 병상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얼마나 슬펐을까...’“알았어. 내가 옆에 있어 줄게.”양시은은 마음이 약해졌다.그저 아픈 사람 한 명 돌보는 것뿐인데 나도현의 상태가 좋아지지 않으면 내일도 회사에는 못 갈 것 같았다.그녀가 옆에 머무르겠다고 하자 나도현은 꽉 쥐고 있던 손에 조금 힘을 풀었다.양시은은 정말 말한 것대로 옆에 있는 소파에 누워 담요를 덮고 그를 바라보았다.새벽이 되도록 나도현은 꽉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다음 날, 양시은은 소음에 의해 잠에서 깨어났다.눈을 떠보니 그녀는 소파에 누워 있었다. 본능적으로 옆을 쳐다봤지만 나도현은 자리를 떠난 상태였다.그때, 가정부가 아침 식사를 가져왔다.“아주머니, 제 옆에 있던 도현이 어디 갔는지 아세요?”양시은이 물었다.가정부는 아침 일찍부터 왔을 것이기에 나도현이 언제 나갔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되게 일찍 나가셨어요. 나가면서 아가씨를 깨우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하민이도 그분이 유치원에 데려다주신 거예요. 그리고 또 오늘은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어요.”양시은은 핸드폰을 보면서 지금 시간이 몇 시인지를 확인했다.현재 시각을 확인한 그녀는 순간 소파에서 떨어질 뻔했다.지금은 아침 10시였다. 출근 시간보다 2시간이나 늦은 시간이었다.‘그러니까 나도현은 밤새 아팠으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 하민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회사에 출근하기까지 했다는 건가?양시은은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워 나서 급히 아침을 먹고는 회사로 달려갔다.차준기는 그녀를 보고 매우 놀랐다.“양 비서님, 어떻게 오셨어요? 나 대표님 말로는 오늘 휴가 쓰셨다고 하셔서 안 오는 줄 알았거든요.”양시은도 이제 정식으로 입사했기 때문에 회사 사람들은 그녀를 ‘양 비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어디 나가시려고요?”아까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양시은은 대화 주재를 돌렸다.“저는 심장병 환자 병문안 때문에 병원에 가는 길에요.”그가 말한 심장병 환자는 오성 구역 그분이셨다.“맞다, 그리고 나 대표님께서 명령을 내리셨
양시은은 밤마다 자주 잠에서 깨는 습관이 있었다.오늘도 어김없이 잠에서 깨어 거실로 나온 그녀는 거실에 있는 희미한 사람의 형체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한참을 바라보고 나서야 그 정체가 나도현이라는 것을 알아봤다.“도현아, 왜 잠도 안 자고 여기 앉아 있는 거야?”나도현은 낮게 한숨을 쉬었는데 목소리가 너무 낮아서 양시은은 처음에 자기가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했다.양시은은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나도현의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의 이마에 맺힌 땀과 창백해진 그의 얼굴을 보고 그녀는 깜짝 놀랐다.“몸이 안 좋아?”“약 좀... 가져다줄 수 있어? 위가 좀 아픈 것 같아.”나도현의 목소리는 평소와 비슷했지만 그 속에 전에는 없던 허약함이 약간 섞여 있었다.양시은은 그제야 나도현은 위가 안 좋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는 위염에 자주 걸렸었는데 이는 모두 그가 너무 일에만 집중해서 생긴 문제였다.나도현이 걱정됐던 양시은은 당황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자기 방에 위약이 있다는 생각이 났다.“내 방에 있는 것 같아. 기다려봐. 내가 가져올게.”그녀는 급히 방으로 들어가 뜨거운 물과 위약을 챙겨 가져다주었다.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나니 나도현의 찡그렸던 눈썹도 조금 풀리는 듯했다.양시은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좀 나아졌어?”나도현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양시은은 한숨을 쉬며 다시 따뜻한 물을 준비해 그 옆에 두고 핑크색 온수 팩까지 꺼내왔다.“이걸 배 쪽에 올리면 좀 나아질 거 같아. 해봐.”“이걸 올리라고?”나도현은 핑크색 온수 팩을 쳐다보면서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지금은 색깔 따위 신경 쓸 때가 아니야. 빨리 꼭 안고 있어.”그는 그녀의 말에 이끌려 온수 팩을 배 위에 올렸다.그날 밤, 나도현이 갑자기 아픈 것 때문에 양시은은 그의 건강을 챙기느라 잠을 이룰 수 없었다.양시은은 오랫동안 그를 간호해 주다가 피곤해져서 소파에 기댄 채 잠이 들었다.아침이 되자 잠에서 깬 그녀는 급히 나도현의 상태를
양시은은 깜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그의 눈빛에는 여태 한 번도 본 적 없는 진지함이 담겨 있었다.누구든 알 수 있었다. 나도현의 이 말들은 절대 가식이 아니며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라는 것을 말이다.박은희는 이 장면을 보고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는 동시에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다.몇 년 전만 해도 그녀는 나도현이 자기가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을 집으로 데려오게 될 거라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람이 자기도 인정하는 며느리가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세 사람 중 둘은 양시은을 인정했지만 나용민은 여전히 불만족스러워했다.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양시은을 냉정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는 나도현에게 말했다.“이게 네가 다른 여자들을 거절한 이유냐? 이 여자가 뭐가 좋다고? 가문도 너랑 맞지 않고 직업도 그저 그렇잖아.”나도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회사에서 저를 감시하세요?”그럴 수밖에 없다. 이미 은퇴한 나용민이 어떻게 이렇게 상세히 알 수 있을까?들통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나용민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감시라고? 그냥 네가 회사를 잘 운영하는지 걱정한 것뿐이야.”나도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어섰다.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나용민을 노려보며 말했다.나용민은 위압적인 모습의 아들을 보면서도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이제 이 아비도 네 일에 참견하지 말라는 거냐?”“저는 참견 같은 거 필요 없어요. 감당할 수 없어요.”나도현은 차갑게 말했다. 그리고 양시은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나용민은 극대노하며 소리쳤다.“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마!”그러나 나도현은 뒤돌아보지 않고 운전했다. 그리고는 차를 도로 한 쪽에 멈추었다. 나도현은 창밖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양시은은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너무 속상해하지 마.”“시은아, 안고 싶은데...”나도현이 갑자기 낮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 소리가 이상하게도 마음을 아프게 했다.양시은은 잠시 망설였다.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