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소리하지 마!”황보춘이 두 눈을 부릅떴다.“큰아버지, 저한테 내상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이 한 알 있는데 할아버지한테 드릴까요?”그때 황보걸이 갑자기 나서서 우금환을 보여줬다. 할아버지의 상황이 하도 위급하여 그도 이 위험을 무릅쓰는 수밖에 없었다.“내상을 치료하는 약?”황보곰이 눈살을 찌푸렸다.“시커먼 게 딱 봐도 뭔가 이상해. 이런 건 어디서 구해왔어?”“내 친구가 줬어.”황보걸이 솔직하게 대답했다.“흥, 네 친구들 중에 이런 재간이 있는 친구가 있다고?”황보곰은 하찮다는 듯이 입을 삐죽거렸다.“약 당장 치워. 여기서 망신당할 짓 하지 말고.”“할아버지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아서 한번 시도해보고 싶어. 누가 알아? 효과가 있을지?”황보걸이 말했다.“내가 쓸모가 없다고 하면 쓸모가 없는 거야. 저리 치워!”황보곰이 손으로 툭 치자 황보걸이 들고 있던 우금환이 바닥에 떨어졌다.“형 정말...”황보걸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왜? 불만 있어? 한판 붙을까?”황보곰은 주먹을 휘두르며 튼실한 근육을 드러냈다. 황보걸은 황보 가문에서 비실비실하기로 소문이 난 약골이라서 황보곰은 주먹 한 방에 그를 휙 날려버릴 수 있었다.“형이랑 말 섞고 싶지 않아!”황보걸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끓어오르는 화를 참았다. 그런데 그가 바닥에 떨어진 우금환을 주우려던 그때 황보곰이 발로 우금환을 뭉개버렸다.“이게 무슨 짓이야?”황보걸의 낯빛이 순식간에 굳어졌다.“흥, 이런 쓰레기 같은 약을 남겨둬서 뭐 하게? 할아버지께서 이걸 드시고 배탈이라도 나시면 어떡하려고?”황보곰이 시건방을 떨며 더 힘껏 짓밟자 우금환이 순식간에 가루로 변해버렸다.“황보곰! 너무한 거 아니야?”황보걸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버르장머리 없는 놈. 형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황보추는 아들을 감싸며 황보걸을 째려보았다.“셋째 큰아버지, 먼저 행패를 부린 건 형이라고요!”황보걸이 눈살을 찌푸렸다.“닥쳐! 내 아들은 그저 할아버지 안전
짓밟혀 가루가 된 우금환을 본 동장로는 너무도 아까우면서도 화가 나 발을 동동 굴렀다. 심지어 점잖던 이미지도 뒤로한 채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우금환 가루를 모으기 시작했다.그 모습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그깟 알약 한 알 가지고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동장로, 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황보춘은 이 상황이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늘 오만하고 눈에 뵈는 게 없는 약신궁의 사람들이 언제 이런 비굴한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던가?“왜 이러다니요? 지금 그렇게 물을 자격이나 있다고 생각해요?”동장로는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이게 얼마나 귀한 약인데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거예요? 대체 어떤 눈깔이 삔 놈이 이런 거예요?”“동장로, 뭘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에요? 이 시커멓고 하찮은 알약이 귀한 만병통치약이라고요?”황보곰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정말 우물 안의 개구리가 따로 없네요.”동장로는 마치 바보를 쳐다보듯 했다.“당신이 말한 이 하찮은 알약이 바로 특효약인 우금환이라는 거예요. 여러 가지 내상으로 인한 고질병을 치료할 수 있어요. 이것만 있으면 당신 할아버지의 목숨도 살릴 수 있다고요.”“뭐라고요?”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람들의 낯빛이 확 변했다.우금환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할아버지의 내상을 치료할 수 있는 데다가 동장로까지 칭찬을 아끼지 않는 걸 보면 평범한 약은 아닌 게 분명했다.“이리 귀한 약을 쓰레기처럼 버리다니...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군요!”동장로는 가슴까지 두드리며 안타까워했다.약신궁의 장로로서 우금환 같은 특효약을 그는 무엇보다도 중히 여겼다. 우금환이 망가진 걸 보니 가슴에서 피눈물이 나는 것만 같았다.“황보곰! 형이 무슨 짓을 했는지 봐봐! 할아버지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약을 망가뜨렸으니 이제 어쩔 거야!”황보걸이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쳤다.“저 약이...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약인지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황보곰은 안절부절못하며 말까지 얼버무렸다.“그리고 네가 진작
황보걸의 낯빛이 굳어졌다.“진우 씨는 내 친구야. 내가 신분을 보장할게. 무슨 일이 있으면 내가 다 책임지면 되잖아!”“거기서 뭘 꾸물거리고 있어? 얼른 들어와!”그들이 문 앞에서 서성이자 안에 있던 황보춘이 다그쳤다.“내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볼 테니까 당신 아무 수작도 부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경고를 날린 후에야 황보곰은 길을 내주었다.“진우 씨, 저런 사람은 그냥 무시해요. 자, 안으로 들어가요.”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 황보걸은 황급히 유진우와 함께 침대 앞으로 다가갔다.“젊은이한테 우금환이 있다면서요?”동장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열정적인 모습은 마치 사흘 굶다가 진수성찬이라도 본 듯했다.“있긴 있지만 많지 않아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거거든요.”유진우가 대답했다.옷에 달린 배지를 보자마자 유진우는 그가 약신궁의 사람인 걸 바로 알아챘다. 성가신 일을 피하기 위해 유진우는 그렇게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조상 대대로 전해진 특효약이군요. 지금 몇 알 갖고 있어요? 내가 비싼 값에 살게요.”동장로가 간절하게 물었다.“전에 두 알이 있었는데 아까 한 알이 망가진 바람에 지금 한 알밖에 남지 않았어요.”유진우가 말했다.“네? 한 알밖에 없어요?”동장로는 아쉬워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원래는 유진우에게서 몇 알 구매하여 돌아가서 연구할 생각이었지만 아쉽게도 그럴 수가 없었다.“동장로, 쓸데없는 얘기 그만하고 저 젊은이한테 우금환이 한 알 더 있다고 하니 일단 사람부터 살립시다.”황보춘이 옆에서 다그치기 시작했다.“네네, 젊은이, 얼른요.”동장로는 그래도 나름 예의가 있었다.“경고하는데 할아버지의 내상을 치료하지 못한다면 당신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황보곰이 불쑥 끼어들어 한마디 했다.어르신을 치료하려던 유진우는 그의 말에 움직임을 멈추고 덤덤하게 말했다.“전 겁이 많아서 이런 식으로 사람을 협박한다면 더는 치료할 수 없어요. 그냥 다른 의사분을 모셔오세요.”그러고는 바로 떠나려 했다.“안
“응?”황보곰은 얼떨떨해져서 얼굴을 가리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지금 유진우를 혼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왜 큰 아버지는 내 뺨을 때리는 거지?”“눈치 없는 것들! 말 잘할 줄도 모르면 꺼져!”황보춘이 화를 내며 표정이 좋지 않았다. ‘원래 돈을 많이 쓸 필요가 없었는데, 이 멍청한 놈때문에 알약 한 알의 가격이 600억까지 올라가다니. 상대방이 계속 대든다면 유진우도 더 값을 올리게 될 거야. 그러니 이 멍청한 놈은 맞아도 싸지.’“형님, 좀 심하시네요.”황보추가 미간을 찡그렸다. 자기 아들이 맞아서 기분이 매우 불쾌했다.“너도 입 다물어!”황보춘은 뒤를 돌아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지금 아버지가 위험에 처해 있어서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영약이 시급한데, 너희들은 아직도 여기서 억지를 부리고 있다니. 만일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너희들 책임질 수 있어?”이 말이 나오자, 부자는 서로 쳐다보면서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황보 가문은 무력으로 가문을 세웠다.어르신 황보용명은 3년 전만 해도 강남 무림의 맹주였다.비록 지금은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민간에서 여전히 높은 명성과 지위를 가지고 있다.설사 신임 맹주가 그를 보더라도 허리 굽혀 예의를 차려야 한다. 황보 가문이 우뚝 설 수 있고 톱3에 들 수 있었던 건 바로 황보용명이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어르신이 숨을 거둔다면 황보 가문 전체가 치명타를 입을 것이다.“정말 죄송합니다, 다 제가 잘못 가르친 탓입니다. 그러니 절대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아버지의 목숨만 구할 수 있다면 600억이 뭔 대수겠습니까!”황보춘은 흔쾌히 승낙했다.“역시 이분은 큰 그림을 볼 줄 아네요.”유진우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황보 가문처럼 큰 대업이 600억은 식은 죽 먹기 아니겠습니까?”황보곰은 눈을 가늘게 뜨고 살의를 보였지만 결국 참았다.“가시지요.”황보춘은 억지로 웃음을 짜냈다.“좋습니다.”유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금환 하나를 꺼내 황보용명의 입에 넣었다. 그리
“아 맞다, 환자의 몸에 있는 은침은 지금 빼지 마시고 3시간 후에 다시 빼주세요.됐어요, 이제 돈 주세요.”일일이 신신당부를 한 후, 유진우는 바로 입을 열어 돈을 요구했다.유진우가 여기에 치료하러 온 것은 황보걸의 체면을 차려주기 위해서이다.‘받아야 할 돈은 받아야지, 헛걸음할 수는 없어.’“돈 문제는 물론 문제없습니다. 그전에 먼저 어르신의 상태를 확인해 봐야겠습니다.”황보춘은 동장로를 향해 눈짓을 했다. 동장로는 재빨리 알아차리고 앞으로 나왔다. 맥박을 살피더니 순식간에 안색이 변했다.“왜요? 어르신한테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요?”이를 보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불안했다.“아닙니다... 어르신의 맥은 매우 평온하고 몸속의 어혈은 이미 대부분 제거되었습니다. 부서진 경맥은 모두 잘 복구되었습니다. 정말 신기합니다!”동장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우금환의 약효에 신기한 침술까지 더해져 이 두 가지가 서로 보완되면서 놀라운 효과를 일으켰다.“헉! 간 떨어질 뻔했습니다. 단숨에 말을 끝낼 수 없습니까?”황보곰은 퉁명스럽게 말했다.만약 할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는 유진우를 그 자리에서 죽이고 동시에 황보걸에게 죄를 물을 구실이 있을 수 있었다.“약신궁의 고수도 이렇게 말씀하시니 이제 안심하셨어요?”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유진우 씨가 도와준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황보춘은 매우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천만에요, 남의 돈을 받았으면 액땜을 해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유진우는 답례했다.“유진우 씨, 먼저 거실에 가서 차 한 잔 마시면서 잠시 쉬고 계세요.”황보춘은 웃다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셋째 동생아, 가서 돈을 가지고 오너라.”“네.”황보추는 유진우를 본 후 돌아섰다.유진우는 집사의 안내를 받아 거실로 나와 기다렸다.황보 댁은 부지 면적이 매우 넓어서 산 하나를 덮었고 사방에 높은 담이 솟아 있었으며 안에는 별장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십여 개의 경호팀이 24시간 내내 순찰하며
수표는 가볍게 황보곰의 얼굴을 때렸다. 아프지 않으면서도 굴욕이 짙게 배어 있었다.“죽고 싶어?”황보곰은 순간 화가 치밀어 주먹을 들고 때렸다.하지만 유진우에게 닿기도 전에 발에 차여 날아가 내동댕이쳐졌다. 순식간에 얼굴은 잿빛으로 변했고 기침이 연달아 났다.“널 죽여버릴 거야!”황보곰은 눈을 부릅뜨고 자기 옷을 찢어서 털투성이의 탄탄한 근육을 드러냈다.그리고 마치 성난 황소처럼 사납게 앞으로 돌격했다.“꺼져!”유진우는 손바닥을 치켜들고 황보곰을 향해 뺨을 날렸다.후자는 비명을 지르고 넘어져 일어나지 못했다.“감히 내 아들을 때려?”이 광경을 보고 황보추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여봐라! 이 자식을 잡아라!”그 명령과 함께, 무사 도복을 한 호위가 곧 몰려들어 유진우를 포위했다.“네 이놈! 감히 황보 댁에서 행패를 부리다니! 너 죽고 싶어 안달 났어? 원래 6억을 줄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한 푼도 줄 수 없어! 그뿐만 아니라, 당신의 다리를 부러뜨려 일벌백계해야겠어! 저놈을 쳐라!”황보추가 손을 흔들자, 호위들이 잇달아 칼을 들었다.“그만!”그때 황보걸이 갑자기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셋째 큰아버지, 지금 이게 무슨 짓입니까? 진우 씨는 황보 가문의 은인입니다. 이렇게 하면 할아버지가 탓하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까?”“너와 무슨 상관이야! 꺼져라, 그렇지 않으면 너까지 같이 때릴 거야!”황보추는 여전히 제멋대로였다.“내키지 않는 게 있다면 다 저한테 하시고 유진우 씨는 건드리지 마세요.”황보걸은 조용히 외쳤다.“짐승 같은 놈! 오늘 내가 네 아버지를 대신해서 잘 혼내야겠어.”황보추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막 손을 쓰려고 할 즈음, 한 집사가 갑자기 뛰어 들어와서 황급히 외쳤다.“셋째 어르신! 큰일 났습니다, 어르신께서 주화입마 하셨습니다!”“뭐? 주화입마!”황보추는 깜짝 놀라 오래 머물지 않고 경호원들을 데리고 황급히 집을 나섰다.“네 이놈, 딱 기다려!”황보곰도 독한 말을 한 후 따라 뛰쳐나갔다.황보용명은 한
하나같이 중상을 입고 피를 토하며 비명을 질렀다.아예 막을 수 없었다.“큰일 났어요! 할아버지가 미쳤어요!”황보곰은 놀라서 소리를 질렀고, 말을 하다가 갑자기 유진우에게 시선을 던지며 소리쳤다.“큰아버지! 모두 저 녀석이 한 짓입니다! 저 사람 때문에 할아버지가 주화입마했습니다. 빨리 저 녀석을 잡아요!”“맞아요! 저는 진작 이 녀석이 나쁜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놈이 고의로 독을 넣어 우리 아버지를 이렇게 만들었으니, 반드시 엄하게 고문해야 합니다!”황보추가 맞장구를 쳤다.“함부로 모함하지 마세요! 저는 유진우 씨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황보걸이 외쳤다.“응?”황보춘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얼른 유진우에게 다가가 물었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저희 아버지께서 아무 문제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왜 주화입마한 거죠?”“누군가가 제 침을 건드렸습니다.”유진우는 자세히 보더니 곧장 단서를 알아차렸다.“침을 건드리다니? 무슨 뜻입니까?”황보춘이 멍해졌다.“천돌, 단중, 기해 세 곳의 요혈에 은침을 하나씩 놓아 내상을 안정시켰지만, 지금은 단중혈의 은침이 사라졌습니다.”유진우가 대답했다.“어... 정말이네!”황보춘이 눈을 똑바로 뜨고 보니, 아니나 다를까 가슴에 있는 은침이 없어졌다.“흥! 마음대로 지껄이지 말아!”황보곰은 험악하게 말했다.“분명히 도둑이 제 발 저리고 일부러 핑계를 대는 것 같습니다!”“형님! 아버지가 주화입마한 것은 분명 저놈과 연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놈과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고, 바로 한바탕 세게 때려서 고분고분하게 진상을 자백하게 해야 합니다!”황보추는 불친절한 표정으로 말했다.“큰아버지, 진우 씨는 제 친구입니다. 저는 진우 씨가 아무 문제 없다는 것을 제 목숨을 걸고 보증합니다!”황보걸은 이치에 맞게 싸웠다.“쳇! 너희 둘은 분명히 한패잖아!”황보곰이 한 입 내뱉었다.“됐어, 모두 입 다물어!”황보춘은 미간을 찌푸리다가 유진우에게로 돌아섰다. “유
온 화원이 삽시에 조용해졌다.모두가 눈앞의 광경에 아연실색했다.아무도 유진우가 황보용명의 한 방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황보용명은 무림 맹주이자 마스터 경지의 고수이다. 주먹이나 발 한 번에 산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무서운 존재를 황보 가문 전체에서 몇 명이 이에 대항할 수 있겠는가?“막... 막았다!”황보곰은 놀라서 눈꺼풀이 펄쩍 뛰었고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그들의 눈에는 황보용명이 서울의 최고 전력을 대표했고 눈 한번 깜빡거리면 선천무사도 죽일 수 있었다.그런데 한낱 이름 없는 의사가 어떻게 마스터 경지의 고수 한방을 막을 수 있는 거지?도대체 무슨 상황이지?“맙소사! 어르신의 주먹을 당해낼 수 있는 자가 있다니! 제가 잘못 본 건 아니죠?”동장로는 아래턱이 땅에 떨어질 듯이 입을 크게 벌렸다.그는 유진우가 단지 천재 의사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상대가 무도에서의 조예도 이렇게 깊을 줄은 몰랐다.“진우 씨가 이렇게 강하다니!”황보걸은 하마터면 심한 말을 뱉고 군자적인 태도가 사라질 뻔했다. “이놈... 도대체 정체가 뭐지?”황보춘은 놀랍고 의심스러워서 이마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유진우가 방금 앞에 나섰을 때,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어르신을 막을 수 있다니. 황보 집안 수십 명의 엘리트 호위병들도 안 되는 걸 유진우가 해냈다. 그 실력의 일부분을 통해 전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아니... 그럴 리가 없어!”놀란 황보추는 고개를 마구 가로 저으며 부정했다.“이 녀석 이제 20대인데 어떻게 아버지의 주먹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분명 아버지가 사도에 빠졌을 때 힘이 많이 빠져서 저 녀석에게 틈탈 기회를 준 것입니다!”“맞습니다! 할아버지는 몸이 허약해지고 사도에 빠져 실력이 전과 같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 녀석이 어떻게 막아 낼 수 있겠습니까?”황보곰이 맞장구를 쳤다.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