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만규만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만규야, 뭐 해? 어서 돌아가.”황보용명이 담담하게 말했다. 송만규는 대답 없이 그를 훑어보고는 유진우에게 물었다.“유진우 씨, 이분은 어디서 데려온 겁니까?”“만규야, 그게 무슨 소리야?”“당신, 언제까지 연기할 거야?”“무엄하다! 감히 스승님께!”“흥! 당신 정체가 뭔지 한번 보자!”송만규는 차갑게 웃고는 황보용명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그 뒤 뭔가 잘못됐다는 듯이 뒷걸음쳤다. 곧 잡히려 할 때, 유진우가 송만규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맹주님, 대화로 풉시다.”“못된 놈! 감히 스승님을 공격해? 이 배신자야!”“됐어요, 연기 그만 해요. 송 맹주님 이미 알아챘어요.”유진우가 뒤를 쳐다보며 경고했다. 그 말을 들은 황보용명의 얼굴에 분노가 사라지고 장난기 어린 웃음이 떠올랐다. 이어 쨍한 여자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무도 마스터는 역시 다르네요,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었는데도 가면인 걸 알아챌 줄은 몰랐어요.”그가 얼굴을 잡아당기자 황보용명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가히 절세미인이라 칭할 만큼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설연홍이었다.송만규가 인상을 쓰고 말했다.“누굽니까?”“변신술 전문인 제 친구입니다. 황보춘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탁한 것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그렇군요. 좋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결백을 증명하기 위한 선택이니, 이해할 수 있습니다.”“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유진우가 작게 고개를 숙였다. 설연홍더러 황보용명으로 변장해 연기를 펼치게 했으니, 고인을 존중하지 않았다 해도 할 말이 없었다.“용건만 말하죠. 결백을 증명했으니, 저도 기쁩니다. 강남 무도 연맹은 당신 같은 젊은 인재가 필요합니다. 얼마 후면 이곳은 당신들의 무대가 될 겁니다.”“과찬입니다.”송만규가 뭔가 생각난 듯 약병 하나를 유진우에게 건넸다.“맞다. 이걸 까먹을 뻔했네요. 7일 탈명단의 해독제입니다. 어서 마셔요. 독이 뼈에까지 침투하면 후유증이
풍우 산장의 한 방 안.유진우는 보랏빛 얼굴을 하고 침대에 누워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몸속의 독소와 진기가 서로 맞부딪치며 치열하게 겨루고 있었다. 그의 코에서는 가끔 검은 피가 흘러내렸다.약왕 경철호는 침대 옆에 앉아 심각한 얼굴로 조심스레 유진우의 몸에 침을 꽂아 독소를 빼내고 있었다.장 어르신, 설연홍, 황은아 등 사람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 옆을 지키고 있었다. 7일 탈명단도 해독하지 못했는데 맹독 하나가 더 들어오다니, 불 난 집에 기름 뿌리는 격이었다.송만규는 강남 무도 연맹을 거느리고 소홍도를 찾아 헤맸지만, 아직 소식이 없었다. 이제 모든 건 약왕에게 달렸다.시간이 흐르며 경철호의 이마에는 땀이 돋아났고, 호흡도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의 은바늘이 한 개씩 꽂히자, 유진우의 가슴에 일렁거리는 검은 기가 보였다.침을 꽂은 후 경철호는 유진우에게 특효 해독단을 먹였다. 이는 많은 독을 해독할 수 있었지만, 이 희귀한 독약에는 약간의 억제 작용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얼마나 지났을까, 경철호가 몸을 일으켰다.“후...”“선배님! 어떻게 됐어요? 괜찮은 거죠?”황은아가 급히 물었다. 그녀는 수련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유진우의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다.“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유 장로님의 몸에는 7일 탈명단과 화기산, 두 가지 독이 있는데, 그 두 가지 독이 만나 더 큰 독성을 내뿜고 있어요.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7일 탈명단도 해독하기 힘든데 거기다 무도 고수를 상대하는 화기산까지 더해졌으니 설상가상이었다. 유진우가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도 남았을 것이다.“약왕이시잖아요. 의술이 고명하다며, 이런 것도 못 해요?”황은아는 당황했다. 유진우는 아버지를 제외하고 그녀에게 진심으로 대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선배님! 돈은 얼마든지 상관없으니, 살려만 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장 어르신이 그대로 바닥에 꿇어앉았다.“부탁드립니다!”다른 사람들도 질세라 꿇어앉았다.“이러실 필요 없어요. 유 장로님은 약신궁 사람
“조선미 씨의 심정은 백번 이해하나 독은 이미 유 장로의 뼛속까지 파고 들어갔어요. 제가 여러 방법을 시도해봤지만 다 쓸모가 없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조안태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는 유진우를 중히 여겼고 심지어 약신왕 자리까지 물려주려 했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런 해독이 불가능한 독에 중독되었는지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었다.“말... 말도 안 돼요.”당황한 조선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만약 약신왕마저 치료할 방법이 없다면 대체 누가 치료할 수 있단 말인가?“잠깐만요!”그때 조선미의 뇌리에 문득 뭔가 떠올랐다.“선배님, 약신궁에 송장꽃이라는 아주 신기한 약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비법과 함께 사용하면 기사회생한다던데 그게 정말입니까?”“송장꽃이요?”조선미의 말에 조안태가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선미 씨, 송장꽃은 불길한 물건이라서 절대 사용해서는 안 돼요.”“왜 안 되는데요? 선배님 설마 저희가 살 돈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조선미는 애간장이 탔다.“돈이 문제가 아니에요.”조안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설명했다.“송장꽃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좋은 약이 아니라 아주 맹독성 물질이에요. 사용 조건도 까다로워서 의학계에서는 금지 약품으로 지정되었어요.”“좋은 약이든 독약이든 진우 씨만 살리면 돼요. 선배님은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조선미는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유 장로의 지금 상태로 송장꽃을 사용한다면 다른 사람이 목숨을 걸어야 해요. 그러니까 체내의 모든 독소를 다른 사람에게 옮겨서 목숨과 목숨을 바꿔야만 일말의 생존 기회가 생긴단 말이죠.”조안태가 한탄하며 말했다.“다른 사람의 목숨과 바꾼다고요?”그의 말에 적지 않은 사람의 표정이 급변했다. 치료하는 대가가 상상 이상으로 컸다.“다른 사람의 목숨과 바꾸는 건 단지 기본적인 조건일 뿐이에요. 문제는 아무나 목숨을 바꿀 자격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조안태가 계속하여 말했다.“목숨을 바꾸는 과정에서 희생하는 그 사람은 수만
“안녕, 내 사랑...”흐리멍덩한 의식 속 유진우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고 싶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떠지지 않았다.몸이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지옥에 빠진 듯 계속 밑으로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공포와 절망이 유진우를 덮쳤고 온 세상이 암흑이다 못해 빛이라곤 전혀 없었다. 이런 상태가 얼마나 지속되었는지도 모르겠다.1년? 10년? 아니면 100년?그런데 유진우의 정신세계가 완전히 무너져내릴 것만 같던 그때 한 줄기의 빛이 나타났다. 그는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미친 듯이 발버둥 쳐서 빛이 보이는 쪽으로 헤엄쳐갔다. 그렇게 빛과 점점 가까워지면서 드디어 빛과 한 몸이 되었다...“쓰읍!”병실 침대에 누워있던 유진우가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떴다. 기운이 폐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심장도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마치 환생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리고 무엇보다 체내의 독이 신기하게도 전부 사라졌다는 것이다. 몸이 아직 허약하긴 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유 장로, 드디어 깨어났군요. 이번 고비를 넘기지 못할까 봐 걱정 많이 했습니다.”지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유진우가 눈을 떠보니 약신왕 조안태가 침대 옆에 앉아있었다. 땀에 흠뻑 젖은 채 안색이 창백했고 숨도 거칠게 내쉬는 게 진기를 아주 많이 소모한 듯했다.“약신왕 선배님께서 살려주셨군요. 이 은혜를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유진우가 재빨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가 중독된 독은 거의 해독 불가능한 독이었다. 조안태가 황천길에서 맴도는 유진우를 끌어오느라고 얼마나 큰 대가를 치렀는지 모른다. 정말 생명의 은인이었다.“유 장로, 난 그저 진기를 조금 소모했을 뿐 딱히 한 거 없어요. 유 장로가 고마워해야 하는 사람은 이분입니다.”조안태가 한숨을 내쉬었다.“이분이요?”유진우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옆 침대에 얼굴에 핏기라곤 전혀 없는 아름다운 여인이 가만히 누워있었다. 호흡이 아주 미약하다 못해 가슴팍도 움직이지 않았
조선미가 기꺼이 목숨을 바치고 수만 마리의 개미가 뼈를 갉아 먹는 듯한 고통을 견뎌낸 것, 그리고 죽음에 임박했다가 마지막에 산송장이 된 것까지 이 전체 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유진우에게 말해주었다.왜냐하면 유진우가 반드시 이 사실을 알아야 하고, 조선미가 죽을 각오까지 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조안태의 설명을 듣던 유진우는 그대로 넋이 나갔다. 자리에 멍하니 선 채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조선미가 유진우를 위하여 목숨까지 내놓을 정도로 희생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유진우는 그제야 조선미의 사랑을 뼛속 깊이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이 무겁고 소중한 사랑을 그가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이건 선미 씨가 유 장로에게 남긴 편지입니다. 읽어보세요.”조안태는 복잡한 표정으로 조선미의 유언이 담긴 편지를 조심스럽게 건넸다. 지금까지 누군가를 존경하고 탄복한 적이 없는 그였는데 조금 전 조선미의 용기는 진심으로 존경할만했다.수만 마리 개미가 뼈를 갉아 먹는 듯한 고통은 무도 마스터라도 버틸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런데 여린 여자가 그 고통을 견뎌냈고 게다가 어떤 후회와 두려움도 없이 강인하고 단호했다.한 사람을 대체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해야만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조안태는 신이 와도 유진우의 목숨을 구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조선미를 통하여 일반인에게도 신과 겨룰만한 강력한 힘이 있다는 걸 문득 깨닫게 되었다.유진우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 봉투를 받고 열어보았다. 가지런한 글씨가 그의 눈앞에 또렷하게 나타났다.[여보, 당신이 이 편지를 읽을 때쯤이면 난 아마 이 세상에 없겠죠? 하지만 너무 속상해하지도 말고 자책하지도 말아요. 이 모든 건 다 내가 원해서 선택한 거니까. 사실 당신을 만난 그 순간부터 난 당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었어요. 처음에는 단지 재미나는 사람이라고만 여겼었는데 나중에 나도 모르게 진우 씨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머릿속에 매일 당신 얼굴이 떠오르고 한시도 잊을
조선미의 편안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유진우의 마음은 칼로 도려내듯 아팠다.조선미를 죽음으로 몰아간 자신이 미웠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두 사람의 목숨을 기꺼이 다시 바꾸고 싶었다.“잠깐! 바꾼다?”유진우는 문득 뭔가 떠올랐는지 굳어진 얼굴로 조안태를 보며 말했다.“선배님, 혹시 송장꽃이 더 있어요? 제 목숨으로 선미 씨를 살릴 겁니다.”“장난하지 말아요!”조안태가 미간을 찌푸리며 호통쳤다.“송장꽃이 무슨 길바닥에 널린 건 줄 알아요? 필요하면 갖다 쓰게? 그리고 선미 씨가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유 장로를 구했으면 잘 살아야죠. 그래야 선미 씨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요.”“전 선미 씨가 목숨을 바치게 할 수 없어요. 꼭 살릴 겁니다.”유진우가 핏발이 선 두 눈으로 언성을 높였다.“무슨 방법을 쓰든, 어떤 대가를 치르든 반드시 살릴 겁니다. 선배님, 선배님은 의학계의 거장이시잖아요. 당연히 본 것도, 들은 것도 많겠죠. 제발 저 좀 도와서 선미 씨를 살려주세요. 제가 이렇게 빌게요.”그러더니 털썩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당신 정말...”조안태는 화가 나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유진우의 고집을 절대 꺾을 수가 없었다. 하여 한참 망설이다가 결국 들어주기로 했다.“됐어요.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솔직하게 얘기할게요. 선미 씨가 지금 죽은 사람과 다를 바는 없지만 살릴 방법이 있긴 해요.”“무슨 방법입니까?”유진우의 두 눈이 번쩍였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정상적인 이치대로라면 선미 씨가 유 장로 체내의 독을 전부 흡입해서 살 가망이 아예 없어요. 그런데 7일 탈명단과 송장꽃이 서로 상극인지라 독으로써 독을 물리친 덕에 결국 절반 넘게 해독되어 선미 씨가 아직 숨이 붙어있는 거예요. 지금 선미 씨를 살리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하나는 봉황 독충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검은 꽃무릇을 찾는 거예요. 하지만 이 두 가지를 찾는 게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워서 거의 없다고 보면 돼요
50년 전 조안태가 아직 풋내기이던 시절 고영은은 이미 세상에 명성을 떨쳤다. 운 좋게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아주 기품이 흘러넘치고 사람을 압도할 만한 분위기를 지닌 여자였다.“고영은? 인여궁?”유진우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바로 물었다.“선배님, 고영은이라는 분의 묘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허무맹랑한 물건이라고 했던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조안태가 한숨을 내쉬었다.“50년 동안 고영은의 묘를 찾아다닌 사람이 수두룩한데 지금까지 찾아낸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러니까 이 검은 꽃무릇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죠.”“찾지 못했다고 해서 없는 건 아니잖아요.”유진우가 진지하게 말했다.“무슨 방법을 써서든 검은 꽃무릇을 찾아내고 말 겁니다. 그래도 안 되면 주술교에 쳐들어가는 수밖에 없죠.”“미쳤어요? 거긴 아주 위험한 곳이에요.”조안태의 표정이 급변했다.“선미 씨는 저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쳤는데 위험한 곳에 들어가는 게 뭐가 대수라고요.”유진우의 눈빛이 매우 확고했다.“하지만...”조안태는 말을 잇지 못했다.“선배님, 선미 씨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어요?”유진우가 갑자기 물었다.“그건 나도 확실하게 말하긴 어려워요. 길면 보름이고 짧으면 닷새 정도인데 선미 씨 본인의 의지에 달려있어요.”조안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유진우는 아무 말 없이 허리를 굽혀 조선미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하고 부드럽게 말했다.“선미 씨, 내가 돌아올 때까지 꼭 버텨요... 나랑 평생 함께하겠다면서요. 그 약속 지켜야죠. 내가 무슨 대가를 치르든 반드시 구해줄 테니까 기다려요.”그러고는 문을 나섰다. 그의 두 눈에 전에 본 적 없었던 확고함이 가득했고 살짝만 건드려도 미쳐 돌아갈 것만 같았다....교외에 정원이 딸린 어느 한 고급 별장.인여궁 궁주 백수정과 몇몇 제자들이 한 데 둘러앉아 완전하지 않은 인여경을 연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꼼꼼하게 살펴도 그 어떤 수상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다.“청하야, 이 안에 다른 게 숨겨져 있는 게
백수정의 분부에 부하들이 구리 대야를 가져왔다. 한 구리 대야에는 물을 가득 담았고 다른 구리 대야에는 숯불을 붙였다.“일단 해보자.”백수정은 심호흡한 후 인여경을 물에 던졌다.한 무리 사람들은 혹시라도 생각지 못한 장면이 펼쳐지는 건 아닌지 기대하며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한참이 지나자 인여경이 잠잠해졌다.백수정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부여잡고 꺼내서 자세히 살폈다. 그런데 인여경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사부님, 제가 얘기했잖아요. 이 방법은 쓸모없다고요.”차연주가 낮은 목소리로 불만을 드러냈다.“불로 태워보자.”백수정은 이를 꽉 깨물고 인여경을 불 속에 던지려 했다.“사부님.”차연주가 다급하게 말렸다.“물에 젖으면 말리기라도 하면 되는데 불에 타면 아무것도 남질 않아요. 신중하게 고려하세요.”“인여경의 내용은 이미 눈 감고 외울 정도로 달달 익혔어. 남겨둬봤자 쓸데도 없어.”백수정은 차연주의 손을 홱 뿌리치고 인여경을 숯불 속에 던져버렸다.파란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인여경이 순식간에 활활 타오르다가 검은 잿더미만 남게 되었다.“사부님, 안에 뭔가 있는 것 같아요.”눈치 빠른 홍청하가 뭔가 다른 점을 발견했다.“역시 뭔가 있었어!”자세히 살펴보던 백수정의 두 눈이 저도 모르게 번쩍 띄었다. 재빨리 숯불을 끈 후 검은 잿더미를 이리저리 뒤지다가 결국 특별 제작된 금박을 발견했다. 깨끗하게 씻고 보니 금박에 지도가 새겨져 있었다.그리고 지도에 표기된 마지막 지점이 바로 고영은의 묘였다!“고영은? 우리 선배님 아니야?”놀라움도 잠시 백수정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하하... 너무 잘됐어. 그렇게 찾아다닐 때는 보이지 않더니 의식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찾았네? 이 인여궁 안에 선배님이 남기신 보물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어. 역시 하늘은 우리 편이야.”고영은은 인여궁의 제3대 궁주이자 역대 가장 훌륭하고 강하며 앞날이 창창한 궁주였다. 50년 전 그녀는 세상을 휩쓴 인재였고 용국 백 년이래 가장 뛰어난 여자 마스터였다. 그런 그녀와
“어쨌든 이 진무열이 천교 랭킹에서 3위를 차지할 정도라면 분명 비범한 능력을 가졌을 겁니다. 기회가 되면 한번 만나보세요. 그래도 친척이잖아요.” 이청성은 반쯤 농담 식으로 말했다. “적일지 아군일지 아직 모릅니다. 난 진씨 가문에 그다지 좋은 감정이 없어요.” 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렇게 온화하고 선량한 사람이었지만 진씨 가문에 의해 가문을 떠나야만 했고 이후 한 번도 그곳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것만 봐도 진씨 가문이 결코 좋은 집안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진무열이 어떻든 유진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물론 진씨 가문이 인재를 길러내는 데 있어 독보적인 능력을 가진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공주님은 그 정도 실력을 가졌으니 천교 랭킹에도 올라야 정상 아닌가요? 그런데 왜 이름이 없죠?” 유진우가 문득 물었다. “이건 무림인들의 세계의 순위표예요. 황실 인물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청성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 천기각이 아무리 강력한 정보기관이라 해도 모든 걸 완벽히 알 수는 없어요. 이 순위표는 단지 참고용일뿐 절대적인 건 아닙니다. 용국은 땅이 넓고 숨은 고수들이 많으니 우리가 모르는 곳에 더 강한 인물들이 있을지도 모르죠.” “그건 맞는 말이네요.” 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고 사람 위에 또 다른 사람이 있는 법. 천교 랭킹에 들지 않은 강자가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마지막 순위표를 발표할게요. 이번에는 경천 랭킹입니다.” 이청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경천 랭킹은 용국 최정상 강자들의 순위표로 이름을 올린 사람은 각 지역의 거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먼저 경천 랭킹 1위는 여전히 변함없는 존재, 용호산의 장선기입니다.” “그리고 2위와 3위는 큰 변화가 있었어요. 이전에는 호룡각 각주 이원무와 서경검선 백준이 차지했었죠. 하지만 지금은 2위가 검종의 종주, 홍흥조예요.” “3위는 천하회의 종주, 소
“신병 랭킹 4위는 취설검, 소유자는 홍흥조.” “신병 랭킹 5위는 패왕도, 소유자는 소명.” “신병 랭킹 6위는 추성검, 소유자는 한서.” “신병 랭킹 7위는 천뢰도, 소유자는 진무열.” “신병 랭킹 8위는 황천검, 소유자는 홍군림.” “신병 랭킹 9위는 창궁검, 소유자는 유장혁.” “신병 랭킹 10위는 폭우이화침, 소유자는 당흠.” 이청성은 신병 랭킹의 순위를 차례로 읊으며 그에 관련된 정보를 전달했다. 신병 랭킹에는 신병의 이름뿐 아니라 그 소유자의 정보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한 사람이 신병 랭킹 상위 10위에 두 자루나 이름을 올리다니, 이게 기쁠 일인지 걱정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군.” 유진우는 리스트를 들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신병 랭킹에 오른다는 건 겉으로는 영광스럽게 보일지 몰라도 동시에 커다란 위험을 동반한다. 이른바 ‘옥이 무거우면 지키는 자가 고생한다’는 말처럼 신병을 손에 넣은 이상 이를 지킬 만한 강한 실력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각지의 고수들이 신병을 노리고 몰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두 자루나 가졌으니 속으로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청성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무도 고수들이 제대로 된 병기를 하나도 가지지 못하고 있어요. 그런데 당신은 혼자서 두 자루를 차지했으니 그들이 얼마나 부러워할지 상상이 가네요.” “저는 번거로운 일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신병 랭킹이 발표된 이상 앞으로 제 무기를 노리는 고수들이 끊임없이 찾아오겠군요. 일일이 방어하는 것도 쉽지 않을 거예요.” 유진우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청성은 웃으며 대꾸했다. “사람들이 당신의 검을 빼앗으려면 먼저 자신의 실력을 고려해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숨만 잃게 될 테니 그런 멍청한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오호? 무슨 뜻이죠?” 유진우는 흥미롭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곧 알게 될 겁니다. 이제 나머지 두 개의 리스트를 들려줄게요.” 이청성
“당신이?” 유진우는 놀란 눈으로 이청성을 바라보며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공주 전하, 당신은 귀족 중의 귀족이고 신분이 고귀합니다. 이런 위험한 일에 뛰어드는 건 어울리지 않아요. 제가 당신을 끌어들일 순 없습니다.” “뭐죠? 저를 무시하는 건가요?” 이청성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순간, 날카로운 백색 강기가 그녀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와 창문을 뚫고 날아가더니 정원에 있는 바위산을 강타했다. “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바위산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가루가 되었다. “마스터 강기?” 유진우의 동공이 흔들렸다. “설마 당신이 무도 마스터란 말입니까?” 여성이 무도를 수련하는 것은 남성보다 훨씬 어렵다. 그중에서도 여성이 마스터 경지에 이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유진우는 부드럽고 나긋나긋해 보이는 이청성이 이미 마스터 경지에 도달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더 놀라운 점은 그와 오랫동안 함께 있었음에도 그녀의 정체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여자는 정말 철저히 감추고 있었구나.’ “제 실력은 당신만큼은 아니지만 부담을 덜어줄 정도는 됩니다.” 이청성은 평온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약 당신이 남자였다면 황제 자리는 틀림없이 당신 것이었을 겁니다!” 유진우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친제감 사람들이 대체로 무력을 추구하지 않고 점복술, 기문둔갑에 더 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청성이 마스터 경지에 이를 정도로 무술에 능통하다면 그녀가 익힌 술법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녀가 이전에 사용했던 호신 부적만 보더라도 이는 명백했다. “빈말 그만하고요.” 이청성은 손을 흔들며 대화를 끊었다. “당신을 돕겠다고는 했지만 조건이 있어요.” “어떤 조건이죠?” 유진우가 물었다. “간단합니다. 저를 도와 용원의 기를 찾아주세요.” 이청성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물론 찾으면 공평하게 나누죠.” “황제의 자리에 오를 것도 아니면서 용원의 기는 왜 찾으려고 하는 겁니까?” 유진우
그 무엇보다도 배신이 가져온 심리적 충격이 가장 컸다. “유장혁 씨, 제가 한 가지 충고하겠어요. 말라죽은 낙타가 말보다 크다고 하잖아요. 호룡각이 비록 큰 타격을 입었지만 남은 잔당들 역시 여전히 강력한 세력입니다. 절대 방심하면 안 됩니다.” 이청성은 엄중한 말투로 말했다. “알고 있어요.” 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할 겁니다.” “그럼 다행이네요.” 이청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제가 혼수상태에 있던 이 사흘 동안 특별한 일이 있었나요?” 유진우가 다시 물었다. “당신 말에 생각난 게 있네요.” 이청성은 무언가 떠올린 듯 말했다. “황실 정보에 따르면 최근 호룡각 잔당들이 연경을 떠난 것 같아요. 그들이 운영하던 은밀한 사업들도 모두 문을 닫았다고 하더군요.” “연경을 떠났다고요? 어디로 갔죠?” 유진우는 다급히 물었다. “정확한 정보는 없지만 여러 정황으로 판단해 보면 호룡각 잔당들은 서경으로 향한 것 같아요.” 이청성이 말했다. “서경?” 유진우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설마 서경왕부를 노리려는 건가요?”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이청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되겠어요! 지금 바로 서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유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상처가 땅겨 아팠고 이내 숨을 들이켰다. “움직이지 말아요!” 이청성은 그의 어깨를 눌렀다. “지금 당신은 원기가 크게 손상됐고 관통상을 입었어요. 비록 제가 옥로고를 발라줬지만 완전히 회복하려면 며칠 더 쉬어야 해요.” “시간이 없어요! 호룡각은 이미 준비를 마쳤을 테니 이번 서경행에는 큰 음모가 있을 거예요. 반드시 그들을 막아야 합니다!” 유진우는 단호히 말했다. “지금 당신 상태로 어떻게 막으려는 건가요?” 이청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채원진의 실력은 깊이를 알 수 없고 곁에는 강력한 고수들이 있어요. 당신이 전성기라 해도 그들을 막기 어렵겠죠. 지금처럼 부상 중인 상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 채 유진우는 점차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그의 상반신은 두꺼운 붕대로 감겨 있었고 팔다리는 무겁고 힘이 없었으며 숨결 또한 매우 약했다. “나 안 죽었나?” 유진우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고 방 안의 환경을 둘러보았다.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전에 와본 적이 있는 곳 같았다. “깨어났군요?” 이때, 이청성이 맑은 죽 한 그릇을 들고 천천히 방으로 들어왔다. “당신 부상이 심각했지만 기초 체력이 좋아 다행히 구해낼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저를 구했나요?” 유진우는 놀란 기색을 띠며 물었다. “그럼 누구겠어요?” 이청성은 담담히 대답했다. “전에 내가 준 호신 부적이 결정적인 순간에 당신의 심맥을 지켜주고 강력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줬어요. 덕분에 당신을 저승 문턱에서 끌어낼 수 있었죠.” “그 호신 부적에 그런 기적 같은 능력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그런 귀한 물건, 혹시 남은 거 없나요? 두어 개만 더 주시면 안 될까요?” 유진우는 뻔뻔스럽게 말했다. 어쩔 수 없었다. 최근 그의 상황이 너무 위험했다. 강적을 만나지 않으면 가까운 주변에서 내통자가 나오기 일쑤였다. 며칠 만에 몇 번이나 생사를 오갔으니 목숨을 지킬 보물이 간절히 필요했다. “흥! 당신은 그걸 장바구니에 들어 있는 배추쯤으로 아는 건가요? 있다고 쉽게 줄 수 있는 물건인 줄 알아요?” 이청성은 짜증 섞인 말투로 답했다. “호신 부적 하나를 만들려면 제가 10년의 수명을 소모해야 해요. 게다가 호신 부적이 파괴되면 저도 그만큼 부상을 입어요. 지금껏 제 생에 단 두 사람에게만 호신 부적을 준 적 있습니다. 한 사람은 우리 아바마마고 다른 한 사람은 바로 당신이에요.” “10년 수명을 소모한다고요? 그렇게 귀한 건가요?” 유진우는 깜짝 놀랐다. 수명을 대가로 만든 보물은 확실히 범상치 않았지만 동시에 위험성도 매우 컸다. 특히 이처럼 한 번 사용하면 사라지는 소모품이라면 그 가치가 더욱 어마어마했다. “제가 농담하는 줄 알았어
놀랍게도 그는 바로 유진우에게 중상을 입은 사철수였다. “사 장로님, 부상당하셨습니까?” 용좌에 앉아 있던 가면을 쓴 남자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쉰 듯한 음색이었다. “작은 부상입니다. 죽지는 않겠지요.” 사철수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는 사이 그는 다시 또 기침하며 피를 토해냈다. “보아하니 꽤 심각한 것 같은데 이 약을 복용하십시오.” 가면을 쓴 남자가 갑자기 손을 휘두르자 검은색 약이 공중으로 튀어 날아갔다. “감사합니다.” 사철수는 약을 재빨리 잡아들고는 망설임 없이 머리를 젖혀 그것을 삼켰다. 호룡각의 영단묘약은 엄청 귀중한 보물로 아무리 심각한 부상이라도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었다. 물론, 이런 영단묘약은 상층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송 어르신...” 사철수가 뭔가를 말하려던 찰나 가면을 쓴 남자가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지금 저는 채 씨입니다. 저를 채 선생이라 부르든 채 각주라 부르세요. 과거의 이름은 다시는 입에 올리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채 각주.” 사철수는 몸을 낮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 장로님, 제가 맡긴 임무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면을 쓴 채원진이 물었다. “유장혁의 심장을 칼로 찔렀습니다. 별다른 이변이 없다면 지금쯤 이미 죽었을 겁니다.” 사철수가 보고했다. “훌륭하네요!” 채원진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 장로님, 또 한 건의 큰 공을 세우셨군요!” “채 각주, 당신이 시킨 대로 했으니 제 딸을 풀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철수는 간절히 부탁했다. 그가 여전히 호룡각의 명을 따르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딸 때문이었다. 그의 사랑하는 딸은 이미 호룡각에 의해 감금된 상태였다. 1년에 한 번밖에 얼굴을 볼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가 조금이라도 명령에 불복하거나 배반하려는 기색을 보이면 그의 생명은 물론 딸 역시 끔찍한 고문과 굴욕을 겪게 될 터였다. 이것이 호룡각이 간첩을 통제하는 방식이었다. 단순하고도 폭력적이며 매우
삼 분 후, 모든 호룡각의 킬러들은 이미 피를 뿌린 채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온몸이 피로 물든 유진우는 흔들리며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의 몸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고 내면의 강력한 진기 역시 모두 사라지면서 그는 이제 거의 죽음에 가까웠다. 눈앞의 풍경은 점점 흐릿해지고 심장박동은 거의 멈춰 있었다. “이렇게 많은 위험을 겪고도 결국엔 내가 내 사람의 손에 죽다니, 정말 웃기네.” 유진우는 차가운 웃음을 짓고 가슴에 박힌 칼을 내려다보며 두 손으로 칼을 움켜잡고 힘껏 뽑았다. 순간,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죽을 때 칼이 몸에 꽂혀 있는 건 보기 싫었다. 칼을 빼자 유진우는 머리가 어지러워지며 결국 ‘쿵!’하고 땅에 쓰러졌다. 이내 의식이 완전히 끊어졌다. 유진우가 쓰러질 때 그의 몸에 항상 지니고 있던 부적이 갑자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빛은 금빛으로 변하며 유진우의 이마에 흡수되더니 사라졌다. 영혼 부적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면서 그 안의 강력한 에너지가 유진우의 사지와 백골을 휘감으며 퍼졌다. 이전에 사철수가 뿌린 이상한 독은 이 에너지에 접촉하자마자 급속히 분해되었고 더 이상 저항할 힘이 없었다. 유진우의 내부 상처와 방금 뚫린 치명적인 칼자국도 이 에너지를 받고 조금씩 회복되었다. 그 에너지 안에는 생명의 기운이 넘쳐흘러 원래 생명을 잃었던 유진우를 천천히 죽음의 문턱에서부터 끌어당기고 있었다. 이 시각, 수십 리 떨어진 어느 비밀 저택에서 명상 중이던 이청성은 갑자기 몸이 움찔하더니 입에서 피를 뿜어냈다. 그녀의 완벽한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호신 부적이 손상된 건가?” 이청성은 이마를 찡그리며 손가락으로 수를 놓으며 계산을 했고 그 결과를 확인하고 얼굴이 크게 변했다. “큰일 났다!” 생각할 틈도 없이 이청성은 곧바로 마법을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몸을 한 줄기의 빛으로 바뀌더니 황급히 어딘가로 향했다. 이 시각, 호룡각의 비밀 기지 안에서는 가면을 쓴 한 남자가 금색 의
이제 유진우가 할 수 있는 건 함께 죽는 것뿐이었다. “응?” 유진우의 빠른 철권을 맞닥뜨린 사철수는 눈이 커지며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막았다. “펑!”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사철수의 두 팔이 그대로 부러졌고 그의 몸은 마치 자루처럼 10미터 정도 날아가다가 땅에 떨어졌고 입에서는 피가 터져 나왔다. “배신자!” 유진우는 눈을 부릅뜨고 분노를 터뜨리며 계속 공격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사철수는 상황이 급박해지자 두 손으로 인을 그렸고 발을 힘껏 구르자 갑자기 그의 몸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한 무더기의 옷만 남았다. 이건 분명히 기문둔술이었다. “와!” 사철수가 도망친 뒤 유진우는 거칠게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그는 흔들리며 쓰러질 듯한 몸을 지탱했다. 전 상처가 아물지 않았고 몸은 독에 중독되었으며 가슴을 관통한 그 칼이 여전히 그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제 유진우는 죽음 직전까지 다가갔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전하!” 손도운은 절망하며 소리를 질렀지만 중상을 입은 상태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진우 형님!” 왕현 역시 비틀거리며 일어설 수 없었다. 세 사람의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고 게다가 호룡각의 킬러들이 여전히 주변에 많았다. “왕현 씨! 손도운을 데리고 먼저 가요!” 유진우는 부서진 몸을 힘겹게 지탱하며 어떻게든 쓰러지지 않으려고 했다. 칼이 몸에서 뽑지 않는 한 대략 한 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진우 형님! 그럼 형님은요?” 왕현은 당황스러워하며 물었다. 세 사람 중 유진우의 부상이 가장 심각했다. “걱정하지 마요. 저는 수련이 깊으니 죽지 않아요.” 유진우는 겨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만 떠들고 손도운 데리고 가요!” 왕현은 계속 말하려 했지만 유진우의 호통에 말을 잇지 못하고 결국 손도운을 부축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호룡각의 킬러들은 두 사람을 쫓지 않고 오히려 유진우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표는 분명했다. 다른 두 명
유진우는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자신을 습격한 사철수를 보며 순간적으로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그는 내통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을 의심해 왔다. 왕현, 유공권 등도 그중 하나였지만 유독 사철수만은 의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철수는 그동안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었고 왕부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 그래서 그는 사철수에 대해 항상 죄책감을 느껴왔고 그랬기에 아까 전심을 다해 치료해 주었던 것이다. 자신이 독에 걸리고 상처를 입어도 사철수를 구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하지만 그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왕부의 결사대원이었고 마치 가족처럼 여기던 사철수가 뒤에서 칼을 꽂을 줄은... ‘도대체 왜?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 “아저씨? 뭐 하시는 거예요?” 유진우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장혁아, 미안하다. 이렇게 해야만 했어.” 사철수의 얼굴은 복잡해 보였고 그 눈빛에는 죄책감이 섞여 있었다. “예전에 내가 말했지. 그때의 진실을 조사하지 말라고. 그런 건 죽음을 부를 위험이 크다고. 그런데 왜? 왜 너는 그걸 듣지 않았니? 너는 잘 살 수 있었는데 왜 이렇게 스스로 죽으려 드는 거야?” “당신... 도대체 누구야?” 유진우는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나 사철수는 서경 중군 부장이지만 그전에 내 진짜 신분은 호룡각의 밀사였다.” 사철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호룡각의 밀사?” 유진우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사철수가 호룡각에서 보낸 첩자라는 사실을. ‘그렇다면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들이 그를 습격한 것은 사철수가 미리 정보로 전달했기 때문일까? 그리고 그때 터졌던 검은 독기 역시 사철수의 짓이라고?’ 사철수는 일부러 자신을 독에 중독시켜 유진우에게 독을 풀게 하면서 붉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공격할 기회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얽힌 계략은 그를 완벽하게 속여왔고 지금까지 아무런 의심 없이 믿고 있던 것들이 전부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