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위엄 가득한 얼굴로 위풍당당 걸어 들어왔다. 그의 몸에는 살기가 감돌고 있어 보기만 해도 으쓸해났다.“남궁을용 장군님이시다! 노장군님이 오셨어!”“세상에! 오늘 대체 무슨 일이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시던 노장군님까지 나타나다니!”“아뿔싸! 선우 가문에 큰 이변이 생기겠구나!”남궁을용이 나타난 순간 현장은 다시 술렁였다.하용만의 출현은 이미 충분히 놀라웠다. 하지만 남궁을용마저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은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한때 호국대장군이었던 남궁을용은 세운 공이 어찌나 높은지 아무도 그를 능가할 수가 없다.그는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냈고 거둔 제자가 만천하에 깔렸다.권세든 인맥이든 영향력이든 강남 전역에서 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남성의 총독인 하용만도 그의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한다.“내가 오늘 자네의 체면을 세워주러 왔네. 누가 감히 건방지게 구나 지켜보겠어.”남궁을용은 군말 없이 유진우의 곁에 서서 입장을 밝혔다.이 행동은 다시 한번 많은 사람들을 떠들썩하게 했다.“뭐? 노장군님이 저 자식 때문에 오셨다고? 그럴 리가!”“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저 녀석이 뭐라고 노장군님까지 출동한 거야?”“지금 상황을 보면 저 사람 무슨 대단한 배경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많은 사람들이 속삭였다. 그들이 유진우를 바라보는 눈빛도 달라졌다.제일 처음에 그들은 유진우가 찾아와 소란을 피우는 것은 제 발로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알고 보니 상대방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것이다.어쩐지 선우 가문에게 선전포고를 하더라니 이렇게 강한 뒷배가 두 분이나 있는데 누구라도 그렇게 자신이 넘쳤을 것이다. “이... 이럴 수가!”조윤지는 믿기지 않는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줄곧 유진우를 권세가 없는 무사로만 생각했다.그래서 처음부터 그녀는 유진우를 무시하고 업신여겼다.하지만 이제야 그녀는 자신이 말도 안 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유진우는 싸움을 잘할 뿐만 아니라 위험에 처했을 때 한 성의
“노장군님, 선우 가문과 남궁 가문은 여태껏 갈등이 없었는데 오늘과 같이 소란을 피우시는 것은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선우희재가 인상을 썼다.그의 현재 세력으로는 확실히 두 거장과 상대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러설 이유도 없다.선우 가문은 탑쓰리의 우두머리로서 당연히 그에 마땅한 내공과 실력을 가지고 있다.정말로 얼굴을 붉힌다면 누가 밀릴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다.“너무하다고? 선우 가문에서 먼저 소란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내가 어찌 여기에 나타났겠소? 설마 당신네 가문이 불을 지피는 것만 되고 우리가 불을 끄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 건가?”오늘은 유진우의 생일이라 그는 어른으로서 풍우 산장에 가서 체면을 세워주려고 했다.그런데 일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그는 즉시 사람을 데리고 이곳으로 달려왔다.“선우희재, 문제를 일으키기 싫으면 당장 조선미를 풀어주어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거야!”하용만이 차가운 목소리로 위협했다.“희재 씨, 우리... 그만할까요?”조윤지는 침을 삼키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우리가 약혼하는 날이니 일을 크게 만드는 것도 좋지 않잖아요. 먼저 조선미를 풀어주어 상황을 진정시키고 보물지도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어떨까요?”“닥쳐!”선우희재는 화가 치밀어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엄청난 힘에 조윤지는 비틀거리다가 넘어질 뻔했다.예쁜 얼굴이 삽시간에 빨갛게 부어올랐다.“희재 씨?”조윤지는 이글거리는 얼굴을 부여잡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녀는 자신이 도대체 어떤 말을 잘못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세상 물정을 아는 사람이 으뜸이라는데 이럴 때는 잠시 후퇴해야 하는 것 아닌가?’“쓸데없는 것. 내 체면은 네가 다 구기는구나!”선우희재의 얼굴에는 못마땅함이 가득했다.선우 가문은 강남에서 수년간 군림하면서 아무에게도 굴복한 적이 없다.고작 협박 몇 마디로 명령에 따르면 선우 가문의 체면은 앞으로 어디에 둘 수 있겠나?백 년간 유지한 가문의 위엄이
선우 가문이 최고로 백 년 동안 군림한 것은 가문이 대대로 권세를 쌓아왔기 때문이다.특히 전대 족장이었던 선우정호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었다.왕년에 황권 다툼에서 안목이 정확하여 주인을 잘 선택하였고 황권 차지에 힘을 실어 황실의 충신으로 인정받아 결국 충용백이라는 귀적칭호도 하사받았다.그의 권세와 용맹은 결코 남궁을용보다 뒤지지 않는다.심지어 어떤 면에서는 한 수 위다.유일한 차이점은 남궁을용은 전쟁터에서 공을 세웠고 선우정호는 권력 싸움에서 공을 세웠다는 것이다.영역은 다르지만 둘 다 최고의 인재다.“하하하... 잘됐다 잘됐어. 드디어 노족장님이 나타나셨다!”“노족장이 계신데 누가 감히 선우 가문에서 건방지게 굴겠어?”선우정호를 보자마자 선우 가문의 친족들은 모두 기뻐했다.기댈 곳을 찾은 듯 그간의 걱정을 털어버리고 다시 기운을 차렸다.“딸! 살았다, 살았어! 우리가 드디어 살았다!”조군해는 마치 목숨이라도 건진 듯 감격해 마지않았다.그가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하나 걱정하던 참에 선우정호의 출현은 그에게 희망을 주었다.“잘됐어요! 역시 제가 사람을 잘 골랐어요!”조윤지도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선우희재는 앞날이 창창할 뿐만 아니라 높은 지위에 있는 할아버지도 있다.충용백은 귀족칭호로 실권은 없지만 최고의 영광과 이루 말할 수 없는 인맥을 대표한다.심지어 결정적인 순간에 황실 사람을 직접 만날 수도 있다.이런 큰 인물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어느 누가 감히 선우 가문에 도전할 수 있겠는가?“유진우여, 유진우. 하 총독이 네 뒤를 받쳐 준들 어떠하리. 노장군이 네 뒷배면 또 어떠하리. 너는 결국 조선미를 구할 수도 없고 이 상황을 바꿀 수도 없거늘. 너는 영원히 우리 발밑에 밟힐 운명인 거야!”조윤지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냉소를 지었다.그녀는 유진우가 약간의 힘이 있다는 것은 인정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큰 파동은 일으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남궁을용, 당신들은 모두 권위가 있는 인물들인데 어찌 사람들 앞에서 내 손
“우리 집을 부수겠다고? 당신이 그럴 재주나 있고?”선우정호는 코웃음을 쳤다. “남궁을용, 사람을 좀 데리고 왔다고 내 구역에서 행패를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당신 세력도 강하지만, 우리 선우 가문의 명성도 헛된 게 아니거든! 누구든 이 선우 가문에서 건방지게 굴면 나도 가만있지는 않을 거요!”“가만있지 않겠다고? 자자자, 그럼 어디 한번 누구의 주먹이 더 센지 겨뤄보자고!”남궁을용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싸울 태세를 했다.억지를 부리느니 차라리 통쾌하게 겨루는 게 낫다.“지금 싸우겠다는 거지? 그래, 당신과 싸울 사람을 불러주지!”선우정호는 갑자기 언성을 높여 외쳤다. “독고영재, 이제 네가 손을 쓸 차례다!”“하하하하하...”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둥 같은 웃음소리가 갑자기 터져 나왔다.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귀청을 찢으며 들려왔다. 일반인들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귀를 막았다.웃음소리와 동시에 붉은 그림자가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오며 연회장 한가운데를 폭탄처럼 세게 내리쳤다.쾅!굉음이 들려왔다.자갈이 튀고 연기와 먼지가 사방으로 흩어졌다.거대한 광풍이 낙하지점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휘몰아쳐서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휘날리며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다.광풍이 지나간 후, 붉은 가운을 입고 구레나룻이 희끗희끗한 중년 남자가 당당하게 걸어 나왔다.남자는 몸집이 크고 눈빛이 날카로워 마치 불덩이가 불타는 듯한 뜨거운 기운를 몰고 다니며 주위의 온도까지 치솟게 했다.그가 옆을 지나면 사람들은 땀을 흘리고 호흡이 가빠지며 건조하고 더워했다.“독고영재다! 강남 5대 마스터 중 한 분이야!”남자의 얼굴이 밝혀지자 현장은 또다시 술렁였다.“뭐? 독고영재? 저자가 왜 여기 있는 거지?”“세상에! 선우 가문 백작부에 최고의 무도 마스터가 숨어 있을 줄이야!”“독고영재가 왔으니 오늘의 싸움은 남궁을용 장군님이라도 쉽게 끝나지 않겠어.”“...”독고영재의 등장은 많은 사람들의 의론을 불러일으켰다.강남의 5대 마스터는 모두 최고의 무도인으
독고영재가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병법과 무도는 뗄레야 뗄 수 없는데 당신의 술법이 더 뛰어난지 아니면 제 무도의 조예가 더 깊은지 궁금하군요.”이 말이 나오자 장내가 또 한바탕 술렁였다.이것은 노골적인 도발이다.둘의 분야는 다르다. 군사 배치를 겨루면 당연히 남궁을용이 완승할 것이다.하지만 무도를 놓고 보면 강남 전역에서도 독고영재를 대적할 사람은 몇이 안 된다.문제는 저자가 저렇게까지 도발을 했는데도 남궁을용이 거부한다면 명성에 큰 손상을 입을 것이다.“독고영재, 노장군님에게 도전하기에 너는 아직 자격이 부족하다. 내가 상대해 주마!”그때, 갑자기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소리를 따라 보니 붉은색 옷을 입고 은빛 단발머리의 절색 여인이 활보해 들어오고 있었다.여자는 삼척 청봉검을 들고 있었는데 그의 기운은 싸늘했고 눈빛은 덤덤하며 미간에는 용맹함이 서려 있었다.위풍당당하고 늠름해 보였다.“세상에! 조홍연이다! 홍연 여제님이 오셨어!”“어머나! 제가 잘못 본 건 아니죠? 용국 최강의 여제님까지? 오늘 정말 무슨 일이죠?”“신선 싸움! 정말 신선 싸움이 따로 없구나!”검을 들고 들어오는 조홍연을 보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또 한바탕 떠들썩했다.이 사람들은 모두 용국의 정상에 서 있는 거물들이다.평소에는 그들 중 한 분이라도 만나 뵈면 아주 큰 영광이다. 그런데 오늘은 갑자기 이렇게 많은 놀라운 존재들이 등장했다니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다.“또?”조윤지는 목이 메도록 놀라 얼른 선우희재의 등 뒤로 숨었다.지난번 조씨 가문에서 조홍연이 조일명을 단칼에 살해하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 이미 조윤지의 마음에 트라우마로 남았다.지금 이 전쟁의 여제를 다시 보니 조윤지는 더욱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설마 조홍연도 유진우 때문에 온 건가?”조군해 쪽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얼굴이 창백해졌다.지난번에 조홍연이 조씨 가문에 나타났을 때 그들은 단지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가 또다시 나타났으니 유진우와
“뭐? 전쟁의 신 조무진이라고? 그럴 리가! ”“세상에나! 전쟁 여제인 조홍연 뒤로 또 무극의 전쟁의 신이 나타나다니! 조씨 가문의 두 남매가 연이어 나타났어! 어떻게 된 일이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누가 조씨 남매를 움직이게 했던 거지?”조무진이 나타남으로 인해 본래 떠들썩했던 현장의 열기가 더욱 뜨거워졌다.전쟁의 신 조무진의 명성은 전쟁 여제 조홍연보다 못지않았고 심지어 한 수 위였다.조홍연의 무공과 관직은 모두 그녀가 직접 피바다에서 용맹하게 싸워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면서 얻어낸 것이다.따져보면 전쟁터에서 조홍연의 무도 수행이 훌륭했기 때문에 그녀가 두려워하지 않고 감히 싸울 수 있었던 것이다.조무진은 그 반대로 무도 수행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주요하게 지혜로 승리를 거두었다.입군 한 이후로 조무진은 수십 번의 싸움에 참여했고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거의 모든 전투는 적은 병사들로 수많은 적과 싸워 이겼고 상대방보다 실력이 약한 병사들을 이끌고 막강한 적을 제압해버렸다.조무진은 지혜로운 두뇌로 병사들을 이끌었고 그 지휘 능력이 매우 훌륭했다.조홍연은 뛰어난 싸움 실력으로 전쟁터에서 이겼다면 조무진은 지혜로운 두뇌로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조씨 가문의 두 남매는 훌륭한 싸움 실력과 지혜로운 계략으로 유명하여 조씨 가문의 쌍둥이 별이라 불리웠다. 두 남매가 군사방면에서 조예가 매우 깊어 용국 전체를 통틀어도 그들을 따라올 수 있는 존재가 없었다.“망했어. 전쟁의 신 조무진까지 오다니! 세상에나!”조윤지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얼굴에 땀이 흠뻑 젖어있었다.전쟁 여제 조홍연도 상대하기 힘든 데다가 지금 전쟁의 신 조무진까지 나타났으니 엎친 데 덮친 격이다.선우 가문이라 할지라도 당해내기 어려울 것이다.“어떻게 이럴수 있지? 조씨 가문의 실력이 너무 막강해!”조군해 일행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다리까지 후들후들 떨렸다.선우 가문이 만약 압박에 이기지 못하게 되면 그 책임을 전부 조씨 가문에게 미룰 것이 뻔했
조홍연은 진정한 나라의 샛별이자 미래의 권력을 짊어질 큰큰 인물이었다.독고영재는 일개 무인일 뿐 감히 조홍연과 같은 존재를 건드리지 못했다.싸워서 일길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을지라도 감히 싸우지 못했다.“왜 말이 없죠? 당신 방금 자신감에 가득 차지 않았어요? 그렇게 능력 있다면 나랑 한판 붙어 봐요!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겨뤄보자고요!”조홍연은 냉랭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상대방을 도발했다.순간 모두의 시선이 독고영재에게로 집중되었다.현재 독고영재는 매우 난감했다. 패배를 인정하면 명성이 훼손될 것이고 그렇다고 이 싸움에서 이기게 되면 더 큰 골칫거리가 생길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진무사의 배후에 있는 사람들을 건드려 블랙리스트에 오를지도 모르는 일이다.“홍연 조카, 나도 당신 아버지와 친분이 있어. 조카가 사람을 데리고 우리 집에 와서 소란을 피우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해?”선우정호는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우리 아버지와 친분이 있지 나랑 뭔 상관이죠?”조홍연은 개의치 않게 말했다.“너!”선우정호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선우정호가 백작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후배가 거만한 태도로 행동하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체면이 완전히 구겨진 셈이다.“자! 자! 모두 진정하세요.”조무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백작 대인, 저희가 오늘 찾아온 이유는 소란을 피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의를 위해서 달려온 바입니다. 당신들이 체포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체포했거든요.”“앞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싶지 않으시다면 사람을 풀어주는 것이 좋을 겁니다. 모두에게 손해 볼 것 없는 일이죠.”“무극조카, 뭔가 오해하고 있는 거 아닌가? 우리 선우 가문은 줄곧 화목을 귀중히 여기는 가문으로 함부로 사형을 실행하지 않아. 게다가 오늘 저의 손자 약혼 날인데 내가 어떻게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있겠어?”선우정호는 인정하지 않았다.“백작 대인, 저에게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재미없죠. 당신 선우 가문이 어떤 일을 벌이셨는지 뻔히 알고 계시면서... 일이 더 커지기
쾅!고위 관직 귀족들이 연이어 들어왔고 현장이 발칵 뒤집혔다.여러 외침 소리가 쩌렁쩌렁 끊임없이 들려왔다.병부상서, 황성군 통령, 덕의 장남... 그리고 연경에서 오신 많은 고관 귀족들이 많이 걸어왔다.수많은 위풍당당한 큰 인물들이 모두 줄지어서 들어오고 있었다.기세가 너무 높아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그중에서 아무나 한 사람을 잡아 와도 도시 하나를 주름 집을 수 있는 큰 인물일 것이다. 맨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는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현장에 있던 하객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모두 아연실색하고 얼굴에는 놀라움으로 가득했다.평소에 이런 큰 인물 중 한 명을 만나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우르르 몰려들어 끊임없이 현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꿈에나 나올법한 장면이라 모든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하하... 호 대인, 장 장군, 손 도련님! 드디어 오셨군요!”귀한 손님들이 오시는 것을 보고 선우정호는 웃음 지으면서 급히 사람들을 거느리고 앞으로 마중 나갔다.병부상서 호인국.황성군 통령 장윤혁.덕의후의 장남 손강호.이들은 모두 연경에서 지도층 인물들이었다. 신분이나 지위 그리고 권력상으로 보았을 때 조씨 가문의 쌍둥이의 별보다 못지않았다.특히 병부상서의 리더인 호인국은 용국에서 최고 권력의 소유자로서 그 위세가 매우 높아 관직 가문에서도 그에게 어느 정도 체면을 세워주어야 했다.이런 큰 인물들이 나선다면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아무도 다치지 않을 것이다.“백작 대인, 오랜만이네요. 몸은 건강하죠?”호인국은 웃으면서 인사했다.“건강하고말고. 이 늙은 몸이 아마 몇 년은 더 버틸 수 있을 거야.”선우정호는 웃으면서 이내 고개를 돌려 아들에게 소리쳤다.“희재야, 뭘 멍하니 있어? 빨리 와서 손 대인께 인사하지 않고!”“스승님을 뵙습니다.”선우희재가 앞으로 다가가더니 공손한 태도로 호인국을 향해 허리를 굽히면서 인사했다.그 장면을 본 현장의 사람들은 갑자기 떠들썩했다.선우희재의
그래야만 지금 앉아 있는 이 자리라도 지킬 수 있다.지금 왕위를 이어받을 자격과 능력을 갖춘 사람은 표기 대장군 유태범밖에 없었다.첫째로 유태범은 유씨 가문 사람이라 왕족에 속했기에 명분이 정당했다. 둘째로 표기 대장군으로서 서경의 절반에 달하는 군대를 거느리고 있어 권력이 하늘을 찔렀다. 셋째로 유태범은 오랜 시간 동안 힘을 키워왔다. 인맥, 위신, 공로 모두 왕위에 오르기에 충분했다.현재 유태범이 모든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적지 않은 관원들은 애도를 표한 후 바로 대장군 저택으로 가서 유태범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었다.이러한 움직임은 당연히 서경왕부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의진은 그들을 제압할 힘이 없었다.“어머니, 벌써 종일 여기 계셨어요. 들어가서 쉬세요. 이러다가 몸이 상하실까 걱정됩니다.”수심과 피곤이 가득한 어머니의 얼굴을 본 유천우가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는데 내가 어찌 편히 쉴 수 있겠어.”이의진이 고개를 내저었다.“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까 더 조심해야죠. 서경왕부가 흔들리고 있는 지금 왕비인 어머니가 버티셔야 합니다. 절대 쓰러져선 안 돼요.”유천우가 진지하게 말했다.“하지만...”이의진은 뭐라 더 얘기하고 싶었지만 유천우가 가로챘다.“어머니, 이번에는 제 말을 들어주세요. 먼저 들어가서 쉬고 내일 아침에 다시 아버지 곁을 지켜도 괜찮아요.”이의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유천우는 도우미 두 명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너희 둘, 어머니를 방으로 모시고 잘 보살펴드려.”“알겠습니다.”두 도우미는 대답한 후 이의진을 부축했다. 무릎을 하도 오랜 시간 꿇고 있어 다리가 저린 나머지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천우야, 너도 몸 잘 챙겨. 절대 방심해선 안 돼.”이의진이 당부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유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나가는 걸 본 후에야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렸다.“다들 돌아가. 여긴 나 혼자 지키면
그 시각 서경왕부 문 앞.유태범 등 3인은 한 무리의 근위병들을 이끌고 서둘러 걸어 나왔다.서경왕부를 떠난 후 조군영이 참다못해 물었다.“대장군님, 이의진 모자가 주제도 모르고 저렇게 날뛰는데 계속 가만히 내버려 둬야 합니까?”“당연히 내버려 둘 순 없지. 하지만 너무 대놓고 움직여서도 안 돼. 흑용군의 대부분 고급 장교들이 서경왕부에 충성해서 정말 싸우기라도 한다면 우리한테 좋을 게 없어.”유태범이 실눈을 뜨고 말했다.“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조군영이 또 물었다.“대놓고 움직일 수 없다면 몰래 압력을 가해야지.”유태범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서경에 내란이 일어서 서경왕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진정한 리더가 누구인지 알게 될 거야.”“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서 이간질시킬게요. 백성들의 원한이 커져서 서경왕부도 감당이 안 될 때 대장군님이 구세주처럼 등장하는 겁니다. 그때가 되면 서경의 백성들은 대장군님께 고마워할 것이고 새로운 서경왕으로 모시겠죠.”눈치가 참 빠른 조군영이었다.“맞아. 아주 영특하구나, 너. 나중에 내가 서경왕 자리에 앉으면 표기 대장군 자리는 네 것이 될 거야.”유태범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 대장군님.”조군영은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얼른 움직여. 빠를수록 좋아. 절대 그 어떤 흔적도 남겨선 안 된다는 거 명심해.”유태범이 신신당부했다.“알겠습니다. 제가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조군영은 인사를 올린 후 자리를 떠났다.“대장군님, 일반적인 내란이라면 서경왕부의 뿌리를 흔드는 건 불가능할 거예요. 반드시 강력한 무언가가 있어야 해요.”고원이 귀띔했다.“그건 나도 알고 있어.”유태범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동안 난 내 사람을 몰래 키워왔어. 8대 제후 중에 절반이 내 사람이야. 내 명령 한마디면 주저하지 않고 날 도와줄 거야.”“진작 준비하고 계셨군요.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고원이 웃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서경왕이 되면 절대 섭섭지 않게 해줄게.”
“유태범은 오랫동안 야심을 숨겨왔어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으니 이 기회에 무조건 권력을 빼앗으려고 할 겁니다. 이 일 아직 끝나려면 멀었어요.”유천우가 수심에 찬 얼굴로 말했다.“맞아. 대놓고 움직이진 못해도 뒤에서 온갖 수단을 동원할 거야. 앞으로 적지 않은 문제가 생길 게 분명해.”이의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위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절대 함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형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유천우가 한탄하듯 말했다.“천우야, 네 능력도 네 형 못지않아. 네 형이 할 수 있는 일은 너도 할 수 있을 거라 믿어.”이의진이 그를 격려했다.“어머니, 제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어요. 형님에 비하면 한참 부족합니다.”유천우가 고개를 내저었다.“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지 마.”이의진이 엄격한 얼굴로 말했다.“네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어. 장례식이 끝난 후에 폐하께 말씀드려서 너한테 왕위를 물려주게 할 거야. 앞으로 서경왕은 너고 그 중책을 맡아야 해.”“어머니, 왕위는 형 거예요. 전 그 자리를 물려받을 생각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서경왕은 형만이 물려받을 자격이 있다고요.”유천우가 진지하게 말했다.“천우야, 다른 일은 남한테 양보해도 이건 절대 안 돼!”이의진이 어두운 목소리로 호통쳤다.“그 자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꿈에 그리는 자리인지 알아? 놓치면 평생을 후회할 거라고!”“전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요. 저한테 있어서 권력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아버지처럼 매일 애쓰고 힘들게 사는 것보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유천우가 고개를 내저었다.‘왕이 되면 좋을 게 뭐가 있다고. 걱정거리만 태산일 텐데. 그럴 바엔 맨날 먹고 놀면서 편히 살겠어. 그게 더 좋은 거 아닌가?’“이 녀석아, 일이 네 생각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전에 자유롭게 살 수 있었던 건 다 네 아버지가 있어서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금 아무 권력도 손에 쥐지 않는다면 나중에 아주 처참한 결말을 맞이할 거란
“유장혁?”그 소리에 주변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한때 유씨 가문의 천재는 이름을 널리 떨쳤었다. 그런데 10년 전 자금성의 난이 터진 후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고 현재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런 그의 이름을 갑자기 들으니 놀랄 만도 했다.“도련님,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세자 전하의 생사도 불투명한 데다가 어디 있는지도 아무도 몰라요. 그런 분한테 서경왕의 자리를 맡긴다는 건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 아닌가요?”조군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두 손까지 펼쳐 보였다.“그러게요, 도련님. 제발 현실을 잘 알고 말씀하세요. 세자 전하께 기댈 바엔 차라리 대장군님께 기대는 게 더 낫죠.”고원도 나서서 맞장구를 쳤다.유천우가 자기 자신을 얘기할 줄 알았는데 실종된 지 10년이나 된 사람을 얘기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정말 이보다 더 터무니없는 얘기는 없었다.“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형도 꼭 돌아올 겁니다. 그때 가서 형이 왕위를 이어받아도 문제없죠.”유천우가 싸늘하게 말했다.“도련님, 제가 하는 말이 거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만약 세자 전하께서 이미 돌아가셨으면 어떡해요? 서경왕의 자리를 계속 비워둘 작정인가요?”조군영이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형님 죽지 않았고 멀쩡하게 살아있어요. 그러니까 조 장군님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유천우가 말했다.“살아있다면 지금 어디 계시는 거죠? 왜 나타나지 않는 겁니까?”조군영은 일부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형님한테 소식을 전했으니 꼭 올 겁니다.”유천우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설마 지금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는 건 아니죠?”조군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위왕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퍼지면 서경 전체가 크게 흔들릴 거예요. 기다릴 시간이 많지 않다고요. 지금 당장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맞아요, 도련님. 대국을 생각하셔야죠!”고원도 나서서 유천우를 설득했다.“형한테 자리를 물려주는 건 아버지의 유언이에요. 지금 명령을 거역하겠단 겁니까?”
사람들이 뒤돌아보니 거친 삼베옷을 입고 상복 모자를 쓴 젊은 남자가 차가운 얼굴로 걸어오고 있었다.남자는 위엄이 넘쳤고 온몸에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오랜 시간 전장을 누빈 조군영과 고원마저도 그를 보자마자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표정이 진지해졌다.그 남자는 다름 아닌 유만수의 작은 아들 유천우였다.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유천우는 온 집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하여 예전에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도 많이 저질렀었고 서경의 사고뭉치라 불리기도 했다.그런데 최근 2년 동안 유천우는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변한 듯 더는 빈둥빈둥 놀지 않고 군에 들어가 열심히 살기 시작했다.처음에 사람들은 유천우가 군대에서 3일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산 도련님이 군대의 혹독한 훈련을 버틴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그런데 뜻밖에도 유천우는 군대에서 자리를 잡았고 공까지 세웠다.짧은 2년 사이에 병사에서 흑용군의 부장으로 성장했다. 든든한 배경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무척이나 놀라운 성과였다.사람들은 그제야 유천우가 응석받이로 자란 도련님이 아니라 군사 천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천우야, 드디어 온 거야?”아들을 보자마자 이의진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겨우 가라앉았던 슬픔이 다시 저도 모르게 밀려왔다.“어머니, 소식 다 들었어요. 제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유천우는 어머니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군영과 고원에게 시선을 옮겼다.“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이렇게 몰아붙이는 겁니까?”“그게...”조군영은 고원의 눈치를 슬쩍 봤다가 어쩔 수 없이 말했다.“도련님, 오해하지 마세요. 저희도 대국을 위해서 이러는 겁니다. 현재 서경왕부에 리더가 없어서 누군가 나서서 이끌어가야 합니다. 안 그러면 많은 문제가 생길 거예요.”“맞아요, 도련님. 대국을 생각하셔야죠.”고원은 충성을 다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대국?”유천우는 코웃음을 치고는 더는 두 사람을 거들떠보지 않
“서경 대원수의 직위는 매우 중요합니다. 내부 투표를 거칠 뿐만 아니라 폐하께 보고하여 최종적으로는 폐하의 결정을 받아야 해요. 우리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어요.” 이의진의 눈빛이 경계로 가득했다.유태범이 왔을 때 그녀는 처음에는 형제 간의 정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조군영과 고원의 몇 마디 말에 그녀는 갑자기 깨달았다. 일이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유태범은 흑용군에서 유만수 다음가는 위망을 가지고 있었다.표기대장군으로서 그는 많은 심복 장수들을 거느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절반의 병권도 장악하고 있었다.왕이 세상을 떠난 후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은 유태범이 분명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유태범이 지금 이미 자신의 야심을 드러냈다는 점이다.왕이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권력을 탈취하려 하다니, 그녀는 그의 불순한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심지어 유만수의 죽음이 이 자들과 호룡각 잔당들이 암묵적으로 결탁한 결과일지도 모른다!만약 유태범이 병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무시무시할 것이다.“마마, 급할 때는 권력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이런 상황에서 어찌 폐하의 결정을 기다릴 시간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반드시 빨리 국면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조군영이 계속해서 말했다.“맞습니다!”고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장수가 밖에 있으면 군령도 받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폐하는 상황을 전혀 모르니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반드시 우리가 스스로 결정해야 하며 그래야만 소인배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폐하에게 보고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내부 투표를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만 모두가 승복할 수 있어요.” 이의진이 다시 말했다.“투표라니요? 이게 투표할 일입니까? 전 서경을 둘러봐도 대장군님보다 원수 자리에 더 적합한 분이 누가 있습니까?” 조군영이 말했다.“그렇습니다, 왕비마마! 공적으로 보나, 위망으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무공으로 보나 어르신을 제외하고는
고원이 갑자기 큰 소리로 외치며 바로 땅에 무릎을 꿇고 세 번 크게 머리를 조아렸다.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고 가까운 사람을 잃은 듯한 모습이었다.비록 똑같이 연기였지만 조군영보다는 훨씬 진실되어 보였다.“표기대장군 도착하셨습니다!”이때 문밖에서 우렁찬 외침이 울렸다.곧이어 금빛 갑옷을 입고 기상이 비범한 중년 남자가 급하게 걸어 들어왔다.이 사람이 바로 일품 표기대장군 유태범이었다!유태범은 표기대장군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유만수의 사촌 동생이기도 했다.유태범은 어릴 때부터 문무를 겸비하고 천부적 재능이 있어 모든 면에서 매우 뛰어났다.만약 유만수가 없었다면 분명 유씨 가문의 가장 빛나는 천재였을 것이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유만수라는 세상에 둘도 없는 영웅 앞에서는 아무리 대단한 천재라도 빛이 바랠 수밖에 없었다.“대장군께 인사드립니다!”유태범을 보자 조군영과 고원은 즉시 가식적인 표정을 거두고 공손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그들 둘은 모두 유태범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진정한 측근 장수들이었다.마치 유만수와 석태혁의 관계처럼 영광도 함께 하고 손실도 함께했다.“형님!”유태범은 두 심복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영당에 들어서자마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 무릎을 꿇었다.그의 두 눈은 붉게 충혈되었고 입술은 떨리며 얼굴에는 비통함과 분노의 빛이 어려 있었다.“어찌 이럴 수가? 우리 형님이 어찌 돌아가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도대체 누가 한 짓입니까?!”유태범이 붉은 눈으로 연달아 분노의 외침을 터뜨렸다.“호룡각의 잔당들입니다. 그들이 자객을 부내에 잠입시켜 어젯밤 어르신을 암살했습니다.” 이의진의 얼굴이 흐리멍덩했다.“호룡각?”유태범이 이를 갈며 분노에 차 있다가 즉시 고함쳤다. “누구 없느냐! 즉시 군대를 집결시켜 전 성을 수색하라. 반드시 범인을 체포해야 한다!”“잠깐만요!”이의진이 갑자기 나서서 제지했다.“태범 씨, 매우 비통한 것을 알지만 지금은 아직 일을 크게 만들 수 없습니다.”“형님이 이미 돌아가셨는데 무
이 말이 나오자 조군영과 고원의 안색이 순간 변했다.두 사람이 오늘 온 것은 본래 기세를 과시하려는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이의진이 이렇게 강경한 태도를 보일 줄은 몰랐다.입을 열자마자 반역이라는 죄명을 들이대다니.이런 죄가 뒤집어씌워진다면 그들은 아마 왕부의 대문을 살아서 나가지 못할 것이다.“마마, 농담 마십시오. 반역은 사형감입니다. 저희가 아무리 대범하다 해도 그런 일은 감히 못 하지요!” 고원이 연달아 해명했다.“맞습니다. 저희는 왕께 항상 충성을 다해왔는데 어찌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조군영도 따라서 부인했다.비록 두 사람 모두 그런 야심이 조금은 있었지만 명백히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적어도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반역할 생각이 없다면 어째서 갑옷을 입고 부내에 들어오시는 것입니까? 규칙도 모르십니까?” 이의진이 조금도 봐주지 않고 꾸짖었다.그저 이품 장군일 뿐인데 군권이 조금 있다고 감히 왕부 안에서 눈깔을 찌푸리고 있다니.유만수가 살아있을 때 이 둘은 감히 이러지 못했다.“아이고! 제 정신 좀 보세요, 왕부의 규칙을 잊었네요. 마마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조군영이 헛웃음을 지었다.이어서 갑옷을 벗고 차고 있던 칼을 내려 왕부의 경비에게 건넸다.“저희가 급히 오느라 깊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의도치 않은 행동이었으니 개의치마시지요.” 고원이 웃으며 말했고 즉시 갑옷과 칼을 벗었다.이 광경을 보고 이의진의 안색이 비로소 조금 누그러졌지만 어조는 여전히 차가웠다. “갑자기 찾아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왕께서 자객의 습격을 받아 위험한 상황이라는 소식을 듣고 저희 둘이 특별히 문안드리러 왔습니다.”고원이 가식적으로 말했다.“소식통이 꽤나 빠르군요.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이의진이 차갑게 말했다.“늦었다니요? 무슨 뜻입니까?” 두 사람이 의아한 척했다.이의진은 설명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고 몸을 돌려 영당으로 향했다.왕부 밖은 비록 동정이 없었지만 왕부 안에는 이미 흰 만장이 가득
“알겠습니다. 제가 경비병 신분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들어가시기 전에 먼저 변장을 하셔야 합니다.” 손도운이 결국 타협했다.비록 위험이 있긴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정오 무렵, 서경 왕부 안.비록 유만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봉쇄되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관리들이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어떤 이들은 비통한 마음으로 조문을 왔고 또 어떤 이들은 다른 목적을 품고 있었다.“보국대장군 도착!”“운미대장군 도착!”왕부 문 앞에서 두 번의 외침이 들렸다.곧이어 갑옷을 입은 체격이 우람한 중년 남자 둘이 각각 친병들을 대동하고 걸어 들어왔다.이 친병들은 모두 허리에 장도를 차고 있었고 보기에도 험상궂었다.온 이들은 바로 이품 관직인 보국대장군 조군영과 운미대장군 고원이었다.“두 분, 왕부에 들어오시기 전에는 반드시 갑옷과 무기를 해제하셔야 합니다.”한 왕부 친위가 조군영과 고원을 막아서며 동시에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흥! 난 밖에 나올 때 갑옷을 벗지 않아. 꺼져!” 조군영이 노하여 꾸짖었다.“조 장군, 이건 왕부의 규칙입니다. 따라주시기 바랍니다.”왕부 친위가 말했다.“규칙? 나한테 감히 규칙을 운운한 건가?”조군영이 왕부 친위의 얼굴을 때리며 소리쳤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감히 규칙을 들먹이며 나를 압박하느냐? 죽고 싶나?”“조 장군, 소인도 명령을 받들어 행하는 것뿐입니다.” 왕부 친위는 동요하지 않았다.“헛소리 작작 하고 비켜. 그렇지 않으면 네 목을 벨 것이다!”조군영이 갑자기 칼을 뽑아 왕부 친위의 목에 겨누었고 그의 모습은 매우 포악하고 극도로 횡포했다.“제 머리를 베신다 해도 규칙은 지켜야 합니다.” 왕부 친위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이 개자식! 관짝을 보기 전에는 정신을 못 차리겠구나!”조군영은 마침내 화를 내며 칼을 거세게 들어 왕부 친위의 팔을 향해 내리쳤다.“멈추세요!”이때 한 소리의 여성의 호통이 울렸다.삼베 흰옷을 입은 이의진이 석태혁 일행을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