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눈앞에서 휘두르는 칼날에 유진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이유 불문하고 무작정 날 스파이라고 몰아붙이네? 이런 횡포가 어디 있어?’“라희 씨,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유진우 씨는 스파이가 아니에요!”조선미가 얼른 해명했다.“오해인지 아닌지는 조사해보면 다 나와요.”라희가 차갑게 쏘아붙였다.“일단 묶어. 감히 반항하면 당장에서 죽여버려!”“날 죽인다고?”유진우가 미간을 찌푸렸다.“제대로 조사하지도 않고 막 밀어붙이는 거야? 너무한 거 아니야?!”“조씨 가문의 대업을 위해서라면 더 한 일도 할 수 있어!”라희가 으름장을 놓았다.“왜 그렇게 내가 스파이라고 확신하는 건데?”유진우가 되물었다.“확신할 필요 없어.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그야말로 일방적인 여인이었다.그녀의 횡포함에 유진우는 낯빛이 서서히 어두워졌다.그는 줄곧 차분하게 얘기하고 있지만 라희는 다짜고짜 그를 스파이라고 몰아붙였다.이건 대놓고 사람을 업신여기는 행위였다!“라희 씨, 아직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 없어요. 일단 진정해요!”조선미가 단호하게 말했다.“난 선미 씨 호위 팀장으로서 선미 씨의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어요. 저 자식은 속셈을 헤아릴 수 없으니 딱 봐도 나쁜 놈이에요!”라희가 대답했다.“라희 씨가 오해하셨어요. 진우 씨가 날 구해줬어요. 진우 씨가 아니면 우린 천호 리조트에서 나오지도 못했을 거예요.”옆에 있던 조아영도 한마디 덧붙였다.“그건 단지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한 쇼일 뿐이에요! 다들 감쪽같이 속았다고요!”라희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하지만...”조아영이 말을 이어가려 할 때 라희가 덥석 가로챘다.“됐어요! 여러분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잘못 죽이는 한이 있어도 절대 단 한 명도 놓치지 않을 거예요!”“나 참 어이가 없네. 우리 서로 원한을 맺은 것도 아닌데 대체 왜 이렇게 날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야?”유진우가 담담하게 물었다.“적당히 해! 이분들을 속일 수 있어도 나한텐 안 통해. 죽기 싫으면 얌전히 묶여있어!
“말도 안 돼! 라희가 스파이였다고?”조아영의 말을 들은 뭇사람들이 충격에 휩싸였다.다들 킬러들의 옷을 벗기고 똑같은 문신을 보았을 때 그제야 안색이 변했다.이는 절대 우연의 일치일 리가 없다.“고작 문신만으로 뭘 설명하겠어?”대머리 호위가 질의를 건넸다.“이 한 개의 문신만으론 설득력이 약하겠지.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문신을 하고 있다면?”유진우는 앞으로 다가가 라희의 부하들의 옷을 싹 다 벗겼다.곧이어 뭇사람들은 이 부하들의 몸 여러 부위에 같은 문신이 새겨져 있는 걸 발견했다.한 명은 우연이라 할 수 있지만 십여 명이 다 있는 건 변명할 여지가 없다.이로써 스파이 사건이 막을 내렸다!“어쩐지... 라희가 나타나자마자 흠집을 잡더라니, 본인이 배신자였어!”유강은 놀랍고도 울화가 치밀었다.다 같은 조씨 일가의 엘리트로서 그는 이런 배신자가 너무 싫었다.“하지만 왜? 조씨 일가에서 줄곧 라희를 중점인물로 배양했는데 왜 배신한 거야?”조아영이 미간을 찌푸리고 의아한 듯 말했다.“명예만큼 사람을 유혹하는 건 없어요. 일단 그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면 배신을 하게 되죠. 진우 씨가 예리한 눈썰미로 당장에서 스파이를 잡아냈으니 망정이지 안 그러면 우리 모두 위험해졌을 거예요!”유강은 뒷일만 생각하면 소름이 끼쳤다.배신자를 옆에 두는 건 시한폭탄과 다름없는 일이니까.언제 등에 칼을 꽂을지 모를 일이다.“언니, 이젠 어떡해?”조아영은 살짝 횡설수설하며 물었다.“햇빛 아래 바퀴벌레 한 마리가 기어 나왔다는 건 우리가 보이지 않는 곳에 수천 마리의 바퀴벌레가 더 있다는 걸 말해줘. 이번 일은 아빠한테 알려서 철저하게 조사하도록 할 거야!”조선미가 진지하게 대답했다.반역자가 나타난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이는 외적의 침입보다 훨씬 엄중하다.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제때 처리하지 않으면 어떤 후폭풍이 휘몰아칠지 모른다!“맞아! 무조건 철저하게 조사해야 해! 이런 배신자들이 제일 가증스러워!”조아영은 머리를 세게 끄덕였다.
배신자를 짓밟아 죽인 후 유진우는 허약한 조선미를 안고 차에 실었다.조선미가 뱀에 물린 부위는 이미 검푸른 자국으로 변했다.게다가 독소가 계속 퍼지고 있어 다리 전체가 마비됐다.“살짝 번거롭게 됐군...”유진우는 자세히 살펴보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일반 독은 가볍게 해독할 수 있지만 이번의 독사는 이상하리만큼 흉포했다!게다가 유진우는 약재도 없고 은침도 없어 의술을 펼칠 여건이 못됐다.이젠 입으로 흡입할 수밖에...“조하영 씨, 이리 와서 나 좀 도와줘요.”유진우가 고개 돌려 조아영을 불렀다.“저는 조아영이에요! 하영 아니라 아영!!!”조아영은 그의 말을 수정한 후 재빨리 차에 타며 물었다.“내가 뭘 하면 되죠?”“언니분 바지를 벗겨요.”유진우가 분부했다.“이봐요! 지금 뭐 하려는 수작이에요? 경고하는데 함부로 하지 말아요!”조아영은 엉큼한 늑대를 쳐다보듯 그를 바라봤다.“언니분 몸에 독이 퍼져서 내가 전부 흡입해내야 해요.”유진우가 설명했다.“네?”조아영은 흠칫 놀라더니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상처 부위가 다리 안쪽인데! 설마 이 틈을 타서 진우 씨 좋을 노릇만 하려는 건 아니죠?”“사람 목숨이 달렸어요. 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어찬 거예요?”유진우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의사는 환자의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 못 들어봤나요?”“그런 것도 같네요.”조아영은 그의 말도 제법 일리 있어 보였다.“계속 멍하니 있을 거예요? 얼른 바지 벗기라니까요!”유진우가 다그쳤다.“네, 알았어요.”조아영은 감히 더 망설이지 못한 채 바지를 벗겼다.상처가 훤히 드러나자 유진우는 유심히 살피더니 고도로 집중하여 손을 대기 시작했다.비록 조금 당돌하긴 하지만 사람 목숨을 구하는 일이 우선 순이니 다른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유진우는 재빨리 독을 빨아내기 시작했다.그는 한 모금 흡입하여 곧장 검은 피를 내뱉었다.그리고 또다시 흡입하고 내뱉었다.한시라도 쉬지 않고 이 동작만 반복했다.이때 혼미해 있던
황혼 무렵, 병원 모 병실 안에서.한잠 푹 잔 유진우가 드디어 깨어났다.다만 눈을 뜨자마자 괴이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진우 씨 안 죽었어요?”유진우가 소리 나는 방향대로 시선을 돌리자 조아영이 옆에 앉아 그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왜요? 내가 안 죽어서 몹시 실망했나 봐요?”유진우가 어이없다는 듯이 쏘아붙였다.“그게 아니라... 살짝 의외여서요.”조아영은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선미 씨는요?”유진우는 그녀에게 더 따져 묻고 싶지 않았다.“진우 씨 약 구하러 갔어요.”조아영이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듣기로 진우 씨가 블랙 스네이크의 독을 흡입했다고 하던데 그거 독성이 엄청 강해서 무조건 죽는댔어요! 아직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니까요!”“그러게요. 블랙 스네이크가 대단하긴 한가 봐요. 날 한잠 자게 했으니 말이에요! 역시 10대 기이한 독성 중의 하나답군요.”유진우가 감개무량하게 말했다.그의 체질은 어떠한 독성도 침입해 들어올 수 없다.그런데 블랙 스네이크의 독은 한잠 자고 나서야 해독이 됐으니 실로 대단할 따름이었다!“이 말이 왜 이렇게 이상하게 들리지?”조아영이 머리를 긁적거렸다.그녀가 미처 정신 차리기 전에 불쑥 두 사람이 병실로 들어왔다.한 명은 조선미이고 다른 한 명은 화려한 옷차림에 몸매가 섹시한 젊은 여자분이었다.그 여자는 조선미와 조금 닮아 있었다. 옷차림도 화려할 뿐만 아니라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내뿜고 있었다.온몸에서 윗사람의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진우 씨! 드디어 깼네요! 지금 좀 어때요?”조선미는 두 눈을 반짝이며 병상 가까이 다가왔다.“한잠 잤더니 많이 좋아졌어요.”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자, 이건 내가 방금 구한 비밀 약재예요. 얼른 물과 함께 복용해요. 이걸 먹으면 무사할 거예요.”조선미가 작은 흰색 병을 유진우의 손에 쑤셔 넣으며 온수 한 잔 따랐다.“비밀 약재라니 어떤 비밀 약이죠?”유진우가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얕잡아보지 말아요. 이건 신의 강보현 씨
그 시각, 다른 입원실. 이 어르신은 정신을 잃고 창백한 얼굴로 누워있었다. 장경화는 이씨 집안 사람들과 함께 삼삼오오 모여 대책을 강구하고 있었다.“이상하네, 정정하시던 어르신이 갑자기 쓰러지시다니요?”“그러게 말입니다! 평소에는 건강하시던 분도 나이 앞에서는 안 되는 모양입니다.”다들 한숨을 푹 내쉬며 안타까움을 표했다.“할아버지는 어때요?”이때, 이청아가 하이힐을 신고 또각거리며 들어왔다.조금 전까지 회사에서 회의하던 그녀는 할아버지의 병세가 엄중하다는 소식에 바로 달려왔다. “청아야, 의사 선생 말로는 어르신이 버티지 못할 거라고 한다...”장경화가 고개를 저었다.“뭐라고요?”이청아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할아버지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으셨잖아요.”“나도 믿을 수 없어. 운명이란 게 이런 것인가 보다.”장경화가 한숨을 내쉬었다.“의사는요? 의사 불러줘요!”이청아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쓸데없어. 한의사도 불러봤는데 병세가 이상하다고 하더라. 이유를 알 수가 없대. 이렇게 가다가는 돌아가실 거래.”“안...안 돼!”이청아는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평소에 자기를 끔찍이 아끼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간다는 게 상상도 되지 않았다.“청아야, 내가 명의를 아는데 그분이 도와주실지도 몰라.”옆의 여호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명의? 누구요? 제 할아버지를 살려줄 수 있어요?”이청아는 정신을 차렸다.“설 의사라고 서울에서 온 의사인데 의술 실력도 뛰어나고 어떤 난치병이든 탕약만으로도 고칠 수 있대. 게다가 강보현 신의의 뛰어난 제자래!”여호준이 얘기했다.“강보현 신의의 제자?!”그 말에 사람들이 술렁였다.강보현은 신의로 남성에서 유명한 사람이니 다들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게다가 약왕이라고 불릴 만큼 의약계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다.그의 의술은 이미 신격화될 정도였다.그런 강보현의 제자라니, 설 의사도 보통이 아닐 것이 분명했다.“진짜 설 의사를 불러와 주실 수 있
“내가 못 한다고? 그래... 그럼 누가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는데?”유진우가 물었다. 인제 와서 발견한 것이 있다면 여자와는 논리적인 대화를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지금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는 건 의술이 훌륭한 설 의사뿐이야!”이청아는 한층 진지해진 표정으로 얘기했다.“그래! 호준이가 이미 설 의사를 데려오는 길이야. 그가 나선다면 이 어르신도 곧 깨어날 거야. 너 같은 게 나대는게 아니라.”“설 의사? 그건 또 누구야.”유진우가 물었다.“흥! 너와는 다르게 설 의사는 강보현 신의의 제자야! 각종 난치병을 치료하시지. 너보다 100배는 대단하시지.”장경화가 우쭐대며 얘기했다.말이 끝나게 무섭게 두 사람이 들어섰다.앞에 선 사람은 여호준이었다.그 뒤는 30대로 보이는 남자였다.남자는 긴 외투에 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오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호준아, 어때? 설 의사를 청해왔니?”장경화가 재빨리 호준에게 다가섰다.“당연하죠.”여호준이 웃으며 안경 쓴 남자를 가리켰다.“이분이 바로 설 의사입니다.”“설 의사셨군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설 의사는 외모도 수려하군요! 젊은 나이에 강보현 신의의 제자라니, 대단합니다!”“그러게요! 설 의사께서 오셨으니 이 어르신의 희망이 보입니다!”다들 아부하기 바빴다. 아무래도 강보현의 제자이다 보니 잘 보이고 싶은 듯했다.이후에 일이 있더라도 설 의사를 청할 수 있게끔.“솔직히 여호준 씨가 부탁한 것이 아니라면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한테 병을 보이려는 사람은 항상 줄을 서 있으니까요.”안경을 낀 설 의사는 고개를 쳐들고 그들을 깔보았다.“암요, 암요! 여기에 오신 것만으로도 저희의 영광입니다.”장경화를 비롯한 사람들이 허리를 숙이며 그를 떠받들자 그는 더욱 우쭐해졌다.“되었습니다. 전 매우 바쁘니 시간을 낭비할 수 없습니다. 빨리 치료하고 끝냅시다. 환자는 어디 있습니까?”“여기요!”장경화는 그를 끌고 이 어르신의 옆에 왔다.“음...”설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
차가운 이청아의 태도와 주위 사람들의 분노에 유진우는 할 말이 없었다.잠시 굳어버린 그는 그대로 나가버렸다.그가 뭐라고 하던 이곳의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흥! 진작 나갔어야지. 방해꾼 같으니라고.”“그러게! 제 분수도 모르는 주제에.”나가는 유진우를 보며 사람들은 욕을 퍼부으며 비웃었다.“설 의사, 눈치 없는 놈은 이미 쫓아냈습니다. 그만 화 푸세요.”장경화가 웃으며 얘기했다.“설 의사, 제 체면을 봐서라도 화 풀어주십쇼. 그래도 병을 치료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겠습니까. 일이 해결되면 꼭 보답하겠습니다!”여호준도 입을 열었다.“여호준 씨도 그렇게 얘기하니, 어쩔 수 없군요. 이번 한 번만입니다.”설 의사가 경고했다.“네! 무조건입니다!”사람들은 다 고개를 끄덕이며 여호준에게 감격의 눈빛을 보냈다.비교해 보니 유진우는 더욱 쓰레기 같았다. 진짜 도움을 주는 것은 여호준이었는데 말이다.“됐습니다. 일단 약을 가져오세요.”설 의사는 처방이 적힌 종이를 장경화에게 던져주었다.장경화는 망설이지 않고 그대로 했다.다행히 병원이라서 탕약을 달여오는 것은 간단했다.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따뜻한 탕약이 올라왔다.“조금 전에 저를 의심하던 사람이 있었죠? 오늘 제대로 보여드리죠.”설 의사는 호언장담하더니 모든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어르신의 입으로 탕약을 부었다.뜨거운 탕약이 뱃속에 들어가자 어르신의 낯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고 차갑던 사지도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숨소리도 건강한 사람과 같았다.그 모습에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효과가 있습니다! 어르신의 낯빛이 좋아졌어요!”“과연 설 의사 십니다! 탕약 한 그릇으로 병을 치료하다니, 참으로 신기합니다!”“역시 강 신의의 제자십니다! 청출어람의 의술 실력입니다!”다들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설 의사를 떠받들었다.“제 스승보다는 못하지만 스승님 실력의 80퍼센트 정도는 되니 불치병만 아니라면 다 제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설 의사는 오만한 표정으로 얘기했다.“암요, 암
설 의사가 다시 진단했다. 현재 그의 맥박은 이상하게 뛰고 있었다. 놀란 설 의사의 눈꺼풀 근육이 튀었다.전혀 방법이 없었다.“이상합니다.”설 의사는 한숨을 쉬며 얘기했다.“환자가 원래 허약하다 보니 근본적인 치료는 어렵습니다. 보아하니... 마음의 준비를 해두십쇼.”“뭐요?”그 말에 모든 사람이 얼어붙었다.반나절을 치료하고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니?“설 의사! 제발 제 할아버지를 살려주세요. 얼마가 들든지 돈은 필요하신 대로 드릴 수 있습니다!”이청아가 정신을 겨우 붙잡고 얘기했다.“전...”그가 뭐라고 얘기하려고 하자 문이 쾅 하고 열렸다. 그리고 유진우가 심각한 얼굴로 걸어 들어왔다.그는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은침을 꺼내 빠른 속도로 이 어르신의 가슴에 꽂아 넣었다.윙~은침이 미친 듯이 진동하며 회전했다.투명한 기류가 이 어르신 몸속으로 들어가더니 심장을 붙들었다.“야! 너 뭐 하는 거야!”그 모습에 놀란 설 의사가 소리쳤다.“당신이 치료하지 못한다면 내가 합니다.”유진우가 차갑게 얘기했다.“누, 누가 치료하지 못한대?!”설 의사가 머리를 짜내어 변명했다.“이미 병을 치료할 방법을 생각해 냈는데 네가 끼어드는 바람에 수포로 되었어! 병을 악화시켰다고!”“그러면 제 탓이라는 겁니까?”유진우가 차갑게 웃었다.“당연히 네 탓이지! 무슨 일이 생기면 다 네 책임이야!”설 의사가 소리쳤다.어찌해야 할지 탈출구를 찾고 있었는데 유진우가 직접 제 발로 들어와 희생양이 되어주니 감사할 따름이었다.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싶은 지경이었다.그의 명예도 지켰으니 다행이었다.“다른 건 못하면서 책임을 떠미는 것은 1등이네요. 강보현이 왜 당신을 제자로 받았는지 모르겠네요.”유진우가 작게 코웃음 쳤다.“너 이 자식, 뭐라는 거야! 죽고 싶어?”설 의사는 수치가 화로 되어 얼굴을 붉혔다.“당신이야말로 죽고 싶으면 어디 한번 덤벼봐요.”유진우는 슬쩍 그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설 의사는 굳어버린 채 공포심이 들었다.“유진우
소창명과 안송진이 침묵했다. 두 사람은 죄책감에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흘렸다.언제부터인가 그들은 권력과 부귀영화에 눈이 멀어있었다. 큰 권력을 쥐고 세상을 좌지우지할 때 그들은 본래의 뜻을 잊고 자신들이 한때 가장 혐오했던 모습으로 타락해버렸다.후회하는가? 물론이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늦었다. 어떤 일은 한번 잘못되면 돌이킬 수 없는 법이니까.“소창명, 안송진, 이런 큰 죄를 지은 자네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유만수가 문득 물었다.“소인은 죄가 깊음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죽음으로 죄를 갚겠습니다. 다만 어르신께서 소씨 가문만은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소창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무고한 이들은 추궁하지 않겠다. 하지만 악행을 저지른 자는 죽어 마땅해.” 유만수가 등을 돌렸다.“어르신의 은혜에 감사드리옵니다!”소창명은 간신히 미소를 지으며 다시 엎드려 공손히 세 번 절을 했다. “어르신을 모시게 된 것은 평생의 영광이었습니다. 다음 생에는 반드시 떳떳하게 살겠습니다!”“어르신께서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소인은 이제 속죄하러 가겠습니다!”말이 끝나자마자 소창명은 친위병의 칼을 빼앗아 자신의 목을 그었다. 순식간에 대청에 피가 튀었고 소창명은 해방된 듯한 표정으로 뒤로 쓰러졌다.“소 대인!”소창명이 이렇게 과감할 줄은 몰랐던 안송진은 깜짝 놀랐다. 자결을 말하자마자 실행에 옮기다니,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무관이 아닌 문관이었고 전장을 겪어보지 않았기에 당연히 죽음을 각오할 수 없었다. 소창명처럼 한마디에 자결하는 건 그로서는 정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만한 배짱이 없었으니까.“꽤 체면 있게 갔군.”유만수는 한숨을 쉬며 복잡한 심정을 드러냈다. 옛 부하들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오늘 또 한 명이 가니 슬픔을 금할 수 없었다.“안송진, 이제 자네 차례야.”유만수의 시선이 온몸을 떨고 있는 안송진에게로 향했다.“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안송진은 겁에 질려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소인은
‘참수형에 처하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안송진은 마치 벼락을 맞은 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이 순간에야 그는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깨달았다. 보통의 죄라면 기껏해야 연봉을 깎거나 꾸지람을 듣는 정도였을 것이고 조금 더 심해봐야 강등이나 권한 축소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목숨을 내놓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도대체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순무직인 그를 어찌 이리 쉽게 처형한단 말인가?“어르신! 어르신, 억울하옵니다!”잡혀갈 위기에 처하자 안송진은 당황한 나머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애원했다. “비록 제가 관리를 제대로 못 한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목숨까지 바쳐야 할 만큼 큰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관리를 제대로 못 했다고? 흥! 너무 가볍게 말하는 것 아닌가?” 유만수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어르신! 소인이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토록 진노하시는 것입니까?” 안송진이 울상을 지었다.“이 여러 해 동안 자네가 저지른 추잡한 짓들, 설마 잊진 않았겠지?”유만수가 따져 물었다.“소인은 정말 모르겠습니다. 어르신께서 가르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안송진은 여전히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좋다! 그럼 알려주지!”유만수는 책상 위에서 편지 뭉치를 집어 들어 다시 안송진의 발치에 던지며 차갑게 말했다. “이것들은 모두 내가 밀사들을 통해 수집한 증거야. 자네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 자네 가문이 도대체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안송진이 편지들을 주워 읽어보더니 순식간에 안색이 창백해졌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그는 죄목이 하나뿐일 거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유만수가 이렇게나 많은 증거를 모아놓았던 것이다.이 확실한 증거들을 보며 안송진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어르신! 소인이 어리석었습니다! 소인이 죽어 마땅합니다! 하오나 소인이 수년간 어르신을 충심으로 모셨던 정을 보아 목숨만은 살려주시옵소서!” 안송진은 이제 더 이상의 고집 없이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은덕을 베풀어 주소서!”소창명 역시 지지 않고 머
중앙 대청에 들어서자마자 안송진은 눈앞의 광경에 얼어붙었다. 서경왕 유만수는 두 손을 등 뒤로 모은 채 서 있었고 그의 표정은 매우 불쾌해 보였다. 왕비는 한쪽에 서서 엄중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인도살자 홍복홍은 비록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 친위대장 석태혁은 더욱 심각했는데 허리에 찬 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린 채 언제든 검을 뽑을 태세였다.물론 가장 놀라운 것은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소창명이었다. 그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계속해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는데 큰 재앙이 닥친 듯한 모습이었다.“왕께 인사를 올립니다!”잠시 멈칫한 후, 안송진은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즉시 무릎을 꿇고 공손히 절을 올렸다. 보통 때라면 유만수가 일어나라고 했겠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안 가주, 내가 왜 한밤중에 자네를 불렀는지 아는가?”유만수는 똑같은 말로 운을 뗐다.“모르옵니다. 어르신께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안송진은 침을 꿀꺽 삼키며 왠지 모를 긴장감을 느꼈다.“모른다면 직접 보게!” 유만수는 더 말하지 않고 책상 위에서 편지 한 통을 골라 안송진의 발치에 던졌다.안송진이 자세히 보더니 순간 안색이 변했다.“억울합니다! 억울합니다!”안송진은 편지를 들고 바로 억울함을 호소했는데 마치 큰 억울함을 당한 듯한 모습이었다. “어르신, 이 고발장은 절대 위조된 것입니다! 분명 누군가가 고의로 저를 모함한 것입니다! 부디 자세히 살피시옵소서!”이 말을 들은 옆에서 무릎 꿇고 있던 소창명의 눈가가 씰룩거렸다.‘이봐, 그 수법은 내가 이미 써봤는데 전혀 통하지 않아. 차라리 다른 말을 해보지 그래.’“위조라고? 모함이라고?”유만수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보아하니 자네도 소창명과 마찬가지로 관 뚜껑이 닫혀야 정신을 차리겠군.”“어르신! 제 자식이 비록 쓸모없긴 하지만 절대로 이런 죄를 짓지는 않았을 것이며 더군다나 무슨 영웅회 같은 패거리를 만들 리도 없습니다. 분명 무슨 오해가 있을 것입니다.” 안송진
갑자기 격노한 유만수를 보며 소창명은 거의 실금을 쌀 뻔했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의 기억 속에서 유만수는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오늘처럼 크게 진노하는 모습은 전례가 없었다. 자신의 아들이 그저 평범한 여자 하나를 욕보였을 뿐인데 이 정도까지 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어르신, 아들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만약 그 녀석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면 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소창명은 땅에 엎드려 정의로운 듯한 모습을 보였다.“책임을 진다고? 자네가 질 수 있을 것 같나?” 유만수가 갑자기 책상 위의 편지들을 한 움큼 집어 소창명의 얼굴에 내리쳤다. 엄청난 힘에 소창명은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고 얼굴이 화끈거렸다.“이건 무엇입니까?” 소창명은 약간 멍한 채로 바닥에 떨어진 편지들을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볼수록 소창명의 안색은 더욱 당황스러워졌고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으며 공포 때문에 그의 몸이 멈추지 않고 떨렸다.“어떻게 이럴 수가... 아니... 불가능합니다!” 소창명은 계속해서 고개를 저으며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편지들에는 소씨 가문의 모든 죄상이 열거되어 있었다. 아들 소현무뿐만 아니라 소씨 집안의 많은 핵심 인물들, 심지어 자신의 죄상까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작게는 횡령과 뇌물수수부터 크게는 살인과 방화까지 모든 죄상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다. 자신도 잊어버린 많은 일들이 이제 유만수의 책상 위에 놓여 있다니.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유만수가 왜 갑자기 밀사를 동원해 소씨 가문을 조사한 것일까? 최근에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던가?“소창명! 이제 똑똑히 보았나? 아직도 할 말이 있나?” 유만수가 호통을 쳤다.“어르신,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 소창명은 꿈에서 깨어난 듯 당황하며 땅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목숨을 구걸했다. 머리가 바닥에 부딪혀 ‘쿵쿵’ 소리가 나고 피가 흘러도 멈추지 않았다. 이제야 그는 왜 유만수가 진노
“네가 안송진과 친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오늘 이 일은 절대 순순히 넘어갈 수 없을 거야.”유만수가 차갑게 경고했다.“천자라도 법을 어기면 서민과 같은 죄를 받아야 하듯 소씨와 안씨 두 가문이 저지른 많은 악행은 마땅히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이의진이 정의롭게 말했다. 그녀는 유만수가 진심으로 분노했다는 것을 간파했다. 이런 때 사정하는 것은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화를 자초할 수 있었다. 그녀는 영리한 사람이었기에 당연히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네가 그걸 안다니 다행이구나.”유만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고, 이때 한 친위가 갑자기 들어와 허리를 굽혀 보고했다.“소창명 대인이 도착했습니다.”“흥! 들여보내라!”유만수가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네.”친위는 대답하고 곧바로 물러났다.얼마 지나지 않아 소창명이 벌벌 떨며 친위의 안내를 받아 들어왔다. 이의진과 홍복홍 두 사람을 보자 그의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고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의진은 왕비로서 평소에는 서경의 군무에 관여하지 않았고 인도살자 홍복홍은 왕부의 형벌을 담당하는 자로 모든 이가 만나기를 꺼리는 흉신이었다.“왕께 절을 올립니다.” 소창명은 마음속 불안을 누르며 즉시 땅에 무릎을 꿇고 공손히 절을 올렸다.“내가 왜 이 늦은 밤에 자네를 부른 줄 아는가?”유만수가 차갑게 입을 열었는데 그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모르옵니다. 왕께서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소창명은 고개를 깊이 숙인 채 마음속 불안감이 더욱 커져갔다.“직접 보게!”유만수는 더 말하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편지 한 통을 소창명의 발치에 던졌다.소창명이 편지를 집어 들어 자세히 보더니 순간 안색이 변했다.“억울하옵니다!”소창명은 즉시 억울함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이, 이, 이것은... 분명 누군가의 모함일 것입니다. 제 아들은 성품이 선량한 아이입니다. 어찌 이런 강간과 납치 같은 일을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새벽 다섯 시, 서경왕부의 중앙 대청에서 유만수는 용포를 걸치고 중앙에 앉아 있었다.왼편에는 친위대장 석태혁이, 오른편에는 ‘인간 도살자’라는 흉명으로 널리 알려진 홍복홍이 서 있었다.밝은 등불 아래에서 유만수는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편지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었다.이 편지들은 모두 왕부의 밀사들이 조사해서 얻어낸 결과물이었다.각각의 편지는 하나의 살인 사건을 의미했고, 책상 위에 쌓인 편지는 수백 통에 달했는데 그중 절반은 소씨 집안의 죄상이고 나머지 절반은 안씨 가문의 죄상이었다.두 대가문은 범죄 면에서 거의 막상막하였다.유만수는 편지를 읽으면서 눈살을 찌푸렸다.조사하기 전에는 몰랐지만 조사해보니 충격적이었다. 자신의 관할 구역에 이토록 사람 목숨을 경시하는 탐관오리들이 있다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이 누적된 죄상들은 분명 하루 이틀에 저질러진 것이 아니었다.“어르신, 잠시 쉬시는 게 어떨까요? 건강이 우선이십니다.”이때 고개를 숙이고 있던 홍복홍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이런 일이 있는데 어떻게 쉴 수가 있나?”유만수는 분노로 책상을 내리치며 음침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소창명과 안송진 놈들, 정말 간덩이가 부었어! 자기들한테 권세가 있다고 온갖 횡포를 부리고 심지어 내 눈앞에서 이런 짓을 하다니, 나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던 거야!”“어르신, 무슨 일로 그리 크게 화를 내시나요?”이때 화려한 옷차림의 아름다운 젊은 여인이 우아하게 걸어 들어왔다.바로 서경왕비 이의진이었다.“직접 보게!”유만수는 손에 든 편지를 옆으로 던졌다.이의진은 편지를 집어 들고 보더니 동공이 미세하게 수축되며 놀란 기색을 보였다.“이게 소 대인의 죄상인가요?” 이의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소창명뿐만이 아니야, 안송진도 마찬가지지!”유만수는 산더미처럼 쌓인 편지들을 모두 이의진 앞으로 밀어놓으며 차갑게 말했다. “이 두 놈은 탐관오리에 사람 목숨을 경시하고 자식들의 범행을 비호했으니 악행이 가득 차 있어! 네가 보는 이것들은 그저
“주인님, 셋째 도련님이십니다!” 집사가 문 밖에서 대답했다.“준석이라고?” 안송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 녀석이 또 무슨 사고를 친 거냐?” 세 아들 중에서 안준석이 가장 다루기 힘들었다.“사고가 아니라 셋째 도련님이 폭행을 당하셨습니다!”집사가 급히 설명했다.“뭐라고? 맞았다고?”이 말을 듣자마자 안송진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다그쳤다. “어떻게 된 거야? 누가 감히 내 아들을 때렸어?!”아들이 사고를 치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맞았다는 건 참을 수 없었다.“누군지는 아직 모릅니다. 방금 차 한 대가 셋째 도련님을 대문 앞에 버리고 갔는데, 저희가 발견했을 때는 이미 도련님이 중상을 입으신 상태였고 범인은 도망간 뒤였습니다.”집사가 답했다.“가자! 준석이를 봐야겠어!”안송진은 아들이 걱정되어 겉옷도 걸치지 않은 채 급하게 방을 뛰쳐나갔다.집사를 따라 저택 내 의료실에 도착했을 때 그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병상에 누워있는 안준석은 거의 죽어가는 상태였다. 얼굴은 창백하고 온몸이 피투성이였으며 전신의 뼈가 반 이상 부서졌고 사지는 모두 꼬여 있어 처참한 모습이었다.“준석아! 준석아!”이 광경을 본 안송진의 눈에서 순간 눈물이 흘러내렸다. 처음에는 단순한 싸움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심하게 다쳐있을 줄은 몰랐다.“주인님, 방금 의사가 진찰해 보니 도련님이 중상을 입으셨지만 당장 생명의 위험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도련님을 때린 사람이 어느 정도 치료도 해준 것 같습니다.” 집사가 말했다.“어떻게 이럴 수가... 준석이가 어떻게 이렇게 됐지? 도대체 누가 이런 건가?”안송진은 붉어진 눈으로 분노에 차 외쳤다.“이미 사람들을 보내서 조사하고 있습니다. 곧 결과가 나올 겁니다.” 집사가 말했다.“감히 내 아들을 다치게 해? 그 누구라도 대가를 치르게 될 거다. 당장 인원을 소집해. 언제든 체포할 수 있게 준비하라고!” 안송진이 엄한 목소리로 명령했다.“네!”집사는 즉시 대답하고 서둘러 준비를 시작했다.
“모르겠어요. 그 남자는 본 적이 없어요.” 소현무는 창백한 얼굴로 힘겹게 대답했다. “근데 분명히 유씨 가문과 관련이 있어요. 이번에 나를 이렇게 만든 이유가 유희주라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서였어요.” “유씨 가문? 유희주?” 소창명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뒤를 돌아 명령을 내렸다. “한 시간 내로 유희주와 그 가족을 전부 잡아 오도록 해라. 반드시 그놈의 정체를 밝혀내야 한다!” “예!” 소씨 가문의 부하들이 힘차게 대답하며 사방으로 흩어져갔다. 소씨 가문은 왕성 서경에서 세력이 막강했다. 가문이 번창했을 뿐만 아니라 소창명은 만 명 이상의 병력을 지휘하는 서경의 총병으로서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는 셈이었다. 이번에 소현무가 이렇게 심각한 피해를 보았으니 소창명이 쉽게 넘어갈 리 없었다. 범인은 물론이고 이 사건과 연관된 사람들은 모두 죽음의 운명이었다. “현무야! 걱정하지 말아라. 누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든 난 그들에게 반드시 피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소창명은 단호하게 약속했다. 바로 그때 전화가 울렸다. 전화 화면을 확인한 소창명은 표정이 순간 심각해졌다. 그는 의료진에게 손짓으로 소현무를 병실로 옮기라고 지시한 후 급히 구석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자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 가주님, 도련님께서 저택으로 오라 하십니다.” “도련님께서요?” 소창명은 눈가가 미세하게 떨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석 장군님, 이 늦은 밤중에 도련님께서 저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도련님의 뜻을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서둘러 주십시오. 도련님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십시오.” 말이 끝나자마자 전화는 바로 끊어졌다. 질문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소창명은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이마를 찌푸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최근 도련님은 외출도 극도로 드물게 하며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는데 왜 갑자기 나를 부르셨을까?’‘혹시 내가 실수라도
...깊은 밤 소씨 가문 저택 앞. 검은색 비즈니스 차 한 대가 갑자기 멈춰 섰다. 이어 차 문이 열리더니 커다란 마포 자루 하나가 길바닥에 던져졌다. 마포 자루는 피가 가득 묻어 있었고 안에는 분명 사람이 들어 있는 듯했다. “이봐! 너희들 뭐 하는 짓이야!” 문을 지키고 있던 소씨 가문의 경비원 몇 명이 이상함을 감지하고 소리쳐 제지했다. 그러나 검은색 차량은 엔진을 거칠게 울리며 그대로 사라졌다. 경비원들은 조심스레 자루에 다가가 발끝으로 살짝 다쳐봤다. 자루가 움직이더니 안에서 피투성이 얼굴 하나가 삐져나왔다. 다름 아닌 급소를 절단당하고 이미 반쯤 죽어 있는 소현무였다. “살... 살려줘... 제발.” 소현무는 미약한 목소리로 흐느꼈다. 그의 모습은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경비원들은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경악했다. “도련님이다! 빨리! 도련님을 병원으로 모셔야 해!”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중상을 입은 소현무를 급히 병원으로 데려갔다. 곧이어 소씨 가문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새벽 왕성 지역 병원. 몇 시간의 수술 끝에 소현무는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수술실에서 밖으로 실려 나왔다. 이때 수술실 밖에는 이미 사람들이 빼곡히 서 있었다. 소씨 가문의 족장 소창명은 집안의 고위 인사들을 이끌고 수술실 밖에서 서성이며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됐어요? 내 아들은 괜찮은 겁니까?” 소현무가 수술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소창명이 달려와 물었다. “소 가주님, 저희가 최선을 다해 응급조치를 한 결과 다행히 아드님의 생명은 건졌습니다. 하지만...” 의사는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뭐요?” 간신히 안도했던 소창명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아드님의 생식 기관이 심각하게 손상되었습니다. 앞으로 정상적인 부부 생활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고요? 그럼 고자란 말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