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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지민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아마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따라온 거 아닐까?”

도혁은 이 말을 듣고 미간을 더 깊이 찌푸렸다.

“문서율, 날 따라온 거야?”

이전 같았으면 서율은 서둘러 변명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지민이 돌아온 이후로 이런 일은 수없이 반복되었고 서율은 이제 지쳐 있었다.

아이를 잃고,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것이 득인지 실인지 모르겠는 마음이었다.

서율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변도혁, 우리 이혼하자.”

도혁은 순간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뭐라고 했어?”

서율은 그와 눈을 마주치며 또렷하게 다시 말했다.

“이혼하자고.”

도혁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우며 냉소가 흘러나왔다.

“다른 수가 안 통하니까 이제는 이혼으로 장난을 치는 거야? 문서율, 난 네 장난에 시간 낭비할 여유 없어.”

옆에서 지민도 비웃는 듯 서율을 바라보았다.

지민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

“서율 씨, 밀당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여자가 쉽게 이혼 얘기를 꺼내는 건 현명하지 않아요. 차라리 더 지혜롭게 행동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도혁 역시 그녀의 말에 동의한 듯 서늘하게 말했다.

“문서율, 더 이상 날 귀찮게 하지 마. 끈질기게 매달리는 여자는 질색이니까.”

지민은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도혁아, 아마 서율 씨가 네 관심을 끌고 싶어서 그랬던 거겠지.”

서율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내가 정말 이혼을 원하는지 아닌지, 곧 알게 되겠지.”

그녀는 두 사람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덧붙였다.

“너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내가 물러나 주겠다는데 왜 기뻐하지 않는 거지?”

도혁은 여전히 그녀가 이혼을 미끼로 자신을 협박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서늘한 눈빛으로 차갑게 말했다.

“문서율, 어떤 수를 쓰든 소용없어. 네가 더 싫어질 뿐이니까.”

서율은 그런 도혁을 보며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위치에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동안 얼마나 비굴하게 굴었기에, 도혁이 이렇게 확신하게 만들었을까?

서율은 무표정으로 차갑게 한 마디를 던졌다.

“두고 봐.”

그녀는 이혼 서류가 준비되면, 도혁의 얼굴에 던져버릴 생각이었다.

...

서율이 병원을 나오자 경남의 차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를 본 경남은 웃으며 다가와 물었다.

“왜 그렇게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어? 또 누가 널 화나게 했어?”

서율은 입술을 오므리며 대답했다.

“변도혁과 그 첫사랑을 만났어.”

경남의 눈에 잠시 어두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대화가 잘 안 풀렸나 보네?”

“변도혁은 내가 이혼을 미끼로 자기를 협박하고 있다고 믿고 있어.”

“아이를 잃은 건 안 말할 거야?”

아이 이야기가 나오자, 서율의 가슴이 다시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러나 서율은 담담하게 말했다.

“말하지 않을 거야.”

도혁이 아이를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오히려 자신을 비난하며 아이를 가질 자격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서율은 그런 굴욕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이때 경남이 차 문을 닫으며 물었다.

“어디로 갈 거야? 신혼집으로 돌아갈 거야?”

‘신혼집'이라는 단어가 서율의 귀에 날카롭게 들려왔다.

“아니.”

서율은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예전 아파트로 데려다줘. 몸이 나아지면, 그때 짐을 가지러 갈 거야.”

경남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음 달 고지철 어르신의 팔순 잔치가 있어. 부모님이 나더러 참석하라고 하셨어. 지성이도 최근에 돌아왔어. 너도 오랫동안 못 봤지? 같이 갈래?”

“지성 오빠가 돌아왔어?”

고지성의 이름이 언급되자, 서율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래, 나도 같이 갈게.”

어릴 적, 두 가문은 이웃이었기에 서율과 지성은 함께 자란 소꿉친구였다.

그러나 서율은 도혁과의 결혼을 위해 모든 사교 생활을 포기했었다.

서율은 그때 포기했던 것들을 하나씩 다시 되찾을 생각이었다.

...

한 달이 금세 지나갔다.

경남은 서율의 건강을 위해 전문의을 고용했고, 그 덕분에 그녀는 완전히 회복할 수 있었다.

그동안 도혁은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서율은 자신이 도혁에게 보냈던 수많은 문자 메시지를 넘겨보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 많은 메시지는 단 한 번도 답장을 받지 못했다. 변도혁은 아마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서율은 결혼 생활이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확신했다.

그때 경남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서율아, 준비됐어? 고 어르신의 생신 잔치가 얼마 안 남았어.]

서율은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둘은 곧장 잔치가 열리는 장소로 향했다.

고씨 가문은 명망 높은 집안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들과의 친분을 갈망했다.

고지철은 젊었을 때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인물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의 생신 잔치에 초대되는 것은 큰 영광이었다.

초대장을 보여주고 서율과 경남은 연회장에 들어섰다.

그때 경남의 핸드폰이 울렸다. 경남은 핸드폰을 확인한 후 서율에게 말했다.

“잠시 나갔다 올 테니 여기서 기다려.”

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남이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목소리가 서율의 귀에 들려왔다.

“서율 씨, 병원에서 도혁을 쫓아다니는 것도 모자라, 이젠 파티마저도 따라온 거예요?”

서율은 고개를 돌려 노인을 부축하며 다가오는 지민을 보았다. 그 노인은 바로 도혁의 할머니, 지옥순이었다.

지옥순은 서율을 보자 눈살을 찌푸렸고, 그녀가 입고 있는 드레스를 보고 화가 잔뜩 났다.

“너 정말 대단하구나. 우리 도혁이가 열심히 돈 벌고 있는데, 넌 그 돈으로 이렇게 사치나 부리고 다니다니!”

지옥순은 화를 내며 서율을 가리켰다.

“당장 드레스 벗어서 지민이한테 줘!”

지옥순은 안목이 높은 사람으로, 서율이 입은 드레스가 수십억 원에 달한다는 것을 단번에 눈치챘다.

서율에겐 그 옷을 입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지옥순은 화를 참지 못했다.

서율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지옥순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난 3년간, 서율은 지옥순에게 끝없는 모욕과 학대를 받아왔다. 그러나 서율은 한 마디도 대꾸하지 않고, 침착하게 지옥순을 향해 말했다.

“제가 왜 그래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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