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고영은이야? 잘못 안 거 아니고?”유진우는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홍청하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엄청난 힘에 홍청하는 팔이 저릿하여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직접 봤어. 절대 거짓말이 아니야.”홍청하는 아픔을 가까스로 참으며 진지하게 대답했다.“묘 어디 있어? 얼른 말해!”유진우는 무척이나 급해 보였다. 마치 상대를 잡아먹을 듯한 눈빛이었다.그렇지 않아도 인여궁을 통하여 고영은에 관한 정보를 알아보려 했었는데 이렇게나 빨리 찾을 줄은 몰랐다.“아프다고!”홍청하는 유진우의 손을 뿌리치려 발버둥 치면서 눈살을 찌푸렸다.“묘의 정확한 위치는 나도 잘 몰라. 사부는 지도를 연구하겠다면서 날 일부러 내쫓더라고. 어렴풋하게 블랙 숲이라는 세 글자를 보았어.”“블랙 숲?”유진우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그게 어딘데?”“이미 알아봤는데 블랙 숲은 무주 지역에 있더라고. 늪이 가득한 아주 위험한 자연림이야. 지세가 험하고 환경도 열악해서 인적이 아주 드물어. 아직 미개발 지역이야.”홍청하가 설명했다.“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라 정확한 위치야.”유진우가 서늘하게 말했다. 숲이라고 불릴 정도라면 면적이 아주 넓을 것이다. 지도 없이 숨은 묘를 찾는다는 건 바다에 빠진 바늘을 찾는 격이었다.“내가 알아낸 건 잠시 이것뿐이야.”홍청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이었다.“하지만 걱정하지 마. 백수정 옆에서 정보를 캐낼 거야. 뭔가 알아낸 게 있다면 바로 연락할게. 그런데 그전에 조건이 있어.”“무슨 조건?”유진우가 되물었다.“보물을 찾으면 나한테 절반을 줘.”홍청하가 대놓고 요구했다. 유진우를 찾은 건 강한 조력자가 필요해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진우의 인품도 믿을만하니까.“그래.”유진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흔쾌히 대답했다. 보물인지 뭔지 그는 하나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검은 꽃무릇만 손에 넣으면 되었다.“좋아! 약속 지켜!”홍청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유진우가 흥정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고영은의 묘가 다시 나타났고 그 위치가 바로 무주의 블랙 숲이라는 정보였다. 이 정보가 알려지자마자 곳곳의 수많은 무사들이 무주로 몰려들어 숟가락을 끼얹었다. 어쨌거나 이런 색다른 경험은 흔히 있는 건 아니니까.그 시각, 무주로 향하는 한 승합차 안.유진우는 유리창 밖의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황은아가 옆에서 쉴새 없이 재잘거렸다.“아저씨, 약신왕 선배님께서 몸조심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어요. 약 제때 먹고 절대 진기를 써서는 안 된댔어요. 그렇지 않으면 내장을 심하게 다친대요. 그리고 고영은의 일을 누가 발설했는지 지금 엄청 많은 사람이 보물을 찾겠다고 혈안이 되어있어요. 우리 이번에 경쟁자가 아주 많아요. 아 참, 나쁜 소식도 있어요. 어젯밤에 어떤 고수가 무도 연맹 감옥에 쳐들어가서 황보춘을 데려갔대요. 무도 연맹에서 많은 사람을 보내 쫓았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대요.”황은아는 들어온 소식을 보면서 유진우에게 보고했다. 멍하니 듣고만 있던 유진우가 드디어 반응을 보였다.“황보춘이 도망쳤다고? 대체 누가 그런 재주가 있어서 감히 무도 연맹 감옥에서 사람을 데려가?”“장 어르신이 보낸 정보에 따르면 영살문의 짓인 것 같아요. 무도 연맹이 잠깐 방심한 틈에 많은 이가 죽었대요.”황은아가 설명했다.“만약 미야모토 코지로가 직접 나섰다면 가능성 있어. 하지만 영살문이 고작 황보춘 때문에 이런 위험을 무릅쓸 줄은 몰랐네.”유진우가 실눈을 뜨고 말했다.“명의님, 황보용명이 죽은 그 순간부터 전 자꾸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요.”그때 옆에 앉아있던 설연홍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황은아의 경호원으로서 당연히 동행해야 했다.“뭐가 이상하다는 거죠?”유진우가 미간을 찌푸렸다.“모르겠어요. 그냥 누군가에게 끌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설연홍은 다리를 꼬고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지금은 그런 거 생각하지 맙시다. 일단 검은 꽃무릇부터 찾고 봐요.”유진우는 더는 따지기 귀찮아 두 눈을 감았다.점심쯤 승
“멸치?”갑작스러운 소리에 흉터남이 화들짝 놀랐다. 고개를 돌려 보니 평범한 옷차림에 서늘한 표정의 남자가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인마, 넌 또 어디서 튀어나온 놈이야? 경고하는데 오지랖 부리지 마!”흉터남이 잔뜩 굳은 얼굴로 째려보았다.“살려주세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여인이 발버둥 치며 울부짖었다. 공포에 질린 얼굴에 한 가닥의 희망이 생겼다. 오늘 몸이 더럽혀질 것 같다는 생각에 거의 절망에 빠졌지만 지나가던 누군가가 흔쾌히 나서서 도와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난 오지랖 부리겠다고 한 적 없어. 하던 거 계속해.”유진우는 팔짱을 낀 채 관심 없는 척했다.“응?”유진우의 행동에 흉터남은 되레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여인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날 구하려던 거 아니었어? 왜 가만히 있지? 설마 구경하러 온 거야?’“흥! 난 또 무슨 큰 인물이라도 되는 줄 알았더니 잡것이었구나.”흉터남이 코웃음을 쳤다.“나서지 못하겠으면 그냥 꺼져. 내 일을 방해하지 말고.”“그래! 당장 꺼져. 그렇지 않으면 다리를 분질러버리겠다!”몇몇 부하들이 흉악스러운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넌 네 일 하고 난 풍경을 감상하겠다는데 왜? 그나저나 멸치인 네가 설 수나 있을지 모르겠네.”유진우는 흉터남의 바짓가랑이를 힐끗거리며 비웃었다.“죽으려고 환장했어?”치욕을 당했다는 생각에 흉터남은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더니 두말없이 칼을 뽑아 들고 유진우를 내리치려 했다. 눈앞의 유진우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기세였다.쨍!유진우는 한 손으로 칼날을 가볍게 잡았다. 흉터남이 흠칫하며 넋이 나간 그때 그의 바짓가랑이를 힘껏 걷어찼다.흉터남은 처참하게 울부짖으며 두 다리를 오므리면서 털썩 주저앉았다. 안색이 창백해지고 입에 거품까지 물었다. 보기만 해도 상당한 고통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어!”흉터남의 부하들이 분노하며 저마다 칼을 뽑아 들었다.유진우가 킥으로 그들의 바짓가랑이를 걷어차자 또다시 처참한 비
하지만 이럴수록 그녀의 승부욕을 불러일으켰다. 한예슬은 입을 삐죽 내밀고 유진우를 흘겨보며 말했다.“까칠하게 굴지 말아요. 은혜를 갚으려는 것뿐이에요. 이 은혜를 갚지 못한다면, 저는 그게 마음에 걸려서 잠도 제대로 못 잘 거예요.”“그건 수면제를 드시면 되겠네요. 그럼 이만.”유진우는 단 한마디를 던지고는 떠났다.“저기요!”한예슬이 유진우를 쫓아갔다. 그런데 얼마 가지도 못한 채 발목을 삐끗했는지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가슴 앞의 가리개가 찢어져 그녀의 몸체가 드러났다.유진우는 멈칫하고는 겉옷을 벗어 그녀에게 던져줬다.“고마워요!”한예슬은 새빨개진 얼굴로 급히 겉옷을 집어 몸을 감쌌다. 마음속에 한 줄기 감동이 피어났다.“예슬아!”이때 남녀 한 쌍이 달려왔다. 비싼 옷을 걸치고 기백이 남다른 것을 보아 보통 사람은 아닌 듯싶었다.“선배!”그들을 본 한예슬이 금세 정신을 차리고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예슬아! 말도 없이 어디 갔던 거야? 걱정했잖아!”붉은 옷을 입은 여자가 일부러 심각한 표정을 짓고 꾸짖듯 말했다. 검은 옷차림의 남자도 인상을 찌푸리고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예슬아, 머리가 왜 산발이 됐어? 그 옷차림은 또 뭐냐. 무슨 일 있었어?”“선배, 방금 양아치 몇 명을 만났는데, 다행히 이분이 구해주셨어요.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 큰 일 날 뻔했어요!”“응?”검은 옷의 남자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유진우를 훑어보았다.붉은 옷의 여자가 유진우에게 다가가 꾸벅 인사하고 말했다.“정말 감사합니다. 전 벽하파의 심연수입니다. 이쪽은 저희 선배, 심호중이고요. 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유진우입니다.”유진우가 작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상대방이 예의를 차리기에 그도 상대를 존중해야 했다.“그렇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근데 무주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이곳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고영은의 묘 때문에요?”“어떻게 아셨습니까?”“저도 찍은 거예요. 무주에 무림 고수들이 많이 왔다는 소식을
밤 7시.유진우는 황은아와 설연홍을 데리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식당은 몇백 명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큰 규모였다.식당에 들어선 유진우의 눈에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보였다. 관광객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문을 듣고 온 무사들이었다.“유진우 씨! 여기요!”이때 한예슬이 벌떡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유진우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람들을 이끌고 그녀에게 다가갔다.“오셨네요. 어서 앉아요.”심연수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 옆의 심호중은 팔짱을 끼고 거만하게 유진우를 쳐다보다 설연홍과 황은아를 발견하고는 급히 옷매무새를 정리했다.유진우가 간단히 일행을 소개했다.“제 친구들이에요. 이쪽은 설연홍 씨, 이쪽은 황은아 씨. 같이 왔는데, 괜찮죠?”“당연하죠, 사람이 많으면 힘도 커지잖아요. 모두 앉아요.”심연수가 옅게 웃으며 손짓했다.“감사합니다.”유진우가 작게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자 심연수 일행을 제외하고도 낯선 얼굴들이 몇몇 보였다.옷차림을 봐서는 모두 벽하파 사람 같았다. 가장 약한 사람도 후천 대성이었다. 일반 무사 중에서는 뛰어난 실력을 갖췄지만, 각 파벌을 상대해 보물을 차지하기엔 조금 부족했다.심연수가 먼저 말을 걸었다.“유진우 씨, 이번 일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셨나요?”“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요?”“블랙 숲에는 맹수들과 독 있는 동물들이 가득해요. 들어가려면 꼭 해독제, 치료제, 집기단 등을 챙겨야 해요. 그 외에도 나침반, 모기향, 특제 텐트 등도 중요한 물건이죠. 꼭 필요할 거예요.”“네? 그런 것도 챙겨야 해요? 저흰 아무것도 안 챙겼어요.”황은아가 어리둥절해졌다. 그들은 모두 급하게 오느라 일상용품만 챙겨왔다.“보물 찾으러 온 사람 맞아요? 휴가 온 거 아니에요?”심연수가 웃으며 농담하고는 계속해 말했다.“괜찮아요. 저희가 이미 다 준비해 놓았으니, 물건이 모자랄 일은 없어요.”“정말요? 너무 잘됐어요! 감사합니다!”황은아가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심연수는 심각하
“물론 모두 고수들이지만 저희 벽하파에게는 위협적이지 않아요. 정말 위협적인 건 큰 규모의 파벌과 최고급 고수에요. 현무문, 대비사, 응양종, 진혼파 등 파벌이요. 맞다, 예의주시해야 할 사람이 한 명 더 있어요!”“그게 누군데요?”“최근에 자양지존과 결투한 소년 마스터요!”“네?”황은아가 어리둥절해졌다.‘그거 스승님 아닌가?’그녀는 묘한 표정으로 유진우를 쳐다보았다. 유진우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이번엔 조용히 행동해야지, 눈에 띄었다가는 누군가의 계략에 휘말릴 수도 있었다.설연홍이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그 소년 마스터 본 적 있어요?”“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당연히 본 적 없죠. 하지만 소문은 많이 들었어요. 얼굴도 잘생겼고, 의리도 있고. 가장 중요한 건 20대에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는 거예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고, 엄청나게 많은 여자 무사의 이상형이라고요.”심연수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수려한 외모에 최고의 실력을 갖춘 소년 마스터를 누가 싫어하겠는가?“하하, 그분을 상당히 좋아하시나 봐요.”설연홍이 유진우를 흘깃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유진우는 못 들은 척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안 좋아할 사람이 있겠어요?”심연수가 쿨하게 인정했다. 어차피 만나지 못할 사람인데, 조금 언급해도 괜찮을 것이었다.“흥! 그 사람이 대단하긴 하지만 나도 나쁘지 않아. 10년만 있으면 내가 그 사람을 이겨버릴 거야!”심호중이 차갑게 말했다. 제 동생이 다른 남자를 칭찬하는 말을 듣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정말 되겠어요?”황은아가 심호중을 훑어보며 의심스럽게 말했다.“당연하죠. 저도 무주 무림계에선 알아주는 사람입니다. 절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맞아요! 저희 선배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한예슬이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저희 선배는 무주 10대 호걸 중 3위에요. 지금은 본투비 레벨 고수시고, 모두가 인정하는 무도 천재에요!”“이 식당 안에 있는 무사들과 10대1로 싸워도 지지 않을 거
“응?”심호중은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한창 잘난 척하고 있었는데 막을 새도 없이 갑자기 술병 하나가 날아왔다.그는 맞은 자리를 만져보았다. 피가 흥건했다. 진기의 보호가 없는 한 그는 일반인보다 조금 튼튼할 뿐이었다.“젠장! 누구야?”심호중이 크게 외쳤다. 벽하파 제자들도 이에 동조하며 외쳤다.“감히 선배님을 공격하다니, 어떤 놈이야?”“나다.”이때 잘 차려입고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무사 두 명을 데리고 천천히 걸어왔다.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발걸음이었다.“자식! 내가 누군 줄 알아? 감히 날 급습해?”“음? 그럼 한 수 배워야겠네. 네가 누군데?”선글라스 낀 남자가 놀림조로 말했다.“잘 들어! 난 무주 10대 호걸, 핸섬 리틀 드래곤, 심호중이야!”“무주 10대 호걸? 핸섬 리틀 드래곤? 얼씨구, 너무 멋있다. 정말 무섭군.”남자가 심호중을 조롱했다. 뒤에 선 무사 두 명도 크게 웃기 시작했다.“네가 감히!”“간덩이가 부었군!”벽하파 제자들이 칼을 뽑아 들었다.“감히 날 모욕해? 결투다!”심호중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는데, 결투라도 하지 않으면 이제 이 바닥에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결투? 하하... 감히 나와 결투한다고? 내가 누군 줄 알아?”“그건 내 알 바 아니야! 감히 날 급습해? 오늘이 네놈 제삿날이 될 거야!”심호중은 크게 외치고는 칼을 내리찍으려 했다.“난 구정파 장문의 아들, 엄홍수다!”남자가 한 마디를 던졌다. 그 말을 들은 심호중이 휘두르려던 칼을 멈췄다.“구정파? 엄홍수?”심호중의 눈에 두려움이 들어찼다. 상대방의 실력은 무섭지 않았지만, 그 신분이 무서웠다.엄홍수는 별 볼 일 없는 실력을 갖췄지만, 좋은 아버지를두었다. 그의 아버지는 구정파 장문, 무주의 제일가는 무사, 엄건호였다. 그는 최고의 실력과 지위를 가졌다.엄건호의 이름을 들은 심호중이 공격을 멈췄다. 아무리 스승이라지만 두려운 존재였다. 이 칼
“그래, 하지만 조건이 있어.”“어떤 조건이요?”“너랑 다른 여자 둘이 나랑 술이나 한 번 먹자고. 접대 잘 하면 오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엄홍수가 섬뜩하게 웃었다. 이런 여자는 평소 만나보기 어려웠다. 그런데 오늘 세 명씩이나 나타나다니, 하늘이 도왔다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이 같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아...”심연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바닥에 있은 지가 몇 년인데, 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술자리에 응했다가는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이었다.“왜? 싫어? 난 거절당하는 걸 제일 싫어해.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아가씨! 우리 도련님과 술자리를 가지는 건 돈 주고도 못 하는 거야. 영광으로 생각해!”무사 한 명이 위협적으로 말했다.“네, 저와 함께 먹어요. 하지만 여기 이분들은 그냥 놓아주시는 게...”망설이던 심연수가 결국 타협했다. 하지만 황은아와 설연홍을 끌어들이는 건 싫었다.엄홍수가 기분 나쁜 듯 말했다.“난 세 명이라고 했어.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안 돼. 오늘 밤, 서비스 잘 하는 게 좋을 거야!”“제발 그만하세요!”황은아가 참다못해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왜? 이러면 안 돼? 그럼 오늘은 너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 정말 기대되는걸!”엄홍수는 혀를 날름거리며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미친 놈!”황은아가 술이 든 술잔을 집어 엄홍수의 얼굴을 향해 뿌렸다.“미친 년, 감히 나한테 술을 뿌려? 오늘 제대로 혼내줄 거야!”엄홈수가 황은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런데 누군가 그의 손을 잡아 저지했다.“3초 줄게, 꺼져.”유진우가 황은아의 앞을 막아서고는 차갑게 말했다.엄홍수의 표정이 굳어졌다.“응? 내가 누군지 알기나 해?”무주시에서는 누구도 엄홍수의 심기를 거스르지 못했다.“그건 내 알 바 아니고, 3초 안으로 꺼지지 않으면 다리를 부러뜨려버릴 거야.”유진우가 차갑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술렁거렸다.“헐! 저 사람 누구야? 감히 도련님과 대치해?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