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미가 기꺼이 목숨을 바치고 수만 마리의 개미가 뼈를 갉아 먹는 듯한 고통을 견뎌낸 것, 그리고 죽음에 임박했다가 마지막에 산송장이 된 것까지 이 전체 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유진우에게 말해주었다.왜냐하면 유진우가 반드시 이 사실을 알아야 하고, 조선미가 죽을 각오까지 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조안태의 설명을 듣던 유진우는 그대로 넋이 나갔다. 자리에 멍하니 선 채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조선미가 유진우를 위하여 목숨까지 내놓을 정도로 희생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유진우는 그제야 조선미의 사랑을 뼛속 깊이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이 무겁고 소중한 사랑을 그가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이건 선미 씨가 유 장로에게 남긴 편지입니다. 읽어보세요.”조안태는 복잡한 표정으로 조선미의 유언이 담긴 편지를 조심스럽게 건넸다. 지금까지 누군가를 존경하고 탄복한 적이 없는 그였는데 조금 전 조선미의 용기는 진심으로 존경할만했다.수만 마리 개미가 뼈를 갉아 먹는 듯한 고통은 무도 마스터라도 버틸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런데 여린 여자가 그 고통을 견뎌냈고 게다가 어떤 후회와 두려움도 없이 강인하고 단호했다.한 사람을 대체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해야만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조안태는 신이 와도 유진우의 목숨을 구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조선미를 통하여 일반인에게도 신과 겨룰만한 강력한 힘이 있다는 걸 문득 깨닫게 되었다.유진우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 봉투를 받고 열어보았다. 가지런한 글씨가 그의 눈앞에 또렷하게 나타났다.[여보, 당신이 이 편지를 읽을 때쯤이면 난 아마 이 세상에 없겠죠? 하지만 너무 속상해하지도 말고 자책하지도 말아요. 이 모든 건 다 내가 원해서 선택한 거니까. 사실 당신을 만난 그 순간부터 난 당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었어요. 처음에는 단지 재미나는 사람이라고만 여겼었는데 나중에 나도 모르게 진우 씨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머릿속에 매일 당신 얼굴이 떠오르고 한시도 잊을
조선미의 편안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유진우의 마음은 칼로 도려내듯 아팠다.조선미를 죽음으로 몰아간 자신이 미웠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두 사람의 목숨을 기꺼이 다시 바꾸고 싶었다.“잠깐! 바꾼다?”유진우는 문득 뭔가 떠올랐는지 굳어진 얼굴로 조안태를 보며 말했다.“선배님, 혹시 송장꽃이 더 있어요? 제 목숨으로 선미 씨를 살릴 겁니다.”“장난하지 말아요!”조안태가 미간을 찌푸리며 호통쳤다.“송장꽃이 무슨 길바닥에 널린 건 줄 알아요? 필요하면 갖다 쓰게? 그리고 선미 씨가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유 장로를 구했으면 잘 살아야죠. 그래야 선미 씨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요.”“전 선미 씨가 목숨을 바치게 할 수 없어요. 꼭 살릴 겁니다.”유진우가 핏발이 선 두 눈으로 언성을 높였다.“무슨 방법을 쓰든, 어떤 대가를 치르든 반드시 살릴 겁니다. 선배님, 선배님은 의학계의 거장이시잖아요. 당연히 본 것도, 들은 것도 많겠죠. 제발 저 좀 도와서 선미 씨를 살려주세요. 제가 이렇게 빌게요.”그러더니 털썩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당신 정말...”조안태는 화가 나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유진우의 고집을 절대 꺾을 수가 없었다. 하여 한참 망설이다가 결국 들어주기로 했다.“됐어요.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솔직하게 얘기할게요. 선미 씨가 지금 죽은 사람과 다를 바는 없지만 살릴 방법이 있긴 해요.”“무슨 방법입니까?”유진우의 두 눈이 번쩍였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정상적인 이치대로라면 선미 씨가 유 장로 체내의 독을 전부 흡입해서 살 가망이 아예 없어요. 그런데 7일 탈명단과 송장꽃이 서로 상극인지라 독으로써 독을 물리친 덕에 결국 절반 넘게 해독되어 선미 씨가 아직 숨이 붙어있는 거예요. 지금 선미 씨를 살리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하나는 봉황 독충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검은 꽃무릇을 찾는 거예요. 하지만 이 두 가지를 찾는 게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워서 거의 없다고 보면 돼요
50년 전 조안태가 아직 풋내기이던 시절 고영은은 이미 세상에 명성을 떨쳤다. 운 좋게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아주 기품이 흘러넘치고 사람을 압도할 만한 분위기를 지닌 여자였다.“고영은? 인여궁?”유진우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바로 물었다.“선배님, 고영은이라는 분의 묘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허무맹랑한 물건이라고 했던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조안태가 한숨을 내쉬었다.“50년 동안 고영은의 묘를 찾아다닌 사람이 수두룩한데 지금까지 찾아낸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러니까 이 검은 꽃무릇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죠.”“찾지 못했다고 해서 없는 건 아니잖아요.”유진우가 진지하게 말했다.“무슨 방법을 써서든 검은 꽃무릇을 찾아내고 말 겁니다. 그래도 안 되면 주술교에 쳐들어가는 수밖에 없죠.”“미쳤어요? 거긴 아주 위험한 곳이에요.”조안태의 표정이 급변했다.“선미 씨는 저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쳤는데 위험한 곳에 들어가는 게 뭐가 대수라고요.”유진우의 눈빛이 매우 확고했다.“하지만...”조안태는 말을 잇지 못했다.“선배님, 선미 씨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어요?”유진우가 갑자기 물었다.“그건 나도 확실하게 말하긴 어려워요. 길면 보름이고 짧으면 닷새 정도인데 선미 씨 본인의 의지에 달려있어요.”조안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유진우는 아무 말 없이 허리를 굽혀 조선미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하고 부드럽게 말했다.“선미 씨, 내가 돌아올 때까지 꼭 버텨요... 나랑 평생 함께하겠다면서요. 그 약속 지켜야죠. 내가 무슨 대가를 치르든 반드시 구해줄 테니까 기다려요.”그러고는 문을 나섰다. 그의 두 눈에 전에 본 적 없었던 확고함이 가득했고 살짝만 건드려도 미쳐 돌아갈 것만 같았다....교외에 정원이 딸린 어느 한 고급 별장.인여궁 궁주 백수정과 몇몇 제자들이 한 데 둘러앉아 완전하지 않은 인여경을 연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꼼꼼하게 살펴도 그 어떤 수상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다.“청하야, 이 안에 다른 게 숨겨져 있는 게
백수정의 분부에 부하들이 구리 대야를 가져왔다. 한 구리 대야에는 물을 가득 담았고 다른 구리 대야에는 숯불을 붙였다.“일단 해보자.”백수정은 심호흡한 후 인여경을 물에 던졌다.한 무리 사람들은 혹시라도 생각지 못한 장면이 펼쳐지는 건 아닌지 기대하며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한참이 지나자 인여경이 잠잠해졌다.백수정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부여잡고 꺼내서 자세히 살폈다. 그런데 인여경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사부님, 제가 얘기했잖아요. 이 방법은 쓸모없다고요.”차연주가 낮은 목소리로 불만을 드러냈다.“불로 태워보자.”백수정은 이를 꽉 깨물고 인여경을 불 속에 던지려 했다.“사부님.”차연주가 다급하게 말렸다.“물에 젖으면 말리기라도 하면 되는데 불에 타면 아무것도 남질 않아요. 신중하게 고려하세요.”“인여경의 내용은 이미 눈 감고 외울 정도로 달달 익혔어. 남겨둬봤자 쓸데도 없어.”백수정은 차연주의 손을 홱 뿌리치고 인여경을 숯불 속에 던져버렸다.파란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인여경이 순식간에 활활 타오르다가 검은 잿더미만 남게 되었다.“사부님, 안에 뭔가 있는 것 같아요.”눈치 빠른 홍청하가 뭔가 다른 점을 발견했다.“역시 뭔가 있었어!”자세히 살펴보던 백수정의 두 눈이 저도 모르게 번쩍 띄었다. 재빨리 숯불을 끈 후 검은 잿더미를 이리저리 뒤지다가 결국 특별 제작된 금박을 발견했다. 깨끗하게 씻고 보니 금박에 지도가 새겨져 있었다.그리고 지도에 표기된 마지막 지점이 바로 고영은의 묘였다!“고영은? 우리 선배님 아니야?”놀라움도 잠시 백수정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하하... 너무 잘됐어. 그렇게 찾아다닐 때는 보이지 않더니 의식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찾았네? 이 인여궁 안에 선배님이 남기신 보물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어. 역시 하늘은 우리 편이야.”고영은은 인여궁의 제3대 궁주이자 역대 가장 훌륭하고 강하며 앞날이 창창한 궁주였다. 50년 전 그녀는 세상을 휩쓴 인재였고 용국 백 년이래 가장 뛰어난 여자 마스터였다. 그런 그녀와
홍청하는 잠깐 멈칫하다가 억지웃음을 쥐어짰다.“사부님, 저 눈치가 빨라서 사부님께 도움이 될 겁니다.”“괜찮아.”백수정이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연주 혼자 도와줘도 충분하니까 넌 나가 있어.”“하지만...”홍청하는 뭐라 더 얘기하고 싶었지만 백수정이 두 눈을 부릅떴다.“왜? 이젠 사부의 말도 듣지 않겠다는 거야?”“제가 어찌 감히...”홍청하는 바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나가!”백수정의 인내심이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그럼 먼저 물러가겠습니다.”더는 남아있을 수 없었던 홍청하는 인사를 올린 후 하는 수 없이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그녀의 두 눈에 짙은 불만과 분노가 가득했다.수년 동안 물불 안 가리고 많은 일을 했지만 여전히 사부의 믿음을 얻지 못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는 계속 이방인이었다.홍청하는 이미 충분히 노력했고 자신의 충성심을 다 보여줬다고 생각했었다.만약 홍청하가 아니었더라면 백수정은 어떻게 인여경을 손에 넣고 또 어떻게 인여경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었겠는가?보물을 찾아내는 데 사실 홍청하의 공이 가장 컸다.그런데 결과는 어떠한가?상을 받기는커녕 되레 사부가 경계하기 시작했고 지도를 볼 자격조차 없었다. 홍청하가 그동안 노고를 마다하지 않고 많은 일을 한 건 다 누구 때문인데?왜 백수정은 그녀를 믿지 않고 백수정의 마음을 얻지 못한단 말인가? 대체 왜!홍청하는 이를 꽉 깨물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녀의 두 눈에 원망이 스쳤다.별장을 나선 홍청하는 휴대 전화를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유진우, 나 인여궁의 비밀을 발견했는데 당신에게 유용한 정보야. 관심 있으면 오늘 저녁 8시 진성 식당에서 봐.”...저녁 8시, 진성 식당.홍청하는 안절부절못하며 룸 안에 홀로 앉아있었다. 사실 그녀는 유진우가 올지 말지 확신이 없었다.여러 일을 겪고 나니 남을 믿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을 믿는 게 가장 현명하다는 걸 문득 깨달았
“정말 고영은이야? 잘못 안 거 아니고?”유진우는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홍청하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엄청난 힘에 홍청하는 팔이 저릿하여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직접 봤어. 절대 거짓말이 아니야.”홍청하는 아픔을 가까스로 참으며 진지하게 대답했다.“묘 어디 있어? 얼른 말해!”유진우는 무척이나 급해 보였다. 마치 상대를 잡아먹을 듯한 눈빛이었다.그렇지 않아도 인여궁을 통하여 고영은에 관한 정보를 알아보려 했었는데 이렇게나 빨리 찾을 줄은 몰랐다.“아프다고!”홍청하는 유진우의 손을 뿌리치려 발버둥 치면서 눈살을 찌푸렸다.“묘의 정확한 위치는 나도 잘 몰라. 사부는 지도를 연구하겠다면서 날 일부러 내쫓더라고. 어렴풋하게 블랙 숲이라는 세 글자를 보았어.”“블랙 숲?”유진우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그게 어딘데?”“이미 알아봤는데 블랙 숲은 무주 지역에 있더라고. 늪이 가득한 아주 위험한 자연림이야. 지세가 험하고 환경도 열악해서 인적이 아주 드물어. 아직 미개발 지역이야.”홍청하가 설명했다.“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라 정확한 위치야.”유진우가 서늘하게 말했다. 숲이라고 불릴 정도라면 면적이 아주 넓을 것이다. 지도 없이 숨은 묘를 찾는다는 건 바다에 빠진 바늘을 찾는 격이었다.“내가 알아낸 건 잠시 이것뿐이야.”홍청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이었다.“하지만 걱정하지 마. 백수정 옆에서 정보를 캐낼 거야. 뭔가 알아낸 게 있다면 바로 연락할게. 그런데 그전에 조건이 있어.”“무슨 조건?”유진우가 되물었다.“보물을 찾으면 나한테 절반을 줘.”홍청하가 대놓고 요구했다. 유진우를 찾은 건 강한 조력자가 필요해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진우의 인품도 믿을만하니까.“그래.”유진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흔쾌히 대답했다. 보물인지 뭔지 그는 하나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검은 꽃무릇만 손에 넣으면 되었다.“좋아! 약속 지켜!”홍청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유진우가 흥정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고영은의 묘가 다시 나타났고 그 위치가 바로 무주의 블랙 숲이라는 정보였다. 이 정보가 알려지자마자 곳곳의 수많은 무사들이 무주로 몰려들어 숟가락을 끼얹었다. 어쨌거나 이런 색다른 경험은 흔히 있는 건 아니니까.그 시각, 무주로 향하는 한 승합차 안.유진우는 유리창 밖의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황은아가 옆에서 쉴새 없이 재잘거렸다.“아저씨, 약신왕 선배님께서 몸조심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어요. 약 제때 먹고 절대 진기를 써서는 안 된댔어요. 그렇지 않으면 내장을 심하게 다친대요. 그리고 고영은의 일을 누가 발설했는지 지금 엄청 많은 사람이 보물을 찾겠다고 혈안이 되어있어요. 우리 이번에 경쟁자가 아주 많아요. 아 참, 나쁜 소식도 있어요. 어젯밤에 어떤 고수가 무도 연맹 감옥에 쳐들어가서 황보춘을 데려갔대요. 무도 연맹에서 많은 사람을 보내 쫓았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대요.”황은아는 들어온 소식을 보면서 유진우에게 보고했다. 멍하니 듣고만 있던 유진우가 드디어 반응을 보였다.“황보춘이 도망쳤다고? 대체 누가 그런 재주가 있어서 감히 무도 연맹 감옥에서 사람을 데려가?”“장 어르신이 보낸 정보에 따르면 영살문의 짓인 것 같아요. 무도 연맹이 잠깐 방심한 틈에 많은 이가 죽었대요.”황은아가 설명했다.“만약 미야모토 코지로가 직접 나섰다면 가능성 있어. 하지만 영살문이 고작 황보춘 때문에 이런 위험을 무릅쓸 줄은 몰랐네.”유진우가 실눈을 뜨고 말했다.“명의님, 황보용명이 죽은 그 순간부터 전 자꾸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요.”그때 옆에 앉아있던 설연홍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황은아의 경호원으로서 당연히 동행해야 했다.“뭐가 이상하다는 거죠?”유진우가 미간을 찌푸렸다.“모르겠어요. 그냥 누군가에게 끌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설연홍은 다리를 꼬고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지금은 그런 거 생각하지 맙시다. 일단 검은 꽃무릇부터 찾고 봐요.”유진우는 더는 따지기 귀찮아 두 눈을 감았다.점심쯤 승
“멸치?”갑작스러운 소리에 흉터남이 화들짝 놀랐다. 고개를 돌려 보니 평범한 옷차림에 서늘한 표정의 남자가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인마, 넌 또 어디서 튀어나온 놈이야? 경고하는데 오지랖 부리지 마!”흉터남이 잔뜩 굳은 얼굴로 째려보았다.“살려주세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여인이 발버둥 치며 울부짖었다. 공포에 질린 얼굴에 한 가닥의 희망이 생겼다. 오늘 몸이 더럽혀질 것 같다는 생각에 거의 절망에 빠졌지만 지나가던 누군가가 흔쾌히 나서서 도와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난 오지랖 부리겠다고 한 적 없어. 하던 거 계속해.”유진우는 팔짱을 낀 채 관심 없는 척했다.“응?”유진우의 행동에 흉터남은 되레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여인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날 구하려던 거 아니었어? 왜 가만히 있지? 설마 구경하러 온 거야?’“흥! 난 또 무슨 큰 인물이라도 되는 줄 알았더니 잡것이었구나.”흉터남이 코웃음을 쳤다.“나서지 못하겠으면 그냥 꺼져. 내 일을 방해하지 말고.”“그래! 당장 꺼져. 그렇지 않으면 다리를 분질러버리겠다!”몇몇 부하들이 흉악스러운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넌 네 일 하고 난 풍경을 감상하겠다는데 왜? 그나저나 멸치인 네가 설 수나 있을지 모르겠네.”유진우는 흉터남의 바짓가랑이를 힐끗거리며 비웃었다.“죽으려고 환장했어?”치욕을 당했다는 생각에 흉터남은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더니 두말없이 칼을 뽑아 들고 유진우를 내리치려 했다. 눈앞의 유진우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기세였다.쨍!유진우는 한 손으로 칼날을 가볍게 잡았다. 흉터남이 흠칫하며 넋이 나간 그때 그의 바짓가랑이를 힘껏 걷어찼다.흉터남은 처참하게 울부짖으며 두 다리를 오므리면서 털썩 주저앉았다. 안색이 창백해지고 입에 거품까지 물었다. 보기만 해도 상당한 고통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어!”흉터남의 부하들이 분노하며 저마다 칼을 뽑아 들었다.유진우가 킥으로 그들의 바짓가랑이를 걷어차자 또다시 처참한 비
삼 분 후, 모든 호룡각의 킬러들은 이미 피를 뿌린 채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온몸이 피로 물든 유진우는 흔들리며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의 몸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고 내면의 강력한 진기 역시 모두 사라지면서 그는 이제 거의 죽음에 가까웠다. 눈앞의 풍경은 점점 흐릿해지고 심장박동은 거의 멈춰 있었다. “이렇게 많은 위험을 겪고도 결국엔 내가 내 사람의 손에 죽다니, 정말 웃기네.” 유진우는 차가운 웃음을 짓고 가슴에 박힌 칼을 내려다보며 두 손으로 칼을 움켜잡고 힘껏 뽑았다. 순간,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죽을 때 칼이 몸에 꽂혀 있는 건 보기 싫었다. 칼을 빼자 유진우는 머리가 어지러워지며 결국 ‘쿵!’하고 땅에 쓰러졌다. 이내 의식이 완전히 끊어졌다. 유진우가 쓰러질 때 그의 몸에 항상 지니고 있던 부적이 갑자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빛은 금빛으로 변하며 유진우의 이마에 흡수되더니 사라졌다. 영혼 부적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면서 그 안의 강력한 에너지가 유진우의 사지와 백골을 휘감으며 퍼졌다. 이전에 사철수가 뿌린 이상한 독은 이 에너지에 접촉하자마자 급속히 분해되었고 더 이상 저항할 힘이 없었다. 유진우의 내부 상처와 방금 뚫린 치명적인 칼자국도 이 에너지를 받고 조금씩 회복되었다. 그 에너지 안에는 생명의 기운이 넘쳐흘러 원래 생명을 잃었던 유진우를 천천히 죽음의 문턱에서부터 끌어당기고 있었다. 이 시각, 수십 리 떨어진 어느 비밀 저택에서 명상 중이던 이청성은 갑자기 몸이 움찔하더니 입에서 피를 뿜어냈다. 그녀의 완벽한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호신 부적이 손상된 건가?” 이청성은 이마를 찡그리며 손가락으로 수를 놓으며 계산을 했고 그 결과를 확인하고 얼굴이 크게 변했다. “큰일 났다!” 생각할 틈도 없이 이청성은 곧바로 마법을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몸을 한 줄기의 빛으로 바뀌더니 황급히 어딘가로 향했다. 이 시각, 호룡각의 비밀 기지 안에서는 가면을 쓴 한 남자가 금색 의
이제 유진우가 할 수 있는 건 함께 죽는 것뿐이었다. “응?” 유진우의 빠른 철권을 맞닥뜨린 사철수는 눈이 커지며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막았다. “펑!”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사철수의 두 팔이 그대로 부러졌고 그의 몸은 마치 자루처럼 10미터 정도 날아가다가 땅에 떨어졌고 입에서는 피가 터져 나왔다. “배신자!” 유진우는 눈을 부릅뜨고 분노를 터뜨리며 계속 공격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사철수는 상황이 급박해지자 두 손으로 인을 그렸고 발을 힘껏 구르자 갑자기 그의 몸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한 무더기의 옷만 남았다. 이건 분명히 기문둔술이었다. “와!” 사철수가 도망친 뒤 유진우는 거칠게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그는 흔들리며 쓰러질 듯한 몸을 지탱했다. 전 상처가 아물지 않았고 몸은 독에 중독되었으며 가슴을 관통한 그 칼이 여전히 그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제 유진우는 죽음 직전까지 다가갔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전하!” 손도운은 절망하며 소리를 질렀지만 중상을 입은 상태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진우 형님!” 왕현 역시 비틀거리며 일어설 수 없었다. 세 사람의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고 게다가 호룡각의 킬러들이 여전히 주변에 많았다. “왕현 씨! 손도운을 데리고 먼저 가요!” 유진우는 부서진 몸을 힘겹게 지탱하며 어떻게든 쓰러지지 않으려고 했다. 칼이 몸에서 뽑지 않는 한 대략 한 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진우 형님! 그럼 형님은요?” 왕현은 당황스러워하며 물었다. 세 사람 중 유진우의 부상이 가장 심각했다. “걱정하지 마요. 저는 수련이 깊으니 죽지 않아요.” 유진우는 겨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만 떠들고 손도운 데리고 가요!” 왕현은 계속 말하려 했지만 유진우의 호통에 말을 잇지 못하고 결국 손도운을 부축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호룡각의 킬러들은 두 사람을 쫓지 않고 오히려 유진우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표는 분명했다. 다른 두 명
유진우는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자신을 습격한 사철수를 보며 순간적으로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그는 내통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을 의심해 왔다. 왕현, 유공권 등도 그중 하나였지만 유독 사철수만은 의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철수는 그동안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었고 왕부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 그래서 그는 사철수에 대해 항상 죄책감을 느껴왔고 그랬기에 아까 전심을 다해 치료해 주었던 것이다. 자신이 독에 걸리고 상처를 입어도 사철수를 구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하지만 그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왕부의 결사대원이었고 마치 가족처럼 여기던 사철수가 뒤에서 칼을 꽂을 줄은... ‘도대체 왜?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 “아저씨? 뭐 하시는 거예요?” 유진우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장혁아, 미안하다. 이렇게 해야만 했어.” 사철수의 얼굴은 복잡해 보였고 그 눈빛에는 죄책감이 섞여 있었다. “예전에 내가 말했지. 그때의 진실을 조사하지 말라고. 그런 건 죽음을 부를 위험이 크다고. 그런데 왜? 왜 너는 그걸 듣지 않았니? 너는 잘 살 수 있었는데 왜 이렇게 스스로 죽으려 드는 거야?” “당신... 도대체 누구야?” 유진우는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나 사철수는 서경 중군 부장이지만 그전에 내 진짜 신분은 호룡각의 밀사였다.” 사철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호룡각의 밀사?” 유진우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사철수가 호룡각에서 보낸 첩자라는 사실을. ‘그렇다면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들이 그를 습격한 것은 사철수가 미리 정보로 전달했기 때문일까? 그리고 그때 터졌던 검은 독기 역시 사철수의 짓이라고?’ 사철수는 일부러 자신을 독에 중독시켜 유진우에게 독을 풀게 하면서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공격할 기회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얽힌 계략은 그를 완벽하게 속여왔고 지금까지 아무런 의심 없이 믿고 있던 것들이 전부 거
두 손이 맞붙으며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유진우는 몸을 한 번만 움찔했을 뿐인데 모든 힘을 가볍게 막아냈다. 반면,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유진우의 한 손에 의해 수십 미터나 날아가며 땅에 떨어졌고 코와 입에서 피를 토하며 온몸의 경락이 반쯤 부서져버렸다. “너... 너 어떻게 이렇게 강한 거지?”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가슴을 움켜잡았고 얼굴에는 놀람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유진우는 분명 독에 중독되었고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런데 어떻게 단순한 한 방으로 나를 이렇게 쉽게 물리친 거지? 우리의 실력 차이가 이렇게 컸던 건가?’ “내가 기습당하기 전에 내 실력을 조사하지 않았나?” 유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입가에는 검은 피가 묻어 있었다. 사철수 몸속의 독은 이미 모두 빠져나갔고 목숨에 지장은 없었다. 유진우 자신은 부상을 입고 독에 중독되었지만 깊은 수련 덕분에 당장 쓰러지지는 않았다. “넌 아무리 강해도 결국 그냥 무도 마스터에 불과하다. 우리는 충분히 널 죽일 수 있어!”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큰 소리로 외쳤다. 호룡각이 파괴된 날, 그곳의 고위 인물들은 대부분 죽임을 당했다. 남은 사람들은 각자 흩어져 싸웠고 사실상 더 이상 조직을 구성할 수 없었다.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는 잘 모르지만 서경 왕부의 음모였고 유진우가 그 모든 일의 주범이라고 알고 있었다. 오늘 그는 유진우가 서경 왕부의 밀사를 만나러 온다는 비밀 정보를 받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복수를 꿈꿨지만 상대가 이토록 강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흥! 만약 내가 그저 평범한 무도 마스터였다면 아마 오래전에 죽었을 거야. 지금 살아있는 게 기적이지.” 유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대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건가?”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눈을 크게 뜨며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유진우가 겨우 20대 중반의 나이라면 이렇게 젊은 나이에 대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빠르고 정확하게 내리쳤다. 전신의 강기를 극한까지 끌어올렸고 뒤에서 기습 공격을 한 탓에 방어할 틈이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유진우가 여전히 사철수를 치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주변 상황을 전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긴 칼을 내리칠 때 유진우는 재빨리 호신 진기를 발동시켜 몸에 방어막을 만들었다. “쾅!”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의 긴 칼이 유진우의 호신 진기를 강하게 가격했다. 그 충격으로 잔잔한 물결처럼 진기의 파장이 퍼져 나갔다. 엄청난 반동에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의 칼은 튕겨져 나가고 그는 몸이 휘청이며 뒤로 물러섰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방금 자신은 전력을 다해 칼을 내리쳤고 심지어 기습 공격이었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유진우는 죽지는 않아도 크게 다쳤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를 보면 전혀 흔들리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자신이 밀려서 뒤로 물러섰다. ‘이 어린놈이 나보다 더 강하다고?’ “윽!” 그때, 치료 중이던 유진우가 갑자기 검은 피를 토했다. 얼굴은 온통 새카맣게 변했다. 방금 전 독기는 너무 강력해서 유진우의 몸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막을 수 없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사철수를 치료하는 데 너무 많은 진기를 소모한 탓이었다. 그로 인해 독소를 억제할 수 없었고 그대로 오장육부에 침투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의 기습에 맞서려고 무리하게 방어를 했고 그로 인한 여러 가지 충격이 겹쳐 결국 피를 토하게 된 것이다. “하하하, 결국 너도 다 죽어가고 있구나!”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유진우가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며 웃음을 터뜨렸다. ‘엄청 강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한 방에 바로 무너지네.’ “이번엔 너의 목숨을 가져가겠다!”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떨어진 칼을 다시 움켜잡고 유진우에게 달려들어 한 번 더 칼을 휘둘렀다. “전하!” 중상을 입
“난 너랑 시간 낭비할 생각 없어! 꺼져!”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분노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는 더 이상 부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맹렬히 공격을 시작했다. 원래 서로 비슷한 수준이던 손도운은 금세 밀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실력은 결국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전에 손도운이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와 팽팽하게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의 뜨거운 혈기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제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손도운의 그 우세는 사라졌고 남은 건 오직 순수한 실력 차이였다. 이제 싸움은 더 이상 간단한 기술이나 혈기 싸움이 아니었다. 실력의 차이가 승패를 가를 수밖에 없었다. “죽어라! 죽어라!”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며 공격을 퍼부었다. 그 공격은 점점 더 강력해지고 격렬해졌다. 손도운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오직 방어할 뿐 반격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3분 내로 손도운은 완전히 패배할 것이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이 모습을 본 유진우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고 앞에 나서려는 순간 갑자기 경계심이 솟구쳤다. 아직 반응하기도 전에 ‘펑!’하는 소리와 함께 발아래에서 검은 안개가 퍼져 나갔다. 유진우는 본능적으로 호신 진기를 발동시켜 방어막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 검은 안개는 마치 영혼처럼 유진우의 호신 진기를 뚫고 그의 몸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더욱 기이한 것은 이 안개가 눈, 귀, 입, 코, 그리고 피부의 모든 모공을 통해 침투해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지?” 유진우는 깜짝 놀라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아무리 많은 것을 봐왔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호신 진기마저 막지 못하는 이런 괴이한 안개는 대체 뭐지?’ 생각할 여유도 없이 유진우는 곧바로 기운을 모아 독을 빼내려 했다. 비록 이 검은 안개가 매우 이상하긴 했지만 그의 실력이라면 그것을 제거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장혁아! 괜찮아? 아무
손도운의 검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빨랐다.게다가 그의 검술은 극히 사납고 위압적이며 전형적인 군무 스타일로 꾸밈이 없고 불필요한 움직임이 없었다.그의 모든 움직임과 검법은 살인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깔끔하고 효과적이면서 매우 폭력적이었다.4대 호법의 진형이 신비롭기는 했지만, 손도운의 빠른 검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그들이 진형을 바꾸려고 할 때마다 손도운은 빈틈을 발견하고 빠른 검으로 돌파했다.한 차례의 교전 끝에 네 사람은 완전히 제압당해 반격할 여지가 없었다.“손 장군님이 이렇게 강한 무도 마스터인 줄 몰랐네요!” 사철수는 조금 놀랐다.“유만수의 근위병이자 밀정단까지 이끄는 자인데 당연히 평범할 리가 없죠.” 유진우는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손도운을 처음 봤을 때부터 그는 예사롭지 않을 거라고 느꼈다.유만수로부터 중임을 받고 연경까지 먼 길을 왔다는 것만으로도 실력이 만만치 않았다.“손 장군님의 나이를 보아하니 겨우 30대에 불과한데 이런 성취를 거둘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위왕 님 곁에는 숨은 인재들이 많네요.”사철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끝났네요.”유진우가 불쑥 말했다.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도운의 공세가 거세졌다.거센 파도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칼날의 기세는 막을 수 없었다.초반부터 기세가 꺾인 4대 호법은 순간적으로 압박을 받아 열수를 버티기도 전에 손도운의 빠른 검에 처져 입과 코로 피를 뿜으며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졌다.“흥! 감히 전하를 해치려고 해? 그전에 내가 든 검이 동의하는지 물어봐!”손도운은 살기가 가득한 아우라를 뿜으며 위풍당당하게 말했다.그가 유진우를 마주했을 때 보여준 겸손함은 온데간데없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렸다.“고수를 만났네.”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손을 들어 계속 공격하려는 4대 호법을 제지했다.“이제 당신 차례야!”손도운은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고 칼끝을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의 얼굴을 향해 겨눴다.“흥! 네가 4명을 이겼다고 해서
그들은 어둠 속을 지니면서 자신을 희생하는 용사들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소중하고 중점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존재였다.“전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손도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전하의 신분이 특수하여 모든 세력이 은밀히 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밀정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쉽게 노출될 수 있었다.“손 장군님, 왕부에 대해 많이 알고 있을 텐데 지금 상황이 어떤지 말씀해 주세요.” 유진우가 다시 물었다.“전하, 지금 상황은...”손도운이 말을 꺼내기 무섭게 갑자기 아래층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그들은 눈길을 주고받으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그들이 어떤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가면을 쓴 암살자 무리가 한꺼번에 달려들었다.암살자들은 날카로운 눈빛과 함께 강력한 아우라를 뿜어냈다.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선두에 선 한 사람은 붉은 옷을 입었고 그 옆에 있는 네 명은 흰옷을 입었고 나머지는 모두 검은색 옷을 입었다.“당신들 누구야?”왕현이 가장 먼저 검을 뽑아 유진우의 앞에 막아섰다.“전하, 먼저 가세요. 제가 뒤따라가겠습니다.”손도운은 살기 어린 눈빛으로 허리에 차고 있던 단검을 천천히 뽑았다.“유장혁! 네가 우리 호룡각을 무너뜨리고 각주를 죽였으니 오늘 피의 대가를 치르게 해줄게!”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분노하며 소리쳤다.“고작 당신들 몇 명만으로 날 죽일 수 있겠어요?”유진우는 조용히 앉아서 차를 천천히 마시며 말했다.전혀 개의치 않는 무덤덤한 표정이었다.“이 오만한 놈아, 오늘 호룡각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 줄게!”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진 쳐! 저놈을 죽여라!”“예!”옆에 있던 흰옷의 암살자 네 명은 아무 말 없이 곧바로 검을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네 사람의 속도가 매우 빨랐고 움직임이 신비로웠으며 그들이 피하고 이동하는 모습은 거의 잔상만 보일 뿐이었다.가장 관건적인 것은 네 사람의 공격과 방어가 매우 잘 조율되어 있었고 진법이 완성되면서 살상력이 배가되었다.“나
“짧게는 반달, 길게는 1년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죠?”유진우의 몸은 경직되고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자신이 늘 유만수의 부작위를 원망했어도 그들은 결국 같은 피가 흐르는 부자였다.유만수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유진우는 저도 모르게 불안해하고 있었다.그의 곁에 남아있는 가족은 몇 명밖에 안 되는데 유만수까지 떠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그 소식 확실한가요?”유진우는 침착해 보이려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만 테이블 밑에 숨어 있던 손을 저도 모르게 꽉 움켜쥐었다.“전하, 이 소식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확실합니다. 어르신께서 제가 전하께 알려드리는 것을 원치 않으시지만, 저는 전하께서 이 사실을 아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손도운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어르신께서 항상 몸이 정정하셨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거예요?”사철수가 물었다.“지난 10년 동안 어르신께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서경을 지키고, 오랑캐의 침략을 막고, 모든 내부 세력도 항상 경계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어르신께서 정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손도운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유만수의 근위병으로서 그는 모든 것을 안중에 두고 있었다.예전의 서경왕은 손가락만 까딱해도 조정과 민간을 뒤흔들 정도로 위엄있고 패기가 넘쳤다.그러나 이제 영웅은 죽어가고 있으며 그의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정말 슬프고 안타까웠다.“휴... 어르신께서 지난 몇 년 동안 정말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셨습니다. 혼자의 힘으로 서경 전체뿐만 아니라 용국의 절반에 가까운 영토도 함께 짊어지셨습니다. 비록 높은 공들을 세웠지만 몸이 너무 많이 상했습니다.”손도운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유만수...또 다른 말은 없었어요?” 유진우는 감정을 억누르며 애써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서경은 전하의 영원한 집이니 전하께서 힘들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언제든지 돌아오셔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손도운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