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도혁은 마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아내를 지켜보는 듯했다.

“난 그런 짓을 한 적 없는데 왜 인정해야 하지?”

서율은 도혁이가 외도를 해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완전히 깨달았다. 심지어 현장에서 들켜도 다른 핑계를 대며 빠져나갈 것이 분명했다.

서율은 더 이상 도혁과 말 섞고 싶지 않았기에 가방에서 이혼 서류를 꺼내 던지듯 내밀었다.

“이혼 합의서야. 보고 문제 없으면 사인해.”

서율은 건강을 회복한 후 계속 집에 있었고, 내일 아파트로 돌아가 짐을 정리할 계획이었다. 그에 맞춰 미리 이혼 서류를 준비해둔 것이었다.

지금 우연히 도혁을 만났으니, 이참에 직접 서류를 건네는 것이 나았다.

서율이 방금 지옥순에게 대든 것과 이혼을 들먹이며 도혁을 몰아붙이는 태도는 이미 도혁의 심기를 건드렸다.

“문서율, 적당히 해.”

도혁은 서류를 보았다. ‘이혼 서류’라는 큼직한 글자가 가로등 불빛에 비춰져 뚜렷하게 보였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서류를 훑어보았다. 마지막 페이지에 서율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하자 그의 눈빛이 깊어졌다.

이미 이혼 서류를 준비해두었다니. 이 또한 계획일까, 아니면 진짜일까.

“문서율...”

도혁이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서율이 차갑게 말을 잘랐다.

“내일 아침 9시에 법원에서 보자. 의심스러우면 거기서 확인해.”

도혁의 눈동자가 더욱 어두워지더니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처음에는 온갖 수단을 써서 나와 결혼하려 매달리더니, 이제 와서 네 마음대로 이혼을 하겠다고? 날 뭘로 보고 있는 거야?”

도혁의 반응에 서율은 순간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변도혁, 어차피 넌 나를 좋아하지 않잖아?”

도혁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래.”

“그렇다면 이혼하는 게 낫지 않아? 어차피 네 첫사랑도 돌아왔으니 둘이 만나면 되잖아.”

서율은 비웃듯이 말했다.

“아니면 몰래 즐기는 편이 더 좋았던 거야?”

도혁은 고개를 숙이며 천천히 서율의 귀에 얼굴을 가까이했다. 서늘한 향이 그녀의 숨결 속으로 스며들었다.

서율은 잠시 숨을 멈추었다.

“내가 왜 너와 이혼하지 않는지, 잘 알잖아.”

도혁의 속삭임에 서율의 속눈썹이 떨렸다.

“무슨 뜻이야?”

“문서율, 정말 모른 척하는 거야?”

도혁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가 할아버지를 부추겨서, 주식을 빌미로 나를 협박했잖아. 아이를 낳지 않으면 3년 동안 이혼하지 못하게 했잖아. 그렇지 않으면 내 주식이 영구 동결된다는 걸 네가 모를 리가 없잖아. 안 그러면 내가 왜 그동안 참았겠어?”

도혁의 낮고 매혹적인 목소리는 서율의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서율의 손발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할아버지가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다니...’ 이 사실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서지민이 돌아왔는데도 도혁이 이혼을 요구하지 않았던 이유가 이것이었나?

그리고 그동안 내 곁을 떠나지 않았던 이유도...?

서율은 도혁이가 조금이라도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 있는 줄 알았다. 그렇지 않다면 왜 싫은 여자를 만졌겠는가?

알고 보니, 도혁은 서율이가 아이를 낳길 원했을 뿐이었다.

서율은 갑자기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한 아기가 떠올랐다. 곧 가슴이 미친 듯이 아파왔다. 그녀는 힘겹게 도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변씨 가문의 아이를 낳으면, 바로 날 버리겠다는 거야?”

도혁의 목소리는 매우 차가웠다.

“네가 나와 결혼하려 했던 이유 알고 있어. 걱정 마, 이혼하면 돈을 넉넉하게 챙겨줄 거야. 하지만 아이는...”

도혁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넌 절대 아이를 만날 수 없을 거야. ”

그 말은 아이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겠다는 의미였다.

도혁은 이미 모든 계획을 다 세워두었다. 오직 서율만이 아무것도 모른 채, 그가 다시 돌아오길 바라고 있었다.

서율이가 아이를 잃었을 때, 도혁은 다른 여자와 함께 있었으며 아이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서율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마음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문서율, 혹시... 임신한 거야?”

도혁의 어두운 시선이 그녀를 꿰뚫었다.

서율의 눈동자에 차가운 빛이 스쳤다.

“그럴 리가.”

도혁은 아이의 존재를 알 자격이 없었다.

서율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응시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만약 아이가 있었다 해도, 난 아이를 지웠을 거야.”

도혁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

“아이를 지운다고? 그토록 변씨 가문에 집착하더니, 네가 아이를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도혁은 비웃듯이 말했다.

“이제 3년 기한까지 3개월밖에 안 남았어. 네가 지금 이혼을 말하는 의도가 뭐겠어?”

서율은 고통에 무감각해진 심장을 움켜쥐고 웃음을 터뜨렸다.

“내 의도가 뭔데?”

도혁은 차갑게 웃으며 답했다.

“변씨 가문의 아이를 낳지 않았고 3년 기한이 거의 다 됐으니, 이혼할 때 조금이라도 더 챙기려는 거겠지.”

서율은 도도하게 고개를 들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난 네가 말하는 변씨 가문의 돈에는 관심 없어.”

그러나 도혁은 서율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녀가 돈을 원해 결혼했다는 생각은 굳건했다.

“문서율, 3개월만 더 참으면 원하는 돈을 받을 수 있을 거야. 그러니 변씨 가문의 며느리로서 조금은 자중해. 그동안 나쁜 소문이라도 퍼지면, 난 한 푼도 줄 생각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