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미의 편안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유진우의 마음은 칼로 도려내듯 아팠다.조선미를 죽음으로 몰아간 자신이 미웠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두 사람의 목숨을 기꺼이 다시 바꾸고 싶었다.“잠깐! 바꾼다?”유진우는 문득 뭔가 떠올랐는지 굳어진 얼굴로 조안태를 보며 말했다.“선배님, 혹시 송장꽃이 더 있어요? 제 목숨으로 선미 씨를 살릴 겁니다.”“장난하지 말아요!”조안태가 미간을 찌푸리며 호통쳤다.“송장꽃이 무슨 길바닥에 널린 건 줄 알아요? 필요하면 갖다 쓰게? 그리고 선미 씨가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유 장로를 구했으면 잘 살아야죠. 그래야 선미 씨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요.”“전 선미 씨가 목숨을 바치게 할 수 없어요. 꼭 살릴 겁니다.”유진우가 핏발이 선 두 눈으로 언성을 높였다.“무슨 방법을 쓰든, 어떤 대가를 치르든 반드시 살릴 겁니다. 선배님, 선배님은 의학계의 거장이시잖아요. 당연히 본 것도, 들은 것도 많겠죠. 제발 저 좀 도와서 선미 씨를 살려주세요. 제가 이렇게 빌게요.”그러더니 털썩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당신 정말...”조안태는 화가 나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유진우의 고집을 절대 꺾을 수가 없었다. 하여 한참 망설이다가 결국 들어주기로 했다.“됐어요.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솔직하게 얘기할게요. 선미 씨가 지금 죽은 사람과 다를 바는 없지만 살릴 방법이 있긴 해요.”“무슨 방법입니까?”유진우의 두 눈이 번쩍였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정상적인 이치대로라면 선미 씨가 유 장로 체내의 독을 전부 흡입해서 살 가망이 아예 없어요. 그런데 7일 탈명단과 송장꽃이 서로 상극인지라 독으로써 독을 물리친 덕에 결국 절반 넘게 해독되어 선미 씨가 아직 숨이 붙어있는 거예요. 지금 선미 씨를 살리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하나는 봉황 독충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검은 꽃무릇을 찾는 거예요. 하지만 이 두 가지를 찾는 게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워서 거의 없다고 보면 돼요
50년 전 조안태가 아직 풋내기이던 시절 고영은은 이미 세상에 명성을 떨쳤다. 운 좋게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아주 기품이 흘러넘치고 사람을 압도할 만한 분위기를 지닌 여자였다.“고영은? 인여궁?”유진우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바로 물었다.“선배님, 고영은이라는 분의 묘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허무맹랑한 물건이라고 했던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조안태가 한숨을 내쉬었다.“50년 동안 고영은의 묘를 찾아다닌 사람이 수두룩한데 지금까지 찾아낸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러니까 이 검은 꽃무릇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죠.”“찾지 못했다고 해서 없는 건 아니잖아요.”유진우가 진지하게 말했다.“무슨 방법을 써서든 검은 꽃무릇을 찾아내고 말 겁니다. 그래도 안 되면 주술교에 쳐들어가는 수밖에 없죠.”“미쳤어요? 거긴 아주 위험한 곳이에요.”조안태의 표정이 급변했다.“선미 씨는 저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쳤는데 위험한 곳에 들어가는 게 뭐가 대수라고요.”유진우의 눈빛이 매우 확고했다.“하지만...”조안태는 말을 잇지 못했다.“선배님, 선미 씨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어요?”유진우가 갑자기 물었다.“그건 나도 확실하게 말하긴 어려워요. 길면 보름이고 짧으면 닷새 정도인데 선미 씨 본인의 의지에 달려있어요.”조안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유진우는 아무 말 없이 허리를 굽혀 조선미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하고 부드럽게 말했다.“선미 씨, 내가 돌아올 때까지 꼭 버텨요... 나랑 평생 함께하겠다면서요. 그 약속 지켜야죠. 내가 무슨 대가를 치르든 반드시 구해줄 테니까 기다려요.”그러고는 문을 나섰다. 그의 두 눈에 전에 본 적 없었던 확고함이 가득했고 살짝만 건드려도 미쳐 돌아갈 것만 같았다....교외에 정원이 딸린 어느 한 고급 별장.인여궁 궁주 백수정과 몇몇 제자들이 한 데 둘러앉아 완전하지 않은 인여경을 연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꼼꼼하게 살펴도 그 어떤 수상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다.“청하야, 이 안에 다른 게 숨겨져 있는 게
백수정의 분부에 부하들이 구리 대야를 가져왔다. 한 구리 대야에는 물을 가득 담았고 다른 구리 대야에는 숯불을 붙였다.“일단 해보자.”백수정은 심호흡한 후 인여경을 물에 던졌다.한 무리 사람들은 혹시라도 생각지 못한 장면이 펼쳐지는 건 아닌지 기대하며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한참이 지나자 인여경이 잠잠해졌다.백수정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부여잡고 꺼내서 자세히 살폈다. 그런데 인여경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사부님, 제가 얘기했잖아요. 이 방법은 쓸모없다고요.”차연주가 낮은 목소리로 불만을 드러냈다.“불로 태워보자.”백수정은 이를 꽉 깨물고 인여경을 불 속에 던지려 했다.“사부님.”차연주가 다급하게 말렸다.“물에 젖으면 말리기라도 하면 되는데 불에 타면 아무것도 남질 않아요. 신중하게 고려하세요.”“인여경의 내용은 이미 눈 감고 외울 정도로 달달 익혔어. 남겨둬봤자 쓸데도 없어.”백수정은 차연주의 손을 홱 뿌리치고 인여경을 숯불 속에 던져버렸다.파란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인여경이 순식간에 활활 타오르다가 검은 잿더미만 남게 되었다.“사부님, 안에 뭔가 있는 것 같아요.”눈치 빠른 홍청하가 뭔가 다른 점을 발견했다.“역시 뭔가 있었어!”자세히 살펴보던 백수정의 두 눈이 저도 모르게 번쩍 띄었다. 재빨리 숯불을 끈 후 검은 잿더미를 이리저리 뒤지다가 결국 특별 제작된 금박을 발견했다. 깨끗하게 씻고 보니 금박에 지도가 새겨져 있었다.그리고 지도에 표기된 마지막 지점이 바로 고영은의 묘였다!“고영은? 우리 선배님 아니야?”놀라움도 잠시 백수정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하하... 너무 잘됐어. 그렇게 찾아다닐 때는 보이지 않더니 의식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찾았네? 이 인여궁 안에 선배님이 남기신 보물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어. 역시 하늘은 우리 편이야.”고영은은 인여궁의 제3대 궁주이자 역대 가장 훌륭하고 강하며 앞날이 창창한 궁주였다. 50년 전 그녀는 세상을 휩쓴 인재였고 용국 백 년이래 가장 뛰어난 여자 마스터였다. 그런 그녀와
홍청하는 잠깐 멈칫하다가 억지웃음을 쥐어짰다.“사부님, 저 눈치가 빨라서 사부님께 도움이 될 겁니다.”“괜찮아.”백수정이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연주 혼자 도와줘도 충분하니까 넌 나가 있어.”“하지만...”홍청하는 뭐라 더 얘기하고 싶었지만 백수정이 두 눈을 부릅떴다.“왜? 이젠 사부의 말도 듣지 않겠다는 거야?”“제가 어찌 감히...”홍청하는 바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나가!”백수정의 인내심이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그럼 먼저 물러가겠습니다.”더는 남아있을 수 없었던 홍청하는 인사를 올린 후 하는 수 없이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그녀의 두 눈에 짙은 불만과 분노가 가득했다.수년 동안 물불 안 가리고 많은 일을 했지만 여전히 사부의 믿음을 얻지 못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는 계속 이방인이었다.홍청하는 이미 충분히 노력했고 자신의 충성심을 다 보여줬다고 생각했었다.만약 홍청하가 아니었더라면 백수정은 어떻게 인여경을 손에 넣고 또 어떻게 인여경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었겠는가?보물을 찾아내는 데 사실 홍청하의 공이 가장 컸다.그런데 결과는 어떠한가?상을 받기는커녕 되레 사부가 경계하기 시작했고 지도를 볼 자격조차 없었다. 홍청하가 그동안 노고를 마다하지 않고 많은 일을 한 건 다 누구 때문인데?왜 백수정은 그녀를 믿지 않고 백수정의 마음을 얻지 못한단 말인가? 대체 왜!홍청하는 이를 꽉 깨물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녀의 두 눈에 원망이 스쳤다.별장을 나선 홍청하는 휴대 전화를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유진우, 나 인여궁의 비밀을 발견했는데 당신에게 유용한 정보야. 관심 있으면 오늘 저녁 8시 진성 식당에서 봐.”...저녁 8시, 진성 식당.홍청하는 안절부절못하며 룸 안에 홀로 앉아있었다. 사실 그녀는 유진우가 올지 말지 확신이 없었다.여러 일을 겪고 나니 남을 믿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을 믿는 게 가장 현명하다는 걸 문득 깨달았
“정말 고영은이야? 잘못 안 거 아니고?”유진우는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홍청하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엄청난 힘에 홍청하는 팔이 저릿하여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직접 봤어. 절대 거짓말이 아니야.”홍청하는 아픔을 가까스로 참으며 진지하게 대답했다.“묘 어디 있어? 얼른 말해!”유진우는 무척이나 급해 보였다. 마치 상대를 잡아먹을 듯한 눈빛이었다.그렇지 않아도 인여궁을 통하여 고영은에 관한 정보를 알아보려 했었는데 이렇게나 빨리 찾을 줄은 몰랐다.“아프다고!”홍청하는 유진우의 손을 뿌리치려 발버둥 치면서 눈살을 찌푸렸다.“묘의 정확한 위치는 나도 잘 몰라. 사부는 지도를 연구하겠다면서 날 일부러 내쫓더라고. 어렴풋하게 블랙 숲이라는 세 글자를 보았어.”“블랙 숲?”유진우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그게 어딘데?”“이미 알아봤는데 블랙 숲은 무주 지역에 있더라고. 늪이 가득한 아주 위험한 자연림이야. 지세가 험하고 환경도 열악해서 인적이 아주 드물어. 아직 미개발 지역이야.”홍청하가 설명했다.“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라 정확한 위치야.”유진우가 서늘하게 말했다. 숲이라고 불릴 정도라면 면적이 아주 넓을 것이다. 지도 없이 숨은 묘를 찾는다는 건 바다에 빠진 바늘을 찾는 격이었다.“내가 알아낸 건 잠시 이것뿐이야.”홍청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이었다.“하지만 걱정하지 마. 백수정 옆에서 정보를 캐낼 거야. 뭔가 알아낸 게 있다면 바로 연락할게. 그런데 그전에 조건이 있어.”“무슨 조건?”유진우가 되물었다.“보물을 찾으면 나한테 절반을 줘.”홍청하가 대놓고 요구했다. 유진우를 찾은 건 강한 조력자가 필요해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진우의 인품도 믿을만하니까.“그래.”유진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흔쾌히 대답했다. 보물인지 뭔지 그는 하나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검은 꽃무릇만 손에 넣으면 되었다.“좋아! 약속 지켜!”홍청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유진우가 흥정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고영은의 묘가 다시 나타났고 그 위치가 바로 무주의 블랙 숲이라는 정보였다. 이 정보가 알려지자마자 곳곳의 수많은 무사들이 무주로 몰려들어 숟가락을 끼얹었다. 어쨌거나 이런 색다른 경험은 흔히 있는 건 아니니까.그 시각, 무주로 향하는 한 승합차 안.유진우는 유리창 밖의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황은아가 옆에서 쉴새 없이 재잘거렸다.“아저씨, 약신왕 선배님께서 몸조심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어요. 약 제때 먹고 절대 진기를 써서는 안 된댔어요. 그렇지 않으면 내장을 심하게 다친대요. 그리고 고영은의 일을 누가 발설했는지 지금 엄청 많은 사람이 보물을 찾겠다고 혈안이 되어있어요. 우리 이번에 경쟁자가 아주 많아요. 아 참, 나쁜 소식도 있어요. 어젯밤에 어떤 고수가 무도 연맹 감옥에 쳐들어가서 황보춘을 데려갔대요. 무도 연맹에서 많은 사람을 보내 쫓았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대요.”황은아는 들어온 소식을 보면서 유진우에게 보고했다. 멍하니 듣고만 있던 유진우가 드디어 반응을 보였다.“황보춘이 도망쳤다고? 대체 누가 그런 재주가 있어서 감히 무도 연맹 감옥에서 사람을 데려가?”“장 어르신이 보낸 정보에 따르면 영살문의 짓인 것 같아요. 무도 연맹이 잠깐 방심한 틈에 많은 이가 죽었대요.”황은아가 설명했다.“만약 미야모토 코지로가 직접 나섰다면 가능성 있어. 하지만 영살문이 고작 황보춘 때문에 이런 위험을 무릅쓸 줄은 몰랐네.”유진우가 실눈을 뜨고 말했다.“명의님, 황보용명이 죽은 그 순간부터 전 자꾸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요.”그때 옆에 앉아있던 설연홍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황은아의 경호원으로서 당연히 동행해야 했다.“뭐가 이상하다는 거죠?”유진우가 미간을 찌푸렸다.“모르겠어요. 그냥 누군가에게 끌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설연홍은 다리를 꼬고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지금은 그런 거 생각하지 맙시다. 일단 검은 꽃무릇부터 찾고 봐요.”유진우는 더는 따지기 귀찮아 두 눈을 감았다.점심쯤 승
“멸치?”갑작스러운 소리에 흉터남이 화들짝 놀랐다. 고개를 돌려 보니 평범한 옷차림에 서늘한 표정의 남자가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인마, 넌 또 어디서 튀어나온 놈이야? 경고하는데 오지랖 부리지 마!”흉터남이 잔뜩 굳은 얼굴로 째려보았다.“살려주세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여인이 발버둥 치며 울부짖었다. 공포에 질린 얼굴에 한 가닥의 희망이 생겼다. 오늘 몸이 더럽혀질 것 같다는 생각에 거의 절망에 빠졌지만 지나가던 누군가가 흔쾌히 나서서 도와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난 오지랖 부리겠다고 한 적 없어. 하던 거 계속해.”유진우는 팔짱을 낀 채 관심 없는 척했다.“응?”유진우의 행동에 흉터남은 되레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여인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날 구하려던 거 아니었어? 왜 가만히 있지? 설마 구경하러 온 거야?’“흥! 난 또 무슨 큰 인물이라도 되는 줄 알았더니 잡것이었구나.”흉터남이 코웃음을 쳤다.“나서지 못하겠으면 그냥 꺼져. 내 일을 방해하지 말고.”“그래! 당장 꺼져. 그렇지 않으면 다리를 분질러버리겠다!”몇몇 부하들이 흉악스러운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넌 네 일 하고 난 풍경을 감상하겠다는데 왜? 그나저나 멸치인 네가 설 수나 있을지 모르겠네.”유진우는 흉터남의 바짓가랑이를 힐끗거리며 비웃었다.“죽으려고 환장했어?”치욕을 당했다는 생각에 흉터남은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더니 두말없이 칼을 뽑아 들고 유진우를 내리치려 했다. 눈앞의 유진우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기세였다.쨍!유진우는 한 손으로 칼날을 가볍게 잡았다. 흉터남이 흠칫하며 넋이 나간 그때 그의 바짓가랑이를 힘껏 걷어찼다.흉터남은 처참하게 울부짖으며 두 다리를 오므리면서 털썩 주저앉았다. 안색이 창백해지고 입에 거품까지 물었다. 보기만 해도 상당한 고통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어!”흉터남의 부하들이 분노하며 저마다 칼을 뽑아 들었다.유진우가 킥으로 그들의 바짓가랑이를 걷어차자 또다시 처참한 비
하지만 이럴수록 그녀의 승부욕을 불러일으켰다. 한예슬은 입을 삐죽 내밀고 유진우를 흘겨보며 말했다.“까칠하게 굴지 말아요. 은혜를 갚으려는 것뿐이에요. 이 은혜를 갚지 못한다면, 저는 그게 마음에 걸려서 잠도 제대로 못 잘 거예요.”“그건 수면제를 드시면 되겠네요. 그럼 이만.”유진우는 단 한마디를 던지고는 떠났다.“저기요!”한예슬이 유진우를 쫓아갔다. 그런데 얼마 가지도 못한 채 발목을 삐끗했는지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가슴 앞의 가리개가 찢어져 그녀의 몸체가 드러났다.유진우는 멈칫하고는 겉옷을 벗어 그녀에게 던져줬다.“고마워요!”한예슬은 새빨개진 얼굴로 급히 겉옷을 집어 몸을 감쌌다. 마음속에 한 줄기 감동이 피어났다.“예슬아!”이때 남녀 한 쌍이 달려왔다. 비싼 옷을 걸치고 기백이 남다른 것을 보아 보통 사람은 아닌 듯싶었다.“선배!”그들을 본 한예슬이 금세 정신을 차리고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예슬아! 말도 없이 어디 갔던 거야? 걱정했잖아!”붉은 옷을 입은 여자가 일부러 심각한 표정을 짓고 꾸짖듯 말했다. 검은 옷차림의 남자도 인상을 찌푸리고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예슬아, 머리가 왜 산발이 됐어? 그 옷차림은 또 뭐냐. 무슨 일 있었어?”“선배, 방금 양아치 몇 명을 만났는데, 다행히 이분이 구해주셨어요.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 큰 일 날 뻔했어요!”“응?”검은 옷의 남자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유진우를 훑어보았다.붉은 옷의 여자가 유진우에게 다가가 꾸벅 인사하고 말했다.“정말 감사합니다. 전 벽하파의 심연수입니다. 이쪽은 저희 선배, 심호중이고요. 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유진우입니다.”유진우가 작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상대방이 예의를 차리기에 그도 상대를 존중해야 했다.“그렇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근데 무주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이곳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고영은의 묘 때문에요?”“어떻게 아셨습니까?”“저도 찍은 거예요. 무주에 무림 고수들이 많이 왔다는 소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