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쥔 손에는 점점 힘이 들어갔고, 속에 난 상처도 점점 깊어졌다.그 모습을 보던 은국성의 마음은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는 결국 딸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만 했다.“좋아, 보내주지. 하지만 오늘부터 넌 더 이상 은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다. 앞으로 우리의 인연은 여기서 끝인 거야. 넌 더 이상 내 딸이 아니다!”은국성이 한껏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은도의 몸은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고 표정은 고통스러워 보였다.“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마! 당장 꺼져!”은국성은 손짓으로 경호원들을 물리치더니 등을 돌린 채 더는 은도를 바라보지 않았다.그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딸, 잘 살아라. 연경이라는 이 혼란의 땅에서 멀리 떠나 행복하길 바란다.’“죄송해요, 아버지.”아버지의 약간 굽은 등을 보던 딸은 죄책감에 가득 찼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곧이어 눈물을 훔치고 유진우의 손을 끌어 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은도 씨,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접객실을 벗어난 유진우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설명할 시간 없어요! 여기엔 문왕부의 첩자들이 곳곳에 숨어있단 말이에요. 얼른 이곳을 벗어나야 해요. 안 그러면 절대 못 빠져나가요.”은도는 유진우의 손을 꼭 잡고 뛰며 긴장감 어린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문왕부요?”유진우가 눈썹을 미세하게 찌푸렸다. 또 문한성이 꾸민 짓일까? 어젯밤 일도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빨리 복수를 시도하다니.“뒷문으로 나가요!”은도는 아무도 자신들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한 것을 확인하고는 조심스레 유진우를 이끌어 저택의 뒷문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자 그녀는 또다시 주위를 살펴 이상한 것은 없는지 확인했다.은도는 고개를 돌려 유진우를 바라보며 빠르게 말했다.“이 길을 쭉 따라가면 큰 길이 나올 거예요. 그 길을 따라가면 돼요. 집으로 가면 얼른 짐 싸서 연경을 떠나세요. 여기서는 더 이상 머물 수 없어요!”“은도 씨, 사실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니에요. 문한성이 두려워서 그러는
“은도 씨!”총에 맞아 쓰러진 은도의 모습을 본 유진우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다급히 은도를 부축했다.이 순간, 은도의 온몸은 피투성이였고, 얼굴은 눈에 띄게 창백해져 동공까지 풀리기 시작했다.유진우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재빨리 은침을 꺼내 은도의 여러 혈 자리를 막으며 지혈을 시도했다.그가 진기를 주입해 치료를 시도하려는 순간, 그의 등 뒤에서는 또다시 총성이 울려 퍼졌다.“탕, 탕, 탕, 탕, 탕…”문밖에서 날아든 총알은 폭풍우처럼 두 사람을 향해 날아들었고, 순식간에 두 사람을 집어삼켰다. 주위에는 파편이 튀고 먼지라 자욱이 날렸다.모든 총알이 쏟아진 끝에 전투 장비로 무장한 암살 팀이 나무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대단한 줄 알았더니, 별거 아니었잖아. 실망스러운걸.”리더격으로 보이는 근육질의 남자가 담배를 피워 물며 연기를 내뿜었다.“우리가 이렇게 강력한 화력을 갖고 있는데, 그 누가 감히 버틸 수 있겠어요?”한 암살팀 팀원이 웃으며 말했다.“그렇긴 하지.”근육질의 남자가 입꼬리를 씨익 끌어올리며 웃었다.“좋아, 시체 처리해. 도련님한테 가서 보수나 받고 오늘 밤 한잔하자고!”그 말에 암살자들은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이번 의뢰의 보수는 생각보다 훨씬 후했던 덕에 보수만 잘 챙기면 몇 년은 놀고먹을 수 있었다.“대장님! 뭔가 이상합니다!”그때, 한 팀원이 뭔가를 본 듯 경직된 표정으로 말했다.모두가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연기 속에서 피투성이의 남자가 서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 남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유진우였다.“어떻게 이럴 수가? 저 자식이 아직도 안 죽었단 말이야?”근육질의 남자가 놀란 듯 눈썹을 찡그렸다.다른 팀원들도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그들은 열 몇 자루 총의 탄창을 전부 비울 정도로 총을 쏴댔다. 강철로 만든 사람이라고 해도 이 정도면 이미 벌집이 되어 있어야 마땅했다.하지만 유진우의 몸에는 몇 군데 찢어진 옷만 제외하면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그의 몸에 묻어있는
아니, 정확히 말해 눈앞의 존재는 더 이상 인간이라고 할 수 없었다.그 속도는 번개처럼 빨랐고 강철처럼 단단한 몸은 총알의 위력을 완전히 무시해버렸으며 살인을 그저 놀이처럼 즐기고 있었다.눈앞의 이 자는 악마 그 자체였다.“문한성 어디 있어?”피범벅이 된 유진우가 눈앞의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목숨만 살려주세요! 저희도 명령을 따랐을 뿐, 당신과는 아무런 원한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발…”근육질의 남자는 말 하던 도중 갑자기 수류탄을 꺼내 유진우에게 던졌다.시간을 정확히 계산해 던졌던 탓에 이쯤 되면 수류탄이 거의 터져야 했다.상대가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 엄청난 폭발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남자는 승리를 확신했다.근육질의 남자가 기습공격에 성공했다고 믿으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던 그 찰나, 유진우가 손을 뻗어 수류탄을 잡아챘다.곧이어 “퍼!” 하는 소리와 함께 수류탄이 폭발했다.하지만 남자가 원하던 잔혹한 장면은 눈앞에서 벌어지지 않았다.유진우의 손안에 있던 수류탄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폭발력을 잃었다.그저 그의 손가락 틈새로 화약 냄새를 풍기는 연기만이 천천히 흘러나왔다.그리고 유진우는 마치 폭탄이 아니라 달걀을 쥐고 있던 사람처럼 가볍고도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어… 어떻게 이럴 수가…”근육질의 남자는 완전히 얼어붙고 말았다. 그는 눈을 크게 뜬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앞의 유진우를 바라보았다.맨손으로 수류탄을 막고도 이렇게 무사할 수 있다니, 이 사람이 정녕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세요!”근육질의 남자가 겁에 질려 무릎을 꿇더니 땅에 머리를 박으며 간절하게 애원했다.이 괴물과 맞선다는 것은 더 이상 아무 의미 없는 짓이라고 판단한 남자는 목숨을 구걸하는 선택지를 선택했다.“문한성 어디 있어?”유진우가 냉정하게 물었다.“모릅니다…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저는 그저 명령에만 따랐을 뿐입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유진우는 땅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은도의 시신을 지키며 멍하니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발소리가 들려왔다. 유진우는 마침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자 은국성이 사람들을 데리고 다급하게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방금 전의 총소리가 은씨 가문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딸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은국성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고 즉시 사람들을 조직해 지원하러 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가까이 다가와 보니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서 있는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은 딸의 시신이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은도의 시신 앞으로 다가가 거듭 확인한 후에야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내 딸! 내 딸아!”은국성은 시신 앞에 엎드려 통곡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로 그는 딸과 의지하며 살아왔다. 그는 딸이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행복하게 손자를 안아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백발의 노인이 검은 머리의 자식을 보내는 비극적인 날이 되고 말았다. 그 순간 그는 마치 심장이 칼로 도려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죄송합니다, 전부 제 잘못입니다.”유진우는 고개를 숙이고 깊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문한성이 은도를 노리지 않았을 것이다. 은도가 자신을 구하려다가 이런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평소에 친구를 사귀는 것을 꺼렸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주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렵게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났지만 결국 그 친구마저 자신의 눈앞에서 죽고 말았다. 이러한 충격은 그를 비통하게 했고 더불어 큰 자책감을 느끼게 했다.“왜 이렇게 되었는가? 유진우! 네가 내 딸을 죽인 거야!”은국성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유진우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유진우는 진기로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주먹을 맞아 땅바닥에 세게 내팽개쳐졌고 그의 입가에서는 피가 흘렀다.“제가 은도에게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모두 제 탓입니다.” 유진우는 고개를
문관옥이 이런 사적인 모임을 연 이유는 한편으로는 인심을 끌어들이기 위함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속내를 떠보려는 것이었다.“여러분께서 옥면 산장에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자리를 빌려 여러분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 문관옥은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들고 일어나 주변 사람들에게 술을 권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황급히 일어나 술잔을 들어 인사했다.그들 앞에 있는 이 사람은 용국에서 가장 강력한 군신이자 문왕부의 기둥이 되어주는 존재였다. 어떤 자리에서든 한마디만 하면 온 나라가 움직이는 거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이토록 겸손하게 자신들에게 인사를 건네니 그저 몸 둘 바를 몰랐다.“관옥 형님, 우리 모두 가족 아닙니까? 그렇게 격식 차릴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형님께 먼저 한 잔 올려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형님이야말로 문왕부의 버팀목입니다!”그때, 문한성이 술잔을 들고 힘차게 충성심을 표했다.“맞습니다! 군신께서는 공이 높고 용감무쌍하니 문왕부에 있어서 큰 행운입니다!”이 순간, 모두가 앞다투어 문관옥을 치켜세우기 시작했다.“하하하... 좋아요, 술을 마십시다!”문관옥은 크게 웃으며 술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 다른 사람들도 본받아 술잔을 비웠다.“여러분, 오늘 여러분을 초대한 이유는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술을 마신 후, 문관옥은 손을 내려 사람들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신호를 보낸 뒤 본론으로 들어갔다. “듣자 하니 최근 문왕부에서 작은 변동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아버지께서 집사 권한을 한 여인에게 넘기셨다는데 여러분 생각에 이것이 합당합니까?”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당혹스러워했다. 문관옥이 이청아의 승급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당연히 합당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말이 없자 문한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청아는 여자일 뿐 아니라 작은 지방 출신인데 왜 문왕부에 들어오자마자 권력을 쥐게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아버지께서 노망이
“음?”이 말을 듣고 문관옥은 천천히 미소를 거두며 불쾌하게 말했다. “어떤 놈이 감히 내 아지트에 들어와 난리를 피우는 거지?” “침입자의 신원은 알 수 없지만 실력은 강력합니다. 산장 내의 형제들은 전혀 막을 수가 없으니 속히 병력을 지원해 주시기 바랍니다!”호위는 두 손을 모아 절을 하며 보고했다. “강력한 실력이라고? 대체 몇 명이나 왔느냐?”문관옥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단 한 명입니다.” 호위가 대답했다. “뭐?”문관옥은 눈썹을 찌푸렸다. “겨우 한 사람도 감당하지 못한단 말이냐? 너희들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냐!” “제가 무능했습니다. 대인께 죄송할 따름입니다.” 호위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산장 안에는 백여 명의 호위들이 있었고 모두 정예병들이었다. 평범한 무사들이 침입했다면 살아남을 길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침입자는 전혀 보통이 아니었고 마치 태풍처럼 모든 것을 쓸어버리며 막힘없이 전진하고 있었다. 그들의 공격과 방어는 전혀 효과가 없었고 그저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다. “관옥 형님, 누가 왔든 간에 그냥 두어선 안 됩니다. 옥면 산장을 침입한 자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문한성은 의분에 차서 말했다. “가자, 나가서 그자를 직접 만나보자.” 문관옥은 술잔을 들어 남은 술을 모두 마시고 사람들을 이끌고 천천히 문을 나섰다. 이때, 산장 잔디밭 위에는 피에 젖은 한 사람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의 양옆과 뒤에는 이미 수많은 호위들이 쓰러져 있었고 모두 팔과 다리가 부러져 고통스럽게 울부짖고 있었다. “너는 누구냐? 감히 내 땅에서 난동을 부리다니, 목숨이 아깝지 않으냐?” 문관옥은 멀리서 그를 바라보며 냉랭하게 물었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천둥처럼 온 산장에 울려 퍼졌다. “문한성, 이리 나와서 죽음을 받아라!”유진우는 문관옥은 쳐다보지도 않고 사람들 속에 있는 문한성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의 눈빛은 차갑고 무정하
“관옥 형님, 걱정 마세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습니다.” 문한성은 히죽거리며 웃었다. “저 녀석을 잡으면 반드시 가혹하게 심문하여 옥로고의 레시피를 알아내겠습니다.”문관옥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저놈 꽤 실력이 있어 보인다. 일반 호위병들로는 막기 어려울 텐데 네 사람들이 과연 이도현을 처리할 수 있냐?”“관옥 형님, 안심하세요. 저 녀석을 상대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 둔 것이 있습니다.”문한성은 미소를 지으며 손뼉을 쳤다. 곧이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그의 뒤에서 걸어 나왔다. 남자는 검은색 민소매 셔츠를 입고 있었고 키가 190cm가 넘는 건장한 체구로 온몸이 근육질이었다. 피부는 청동색으로 빛났고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과는 다소 달랐으며 숨을 쉴 때마다 가볍게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가면을 쓰고 있었고 입술은 푸르스름하고 눈동자는 보랏빛이었으며 검은 망토에 둘러싸여 음산하고 냉혹한 느낌을 주었다. “관옥 형님, 이 두 분은 제가 초빙해 온 기인입니다.”“남자는 동시라 불리며 온몸이 칼과 총알을 맞아도 끄떡없고 불과 물에도 끄떡없습니다. 통증을 전혀 느끼지 않으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로 그가 표적으로 삼은 상대는 결코 도망칠 수 없습니다. 여자는 무요라 불리며 남자보다 더 대단합니다. 무요는 주술과 독살을 다루는 데 능숙하며 상대가 얼마나 강하든 얼마나 많은 사람이든 그녀의 독에 걸리기만 하면 죽을 길밖에 없습니다.” 문한성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차례로 소개했다. 이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동시와 무요? 혹시 바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시요쌍마인가?” “뭐라고? 시요쌍마라고? 정말인가? 시요쌍마는 이미 은퇴하지 않았나? 듣기로는 시요쌍마가 반보 마스터에 도달한 자들이며 기괴하고 사악한 무공으로 유명하고 수단이 잔혹하여 무도 마스터조차도 피할 수밖에 없는 공포의 대상이었지!” “한성아, 네가 그런 대단한 인물들을 청할 줄은 몰랐구나.
“널 막으면 죽는다고?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 정말로 네가 대단한 인물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참으로 가소롭군!” 문한성은 두 팔을 끼고 비웃으며 말했다. “동시, 저 녀석하고 좀 놀아줘라. 관옥 형님께서 남겨두라고 했으니 죽이지는 말고.” 동시는 반보 마스터의 경지에다가 구리 피부와 철 같은 몸을 가진 만큼 유진우를 상대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네!”동시는 명령을 받들며 걸음을 크게 내디뎠다. 그의 눈에는 유진우가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꼬마야, 오늘 넌 재수 없게도 나를 만났구나.”동시는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당장 네 팔과 다리를 스스로 끊으면 목숨을 살려주겠지만 내가 손을 쓰면 넌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비켜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유진우는 냉정하게 답했다. “흥! 죽을 줄도 모르는 녀석, 네가 고통을 좀 맛보지 않으면 내 힘이 얼마나 강한지 못할 것 같군!”동시는 비웃음을 치며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두 발로 힘껏 땅을 박차더니 마치 대포알처럼 순식간에 유진우를 향해 돌진했다. 그의 신체로 말하자면 이 한 번의 충격으로 사람이 아니라 소 한 마리라도 온몸의 뼈가 산산조각이 날 정도였다. 이것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공격 방식이었다. 왜냐하면 멋있고 잔혹하며 또한 강한 위압감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진우는 그 충격을 앞에 두고도 피하지 않고 그대로 걸음을 내디뎠다. “죽고 싶어 안달 났구나!” 유진우의 깔보는 태도에 동시는 눈에 살기를 띠며 갑자기 힘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의 온몸에는 금속 같은 빛이 아른거렸다. “쿵!”폭음이 울렸다. 동시의 강철 같은 몸이 마침내 유진우에게 부딪혔다. 하지만 예상했던 상황은 나타나지 않았고 유진우는 그 자리에 고요히 서서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유진우의 발아래에는 두 개의 깊이 파인 발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반면, 동시는 두 사람의 충돌과 동시에 연속해서 뒤
그러다가 친위대가 완전히 모이자 자객은 갑자기 놀라운 실력을 드러냈다.이렇게 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의 친위대를 유인하여 주변 방어력을 약화시키고 더 쉽게 암살하기 위해서였다.“X발, 정말 간사하고 교활한 놈이군. 어서 철수해.”친위대가 제때 복귀할 수 없다는 걸 안 진승민은 그제야 당황하며 옆에 있는 장교들과 함께 철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최적의 철수 시기를 놓쳤다.자객의 공격 속도는 그들의 철수 속도보다 훨씬 빨랐다.단 2분 만에 양측의 거리는 20m도 채 남지 않았다.“제후님, 저희가 자객을 막을 테니 먼저 피하십시오.”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몇 명의 장교들은 망설임 없이 칼을 뽑아 들고 자객을 향해 돌격했다. 하지만 10초도 버티지 못하고 모두 패배했다.“X발, 절대 가만 안 둬!”강윤기가 분노를 터트리면서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강 제후님, 흥분하면 안 됩니다.”진승민이 급히 말렸지만 이미 늦었다.앞으로 달려나간 강윤기가 자객의 목을 베려던 순간 자객이 검날을 덥석 잡더니 강윤기의 어깨를 찔러버렸다.“너 대체 누구야?”강윤기는 신음을 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자객은 아무 말 없이 갑자기 강윤기의 옷깃을 잡고 하늘로 내던졌다.휙.강윤기는 마치 발사된 포탄처럼 수백 미터 날아가 왕부 대문을 넘은 후 마당에 떨어졌다.쿵.곧이어 굉음이 울렸다. 강윤기의 몸이 땅에 떨어지면서 구멍이 생겼고 피를 토하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온몸의 뼈가 얼마나 부러졌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다쳤다.“강윤기.”대문을 지키고 있던 이의진은 급히 몸을 돌려 검을 강윤기의 목에 겨누고 외쳤다.“지금 당장 병사들한테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명하거라. 그렇지 않으면 내 손에 죽을 것이다.”...왕부 밖.강윤기가 날아가는 것을 본 진승민은 깜짝 놀라 잠시 멍해졌다가 곧바로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다.그는 그제야 후회했다. 만약 자객이 이렇게 강하다는 걸 알았다면 노정한과 하원휘처럼 빨리 도망쳤을 것이다.
하원휘는 매우 현명했다. 자객의 기세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바로 친위대를 지휘하여 뒤로 물러섰다.푸른 산이 남아 있으면 땔나무 걱정은 없다고 자객을 잠시 피했다가 체력이 고갈될 때 대군들이 포위해서 죽이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었다.“진 제후님, 하 제후님 말이 맞습니다. 안전이 우선이니 저도 뒤로 가서 잠시 피해있겠습니다.”하원휘가 철수하자 노정한도 더는 지체하지 않고 친위대의 보호를 받으며 천천히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흥, 겁쟁이들.”진승민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불만을 드러냈다가 강윤기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강 제후님은 용맹한 분이니 저 두 분처럼 겁먹고 물러나지는 않겠죠?”“당연히 물러나지 않죠.”강윤기가 몸을 풀면서 싸늘하게 웃었다.“자객 한 명뿐이지 않습니까? 전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았습니다.”제후가 된 그는 수많은 전투를 치르며 살아남았다. 큰 전투도 겪은 그가 작은 자객 하나에 겁을 먹을 리는 없었다.“좋습니다. 그렇다면 저 자객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봅시다.”진승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크게 휘둘렀다.“진을 치고 자객을 잡아라.”“알겠습니다.”그의 말에 친위대 수백 명이 바로 칼을 뽑아 들고 자객을 향해 공격하려 했다.“자객을 잡아라.”강윤기도 지지 않고 칼을 뽑아 들고 자신의 친위대를 지휘하며 다른 방향에서 공격을 펼쳤다.그들의 친위대는 정예 중의 정예였다. 혼자서 백 명을 손쉽게 해결할 정도로 일반 병사들보다 훨씬 강했다.자객의 실력이 대단하긴 해도 수많은 병사 사이를 휘젓고 다닌다는 건 아직 진짜 정예병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그들의 친위대가 투입되면 지금처럼 휘젓고 다니는 건 절대 불가능했다.아니나 다를까 두 제후의 친위대가 투입되자 자객의 돌격 속도도 눈에 띄게 느려졌다.친위대는 실력, 장비, 전투 경험 모두 일반 병사보다 훨씬 뛰어났다. 최고의 강자들을 상대할 수는 없었지만 제한하는 역할은 할 수 있었다.또한 일반 병사는 일반 철 갑옷을 입었으나
옆에 있던 하원휘가 말을 하려던 찰나 갑자기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해지더니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저기 좀 봐요. 저게 대체 뭔가요?”사람들이 하원휘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하늘에서 한 줄기의 검은 빛이 내려오더니 대군들 속에 떨어졌다.쾅.엄청난 굉음과 함께 땅이 흔들렸고 먼지가 피어올랐다.강력한 충격파는 마치 해일처럼 충돌 지점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충격파가 지나간 곳마다 사람이 나가떨어졌고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단 한 번의 충격으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X발, 대체 뭐야?”진승민이 눈살을 찌푸렸다. 먼지가 너무 심해서 방금 떨어진 게 무엇인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혹시 운석 조각 같은 건 아닐까요?”노정한이 의아해하며 말했다.“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졌다고요? 그런 우연이 있을 리가요.”강윤기는 전혀 믿지 않았다.“제가 봤어요. 사람이었어요.”눈치 빠른 하원휘가 떨어진 지점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저자가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먼지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오더니 4대 제후가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그 사람은 검은 검을 들고 매우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는데 지나가는 곳마다 병사들이 맥없이 쓰러졌고 아무도 막지 못했다. 무장병사들은 그의 앞에서 맥없이 쓰러졌다.순식간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자객이다. 어서 막아라!”하원휘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급히 군사를 모아 갑자기 튀어나온 자객을 공격하려 했다.“흥, 그래봤자 계란으로 바위 치기입니다. 우리한테는 대군이 수만 명이 있어요. 저자가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저 많은 병사를 뚫고 우리의 목을 벤다는 건 불가능합니다.”진승민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비록 적을 잡으려면 우두머리를 먼저 잡으라고 하지만 실제로 실행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다. 대부분은 암살로 우두머리를 제거했다.이렇게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우두머리를 죽이려는 행위는 그야말로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왜냐하
“이것들이 죽으려고.”몰려드는 무장병사들을 보며 유천우는 순식간에 분노를 터트렸다.그는 더 이상 자비를 베풀지 않고 칼을 들고 인파 속으로 돌진했다.지금의 그는 이미 무도 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랐고 게다가 수년간 전장을 누빈 덕에 쌓은 전투 경험 또한 풍부했다.혼자서 적진을 누비는데도 아무도 막지 못할 정도로 용맹했다.“도련님을 지키고 놈들을 죽여라!”이의진이 검을 하늘 높이 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뒤에 있던 유만군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 들었다.“전부 죽여버려.”석태혁이 장검을 휘두르며 백여 명의 유만군을 이끌고 적진으로 돌격했다.유만군의 수는 적었지만 모두 엄청난 실력을 지닌 고수였고 게다가 훈련도 잘되어 있었다.무도 마스터인 석태혁의 지휘 아래 그들은 파죽지세로 적진을 휘저으며 나아갔다.백여 명의 부대는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수만 명에 달하는 대군의 심장을 찔러 가차 없이 죽여버렸다.혹시라도 암살당할까 봐 4대 제후는 친위대의 보호 아래 즉시 전장에서 멀리 도망쳤다.“왕부 안에 저런 정예 부대가 숨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가차 없이 적을 베어버리는 유만군을 보며 진승민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다행히 백여 명밖에 안 되는군요. 수가 적어서 망정이지, 안 그러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노정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추측건대 저들이 바로 유만군일 겁니다. 유만수가 흑용군의 정예 병력 중에서 가장 뛰어난 고수들을 뽑아 만든 부대인데 전부 뛰어난 실력을 지녔습니다.”강윤기가 말했다.“그렇군요. 어쩐지 엄청 대단하더라니.”하원휘가 고개를 끄덕였다.“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숫자가 적어서 우리한테는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해요. 지금은 용맹해 보이지만 체력이 고갈되면 목숨을 내놓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진승민이 말을 이었다.“혹시 무슨 변수가 생기진 않겠죠?”노정한이 갑자기 물었다.“무슨 변수요? 왕부가 포위된 이상 함락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왕성 밖에도 우리 대군이 주둔하고 있으니 무슨 일이 일어나면 즉시 알아차릴 수 있어
아들이 무사히 돌아온 걸 본 이의진은 반가워하다가 이내 다시 표정이 굳어졌다.왜냐하면 아들이 갈 때와 마찬가지로 몇 명만 왔을 뿐 군대는 한 명도 데려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혹시 실패했어?”마음이 무거워진 이의진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들의 유일한 희망이 바로 남쪽 4대 제후를 설득하여 북쪽 4대 제후와 맞서는 것인데 지금 상황을 봐서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은 듯했다.“간덩이가 부은 것들! 감히 왕부로 쳐들어와? 모두 죽고 싶어?”유천우가 호통쳤다. 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마치 천둥처럼 현장 전체가 크게 울렸다.4대 제후의 수만 병사는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도련님께서 돌아오셨군요.”진승민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희 4대 제후는 왕부 안에 진범이 숨어 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위왕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 부득이하게 들어가서 수색해야 하니 길을 비켜주십시오.”“수색은 무슨 수색.”유천우가 냉담하게 외쳤다.“왕부가 어떤 곳인데 함부로 수색하겠다고 난리야? 저리 썩 꺼지지 못해?”“도련님, 저희는 진심으로 나라와 백성을 위해 움직이는데 이렇게 계속해서 방해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진승민이 태연하게 물었다.“흥. 내 앞에서 가식 떨지 마! 너희들의 속셈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없어.”유천우가 차갑게 말했다.“도련님, 당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진승민이 말했다.“진승민, 한 번만 기회를 줄게. 만약 지금이라도 떠난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 너희들은 여전히 서경 제후이고 여전히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다.”유천우는 말하다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하지만 만약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반역을 하려 한다면 내가 장담하는데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도련님, 저희는 대국을 생각해서 이러는 것이니 부디 길을 비켜주십시오.”진승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나머지 세 사람 역시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노려보며 조금도 물러설 기색이 없어 보였다.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그들은 물러설 이유가
“그럼 왕부에 들어가기 전에 나부터 죽이고 가!”이의진은 검을 든 채 꼿꼿이 서서 강력한 기세로 홀로 대문을 지켰다.그녀의 무공은 그리 강하지 않았고 고작 선천 무사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뿜어내는 기세는 무도 마스터보다 훨씬 강했다.일반 병사들은 물론이고 진승민조차도 압도되어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그저 다른 세 제후에게 눈짓을 보낼 뿐이었다.위협은 위협이고 압박은 압박이지만 적어도 명분은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천하의 조롱을 받고 만민에게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다.그들은 살인범을 추적한다는 명분으로 왕부를 포위했다. 비록 행동이 과격하긴 하지만 나중에 슬픔에 북받쳐 잠시 이성을 잃은 것이라고 변명할 수 있었다.하지만 압박 과정에서 왕비를 죽인다면 아무리 변명하고 이유를 만들어낸다고 해도 그 죄를 씻을 수 없을 것이다.그때가 되면 사람들의 공분을 일으킬 게 분명했다.그뿐만 아니라 서경 각지의 세력들이 동요할 것이고 심지어 연경에서도 군사를 보내 진압할 것이다.어찌 됐든 이의진은 서경 왕비이자 용국의 공주이기도 하니까.그런 신분을 가진 그녀 앞에서 그들은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다.간단히 말해 왕부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일 수 있어도 이의진만은 절대 건드려선 안 되었다. 하여 이의진이 함께 죽자는 듯한 태도를 보인 순간 오히려 그들이 당황했던 것이었다.“세 분, 이제 어떡하면 좋을까요?”진승민은 옆에 선 세 제후를 보며 낮게 물었다.“이미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설 이유가 없죠.”노정한이 차갑게 말했다.“맞습니다. 이제 한 걸음만 더 가면 성공인데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강윤기가 맞장구를 쳤다.“물론 압니다. 제 말은 왕비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겁니다.”진승민이 낮게 말했다.“왕비의 목숨만 해치지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하원휘가 불쑥 한마디 던졌다.“제후님 뜻은... 묶어놓자는 말입니까?”진승민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다른 방법이 있나요?”하원
무거운 왕부 대문이 쿵쾅거리면서 진동했다.매번 쿵쾅거릴 때마다 마치 거대한 망치가 심장을 강타하는 듯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문 열어.”이의진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치면서 사람들에게 대문을 열라고 명령했다.그녀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대문을 부수고 들어오려던 병사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갈피를 잡지 못했다.‘이런 상황에서는 대문을 굳게 닫고 방어에 힘써야 하는 거 아니야? 근데 알아서 문을 열어? 어떻게 된 거지? 혹시 다른 함정이라도 있나?’“진승민, 노정한, 강윤기, 하원휘. 나와!”이의진이 칼을 든 채 꼿꼿이 서서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의 강렬한 기세에 문밖의 병사들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그녀가 부른 네 명은 북쪽 4대 제후이자 이번 반란의 주요 세력들이었다.“뭐야? 일을 저질러 놓고 이제 와서 숨으려고? 4대 제후라는 사람들이 모두 쥐새끼처럼 숨어다니는 졸개들이야?”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이의진이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목소리가 어찌나 우렁차고 힘찬지 왕부 안팎으로 울려 퍼졌다.잠시 후 왕부 앞에 있던 병사들이 갑자기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넓은 길을 터주었다.곧이어 갑옷을 입고 망토를 걸친 각기 다른 모습의 중년 남자 네 명이 나란히 걸어왔다. 그들이 바로 북쪽 4대 제후였다.“진승민, 왕비님께 문안드립니다.”“노정한, 왕비님께 문안드립니다.”“강윤기, 왕비님께 문안드립니다.”“하원휘, 왕비님께 문안드립니다.”네 사람은 문 앞으로 다가가더니 동시에 몸을 숙여 예를 올렸다.“흥, 너희들 눈에 내가 왕비로 보이긴 하느냐?”이의진이 싸늘하게 말했다.“왕비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하루 왕비는 영원한 왕비십니다.”진승민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만약 너희들이 나를 왕비로 생각했다면 반란을 일으키지도 않았겠지.”이의진이 큰 소리로 말했다.“왕비님, 오해하셨습니다. 저희는 반란을 일으킨 게 아니라 왕실을 구원하러 온 것입니다.”진승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맞습니다.”옆에 있던 노정한
깊은 밤, 서경왕부 대문 앞.수많은 무장병사들이 거대한 왕부를 물샐틈없이 에워쌌다. 멀리서 바라보면 검은 무리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는데 그 수가 자그마치 수만 명에 달했다.이들은 단지 선봉 부대일 뿐이었고 사실 왕성 밖에는 북쪽 4대 제후의 군대와 유태범의 친위대까지 위장한 채 주둔하고 있었다.그 시각 왕부 안.이의진은 상복을 입은 채 차가운 표정으로 살기등등하게 대문 앞에 서 있었다.손에 날카로운 검을 들고 있었는데 온몸에서 풍기는 위엄과 살기는 보는 이들을 압도했다.왕부의 생사가 위기에 처하자 왕비인 이의진은 망설임 없이 맨 앞에 나섰다. 그녀의 뒤에는 석태혁과 갑옷을 입은 유만군이 서 있었다.그 수는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왕부에서 가장 강력한 전력이었다.유만군의 뒤에는 왕부의 병사들과 식솔들이 서 있었다.병사들은 칼을 들었고 식솔들은 몽둥이를 들었다. 그들은 죽음을 각오한 듯 굳건한 자세로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그리고 뒤쪽 내원으로 들어가면 왕부의 노약자와 부녀자들이 상복을 입고 무기를 든 채 멀리 떨어진 대문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만약 유만군이 쓰러지고 병사들과 식솔들이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들 역시 망설임 없이 달려나가 왕부와 함께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아빠... 엄마... 무서워요...”열 살 남짓한 한 소년이 두 손에 칼을 들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온 소년이 언제 이런 끔찍한 상황을 겪어봤겠는가.왕부가 포위당하고 밖에 수만 명의 대군이 매복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소년은 왕부의 운명이 다했고 오늘 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걸 직감했다.“쓸모없는 녀석.”한 중년 남자가 뒤를 돌아보며 소년에게 호통쳤다.“우리 유씨 가문의 사나이는 전장을 누비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어. 겁쟁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네가 오늘 한 발짝이라도 물러선다면 네놈을 먼저 베어버리는 수가 있어.”“아빠...”겁에 질린 소년은 덜덜 떨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울
“그건...”유진우는 망설이면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세자 전하.”은성종이 갑자기 두 손을 맞잡고 예를 표하면서 말했다.“제가 재주는 부족하지만 세자 전하를 위해 가시밭길이라도 기꺼이 헤쳐나갈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만약 절 믿어주신다면 이 일은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제가 은밀히 충신들한테 연락하여 빠르게 힘을 모으겠습니다. 때가 되어 세자 전하께서 신호만 주신다면 반드시 성공하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제후님은 역시 의로운 분이시네요. 정말 진심으로 존경합니다.”유천우가 진심으로 감탄했다.“그렇다면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유진우도 두 손을 맞잡고 공손하게 인사했다.“세자 전하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건 저의 영광입니다.”은성종이 말했다.“제후님, 큰일 났습니다.”그때 한 병사가 문을 벌컥 열고 뛰어 들어와 당황한 기색으로 말했다.“방금 들어온 소식인데 서경왕부가 대군에 포위당해서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합니다.”“뭐? 포위당했다고?”이 말을 들은 순간 유진우와 유천우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들이 떠난 지 이틀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변고가 닥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대체 어떻게 된 거야? 자세히 말해봐.”유천우가 다급하게 물었다. 병사는 은성종의 눈치를 살피더니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북쪽의 4대 제후들이 정예 부대를 이끌고 어젯밤 몰래 왕성에 잠입했는데 왕성 호위대의 장교급 군관들이 모두 인질로 잡힌 바람에 군 전체가 마비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 틈에 북쪽의 4대 제후들이 왕실을 구원한다는 명분으로 왕부를 포위했어요. 겉으로는 간신배들을 처단하고 서경왕의 복수를 하겠다고 하지만 실상은 군사를 일으켜 권력을 빼앗으려는 겁니다.”쾅.유천우가 화를 내면서 상을 세게 내리쳤다. “이것들이 아주 제대로 미쳤구나. 감히 서경왕부를 포위해?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이상 절대 이럴 수가 없어.”그는 설령 4대 제후들이 반란을 일으키더라도 기껏해야 성문 앞에 병력을 주둔시켜서 압박을 가하는 정도일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