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얼른 일어나세요!”유진우는 바닥에 꿇어앉은 사철수를 부축하며 말했다.“전하, 다 제가 무능해서 왕비님도 그리고 세자 전하도 지키지 못한 겁니다, 저에게 벌을 내려 주십시오!”“그런 말씀 마세요 아저씨. 그때 아저씨가 나서서 싸워주시지 않았더라면 저는 진작에 죽었을 겁니다.”“곤자영의 다른 전우들은 다 죽고 저만 살아남아서 전하께도, 왕비님께도, 그리고 위왕께도 제가 다 면목이 없습니다.”목이 메도록 울면서 말하는 사철수에 유진우도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자책하지 마세요, 아저씨가 이렇게 살아있는 걸 보니 저도 너무 기뻐요. 다 제 잘못이에요, 저 때문에 아저씨 전우들이 다친 거고 제가 아니었으면 아저씨도 십 년씩이나 혼절해있지도 않았을 거예요. 다 제 탓이라서 너무너무 죄송해요.”유진우는 자신의 친구들과 호위들이 저를 보호하기 위해 하나하나 죽어가던 그 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그 장렬하고도 결연한 모습으로 피바다에 뛰어들던 것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그들의 모습, 이름은 절대 잊을 수 없는 것이었고 또 잊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전하는 군주시고 저희는 신하입니다. 신하가 군주를 위해 죽는 건 당연합니다, 전하만 살아계시다면 저희들의 희생은 절대 헛된 게 아닙니다.”눈물을 훔치며 말하는 사철수에 유진우는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군주 신하 그딴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나한테는 다들 친구였어요, 그러니까 나를 위해서 죽을 의무 따위는 없어요, 내가 모두한테 빚을 진 거예요.”“전하가 하는 말을 들었으면 제 전우들도 구천에서 웃고 있겠네요.”오랫동안 보지 않아서 어색하긴 했지만 둘 사이의 정만은 변하지 않아 사철수는 울다 웃으며 말했다.“아저씨, 타이밍이 별로인 건 알지만 제가 꼭 해야만 하는 질문이 있어요. 그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일의 배후는 누구죠?”“그게...”진지하게 묻는 유진우에 사철수가 잠깐 머뭇거리더니 한숨을 한번 쉬고 말했다
“이만기요?”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유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꼭 어디서 들어본 것 같죠?”“전하께서 이만기는 잘 몰라도 임강왕이라는 사람은 들어봤을 겁니다.”“아, 그 사람이었네요!”사철수의 말을 듣고 놀란 유진우의 동공이 순간 작아졌다.임강왕은 천자의 동생으로서 그 많은 황실 종친들 사이에서도 손에 꼽히는 인물이었기에 10년 전에도 그 권세가 대단했었는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갑자기 종적을 감춰버렸고 지금까지도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그러니까 아저씨 말은 그때의 학살이 임강왕과 관련 있단 소리세요?”“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는 말씀 못 드리는데 임강왕은 그때 일을 다 알고 있을 거예요.”“왜 그렇게 확신하세요?”“임강왕과 위왕님은 친분이 두터우셨어서 그때 자금성 앞에서 습격을 당할 때 제일 먼저 찾아간 사람도 임강왕이었어요. 그런데 임강왕이 도와달라는 위왕님의 부탁을 거절했었죠.”사철수는 복잡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그 일이 있은 뒤부터 임강왕은 자취를 감추고 조정의 일에도 간섭하지 않았어요. 감추는 게 있다는 뜻이죠.”“의심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확실하진 않잖아요.”이 일의 배후에 황족들이 있을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임강왕의 세력으로는 역부족일 것 같아 유진우는 고개를 저었다.“사실 일이 벌어지기 전에 위왕님께서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시고는 조용히 알아보셨어요.”“그리고 저희들한테 늘 조심하면서 아무나 믿지 말라고 하셨죠, 그게 임강왕이라 해도.”“며칠 전부터 임강왕의 행보가 수상하다는 건 알았지만 물증은 없고 심증뿐이어서 그간의 정도 있고 하니 위왕님께서는 준비만 하시고 별다른 행동은 취하지 않으셨어요.”“뒤에 그토록 강한 세력이 있는 줄도 몰랐고 간자에게 가짜 군령을 보내 위왕님을 다른 곳으로 보낼 거라는 건 전혀 상상도 못 했었죠.”“위왕님이 돌아오셨을 때는 이미 많이 늦은 뒤였어요, 그다음부터는 전하도 아시는 얘기고요.”“임강왕이 수상하다는 건 제가 멋대로 넘겨짚은 게 아니라 위왕님께서 그 전부터 옛친구임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임강왕을 찾아 그날 일에 대해 묻는 것이었다.“아저씨는 금방 일어나셨으니까 일단 좀 쉬고 계세요. 무슨 일 생기면 저 부르시고요.”“전하!”사철수는 갑자기 저를 부축해 침대까지 데려다주는 유진우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그날 일은 이미 다 지나간 일이니까 이쯤에서 접는 게 어때요? 안 그러면 괜한 화만 불러올 거에요. 왕비님께서도 하늘에서 전하가 무사하기만을 바라고 계실 거에요.”“아저씨, 이 일은 제 마음속 깊은 곳에 박힌 응어리고 또 죄책감이에요. 사건의 진실을 알지 못하면 저는 영영 괴로워하면서 살게 될 거에요.”“아이고...”확고한 유진우의 말에 사철수는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한번 마음먹은 건 무조건 해내는 성격인 유진우를 잘 알기에 사철수도 더는 말리지 않았다.“아저씨가 지금 하셔야 할 건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시는 거예요. 이런 잡다한 일은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시고 푹 쉬세요.”사철수가 무사히 깨어나서 한시름 놓은 유진우는 웃으며 방을 나섰다.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임강왕, 이만기를 찾는 것이다.그리고 이런 어려운 일을 도와줄 사람은 자금성의 그 사람밖에 없을 것 같아 밖으로 나온 유진우는 비밀스럽게 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수화기 너머에서 나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왜 또 전화했어요? 저번에 빙심연 구해다 줬잖아요.”“빙심연 일은 정말 고마워요.”간단한 인사치레를 마친 유진우는 바로 본론부터 말했다.“이번에 전화한 건 묻고 싶은 게 있어서예요.”“아아아, 잠깐만요.”그때 여자가 갑자기 유진우의 말을 막으며 말했다.“유장혁 씨, 저번 한 번만 도와주는 걸로 이미 얘기 다 끝난 거 아니었어요? 이젠 약속도 안 지키겠다는 거예요? 사람이 적당히를 알아야지. 난 이미 빚진 거 다 갚았어요!”“빚은 다 갚으셨죠, 이번엔 제가 신세 지는 걸로 하죠. 한 번만 더 도와주시면 다음에 저한테 부탁할 일 생겼을 때 저도 두말하지 않고 도와드릴게요.”“나도 이제 궁
확답을 들었음에도 유진우는 기쁜 게 아니라 마음이 복잡하기만 했다.자금성의 여자가 승낙했다는 건 찾을 수 있다는 뜻인데 뭔가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유진우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하지만 이 불안이 어디에서 오건 지는 유진우 본인도 몰랐다.직감일 수도 있고 그냥 쓸데없는 생각일 수도 있었다.“됐어, 파다 보면 알게 되겠지.”그렇게 고개를 저으며 애써 잡념을 지워낸 유진우가 방으로 돌아가서 쉬려 할 때 은도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여보세요? 은도 씨, 무슨 일이에요?”고개를 둘러 어두워진 하늘을 바라보던 유진우가 의아한 듯 묻자 수화기 너머에서 허스키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뭐?”그에 유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당신 누구야? 은도 씨 핸드폰을 왜 당신이 가지고 있어?”내가 누군지는 알 필요 없고 아무튼 당신 친구 지금 나랑 같이 있으니까 당장 성북 관공절로 와, 최대한 빨리 오는 게 좋을 거야. 애들이 다 기다리느라 지쳐있어서 네가 늦게 오면 여자를 건드릴 수밖에 없어.”“내가 경고하는 데 은도 씨 몸에 손대기만 너희들 다 무사하지 못할 거야. 내가 천 배로 갚게 할 거니까.”음침하게 웃으며 말하는 남자를 향해 유진우가 차갑게 쏘아붙였다.“하하, 그건 두고 봐야 알지. 성북 관공절이야, 혼자 오는 것 정도는 말 안 해도 알지?”남자는 사악한 웃음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고 유진우는 바로 차 키를 집어 들고 남자가 말한 주소로 향했다.전화 속의 남자가 노리고 있는 건 유진우였다.유진우와 원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은 안세리, 봉연주, 송영명, 단소홍, 그리고 문한성 정도였는데 송영명은 유진우와 부딪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이런 일을 벌이지 못했을 테고 단소홍은 며칠 전에 문왕부 사람들에 의해 손이 잘려나가 병원에 누워있으니 이런 데는 더더욱 신경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그러면 용의자는 몇 명뿐인데 그중 그 누구라도 이미 유진우가 정해놓은 선을 넘었으니 절대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다.40
팔에 문신이 그려진 남자 둘이 차에서 내리는 유진우를 막아서며 소리쳤다.“약속 있어서 온 거야.”“몸수색부터 해!”유진우가 차갑게 설명했지만 두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유진우의 몸을 샅샅이 뒤졌다.은도가 무사하다는 걸 확인하기 전까지는 경거망동할 수 없었기에 유진우도 남자들에게 가만히 몸을 내주며 서 있었다.“됐어, 들어가.”그렇게 한참을 몸을 뒤지던 남자들은 유진우가 무기를 챙겨오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 그를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그에 유진우도 아무 말 않고 바로 관공절로 향했다.그 시각 관공절 안에서는 얼굴에 수염이 잔뜩 나 있는 남자 하나가 웃통을 까고서는 제 부하들을 데리고 양을 구워 먹고 있었다.테이블 위에는 값비싼 술들이 잔뜩 놓여있었는데 한 손으론 고기를 뜯어 먹으면서 다른 손으론 술을 벌컥벌컥 들이마시는 걸 보니 다들 아주 행복해 보였다.그 한구석에는 눈을 가리운 채 돌기둥에 묶여있는 은도가 있었다.원래도 글래머러스한 몸매가 밧줄 때문에 꽉 조여지니 더 섹시해져서 조직원들은 고기를 뜯으면서도 음흉하게 은도를 바라봤다.“보스, 이 년이 남자를 너무 잘 꼬셔서 제가 이미 다 섰다는데 어떻게 한번 놀아보면 안 되겠습니까?”그때 대머리 남자가 제 아래를 만지며 눈은 풍만한 은도의 가슴에 고정시킨 채 말했다.“나도 아직 못 놀아봤는데 네가 왜 급해 해.”그에 수염이 잔뜩 나 있는 보스라는 사람이 단칼에 거절하자 대머리 남자는 조급해하며 말했다.“제가 너무 급해서 그럽니다 보스. 정말 오랫동안 제대로 풀어본 적이 없어요. 이번에 하게 해주시면 제가 받을 돈 다 보스 드리겠습니다.”“진짜야?”이번 납치 사건은 유진우를 노리고 계획한 것이었기에 걸린 보수도 상당했는데 조직원들이 비례대로 나눈다 해도 한 사람당 몇천은 쉽게 챙겨갈 큰 건이었다.정말 여자랑 놀자고 그 몇천만 원을 다 버리겠다는 게 의심스러웠던 보스라는 사람은 재차 확인하며 물었다.“당연히 진짜죠, 다들 보고 있는데 제가 설마 시치미를 떼겠습니까?”대머리
“뭐지?”남자는 땅에 떨어진 자신의 물건과 휑해진 아래를 번갈아 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저게 언제 어떻게 떨어진 건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으악!”그렇게 잠깐의 정적 후 정신을 차린 남자가 피가 샘솟고 있는 자신의 아래를 붙잡고 풀려버린 다리와 함께 땅에 주저앉아 듣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비명을 질러댔다.“아! 내 거! 내 거!”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러다니는 남자에 다른 조직원들도 사색이 되어 달려왔다.“야! 너 왜 그래?”턱수염이 깜짝 놀라며 묻자 대머리는 대성통곡을 하며 피범벅이 된 채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자신의 물건을 집어 들어 조직원들에게 보여주었다.“X발! 누가 감히 얘 물건을 건드려! 당장 나와!”턱수염이 주위를 경계하며 소리치자 다른 조직원들도 하나같이 칼을 빼 들고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나야.”그때 차가운 얼굴을 한 유진우가 천천히 관공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절 안에는 이삼십 명쯤 돼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는데 다들 집이나 털고 다니는 조직폭력배였다.사회에서 낙오된 자들이 빈민구에 몰려서 가오를 잡고 있는 모습에 유진우는 코웃음을 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너 이 새끼! 네가 유진우지?”유진우를 아래 우로 훑어보던 턱수염은 그의 사진을 미리 보내준 의뢰인 덕에 그의 신분을 빠르게 알아챌 수 있었다.“그래.”이번에는 유진우가 턱수염을 아래 우로 훑으며 물었다.“너는 누군데 감히 은도 씨를 납치해?”“물어보니까 알려줄게. 난 흑곰파 보스고 여기 있는 애들은 다 우리 조직원이야.”“의뢰인 한 분이 네 목숨을 돈 주고 샀어. 그러니까 너는 오늘 이 자리에서 죽어야 해.”“누가 시킨 짓이지?”“알고 싶어?”호통을 치던 턱수염은 이번에는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네가 죽으면 알려 줄게.”“내가 지금 너희들한테 기회를 주고 있는 거야, 누가 시켰는지만 말하면 너희들 목숨은 살려줄게.”“우리를 살려준다고?”담담하게 말하는 유진우에 턱수염은 오른쪽 왼쪽을 번갈아 보더
그 광경에 달려오던 조직원들은 마치 석화된 것 마냥 그 자리에 굳어져 버렸다.그리고 바로 이어서 폭발음이 연달아 들리더니 조직원들이 몸이 공기가 넘쳐나는 고무공처럼 커지더니 하나하나 터져나갔다.떨어진 사지와 사정없이 솟구치는 피 때문에 관공절 안에는 순식간에 핏빛 안개가 껴버렸다.“뭐지?”턱수염도 깜짝 놀라 피바다에 떨어져 버린 자신의 담배를 보며 눈만 깜빡였다.다... 다 죽은 건가?단 하나의 수로 자신의 조직원들을 몰살해버린 유진우는 그야말로 악마 같았다.의뢰인은 사건을 의뢰한 게 아니라 자신의 조직원들을 사지로 내몬 것이다.“뭐야? 저놈은 대체 뭐 하는 놈이야?”그때쯤 되자 대머리는 아픈 걸 까맣게 잊고 놀라서 유진우를 쳐다보았다.그냥 평소 해오던 대로 사람을 죽이고 시체만 이송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리고 이번에는 돈 많은 의뢰인이 뒤를 봐준다 해서 아무 문제도 없을 줄 알았는데 그 처리해야 할 대상이 이 정도로 강할 거라고는 미처 예상을 못 했었다.손 한번 들었다 놓는 걸로 저 많은 사람을 조각내는 건 정말 보기만 해도 오싹했다.절 안에는 피 묻은 사지가 나뒹굴고 있었고 피가 사방으로 튕기고 있었지만 문어구에 서 있던 하얀 옷의 유진우만은 들어오던 그때처럼 깨끗했다.유진우는 만물을 내려다보는 신령처럼 아무 감정도 없는 눈으로 담담히 턱수염을 바라보며 말했다.“이제 네 차례야.”고개를 든 유진우가 턱수염을 바라보자 그는 사색이 되며 멈추지 않고 뒷걸음질을 쳤다.“너... 오지마! 네가 가까이 오면 저년 당장 죽여버릴 거야!”말을 마친 턱수염은 칼을 꺼내 은도의 목에 들이밀었다.그래도 인질이 있으니 마음이 한결 안정되는 것 같았다.그런데 유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단도를 앞으로 한번 휘두르며 빛을 번뜩이더니 순식간에 남자의 팔을 잘라냈다.그렇게 남자의 팔은 들려있던 칼과 함께 바닥으로 “쿵!” 하고 떨어졌다.“아아!”잠시 멈칫하던 남자는 이내 떨어진 제 팔과 온몸을 관통하는 듯한 통증에 처절한 비명을 질러댔다.
제 보스가 모든 걸 다 털어놓는 걸 본 대머리는 속으로 수많은 욕을 삼켜냈다.남자라면 기개가 있어야 한다며, 흑곰파의 일원으로서 당당하게 죽자던 사람이 갑자기 배신을 해버리고 살 기회까지 빼앗아가 버렸다.“보스, 우리 같이 비밀 지키고 죽기로 했잖아요, 왜 갑자기 배신하신 겁니까?”“너무 내 탓만 하지 마, 난 모셔야 할 부모님도 있고 먹여 살려야 할 처자식도 있어. 이렇게 죽으면 안 된다고. 그리고 넌 이미 남자도 아닌 게 됐는데 살아서 뭐하겠어, 제수씨는 내가 잘 챙길 테니까 넌 편히 가.”개소리를 정성껏 지껄이는 턱수염에 화가 치밀어오른 대머리는 허리춤에서 칼을 꺼내어 턱수염에게로 달려들었다.하지만 그보다 좀 더 반응이 빨랐던 턱수염의 바닥에 있던 벽돌을 주어 대머리의 머리를 내리찍었다.-펑!묵직한 소리와 함께 벽돌이 부러지고 머리통도 깨지면서 대머리는 피를 뿜어내며 그대로 쓰러져버렸다.“죽어! 죽으라고!”그럼에도 턱수염은 흉악한 얼굴로 한번 또 한 번 벽돌로 머리를 내리찍었고 대머리는 마침내 숨이 다 끊겨버렸다.그의 머리는 터져버린 수박처럼 빨갛고 하얀 정체 모를 것들이 되어 바닥에 널려 있었는데 턱수염은 그래도 혹시 모를 상황을 피하고자 칼을 들어 대머리의 심장에 깊숙이 찔러넣었다.턱수염은 이보다 더 확실하게 죽을 순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칼질을 멈추었다.“동료도 다 죽이고, 참 잔인하네.”“나를 챙길 사람은 나밖에 없어요. 내가 살려면 저놈을 죽여야죠. 일찍 사회에 나와 목숨 부지하면서 그 정도는 진작에 배웠어요.”유진우의 말에 턱수염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아까 문한성이 시킨 짓이라고 했지. 걔는 지금 어딨어?”유진우가 더 묻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턱수염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그건 저도 몰라요. 그렇게 대단하신 분들이 왜 저희 같은 고용인한테 스케줄을 알려주시겠어요?”“문한성과는 어떻게 연락했어?”“문한성의 직원이라는 사람이 연락을 줬었어요. 일 다 처리하고 사진만 찍어서 보내면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