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씨 가문은 그저 유진우의 계획 중 하나였다. 더 많은 세력이 참여해야만 배후 범인과 맞설 자격이 있었다.그 시각 용씨 저택 대문 밖의 길거리.차 두 대가 앞뒤로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은도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뒷좌석에 기대어 손에 담배를 들고 있었다. 담배를 피우진 않았고 미풍에 조금씩 꺼져 들어갔다.유진우가 들어간 지 거의 두 시간이 되지만 아직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설마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아까 용수현의 행동이 예상 밖이긴 해도 사람들 앞이라 보여주려고 일부러 그랬을 가능성이 있었다. 용씨 저택에 들어가면 보는 눈도, 듣는 귀도 없어 조용히 죽이는 건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였다.그 생각에 은도는 저도 모르게 걱정이 밀려왔다. 심지어 왜 안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남자를 이토록 신경 쓰는지조차 이해가 가질 않았다. 단지 유진우의 얼굴이 잘생겨서? 성격이 특이해서?끼익!그때 앞에 서 있던 차가 갑자기 후진하더니 은도의 차 옆에 나란히 섰다. 유리창이 내려가면서 유강청과 유성신의 얼굴이 나타났다.“은도 씨, 아직도 기다려요? 그냥 일찍 들어가서 쉬어요.”유강청이 웃으며 말했다.“유진우는 겁도 없이 저런 위험한 곳에 들어갔어요. 지금쯤 아마 갈기갈기 찢어져서 시체도 찾기 어려울 걸요?”“흥! 전에도 그렇게 얘기했었는데 결과가 어땠어요? 골든 클럽에서 멀쩡하게 걸어 나왔잖아요.”은도는 그들을 비난했다.“골든 클럽과 용씨 저택이 같아요?”유강청이 코웃음을 쳤다.“용씨 저택엔 고수가 수두룩해서 유진우가 들어가면 죽을 길밖에 없어요. 용씨 가문 가주님이 전에는 깍듯하게 대하는 것 같아도 웃음 속에 칼을 감추고 사람들의 눈과 귀를 속인 거라고요.”“맞아! 유진우가 넷째 도련님을 때렸으니 이젠 죽음뿐이야. 네가 좋아하는 그 기생오라비 아마 평생 못 나올 거야.”유성신이 고소해하며 말했고 은도는 눈살만 찌푸릴 뿐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때 누군가 유강청의 차 앞으로 다가와 유리창을 두드렸다.똑똑!갑작스러운
유성신과 유강청 두 사람은 서로 멀뚱멀뚱 눈만 쳐다보았다. 그들은 용수현의 행동이 전혀 이해되질 않았다.원수에게 은덕을 베푸는 건 어리석은 것일까? 아니면 마음이 넓은 것일까? 명성이 자자한 명문가인데 체면이 깎여도 괜찮다는 건가?“나랑 용씨 가문의 원한은 다 해결했어요. 이젠 우리 얘기를 해야죠?”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유성신과 유강청은 이 웃음에 좋은 뜻은 담겨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진우 씨, 이 일은 나랑 상관없는 일이에요. 나도 피해자라고요. 봐요, 진우 씨한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을까 걱정되어 계속 기다리고 있었잖아요.”유강청이 억지로 미소를 쥐어짰다.‘X발, 쟤는 그냥 미친놈이야. 용서후까지 가차 없이 때린 놈이라고. 만약 쟤 심기를 건드렸다간 나도 된통 얻어맞을지 몰라.’“우리 둘 일은 나중에 얘기하고 지금은 저 여자와 할 얘기가 있어요.”유진우는 손가락을 내밀더니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유성신을 가리켰다.“난 당신이랑 할 얘기 없어요. 선배님, 얼른 출발해요.”유성신은 갑자기 불안감이 밀려와 유강청에게 얼른 도망가자고 했다.“가려고?”왕현이 주먹을 날려 유리창을 깨뜨리더니 핸들을 잡고 확 잡아당겼다.툭!핸들이 그대로 뽑혀버렸다. 왕현이 멀리 던져버리자 백미터 가까이 날아가 용씨 가문의 담장 안으로 떨어졌다.“...”그 모습에 유강청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핸들이 없는 차를 보며 거의 울먹거렸다.‘새로 뽑은 비싼 차라고!’유성신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눈가가 다 파르르 떨렸고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핸들까지 뽑아버리다니, 이게 진짜 인간이란 말인가?“유성신 씨, 난 여자를 때리진 않지만 오늘 저녁 당신의 행동은 정말 지나쳤어요. 전화로 날 유인하고서는 유강청 씨와 이런 함정을 파요? 내가 운이 나빴더라면 아마 지금쯤 저세상으로 갔겠죠?”유진우는 웃으면서 말하긴 했지만 눈빛이 간담이 다 서늘해질 정도로 싸늘했다.“그...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 난 아무것도 한 게 없고 다 당신이 자초한
‘괜히 건드려서 좋을 게 없어.’“생각할 시간 10분 줄게요. 그래도 얘기하지 않는다면 이 독약으로 세수시킬 겁니다.”유진우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러면서 뚜껑을 열어 약병을 유성신의 머리 위로 가져갔다.“안.. 안 돼요!”유성신은 혼비백산한 나머지 두 다리에 힘이 다 풀렸고 눈물범벅인 채로 말했다.“얼굴만 망가지게 하지 말아요. 말할게요. 다 말할 테니까 당장 그거 치워요!”“진작 그럴 것이지.”유진우는 그제야 약병을 거두었다.‘이런 년은 이렇게 해야 무서운 걸 안다니까.’가쁜 숨을 몰아쉬던 유성신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맥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사철수에 관한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라면 몇 년 전부터 얘기를 꺼내야 해요... 그날 갑자기 집에 낯선 손님이 와서는 우리 할아버지랑 비밀 얘기를 나누더라고요. 방문을 사이에 두고 내가 몰래 엿들었는데 그 손님이 바로 10년 전 사철수를 구한 사람이었어요.”“잠깐만요! 철수 아저씨를 구한 사람이 당신 할아버지 아니었어요?”유진우가 말을 가로채고 물었다.“정확하게 말하면 그 사람이 중상을 입은 사철수를 구세당에 데려왔고 그다음에 우리 할아버지가 치료해줬어요. 그 사람 일정 기간마다 몰래 와서는 할아버지께 사철수의 상태를 물어보더라고요.”유성신이 설명했다.“그 사람이 누군데요?”유진우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지금까지 사철수를 구한 사람이 유공권인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사실이 숨어있을 줄은 몰랐다.유성신이 고개를 내저었다.“그 사람의 얼굴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 사람이 올 때마다 할아버지는 나더러 나가라고 했거든요. 그날은 하도 궁금해서 몰래 엿들은 거예요.”“엿들은 내용이 뭐예요?”유진우가 캐물었다.“그 사람이 할아버지한테 사철수를 꼭 살려내야 하고 절대 신분이 노출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어요. 그리고 누군가 찾아오면 혹시 안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바로 그 사람한테 얘기하라더라고요.”유성신이 대답했다.“네?”유진우는 저도 모르게 눈살
다음날 이른 아침, 어느 한 단독주택.태양이 하늘 끝자락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때 양반다리 자세로 침대에 앉아있던 유진우도 천천히 두 눈을 떴다.천영 구술을 손에 넣은 후로 무도 수행이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굳이 일부러 수행하지 않아도 천영 구슬이 알아서 하늘과 땅의 영기를 흡수했다. 그 말인즉슨 유진우는 매 순간 수련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게다가 천부적인 재능이 있을수록 천영 구슬이 더 큰 효과를 발휘했다.한 달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유진우는 대 마스터의 문턱까지 왔다.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돌파할 수 있었지만 기초를 더 단단하게 하기 위해서 유진우는 조금 더 수련할 생각이기에 잠시 그 경계를 넘어서지 않도록 컨트롤했다.그 고자와 약속한 1년이 아직 반년 정도 남아 준비를 하기에는 충분했다.따르릉...그때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 유진우는 베개 밑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발신자를 확인했다. 유공권의 전화였는데 받자마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 진우 씨, 여기 일이 좀 생겼는데 진우 씨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요.”“일이요? 철수 아저씨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유진우는 순식간에 긴장하기 시작했다.“아니요. 철수 씨가 아니라 안씨 가문 어르신이에요.”유공권이 다급하게 설명했다.“어제 어르신이 갑자기 이상한 병이 발작해서 안씨 가문에서 남쪽 구역의 명의란 명의는 다 불렀거든요. 나도 지금 여기 와있고요. 근데 밤새 치료했지만 다들 속수무책이에요.”“대체 무슨 이상한 병이길래 명의님마저도 치료하지 못하는 건데요?”유진우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사철수의 목숨을 10년이나 지켜온 것만 해도 유공권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충분히 증명했다. 아무리 어려운 불치병이라고 해도 그에게는 큰 문제가 아닐 텐데 말이다.“어르신이 병에 걸린 게 아니라 어떤 주술에 걸렸어요.”유공권은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었다.“주술요? 확실해요?”유진우가 눈썹을 치켜세웠다.“확실한 건 아니고 그냥 추측이에요. 진우 씨 현술에 능하니까 잘 알
“어르신이 잠시는 안정을 취하셨어요. 근데 병이 어찌나 이상한지 원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달리 방법이 없어요.”유공권이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명의님들 모두 남쪽 구역에서 최고의 의사들이잖아요. 제발 다른 방법 생각해서 아버지를 치료해 주세요. 돈이 얼마가 들든 상관없고 필요한 게 있다면 우리가 최대한 맞춰드리겠습니다.”안두천이 간곡하게 부탁했다.“두천 씨, 어르신 지금 증상을 보면 사실 이건 아픈 게 아니라 살을 맞은 것 같아요.”유공권이 진지하게 말했다.“살이요?”그의 말에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의사가 이런 얘기를 하니까 더 황당하게 들렸다.“명의님, 자세하게 얘기해 주세요.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안두천이 떠보듯 물었다.“제가 말한 살은 주술 같은 건데 저는 이런 걸 잘 모르거든요. 단지 책에서만 본 거라 그냥 추측일 뿐입니다.”유공권이 설명했다.“주술?”안두천이 눈살을 찌푸렸다. 만약 일반인이 이런 얘기를 했다면 절대 믿지 않았겠지만 명성이 자자한 유공권이라면 허튼소리를 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이런 일을 그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명의님은 본 것도 많고 의술도 뛰어나서 할아버지를 살릴 방법이 있죠?”안세리가 갑자기 물었다. 두 눈이 벌겋고 촉촉한 게 방금 한바탕 운 것 같았다.“의술은 그래도 조예가 깊지만 이런 사술은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유공권이 고개를 내저었다. 의술과 사술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다.“그럼 어떡해요? 할아버지 점점 야위어지는데 이래로 갔다간 목숨이라도 위험해질까 걱정이에요.”안세리가 울먹이며 말했다.“이쪽 영역을 연구하는 사람을 알고 있어요. 그 사람이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몰라요.”유공권이 불쑥 말했다.“그래요? 누군데요?”안두천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누구냐면...”“당연히 나죠!”유공권이 대답하기 전에 갑자기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송영명이 검은 옷 노인과 함께 위풍당당하게 걸어오고 있었다.“아버님, 어머님
“헉! 너무 신기한데? 종이학을 날게 하다니.”“이게 바로 현술 대가인 건가? 역시 대단하군.”“...”검은 옷 영감이 보여준 수법에 안씨 가문 사람들은 초토화가 되어버렸다.이전에 말로만 듣던 기인이 세상에 정말 존재할 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어떻습니까, 여러분? 이제 장 선생의 능력을 믿을 수 있겠죠?”송영명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역시 대가님이로군요. 오늘 직접 뵙고 나니 눈이 확 트입니다.”안두천은 순식간에 표정이 확 밝아졌고 그들을 향한 눈빛도 완전히 바뀌었다.아버지가 정말 악에 쓰인 것이라면 오직 이 기인이야말로 아버지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이 정도는 보잘것없는 재주일 뿐 언급할 가치도 없습니다.”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연 검은 옷 영감의 모습은 너무 심오한 나머지 감히 예측할 수조차 없었다.“방금 학을 통제하는 기술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장 선생의 진정한 수법은 아직 뒤에 있으니 천천히 지켜보시지요.”송영명이 내친김에 한 마디 덧붙였다.“좋습니다.”안두천이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세리야, 너무 걱정하지 마. 장 선생이 계시니 할아버지는 분명 무사하실 거야.”송영명이 빙그레 웃으며 다소 화심을 사는듯한 표정을 지었다.“흥!”그러나 안세리는 교만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홱 돌리고는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송영명은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갑자기 시선을 유공권에게로 돌리더니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유명의, 방금 당신의 말에 따르면 무슨 현술의 달인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설마 당신이 아는 그분이 장 선생보다 더 대단하단 말입니까?”구세당은 그가 오래전부터 탐내어 왔던 귀지인데 눈앞의 이 늙은이는 어찌하여 눈치도 없이 끝까지 타협하지 않는단 말인가.“그...”유공권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장 대가의 현술은 신에 이르는 경지이니 당연히 따라올 자가 없지요.”“허... 능력이 없다면 이곳에서 망신당할 짓은 하지
그 말에 송영명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고 그의 눈가에는 원망이 스쳐 갔다.“당신이 유진우였군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안두천이 고개를 끄덕였다.최근에 집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안두천도 자연히 잘 알고 있다.옥로고 비법만으로도 그가 중시하기에는 충분했다.“아버님, 어르신께서 괴질을 앓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좀 보여주시겠습니까?”유진우가 먼저 나서며 입을 열었다.“그쪽이요?”안두천이 실눈을 뜨고 그의 말에 의심을 품었다.아무리 유공권이 추천했다고는 하지만 유진우가 너무 어려서 미덥지 못한 모양이다.“유진우 씨, 당신 호의는 감사히 받을 테지만 우리는 이미 장 선생을 불렀으니 진우 씨는 이 일에서 빠져.”그때, 송자현이 불쑥 입을 열었다.“들었지? 장 대가님이 손을 쓴다는데 내 자리가 있을 것 같아?”송영명이 잇달아 냉소를 퍼부으며 비아냥거렸다.“어이, 젊은이, 여기서 사기 치지 말고 저리 비켜. 사람의 목숨이 달린 큰일이니 네 소란을 받아줄 시간이 없어.”검은 옷 노인이 정색하며 유진우를 나무랐다.“진우 씨, 됐어요.”유공권이 고개를 가로저었다.지금 무리하게 나서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좋습니다. 장 선생께서 그토록 자신이 있다면 저도 더 이상 추태를 부리지 않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유진우도 더 이상 무리하지 않고 그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그가 여기에 온 것은 출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만약 장 선생이 정말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면 유진우도 물러나 줄 의향이 있다.“흥! 그래도 지 주제는 잘 알고 있네.”검은 옷 노인은 유진우를 힐끗 쳐다보고는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리고 잇따라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그의 뒤를 따라 천천히 방으로 들어갔다.“이게 어찌 된 일이지?”검은 옷 노인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저도 모르게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캐물었다.“환자가 왜 묶여 있습니까? 이렇게 하면 치료에 영향을 미치는 거 알아요? 당장 풀어주세요!”“장 선생님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아버지께서 괴질에 걸리면서
“깼어요! 어르신께서 깨어나셨습니다!”“역시 현술 대가이십니다. 명불허전이시군요.”“부적 한 장으로 살기를 소멸시키다니. 기가 막히네요.”검은 옷 노인의 부적이 닿은 순간, 안용철이 눈을 뜨게 되었고 그 광경을 본 안씨 가문 사람들의 안색도 순식간에 확 밝아졌다.전에 그렇게 많은 의사가 다녀가도 속수무책이었는데 장 선생이 손을 쓰자마자 이토록 쉽게 해결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정말 대단한 분이지.“하하하... 어떻습니까? 제가 데려온 달인분께서 여러분을 실망하게 하지 않으셨죠?”송영명이 자랑스러운 듯 웃음을 터뜨렸다.“역시 장 선생님이십니다. 현술이 대단하시네요. 정말 탄복합니다!”안두천은 얼른 주먹을 모으고 절을 하며 경의를 표했다.“대가님은 정말 신이십니다.”안씨 가문 종친들도 경외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검은 옷 노인의 수법은 그들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버렸다.그리고 이 기인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어떤가? 자네도 승복했지?”검은 옷 노인은 경멸하듯 유진우를 힐끗 쳐다보았고 얼굴에는 약간의 오만함이 깃들어 있었다.동업자는 원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어디 어중이떠중이가 감히 그의 밥그릇을 뺏으려 한단 말인가.“장 선생님,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일이 이렇게 간단하게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유진우는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충고를 주었다.“흥! 자네는 정말 우물 안의 개구리가 따로 없군.”검은 옷 노인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자네는 부적 하나로 살기를 소멸하는 게 뭔지 알기나 해? 그리고 현술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자네가 알긴 해? 자네가... 아악--!!”그런데 그때,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병상에 누워 있던 안용철이 갑자기 튕겨 오르더니 검은 옷 노인 등 뒤로 달려들어 그의 귀를 한입에 물고 이빨로 찢어버렸다.검은 옷 노인이 비명을 질렀고 찢어진 귀에서는 피가 흥건히 쏟아져 내렸다.“껄껄껄...”같은 시각, 안용철은 흉악하게 웃으면서 검은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