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구역에서 오랜 시간 살아왔지만 지금까지 용서후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 사람은 없었다. 이런 게 바로 죽음을 자초한다는 건가?“정확히 들었어. 내가 그렇게 말했어.”유진우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재밌네...”용서후가 피식 웃더니 눈빛이 갑자기 이상하리만큼 싸늘해졌다.“너처럼 나대는 놈은 처음 봐. 감히 용씨 가문의 산업을 달라고 하다니 대단해, 아주. 골든 클럽을 너한테 줄 수는 있어. 하지만 가질 배짱은 있고?”“주면 받고 안 주면 빼앗으면 되지.”유진우가 직설적으로 말했다.“하하하하...”그의 말에 용서후는 화를 내다가 되레 웃었다.“간덩이가 아주 제대로 부었구나. 지금 뭔 짓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알아? 죽음을 자초하고 있는 거라고!”용서후는 마지막 한마디를 거의 이를 갈면서 말했다.“그건 아직 모르지.”유진우의 표정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아주 좋아. 이따가 제발 나한테 빌지 마. 지금 네가 이렇게 나대는 모습이 좋거든.”용서후가 손을 번쩍 들었다.“CCTV 전부 끄고 문 닫을 준비해. 이 일에 상관없는 분들은 다 나가주시죠!”그의 말이 떨어지자 VIP 룸에 있던 도박꾼들은 한시라도 지체할세라 재빨리 나갔다. 용서후가 만약 진짜로 화를 낸다면 오늘 저녁이 두 사람의 제삿날일 거라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흥! 이대로 살아남을 수 있는지 두고 보자.”하희관이 흉악스럽게 웃었고 두 눈에 원한이 가득했다.“살아남을 리가 없죠. 내일 아침에 시신이나 거둘 준비 하시죠.”유강청은 어깨를 들먹이면서 룸을 나섰다. 혹시라도 불똥이 튈까 봐 말이다.“흥, 이게 바로 인과응보죠. 연경의 권력을 건드렸으니 내일 아마 시신도 찾을 수 없을걸요?”유성신은 유진우를 싸늘하게 쳐다보고는 유강청과 함께 룸을 나섰다.만약 조금이라도 빨리 빌었더라면 살 기회가 있었겠지만 이젠 후회해도 늦었다.“이봐요. 나도 더는 도와줄 방법이 없어요. 스스로 살 길을 도모하도록 해요.”은도는 한숨을 내쉰 후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VIP 룸을
골든 클럽 밖.은도는 고급 자동차에 타고 있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유리창으로 번쩍이는 대문을 보는 그녀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오랜만에 재미있고 잘생긴 남자를 만났는데 명이 이렇게 짧을 줄은 몰랐다.먼저 하희관을 건드리더니 또 이어서 용서후에게도 건방을 떨었다. 골든 클럽에 갇힌 이상 거의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고 해고 무방했다.은도는 조금 아쉬웠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녀도 되돌릴 방법이 없었다. 지금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거라곤 유진우의 시신을 거둬주는 것밖에 없었다.‘아쉬워. 참 아쉬워...”“아이고, 은도 씨, 아직 안 갔어요?”그때 유강청과 유성신이 갑자기 마주 향해 다가왔다.“두 사람도 안 갔네요, 뭐.”은도가 뜨뜻미지근한 태도로 말했다.“우리요?”유강청이 웃으며 말했다.“진우 씨가 우리 구세당과 인연이 깊어서 시신이라도 거둬줄까 해서 남았죠.”“흥, 내 앞에서 가식 떨지 말아요. 당신들이 진우 씨를 골든 클럽으로 불러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요?”“우린 그냥 사업 얘기 하려고 부른 거예요. 근데 진우 씨가 저렇게 눈치 없고 주제를 모를 줄 누가 알았겠어요? 일이 이 지경이 된 건 다 자업자득이에요.”유강청은 어깨를 들먹이면서 관심 없는 태도를 보였다.“맞아! 유진우 같은 촌놈은 참 예의도 없어. 어찌나 나대고 잘난 척하는지. 정말 쌤통이야!”유성신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되레 돌을 던졌다.“유성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은도는 유성신을 혐오의 눈빛으로 째려보았다.“내 기억이 맞다면 진우 씨가 구세당을 한두 번 도와준 게 아닌 것 같은데. 근데 이딴 식으로 보답하는 거야? 배은망덕한 것, 정말 짐승만도 못해!”“너!”유성신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유강청의 얼굴이 확 굳어지더니 싸늘하게 말했다.“은도 씨는 뭐 우리랑 다를 줄 알아요? 남쪽 구역에서 당신이 꽃뱀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어요? 뻔뻔스럽게 어디서 좋은 사람인 척해요?”“그러게 말이에요. 제
“세상에나! 정말 기적이 일어난 거야?”은도는 침을 꿀꺽 삼켰고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조금 전 그냥 해본 말이었는데 진짜로 그렇게 됐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들이 한창 넋을 놓고 있던 그때 더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졌다.유진우가 대문을 나서자마자 그 뒤로 왕현도 걸어 나왔다. 홀가분한 몸으로 나온 유진우와 달리 왕현의 손에 두 사람이 들려있었다.왼쪽에는 손발이 부러져서 처참을 비명을 지르는 하희관이었고 오른쪽에는 얼굴이 시퍼렇게 멍이 들고 퉁퉁 부어서 누구인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용서후였다.왕현이 두 사람의 옷깃을 잡고 골든 클럽에서 질질 끌고 나왔다. 지나가는 곳마다 바닥에 피가 흥건했다.이건 누가 봐도 용서후가 그들을 놓아준 게 아니라 유진우와 왕현이 자기 힘으로 길을 뚫은 것이었다.용서후가 데리고 온 사람들은 전부 용씨 가문의 엘리트 무사들이었고 혼자서 백 명 정도는 거뜬히 해결할만한 능력을 지녔다.그런데 몇 분 사이에 모든 엘리트 무사들이 다 널브러졌고 용서후도 잡히고 말했다.‘둘이 저렇게 강했어?’“차에 태워요.”유진우는 용서후의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낸 후 왕현에게 두 사람을 차에 태우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유진우는 용서후의 랜드로버를 타고 휙 떠나버렸다. 차량 미등이 점점 희미해졌다.꿀꺽...유강청은 침을 삼켰고 등골이 갑자기 오싹했다. 조금 전 나왔기에 망정이지 안에 있었더라면 용서후 꼴이 될 뻔했다.“선배님, 인제 어떡해요? 유진우가... 서후 도련님을 데려갔어요.”유성신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그녀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큰일 났어! 그 자식이 서후 도련님을 납치해갔어.”잠깐 넋을 놓았던 유강청이 정신을 번쩍 차렸다.“얼른, 얼른 차에 타. 지금 당장 용씨 가문에 알려서 서후 도련님을 구해야 해. 안 그러면 너랑 나 다 무사하지 못해.”그러고는 재빨리 자기 차에 올라탔다.“멍하니 서서 뭐 해? 얼른 타!”유성신이 아무 반응이 없자 유강청이 유리창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거기 서! 누구야?”유진우 몇몇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용씨 저택 대문 앞을 지키던 경호원 두 명이 바로 경계하기 시작했다.“용수현 가주를 만나러 왔으니까 들어가서 일러.”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가주님이 네가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분인 줄 알아? 내일에 먼저 만나겠다고 신청한 다음에 기다려.”왼쪽에 있던 경호원이 냉랭하게 말했다.유진우는 아무 말 없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왕현이 바로 알아듣고 차에 있던 용서후를 끌어내 대문 앞에 던져버렸다.“넷째 도련님?”자세히 살피던 두 경호원의 표정이 급변했다.“너희들 누구야? 감히 용씨 가문 사람한테 손을 대? 죽고 싶어?”“얼른 가서 용수현한테 전해. 옛 친구가 왔다고.”유진우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얼른... 얼른 가서 큰아버지께 보고 올려...”용서후는 바닥에 엎드린 채 힘을 쥐어짜면서 겨우 말했다.두 경호원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결국 한 경호원이 이 자리를 지켰고 다른 한 경호원이 보고를 올리러 들어갔다.3분 후 완전 무장한 경호원들이 기세등등하게 달려와 순식간에 유진우 일행을 물샐틈없이 둘러쌌다.“날 보자고 한 사람 누구야?”그때 우람한 체격에 수염이 덥수룩한 한 중년 남자가 뒷짐을 진 채 걸어 나왔다.중년 남자는 사각형 얼굴에 짙은 눈썹과 커다란 두 눈을 가지고 있었고 위엄이 흘러넘쳤다. 그의 뒤로 백발노인 두 명이 서 있었는데 한 사람은 뚱뚱했고 한 사람은 삐쩍 말랐다.두 노인은 얼핏 보면 순종적이어서 일반 사람 같아 보였지만 사실 실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힐끗 쳐다만 봤을 뿐인데도 왕현은 등골이 오싹해져 식은땀이 다 났다.“큰아버지... 큰아버지 살려주세요.”용서후는 마치 구세주라도 본 듯 처참하게 울부짖었다.“뭐야?”용수현의 시선이 가장 먼저 용서후에게 향했다. 머리가 다 헝클어졌고 얼굴이 퉁퉁 부은 데다가 코피까지 흘리고 있어 정말로 초라하기 그지없었다.“대체 어떤 간덩이가 부은 놈이 우리 용씨 가문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어
용수현은 화가 난 나머지 용서후의 뺨을 가차 없이 후려갈겼다.짝!힘이 어찌나 강한지 용서후는 그대로 날아가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말았다.그 모습에 사람들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하나같이 약속이나 한 듯이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어떻게 된 거지? 집까지 쳐들어와서 행패 부리는 놈을 처벌해야 하는 거 아니야? 왜 되레 넷째 도련님의 뺨을 때렸지? 설마 잘못 때렸나?’“큰아버지?”용서후도 멍하긴 마찬가지였다. 바닥에 누운 채 볼을 움켜잡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왜... 절 때리세요?”“어리석은 놈. 널 때린 거 맞아!”용수현이 노발대발하면서 그에게 다가가더니 주먹을 날리고 발로 차기까지 하며 욕설을 퍼부었다.“맨날 빈둥빈둥 놀면서 사고만 치고 다니고. 너 같은 애가 우리 가문에 있다는 건 그야말로 치욕이야. 오늘 네 아버지를 대신해서 혼 좀 내야겠어. 이 짐승만도 못한 놈아!”“아이고... 그만... 때리세요. 큰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용서후는 두 손으로 머리를 끌어안고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주변 사람들은 또다시 넋을 놓고 서로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다.‘가주님이 왜 갑자기 이렇게 사나워지셨지? 평소 넷째 도련님이 사고 쳐도 기껏해야 한두 마디만 하는 정도인데 오늘은 심하게 때리기까지 하셨어. 너무한 거 아니야?’“무슨 상황이야, 대체?”금방 도착한 유강청과 유성신은 눈앞의 광경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그들은 유진우가 살기 위해 사과하러 용씨 저택으로 온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용수현이 나온 후 유진우를 탓하기는커녕 되레 조카를 마구 때렸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거물에게 다른 취향이라도 있는 건가?“이상하네. 용씨 가문 사람들 약 잘못 먹었나?”은도는 차를 멀리 세우고 차 안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녀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오늘 저녁에 일어난 일이 전부 그녀의 예상을 빗나갔다.“가주님, 그래도 가주님의 조카인데 살살하시죠. 죽이진 말고 정신을 잃을 정도면 됩니다.
용씨 저택 접대실.“다들 나가 있어. 내 명령 없이는 아무도 들이지 마.”용수현은 손을 들어 부하와 도우미를 전부 내보냈다.“왕현 씨는 옆 방에 가서 쉬고 있어요. 가주님과 따로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요.”유진우가 눈빛을 보냈다.“알겠습니다.”왕현은 고개를 끄덕인 후 바로 접대실을 나섰다. 문이 닫히자 접대실엔 용수현과 유진우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아이고, 도련님, 여긴 어쩐 일로 왔어요?”사람들이 다 나가자 용수현은 더욱 굽신거렸다.유진우는 일반 사람이 아니라 서경왕부를 대표했다. 나라에서 직급이 높은 그가 서경왕부의 세자와 사적으로 만났다는 소문이 퍼져나가기라도 한다면 비난을 받는 건 물론이고 다른 성가신 일이 따를지도 모른다. 심지어 심할 경우 반역이라는 죄명까지 뒤집어쓸 수도 있었다.“왜 그러세요? 가주님은 내가 반갑지 않은가 봐요?”유진우는 웃을 듯 말 듯 했다.‘당연한 거 아니야? 내가 왜 너 같이 재수 없는 놈을 반가워하겠어!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그럴 리가 없지.’용수현은 속으로 이렇게 외치면서 겉으로는 더없이 환하게 웃었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도련님. 그냥 놀라서 그런 거죠. 높으신 분이 이렇게 친히 와주셔서 얼마나 영관인데요.”“그래요?”유진우는 자기 찻잔에 차를 따른 후 용수현에게도 한잔 따라주었다. 용수현은 두려움에 떠는 얼굴로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찻잔을 받쳐 들었다.“사실은 나중에 찾아올 계획이었는데 용씨 가문이 나랑 인연이 깊은 걸 어쩌겠어요. 그래서 좀 미리 찾아왔어요.”환하게 웃는 유진우와 달리 용수현은 눈을 파르르 떨면서 속으로 용서후를 미친 듯이 욕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무척이나 영광스러운 척했다.“그럼 어쩐 일로 친히 여기까지 오신 거죠?”“세 가지 일 때문에 왔어요.”유진우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웃으면서 말했다.“첫 번째는 연경에 처음 와서 손에 돈이 좀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가주님한테 도움을 좀 청할까 해서요.”“그거야 문제없죠. 지금 당장 돈을 준비하라고 할게요. 600
“이백 가지까진 필요 없고 두 가지면 돼요.”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필요하다던 두 가지 약재가 뭐예요? 지금 당장 애들 불러서 찾아보라고 할게요.”용수현이 찻잔을 들고 차를 마셨다.“네. 별거는 아니고 빙심연이랑 금수옥입니다.”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풉!그의 말에 차를 마시던 용수현이 차를 뿜으면서 놀란 얼굴로 말했다.“도련님,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방금 빙심연이랑 금수옥이라고 하셨어요?”“맞아요.”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용수현 앞에서 이 조건을 얘기한 건 안씨 가문의 일 처리 효율이 늦을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사철수의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아 오래 기다릴 수가 없었다. 하여 용씨 가문이 도와준다면 훨씬 빨리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도련님, 그 두 약재가 아주 희귀한 최상품 영약이라는 건 알고 있어요?”용수현의 목소리마저 다 떨렸다.“영약이긴 한데 용씨 가문이라면 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해요.”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어렵지 않다고? 말은 참 쉽게 하네. 젠장!’용수현은 하마터면 욕설을 입 밖에 꺼낼 뻔했다.처음에는 터무니없이 골든 클럽을 내놓으라고 하더니 또 값어치가 어마어마한 데다가 구매하기도 어려운 최상품 영약을 두 가지나 구해달라고 했다. 이건 용씨 가문을 다 거덜 내겠다는 뜻인 건가?“도련님, 돈으로 살 수 있는 거라면 차라리 낫겠지만 최상품 영약은 구하고 싶다고 해서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지금 갑자기 어디 가서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고요.”용수현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다른 사람은 힘들겠지만 가주님은 꼭 구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유진우가 또 차를 한 모금 마셨다.“그건...”용수현은 눈살만 찌푸릴 뿐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가주님, 12년 전에 진씨 가문이 몰살당한 사건 들어봤어요?”유진우가 불쑥 한마디 했다. 그 순간 용수현은 속으로는 움찔했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다.“들어보긴 했는데 갑자기 그 얘기는 왜 하는 거죠?”“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요.”
“뭐라고요?”유진우의 말에 용수현은 날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안색이 창백해졌다.10년 전 자금성의 난은 지금까지도 언급해서는 안 되는 금기였다. 그리고 서경왕비의 죽음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의문으로 남았다. 사실 이 의문은 해결하지 못한 게 아니라 감히 해결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것이었다.막강한 권력을 지녔던 서경왕마저도 결국에는 포기했는데 누가 감히 그 진실을 파헤치겠는가?그때 관공서에서도 진범을 찾아내겠다고 했었지만 결국에는 밝혀내지 못했다.이 점만 봐도 자금성의 난을 일으킨 배후 범인의 권력이 그야말로 하늘을 찌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왕의 권력보다도 더 막강할지도 모른다.용씨 가문이 집안이 크고 사업도 크게 하지만 지위가 높은 권력자들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었다.하여 유진우의 부탁을 들은 순간 용수현은 놀라고 당황한 건 물론이고 겁까지 먹었다.그 속에 숨겨진 게 많아 만약 용씨 가문이 발을 들인다면 언제든지 망할 가능성이 있었다.“가주님, 긴장해 하지 말아요. 죽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무서워해요?”유진우는 날카로운 눈빛을 거두고 다시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도... 도련님, 앞서 얘기한 두 조건은 다 괜찮은데 이 일은 저도 정말 어찌할 수가 없어요.”용수현이 울상이 된 얼굴로 말했다. 10년 동안 이어진 금기를 다시 세상 밖으로 끌어낸다면 온 세상이 또다시 발칵 뒤집힐 것이다.“가주님,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 우리 어머니가 용씨 가문을 도와준 적이 있을 텐데요?”유진우가 갑자기 물었다.“그건...”용수현은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그때 용씨 가문의 실수로 하마터면 몰살당할 뻔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던 용수현은 결국 서경왕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서경왕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결국 왕비가 사정하면서 서경왕을 설득한 덕에 용씨 가문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이 은혜를 용수현은 지금까지도 마음에 품고 있었다.“그때 일 아직 잊지 않았군요.”유진우가 덤덤하게 웃었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