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지유의 행동에 여이현은 뜻밖이었다.“왜?”온지유는 당황해서 손을 따라서 배를 쓰다듬었다. 정말 배가 좀 커졌나?아직 배가 커질 때가 아니다.온지유와 눈이 마주친 여이현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온지유를 바라보았다. 온지유는 그 눈빛에 더 긴장돼서 말했다.“오늘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가 봐요. 피곤해요. 얼른 주무세요.”말을 마치고 온지유는 누워서 눈을 감고 여이현의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여이현은 온지유를 바라보며 전보다 좀 통통한 몸매를 보는데, 확실히 예전의 마른 모습보다 훨씬 예뻐 보였다.하지만 온지유의 반응이 그를 의심에 빠뜨렸다.온지유는 예전과 달라졌다.하지만 그 달라진 게 너무나도 많았다.예를 들어, 전처럼 그렇게 성심성의껏 여이현을 대하지 않고, 이혼하고 싶고 회사까지 그만두려고 한다.한순간에 완전히 달라진 것 같았다.여이현도 아주 어색하다.여이현도 같이 누워서 온지유를 곱게 감쌌다.이렇게 안으면 온지유가 좀 더 편안하게 잘 수 있게 한다.아마 여이현의 삶에는 온지유가 정말 없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온지유는 일찍 일어났다.회사에 엄청나게 가고 싶어 했다.회사를 그만둘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회사가 가장 편한 곳이 될 줄은 몰랐다.온지유는 여이현과 함께 차를 타고 회사로 갔다.다행히 여이현은 공과 사가 분명한 사람이라 근무시간에 사적인 일을 처리하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온지유는 사무실로 돌아와 어제 정리한 이력서를 챙기고 면접 회의에 참석했다.수많은 이력서 중 20개만 골랐다.“온 비서님. 정말 그만둘 거예요?”이윤정은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매우 놀랐다.“네.”온지유는 이윤정을 바라보며 말했다.“지금 면접하러 갈건데, 같이 가실래요?”온지유는 여진그룹에서 7년 동안 근무했다.회사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여이현의 신뢰를 얻었는데, 회사를 그만둔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다.이윤정은 고민에 빠졌다.“온 비서님이 그만두면 전 어떡해요. 대표님한테 죽어요.”이윤정은 온지유처럼
온지유가 수첩을 봤다.수첩에 흰색 티셔츠 한 장 적어놨다.틀리지 않았다.이건 예전의 여이현이다. 가장 심플한 옷차림이다.그때 여이현은 아주 의기양양했다.온지유가 어떻게 수첩에 이걸 메모할 수 있겠는가?이 수첩도 오래된 것 같은데, 아마 미처 긋지 못했나 본다.“온 비서님?”이채현은 온지유가 잠시 정신 줄이 놓인 것을 알아채고 온지유를 불렀다.온지유는 정신을 차리고 가볍게 웃었다.“잘못 적었네요. 그으세요.”“네.”이채현이 대답한다.대표님이라는 사람이 옷차림이 그렇게 심플하다고는 생각도 안 했다.이채현은 이제 졸업했지만, 학습 능력은 매우 뛰어났다.온지유는 이채현이 여이현의 일을 잘 처리할 거로 생각했다.온지유가 여이현에게 적절한 사람을 찾아주면, 온지유를 풀어줄 수 있다.온지유는 자리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이채현은 그런 온지유를 보고 걱정한 듯 물었다.“온 비서님. 어디 불편하세요?”온지유는 다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아니에요. 일 보세요.”발소리가 멀리서부터 가까이 들려왔다.“온 비서님. 반 시간 뒤에 회의가 열릴 예정입니다. 준비하세요.”배진호가 전했다.“네.”온지유는 일어나서 회의 준비를 했다.온지유가 고개를 돌리자, 여이현이 눈앞에 서 있었다.그의 눈동자에는 아직도 차가운 기운이 가득했다.“대표님. 새로 온 비서입니다. 이름은 이채현입니다.”“대표님 안녕하세요. 배 비서님 안녕하세요.”이채현이 인사를 했다.여이현은 표정이 차가웠다. 아예 이채현을 쳐다보지도 않고, 차갑게 말했다.“온 비서님이 데려온 사람이니 잘 알려주세요. 제가 뭘 싫어하는지 제일 잘 알고 계시니, 실수하지 않도록 하세요!”말을 다 하고 여이현은 떠났다.온지유도 이게 자기를 경고하는 거라고 알고 있다.온지유는 이채현을 책임지고, 새로 온 사람이라고 실수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눈치가 빠른 이채현은 여이현이 떠난 후 온지유에게 말했다.“온 비서님, 걱정 마세요. 제가 잘 배워서 곤란할 일 만들지 않을게요.”“그럼 더할
여이현이 입을 열었다.“그럼 여러분들이 말하는 것처럼, 제가 새로운 비서를 찾는 것도 여러분들한테 동의를 구해야 합니까?”“저희가 언제 그런 말을 했나요.”이채현은 여이현이 자기를 언급하자 침묵 속에서 입을 열었다.“안녕하십니까. 저는 새로 온 비서, 이채현이라고 합니다. 만나게 돼서 영광입니다.”그들의 시선은 모두 이채현을 향했다.다들 어디서 온 계집애가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이채현은 다들 자기를 쳐다보자, 자신감이 생겨서 계속 말을 이어갔다.“대표님이 가장 높은 위치에 계시고, 여러분은 대표님의 말씀을 들으셔야 한다고 봅니다. 대표님이 회의를 여는 것도 여러분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결정권은 대표님이 가지고 계십니다. 대표님이 이러시는 이유도 다 회사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대표님을 믿으시고, 대표님의 능력을 믿으십시오. 계속 반대의 말씀을 하시는 건 혹시 다른 마음을 먹고 계시는 건 아닌지요?”이채현의 말을 들은 여이현은 보이지 않는 웃음을 지었다.이채현의 말에 다들 압박감을 느꼈다.온지유는 자기도 회의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없는데, 이채현이 대단하다고 느꼈다.이채현이 상황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여러 주주를 의심했다.그리고 그들을 긴장하게 했다.“무슨 말이야. 우리야 당연히 대표님을 존중하고 있지.”“대표님, 헛소리 듣지 마세요. 우린 그냥 걱정돼서 물어본 겁니다.”이채현의 말에 서둘러 해명했다.“앉으세요. 이채현 씨.”여이현은 이채현의 말에 그냥 담담하게 한마디만 했다.“네.”이채현은 말을 듣고 앉았다.온지유는 여이현을 바라보는데 의외였다. 여이현은 원래 버릇없고 규칙이 없는 사람을 싫어했었다.정말 주주 간에 문제가 생긴 걸까.여이현은 사람들이 맞장구치는 것을 보고, 그 화살이 자기에게 쏠릴까 봐 두려워했다.그러나 최현욱의 안색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여이현은 그런 최현욱을 보고 물었다.“최 대표님. 무슨 질문이 있으시면 말씀하세요!”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이현과 맞장구치고 있는데, 혼자 반대
여이현의 그 검은 눈동자에는 한기가 서려 있었다.“어디서 그런 사람을 찾았어?”온지유는 그렇게 단시간 내에 사람을 찾았다.다음은 여이현의 곁에서 떠나는 것이다.여이현이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온지유가 모든 것을 빈틈없이 마련했다.온지유는 자기가 또 무슨 잘못을 한 줄 알았는데, 이 일 때문일 줄은 몰랐다.온지유가 여이현을 밀쳤다.“채용공고를 내서 정식적인 절차대로 뽑았습니다. 꽤 마음에 드시지 않았나요?”“그만두고 싶으면 허락할 테니까, 집에서 여이현 아내로 살면 돼.”여이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여이현의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가자 온지유와 눈을 맞추게 됐다.온지유가 불쾌해서 말했다.“왜요? 왜 제가 일 안 하고 집에서 여이현 씨 아내나 하면서 지내고 싶다고 생각하세요? 결혼할 때 한 말 잊으셨어요? 자기 위치를 잘 알고, 선 넘은 일은 하지 말라고, 계약이 끝나면 이혼한다고 했잖아요. 왜 저랑 이혼하고 싶지 않은 건데요?”“닥쳐!”여이현은 어금니를 깨물며 참고 있었다.여이현은 더 이상 이혼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온지유는 더 이상 여이현과 다투기 귀찮아했다.“그래요. 대표님, 지금은 근무시간입니다. 다른 일이 없으면 먼저 제자리로 돌아가겠습니다. 제가 요즘 몸이 안 좋아서, 무슨 행사가 있으면 이채현 씨를 부르세요.”온지유는 지금 여이현과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적어도 만나지 않고, 선을 그으면 훨씬 덜 싸우게 될 것이다. 여이현이 습관 되기 전까지, 절대 온지유가 떠나는 것을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여이현은 온지유를 놓지 않고, 입가에는 냉소가 번졌다.“그럼 내가 나를 위해서 이렇게 잘 마련해 줘서 감사라도 해야 하나?”온지유는 그와 다투고 싶지 않았다.“대표님, 저는 대표님의 비서입니다. 모두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신인 데리고 스스로 망신을 찾게 하라고?”여이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온지유는 여이현의 말을 이었다.“그럼, 제가 먼저 데리고 가서 단련시킬게요. 다만 저에게 얼마의 기한
“그것도 그렇지만 온 비서 외모와 몸매는 절색이지요.”...온지유는 자신이 장 대표의 눈에 든 줄도 모른 채 여이현의 말에 따라 이곳에서 신인을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주량이 좋고 대범한 이재현은 오늘 온지유가 편찮다는 것을 알고 따라다니며 그녀가 술을 마시지 않도록 막아주었다.때문에 온지유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확실히 이재현이 그녀를 대신해서 여이현을 위해 많은 일을 분담할 수 있었다.협력자가 던진 문제들에 대해서도 이재현은 일일이 대답했고, 협력자는 심지어 칭찬을 보내며 여이현에게 아부했다.“여 대표님, 이런 보물을 또 어디서 찾아냈어요!”“임 대표님, 옛말에 다른 산의 돌도 옥을 만들 수 있다고 했었죠?”이재현은 담담하게 이 질문에 대답했다.이재현은 자신을 돌에 비유하며 온지유와 여이현의 다듬을 통해 옥이 되었음을 비유했고, 또 임 대표도 원한다면 충분히 인재를 배양할 수 있다는 뜻을 전달했다.이 한마디로 여러 사람에게 아부한 셈이다.온지유도 이재현의 우수함을 인정하며 얼마 지나지 않아 여이현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설사 자신이 떠나더라도 그의 옆에 쓸만한 사람을 남겨놓게 된 셈이다.임표는 껄껄 웃었다.“여 대표님, 청출어람이네요.”임 대표는 온지유의 앞에서 이재현을 칭찬했지만, 온지유는 덤덤했다. 오히려 여이현이 온지유를 힐끗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임 대표는 합작 건에 대해 이재현과 즐겁게 대화했다.서있자니 피곤했고 또 자신이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달은 온지유는 작은 테이블에 가서 쉬려 했지만 뜻밖에도 샴페인을 든 사람이 찾아왔다. 은회색 비즈니스 정장을 입고 검은 테 안경을 낀 남자였다.“온 비서.”“장 대표님.”온지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온지유는 이 사람에 대해서 인상이 있었다. 건설업자이고 또 여이현의 땅이 ZF 중점 프로젝트였기에 여러 협력업체와 공개 입찰을 진행했었다.장 대표님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었다.온지유는 예의상 미소를 지었다.“장 대표님, 오늘
누군가 온지유의 손목을 잡아당겼고 그녀는 따뜻한 품에 기대였다.여이현이였다. 온몸에 알코올과 담배 냄새가 뒤섞인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기운이 그의 몸을 감돌았고 온지유는 갑자기 숨이 막혀버리는 것 같았다.“장시아, 나 아직 죽지 않았어.”쌀쌀한 말이 온지유의 정수리에서 떨어졌다.맞은 편에 선 여이현을 보고 장시아는 어리둥절했다. 오늘 많은 사람이 온지유를 의론했고 심지어 여이현도 신입 이재현을 데리고 나왔다.결국!여이현은 오히려 이곳에서 온지유를 보호해 주었다.어쨌든 여이현의 태도가 중점이었다!칠흑 같은 여이현의 두 눈을 마주 보며 장시아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여 대표님, 비록 지금은 협력이 없지만 앞으로 갈 길이 멀어요.”입술을 꾹 다문 여이현은 대꾸하지 않았다.그의 두 눈은 서리가 꽉 찬 것처럼 차가웠다.온지유는 이것이 여이현이 화를 낼 징조라는 것을 보아냈다.목이 메어 난 온지유가 무언가 말하려 할 때 여이현은 옆에 있던 술병을 잡아 중문수의 머리를 향해 세게 내리쳤다.“아!”돼지 잡는 듯한 비명이 1층 로비에서 울려 퍼졌고 주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대표님, 장 대표님은 오해했을 뿐 나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으니 진정해 주세요...”여이현의 반응에 놀란 온지유는 재빨리 그의 앞에 막아섰다.남자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아도 되지만, 사내의 자존심을 세워야 했다.이렇게 많은 사람이 구경하고 있는데 그중 누가 함부로 헛소문을 퍼뜨리거나 여진숙에게로 가서 소란을 피운다면 온지유는 또 손가락질당하고 욕을 먹게 될 것이다.그리고 온지유는 실검에 오르고 싶지 않았다.여이현은 온지유를 밀어내고 성큼성큼 장시아에게 다가갔다.장시아는 여이현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몇 번 만에 벌써 머리가 깨지고 피가 흘렀으나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누구도 감히 말리지 못했다. 심지어 온지유는 누군가 휴대전화를 꺼내 여이현을 겨누고 있음을 눈치챘다.“찍지 마! 배진호, 이재현!”온지유는 먼저 휴대전화를 든 사람을 향해 호통을 친 뒤 배진호와 이
“아까 왜 말렸어?”여이현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여이현은 활활 타오르는 노여움을 억누르지 못한 채 온지유를 품 안으로 잡아당겼고, 온지유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팔을 벌려 그녀를 가두었다.온지유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장 대표는 어쨌든 한 회사의 대표님이고 또 그가 말한 것처럼 앞으로 협력할 가능성도 커요. 아까는 사람이 많았기에 만약 이현 씨에게 부정적인 뉴스가 뜬다면...”“다른 남자가 내 와이프에게 덤비는 걸 보고도 못 본 척하라고?”온지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이현은 쌀쌀하게 웃으며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의 좁고 긴 두 눈에는 냉혹함이 서려 있었다.“어차피 우리는 비밀 결혼이에요.”그 둘은 3년 계약을 한 비밀 결혼이었다. 기간이 만료된 후 온지유가 말하지 않거나 또 여이현이 특별히 언론에 보도하지 않으면 온지유가 여이현의 전처인 줄 누가 알겠는가?여이현은 코웃음을 쳤다.“난 생각지도 못했는데 지유는 편하게 생각했네.”마음이 아파 난 온지유는 고개를 돌리며 여이현을 보지 않았다.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눈매와 얄팍한 입술을 보면은 숨을 쉴 수 없을 것처럼 아플 것만 같았다.7년 동안 사랑했고 또 여이현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줄 알았는데 그들은 여전히 헤어지게 되었다.심지어 배 속에 있는 아이는 평생 아빠를 못 볼 수도 있었다.나중에 겪게 될 일을 생각하니 온지유는 가슴이 쓰라렸다.갑자기 그녀의 턱에 심한 통증과 압박감이 퍼졌다.여이현은 손에 힘을 주어 그녀의 턱을 위로 올리며 자신과 마주 보게 했다. 온지유는 온몸에 술 냄새가 풍기는, 입가에 차갑고 아이러니한 웃음이 번진 여이현을 보았다.“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온지유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내가 무슨 생각을 할 수 있겠어요? 이미 손을 썼으니 실검에 오를 게 분명해요. 이재현의 일 처리 능력이 좋으니 내일부터 나는...”오지 않을래요.여이현은 손에 힘주어 그녀의 턱을 조이며 마지막 말을 못 하게 했다.여이현은 퉁명스럽게 말했다.“온지유, 여진 그룹이 너의
여이현은 온지유를 밀치면서 수신 버튼을 눌렀다.온지유는 바로 옆에 있어 똑똑하게 들을 수 있었다.“오빠, 나 무서워요... 지금 올 수 있어요? 주소영을 또 본 것 같아요, 아!”노승아의 공포에 질린 비명과 함께 뚜뚜 하는 전화가 끊긴 소리가 들려왔다.여이현은 휴대전화를 거두면서 기사에게 말했다.“먼저 나를 병원에 데려다준 다음 지유 씨를 수려원으로 데려다줘.”그의 말투는 확고했다.“네.”김 기사는 그의 말대로 노선을 바꾸었다.40분도 안 되어 김 기사는 차를 병원까지 몰고 갔다.여이현은 옆에 앉아 있는 온지유를 보고 담담하게 말했다.“좀 늦게 돌아올 거야. 돌아와 당신을 볼 수 있기를 바래!”애걸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처럼 이 말을 남긴 여이현은 몸을 돌려 떠났다.그 길고 차가운 뒷모습은 칼처럼 온지유의 두 눈을 아프게 했고 심장을 찔러 선혈에 뒤덮인 것처럼 만신창이가 되게 했다.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온지유를 보면 그는 독점하고 싶어 질투하며 화를 낸다.그럼 그는? 마음속에 노승아를 두고 있어도 결혼 후에는 거리를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그는 온지유를 관심하지 않았으나 얌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이렇게 온순한 사람이 있을 수 없었지만 여이현을 사랑한 온지유는 말없이 그의 요구를 따라주었다.“사모님, 대표님께서 수려원까지 모시라고 했습니다. 지금 차에서 내리시면 제가 난처해집니다.”차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려는 온지유를 보고 기사는 다급하게 쫓아갔다.“말릴 수 없었다고 하세요.”온지유는 쌀쌀하게 말했다.온지유는 수려원에 머물 리가 없었다.오늘 밤 노승아와 함께 있다면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온지유는 적막한 방에 홀로 있을 리 없었다.“제가 따라가도 될까요?”김 기사는 울음을 터뜨릴뻔했다.온지유를 수려원으로 보내지 않았고 또 온지유가 떠난 것을 여이현이 알게 되면 무조건 추궁할 것이다.온지유는 머리가 아팠다.“나를 따라오지 마세요. 난 세 살배기 어린애가 아니에요.”이렇게 말하면 기사가 따라오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뜻
“나도 엄마가 왜 그곳에 있었는지 몰라. 내가 발견했을 때 잘 지내지 못한 것 같았어. 누더기를 입은 채 구석에서 쓰레기를 뒤적거리고 있더라고.”말을 꺼내는 양시은의 목소리엔 떨림이 가득했다. 나도현은 그런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익숙한 온기에 양시은은 점차 진정되기 시작했고 두 사람은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그해 아주머니가 실종되었을 때부터 어딘가 이상했어. 하지만 아직 상태도 안 좋으신 것 같으니까 내일 인명진 씨를 불러 봐달라고 하자.”“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양시은은 문해미가 있는 방을 힐끗 보았다. 나도현은 그런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녀를 달래주려고 했다.“괜찮을 거야. 아주머니를 찾은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기쁜 일이잖아.”양시은은 그의 위로에 고개를 끄덕였다.다음 날 오후, 인명진은 집으로 방문해 진찰해달라는 나도현의 부탁이 담긴 연락을 받게 되었다.비록 그는 정신과 의사가 아니었지만 난치병에 관해서는 계속 이런저런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해미를 보게 되었을 때 그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그런 그의 모습을 본 양시은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우리 엄마는 어떤 상태인 거예요?”“상태가 아주 나빠요. 거의 한계에 달했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뇌 신경 쪽에 일정한 정도의 손상을 입은 것 같아요. 비록 추측이긴 하지만 80, 90% 확신하고 있어요.”인명진이 솔직하게 말해주자 옆에 있던 테이블이 흔들렸다. 나도현은 얼른 양시은은 부축해주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양시은은 이미 테이블과 함께 중심을 잃고 쓰러졌을 테니까.“어떻게 그럴 수가...”그녀는 넋을 잃은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눈물이 주체하지 못하고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분명 애타게 찾던 문해미를 찾았건마는, 겨우 어머니와 만나게 되었건마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응당 기뻐하고 좋아해야 할 순간에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양시은은 행여나 그 사람이 사라지게 될까 봐 얼른 달려갔다.“엄마, 여기는 왜 여기에 계시는 거예요?”그녀는 노인을 붙잡으며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상대가 자신을 반겨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상대는 그녀를 엄청 두려워하고 있었다.“때리지 마세요. 바로 자리를 옮길 거니까 때리지 말아 주세요.”“엄마, 제가 엄마를 왜 때려요. 저 시은이잖아요. 엄마 딸 양시은.”“전 그쪽을 몰라요...”양시은은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을 모른다니... 어떻게 그럴 리가 있겠는가. 그녀는 절대 사람을 착각했을 리가 없었고 눈앞에 있는 사람은 분명 그녀의 어머니였다.속이 뒤집힐 것 같았지만 자신을 너무도 두려워하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최대한 다정하고 온화한 어투로 말했다.“전 엄마를 해치지 않아요. 그러니까 다시 한번 제 얼굴 봐주세요.”그 말을 들은 뒤 한참 지나서야 상대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사실 세월의 흔적이 많은 얼굴은 아니었다. 다만 몸에 맞지 않는 남루한 옷 탓에 행색이 더러워 보였을 뿐이었다. 양시은은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그녀의 어머니는 아주 오래전에 실종되었다. 줄곧 찾아다녔지만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고 죽기 전까지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이곳에서 어머니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엄청난 기쁨을 느꼈지만 어머니의 행색과 상태를 보니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대체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상대는 양시은을 멍하니 보았다. 어딘가 익숙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양시은, 시은아... 시은이니?”“네, 엄마. 저 시은이에요.”양시은은 감격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택시를 잡자 기사는 옷차림이 초라한 그녀의 어머니 문해미를 대놓고 싫어하는 티를 냈다.“아가씨, 대체 어디서 이런 쓰레기를 주워온 거예요? 이런 쓰레기는 내 차에 태울 수 없어요.”“왜 태울 수 없는 건데요. 이미 제 돈을 받으셨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태울 수 없다고요?”양시은은 차가운 눈빛으로 운전기사를
양시은이 미간을 찌푸렸다.“말은 제대로 하셔야죠. 기세등등하게 쏘아붙이던 건 그쪽 아니었나요?”“그건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죠.”장이정이 힘을 세게 줘서 조금 아팠는지 유준이 투덜댔다.“엄마, 아파요.”그녀는 급히 손을 뗐고 얼굴에는 미안해하는 기색이 가득했다.“미안해, 유준아...”유준은 장이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귀여운 목소리로 괜찮다고 했다.유준의 위로 덕분에 장이정은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양시은은 그 틈을 타서 말했다.“저에 대해 뭔가 오해가 있는 거 같네요.”“무슨 오해요? 유 할머니가 당신들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리고 당신들처럼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괴롭히는 건 너무 손쉬운 일이잖아요.”장이정이 비웃었다.역시 그 일 때문이었다.다행히도 양시은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병원을 떠날 때, 양시은은 병원 기록을 하나 가져갔다.“장이정 씨, 이걸 보고 얘기해 보세요.”양시은은 병원 기록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장이정 앞으로 밀었다.장이정은 눈꺼풀이 살짝 떨렸으나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그때 양시은은 장이정의 품에 안긴 유준이가 장이정이 옆에 놓은 과일과 우유에 시선이 꽂힌 것을 보았다.“먹고 싶어?”“아니요. 먹고 싶지 않아요. 이건 엄마가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하던 거예요.”유준은 고개를 저었지만 시선은 여전히 그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가난한 집의 아이는 일찍 철이 든다.양시은은 한숨을 쉬고 죄책감을 느끼는 장이정을 보며 말했다.“먹어도 돼. 다 먹으면 또 있어.”“정말요?”유준은 장이정의 허락을 구했다.유준의 간절한 눈빛을 본 장이정은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낡은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저소득층이라 소비를 줄이기 위해 받은 선물은 다시 선물로 다른 사람에게 보내곤 한다.평소에도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없다.어른들은 참을 수 있지만 아들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장이정은 유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유준이 우유
양시은은 차준기에게 부탁해 그 집 사람들의 서류를 손에 넣었다.차준기는 그녀의 질문에 약간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이걸 왜 필요하신가요?”양시은은 대충 변명을 해버리고는 그 집 사람들의 주소를 받은 후, 택시를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그 집 사람들은 아주 오래된 건물에 살고 있었는데 이곳의 건물들은 벽지나 페인트가 벗겨지고 건물이 많이 낡아서 대부분 철거 예정이었다.그리고 또 이 동네에서 사는 대부분 사람들은 철문을 사용하고 있는 듯했다.양시은은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구세요?”양시은은 밖에서 기다리자 곧 앞치마를 입은 여성이 나왔다. 그녀의 이름은 장이정이었다. 집 앞에 서 있는 낯선 사람을 본 장이정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양시은을 바라보았다.그녀는 길에서 산 우유 한 상자와 과일을 들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따뜻한 나눔 활동을 하고 있어서요.”그렇게 해서 여성이 문을 열었다.장이정은 그녀가 가져온 물건을 받으면서 환하게 웃었다. 경계심도 조금은 풀린 듯했다.“아직도 이런 활동이 있군요. 정말 오랜만이에요. 이 동네 사람들이라면 다 가질 수 있는 건가요?”“아직은 이곳만 있어요.”양시은이 그 집 안에 들어가 앉겠다고 제안하자 장이정은 그녀를 집 안으로 들였다.그녀는 앉자마자 집 안부터 훑어봤다.평범한 가정집의 인테리어에 벽에는 몇 층 벽지가 덮여 있었지만 심하게 낡은 벽을 가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양시은은 감탄하며 눈길을 돌렸다.“지금도 이런 낡은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죠.”“좋은 집에 살 수 있다면 누가 이런 헌 집에 살겠어요.”장이정은 한숨을 쉬며 차를 따랐다.양시은은 고마움을 표한 후, 조금 더 신중하게 물어봤다.“그럼 왜 여기서 안 나가시나요? 요즘은 집 구하기도 쉽고 여기도 철거된다고 들었거든요. 철거가 성공하면 큰돈을 받을 수 있지 않나요?”“그 돈이 얼마나 된다고...”장이정은 말을 멈추고 양시은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런 걸 묻죠?”양시은은 약간 당
양시은은 일단 속마음을 잠시 억누르기로 했다. 그리고는 먼저 유 할머니에게 간병인을 찾아주었다.유 할머니에 관한 일 처리를 끝내고 나서야 양시은은 경찰서로 향했다.오성 구역에서 소란을 피운 사람들은 한 달 동안 계속 구속되어 있었고 아직도 풀려나지 않은 상태였다.회사로 돌아온 양시은은 나도현부터 찾았다.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양시은은 먼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나는 유진혁 뒤에 최종 보스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유진혁은 소란을 일으킨 주모자였고 나머지 사람들은 대부분 그가 부추긴 사람들이었다.나도현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모든 일이 너무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 같았다. 주민들의 불만이 갑작스레 생겨나고 나서 유 할머니가 병을 앓자 갈등이 더욱 커졌다. 이 모든 것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양시은은 오늘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를 간결하게 전했다. 그리고 유진혁에 대해 다시 언급했다.“유진혁의 최근 거래 내역을 확인해 봐. 만약 의심스러운 입금 내역이 있다면 거의 확실하다고 보면 돼.”“이미 확인했어.”나도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정리된 자료를 건네주었다.“이게 유진혁의 모든 자료야. 계좌는 모두 확인했는데 최근에는 큰 수입이 없더라고.”양시은은 빠르게 자료를 훑어봤다.자료는 매우 명확했다. 유진혁은 직업이 없는 백수였고 생계는 모두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는 소위 말하는 등골브레이커였다. 그래서 그가 가지고 있는 카드들은 대부분 정지 상태였으며 수입도 전혀 없었다.지출은 꽤 크고 가끔 큰 금액이 빠져나갔는데 전부 도박에 쓰인 돈이었다.양시은은 그 서류를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유 할머니께서 열심히 저놈을 먹여 살리는데 정작 그는 아픈 어머니를 한 번도 찾아가지 않는다니?”그녀는 순간 모든 것을 깨달았다. 간호사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도 이해가 갔다.자신의 부모가 그런 대우를 받았으면 그 누구라도 화가 날 것이었
인명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성이 ‘나’이신 변호사분 얘기인가요?”양시은은 시선을 돌렸다. 그가 바로 맞히자 조금 민망했다.다행히 인명진은 더 깊이 파고들지 않고 오히려 그녀에게 여러 가지를 알려주며 나도현에게도 조언해 주었다. “나도현 씨는 일중독을 빨리 고쳐야 해요. 이렇게 계속 가면 아무도 그를 도울 수 없을 거예요.”인명진을 보내고 나서 양시은은 병실로 향했다.그 환자는 성이 유 씨였고 나이는 65세였다.이 나이에 심장병을 앓고 있다는 건 매우 위험하다. 조금만 잘못하면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나도현은 이 환자를 매우 신경 쓰고 있었다.병실도 최고급으로 배정되어 있었고 의료비도 모두 가불해주었다.그렇기에 소란을 피우려던 그 남자는 정말로 뻔뻔한 사람이다.“보호자 대신 보살피는 간병인이세요? 보호자랑 연락을 해서 병원에 오시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어머니이신데 어떻게 이렇게 방치해두겠어요? 너무 불효인 것 같아요.”“전 간병인이 아닌데요...”간호사는 당황한 기색이었다.그러자 양시은은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된 사연을 설명했다.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잘못 알아봤네요. 저는 보호자가 보낸 간병인인 줄 알고...”양시은은 그녀의 말투를 눈치채고 미묘하게 물어보았다. “그 보호자께서 자주 안 나오시나요? 제가 알기론 그분이 어머니의 병을 많이 걱정하고 있는 것 같던데요.”그가 어머니의 병을 걱정한다며 난리를 치면서 최근에는 몇 번이나 사람을 다치게 할 뻔했으니.“그게 무슨 소리예요? 진짜 걱정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아무 연락도 없었겠어요? 그냥 외면한 거죠, 그건 완전히 배은망덕한 사람이에요.” 간호사는 이 일을 말할 때,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졌다.양시은은 그 말을 통해,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조금씩 알아 나가게 되었다.그 말로는 어머니를 무척 걱정한다고 말했던 남자가 어머니가 입원한 이후로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어머니는 병상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얼마나 슬펐을까...’“알았어. 내가 옆에 있어 줄게.”양시은은 마음이 약해졌다.그저 아픈 사람 한 명 돌보는 것뿐인데 나도현의 상태가 좋아지지 않으면 내일도 회사에는 못 갈 것 같았다.그녀가 옆에 머무르겠다고 하자 나도현은 꽉 쥐고 있던 손에 조금 힘을 풀었다.양시은은 정말 말한 것대로 옆에 있는 소파에 누워 담요를 덮고 그를 바라보았다.새벽이 되도록 나도현은 꽉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다음 날, 양시은은 소음에 의해 잠에서 깨어났다.눈을 떠보니 그녀는 소파에 누워 있었다. 본능적으로 옆을 쳐다봤지만 나도현은 자리를 떠난 상태였다.그때, 가정부가 아침 식사를 가져왔다.“아주머니, 제 옆에 있던 도현이 어디 갔는지 아세요?”양시은이 물었다.가정부는 아침 일찍부터 왔을 것이기에 나도현이 언제 나갔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되게 일찍 나가셨어요. 나가면서 아가씨를 깨우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하민이도 그분이 유치원에 데려다주신 거예요. 그리고 또 오늘은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어요.”양시은은 핸드폰을 보면서 지금 시간이 몇 시인지를 확인했다.현재 시각을 확인한 그녀는 순간 소파에서 떨어질 뻔했다.지금은 아침 10시였다. 출근 시간보다 2시간이나 늦은 시간이었다.‘그러니까 나도현은 밤새 아팠으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 하민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회사에 출근하기까지 했다는 건가?양시은은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워 나서 급히 아침을 먹고는 회사로 달려갔다.차준기는 그녀를 보고 매우 놀랐다.“양 비서님, 어떻게 오셨어요? 나 대표님 말로는 오늘 휴가 쓰셨다고 하셔서 안 오는 줄 알았거든요.”양시은도 이제 정식으로 입사했기 때문에 회사 사람들은 그녀를 ‘양 비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어디 나가시려고요?”아까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양시은은 대화 주재를 돌렸다.“저는 심장병 환자 병문안 때문에 병원에 가는 길에요.”그가 말한 심장병 환자는 오성 구역 그분이셨다.“맞다, 그리고 나 대표님께서 명령을 내리셨
양시은은 밤마다 자주 잠에서 깨는 습관이 있었다.오늘도 어김없이 잠에서 깨어 거실로 나온 그녀는 거실에 있는 희미한 사람의 형체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한참을 바라보고 나서야 그 정체가 나도현이라는 것을 알아봤다.“도현아, 왜 잠도 안 자고 여기 앉아 있는 거야?”나도현은 낮게 한숨을 쉬었는데 목소리가 너무 낮아서 양시은은 처음에 자기가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했다.양시은은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나도현의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의 이마에 맺힌 땀과 창백해진 그의 얼굴을 보고 그녀는 깜짝 놀랐다.“몸이 안 좋아?”“약 좀... 가져다줄 수 있어? 위가 좀 아픈 것 같아.”나도현의 목소리는 평소와 비슷했지만 그 속에 전에는 없던 허약함이 약간 섞여 있었다.양시은은 그제야 나도현은 위가 안 좋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는 위염에 자주 걸렸었는데 이는 모두 그가 너무 일에만 집중해서 생긴 문제였다.나도현이 걱정됐던 양시은은 당황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자기 방에 위약이 있다는 생각이 났다.“내 방에 있는 것 같아. 기다려봐. 내가 가져올게.”그녀는 급히 방으로 들어가 뜨거운 물과 위약을 챙겨 가져다주었다.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나니 나도현의 찡그렸던 눈썹도 조금 풀리는 듯했다.양시은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좀 나아졌어?”나도현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양시은은 한숨을 쉬며 다시 따뜻한 물을 준비해 그 옆에 두고 핑크색 온수 팩까지 꺼내왔다.“이걸 배 쪽에 올리면 좀 나아질 거 같아. 해봐.”“이걸 올리라고?”나도현은 핑크색 온수 팩을 쳐다보면서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지금은 색깔 따위 신경 쓸 때가 아니야. 빨리 꼭 안고 있어.”그는 그녀의 말에 이끌려 온수 팩을 배 위에 올렸다.그날 밤, 나도현이 갑자기 아픈 것 때문에 양시은은 그의 건강을 챙기느라 잠을 이룰 수 없었다.양시은은 오랫동안 그를 간호해 주다가 피곤해져서 소파에 기댄 채 잠이 들었다.아침이 되자 잠에서 깬 그녀는 급히 나도현의 상태를
양시은은 깜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그의 눈빛에는 여태 한 번도 본 적 없는 진지함이 담겨 있었다.누구든 알 수 있었다. 나도현의 이 말들은 절대 가식이 아니며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라는 것을 말이다.박은희는 이 장면을 보고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는 동시에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다.몇 년 전만 해도 그녀는 나도현이 자기가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을 집으로 데려오게 될 거라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람이 자기도 인정하는 며느리가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세 사람 중 둘은 양시은을 인정했지만 나용민은 여전히 불만족스러워했다.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양시은을 냉정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는 나도현에게 말했다.“이게 네가 다른 여자들을 거절한 이유냐? 이 여자가 뭐가 좋다고? 가문도 너랑 맞지 않고 직업도 그저 그렇잖아.”나도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회사에서 저를 감시하세요?”그럴 수밖에 없다. 이미 은퇴한 나용민이 어떻게 이렇게 상세히 알 수 있을까?들통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나용민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감시라고? 그냥 네가 회사를 잘 운영하는지 걱정한 것뿐이야.”나도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어섰다.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나용민을 노려보며 말했다.나용민은 위압적인 모습의 아들을 보면서도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이제 이 아비도 네 일에 참견하지 말라는 거냐?”“저는 참견 같은 거 필요 없어요. 감당할 수 없어요.”나도현은 차갑게 말했다. 그리고 양시은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나용민은 극대노하며 소리쳤다.“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마!”그러나 나도현은 뒤돌아보지 않고 운전했다. 그리고는 차를 도로 한 쪽에 멈추었다. 나도현은 창밖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양시은은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너무 속상해하지 마.”“시은아, 안고 싶은데...”나도현이 갑자기 낮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 소리가 이상하게도 마음을 아프게 했다.양시은은 잠시 망설였다.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