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요?”유진우의 말에 용수현은 날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안색이 창백해졌다.10년 전 자금성의 난은 지금까지도 언급해서는 안 되는 금기였다. 그리고 서경왕비의 죽음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의문으로 남았다. 사실 이 의문은 해결하지 못한 게 아니라 감히 해결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것이었다.막강한 권력을 지녔던 서경왕마저도 결국에는 포기했는데 누가 감히 그 진실을 파헤치겠는가?그때 관공서에서도 진범을 찾아내겠다고 했었지만 결국에는 밝혀내지 못했다.이 점만 봐도 자금성의 난을 일으킨 배후 범인의 권력이 그야말로 하늘을 찌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왕의 권력보다도 더 막강할지도 모른다.용씨 가문이 집안이 크고 사업도 크게 하지만 지위가 높은 권력자들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었다.하여 유진우의 부탁을 들은 순간 용수현은 놀라고 당황한 건 물론이고 겁까지 먹었다.그 속에 숨겨진 게 많아 만약 용씨 가문이 발을 들인다면 언제든지 망할 가능성이 있었다.“가주님, 긴장해 하지 말아요. 죽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무서워해요?”유진우는 날카로운 눈빛을 거두고 다시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도... 도련님, 앞서 얘기한 두 조건은 다 괜찮은데 이 일은 저도 정말 어찌할 수가 없어요.”용수현이 울상이 된 얼굴로 말했다. 10년 동안 이어진 금기를 다시 세상 밖으로 끌어낸다면 온 세상이 또다시 발칵 뒤집힐 것이다.“가주님,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 우리 어머니가 용씨 가문을 도와준 적이 있을 텐데요?”유진우가 갑자기 물었다.“그건...”용수현은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그때 용씨 가문의 실수로 하마터면 몰살당할 뻔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던 용수현은 결국 서경왕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서경왕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결국 왕비가 사정하면서 서경왕을 설득한 덕에 용씨 가문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이 은혜를 용수현은 지금까지도 마음에 품고 있었다.“그때 일 아직 잊지 않았군요.”유진우가 덤덤하게 웃었다.“우
용씨 가문은 그저 유진우의 계획 중 하나였다. 더 많은 세력이 참여해야만 배후 범인과 맞설 자격이 있었다.그 시각 용씨 저택 대문 밖의 길거리.차 두 대가 앞뒤로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은도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뒷좌석에 기대어 손에 담배를 들고 있었다. 담배를 피우진 않았고 미풍에 조금씩 꺼져 들어갔다.유진우가 들어간 지 거의 두 시간이 되지만 아직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설마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아까 용수현의 행동이 예상 밖이긴 해도 사람들 앞이라 보여주려고 일부러 그랬을 가능성이 있었다. 용씨 저택에 들어가면 보는 눈도, 듣는 귀도 없어 조용히 죽이는 건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였다.그 생각에 은도는 저도 모르게 걱정이 밀려왔다. 심지어 왜 안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남자를 이토록 신경 쓰는지조차 이해가 가질 않았다. 단지 유진우의 얼굴이 잘생겨서? 성격이 특이해서?끼익!그때 앞에 서 있던 차가 갑자기 후진하더니 은도의 차 옆에 나란히 섰다. 유리창이 내려가면서 유강청과 유성신의 얼굴이 나타났다.“은도 씨, 아직도 기다려요? 그냥 일찍 들어가서 쉬어요.”유강청이 웃으며 말했다.“유진우는 겁도 없이 저런 위험한 곳에 들어갔어요. 지금쯤 아마 갈기갈기 찢어져서 시체도 찾기 어려울 걸요?”“흥! 전에도 그렇게 얘기했었는데 결과가 어땠어요? 골든 클럽에서 멀쩡하게 걸어 나왔잖아요.”은도는 그들을 비난했다.“골든 클럽과 용씨 저택이 같아요?”유강청이 코웃음을 쳤다.“용씨 저택엔 고수가 수두룩해서 유진우가 들어가면 죽을 길밖에 없어요. 용씨 가문 가주님이 전에는 깍듯하게 대하는 것 같아도 웃음 속에 칼을 감추고 사람들의 눈과 귀를 속인 거라고요.”“맞아! 유진우가 넷째 도련님을 때렸으니 이젠 죽음뿐이야. 네가 좋아하는 그 기생오라비 아마 평생 못 나올 거야.”유성신이 고소해하며 말했고 은도는 눈살만 찌푸릴 뿐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때 누군가 유강청의 차 앞으로 다가와 유리창을 두드렸다.똑똑!갑작스러운
유성신과 유강청 두 사람은 서로 멀뚱멀뚱 눈만 쳐다보았다. 그들은 용수현의 행동이 전혀 이해되질 않았다.원수에게 은덕을 베푸는 건 어리석은 것일까? 아니면 마음이 넓은 것일까? 명성이 자자한 명문가인데 체면이 깎여도 괜찮다는 건가?“나랑 용씨 가문의 원한은 다 해결했어요. 이젠 우리 얘기를 해야죠?”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유성신과 유강청은 이 웃음에 좋은 뜻은 담겨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진우 씨, 이 일은 나랑 상관없는 일이에요. 나도 피해자라고요. 봐요, 진우 씨한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을까 걱정되어 계속 기다리고 있었잖아요.”유강청이 억지로 미소를 쥐어짰다.‘X발, 쟤는 그냥 미친놈이야. 용서후까지 가차 없이 때린 놈이라고. 만약 쟤 심기를 건드렸다간 나도 된통 얻어맞을지 몰라.’“우리 둘 일은 나중에 얘기하고 지금은 저 여자와 할 얘기가 있어요.”유진우는 손가락을 내밀더니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유성신을 가리켰다.“난 당신이랑 할 얘기 없어요. 선배님, 얼른 출발해요.”유성신은 갑자기 불안감이 밀려와 유강청에게 얼른 도망가자고 했다.“가려고?”왕현이 주먹을 날려 유리창을 깨뜨리더니 핸들을 잡고 확 잡아당겼다.툭!핸들이 그대로 뽑혀버렸다. 왕현이 멀리 던져버리자 백미터 가까이 날아가 용씨 가문의 담장 안으로 떨어졌다.“...”그 모습에 유강청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핸들이 없는 차를 보며 거의 울먹거렸다.‘새로 뽑은 비싼 차라고!’유성신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눈가가 다 파르르 떨렸고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핸들까지 뽑아버리다니, 이게 진짜 인간이란 말인가?“유성신 씨, 난 여자를 때리진 않지만 오늘 저녁 당신의 행동은 정말 지나쳤어요. 전화로 날 유인하고서는 유강청 씨와 이런 함정을 파요? 내가 운이 나빴더라면 아마 지금쯤 저세상으로 갔겠죠?”유진우는 웃으면서 말하긴 했지만 눈빛이 간담이 다 서늘해질 정도로 싸늘했다.“그...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 난 아무것도 한 게 없고 다 당신이 자초한
‘괜히 건드려서 좋을 게 없어.’“생각할 시간 10분 줄게요. 그래도 얘기하지 않는다면 이 독약으로 세수시킬 겁니다.”유진우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러면서 뚜껑을 열어 약병을 유성신의 머리 위로 가져갔다.“안.. 안 돼요!”유성신은 혼비백산한 나머지 두 다리에 힘이 다 풀렸고 눈물범벅인 채로 말했다.“얼굴만 망가지게 하지 말아요. 말할게요. 다 말할 테니까 당장 그거 치워요!”“진작 그럴 것이지.”유진우는 그제야 약병을 거두었다.‘이런 년은 이렇게 해야 무서운 걸 안다니까.’가쁜 숨을 몰아쉬던 유성신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맥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사철수에 관한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라면 몇 년 전부터 얘기를 꺼내야 해요... 그날 갑자기 집에 낯선 손님이 와서는 우리 할아버지랑 비밀 얘기를 나누더라고요. 방문을 사이에 두고 내가 몰래 엿들었는데 그 손님이 바로 10년 전 사철수를 구한 사람이었어요.”“잠깐만요! 철수 아저씨를 구한 사람이 당신 할아버지 아니었어요?”유진우가 말을 가로채고 물었다.“정확하게 말하면 그 사람이 중상을 입은 사철수를 구세당에 데려왔고 그다음에 우리 할아버지가 치료해줬어요. 그 사람 일정 기간마다 몰래 와서는 할아버지께 사철수의 상태를 물어보더라고요.”유성신이 설명했다.“그 사람이 누군데요?”유진우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지금까지 사철수를 구한 사람이 유공권인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사실이 숨어있을 줄은 몰랐다.유성신이 고개를 내저었다.“그 사람의 얼굴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 사람이 올 때마다 할아버지는 나더러 나가라고 했거든요. 그날은 하도 궁금해서 몰래 엿들은 거예요.”“엿들은 내용이 뭐예요?”유진우가 캐물었다.“그 사람이 할아버지한테 사철수를 꼭 살려내야 하고 절대 신분이 노출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어요. 그리고 누군가 찾아오면 혹시 안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바로 그 사람한테 얘기하라더라고요.”유성신이 대답했다.“네?”유진우는 저도 모르게 눈살
다음날 이른 아침, 어느 한 단독주택.태양이 하늘 끝자락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때 양반다리 자세로 침대에 앉아있던 유진우도 천천히 두 눈을 떴다.천영 구술을 손에 넣은 후로 무도 수행이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굳이 일부러 수행하지 않아도 천영 구슬이 알아서 하늘과 땅의 영기를 흡수했다. 그 말인즉슨 유진우는 매 순간 수련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게다가 천부적인 재능이 있을수록 천영 구슬이 더 큰 효과를 발휘했다.한 달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유진우는 대 마스터의 문턱까지 왔다.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돌파할 수 있었지만 기초를 더 단단하게 하기 위해서 유진우는 조금 더 수련할 생각이기에 잠시 그 경계를 넘어서지 않도록 컨트롤했다.그 고자와 약속한 1년이 아직 반년 정도 남아 준비를 하기에는 충분했다.따르릉...그때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 유진우는 베개 밑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발신자를 확인했다. 유공권의 전화였는데 받자마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 진우 씨, 여기 일이 좀 생겼는데 진우 씨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요.”“일이요? 철수 아저씨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유진우는 순식간에 긴장하기 시작했다.“아니요. 철수 씨가 아니라 안씨 가문 어르신이에요.”유공권이 다급하게 설명했다.“어제 어르신이 갑자기 이상한 병이 발작해서 안씨 가문에서 남쪽 구역의 명의란 명의는 다 불렀거든요. 나도 지금 여기 와있고요. 근데 밤새 치료했지만 다들 속수무책이에요.”“대체 무슨 이상한 병이길래 명의님마저도 치료하지 못하는 건데요?”유진우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사철수의 목숨을 10년이나 지켜온 것만 해도 유공권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충분히 증명했다. 아무리 어려운 불치병이라고 해도 그에게는 큰 문제가 아닐 텐데 말이다.“어르신이 병에 걸린 게 아니라 어떤 주술에 걸렸어요.”유공권은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었다.“주술요? 확실해요?”유진우가 눈썹을 치켜세웠다.“확실한 건 아니고 그냥 추측이에요. 진우 씨 현술에 능하니까 잘 알
“어르신이 잠시는 안정을 취하셨어요. 근데 병이 어찌나 이상한지 원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달리 방법이 없어요.”유공권이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명의님들 모두 남쪽 구역에서 최고의 의사들이잖아요. 제발 다른 방법 생각해서 아버지를 치료해 주세요. 돈이 얼마가 들든 상관없고 필요한 게 있다면 우리가 최대한 맞춰드리겠습니다.”안두천이 간곡하게 부탁했다.“두천 씨, 어르신 지금 증상을 보면 사실 이건 아픈 게 아니라 살을 맞은 것 같아요.”유공권이 진지하게 말했다.“살이요?”그의 말에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의사가 이런 얘기를 하니까 더 황당하게 들렸다.“명의님, 자세하게 얘기해 주세요.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안두천이 떠보듯 물었다.“제가 말한 살은 주술 같은 건데 저는 이런 걸 잘 모르거든요. 단지 책에서만 본 거라 그냥 추측일 뿐입니다.”유공권이 설명했다.“주술?”안두천이 눈살을 찌푸렸다. 만약 일반인이 이런 얘기를 했다면 절대 믿지 않았겠지만 명성이 자자한 유공권이라면 허튼소리를 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이런 일을 그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명의님은 본 것도 많고 의술도 뛰어나서 할아버지를 살릴 방법이 있죠?”안세리가 갑자기 물었다. 두 눈이 벌겋고 촉촉한 게 방금 한바탕 운 것 같았다.“의술은 그래도 조예가 깊지만 이런 사술은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유공권이 고개를 내저었다. 의술과 사술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다.“그럼 어떡해요? 할아버지 점점 야위어지는데 이래로 갔다간 목숨이라도 위험해질까 걱정이에요.”안세리가 울먹이며 말했다.“이쪽 영역을 연구하는 사람을 알고 있어요. 그 사람이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몰라요.”유공권이 불쑥 말했다.“그래요? 누군데요?”안두천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누구냐면...”“당연히 나죠!”유공권이 대답하기 전에 갑자기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송영명이 검은 옷 노인과 함께 위풍당당하게 걸어오고 있었다.“아버님, 어머님
“헉! 너무 신기한데? 종이학을 날게 하다니.”“이게 바로 현술 대가인 건가? 역시 대단하군.”“...”검은 옷 영감이 보여준 수법에 안씨 가문 사람들은 초토화가 되어버렸다.이전에 말로만 듣던 기인이 세상에 정말 존재할 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어떻습니까, 여러분? 이제 장 선생의 능력을 믿을 수 있겠죠?”송영명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역시 대가님이로군요. 오늘 직접 뵙고 나니 눈이 확 트입니다.”안두천은 순식간에 표정이 확 밝아졌고 그들을 향한 눈빛도 완전히 바뀌었다.아버지가 정말 악에 쓰인 것이라면 오직 이 기인이야말로 아버지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이 정도는 보잘것없는 재주일 뿐 언급할 가치도 없습니다.”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연 검은 옷 영감의 모습은 너무 심오한 나머지 감히 예측할 수조차 없었다.“방금 학을 통제하는 기술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장 선생의 진정한 수법은 아직 뒤에 있으니 천천히 지켜보시지요.”송영명이 내친김에 한 마디 덧붙였다.“좋습니다.”안두천이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세리야, 너무 걱정하지 마. 장 선생이 계시니 할아버지는 분명 무사하실 거야.”송영명이 빙그레 웃으며 다소 화심을 사는듯한 표정을 지었다.“흥!”그러나 안세리는 교만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홱 돌리고는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송영명은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갑자기 시선을 유공권에게로 돌리더니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유명의, 방금 당신의 말에 따르면 무슨 현술의 달인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설마 당신이 아는 그분이 장 선생보다 더 대단하단 말입니까?”구세당은 그가 오래전부터 탐내어 왔던 귀지인데 눈앞의 이 늙은이는 어찌하여 눈치도 없이 끝까지 타협하지 않는단 말인가.“그...”유공권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장 대가의 현술은 신에 이르는 경지이니 당연히 따라올 자가 없지요.”“허... 능력이 없다면 이곳에서 망신당할 짓은 하지
그 말에 송영명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고 그의 눈가에는 원망이 스쳐 갔다.“당신이 유진우였군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안두천이 고개를 끄덕였다.최근에 집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안두천도 자연히 잘 알고 있다.옥로고 비법만으로도 그가 중시하기에는 충분했다.“아버님, 어르신께서 괴질을 앓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좀 보여주시겠습니까?”유진우가 먼저 나서며 입을 열었다.“그쪽이요?”안두천이 실눈을 뜨고 그의 말에 의심을 품었다.아무리 유공권이 추천했다고는 하지만 유진우가 너무 어려서 미덥지 못한 모양이다.“유진우 씨, 당신 호의는 감사히 받을 테지만 우리는 이미 장 선생을 불렀으니 진우 씨는 이 일에서 빠져.”그때, 송자현이 불쑥 입을 열었다.“들었지? 장 대가님이 손을 쓴다는데 내 자리가 있을 것 같아?”송영명이 잇달아 냉소를 퍼부으며 비아냥거렸다.“어이, 젊은이, 여기서 사기 치지 말고 저리 비켜. 사람의 목숨이 달린 큰일이니 네 소란을 받아줄 시간이 없어.”검은 옷 노인이 정색하며 유진우를 나무랐다.“진우 씨, 됐어요.”유공권이 고개를 가로저었다.지금 무리하게 나서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좋습니다. 장 선생께서 그토록 자신이 있다면 저도 더 이상 추태를 부리지 않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유진우도 더 이상 무리하지 않고 그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그가 여기에 온 것은 출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만약 장 선생이 정말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면 유진우도 물러나 줄 의향이 있다.“흥! 그래도 지 주제는 잘 알고 있네.”검은 옷 노인은 유진우를 힐끗 쳐다보고는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리고 잇따라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그의 뒤를 따라 천천히 방으로 들어갔다.“이게 어찌 된 일이지?”검은 옷 노인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저도 모르게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캐물었다.“환자가 왜 묶여 있습니까? 이렇게 하면 치료에 영향을 미치는 거 알아요? 당장 풀어주세요!”“장 선생님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아버지께서 괴질에 걸리면서
점심을 먹고 난 후, 유진우는 갑자기 이청성의 전화를 받았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 상의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만날 장소는 성서의 옛 저택으로 정했다. 성서에 있는 그 오래된 집은 유진우가 이미 구매해 놓은 곳으로 주로 밀사 훈련을 위한 장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전에 소현무에게 피해를 보았던 여자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서경의 밀사 대열에 합류했다. 그들의 큰 뜻은 다시는 자신들처럼 고통을 겪는 사람이 없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깊은 뜻에 유진우는 존경을 표했으며 그들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 손도운의 훈련을 거친 그 여자들은 이제 입문 단계에 있지만 진짜 임무를 수행하려면 최소한 3년 이상의 연습이 필요했다. 유진우는 그들이 평생 임무를 수행할 일이 없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그것은 곧 모든 것이 평화롭다는 의미였다. 밀사들은 잠재적인 위협이 있을 때만 활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 그들은 거의 죽을 각오로 임무를 수행한다. 30분 후, 유진우는 성서의 오래된 집에 도착해 회의실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청성이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이청성은 푸른 옷을 입고 있었다. 얼굴은 여전히 면사포와 모자로 가리고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몸매만 봐도 여전히 매우 유혹적이었다. 특히 그녀에게서 풍기는 신비롭고도 매혹적인 기운은 마치 타고난 매력처럼 사람들을 쉽게 끌어당기는 느낌을 주었다. “왔어요?” 이청성은 직접 유진우에게 차를 따라 주었다. “공주마마, 갑자기 절 찾으시다니, 무슨 일로 저를 부르신 겁니까?” 유진우는 태연하게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우리 이렇게 친해졌는데 공주마마라 부르는 게 좀 어색하지 않나요? 다른 호칭을 쓰는 건 어때요?” 이청성은 미소를 머금은 듯, 아닌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뭐라 부르면 되나요? 아가씨? 아니면 여사님?” 유진우는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에이, 그런 거 말고 그냥 청성 씨라고 불러도 되잖아요. 왜 그렇게 격식을 차려요?” 이청성은
원인은 간단했다. 유진우는 배신자를 극도로 혐오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중적인 자들은 마땅히 엄벌에 처해야 했다. 반란을 일으킨 다섯 명을 처형한 후, 그들을 따랐던 고급 장교들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처분이 내려졌다. 강등될 자는 강등되고 포섭할 자는 포섭하며 감옥에 가야 할 자들은 감옥에 보냈다. 구체적인 처분은 자발적인 배신이었는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에 따라 달라졌다. 유진우는 반란을 수습하는 동시에 홍복홍에게 유만군의 한 부대를 이끌고 보물 지도의 위치를 따라 호룡각의 보물 창고를 찾아가도록 지시했다. 모든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호룡각에도 고수들이 지키고 있었지만 대 마스터인 홍복홍 앞에서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손쉽게 호룡각의 잔당을 소탕하고 보물 창고에 있던 모든 재물을 회수해 왔다. 사철수의 말이 사실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보물 창고 안에는 재물이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서경 왕부에서 동원한 수백 대의 대형 트럭과 수만 명의 인력을 총동원해야만 창고를 완전히 비울 수 있었다. 그 모든 재물의 양과 가치는 어마어마해서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다.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이 보물만으로 서경의 향후 20년 군자금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창고 하나만으로 이 정도라면 남은 세 개의 보물 창고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나라를 사고도 남을 부가 될 것이었다. 보물을 가져온 뒤 가장 먼저 진행된 것은 바로 공로를 논하고 상을 주는 일이었다. 남방의 세 명의 제후인 회음 제후 은성종, 평양 제후 장범규, 선평 제후 주한휘는 모두 큰 공을 세운 자들이었기에 마땅한 보상을 받았다. 그들의 휘하에 있던 장군과 병사들도 저마다 공훈에 따라 상을 받았다.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 어느덧 사흘이 지나 있었다. 3일 후, 정오. 유진우가 식사하던 중 홍복홍이 갑작스레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나무 상자가 들려 있었다. “세자 전하, 아뢸 일이 있습니다.” 홍복홍은 몸을 숙이며 최대한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
“됐어, 시간도 늦었으니 일찍 방에 들어가서 쉬어.”유만수는 피곤한 얼굴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유만수가 유진우한테 왕위를 계승해 줄 생각을 했던 건 한편으로는 유진우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것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죄책감 때문에 조금이나마 보상을 해주고 싶어서였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유진우는 야망도 없고 많은 사람이 우러러보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그러니 유만수도 싫다는 아들을 억지로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얼마 남지 않은 삶이니 이젠 두 아들이 평안하고 행복하게 지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그 외에 일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유진우는 뭔가를 말하려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진우는 아직 왕이 될 각오가 되어 있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은 확실히 아니었다.다른 사람들한테는 서경의 왕은 최고의 권세를 대표하고 무궁무진한 부귀영화를 대표하며 세계 정상에 서는 위풍을 대표하겠지만, 유진우한테 서경의 왕은 너무 무거운 자리였다.그 자리는 오르기만 하면 짊어져야 할 것이 너무 많고 더 이상 자기 자신보다 전체 서경, 더 나아가 천하의 백성을 생각해야 한다.유진우는 자신은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 이렇게 무거운 책임을 질 자신이 없었다. 유진우는 이번만큼은 그냥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며칠 동안 유진우는 왕부에서 시간을 보냈다.반역을 평정하는 이번 일은 호룡각을 소탕하는 것을 제외하고도 처리해야 할 사소한 일이 많았다.유만수의 건강이 좋지 않아 유진우가 그를 대신하여 일을 처리했다.먼저 유태범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문제였다. 유진우는 유태범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었다.첫째, 병권을 반납하고 서경에 머물며 매일 개를 산책시키고 말을 타고 활을 쏘며 한가로운 귀족으로서 부귀한 삶을 누린다. 단, 어떤 세력도 있어서는 안 되며 수중의 호위대도 백 명을 넘지 말아야 한다.둘째, 어느 정도의 금전을 가지고 서경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서 발전한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왕부는 절대 간섭하지 않을 것이고
“아니요. 그럴 필요 없어요. 그리고 제가 한 약속이니 제가 지켜야죠.”유진우가 꿀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그는 보물 황옥주를 가지고 있어 용원의 기를 찾는 데 성공할 확률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높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야말로 해변에서 바늘 찾는 격이었다.“그래. 그럼, 네 말대로 용원의 기는 네가 찾아봐. 그런데 문제는 그걸 찾고 난 다음에는 뭐 할래?”유만수는 되물었다.“그건 그때 가서 다시 얘기해요. 아직 그렇게 멀리까지 생각 안 해봤어요.”유진우는 고래를 저으며 말했다.“생각할 필요 없어. 내가 하라는 대로 해.”유만수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약속을 지킨 뒤 두말 말고 다시 돌아와서 왕위를 이어받아. 뒷걱정 없이 모든 걸 다 준비해 놓을 테니까.”“말했잖아요. 저는 왕이 되고 싶지 않아요.”유천우는 단번에 거절했다.“내 아들인 네가 왕위를 이어받지 않으면 누가 이어받아? 설마 정말 천우에게 이 중책을 맡길 생각이야?”유만수는 퉁명스러운 어투로 말했다.“천우는 학문도 능하고 무술도 능한데 안 될 건 또 뭐예요?”유진우가 반박하며 물었다.“우수한 건 맞지만 천우는 대장군이 더 어울려. 서경의 왕은 아니야.”유만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우리 서경이 세력이 크긴 하지만 내우외환이 끊지지 않고 있어. 만약 내가 죽게 된다면 많은 세력이 반드시 들고 일어날 거야. 그때가 되면 천우가 막아낼 수 있을 거 같아? 천우한테 왕위를 계승하는 건 그를 해치는 길이야.”“그럼, 저는 왜 막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거예요?”유진우가 물었다.“너는 팔자가 굳세고 대운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야. 이 세상에서 너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어.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연경에 있는 분도 같은 생각이야. 네가 서경의 왕이 된다면 전체 국면을 안정시킬 수 있어. 나중에 서경에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너는 그만한 중책을 다 짊어질 수 있는 사람이야.”유만수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듣다 보니까 결국 저는 정세
유태범은 분한 마음에 울화통이 터졌지만 그렇다고 감히 입 밖에 낼 수는 없었다.유진우와 유천우가 거절하며 왕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왕은 그 두 사람 중에서 나와야 한다는 걸 유태범도 잘 알고 있었다.조금이라도 허튼 생각을 한다면 그의 최후도 채원진과 똑같아질 것이 뻔했다.“그만! 그만! 이 녀석들이! 왕위를 계승하라는데 무슨 처벌을 받듯이 말하고 있어? 그게 그렇게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야?”두 아들의 태도에 화가 난 유만수는 욕을 퍼부었다.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왕위를 값이 없이 여기며 서로 안 한다고 싸우는 두 아들 때문에 유만수는 너무 창피했다.“저는 정말 생각이 없어요. 천우한테 물려 주세요.”유진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저는 왕위를 감당할 재목이 아니에요. 무조건 형을 시키세요.”유천우는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둘 다 입 다물어!”유만수는 탁자를 세게 치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내가 결정해. 너희들이 제멋대로 이래라저래라할 일이 아니야! 그리고, 내가 몸만 괜찮았다면 너희들이 왕위를 이렇게 빨리 넘겨받을 수 있었을 거 같아?”유만수가 화를 내자 유천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절대 못 하겠다는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자기 생각을 밝히고 있었고 유진우는 여전히 자신과 상관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유만수는 심호흡을 몇 번 한 후 겨우 감정을 가라앉히고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모두에게 말했다.“자식놈들이 모두에게 못 볼 꼴을 보여줬네요. 왕위 문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고 오늘에는 모두 즐겁게 먹고 마시며 좋은 시간을 보냅시다.”“자자, 다들 마십시다.”장범규는 웃으면서 분위기를 풀었다. 그는 누가 왕위를 이어받든 상관없었다.결정은 순전히 유만수의 손에 달렸으니, 장범규는 누가 왕이 되었던 유만수의 결정을 따르고 지지할 생각이었다.방금까지 얼어있던 분위기는 금세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다만 아까와 달리 사람들은 세 부류로 나뉘어져 있었다.첫 번째 부류는 회음 제후 은성종을 필두로 유진우를
“뭐?”유진우의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서로를 쳐다보며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서경의 왕위는 수많은 사람이 바라지만 누구도 얻을 수 없는 자리였다.이렇게 존귀하고 최고의 권세를 누릴 수 있는 자리를 서로 마다하는 유진우와 유천우 때문에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예전에는 왕의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싸웠거늘, 유진우와 유천우는 완전히 반대였다.두 사람은 싸우기는커녕 오히려 서로 양보하며 왕위를 전혀 신경 쓰는 것 같지도 않았다.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이런 일은 처음이라 유진우를 지지하던 사람도 유천우를 지지하던 사람도 모두 입만 벌린 채 얼어있었다.당사자를 제외한 사람들은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고 있는데 정작 두 형제는 서로 양보하고 있으니, 사람들은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었다.“형, 애초에 약속했잖아요. 형이 왕이 되고 내가 장군이 돼서 형을 보좌한다고. 왜 말을 바꿔요?”유천우는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언제? 난 그런 약속 한 적 없어.”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나는 게으르기도 하고 내 마음대로 하고 사는 것에 익숙해. 구속받는 것도 싫고 부담스러워서 싫어. 그리고 너를 지지하는 사람이 더 많아. 왕위는 네가 더 합당해.”“합당하기는 개뿔!”유천우는 퉁명스럽게 말했다.“내 능력이 어느 정도 인지 내가 제일 잘 알아요. 애당초 나는 왕이 될 재목이 아니에요. 하지만 형은 다르죠. 형은 모든 면에서 나보다 우수하고 형이야말로 아버지가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계승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후계자예요.”“천우야, 함부로 너 자신을 낮추지 마. 네가 나보다 부족한 건 아무것도 없어.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거야. 너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야.”유진우가 말했다.“난 몰라요! 아무튼 서경의 왕은 형이 하세요!”유천우는 화가 나서 책상을 두드리며 말했다.“익지 않은 참외를 억지로 비틀어 따봤자 그 참외는 달지 않아. 나는 큰 포부도 없고 남을 위하는 고상
유태범의 말 한마디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쳐다봤다. 지난날 표기대장군이었던 유태범은 인품 논란은 많았지만, 그의 능력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유태범은 여러 차례 치열한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오늘 이 자리까지 오른 것이었다.그러니 유태범처럼 패기 있고 안목이 있는 사람조차 유진우가 왕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했다.조금 전에 그들은 유진우를 지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거로 생각해 유천우를 지지했지만 지금 보니 그건 아니었다.먼저 전쟁의 신 조무진이 힘을 보탰고 이어서 표기대장군 유태범이 지지했으니, 이 두 사람의 선택은 많은 사람들의 결정을 바꾸기에 충분했다.“셋째야, 왜 장혁을 선택하겠다는 건지 자세히 말해봐.”유만수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제가 장혁을 선택한 이유는 조무진과 비슷합니다. 저는 한 사람의 재능과 능력을 더 중시합니다.”유태범은 진지하게 말했다.“이번에 호룡각을 어떻게 소탕했는지 모두 잘 알 거로 생각합니다. 전부 장혁이 작전을 짜고 계략을 펼쳤기에 교활하기 여지없던 채원진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호룡각의 숨겨진 보물까지 전부 찾아냈죠. 이건 그야말로 아주 큰 공이 아닙니까? 종합해 보면 장혁의 용기와 지략은 왕위를 계승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입니다. 천우는 대장군이 되기에는 손색이 없지만 왕의 자리에 오르기에는 조금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유태범의 말이 끝나자, 유만수가 입을 열기도 전에 주한휘는 흥분하며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허튼소리! 이번 호룡각을 소탕한 것은 유진우 한 사람만의 공이 아니잖아요. 유천우도 큰 공을 세웠습니다. 유천우의 도움이 없었다면 일이 이렇게 순조롭게 되었을 리가 있겠습니까? 재능과 능력으로 따지면 유천우는 유진우보다 못 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더 젊고 더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요.”“선평 제후, 뭘 그렇게 흥분하고 그러십니까? 저는 그냥 가족의 일원으로서 제 생각을 말했을 뿐이고 모든 권한은 저의 형님한테
“괜찮아. 오늘은 가족 연회야. 여기 있는 사람은 모두 식구와 마찬가지이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걱정 말고 해봐.”유만수가 웃으며 말했다.“위왕 님께서 물어보셨으니 그럼, 사양하지 않고 말씀 올리겠습니다.”조무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두 손을 맞잡아 가슴에 올려 예의를 갖추고 말했다.“제 의견은 지극히 제 개인 생각일 뿐이니, 혹시 의견이 달라도 저를 원망하거나 탓하지 말아주십시오.”“전쟁의 신께서 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당신은 나라의 기둥과 마찬가지인 사람이니 보는 눈이 분명 다를 거로 생각합니다.”“전쟁의 신께서는 누구를 지지하는 겁니까? 어서 말해보세요.”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용국의 전쟁의 신이자 왕족 조씨 가문의 후계자인 조문진의 영향력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만큼 모든 사람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여 있었다.“자, 그럼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조무진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정중하게 말했다.“종합적인 능력과 현명함을 바탕으로 한다면 저는 유진우가 서경의 왕으로서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유진우에게는 많은 단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서경을 떠난 지 너무 오래되어 서경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고, 둘째는 토대가 없어 대중들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위왕 님께서 저 자리에 오르실 때도 똑같은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그 당시 많은 세력이 위왕 님께 좋지 않은 눈총을 보냈었지만, 결과는 어떻습니까? 위왕 님은 뛰어난 개인 능력으로 서경의 영토를 넓히며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하여 지금의 지위와 영광을 얻었지요. 유진우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개인 능력으로 보면 위왕 님보다 전혀 뒤지지 않습니다. 서경뿐만 아니라 용국 전체에서도 유진우 같은 사람은 더 없을 겁니다. 저는 유진우에게 조금만 시간을 준다면 그는 반드시 훌륭한 서경 왕이 되어 여러분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제 생각입니다. 여러분께서 다른 의견이 있으시다면 마음껏 말씀하셔도 됩니다. 저는 여기까
은성종의 발언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똑똑한 사람이라면 유천우의 지지자가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유천우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는 걸 잘 알 텐데, 서경의 인재로서 어린 제갈량이라고 불리는 은성종이 왜 반대로 유진우를 지지하는지 모두 의아해했다.“회음 제후,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주한휘가 반박했다.“유진우의 무도 재능은 서경 전체를 놓고 보면 확실히 따라올 사람이 없지만, 왕의 자리는 싸움을 잘한다고 맡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유천우는 학문과 무예를 골고루 겸비한 데다 지지자까지 많으며 무엇보다 전쟁에서 몇 년 동안 연마하여 모든 면에서 매우 훌륭합니다. 만약 유천우가 왕이 된다면 서경은 분명 더욱 빛날 것입니다!”유천우는 황제의 조카이자 주한휘의 미래 사위이고 양측은 이미 혼약까지 맺은 사이였다.그러니 주한휘는 유천우가 왕의 자리에 오르기만 하면 자기 딸은 왕비가 되는 것이고 본인도 자연히 신분이 상승할 테니 무조건 유천우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저도 선평 제후의 견해에 동의합니다.”흑용군 주장 한 명이 말했다.“유진우가 우수하다는 건 물론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는 서경을 떠난 지 여러 해가 되었고 서경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일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유천우는 다르지요. 어릴 때부터 서경에서 자랐으니, 인맥도 넓고 군사 내막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유천우가 왕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맞습니다. 유진우는 10년 동안 서경을 떠나 있었으니 그를 따르지 않을 자들이 많을 겁니다. 저도 유천우가 왕이 되는 것을 지지합니다.”이때 일부 군사의 고급 장교들이 모두 유천우를 지지하기 시작했다.유진우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서경을 떠난 지 너무 오래되었기에 그들한테 유진우는 서먹서먹했지만, 유천우는 달랐다.유천우가 예전에는 믿음직하지 못했던 건 맞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뛰어난 성과를 보였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유천우의 성격상 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