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쏟아낸 뒤 황보춘은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의 얼굴엔 각종 감정으로 가득했다. 분노, 원한, 질투, 진한 아쉬움.그는 왜 일이 이렇게 됐는지 알 수 없었다. 조금의 차질도 없이 완벽한 계획이었다. 황보용명을 죽이기만 한다면 그는 차세대 족장이 될 테고,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다.하지만 그의 치밀한 계획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애초에 그의 계획에는 두 가지 결과밖에 없었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족장이 되거나, 나락으로 떨어지거나.불행하게도 그는 실패하고 말았다. 황보용명은 죽지 않았다. 그의 계획은 모두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너무도 아쉬웠다. 조금만, 정말 조금만 더 하면 성공했을 텐데, 왜?“황보춘이 배후라니, 정말 상상도 못 했어.”“사람 좋아 보이더니 그게 다 꾸며낸 거였어?”“맹주님이 죽은 척하지 않았다면 이놈이 족장이 됐을 거잖아!”“...”정신이 거의 나간 황보춘을 보며 사람들은 분개했다. 얼마 전까지 황보춘의 편을 들었는데, 모두 황보춘에게 놀아난 꼴이었다.송만규가 크게 외쳤다.“이봐! 이 짐승놈을 묶어!”“네!”두 사람이 대답하고는 황보춘의 다리를 부러뜨려 꽁꽁 묶었다.“영감탱이! 죽어! 죽어!”황보춘은 정신이 나간 듯 외치고 있었다.“지하 감옥에 처넣고 잘 감시해. 내일 공개처형이다!”송만규가 명령을 내리고는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해산시켰다.“진실은 이미 드러났으니 모두 돌아가시죠.”사람들은 아쉬워하면서도 하나둘 돌아갔다. 이런 반전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들의 첫 목표는 유진우였는데, 황보추와 황보춘의 악행이 수면 밖으로 드러났다. 황보 가문의 두 효자가 모든 사람을 속일 뻔했다.“송 맹주님, 강남 무도 연맹엔 정말 뛰어난 사람들이 많네요. 구경 잘 했습니다. 그럼, 이만.”소홍도는 의미심장하게 말하고는 강북 무도 연맹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자리를 떴다.백수정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흥! 또 저 자식을 놓치고 말았네, 아쉬워라.”“황보용명이 살아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운 좋기
송만규만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만규야, 뭐 해? 어서 돌아가.”황보용명이 담담하게 말했다. 송만규는 대답 없이 그를 훑어보고는 유진우에게 물었다.“유진우 씨, 이분은 어디서 데려온 겁니까?”“만규야, 그게 무슨 소리야?”“당신, 언제까지 연기할 거야?”“무엄하다! 감히 스승님께!”“흥! 당신 정체가 뭔지 한번 보자!”송만규는 차갑게 웃고는 황보용명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그 뒤 뭔가 잘못됐다는 듯이 뒷걸음쳤다. 곧 잡히려 할 때, 유진우가 송만규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맹주님, 대화로 풉시다.”“못된 놈! 감히 스승님을 공격해? 이 배신자야!”“됐어요, 연기 그만 해요. 송 맹주님 이미 알아챘어요.”유진우가 뒤를 쳐다보며 경고했다. 그 말을 들은 황보용명의 얼굴에 분노가 사라지고 장난기 어린 웃음이 떠올랐다. 이어 쨍한 여자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무도 마스터는 역시 다르네요,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었는데도 가면인 걸 알아챌 줄은 몰랐어요.”그가 얼굴을 잡아당기자 황보용명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가히 절세미인이라 칭할 만큼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설연홍이었다.송만규가 인상을 쓰고 말했다.“누굽니까?”“변신술 전문인 제 친구입니다. 황보춘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탁한 것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그렇군요. 좋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결백을 증명하기 위한 선택이니, 이해할 수 있습니다.”“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유진우가 작게 고개를 숙였다. 설연홍더러 황보용명으로 변장해 연기를 펼치게 했으니, 고인을 존중하지 않았다 해도 할 말이 없었다.“용건만 말하죠. 결백을 증명했으니, 저도 기쁩니다. 강남 무도 연맹은 당신 같은 젊은 인재가 필요합니다. 얼마 후면 이곳은 당신들의 무대가 될 겁니다.”“과찬입니다.”송만규가 뭔가 생각난 듯 약병 하나를 유진우에게 건넸다.“맞다. 이걸 까먹을 뻔했네요. 7일 탈명단의 해독제입니다. 어서 마셔요. 독이 뼈에까지 침투하면 후유증이
풍우 산장의 한 방 안.유진우는 보랏빛 얼굴을 하고 침대에 누워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몸속의 독소와 진기가 서로 맞부딪치며 치열하게 겨루고 있었다. 그의 코에서는 가끔 검은 피가 흘러내렸다.약왕 경철호는 침대 옆에 앉아 심각한 얼굴로 조심스레 유진우의 몸에 침을 꽂아 독소를 빼내고 있었다.장 어르신, 설연홍, 황은아 등 사람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 옆을 지키고 있었다. 7일 탈명단도 해독하지 못했는데 맹독 하나가 더 들어오다니, 불 난 집에 기름 뿌리는 격이었다.송만규는 강남 무도 연맹을 거느리고 소홍도를 찾아 헤맸지만, 아직 소식이 없었다. 이제 모든 건 약왕에게 달렸다.시간이 흐르며 경철호의 이마에는 땀이 돋아났고, 호흡도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의 은바늘이 한 개씩 꽂히자, 유진우의 가슴에 일렁거리는 검은 기가 보였다.침을 꽂은 후 경철호는 유진우에게 특효 해독단을 먹였다. 이는 많은 독을 해독할 수 있었지만, 이 희귀한 독약에는 약간의 억제 작용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얼마나 지났을까, 경철호가 몸을 일으켰다.“후...”“선배님! 어떻게 됐어요? 괜찮은 거죠?”황은아가 급히 물었다. 그녀는 수련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유진우의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다.“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유 장로님의 몸에는 7일 탈명단과 화기산, 두 가지 독이 있는데, 그 두 가지 독이 만나 더 큰 독성을 내뿜고 있어요.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7일 탈명단도 해독하기 힘든데 거기다 무도 고수를 상대하는 화기산까지 더해졌으니 설상가상이었다. 유진우가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도 남았을 것이다.“약왕이시잖아요. 의술이 고명하다며, 이런 것도 못 해요?”황은아는 당황했다. 유진우는 아버지를 제외하고 그녀에게 진심으로 대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선배님! 돈은 얼마든지 상관없으니, 살려만 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장 어르신이 그대로 바닥에 꿇어앉았다.“부탁드립니다!”다른 사람들도 질세라 꿇어앉았다.“이러실 필요 없어요. 유 장로님은 약신궁 사람
“조선미 씨의 심정은 백번 이해하나 독은 이미 유 장로의 뼛속까지 파고 들어갔어요. 제가 여러 방법을 시도해봤지만 다 쓸모가 없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조안태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는 유진우를 중히 여겼고 심지어 약신왕 자리까지 물려주려 했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런 해독이 불가능한 독에 중독되었는지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었다.“말... 말도 안 돼요.”당황한 조선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만약 약신왕마저 치료할 방법이 없다면 대체 누가 치료할 수 있단 말인가?“잠깐만요!”그때 조선미의 뇌리에 문득 뭔가 떠올랐다.“선배님, 약신궁에 송장꽃이라는 아주 신기한 약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비법과 함께 사용하면 기사회생한다던데 그게 정말입니까?”“송장꽃이요?”조선미의 말에 조안태가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선미 씨, 송장꽃은 불길한 물건이라서 절대 사용해서는 안 돼요.”“왜 안 되는데요? 선배님 설마 저희가 살 돈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조선미는 애간장이 탔다.“돈이 문제가 아니에요.”조안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설명했다.“송장꽃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좋은 약이 아니라 아주 맹독성 물질이에요. 사용 조건도 까다로워서 의학계에서는 금지 약품으로 지정되었어요.”“좋은 약이든 독약이든 진우 씨만 살리면 돼요. 선배님은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조선미는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유 장로의 지금 상태로 송장꽃을 사용한다면 다른 사람이 목숨을 걸어야 해요. 그러니까 체내의 모든 독소를 다른 사람에게 옮겨서 목숨과 목숨을 바꿔야만 일말의 생존 기회가 생긴단 말이죠.”조안태가 한탄하며 말했다.“다른 사람의 목숨과 바꾼다고요?”그의 말에 적지 않은 사람의 표정이 급변했다. 치료하는 대가가 상상 이상으로 컸다.“다른 사람의 목숨과 바꾸는 건 단지 기본적인 조건일 뿐이에요. 문제는 아무나 목숨을 바꿀 자격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조안태가 계속하여 말했다.“목숨을 바꾸는 과정에서 희생하는 그 사람은 수만
“안녕, 내 사랑...”흐리멍덩한 의식 속 유진우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고 싶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떠지지 않았다.몸이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지옥에 빠진 듯 계속 밑으로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공포와 절망이 유진우를 덮쳤고 온 세상이 암흑이다 못해 빛이라곤 전혀 없었다. 이런 상태가 얼마나 지속되었는지도 모르겠다.1년? 10년? 아니면 100년?그런데 유진우의 정신세계가 완전히 무너져내릴 것만 같던 그때 한 줄기의 빛이 나타났다. 그는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미친 듯이 발버둥 쳐서 빛이 보이는 쪽으로 헤엄쳐갔다. 그렇게 빛과 점점 가까워지면서 드디어 빛과 한 몸이 되었다...“쓰읍!”병실 침대에 누워있던 유진우가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떴다. 기운이 폐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심장도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마치 환생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리고 무엇보다 체내의 독이 신기하게도 전부 사라졌다는 것이다. 몸이 아직 허약하긴 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유 장로, 드디어 깨어났군요. 이번 고비를 넘기지 못할까 봐 걱정 많이 했습니다.”지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유진우가 눈을 떠보니 약신왕 조안태가 침대 옆에 앉아있었다. 땀에 흠뻑 젖은 채 안색이 창백했고 숨도 거칠게 내쉬는 게 진기를 아주 많이 소모한 듯했다.“약신왕 선배님께서 살려주셨군요. 이 은혜를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유진우가 재빨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가 중독된 독은 거의 해독 불가능한 독이었다. 조안태가 황천길에서 맴도는 유진우를 끌어오느라고 얼마나 큰 대가를 치렀는지 모른다. 정말 생명의 은인이었다.“유 장로, 난 그저 진기를 조금 소모했을 뿐 딱히 한 거 없어요. 유 장로가 고마워해야 하는 사람은 이분입니다.”조안태가 한숨을 내쉬었다.“이분이요?”유진우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옆 침대에 얼굴에 핏기라곤 전혀 없는 아름다운 여인이 가만히 누워있었다. 호흡이 아주 미약하다 못해 가슴팍도 움직이지 않았
조선미가 기꺼이 목숨을 바치고 수만 마리의 개미가 뼈를 갉아 먹는 듯한 고통을 견뎌낸 것, 그리고 죽음에 임박했다가 마지막에 산송장이 된 것까지 이 전체 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유진우에게 말해주었다.왜냐하면 유진우가 반드시 이 사실을 알아야 하고, 조선미가 죽을 각오까지 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조안태의 설명을 듣던 유진우는 그대로 넋이 나갔다. 자리에 멍하니 선 채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조선미가 유진우를 위하여 목숨까지 내놓을 정도로 희생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유진우는 그제야 조선미의 사랑을 뼛속 깊이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이 무겁고 소중한 사랑을 그가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이건 선미 씨가 유 장로에게 남긴 편지입니다. 읽어보세요.”조안태는 복잡한 표정으로 조선미의 유언이 담긴 편지를 조심스럽게 건넸다. 지금까지 누군가를 존경하고 탄복한 적이 없는 그였는데 조금 전 조선미의 용기는 진심으로 존경할만했다.수만 마리 개미가 뼈를 갉아 먹는 듯한 고통은 무도 마스터라도 버틸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런데 여린 여자가 그 고통을 견뎌냈고 게다가 어떤 후회와 두려움도 없이 강인하고 단호했다.한 사람을 대체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해야만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조안태는 신이 와도 유진우의 목숨을 구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조선미를 통하여 일반인에게도 신과 겨룰만한 강력한 힘이 있다는 걸 문득 깨닫게 되었다.유진우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 봉투를 받고 열어보았다. 가지런한 글씨가 그의 눈앞에 또렷하게 나타났다.[여보, 당신이 이 편지를 읽을 때쯤이면 난 아마 이 세상에 없겠죠? 하지만 너무 속상해하지도 말고 자책하지도 말아요. 이 모든 건 다 내가 원해서 선택한 거니까. 사실 당신을 만난 그 순간부터 난 당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었어요. 처음에는 단지 재미나는 사람이라고만 여겼었는데 나중에 나도 모르게 진우 씨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머릿속에 매일 당신 얼굴이 떠오르고 한시도 잊을
조선미의 편안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유진우의 마음은 칼로 도려내듯 아팠다.조선미를 죽음으로 몰아간 자신이 미웠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두 사람의 목숨을 기꺼이 다시 바꾸고 싶었다.“잠깐! 바꾼다?”유진우는 문득 뭔가 떠올랐는지 굳어진 얼굴로 조안태를 보며 말했다.“선배님, 혹시 송장꽃이 더 있어요? 제 목숨으로 선미 씨를 살릴 겁니다.”“장난하지 말아요!”조안태가 미간을 찌푸리며 호통쳤다.“송장꽃이 무슨 길바닥에 널린 건 줄 알아요? 필요하면 갖다 쓰게? 그리고 선미 씨가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유 장로를 구했으면 잘 살아야죠. 그래야 선미 씨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요.”“전 선미 씨가 목숨을 바치게 할 수 없어요. 꼭 살릴 겁니다.”유진우가 핏발이 선 두 눈으로 언성을 높였다.“무슨 방법을 쓰든, 어떤 대가를 치르든 반드시 살릴 겁니다. 선배님, 선배님은 의학계의 거장이시잖아요. 당연히 본 것도, 들은 것도 많겠죠. 제발 저 좀 도와서 선미 씨를 살려주세요. 제가 이렇게 빌게요.”그러더니 털썩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당신 정말...”조안태는 화가 나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유진우의 고집을 절대 꺾을 수가 없었다. 하여 한참 망설이다가 결국 들어주기로 했다.“됐어요.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솔직하게 얘기할게요. 선미 씨가 지금 죽은 사람과 다를 바는 없지만 살릴 방법이 있긴 해요.”“무슨 방법입니까?”유진우의 두 눈이 번쩍였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정상적인 이치대로라면 선미 씨가 유 장로 체내의 독을 전부 흡입해서 살 가망이 아예 없어요. 그런데 7일 탈명단과 송장꽃이 서로 상극인지라 독으로써 독을 물리친 덕에 결국 절반 넘게 해독되어 선미 씨가 아직 숨이 붙어있는 거예요. 지금 선미 씨를 살리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하나는 봉황 독충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검은 꽃무릇을 찾는 거예요. 하지만 이 두 가지를 찾는 게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워서 거의 없다고 보면 돼요
50년 전 조안태가 아직 풋내기이던 시절 고영은은 이미 세상에 명성을 떨쳤다. 운 좋게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아주 기품이 흘러넘치고 사람을 압도할 만한 분위기를 지닌 여자였다.“고영은? 인여궁?”유진우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바로 물었다.“선배님, 고영은이라는 분의 묘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허무맹랑한 물건이라고 했던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조안태가 한숨을 내쉬었다.“50년 동안 고영은의 묘를 찾아다닌 사람이 수두룩한데 지금까지 찾아낸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러니까 이 검은 꽃무릇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죠.”“찾지 못했다고 해서 없는 건 아니잖아요.”유진우가 진지하게 말했다.“무슨 방법을 써서든 검은 꽃무릇을 찾아내고 말 겁니다. 그래도 안 되면 주술교에 쳐들어가는 수밖에 없죠.”“미쳤어요? 거긴 아주 위험한 곳이에요.”조안태의 표정이 급변했다.“선미 씨는 저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쳤는데 위험한 곳에 들어가는 게 뭐가 대수라고요.”유진우의 눈빛이 매우 확고했다.“하지만...”조안태는 말을 잇지 못했다.“선배님, 선미 씨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어요?”유진우가 갑자기 물었다.“그건 나도 확실하게 말하긴 어려워요. 길면 보름이고 짧으면 닷새 정도인데 선미 씨 본인의 의지에 달려있어요.”조안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유진우는 아무 말 없이 허리를 굽혀 조선미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하고 부드럽게 말했다.“선미 씨, 내가 돌아올 때까지 꼭 버텨요... 나랑 평생 함께하겠다면서요. 그 약속 지켜야죠. 내가 무슨 대가를 치르든 반드시 구해줄 테니까 기다려요.”그러고는 문을 나섰다. 그의 두 눈에 전에 본 적 없었던 확고함이 가득했고 살짝만 건드려도 미쳐 돌아갈 것만 같았다....교외에 정원이 딸린 어느 한 고급 별장.인여궁 궁주 백수정과 몇몇 제자들이 한 데 둘러앉아 완전하지 않은 인여경을 연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꼼꼼하게 살펴도 그 어떤 수상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다.“청하야, 이 안에 다른 게 숨겨져 있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