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깼어요! 어르신께서 깨어나셨습니다!”“역시 현술 대가이십니다. 명불허전이시군요.”“부적 한 장으로 살기를 소멸시키다니. 기가 막히네요.”검은 옷 노인의 부적이 닿은 순간, 안용철이 눈을 뜨게 되었고 그 광경을 본 안씨 가문 사람들의 안색도 순식간에 확 밝아졌다.전에 그렇게 많은 의사가 다녀가도 속수무책이었는데 장 선생이 손을 쓰자마자 이토록 쉽게 해결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정말 대단한 분이지.“하하하... 어떻습니까? 제가 데려온 달인분께서 여러분을 실망하게 하지 않으셨죠?”송영명이 자랑스러운 듯 웃음을 터뜨렸다.“역시 장 선생님이십니다. 현술이 대단하시네요. 정말 탄복합니다!”안두천은 얼른 주먹을 모으고 절을 하며 경의를 표했다.“대가님은 정말 신이십니다.”안씨 가문 종친들도 경외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검은 옷 노인의 수법은 그들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버렸다.그리고 이 기인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어떤가? 자네도 승복했지?”검은 옷 노인은 경멸하듯 유진우를 힐끗 쳐다보았고 얼굴에는 약간의 오만함이 깃들어 있었다.동업자는 원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어디 어중이떠중이가 감히 그의 밥그릇을 뺏으려 한단 말인가.“장 선생님,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일이 이렇게 간단하게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유진우는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충고를 주었다.“흥! 자네는 정말 우물 안의 개구리가 따로 없군.”검은 옷 노인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자네는 부적 하나로 살기를 소멸하는 게 뭔지 알기나 해? 그리고 현술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자네가 알긴 해? 자네가... 아악--!!”그런데 그때,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병상에 누워 있던 안용철이 갑자기 튕겨 오르더니 검은 옷 노인 등 뒤로 달려들어 그의 귀를 한입에 물고 이빨로 찢어버렸다.검은 옷 노인이 비명을 질렀고 찢어진 귀에서는 피가 흥건히 쏟아져 내렸다.“껄껄껄...”같은 시각, 안용철은 흉악하게 웃으면서 검은
그동안의 심오한 모습과는 완전히 극과 극이다.“의사! 의사는 어디 있습니까? 빨리 지혈해 주세요!”검은 옷 노인은 당황해 소리를 지르며 온몸으로 ‘죽음이 두렵다’라는 뜻을 극치로 표현했다.“그...”펄쩍펄쩍 뛰는 장 대사를 보며 안두천과 유공권 일행은 저도 모르게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말로 이룰 수 없는 괴이한 표정을 지었다.뭔가 예상했던 상황이랑은 조금 다른 것 같은데?장 선생의 이미지는 전부 어디로 갔단 말인가?“미쳤어 미쳤다고! 이 노인네는 정말 미쳤다니까! 사람을 보면 물고 날것 그대로 전부 씹어먹는데 왜 그를 묶어두지 않았단 말입니까? !”치료를 받던 검은 옷 노인이 버럭 화를 내며 캐물었다.“장 선생님, 전 분명 아버지께서 괴질에 걸리며 사람을 공격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당황한 안두천이 조심스럽게 설명했다.“이... 이... 이게 어디 공격하는 경향입니까? 이건 분명히 사람을 잡아먹는 겁니다!”그 시각, 검은 옷 노인은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그러자 안두천은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몰래 그를 비웃었다.‘네놈이 주제도 모르고 멋대로 달려들었는데 그게 내 탓인가?’“큼큼, 장 선생님께서는 크게 다치셨으니 잠시 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송영명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원래 장 선생을 초대한 것은 안씨 가문의 호감을 사고 두 집안의 관계를 촉진하기 위해서였다.그런데 결국, 이 사달이 났으니 인정은커녕 오히려 망신만 당하게 되었으니 정말 난감한 상황이다.“흥! 재수가 없어서 원 참.”검은 옷 노인은 다른 한쪽에 앉아 의사의 붕대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장 선생님, 보아하니 당신의 부적은 그다지 소용이 없어 보이는군요.”유진우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냈다.“당신이 뭘 알아? 방금은 사고였어. 내일 다시 해보라고 하면 분명 문제가 없을 거다.”검은 옷 노인이 자신만만한 말투로 반박했다.“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시 시도하면 정말 죽을 수도 있습니다.”유진우가 담담하게 답했다.“건방
“찾았다고?”모든 사람이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리고 유진우의 손을 뚫어지라 쳐다보았고 곧 검은 비단 주머니가 매트리스 밑에서 유진우의 손에 의해 만져졌다.비단 주머니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붉은 옥패 하나가 떨어져 나왔다.옥패는 둥근 모양에 피를 연상케 하는 선홍색을 띠고 있었고 이상한 기호가 가득 새겨져 있어 다소 기괴해 보였다.“응? 이게 뭐지? 이게 왜 어르신의 침대 밑에 있는 거지?”안씨 가문 사람들은 그저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볼 뿐, 아무도 영문을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이 물건은 혈심옥이라 하여 주술의 매개체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유진우는 옥패를 들고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말을 이었다.“그리고 혈심옥의 형성은 시체와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있죠. 사람이 막 죽었을 때 옥패 하나를 입에 넣고 마지막 숨을 삼키면 옥패는 목구멍으로 떨어져 혈관으로 들어가 100년 동안 방치되며 죽은 피가 스며들고 핏줄은 옥심까지 닿아 아름다운 혈심옥을 형성합니다. 이런 종류의 보물은 매우 희귀하고 가치가 높은지라 많은 주술사가 찾는 보물이죠. 게다가 혈심옥은 그들의 수련을 도울 뿐만 아니라 주술 법의 위력을 강화할 수 있어요. 제때 발견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3일만 지나면 어르신은 정말 구제 불능이 되었을 것입니다.”이 말이 나오자 안씨 가문 사람들의 안색이 분분히 변하기 시작했다.어르신께서 일 년 내내 누워 계신 매트리스 밑에 이런 사물이 깔려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이것은 누군가가 고의로 음해한 것이 분명하다.“아버님, 어르신의 방에 들어갈 수 있으며 침대 밑에 혈심옥을 숨겨둘 정도라면 전 외부인이 할 수 없을 거라 믿습니다.”유진우가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알겠습니다.”그리고 안두천도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으로 이미 생각을 끝마쳤다.외부인은 할 수 없으니 내부 첩자일 수밖에 없다.그러니 이 일은 반드시 엄격하게 조사해야 할 것이다.“흥! 웃기고 있네. 네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누가 알겠어?”그때, 송
“맞아요! 저희 할아버지는 평소에도 자주 아프시고 매번 여러 날 동안 침대에 누워계시기도 했어요.”안세리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그래서 주술을 건 자에게 기회를 준 것입니다.”유진우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사실 어르신을 치료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 혈심옥을 버리고 마음을 안정시키기만 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제가 방금 놓은 침이 바로 잠을 자고 정신을 안정시키는 작용을 하죠. 그리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처방을 따로 내릴 겁니다. 그 처방대로 약을 먹으면 열흘 보름만 지나도 생기가 넘칠 거예요.”“그렇게 간단하다고? 너 지금 사기 치는 거지?”송영명이 또 의혹을 품기 시작했다.“쉽다고?”유진우가 살짝 눈썹을 치켜세웠다.“만약 이 혈심옥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어르신은 아마 오래가지 못했을 텐데.”“이게 대체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단지 어르신이 빨리 정신을 차리시길 바랄 뿐이야.”송자현이 말을 꺼내자 유진우가 답했다.“어르신께서는 방금 주무셨기에 아직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그러니 지금은 소란을 피워서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흥! 혼자 잘난 체는 다 하는데 우리가 왜 당신을 믿어야 하디? 우리는 지금 당장 확답을 받아야겠어. 어르신은 도대체 언제 깨어나실 수 있는 거지?”송영명이 계속하여 유진우를 몰아붙였다.“빨리 회복되면 오늘 밤은 깨어날 수 있고 늦어도 내일까지는 깨어날 수 있어.”“좋아! 그럼 하루만 더 기다리지. 만약 내일도 어르신께서 깨어나지 않으시면 당신이 어르신을 죽였다고 고소할 거야.”“마음대로 해.”송영명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였지만 유진우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 그를 상대해주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한낱 광대일 뿐 언급할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유명의, 오늘은 수고 많았네. 일단 여기서 푹 쉬고 우리 안씨 가문이 지주의 우의를 다하도록 해주게.”안두천이 빙그레 웃으며 유진우가 거절하기도 전에 손을 번쩍 들어 직접 지휘를 내렸다.“여봐라!
다행히도 안용철의 상황은 잠시 안정되었다.유진우가 마음에 걸린 것인지 안두천은 그를 만류하고 시시각각 사람을 보내 감시했다.그리고 유진우는 안세리를 따라 안씨 가문 근처 여러 거리를 돌아다녔는데 안씨 가문 에서는 술집, 노래방, 호텔, 카지노 같은 많은 산업을 운영하고 있었다.반경 5㎞ 안의 모든 오락 시설은 전부 안씨 가문이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그렇게 놀다가 지쳐버린 안세리는 이내 유진우를 데리고 근처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했다.그런데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마자 ‘딩동' 하는 소리와 함께 식당 문이 열렸고 정말 질리지도 않는 것인지 송영명이 큰 꽃다발을 안고 그윽한 눈빛으로 레스토랑에 들어섰다.“흥! 여긴 어쩐 일이야?”찾아온 사람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안세리의 예쁜 얼굴이 즉시 굳어지고 말았다.쿵!군더더기 하나 없이 무릎을 꿇은 송영명이 대뜸 사과했다.“세리야, 내가 미안해.”“어?”갑작스러운 변고로 안세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평소에 그토록 체면을 중시하고 가부장적인 송영명이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할 줄은 정말 몰랐기 때문이다.이 행동이 오히려 그녀를 당황하게 한 것이다.“너... 너 미쳤어? 뭐하고 있는 거야?”안세리는 의자를 뒤로 빼며 애써 몸을 숨겼는데 그녀는 이 상황이 정말 부끄러우면서도 화가 났다.송영명이 무릎을 꿇자 주변 손님들의 시선도 일제히 그들에게 쏠려 너무 난감했기 때문이다.“세리야, 난 진심이야.”송영명은 이내 무릎을 꿇은 채 꽃다발을 들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잘못한 것도 알고 네가 나를 믿기 어렵다는 것도 알지만 나는 맹세코 널 깊이 사랑하고 있어. 요 며칠 난 이미 깊이 반성했고 그때의 행동을 매우 후회하고 있어. 그러니 나에게 한 번이라도 더 기회를 줬으면 좋겠어. 적어도 내 마음을 증명할 기회를 줘. 세리야, 난 널 사랑해. 정말 많이 사랑하고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돼. 그러니 제발, 제발 나를 용서해 줄래?”마지막 몇 마디는 진솔하고
“아가씨, 요즘 진심으로 대해줄 남자친구를 찾기가 쉽지 않아요. 제가 보기에 이 잘생긴 남자는 이미 매우 훌륭한 것 같은데. 당신을 만회하기 위해 존엄을 완전히 포기해버리고 무릎을 꿇었잖아요. 내 남자친구가 이랬다면 꿈에서도 활짝 웃으며 깨겠어요.”식당 안에서 구경하던 손님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던지며 덩달아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남자로서 여자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성실한 태도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세리야, 용서해 줘. 앞으로 온 마음을 다해 널 대해줄 것을 맹세할게. 조금이라도 불충하면 천벌을 받을 거야.”송영명은 계속하여 무릎을 꿇은 채 팔을 들어 손가락 세 개를 펴고는 굳은 얼굴로 맹세를 했다.게다가 그 확고하고 결단력 있는 모습이 안세리의 마음을 조금 움직이게 한 것이다.하지만 그런데도 안세리는 마음을 굳게 다잡고 일부러 화가 난 시늉을 했다.“송영명, 지금 그런 말을 하기엔 너무 늦었어. 난 이미 너에게 많은 기회를 줬었고 소중히 여기지 않은 건 너야. 그리고 유진우가 이제 내 남자친구야.”말을 마치고 그녀는 유진우의 팔짱을 끼며 그 말을 증명해 보였다.사과했지만 그녀는 아직 송영명을 용서할 생각이 없다. 주로 아직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남자는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건가? 아니면 감언이설일 뿐인가?그래서 그녀는 한 번 더 테스트하고 싶었다.“유진우?”유진우의 이름을 듣자 송영명은 눈살을 찌푸리며 언성을 높였다.“안세리, 이 자식이 어떻게 너와 어울린다고 생각해? 그를 봐. 신분도 능력도 없는, 그저 거짓말쟁이 어린놈일 뿐인데 이런 사람은 네 발끝만치도 안된다고.”“닥쳐.”안세리가 눈을 부릅뜨고 으름장을 놓았다.“네가 진우 오빠를 모욕하는 건 두고 볼 수 없어.”“세리야, 난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우리 둘이야말로 신분이 맞고 남들이 봐도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고. 이건 너도 알아야 해. 우리 둘이야말로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 거야. 게다가 우리는 이미 혼약을 맺
“진우 씨, 너무 흥분하지 마요.”상황이 심상치 않자 안세리가 급히 유진우를 설득했다.송영명은 어려서부터 무술을 익혀 신체가 건장하고 한 번에 열 명과도 싸울 수 있다.하지만 유진우는 의사일 뿐이고 이런 무사와 결투하는 것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꼴이다.“걱정 마세요. 이런 놈은 안중에도 두지 않습니다.”안세리의 걱정에도 유진우는 여전히 담담할 뿐이었다.송영명은 결국 내공 무술에 불과하다. 일반인을 상대하는 데는 그런대로 괜찮겠지만 좀 더 대단한 고수들을 상대할 때는 결국 맞기만 할 운명이다.“이 자식이, 네놈이 아무리 오만방자해도 나와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곧 알게 될 거다.”송영명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재킷을 벗어 안에 입은 흰색 셔츠를 드러냈다.셔츠 아래는 탄탄한 근육이 불룩 튀어나와 있어 꽤 강해 보였다.“송영명, 경고하는데 함부로 하지 마.”안세리는 다급히 몸으로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으며 싸움을 말리려 노력했다.“안세리, 이건 우리 남자들끼리의 싸움이야. 끼어들지 마.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증명해 보이겠어.”그러나 송영명은 사뭇 진지한 얼굴이었다.“넌...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서 뭐라 말을 못 하겠어.”안세리는 잔뜩 화가 난 얼굴이었다.그러나 겉모습과는 달리 송영명의 행동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녀의 마음은 왠지 모르게 기대하고 있었다.두 남자가 동시에 한 여자를 쟁탈하려고 한다.이런 체험은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지라 그녀의 허영심을 충족하기에는 충분했다.“유진우, 어디 가서 내가 괴롭혔다고 하지 마. 팔다리가 얇은 걸 봐서 내가 세 수 먼저 내줄게.”송영명이 득의양양한 기세로 말을 꺼냈다.“쓸데없는 소리 말고 그냥 해. 빨리 끝내고 아침 먹어야 하니까 나 시간 급해.”그의 도발에도 유진우는 한 손을 내밀어 등 뒤로 걸며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했다.이 경멸적인 행동은 송영명을 제대로 화나게 하고 말았다.“너 죽으려고 작정했구나.”화가 치밀어 오른 송영명은 갑자기 주먹을 휘두르며
엄청난 고통과 함께 송영명이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그러나 비명을 절반쯤 지르던 그 순간 유진우의 손은 이미 그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고 그 뒤의 울부짖는 소리를 억지로 막아버렸다.송영명은 숨이 막혀오자 얼굴이 붉어지고 목에 핏대가 서기 시작했다.두 발이 천천히 땅에서 솟아오르고 앞뒤로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죽음의 공포가 일순간에 가슴에 가득 찼다.“나... 날 놓아줘...”송영명이 갈기갈기 갈라진 목소리로 애써 그 몇 글자를 쥐어짜 냈다.“못 이길 것 같으니까 칼부림을 하는데 넌 낯짝도 없냐?”유진우가 손끝에 천천히 힘을 주자 송영명이 두 눈을 부릅떴다.“그만해!”그때, 비명소리가 등 뒤에서 울려 퍼지고 이윽고 ‘펑’하는 소리와 함께 술병 하나가 유진우의 뒤통수에 날아와 꽂혔다.순간 파편이 튀고 술병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음?”유진우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뒤를 돌아보았고 그곳에는 깨진 술병을 들고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안세리가 서 있었다.2초간 멍하니 있던 안세리는 그제야 갑자기 반응하여 “아” 하고 술병을 반쯤 던져버리고는 미안한 듯이 말했다.“진우 오빠, 미안해요. 고의가 아니었어요. 난 그저 당신이 송영명을 다치게 하면 오빠에게도 쓸데없는 피해가 생길까 봐 그랬어요. 송영명은 그래도 송씨 집안의 도련님으로 배경이 두텁잖아요... 저... 저는 오빠를 관심해서 그런 거예요.”안세리는 애써 그의 눈을 피하며 여러 가지 해명을 늘어놓았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진심이 드러날 뿐이었다.유진우는 뒤통수에 남은 술 자국을 만지며 미간을 더욱 찌푸렸다.방금 안세리가 날린 술병이 너무 갑자기 날아오는 바람에 아무런 징후도 느낄 수 없었고 게다가 그 술병은 그의 뒤통수를 내리쳤다.즉 일반인이라면 이미 바닥에 뻗어버렸을 것이다.비록 위급한 행동이었지만 안세리의 마음속에서 유진우의 지위는 송영명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다.심지어 송영명을 구하기 위해 유진우를 희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여기까지 생각이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