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엄하다! 어떤 X끼가 감히 골든 클럽에서 소란을 피워?”젊은 남자는 살기등등하게 쳐들어오자마자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의 눈빛과 마주친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어 고개를 푹 숙였다.“용씨 가문의 넷째 도련님 용서후 아니야? 저 사람이 여길 왜 왔지?”“골든 클럽의 배후 자본주가 용씨 가문이라잖아. 누가 골든 클럽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는데 용씨 가문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하 사장님을 때리고 용씨 가문의 체면을 깎았어. 저 자식들 아무래도 오늘 빠져나가기 어렵겠어.”“흥! 젊은 사람이 저렇게 주제를 몰라서야, 원. 싸움 좀 할 줄 안다고 연경에서 함부로 나대도 되는 줄 아나. 웃겨 정말.”갑자기 바뀐 분위기에 VIP 룸에 있던 도박꾼들은 의견이 분분했다. 용씨 가문까지 직접 움직인 걸 봐서 오늘 일이 쉽게 끝날 것 같진 않았다.“도련님... 도련님 살려주세요.”용서후가 나타나자 하희관은 구세주라도 본 것처럼 기쁨에 겨워하더니 발버둥 치며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면서 달려갔다.그런데 달려가다가 중심을 잃은 바람에 바닥에 고꾸라졌고 관성에 의해 몇 바퀴 굴러 마침 용서후의 발밑까지 굴렀다.“하희관? 왜 이렇게 다쳤어?”용서후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조금 전 옆 룸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골든 클럽에서 소란을 피운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달려왔다. 그런데 하희관이 이 꼴이 됐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두 팔이 부러졌고 왼쪽 다리가 부러졌으며 얼굴이 시퍼렇게 멍들고 퉁퉁 부었다. 게다가 피범벅까지 되어 더욱 초라해 보였다.하희관은 용씨 가문이 남쪽 구역에서 쥐고 흔드는 하나의 말이었다. 내세울 처지는 아니더라도 남쪽 구역에서만큼은 그래도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일반 세력이라면 그를 건드리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이 꼴이 되도록 때린다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되었다.“도련님, 드디어 오셨군요. 조금만 더 늦게 오셨더라면 진짜 죽었을지도 몰라요.”하희관이 울면서 용서후의 발 옆에 엎드렸다.
남쪽 구역에서 오랜 시간 살아왔지만 지금까지 용서후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 사람은 없었다. 이런 게 바로 죽음을 자초한다는 건가?“정확히 들었어. 내가 그렇게 말했어.”유진우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재밌네...”용서후가 피식 웃더니 눈빛이 갑자기 이상하리만큼 싸늘해졌다.“너처럼 나대는 놈은 처음 봐. 감히 용씨 가문의 산업을 달라고 하다니 대단해, 아주. 골든 클럽을 너한테 줄 수는 있어. 하지만 가질 배짱은 있고?”“주면 받고 안 주면 빼앗으면 되지.”유진우가 직설적으로 말했다.“하하하하...”그의 말에 용서후는 화를 내다가 되레 웃었다.“간덩이가 아주 제대로 부었구나. 지금 뭔 짓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알아? 죽음을 자초하고 있는 거라고!”용서후는 마지막 한마디를 거의 이를 갈면서 말했다.“그건 아직 모르지.”유진우의 표정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아주 좋아. 이따가 제발 나한테 빌지 마. 지금 네가 이렇게 나대는 모습이 좋거든.”용서후가 손을 번쩍 들었다.“CCTV 전부 끄고 문 닫을 준비해. 이 일에 상관없는 분들은 다 나가주시죠!”그의 말이 떨어지자 VIP 룸에 있던 도박꾼들은 한시라도 지체할세라 재빨리 나갔다. 용서후가 만약 진짜로 화를 낸다면 오늘 저녁이 두 사람의 제삿날일 거라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흥! 이대로 살아남을 수 있는지 두고 보자.”하희관이 흉악스럽게 웃었고 두 눈에 원한이 가득했다.“살아남을 리가 없죠. 내일 아침에 시신이나 거둘 준비 하시죠.”유강청은 어깨를 들먹이면서 룸을 나섰다. 혹시라도 불똥이 튈까 봐 말이다.“흥, 이게 바로 인과응보죠. 연경의 권력을 건드렸으니 내일 아마 시신도 찾을 수 없을걸요?”유성신은 유진우를 싸늘하게 쳐다보고는 유강청과 함께 룸을 나섰다.만약 조금이라도 빨리 빌었더라면 살 기회가 있었겠지만 이젠 후회해도 늦었다.“이봐요. 나도 더는 도와줄 방법이 없어요. 스스로 살 길을 도모하도록 해요.”은도는 한숨을 내쉰 후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VIP 룸을
골든 클럽 밖.은도는 고급 자동차에 타고 있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유리창으로 번쩍이는 대문을 보는 그녀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오랜만에 재미있고 잘생긴 남자를 만났는데 명이 이렇게 짧을 줄은 몰랐다.먼저 하희관을 건드리더니 또 이어서 용서후에게도 건방을 떨었다. 골든 클럽에 갇힌 이상 거의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고 해고 무방했다.은도는 조금 아쉬웠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녀도 되돌릴 방법이 없었다. 지금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거라곤 유진우의 시신을 거둬주는 것밖에 없었다.‘아쉬워. 참 아쉬워...”“아이고, 은도 씨, 아직 안 갔어요?”그때 유강청과 유성신이 갑자기 마주 향해 다가왔다.“두 사람도 안 갔네요, 뭐.”은도가 뜨뜻미지근한 태도로 말했다.“우리요?”유강청이 웃으며 말했다.“진우 씨가 우리 구세당과 인연이 깊어서 시신이라도 거둬줄까 해서 남았죠.”“흥, 내 앞에서 가식 떨지 말아요. 당신들이 진우 씨를 골든 클럽으로 불러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요?”“우린 그냥 사업 얘기 하려고 부른 거예요. 근데 진우 씨가 저렇게 눈치 없고 주제를 모를 줄 누가 알았겠어요? 일이 이 지경이 된 건 다 자업자득이에요.”유강청은 어깨를 들먹이면서 관심 없는 태도를 보였다.“맞아! 유진우 같은 촌놈은 참 예의도 없어. 어찌나 나대고 잘난 척하는지. 정말 쌤통이야!”유성신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되레 돌을 던졌다.“유성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은도는 유성신을 혐오의 눈빛으로 째려보았다.“내 기억이 맞다면 진우 씨가 구세당을 한두 번 도와준 게 아닌 것 같은데. 근데 이딴 식으로 보답하는 거야? 배은망덕한 것, 정말 짐승만도 못해!”“너!”유성신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유강청의 얼굴이 확 굳어지더니 싸늘하게 말했다.“은도 씨는 뭐 우리랑 다를 줄 알아요? 남쪽 구역에서 당신이 꽃뱀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어요? 뻔뻔스럽게 어디서 좋은 사람인 척해요?”“그러게 말이에요. 제
“세상에나! 정말 기적이 일어난 거야?”은도는 침을 꿀꺽 삼켰고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조금 전 그냥 해본 말이었는데 진짜로 그렇게 됐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들이 한창 넋을 놓고 있던 그때 더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졌다.유진우가 대문을 나서자마자 그 뒤로 왕현도 걸어 나왔다. 홀가분한 몸으로 나온 유진우와 달리 왕현의 손에 두 사람이 들려있었다.왼쪽에는 손발이 부러져서 처참을 비명을 지르는 하희관이었고 오른쪽에는 얼굴이 시퍼렇게 멍이 들고 퉁퉁 부어서 누구인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용서후였다.왕현이 두 사람의 옷깃을 잡고 골든 클럽에서 질질 끌고 나왔다. 지나가는 곳마다 바닥에 피가 흥건했다.이건 누가 봐도 용서후가 그들을 놓아준 게 아니라 유진우와 왕현이 자기 힘으로 길을 뚫은 것이었다.용서후가 데리고 온 사람들은 전부 용씨 가문의 엘리트 무사들이었고 혼자서 백 명 정도는 거뜬히 해결할만한 능력을 지녔다.그런데 몇 분 사이에 모든 엘리트 무사들이 다 널브러졌고 용서후도 잡히고 말했다.‘둘이 저렇게 강했어?’“차에 태워요.”유진우는 용서후의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낸 후 왕현에게 두 사람을 차에 태우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유진우는 용서후의 랜드로버를 타고 휙 떠나버렸다. 차량 미등이 점점 희미해졌다.꿀꺽...유강청은 침을 삼켰고 등골이 갑자기 오싹했다. 조금 전 나왔기에 망정이지 안에 있었더라면 용서후 꼴이 될 뻔했다.“선배님, 인제 어떡해요? 유진우가... 서후 도련님을 데려갔어요.”유성신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그녀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큰일 났어! 그 자식이 서후 도련님을 납치해갔어.”잠깐 넋을 놓았던 유강청이 정신을 번쩍 차렸다.“얼른, 얼른 차에 타. 지금 당장 용씨 가문에 알려서 서후 도련님을 구해야 해. 안 그러면 너랑 나 다 무사하지 못해.”그러고는 재빨리 자기 차에 올라탔다.“멍하니 서서 뭐 해? 얼른 타!”유성신이 아무 반응이 없자 유강청이 유리창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거기 서! 누구야?”유진우 몇몇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용씨 저택 대문 앞을 지키던 경호원 두 명이 바로 경계하기 시작했다.“용수현 가주를 만나러 왔으니까 들어가서 일러.”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가주님이 네가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분인 줄 알아? 내일에 먼저 만나겠다고 신청한 다음에 기다려.”왼쪽에 있던 경호원이 냉랭하게 말했다.유진우는 아무 말 없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왕현이 바로 알아듣고 차에 있던 용서후를 끌어내 대문 앞에 던져버렸다.“넷째 도련님?”자세히 살피던 두 경호원의 표정이 급변했다.“너희들 누구야? 감히 용씨 가문 사람한테 손을 대? 죽고 싶어?”“얼른 가서 용수현한테 전해. 옛 친구가 왔다고.”유진우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얼른... 얼른 가서 큰아버지께 보고 올려...”용서후는 바닥에 엎드린 채 힘을 쥐어짜면서 겨우 말했다.두 경호원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결국 한 경호원이 이 자리를 지켰고 다른 한 경호원이 보고를 올리러 들어갔다.3분 후 완전 무장한 경호원들이 기세등등하게 달려와 순식간에 유진우 일행을 물샐틈없이 둘러쌌다.“날 보자고 한 사람 누구야?”그때 우람한 체격에 수염이 덥수룩한 한 중년 남자가 뒷짐을 진 채 걸어 나왔다.중년 남자는 사각형 얼굴에 짙은 눈썹과 커다란 두 눈을 가지고 있었고 위엄이 흘러넘쳤다. 그의 뒤로 백발노인 두 명이 서 있었는데 한 사람은 뚱뚱했고 한 사람은 삐쩍 말랐다.두 노인은 얼핏 보면 순종적이어서 일반 사람 같아 보였지만 사실 실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힐끗 쳐다만 봤을 뿐인데도 왕현은 등골이 오싹해져 식은땀이 다 났다.“큰아버지... 큰아버지 살려주세요.”용서후는 마치 구세주라도 본 듯 처참하게 울부짖었다.“뭐야?”용수현의 시선이 가장 먼저 용서후에게 향했다. 머리가 다 헝클어졌고 얼굴이 퉁퉁 부은 데다가 코피까지 흘리고 있어 정말로 초라하기 그지없었다.“대체 어떤 간덩이가 부은 놈이 우리 용씨 가문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어
용수현은 화가 난 나머지 용서후의 뺨을 가차 없이 후려갈겼다.짝!힘이 어찌나 강한지 용서후는 그대로 날아가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말았다.그 모습에 사람들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하나같이 약속이나 한 듯이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어떻게 된 거지? 집까지 쳐들어와서 행패 부리는 놈을 처벌해야 하는 거 아니야? 왜 되레 넷째 도련님의 뺨을 때렸지? 설마 잘못 때렸나?’“큰아버지?”용서후도 멍하긴 마찬가지였다. 바닥에 누운 채 볼을 움켜잡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왜... 절 때리세요?”“어리석은 놈. 널 때린 거 맞아!”용수현이 노발대발하면서 그에게 다가가더니 주먹을 날리고 발로 차기까지 하며 욕설을 퍼부었다.“맨날 빈둥빈둥 놀면서 사고만 치고 다니고. 너 같은 애가 우리 가문에 있다는 건 그야말로 치욕이야. 오늘 네 아버지를 대신해서 혼 좀 내야겠어. 이 짐승만도 못한 놈아!”“아이고... 그만... 때리세요. 큰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용서후는 두 손으로 머리를 끌어안고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주변 사람들은 또다시 넋을 놓고 서로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다.‘가주님이 왜 갑자기 이렇게 사나워지셨지? 평소 넷째 도련님이 사고 쳐도 기껏해야 한두 마디만 하는 정도인데 오늘은 심하게 때리기까지 하셨어. 너무한 거 아니야?’“무슨 상황이야, 대체?”금방 도착한 유강청과 유성신은 눈앞의 광경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그들은 유진우가 살기 위해 사과하러 용씨 저택으로 온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용수현이 나온 후 유진우를 탓하기는커녕 되레 조카를 마구 때렸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거물에게 다른 취향이라도 있는 건가?“이상하네. 용씨 가문 사람들 약 잘못 먹었나?”은도는 차를 멀리 세우고 차 안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녀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오늘 저녁에 일어난 일이 전부 그녀의 예상을 빗나갔다.“가주님, 그래도 가주님의 조카인데 살살하시죠. 죽이진 말고 정신을 잃을 정도면 됩니다.
용씨 저택 접대실.“다들 나가 있어. 내 명령 없이는 아무도 들이지 마.”용수현은 손을 들어 부하와 도우미를 전부 내보냈다.“왕현 씨는 옆 방에 가서 쉬고 있어요. 가주님과 따로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요.”유진우가 눈빛을 보냈다.“알겠습니다.”왕현은 고개를 끄덕인 후 바로 접대실을 나섰다. 문이 닫히자 접대실엔 용수현과 유진우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아이고, 도련님, 여긴 어쩐 일로 왔어요?”사람들이 다 나가자 용수현은 더욱 굽신거렸다.유진우는 일반 사람이 아니라 서경왕부를 대표했다. 나라에서 직급이 높은 그가 서경왕부의 세자와 사적으로 만났다는 소문이 퍼져나가기라도 한다면 비난을 받는 건 물론이고 다른 성가신 일이 따를지도 모른다. 심지어 심할 경우 반역이라는 죄명까지 뒤집어쓸 수도 있었다.“왜 그러세요? 가주님은 내가 반갑지 않은가 봐요?”유진우는 웃을 듯 말 듯 했다.‘당연한 거 아니야? 내가 왜 너 같이 재수 없는 놈을 반가워하겠어!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그럴 리가 없지.’용수현은 속으로 이렇게 외치면서 겉으로는 더없이 환하게 웃었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도련님. 그냥 놀라서 그런 거죠. 높으신 분이 이렇게 친히 와주셔서 얼마나 영관인데요.”“그래요?”유진우는 자기 찻잔에 차를 따른 후 용수현에게도 한잔 따라주었다. 용수현은 두려움에 떠는 얼굴로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찻잔을 받쳐 들었다.“사실은 나중에 찾아올 계획이었는데 용씨 가문이 나랑 인연이 깊은 걸 어쩌겠어요. 그래서 좀 미리 찾아왔어요.”환하게 웃는 유진우와 달리 용수현은 눈을 파르르 떨면서 속으로 용서후를 미친 듯이 욕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무척이나 영광스러운 척했다.“그럼 어쩐 일로 친히 여기까지 오신 거죠?”“세 가지 일 때문에 왔어요.”유진우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웃으면서 말했다.“첫 번째는 연경에 처음 와서 손에 돈이 좀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가주님한테 도움을 좀 청할까 해서요.”“그거야 문제없죠. 지금 당장 돈을 준비하라고 할게요. 600
“이백 가지까진 필요 없고 두 가지면 돼요.”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필요하다던 두 가지 약재가 뭐예요? 지금 당장 애들 불러서 찾아보라고 할게요.”용수현이 찻잔을 들고 차를 마셨다.“네. 별거는 아니고 빙심연이랑 금수옥입니다.”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풉!그의 말에 차를 마시던 용수현이 차를 뿜으면서 놀란 얼굴로 말했다.“도련님,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방금 빙심연이랑 금수옥이라고 하셨어요?”“맞아요.”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용수현 앞에서 이 조건을 얘기한 건 안씨 가문의 일 처리 효율이 늦을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사철수의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아 오래 기다릴 수가 없었다. 하여 용씨 가문이 도와준다면 훨씬 빨리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도련님, 그 두 약재가 아주 희귀한 최상품 영약이라는 건 알고 있어요?”용수현의 목소리마저 다 떨렸다.“영약이긴 한데 용씨 가문이라면 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해요.”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어렵지 않다고? 말은 참 쉽게 하네. 젠장!’용수현은 하마터면 욕설을 입 밖에 꺼낼 뻔했다.처음에는 터무니없이 골든 클럽을 내놓으라고 하더니 또 값어치가 어마어마한 데다가 구매하기도 어려운 최상품 영약을 두 가지나 구해달라고 했다. 이건 용씨 가문을 다 거덜 내겠다는 뜻인 건가?“도련님, 돈으로 살 수 있는 거라면 차라리 낫겠지만 최상품 영약은 구하고 싶다고 해서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지금 갑자기 어디 가서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고요.”용수현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다른 사람은 힘들겠지만 가주님은 꼭 구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유진우가 또 차를 한 모금 마셨다.“그건...”용수현은 눈살만 찌푸릴 뿐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가주님, 12년 전에 진씨 가문이 몰살당한 사건 들어봤어요?”유진우가 불쑥 한마디 했다. 그 순간 용수현은 속으로는 움찔했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다.“들어보긴 했는데 갑자기 그 얘기는 왜 하는 거죠?”“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요.”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