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아?” 갑자기 나타난 하얀 머리의 여자를 본 유진우는 놀란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여자는 다른 사람도 아닌 유진우의 유일한 제자, 황은아였기 때문이다. 정말 오랜만에 두 사람이 이런 자리에서 만날 것이라고는 유진우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의 황은아는 전과는 달리 변화들이 꽤나 많아보였다. 얼굴도 더욱 아름다워졌고 기세 또한 강해져 황은아라는 사람이 아예 달라보이게 만들었다. 혈통을 각성 한 뒤 황은아는 제대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한 것 같았다. “아저씨, 어때요? 조금 놀랐나요?” 황은아가 옅은 미소를 띠며 물었다. “이렇게 불쑥 찾아올 거면 먼저 전화라도 하지 그랬어.” 유진우는 일부로 그녀가 반갑지 않은 듯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황은아가 아파하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이마를 살짝 쳤다. 그의 행동은 주술교의 고위층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저 놈이 감히 성녀의 이마를 쳐? 정말 대담하군.’ 하지만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도도하던 성녀가 이마를 맞고도 화를 내지 않았고 오히려 유진우에게 애교를 부리듯 말했다. “아저씨, 저 계속 갇혀 있다가 며칠 전에 나왔어요. 그래서 너무 바빠서 제일 먼저 전화한다는 것도 잊어버렸지 뭐예요.” “...” 유진우의 앞에서는 그저 부끄럼쟁이가 돼버린 황은아를 본 주술교 고위층 사람들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들 서로 눈을 마주치며 눈앞의 광경이 믿지지 않는다는 듯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무슨 상황이지?’ ‘이게 그 사람을 죽일 때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던 잔인하고 매정한 성녀님 맞으신가?’ 성녀가 출관한 뒤, 어떤 수법으로 그녀를 깔보는 수많은 사람들을 물리쳤는지 그들은 다 알고 있었다. 게다가 아주 손 쉽게 주술교와 대치하고 있던 무림 문파도 바로 물리쳐버렸다. 그 뒤로 주술교 내부에 빗발치던 불만의 소리들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다들 성녀에 대해 존경심을 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렇게 대단한 성녀가 유진우의 앞에
“스승님?” 황은아의 말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특히나 차 할머니와 연 선생, 그리고 송영명 이 세 사람은 황은아의 말에 넋이 나간 듯 멍해있었다. 그들은 꿈에서조차 유진우와 황은아가 사생지간이라는 사실을 예상하지 못했었다. 주술교 성녀의 스승이라는 신분이 세상에 노출되기라도 하면 세상이 발칵 뒤집히지 않겠는가? “설마! 그럴 리가 없어. 저 놈이 어떻게 주술교 성녀랑 사생관계겠어?” 송영명은 두려움에 저도 모르게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유진우의 신분을 믿지 않으려했다. 안세리가 분명 유진우는 그저 평범하고 무명의 젊은 남자라고 알려줬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유진우에게 이렇게 거대한 배후와 실력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내 스승님을 죽이려 하는 것은 나를 죽이려하는 것과 다름없어.” 황은아는 세 사람의 앞에 천천히 다가가더니 냉랭한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주술교 성녀의 스승을 몰래 죽이려 하다니... 이게 얼마나 큰 죄인지는 알아?” “성녀님, 살려주십시오. 부디 살려만 주십시오.” 연 선생은 황은아의 말에 곧장 머리를 땅에 부딪히며 끝없이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성녀님! 제 잘못을 깊이 뉘우쳤습니다. 제발 부디 노하지 마시고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차 할머니도 연 선생의 모습을 따라하며 머리를 땅바닥에 조아렸다. 그녀의 머리에서는 피가 줄줄 흐리고 있었지만 차 할머니는 멈출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한편 송영명은 이미 너무 놀라 금방이라도 까무러칠 것 같았고 절망에 빠져 모든 것을 포기한 듯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살려달라고?” 황은아는 싸늘하게 식은 얼굴로 물었다. “사람을 죽이려하고 주술을 마음대로 부리고, 또 아무 죄 없는 여성들까지 해쳤으니 너같은 쓰레기는 이 세상에 살아있을 이유가 없어. 살아있어도 그저 공기만 낭비하겠지.” 말을 마친 황은아가 손가락을 한번 까닥거렸다. 탕! 눈 깜짝 할 사이에 검은 색 빛과도 같은 총알이 연 선생의 이마를 관통했고 총
“이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아저씨가 결정하세요.”황은아는 무릎을 꿇고 있는 송영명을 턱으로 가리키며 죽은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그 순간, 송영명은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정신이 번쩍 들어, 당황하며 말했다.“유... 유진우, 제발 날 죽이지 마.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 절대 너랑 맞서지 않을게. 한 번만 살려줘!”“살려달라고?”유진우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너희들은 나를 몇 번이나 속이고, 온갖 비열한 짓은 다 했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살려달라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송영명은 무릎을 꿇고 ‘텅텅’ 소리를 내며 유진우에게로 다가가 그의 바짓자락을 붙잡고 울며 말했다.“진우 형! 진우 도련님! 난 아무 잘못 없어요. 다 안세리 그 나쁜 년이 꾸민 일이에요. 난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요. 그러니 너그러이 내 잘못을 용서해 주세요.”“안세리?”유진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말해봐, 이번에 나를 해친 건 복수 때문이야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거야?”송영명은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옥로고 사건 때문에 우리는 큰 손해를 봤어요. 그래서 안세리가 제안했죠. 도련님을 잡아다가 고문해서 다른 일품 처방을 알아낸다면 그 손해를 만회할 수 있을 거라고요.”“그 여자, 정말 악랄하군. 몇 번이나 도와주고, 목숨까지 구해줬는데 결국 이렇게 나를 몰아넣다니. 보통 사람 같았으면 벌써 죽었을 거야.”유진우가 차갑게 말했다.“맞아요! 그년은 정말 배은망덕하고 악독한 년이에요. 나도 진작부터 그 여자가 마음에 안 들었다니까요!”송영명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진우 도련님! 절 살려주면 앞으로 도련님의 충실한 개가 되어 안세리 그년이 마땅한 대가를 치를 수 있도록 처리해 드릴게요!”“안세리는 네 약혼녀인데 정말 손을 댈 수 있겠어?”유진우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약혼녀는 무슨! 그냥 집안끼리 정략결혼을 맺은 거예요. 우린 사적인 감정 같은 거 전혀 없어요. 더군다나, 누가 그런 악독한 여자를 좋아하겠어요?
“그래? 주술교의 고수들이 이렇게 많이 출동하다니, 이번 거래 만만치 않은가 보네.”유진우는 살짝 놀란 듯 말했다.황은아의 뒤엔 여러 무도 마스터가 있었고, 나머지는 반보 마스터거나 본투비 대원만 경지를 가진 자들이었다.이 정도의 세력은 정말 드물었고, 이 힘이면 4대 왕족과 맞먹을 만했다.“맞아요. 확실히 만만치 않아요. 왜냐하면 이번 일을 의뢰한 사람이...”황은아가 말을 잇기 전, 뒤에 있던 노인이 급히 가로막았다.“성녀님! 이건 주술교의 중요한 기밀이니 외부인에게 절대 발설해선 안 됩니다!”“어?”황은아가 고개를 돌려 노인을 쏘아보자, 노인은 겁에 질려 소름이 돋고 눈동자가 떨렸다.“다시 말하지만, 이분은 내 스승님이에요. 외부인이 아니니까 말조심해요.”“잘못했습니다.”노인은 바로 고개를 숙이며 두려움에 떨었다.“은아야, 그만해.”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기밀이라면 굳이 안 들어도 돼. 나는 귀찮은 걸 싫어하니까, 알면 더 부담스러워질 테니 차라리 모르는 게 좋아.”“흠... 알았어요.”황은아는 미소 지으며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사실 이 비밀을 말하면 유진우에게 위험이 닥칠 수도 있었다.“아저씨, 나 배고픈데, 나랑 야식 먹으러 가면 안 돼요?”황은아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너 연경에 처음 왔으니, 오늘 내가 제대로 환영식을 해줄게!”...다음 날, 아침.남부 병원의 VIP 병실 안.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송영명은 병상에서 여전히 의식이 없었다.어젯밤 가까스로 위험에서 벗어난 그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졌고, 급히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았다.“선생님, 제 아들은 괜찮나요? 위험한 건 아니겠죠?”수술실에서 나온 송영명을 보며 송덕해는 걱정스럽게 물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아드님은 외상뿐이라 이미 치료를 마쳤으니 큰 문제는 없습니다.”의사가 대답했다.“다행이군요.”송덕해는 한숨을 돌리며 다시 물었다.“근데, 아직도 왜 안 깨어나는 거죠?”“아드님은 어젯밤 큰 충격을 받
“어?”격양된 송영명을 보며 송덕해는 어리둥절했다.‘이 녀석은 머리를 크게 다친 건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아빠! 멍하니 있지 말고, 빨리 명령을 내리세요. 이러다간 우리 집안이 큰일 난다니까요!”송영명은 몹시 초조해 보였다.어젯밤 유진우가 한 말이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목숨을 건졌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계속 안씨 가문과 손잡고 있으면, 결국 죽음으로 향할 뿐이었다.유진우는 무도 마스터일 뿐만 아니라, 주술교 성녀의 스승이기도 했다.그러니 그의 한마디이면, 송 씨 같은 가문은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었다.천하제일 사파 앞에서, 명문가든 사대 왕족이든 모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의사 선생님, 아들이 괜찮다면서요? 그런데 왜 깨어나자마자 헛소리를 하고 있죠?”송덕해는 의사에게 다소 따지듯 물었다.“...”의사는 침묵했다.“아빠! 저 헛소리하는 거 아니에요. 진지하다고요!”송영명은 진지하게 말했다.“안씨 가문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에요. 무조건 떨어져야 해요, 안 그러면 큰일 나요!”“영명아, 너 협박이라도 당한 거야?”송덕해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평소 냉정한 아들이 이 정도로 당황하는 건 처음이었다.“아빠, 구체적인 이유는 말할 수 없지만, 제발 저를 믿어주세요. 더 이상 안씨 가문과 엮이지 마시고, 유진우에게도 손대지 마세요. 그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에요.”송영명은 단호하게 말했다.“영명아, 우리는 안씨 가문과 협력한 지 꽤 오래됐고, 서로 밀접하게 엮여 있어. 너도 세리랑 약혼한 사이인데, 이렇게 쉽게 관계를 끊을 수는 없지 않겠니?”송덕해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안씨 가문과의 관계를 끊는다는 건 너무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이었기에 충분한 이유가 없다면 그런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았다.“아빠, 지금은 생사가 걸린 중요한 시기예요. 아무리 큰 손해를 보더라도, 더 이상 왕가와 엮여서는 안 돼요.”송영명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그 정도로
‘에라. 모르겠다. 모든 걸 다 밝히고 말겠어!’“영명 오빠, 나도 오빠가 힘든 거 알아. 하지만 남자가 좀 고생하는 게 뭐가 대수야? 그렇다고 나 같은 여자가 밖에서 나설 순 없잖아?”안세리는 입을 삐죽이며 송영명에게 불만을 드러냈다.“됐고, 예전 일은 더 이상 따지지 않을게. 하지만 이제부터 너랑은 끝이야. 우리 결혼? 지금 당장 취소할 거야.”송영명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결혼을 취소한다고?”안세리는 눈을 크게 뜨고 믿기 힘든 표정을 지었다.“오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는 거야?”“못 알아들었어? 그럼 다시 말할게. 나 파혼할 거라고!”송영명은 목소리를 높였다.“파혼?”안세리는 완전히 멘붕 상태였다.이건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전에는 뭐든지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아첨하던 사람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렇게 변할 수 있단 말인가?“영명아! 그만해!”송덕해가 크게 꾸짖었다.안씨 가문과 결별하는 건 그렇다 쳐도, 결혼을 당장 취소하면서 완전히 등을 돌릴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아저씨, 영명 오빠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 아닌가요?”안세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나 멀쩡해! 아무 문제 없어!”참다못한 송영명이 폭발했다.“안세리, 나 너 진짜 오래 참았어. 네가 얼마나 사람을 질리게 하는지 알기나 해? 자존심 강하고 이기적이면서 남의 질투나 하고, 너보다 예쁘거나 나은 여자가 나타나기만 하면 어떻게든 망치려고 하잖아. 넌 정말 악랄해!”“너, 너 지금 나한테 욕한 거야?”안세리는 놀라며 화를 참지 못했다.한 번도 이런 모욕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그게 자신의 약혼자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다.“욕한 게 뭐 어때서? 너 같은 여자는 보기만해도 짜증 나니까 당장 꺼져!”송영명은 단호하게 말했다.“네가 감히!”안세리는 분노에 찬 손길로 송영명의 뺨을 후려쳤다.“제길! 감히 날 쳤어?”송영명은 가만히 있지 않고, 그대로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반격하듯이 되돌려쳤다.그 충격에 안세리는
안씨 가문 회의실에서. 방금 집으로 돌아온 안세리는 병원에서 겪은 억울한 일을 부모님께 하소연했다.“아빠, 엄마, 송영명은 정말 너무해요!”“파혼한 것도 모자라 우리 안씨 가문과 결별하겠다잖아요. 그리고 내가 몇 마디 물어봤을 뿐인데 날 때리는 거 있죠.”“이 얼굴 좀 봐요. 어떻게 됐는지? 이번에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니까 꼭 도와주세요!”안세리는 자신의 분노를 터뜨리며, 매우 흥분한 모습이었다.명문 가문의 딸인 그녀가 혼인 취소에 얼굴까지 맞았으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세리야, 일단 진정해.”안두천은 손을 들어 누르며, 의아한 듯 말했다.“영명이는 항상 성숙하고 차분했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됐지?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나도 몰라요.”안세리는 입을 삐쭉이며 말했다.“그가 어젯밤 상처를 입었단 얘기를 듣고 오늘 아침 병문안을 갔는데, 나를 보자마자 미친 사람처럼 욕하고 때렸어요. 정말 너무해요!”“그럼 이상하네.”안두천은 턱을 만지며 말했다.“영명은 그렇게 무례한 사람이 아닌데 왜 갑자기 이렇게 변했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두 가문은 늘 친하게 지냈으니, 연인 간의 사소한 다툼이 이렇게까지 커질 일은 아니었다.“당신, 송덕해에게 전화해 봐요.”송자현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두 사람이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벌써 손을 대다니, 결혼하면 어떻게 될지 상상도 안 돼요. 우리 딸이 그냥 당하는 건 못 참아요.”“알겠어, 물어볼게.”안두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을 꺼내 송덕해의 개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여러 번 시도해도 상대방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아마 바빠서 전화를 받을 수 없는 것 같아.”안두천이 설명했다.“바쁘긴요? 두 사람이 병원에서 뭐 그렇게 바쁠 게 있어요? 일부러 안 받는 거지!”안세리가 가차 없이 말했다.“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안두천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이 일은 뭔가 이상해요. 만약 세리가 말한 게 사실이라면, 송씨 가문은 우리 안씨
송자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세리야, 너는 계획을 세워라. 난 봉씨 가문의 큰 사모님을 만나 분위기를 살펴봐야겠어.”“알았어요!”안세리가 단호하게 대답했다.“잠깐... 유진호는 어떻게 할 거야? 계속 처리해?”안두천이 갑자기 물었다.“처리해야죠!”안세리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그 자식은 권력을 악용해 우리와 송씨 가문을 갈라놓았으니, 대가를 치러야 해요!”“의심을 피하기 위해, 이 일은 직접 손대지 말고, 다른 사람을 시켜야 해.”송자현이 주의를 줬다.“걱정하지 마세요. 알아서 잘 처리할게요.”안세리는 눈을 가늘게 뜨며 음산하게 말했다.“나쁜 남자들을 대처하려면 방법은 많아요!”...그 시각, 은 씨 제약 앞.한 대의 승용차가 천천히 멈췄고, 차문이 열리며 유진우와 황은아가 차례로 내려왔다.“이게 아저씨 새 회사예요? 정말 활기차네요!”황은아는 유진우를 따라 좌우를 둘러보며,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었다.어제의 소동 이후, 은 씨 제약은 여전히 열기가 식지 않았고, 각 세력은 소문을 듣고 몰려와, 옥로고를 대량으로 주문하기 시작했다.한 편으로는 가격이 합리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약효가 뛰어났기 때문에, 입소문이 나자, 자연스럽게 사업이 잘 되었던 것이다.그래서 아침에 문을 열자마자, 은씨 제약 대문 앞에는 줄이 늘어섰다.지금도 거래하러 오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고 있었다.“이건 내가 두 친구와 함께 창립한 회사인데 반응이 꽤 좋아.”유진우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난 연경에 도착하자마자, 옥로고의 명성을 들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아저씨의 성과였네요.”황은아가 웃으며 말했다.“주술교는 자주 임무 중 상처를 입어서 이런 치료 성약이 필요해요. 그래서 여기서 주문하고 싶은데, 사장님 할인해 줄 수 있나요?”“이런, 사업을 도와주겠다더니 내 피를 빨려고 하네. 너무 한 거 아니야?”유진우는 일부러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헤헤, 아저씨는 제 스승님이니까요.”황은아는 유진우의 팔을 흔들며 애교를 부렸다.“해주실 거죠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