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얼마 후, 잠시 정신을 잃었던 서율이 깨어났다.

아랫배에서 격렬한 고통이 밀려왔고, 마치 삶의 중요한 무언가가 사라진 듯한 공허함이 가슴을 짓눌렀다.

피 냄새가 진동했고, 서율의 몸에서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그제야 서율은 상황을 깨달았고다. 커다란 불안과 공포가 그녀를 집어삼켰다.

“아기... 내 아기...”

서율은 본능적으로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힘겹게 손을 뻗어 옆에 떨어진 핸드폰을 집어 떨리는 손으로 도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 뚜... 뚜...

길고도 지루한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

그러나 서율이 말도 꺼내기 전, 핸드폰 너머로 들려온 건 한 여자의 요염한 목소리였다.

[도혁아, 더 이상 못 참겠어... 나 정말 못 견디겠어...]

서율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가슴을 찢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고, 그 여자의 숨소리는 저주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서율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 눈이 따가워졌다. 그러나 그녀는 그 고통이 몸에서 오는 것인지 마음에서 오는 것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점점 눈앞이 흐려지더니, 서율은 다시 의식을 잃었다.

...

“환자 대량 출혈 상태야. 바로 수혈 필요해. 어서 혈액준비해!”

“이 환자 RH-O형, 희귀 혈액형입니다. 방금 서지민 씨가 수혈용으로 가져가서 병원에 남은 혈액이 거의 없습니다. 남은 혈액으로는 이 환자 못 살립니다.”

“가져갔다고? 이 환자 도착했을 때, 미리 혈액 신청하라고 했잖아! 전부 넘긴 거야?”

“우리 병원은 변도혁 대표님 소유고, 서지민 씨는 변 대표님의 연인으로 유명하잖아요. 누가 그걸 막을 수 있겠어요?”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환자의 가족에게 연락해서 헌혈할 사람이 있는지 물어봐..”

“이분의 핸드폰에 단 세 명의 연락처만 있어요. 그중에 성이 ‘문’인 사람은 없습니다.”

“일단 그 세 명에게 전화해 봐.”

...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서율의 속눈썹이 살짝 떨리더니, 천천히 눈이 떠졌다.

“깨어났어?”

낯익은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율은 고개를 들어, 익숙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며, 무의식적으로 말했다.

“오빠, 여긴 어떻게...”

육경남은 서율의 창백한 얼굴을 내려다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재벌가의 딸을 포기하고 사랑을 택한 결과가 이거야? 수술대 위에서 죽을 뻔했잖아.”

서율은 조용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경남은 서율의 친오빠로, 두 사람은 각자 부모의 성을 따랐다.

서율은 자신이 정말 죽을 뻔했는지 의심스러웠지만, 의사들의 대화가 생생히 떠올랐다.

문득 그녀는 오빠에게 물었다.

“오빠, 내 아이는?”

경남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너 과다출혈로 겨우 살았어. 아이는... 이미 떠났다.”

서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그녀는 본능적으로 아랫배를 만졌다. 곧 온몸을 짓누르는 고통이 밀려왔다.

“아이가… 떠났다고?”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차라리 잘된 걸지도 몰라... 나 같은 엄마랑 고생하지 않아서.”

경남은 잠시 침묵하다가 부드럽게 말했다.

“서율아, 집으로 돌아가자. 부모님도 많이 그리워하고 계셔.”

서율은 도혁과 함께하기 위해 재벌가의 딸로서의 삶을 포기했다. 그러나 그 결혼에서 얻은 것은 상처와 모욕뿐이었다.

아이도 잃고, 그녀 자신도 죽을 뻔했다.

서율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녀는 결혼 생활에서 무엇을 원했던 걸까? 남편의 무관심? 아니면 끝없는 상처와 모욕?

“오빠, 미안해.”

서율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녀는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었다.

경남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직 늦지 않았어.”

경남의 말에 따르면, 서율은 집안 아주머니가 발견해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그녀는 정말로 죽었을 것이다.

...

일주일 후, 서율은 퇴원했다.

그녀는 경남에게 이혼 서류를 작성해 달라고 요청했으며, 재산 분할은 요구하지 않았다.

문씨 집안은 이미 부유했으니 돈은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다.

경남이 서류를 처리하는 동안, 서율은 짐을 챙겨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때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서율 씨. 웬일이에요?”

서율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힐끗 보고 차갑게 말했다.

“지민 씨와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그녀는 도혁의 첫사랑, 서지민이었다.

지민은 흰색 원피스를 입고 다가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지난주에 손가락을 다쳤어요. 피가 많이 났는데, 도혁이가 많이 걱정하면서 병원에 가서 검사받으라고 했죠.”

지민은 입을 가리며 웃었다.

“도혁이가 혹시 지혈이 안 될까 봐 미리 혈액까지 준비했대요. 손가락을 살짝 베었을 뿐인데.”

지민의 말이 서율의 가슴에 비수처럼 박혔다. 서율은 피가 부족해 거의 죽을 뻔했는데, 도혁은 지민의 작은 상처 때문에 혈액을 미리 준비했다.

서율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결국 수혈은 안 받았겠네요?”

지민은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안 받았죠. 도혁이가 너무 걱정한 거예요.”

서율의 이미 식어버린 마음은 그 순간 얼음처럼 굳어졌다.

그녀는 도혁을 향한 마음을 접었지만, 지민의 말을 듣자 다시금 무거운 절망감이 밀려왔다.

“지민 씨, 참 자랑스러우시겠네요.”

서율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연녀가 이렇게 당당한 건 처음 보네요.”

지민은 잠시 얼어붙은 듯 서율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서율이 그런 말을 할 줄 몰랐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때,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서율, 여기서 뭐 하는 거야?”

키가 크고 늘씬한 남자가 나타났다.

도혁은 서율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차가운 눈빛은 여전히 서리처럼 냉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