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럴수록 그녀의 승부욕을 불러일으켰다. 한예슬은 입을 삐죽 내밀고 유진우를 흘겨보며 말했다.“까칠하게 굴지 말아요. 은혜를 갚으려는 것뿐이에요. 이 은혜를 갚지 못한다면, 저는 그게 마음에 걸려서 잠도 제대로 못 잘 거예요.”“그건 수면제를 드시면 되겠네요. 그럼 이만.”유진우는 단 한마디를 던지고는 떠났다.“저기요!”한예슬이 유진우를 쫓아갔다. 그런데 얼마 가지도 못한 채 발목을 삐끗했는지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가슴 앞의 가리개가 찢어져 그녀의 몸체가 드러났다.유진우는 멈칫하고는 겉옷을 벗어 그녀에게 던져줬다.“고마워요!”한예슬은 새빨개진 얼굴로 급히 겉옷을 집어 몸을 감쌌다. 마음속에 한 줄기 감동이 피어났다.“예슬아!”이때 남녀 한 쌍이 달려왔다. 비싼 옷을 걸치고 기백이 남다른 것을 보아 보통 사람은 아닌 듯싶었다.“선배!”그들을 본 한예슬이 금세 정신을 차리고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예슬아! 말도 없이 어디 갔던 거야? 걱정했잖아!”붉은 옷을 입은 여자가 일부러 심각한 표정을 짓고 꾸짖듯 말했다. 검은 옷차림의 남자도 인상을 찌푸리고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예슬아, 머리가 왜 산발이 됐어? 그 옷차림은 또 뭐냐. 무슨 일 있었어?”“선배, 방금 양아치 몇 명을 만났는데, 다행히 이분이 구해주셨어요.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 큰 일 날 뻔했어요!”“응?”검은 옷의 남자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유진우를 훑어보았다.붉은 옷의 여자가 유진우에게 다가가 꾸벅 인사하고 말했다.“정말 감사합니다. 전 벽하파의 심연수입니다. 이쪽은 저희 선배, 심호중이고요. 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유진우입니다.”유진우가 작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상대방이 예의를 차리기에 그도 상대를 존중해야 했다.“그렇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근데 무주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이곳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고영은의 묘 때문에요?”“어떻게 아셨습니까?”“저도 찍은 거예요. 무주에 무림 고수들이 많이 왔다는 소식을
밤 7시.유진우는 황은아와 설연홍을 데리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식당은 몇백 명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큰 규모였다.식당에 들어선 유진우의 눈에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보였다. 관광객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문을 듣고 온 무사들이었다.“유진우 씨! 여기요!”이때 한예슬이 벌떡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유진우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람들을 이끌고 그녀에게 다가갔다.“오셨네요. 어서 앉아요.”심연수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 옆의 심호중은 팔짱을 끼고 거만하게 유진우를 쳐다보다 설연홍과 황은아를 발견하고는 급히 옷매무새를 정리했다.유진우가 간단히 일행을 소개했다.“제 친구들이에요. 이쪽은 설연홍 씨, 이쪽은 황은아 씨. 같이 왔는데, 괜찮죠?”“당연하죠, 사람이 많으면 힘도 커지잖아요. 모두 앉아요.”심연수가 옅게 웃으며 손짓했다.“감사합니다.”유진우가 작게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자 심연수 일행을 제외하고도 낯선 얼굴들이 몇몇 보였다.옷차림을 봐서는 모두 벽하파 사람 같았다. 가장 약한 사람도 후천 대성이었다. 일반 무사 중에서는 뛰어난 실력을 갖췄지만, 각 파벌을 상대해 보물을 차지하기엔 조금 부족했다.심연수가 먼저 말을 걸었다.“유진우 씨, 이번 일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셨나요?”“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요?”“블랙 숲에는 맹수들과 독 있는 동물들이 가득해요. 들어가려면 꼭 해독제, 치료제, 집기단 등을 챙겨야 해요. 그 외에도 나침반, 모기향, 특제 텐트 등도 중요한 물건이죠. 꼭 필요할 거예요.”“네? 그런 것도 챙겨야 해요? 저흰 아무것도 안 챙겼어요.”황은아가 어리둥절해졌다. 그들은 모두 급하게 오느라 일상용품만 챙겨왔다.“보물 찾으러 온 사람 맞아요? 휴가 온 거 아니에요?”심연수가 웃으며 농담하고는 계속해 말했다.“괜찮아요. 저희가 이미 다 준비해 놓았으니, 물건이 모자랄 일은 없어요.”“정말요? 너무 잘됐어요! 감사합니다!”황은아가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심연수는 심각하
“물론 모두 고수들이지만 저희 벽하파에게는 위협적이지 않아요. 정말 위협적인 건 큰 규모의 파벌과 최고급 고수에요. 현무문, 대비사, 응양종, 진혼파 등 파벌이요. 맞다, 예의주시해야 할 사람이 한 명 더 있어요!”“그게 누군데요?”“최근에 자양지존과 결투한 소년 마스터요!”“네?”황은아가 어리둥절해졌다.‘그거 스승님 아닌가?’그녀는 묘한 표정으로 유진우를 쳐다보았다. 유진우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이번엔 조용히 행동해야지, 눈에 띄었다가는 누군가의 계략에 휘말릴 수도 있었다.설연홍이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그 소년 마스터 본 적 있어요?”“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당연히 본 적 없죠. 하지만 소문은 많이 들었어요. 얼굴도 잘생겼고, 의리도 있고. 가장 중요한 건 20대에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는 거예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고, 엄청나게 많은 여자 무사의 이상형이라고요.”심연수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수려한 외모에 최고의 실력을 갖춘 소년 마스터를 누가 싫어하겠는가?“하하, 그분을 상당히 좋아하시나 봐요.”설연홍이 유진우를 흘깃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유진우는 못 들은 척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안 좋아할 사람이 있겠어요?”심연수가 쿨하게 인정했다. 어차피 만나지 못할 사람인데, 조금 언급해도 괜찮을 것이었다.“흥! 그 사람이 대단하긴 하지만 나도 나쁘지 않아. 10년만 있으면 내가 그 사람을 이겨버릴 거야!”심호중이 차갑게 말했다. 제 동생이 다른 남자를 칭찬하는 말을 듣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정말 되겠어요?”황은아가 심호중을 훑어보며 의심스럽게 말했다.“당연하죠. 저도 무주 무림계에선 알아주는 사람입니다. 절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맞아요! 저희 선배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한예슬이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저희 선배는 무주 10대 호걸 중 3위에요. 지금은 본투비 레벨 고수시고, 모두가 인정하는 무도 천재에요!”“이 식당 안에 있는 무사들과 10대1로 싸워도 지지 않을 거
“응?”심호중은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한창 잘난 척하고 있었는데 막을 새도 없이 갑자기 술병 하나가 날아왔다.그는 맞은 자리를 만져보았다. 피가 흥건했다. 진기의 보호가 없는 한 그는 일반인보다 조금 튼튼할 뿐이었다.“젠장! 누구야?”심호중이 크게 외쳤다. 벽하파 제자들도 이에 동조하며 외쳤다.“감히 선배님을 공격하다니, 어떤 놈이야?”“나다.”이때 잘 차려입고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무사 두 명을 데리고 천천히 걸어왔다.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발걸음이었다.“자식! 내가 누군 줄 알아? 감히 날 급습해?”“음? 그럼 한 수 배워야겠네. 네가 누군데?”선글라스 낀 남자가 놀림조로 말했다.“잘 들어! 난 무주 10대 호걸, 핸섬 리틀 드래곤, 심호중이야!”“무주 10대 호걸? 핸섬 리틀 드래곤? 얼씨구, 너무 멋있다. 정말 무섭군.”남자가 심호중을 조롱했다. 뒤에 선 무사 두 명도 크게 웃기 시작했다.“네가 감히!”“간덩이가 부었군!”벽하파 제자들이 칼을 뽑아 들었다.“감히 날 모욕해? 결투다!”심호중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는데, 결투라도 하지 않으면 이제 이 바닥에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결투? 하하... 감히 나와 결투한다고? 내가 누군 줄 알아?”“그건 내 알 바 아니야! 감히 날 급습해? 오늘이 네놈 제삿날이 될 거야!”심호중은 크게 외치고는 칼을 내리찍으려 했다.“난 구정파 장문의 아들, 엄홍수다!”남자가 한 마디를 던졌다. 그 말을 들은 심호중이 휘두르려던 칼을 멈췄다.“구정파? 엄홍수?”심호중의 눈에 두려움이 들어찼다. 상대방의 실력은 무섭지 않았지만, 그 신분이 무서웠다.엄홍수는 별 볼 일 없는 실력을 갖췄지만, 좋은 아버지를두었다. 그의 아버지는 구정파 장문, 무주의 제일가는 무사, 엄건호였다. 그는 최고의 실력과 지위를 가졌다.엄건호의 이름을 들은 심호중이 공격을 멈췄다. 아무리 스승이라지만 두려운 존재였다. 이 칼
“그래, 하지만 조건이 있어.”“어떤 조건이요?”“너랑 다른 여자 둘이 나랑 술이나 한 번 먹자고. 접대 잘 하면 오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엄홍수가 섬뜩하게 웃었다. 이런 여자는 평소 만나보기 어려웠다. 그런데 오늘 세 명씩이나 나타나다니, 하늘이 도왔다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이 같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아...”심연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바닥에 있은 지가 몇 년인데, 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술자리에 응했다가는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이었다.“왜? 싫어? 난 거절당하는 걸 제일 싫어해.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아가씨! 우리 도련님과 술자리를 가지는 건 돈 주고도 못 하는 거야. 영광으로 생각해!”무사 한 명이 위협적으로 말했다.“네, 저와 함께 먹어요. 하지만 여기 이분들은 그냥 놓아주시는 게...”망설이던 심연수가 결국 타협했다. 하지만 황은아와 설연홍을 끌어들이는 건 싫었다.엄홍수가 기분 나쁜 듯 말했다.“난 세 명이라고 했어.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안 돼. 오늘 밤, 서비스 잘 하는 게 좋을 거야!”“제발 그만하세요!”황은아가 참다못해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왜? 이러면 안 돼? 그럼 오늘은 너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 정말 기대되는걸!”엄홍수는 혀를 날름거리며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미친 놈!”황은아가 술이 든 술잔을 집어 엄홍수의 얼굴을 향해 뿌렸다.“미친 년, 감히 나한테 술을 뿌려? 오늘 제대로 혼내줄 거야!”엄홈수가 황은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런데 누군가 그의 손을 잡아 저지했다.“3초 줄게, 꺼져.”유진우가 황은아의 앞을 막아서고는 차갑게 말했다.엄홍수의 표정이 굳어졌다.“응? 내가 누군지 알기나 해?”무주시에서는 누구도 엄홍수의 심기를 거스르지 못했다.“그건 내 알 바 아니고, 3초 안으로 꺼지지 않으면 다리를 부러뜨려버릴 거야.”유진우가 차갑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술렁거렸다.“헐! 저 사람 누구야? 감히 도련님과 대치해?
모두 경악했다. 유진우가 정말 엄홍수를 때릴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치 못했다. 상대는 엄홍수였다! 무주 최고의 무림고수 엄건호의 아들! 마왕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사람!그런 사람을 날려버리다니, 죽고 싶은 건가?“미쳤어? 구정파 도련님도 때리는 거야?”심호중이 길길이 날뛰며 소리쳤다. 방금의 수치스러움도 참았는데, 유진우 이 자식이 뺨을 때려버렸다. 이제 유진우뿐만 아니라 벽하파 사람들도 봉변당할 것이었다.“망했다!”심연수의 표정이 변했다. 그렇게 경고했는데도 참기는커녕 직격타를 날렸다. 구정파가 보복한다면 모두 참변을 당할 것이다.“무엄하다! 감히 도련님께 손을 대? 죽여버릴 거야!”얼마 뒤 구정파 무사들이 칼을 뽑아 유진우에게 달려들었다.“제가 할게요!”황은아가 자신이 가지고 온 금속 구 막대기를 들고 무사들에게 맞섰다. 그녀의 재능과 유진우의 교육 덕에 황은아는 이미 후천 대성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이 타법은 그 누구와도 대적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숙련도를 자랑했다.펑, 펑, 펑...얼마 뒤 황은아는 구정파 무사 두 명을 모두 때려눕혔다. 그들 또한 엄홍수의 곁에서 입만 나불댈 뿐 별 실력은 없었다.“이까짓 실력으로도 건방지게 굴었던 거야? 맞아도 싸!”황은아는 금속 구 막대기를 어깨에 걸친 채 코를 긁적이며 이소룡을 따라 했다. 그 얼굴에는 약간의 새침함마저 묻어있었다.“미친 거 아니야? 구정파를 상대로 이래도 되는 거야?”“엄 장문님이 오신 뒤엔 어떻게 하나 보자!”무사들 사이에서 의논이 분분했다. 무주에서 구정파를 상대로 싸움을 벌이다니, 죽고 싶은 건가?“가... 감히 날 때려?”엄홍수는 겨우 기어 일어났다. 얼굴은 퉁퉁 부었고 코는 비뚤어졌으며, 입을 벌리자, 치아가 후드득 떨어졌다.“미친놈! 감히 날 때려? 너희 다 죽었어!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야!”정신을 차린 엄홍수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짝!유진우가 다시 한번 엄홍수의 뺨을 때리며 조곤조곤 말했다.“이건 상황 파악도 하지
엄홍수는 유진우에게 맞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엄홍수는 고귀한 신분이었다. 누구도 감히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이 자식 미친 건가? 어떻게 감히?’“멈춰요! 당장 멈춰요!”심연수가 급히 유진우를 제지했다. 하지만 엄홍수는 이미 피떡이 되어있었다.“유진우 씨, 큰 사고 쳤어요!”심연수는 한숨을 쉬고는 급히 엄홍수를 부축해 약을 먹이고 혈자리를 누르며 그를 깨우려 했다.엄홍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유진우뿐만 아니라 벽하파 전체가 엄건호의 미친 듯한 보복을 받게 될 것이다.“애초에 당신과 같이 앉지 말았어야 했어, 우리도 당하게 생겼잖아!”심호중은 화가 나기도 했고, 당황스럽기도 했다.‘젠장! 왜 이런 미친놈을 만났지? 엄홍수의 지위는 신경 쓰지도 않고, 구정파의 힘도 무시하고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정말 미쳤어!’“유진우 씨! 곧 보복당할 거예요. 어서 도망치세요, 어서요!”한예슬은 긴장한 표정으로 유진우의 팔을 잡고 밖으로 끌었다. 하지만 유진우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누가 내 아들을 때렸어?”이때 문밖에서 호통 소리가 들렸다. 이어 풍채 있는 중년 남자가 무사 한 무리를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걸어들어왔다. 바로 구정파 장문, 무주 최고의 무사 엄건호였다.“망했다! 엄 장문님이 오셨어!”“엄 장문님이 화내시면 무주에서 아무도 대적할 사람이 없을 거야!”“흥! 도련님을 때리다니, 이제 어떡하나 보자!”엄건호의 출현에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구경꾼들은 불똥이 튈세라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들은 고소하다는 눈빛, 곧 죽을 사람을 보는 눈빛으로 유진우를 쳐다보았다.“망했다! 이제 도망치지도 못해...”한예슬이 절망했다. 유진우를 위해 마지막 기회를 만들어주려 했지만 이제 늦었다.“어휴... 할 수 있는 게 없네.”심연수가 동정 어린 눈빛으로 한숨을 쉬었다. 엄건호가 직접 온 이상 유진우는 이제 죽은 목숨이었다.“불행을 몰고 오는구먼!”심호중이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유진우가 죽는 건 그렇다
“일이 복잡하게 됐네.”차가운 표정의 유진우를 본 엄건호의 등에 식은땀이 돋았다.‘운이 지지리도 없지, 유진우를 마주치다니. 오늘 맞아 죽진 않겠지?’“아빠, 뭐 해요? 빨리 때려요! 때려죽여요! 달걀로 바위를 쳤다는 걸 보여줘요!”“닥쳐!”엄건호는 호통을 치고는 엄홍수의 뺨을 내리쳤다.짝!얼마 남지도 않은 치아가 튕겨 나오고, 안 그래도 부어있던 얼굴은 더욱 못 볼 꼴이 되었다.“아빠? 절... 절 왜 때려요?”엄홍수가 어리둥절해졌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어릴 적부터 그는 어화둥둥 자라왔다. 꾸중 한 번 하지 않던 아빠였는데, 오늘은 모든 사람 앞에서 그의 뺨을 때렸다.‘웬일이지? 미쳤나?’“왜 때리면 안 되는데? 네가 맞을 짓을 한 거잖아. 내 지위를 턱 대고 밖에서 함부로 싸다니며 내 명성을 망치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오늘 한 번 제대로 교육해야겠다!”엄건호는 욕을 내뱉으며 다시 주먹을 휘둘러 엄홍수를 땅에 때려눕혔다. 그러고도 화가 풀리지 않는지 이젠 발길질까지 하기 시작했다. 원수지간이기라도 한 듯 엄건호의 행동에는 자비가 없었다. 엄홍수가 연신 비명을 질렀다.“응?”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경악했다. 그들의 생각대로라면 엄건호는 엄홍수의 편에 서 유진우를 벌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자기 아들을 때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이렇게나 세게.“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무슨 일이지? 약을 잘못 먹었나?”“글쎄? 아들 사랑으로 소문나신 분인데, 오늘은 웬일이지?”“너무 잔인해! 이건 훈육이 아니라 화풀이잖아!”“...”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며 속닥거렸다. 놀라움, 경악, 약간의 연민이 들어있는 대화였다.유진우에게 그렇게 맞은 것도 모자라 이젠 자기 아빠에게까지 맞다니, 너무 처참했다.이상한 점은, 엄건호는 평소 아들 사랑으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누구라도 그의 아들을 건드리면 손발을 자르는 건 기본이고 당장 죽여버리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아들을 호되게 혼내고 있었다.
두 손이 맞붙으며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유진우는 몸을 한 번만 움찔했을 뿐인데 모든 힘을 가볍게 막아냈다. 반면,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유진우의 한 손에 의해 수십 미터나 날아가며 땅에 떨어졌고 코와 입에서 피를 토하며 온몸의 경락이 반쯤 부서져버렸다. “너... 너 어떻게 이렇게 강한 거지?”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가슴을 움켜잡았고 얼굴에는 놀람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유진우는 분명 독에 중독되었고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런데 어떻게 단순한 한 방으로 나를 이렇게 쉽게 물리친 거지? 우리의 실력 차이가 이렇게 컸던 건가?’ “내가 기습당하기 전에 내 실력을 조사하지 않았나?” 유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입가에는 검은 피가 묻어 있었다. 사철수 몸속의 독은 이미 모두 빠져나갔고 목숨에 지장은 없었다. 유진우 자신은 부상을 입고 독에 중독되었지만 깊은 수련 덕분에 당장 쓰러지지는 않았다. “넌 아무리 강해도 결국 그냥 무도 마스터에 불과하다. 우리는 충분히 널 죽일 수 있어!”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큰 소리로 외쳤다. 호룡각이 파괴된 날, 그곳의 고위 인물들은 대부분 죽임을 당했다. 남은 사람들은 각자 흩어져 싸웠고 사실상 더 이상 조직을 구성할 수 없었다.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는 잘 모르지만 서경 왕부의 음모였고 유진우가 그 모든 일의 주범이라고 알고 있었다. 오늘 그는 유진우가 서경 왕부의 밀사를 만나러 온다는 비밀 정보를 받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복수를 꿈꿨지만 상대가 이토록 강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흥! 만약 내가 그저 평범한 무도 마스터였다면 아마 오래전에 죽었을 거야. 지금 살아있는 게 기적이지.” 유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대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건가?”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눈을 크게 뜨며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유진우가 겨우 20대 중반의 나이라면 이렇게 젊은 나이에 대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빠르고 정확하게 내리쳤다. 전신의 강기를 극한까지 끌어올렸고 뒤에서 기습 공격을 한 탓에 방어할 틈이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유진우가 여전히 사철수를 치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주변 상황을 전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긴 칼을 내리칠 때 유진우는 재빨리 호신 진기를 발동시켜 몸에 방어막을 만들었다. “쾅!”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의 긴 칼이 유진우의 호신 진기를 강하게 가격했다. 그 충격으로 잔잔한 물결처럼 진기의 파장이 퍼져 나갔다. 엄청난 반동에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의 칼은 튕겨져 나가고 그는 몸이 휘청이며 뒤로 물러섰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방금 자신은 전력을 다해 칼을 내리쳤고 심지어 기습 공격이었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유진우는 죽지는 않아도 크게 다쳤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를 보면 전혀 흔들리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자신이 밀려서 뒤로 물러섰다. ‘이 어린놈이 나보다 더 강하다고?’ “윽!” 그때, 치료 중이던 유진우가 갑자기 검은 피를 토했다. 얼굴은 온통 새카맣게 변했다. 방금 전 독기는 너무 강력해서 유진우의 몸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막을 수 없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사철수를 치료하는 데 너무 많은 진기를 소모한 탓이었다. 그로 인해 독소를 억제할 수 없었고 그대로 오장육부에 침투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의 기습에 맞서려고 무리하게 방어를 했고 그로 인한 여러 가지 충격이 겹쳐 결국 피를 토하게 된 것이다. “하하하, 결국 너도 다 죽어가고 있구나!”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유진우가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며 웃음을 터뜨렸다. ‘엄청 강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한 방에 바로 무너지네.’ “이번엔 너의 목숨을 가져가겠다!”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떨어진 칼을 다시 움켜잡고 유진우에게 달려들어 한 번 더 칼을 휘둘렀다. “전하!” 중상을 입
“난 너랑 시간 낭비할 생각 없어! 꺼져!”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분노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는 더 이상 부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맹렬히 공격을 시작했다. 원래 서로 비슷한 수준이던 손도운은 금세 밀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실력은 결국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전에 손도운이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와 팽팽하게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의 뜨거운 혈기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제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손도운의 그 우세는 사라졌고 남은 건 오직 순수한 실력 차이였다. 이제 싸움은 더 이상 간단한 기술이나 혈기 싸움이 아니었다. 실력의 차이가 승패를 가를 수밖에 없었다. “죽어라! 죽어라!”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며 공격을 퍼부었다. 그 공격은 점점 더 강력해지고 격렬해졌다. 손도운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오직 방어할 뿐 반격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3분 내로 손도운은 완전히 패배할 것이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이 모습을 본 유진우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고 앞에 나서려는 순간 갑자기 경계심이 솟구쳤다. 아직 반응하기도 전에 ‘펑!’하는 소리와 함께 발아래에서 검은 안개가 퍼져 나갔다. 유진우는 본능적으로 호신 진기를 발동시켜 방어막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 검은 안개는 마치 영혼처럼 유진우의 호신 진기를 뚫고 그의 몸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더욱 기이한 것은 이 안개가 눈, 귀, 입, 코, 그리고 피부의 모든 모공을 통해 침투해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지?” 유진우는 깜짝 놀라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아무리 많은 것을 봐왔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호신 진기마저 막지 못하는 이런 괴이한 안개는 대체 뭐지?’ 생각할 여유도 없이 유진우는 곧바로 기운을 모아 독을 빼내려 했다. 비록 이 검은 안개가 매우 이상하긴 했지만 그의 실력이라면 그것을 제거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장혁아! 괜찮아? 아무
손도운의 검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빨랐다.게다가 그의 검술은 극히 사납고 위압적이며 전형적인 군무 스타일로 꾸밈이 없고 불필요한 움직임이 없었다.그의 모든 움직임과 검법은 살인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깔끔하고 효과적이면서 매우 폭력적이었다.4대 호법의 진형이 신비롭기는 했지만, 손도운의 빠른 검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그들이 진형을 바꾸려고 할 때마다 손도운은 빈틈을 발견하고 빠른 검으로 돌파했다.한 차례의 교전 끝에 네 사람은 완전히 제압당해 반격할 여지가 없었다.“손 장군님이 이렇게 강한 무도 마스터인 줄 몰랐네요!” 사철수는 조금 놀랐다.“유만수의 근위병이자 밀정단까지 이끄는 자인데 당연히 평범할 리가 없죠.” 유진우는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손도운을 처음 봤을 때부터 그는 예사롭지 않을 거라고 느꼈다.유만수로부터 중임을 받고 연경까지 먼 길을 왔다는 것만으로도 실력이 만만치 않았다.“손 장군님의 나이를 보아하니 겨우 30대에 불과한데 이런 성취를 거둘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위왕 님 곁에는 숨은 인재들이 많네요.”사철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끝났네요.”유진우가 불쑥 말했다.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도운의 공세가 거세졌다.거센 파도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칼날의 기세는 막을 수 없었다.초반부터 기세가 꺾인 4대 호법은 순간적으로 압박을 받아 열수를 버티기도 전에 손도운의 빠른 검에 처져 입과 코로 피를 뿜으며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졌다.“흥! 감히 전하를 해치려고 해? 그전에 내가 든 검이 동의하는지 물어봐!”손도운은 살기가 가득한 아우라를 뿜으며 위풍당당하게 말했다.그가 유진우를 마주했을 때 보여준 겸손함은 온데간데없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렸다.“고수를 만났네.”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는 손을 들어 계속 공격하려는 4대 호법을 제지했다.“이제 당신 차례야!”손도운은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고 칼끝을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의 얼굴을 향해 겨눴다.“흥! 네가 4명을 이겼다고 해서
그들은 어둠 속을 지니면서 자신을 희생하는 용사들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소중하고 중점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존재였다.“전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손도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전하의 신분이 특수하여 모든 세력이 은밀히 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밀정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쉽게 노출될 수 있었다.“손 장군님, 왕부에 대해 많이 알고 있을 텐데 지금 상황이 어떤지 말씀해 주세요.” 유진우가 다시 물었다.“전하, 지금 상황은...”손도운이 말을 꺼내기 무섭게 갑자기 아래층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그들은 눈길을 주고받으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그들이 어떤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가면을 쓴 암살자 무리가 한꺼번에 달려들었다.암살자들은 날카로운 눈빛과 함께 강력한 아우라를 뿜어냈다.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선두에 선 한 사람은 붉은 옷을 입었고 그 옆에 있는 네 명은 흰옷을 입었고 나머지는 모두 검은색 옷을 입었다.“당신들 누구야?”왕현이 가장 먼저 검을 뽑아 유진우의 앞에 막아섰다.“전하, 먼저 가세요. 제가 뒤따라가겠습니다.”손도운은 살기 어린 눈빛으로 허리에 차고 있던 단검을 천천히 뽑았다.“유장혁! 네가 우리 호룡각을 무너뜨리고 각주를 죽였으니 오늘 피의 대가를 치르게 해줄게!”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분노하며 소리쳤다.“고작 당신들 몇 명만으로 날 죽일 수 있겠어요?”유진우는 조용히 앉아서 차를 천천히 마시며 말했다.전혀 개의치 않는 무덤덤한 표정이었다.“이 오만한 놈아, 오늘 호룡각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 줄게!”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진 쳐! 저놈을 죽여라!”“예!”옆에 있던 흰옷의 암살자 네 명은 아무 말 없이 곧바로 검을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네 사람의 속도가 매우 빨랐고 움직임이 신비로웠으며 그들이 피하고 이동하는 모습은 거의 잔상만 보일 뿐이었다.가장 관건적인 것은 네 사람의 공격과 방어가 매우 잘 조율되어 있었고 진법이 완성되면서 살상력이 배가되었다.“나
“짧게는 반달, 길게는 1년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죠?”유진우의 몸은 경직되고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자신이 늘 유만수의 부작위를 원망했어도 그들은 결국 같은 피가 흐르는 부자였다.유만수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유진우는 저도 모르게 불안해하고 있었다.그의 곁에 남아있는 가족은 몇 명밖에 안 되는데 유만수까지 떠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그 소식 확실한가요?”유진우는 침착해 보이려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만 테이블 밑에 숨어 있던 손을 저도 모르게 꽉 움켜쥐었다.“전하, 이 소식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확실합니다. 어르신께서 제가 전하께 알려드리는 것을 원치 않으시지만, 저는 전하께서 이 사실을 아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손도운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어르신께서 항상 몸이 정정하셨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거예요?”사철수가 물었다.“지난 10년 동안 어르신께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서경을 지키고, 오랑캐의 침략을 막고, 모든 내부 세력도 항상 경계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어르신께서 정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손도운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유만수의 근위병으로서 그는 모든 것을 안중에 두고 있었다.예전의 서경왕은 손가락만 까딱해도 조정과 민간을 뒤흔들 정도로 위엄있고 패기가 넘쳤다.그러나 이제 영웅은 죽어가고 있으며 그의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정말 슬프고 안타까웠다.“휴... 어르신께서 지난 몇 년 동안 정말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셨습니다. 혼자의 힘으로 서경 전체뿐만 아니라 용국의 절반에 가까운 영토도 함께 짊어지셨습니다. 비록 높은 공들을 세웠지만 몸이 너무 많이 상했습니다.”손도운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유만수...또 다른 말은 없었어요?” 유진우는 감정을 억누르며 애써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서경은 전하의 영원한 집이니 전하께서 힘들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언제든지 돌아오셔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손도운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밤의 제왕 빌딩은 예전의 북적거림과는 달리 조금 한산해 보였다.특히 2층은 예약석이라 외부인 출입이 불가능했다.유진우는 자신의 신분을 밝힌 후, 왕현과 사철수를 데리고 계단을 올랐다.이때 2층 VIP 코너에는 단 한 사람만 앉아 있었다.그 남자는 검은 옷에 평범한 외모, 평범한 몸매와 평범한 기질을 가졌고 아무런 특징이 없어 보이는 매우 평범한 일반인으로 보였다.“전하, 소인 인사드리옵니다.” 유진우가 나타나자 그 남자는 즉시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넸다.“누구시죠?”유진우는 담담히 물었다.“소인의 이름은 손도운이고 어르신의 근위병입니다. 어르신께서 전하가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저를 보내 전하를 도우라고 하셨습니다.”“근위병이라고요?”유진우는 손도운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다시 물었다. “당신의 신분을 어떻게 증명하죠?”그는 세상 물정 모르는 풋내기가 아니었다. 명확한 증명이 필요했고 상대방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이건 어르신께서 소인한테 주신 영패입니다. 한번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손도운은 주머니에서 영패를 꺼내 양손으로 건넸다.유진우는 영패를 받아 자세하게 살펴보고 마침내 경계심을 풀었다.확실히 서경왕부의 영패였고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근위병만이 얻을 자격이 있었다.영패로 상대방의 신분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손 장군님, 반가워요. 예를 갖추지 않아도 되니까 얼른 일어나세요.”유진우는 영패를 돌려주는 동시에 손도운을 일으켜 세웠다.“전하, 감사합니다.”손도운은 기쁘면서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손 장군님, 이분은 한때 중군 부장이었던 사철수 장군님이에요.”유진우는 사철수를 가리키며 말했다.“사 장군님, 사 장군님의 명성을 오래전부터 많이 들었는데 오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이에요.”“손 장군님, 천만에요. 난 이제 늙었어요. 앞으로는 그쪽 젊은이들의 세상이에요.”사철수는 웃으며 말했다.“이분은 제 친구 왕현이에요.” 유진우가 왕현을 가리키며 말했다.“왕현 형
식사를 마친 유진우는 이만 자리를 뜨기로 했다.이틀 밤낮을 잠만 자다 보니 아직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얼른 돌아가야 했다.차에 오르기 전 이청성은 유진우를 불러 세웠다.“유진우 씨, 내가 어젯밤에 점쳐봤는데 아직 당신의 위기가 완전히 해소된 거 아니에요. 앞으로 한동안은 반드시 조심해야 해요.”“명심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넨 후 곧 차에 올라탔다.차에 탄 유진우는 먼저 조선미한테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한 다음 조무진과 조홍연 두 사람한테 연락해 자초지종을 간략하게 설명했다.그리고 왕위 계승 전이 시작되면 반드시 조정 전체에 재앙이 닥치게 될 것이고 왕족인 조씨 가문 역시 벗어날 수 없으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명확히 알렸다.한 시간 후 유진우는 별장에 도착했다.같은 시각 별장에서 윤아는 요리하고 사철수와 유공권은 서예를 연구했으며 왕현은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누구야?”유진우가 문을 여는 순간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왕현이었다.“저예요.”유진우는 즉시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진우 형님, 드디어 돌아왔네요.”왕현이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이틀 동안 어디에 있었어요? 왜 아무 연락이 없었어요?”유진우는 웃으면서 대답했다.“급한 일이 생겨서 처리하느라 이틀이나 걸렸어요.”유진우는 차마 자신이 이틀 동안 잠을 잤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진우 형님, 전에 주신 서신은 서경으로 돌려보냈어요.”왕현이 말했다.“그래요.”유진우는 무관심한 반응을 보이며 말을 돌렸다.“아참, 아저씨랑 유명의는 어때요?”“그들은 괜찮아요.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요 며칠 동안 경계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어요.”왕현이 말했다.“다행이네요. 왕현 씨 수고가 많아요.”“전하 돌아오셨어요?”이때 사철수와 유공권이 서재에서 나왔다.두 사람은 줄곧 집에만 있다 보니 지난 이틀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고 그다지 걱정될 것도 없었다.“아저씨, 안색이 점점
“뭐라고요?”이청성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늦게 반응했다.그녀는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사실 저는 공주님께서 황제가 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아마 폐하도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그래서 만약 그런 생각이 있으시다면 서경왕부를 대표해서 전폭적으로 지원할 수 있어요.”유진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유장혁 씨! 농담하지 마세요. 하나도 안 웃겨요!”“저는 그냥 여자일 뿐이고 그런 자격이 없어요. 황궁 내에서도 저를 받아들일 수 없을 거예요.”“여자라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죠?”유진우는 진지하게 말했다.“누가 여자면 황제가 될 수 없다고 했어요? 신종여왕도 여성이었지만 황제 자리에 올랐잖아요. 지금 공주님은 신종여왕보다 조금 젊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성장할 수 있을 거예요. 노력만 한다면 분명히 해낼 수 있어요.”“유장혁 씨가 믿어줘서 고맙지만, 저는 그런 생각 전혀 없어요. 그러니까 그런 비현실적인 생각을 버려줘요.”이청성은 단호하게 거절했다.지금까지 단 한 명의 여황제가 있었고 그 여황제는 좋은 기운과 기회가 따랐기에 작은 희망이란 가능성이 있었다.이청성은 그런 전설적인 인물과 자신을 비교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느꼈다.게다가 만약 자신이 권력을 쥐고자 한다면 세상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그때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그런 상황은 이청성이 가장 원하지 않는 그림이었다.“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됐어요. 저는 그냥 한 번 제안했을 뿐이에요. 물론 공주님께서 마음을 바꾸시면 언제든지 말해 주세요.”유진우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이성민이 말했듯이 이청성은 왕족 중에서 황제 자리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었다.하지만 이청성은 여성이다.이 길을 걷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임은 분명하다.그뿐만 아니라 세 명의 황자가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고 궁 안의 신하들 또한 이청성이 황제가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이청성 자신이다.이청성이 그런 마음가짐을 가졌다면 유진우는 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