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향해 걸어오는 한시혁을 보고 유연서는 눈을 크게 떴고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쳤다. 그리고 부주의로 의자에서 떨어져 몹시 낭패한 자세로 바닥에 쓰러졌다.한시혁은 웃으며 쪼그려 앉아 손을 뻗어 그녀의 긴 머리를 움켜쥐고 뒤로 잡아당겼다.유연서는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들었고 커다란 두 눈은 그 앞에 있는 무서운 남자를 응시했다.다음 순간 남자의 큰 손바닥이 그녀의 얼굴에 휙 날아갔다.“아!”유연서는 큰 소리로 외쳤다. 순간 머리가 어지러워지더니 뜨거운 피가 머리 위로 솟구치는 것 같았고 입에서 피비린내가 확 퍼졌다.유연서의 빨갛게 부어오른 한쪽 뺨에 한시혁의 화는 풀리지 않았고 그윽한 눈동자에는 오히려 흥분이 가득했다.그는 다시 손을 들어 손바닥을 내리쳤다.유연서의 처량하기 그지없는 비명은 무려 30분이 지나서야 멈췄다.맑은 전화 벨소리에 한시혁은 정신을 차리고 손에 든 여인도 놓아주었다.이때 유연서는 이미 한시혁한테 맞아 볼품없었다. 그녀 눈 안의 빛은 사라지고 온몸도 상처투성이였다. 그러나 호한의 눈에는 가엾은 기색이 전혀 없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전화 저편에서 매우 초조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네가 경찰서에 들어간 사진 지금 검색 1위에 올랐어! 빨리 봐봐!”그 말에 한시혁은 급히 앱을 열었고 관련 링크를 한눈에 보았다.링크를 열자 눈에 들어온 사진 몇 장이 그가 파출소로 들어가는 과정을 거의 다 담고 있었다. 심지어 그 안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힘들어하는 모습까지 찍혀졌다. 이는 사진을 보는 이들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겼다.“지금 빨리 수습해야 하는 게 먼저가 아닌가, 나한테 이딴 걸 보아라고 알려주는 게 아니라.”이미 오랫동안 한시혁 곁을 따라다녔기에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10분 내에 처리할게!”그리고는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이때 이진도 마침 이 기사를 보았다.사진을 찍은 사람은 정말 포인트를 잘 잡아냈다. 각도도 까칠하고 하여 모두 한시혁의 흐려진 얼굴표정을 잘 포착하였다.이때 윤이건이 들
“됐고 이 일은 이대로 진행할 거니 그렇게 다들 알아요.”윤이건은 결국 귀찮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근데…….”윤이건은 손을 들어 그 사람들의 하려는 말을 끊었고 차가운 눈동자가 여러 이사들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아직 두 달이나 남았으니 남들 걱정하기 전에 축사나 한 번 더 체크하세요. 아니면 망신은 누가할 지 모르니까!”윤이건이 그렇게 말한 이상 또 다른 의견이 있다면 그건 윤이건과 공공연히 대립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사회가 끝날 때까지 그들은 이진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때 식당에서 이진은 YS그룹 기념일에 오프닝 주연을 맡기로 한 사실을 친한 친구 정희에게 알렸다.커피를 딱 한 모금 들이키던 정희는 깜짝 놀라서 하마터면 맞은편 이진의 얼굴에 커피를 뿌릴 뻔했다.그러고 불행히도 그 커피에 목이 메었다.정희는 진정이 되고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너 요즘 너무 한가한 거 아니야, 할 일 없어? 그러면 나랑 같이 클럽 가서 춤 추든가.”정희가 놀리는 것을 알고 이진은 입꼬리를 올리고 같이 농담을 건넸다.“정말 클럽 가려고?”“응응!”여자는 병아리가 쌀을 쪼듯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이진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뒤를 바라보았다.“시우 씨가 뒤에 있는데, 너 다시 생각하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니야?”정희는 깜짝 놀라 당황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이진이 그녀를 희롱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부끄러움과 분노를 금치 못했고 두 뺨도 빨리 붉어졌다.“갑자기 민시우는 왜 꺼내는데!”정희의 이런 모습을 보고 이진은 마음 속으로 뭔가를 알아차리고 더는 정희를 놀리지 않고 용건을 말했다.“오프닝 나랑 같이 나가지 않을래?”그 말에 정희는 갑자기 흥미를 보였다.“좋아, 내 최상의 발레 실력을 누구한테 보여줘야 하나 고민했는데 잘 됐네!”이진이 그녀의 말에 웃어버렸다.“됐거든요!”이진은 잠시 눈썹을 여미며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말했다.“네가 발레 하면 내가 반주 해줄게. 내가 피아노 좀 알거든, 반주하는 거는 아무 문제없을 거
“안 돼.”윤이건은 생각지도 않고 거절했다.그의 낮은 목소리에는 어길 수 없는 단호함 배어 있었다.“여자들은 찬 거 너무 많이 마시면 안 돼, 위가 상해.”“그리고 아직 쌀쌀해, 조금 덥다고 해서 찬물을 막 마시고 그러면 병 나.”윤이건은 손을 들어 이진의 머리를 가볍게 문지르며 말했다.“말 잘 들어야지, 따뜻한 게 건강에도 좋아, 그러니까 따뜻한 물 마시자.”이진은 약간 화내며 똥그란 두 눈을 뜨고 남자의 얼굴을 노려보았다.“그건 너무 오바예요, 책에는 가끔 얼음물을 마시면 체력이 단련된다고 했어요. 나 그리 허약한 거 아니예요!”이때 집안의 두 사람은 얼음물을 마실 수 있는지 없는지를 놓고 다투고 있었지만 정희와 민시우 두 사람은 정원을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훈훈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민시우는 문득 그녀들이 방금 집안에서 리허설을 하고 있었던 일을 물었다.“이진 씨 피아노 실력에 대해서는 크게 놀라지 않았어요, 뭐든 다 잘하는 여자라 윤이건 곁에 있으면서 이미 익숙해졌거든요, 근데 정희 씨가 발레를 잘하는 거 저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요!”그가 알고 있는 정희는 털털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의 소녀로 오늘 그가 직접 보지 않았다면 발레리나로서의 ‘숙녀성’ 과 전혀 연결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민시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희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자신의 숨겨진 장점이 갑자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들킨 것에 정희의 작은 얼굴은 자신도 모르게 살짝 붉어지고 귀뿌리도 은근히 뜨거워졌다.수줍음을 감추기 위해 정희는 화난 척하며 옆 남자를 노려보았다.“만난지도 오래 됐는데 아직도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네요. 내 특기가 무엇인지도 모르다니!”그 말에 민시우는 급히 웃음을 짓고 용서를 빌었다.“그건 정희 씨가 이진 씨처럼 비밀이 많다고 생각해서 조금 신비감을 남기려고 하는 거죠!”정희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나 발레한지 오래 되었어요, 예전에 발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적도 있었고요!”이 말을
유연서의 애원에도 윤이건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이 여자 목소리만 들어도 그날 커피숍에서 이진이가 하마터면 한시혁에게 납치될 뻔한 사건이 생각나는데 하물며 직접 대면하다니, 정말 꼴도 보기 싫다.만약 그가 경찰을 데리고 제때에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이진은 지금쯤 행방불명되었을지도 모르고 심지어 한시혁의 부하들 밑에서 비인간적인 괴롭힘을 당했을지도 모른다.이 모든 것은 유연서와 한시혁의 계획적인 음모 때문이다!전화 속 여인의 목소리는 여전히 그의 귓전을 감싸고 있었지만윤이건의 얼굴빛은 점점 어두워졌다.다음 순간 그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윤이건 앞에 다가간 이진은 그의 안색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바로 물었다.“누구 전화예요? 왜 얼굴빛이 어둡죠?”이진의 걱정스러운 눈빛에 윤이건은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야.”이때 한시혁 저택.넓은 객실에서 유연서는 또 한 번 심하게 땅에 넘어졌다.유연서는 도망치지 않고 눈만 꼭 감았다. 그렇게 하면 몸 구석구석에서 오는 극심한 통증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을 것 같았다.이미 광기 상태에 빠진 한시혁은 그녀가 저항을 포기하는 모습에 눈이 찔려 힘찬 긴 팔을 뻗어 그녀의 옷을 잡아당기며 찢기 시작했다.30분도 안 돼 유연서의 옷은 모두 갈기갈기 찢어졌다.유연서는 옷을 입지 않은 채 바닥에 누워서 그 날카로운 특질의 가죽 채찍이 그녀의 부드러운 살갗을 후려갈기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녀의 살갗은 찢어지고 흐려졌다.그녀는 이미 몇 번이나 비명을 질렀는지 모른다. 목소리는 점점 낮아지고 이제는 더 지르고 싶어도 지를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목구멍에 걸려 몇 번이나 실신했다.지금의 유연서는 숨질 일보직전이다. 계속 때리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한시혁은 그제서야 만족한 듯 손을 멈추었다. 멈추기 전 유연서에게 또 한 발 내리쳤다. 여자의 몸에서 피가 천천히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한시혁은 입가에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그 웃음소리에는 짙은 비아냥거림이 가득했다.“윤이건이 구해준다고요? 근데
그룹 임직원 모두 주년 기념행사를 기대하고 있지만 그중 걱정이 가득한 분들도 있었다.바로 그룹의 이사들이다.이사회에서 이사들은 다시 한번 오프닝 공연의 문제를 제기했다.윤이건은 여전히 이진의 참여를 주장했고 이사들은 서로 쳐다보며 고개를 저으면서 탄식했다.회의실 안은 한동안 침묵에 빠졌다. 이때 한 이사가 소리를 냈다.“사모님이 정말 대표님 말대로 재주가 뛰어난 분이라도 오프닝 공연인데 혼자는 힘들지 않을 가요?” 그러면서 그는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 이사들에게 눈빛으로 시그널을 보냈다.이사들은 즉시 그의 뜻을 이해했고, 너도나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게요, 전문팀을 불러 분위기를 띄워야 하죠!”“저도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사모님이 공연을 망치더라도 전문팀의 도움이 있으니까 너무 창피하지는 않을 거예요.”결국 이진에 대해 믿음이 부족한 것이다.그러나 윤이건은 그들의 제안을 서슴없이 거절했다.그날 리허설에서 그는 이미 이진의 피아노 연주를 보았고 그녀가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할 자신도 있었다. 그가 보기에 전문팀 도움은 전혀 필요가 없었다.“제 부인 혼자만으로도 감당 가능합니다. ‘미스터리 게스트’ 딱 어울리는 타이틀인데요!”윤이건의 우렁찬 목소리이다. 그러나 옆에 앉은 왕 이사 귀에는 오히려 풍자와 도발적으로 들렸다.포스터에 오프닝 공연자를 '미스터리 게스트'로 적으라고 지시한 자가 바로 왕 이사이기 때문이다.왕 이사는 시큰둥하게 입을 삐죽거리며 마음속에 조용히 계획을 세웠다.이사회가 끝난 후, 왕 이사는 비서를 자기 앞으로 불러내고 당부하였다.“박윤설 제자의 연락처를 알아봐.”박윤설은 국제 피아노계의 내로라하는 거장이다. 지금은 나이가 많아 이제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없어 제자가 대신 공연하고 있다.박윤설이 제자는 세 차례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하였고 어린 나이에 벌써 수십 곡의 명곡을 독자적으로 작곡하였다. 피아노계에서의 성취는 그야말로 출중할 정도로 대가다웠다.왕 이사는 이진의 공연이 아무리
한 곡이 끝나자 무대 아래 왕 이사의 얼굴빛은 이미 흐려지고 마치 폭풍우에 휩싸인 것처럼 어두웠다.줄곧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사람도 그의 기분을 느끼고, 다정하게 한마디 물었다.“왕 이사님, 괜찮으세요?”그 사람은 왕 이사가 오프닝 퍼포먼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으로 착각하고 이진을 위해 한마디 했다.“왕 이사님, 제가 보기에 이번 오프닝 공연 아주 완벽한데요, 특히 그 피아노 치는 여자아이는 정말 대단합니다.”그 사람은 이진과 정희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이 말을 들은 왕 이사는 다소 달갑지 않았다.그는 냉소하며 일부러 말했다.“난 모르겠는데!”그리고 잠시 멈추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당신 박윤설 제자라며, 그러면 그런 기세 꺾는 말 하면 안 되지. 내가 비싼 돈 들여 초대한 건데 돈 들인만큼 저들 보다 더 좋은 공연을 보여줘야 해!” 제자는 이제서야 왕 이사님이 자신을 초대한 목적을 알게 되었다. 그 전이라면 자신만만했을 텐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다른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하겠지만 피아노계에 다년간 몸담았던 그녀는 무대 위의 그 여자와의 차이를 똑똑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이렇게 생각한 그녀는 차이를 인정하고 바로 왕 이사의 요구를 거절했다.“죄송합니다. 그건 힘들 것 같아요!”왕 이사는 언짢은 듯 눈을 가늘게 떴다.“뭐라고! 내가 얼마나 힘들게 초대했는데 할말이 고작 이건 가?”“전 아직 저만큼 칠 수 있는 실력이 되지 않습니다. 요구가 너무 가혹하네요!”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제자는 갑자기 화를 내고 말투도 무례해졌다.“왕 이사님, 잘못은 그쪽인 것 같은데요. 대표님 부인이시면 왕 이사님도 어떤 실력인지 잘 아시겠네요, 근데 알고도 저를 불렀다는 거는 일부러 저를 모욕하려는 건가요?”제자는 말하면서 일어섰다.“근데 초대한 덕분에 오늘 이런 멋진 공연도 보게 되었습니다. 전 지금 이진 씨 사인을 받으러 갈래요!”이 말을 마치고 제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왕 이사는 떠나는 제자의 뒷모습을 보며 분노하며 주먹을 불
시우는 화를 내는 정희를 보더니 덩달아 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아, 정희 씨. 이거 놓아주세요, 너무 아파요!”정희는 손에 전혀 힘을 주지 않았기에, 시우가 엄살을 부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우의 높아진 목소리를 들은 후 자기도 모르게 손을 놓아버렸다.정희는 화가 난 듯이 비꼬며 말했다.“장난도 적당히 치셔야죠!”시우는 이 말을 듣자 다소 불쾌해하며 반박했다.“정희 씨는 손이 이렇게 험하셔서, 시집 못 가시기라도 어떡해요?” 정희는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그럼 시우 씨는 왜 자꾸 절 괴롭히시는 거예요. 솔직히 말해 봐요, 저 좋아하죠? 시우 씨가 솔직히 말한다면, 저도 시우 씨랑 사귈지 말지 고민해 볼게요.”정희가 이 말을 마치자, 두 사람은 깜짝 놀라 제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한편 정희는 몰래 방금 꺼낸 말을 후회하고 있었다.‘어쩌다가 생각했던 말들을 입 밖에 꺼낸 거지? 시우 씨가 날 가벼운 여자로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시진 않겠지?’이런 생각에 정희는 얼른 고개를 숙여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커피를 마시면서, 몰래 시우의 대답을 기다리기만 했다.결국 정희는 시우의 깊은 눈동자 속에 반짝이는 눈빛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분위기가 이렇게 되어버리자, 시우도 이 기회를 통해 정희의 생각을 묻고 싶었다. 정희가 정말 자신을 좋아하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괜히 정희를 놀라게 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한참 동안 망설였지만 시우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시우의 반응을 본 정희는 조금 실망스러웠다.‘난 줄곧 시우 씨가 날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모두 내 착각이었나 보네.’이런 생각에 정희는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았지만, 이런 마음을 숨기기 위해 입꼬리를 올리며 억지로 웃었다.“그저 장난일 뿐인데, 그렇게 놀라실 것 까진 없잖아요!”정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곧 화제를 돌렸다.“지금 기분이 좀 안 좋은데, 같이 술이라도 마시러 갈래요?”정희가 갑자기 우울해 보이자, 시우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정희를 위로해 주고 싶었
이진은 전화가 갑자기 끊기자 조금 놀라고 말았다. 정희가 처음으로 먼저 전화를 끊었기 때문이다.게다가 이진이 착각일 수도 있지만, 정희의 목소리는 좀 피곤해 보이기도 했다.“대표님, 회의 들어가셔야 돼요!”이 말을 듣자 이진은 하던 생각을 멈추고는 고개를 끄덕였다.‘정희가 요즘 많이 힘들었나 보네, 여행 가서 제대로 쉬어야 할 텐데!’이런 생각에, 이진은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 핸드폰을 거두고는 회의실로 걸어갔다.한편 YS 그룹.이건은 사무실에 앉아 자신의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끊임없이 핸드폰 스크린을 내리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진의 피아노 실력을 칭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왕 이사가 특별히 큰돈을 들여 박윤설의 제자를 불러 연주를 준비했지만, 그 제자는 무대에 오르기도 전에 자신의 실력이 이진보다 못하다고 말했다.왕 이사는 이진의 기를 꺾으려고 특별히 박윤설의 제자를 부른 것이었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과 달리 왕 이사의 체면이 깎이게 된 것이다.이것들을 생각하자 이건은 자기도 모르게 눈썹을 찡긋거렸는데, 그의 올라간 입꼬리는 어딘가 득의양양해 보였다.바로 이때, 이 비서가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는 단번에 이건의 이상함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 비서는 눈동자를 빙글빙글 돌리더니, 바로 이건의 생각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이 비서는 얼른 손에 든 서류를 놓고 이진을 칭찬하기 시작했다.“대표님, 작은 사모님께서 준비하신 무대는 정말 최고였어요! 대표님께서 그렇게 훌륭한 무대를 처음으로 안배하신 건 정말 현명한 선택이었어요!”이진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이 비서를 보자, 이건은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곧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이 비서를 보며 말했다.“이 비서, 이번 달 월급 세 배로 올려주지.”이 비서는 느닷없는 기쁜 소식에 감사를 전하고는 몸을 돌려 떠나려고 했다. 이때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다시 이건의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대표님, 제가 듣기로는 왕 이사가 이번 일 때문에 화병이 걸려 입원하셨대요.”이
결혼식 날짜는 8월 초로 정해졌으며, 국내와 해외에서 각각 한 차례씩 진행될 예정이다.웨딩드레스 가게에서 청혼한 이건의 이야기는 곧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있었다.이건이 바라던 대로,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진이 윤이건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두 사람의 결혼식은 더욱 화려하고 시끌벅적했다.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사람은 친한 지인들 외에 회사 직원들만 초대했다.윤이건의 가족들은 보기 드물게 모두 현장에 참석했지만, 이진 쪽은 텅 비어 있었다.한편 이씨 가문은 여전히 다툼이 지속되고 있었다.“이것 봐! 내가 애초에 뭐라 그랬어? 이진 그년이 양심 없는 년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제 알겠지? 그년은 결혼식처럼 중요한 날조차 아버지인 당신을 부르지 않았어. 이기태, 정말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백윤정은 노발대발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에게는 예전의 자애로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앞으로 달려들어 이기태를 때리려고 들었다.이기태는 화가 난 마음에 백윤정을 밀어냈다.“좀 저리 꺼져!”‘그래봤자 이진이는 내 친 딸인데, 지금 일이 이 지경이 된 건 모두 백윤정 때문이잖아. 백윤정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진이를 그렇게 대했겠어? 백윤정이 자꾸 끼어들어 모순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이진도 날 이렇게까지 미워하진 않았을 거야.’물론 이기태의 눈에는 그저 이익밖에 없다. 그가 후회하는 건 오직 이진을 통해 이건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뿐이다.지금의 이기태는 백윤정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매일 싸우기 바빴다.이기태는 결혼식이 끝날 때가 되자 뻔뻔스럽게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이기태 씨, 전에 제가 전화를 끊을 때 했던 말을 잊으신 거예요?”이기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화 너머 들려왔다.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그제야 기억난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진, 너!”
보통 사람이라면 분명 시언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하지만 이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이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듣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제가 사랑하는 남자는 윤이건 씨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시언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리고 힘겹게 한 마디 물었다.“제가 몇 년 더 빨리 나타났다면.”“그래도 결과는 똑같아요.”이진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말을 마친 뒤, 이진은 더 이상 시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건을 향해 걸어갔다.애초에 이진은 시우가 이 연회를 통해 정희와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진은 마침내 시우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이진은 이건의 가슴에 기대어 말했다.“이건 씨, 저 해외여행 가고 싶어요.”“해외여행?”이건은 원래 뭔가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얼마 후 이진을 데리고 출국할 생각이었다.이진이 먼저 제기한 이상, 이건도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이진을 껴안고 말했다.“그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이를 위해 이건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모든 일들 미뤘다. 하지만 이건의 원래 계획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YS그룹에는 이건이 직접 처리해야 될 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건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이진을 데리고 해외로 여행을 간 것이다.이 소식을 전해 들은 YS그룹의 고위층들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건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쨌든 프로젝트는 끝내고 가야지.하지만 이건의 대답은 그저 한마디뿐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후.결혼식을 마친 후, 이건은 분명 이진과의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할 것이다.그러기에 앞으로 일에 전념하는 시간은 점점 적어질 게 뻔했다.옆에 있던 이진은 한쪽에 놓인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리는 것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내가 너무 충동적인 건 아니겠지? 이건 씨는 날
이진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남학생을 꼬드겼다는 건 무슨 말이야?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는 데다가, 시우 씨의 동생인 건 아예 모르던 일이야. 도대체 이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이진은 화를 내며 이건을 노려보았다.“제가 언제 그런 행동을 했다고 그래요. 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거든요.”“정말이야?”이건은 일부러 장난친 거다. 사실 메시지를 보고 불쾌한 기분이 조금 들었는데, 이진의 반응은 그를 매우 기쁘게 했다.이건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그렇다면 자기 마음속에는 나밖에 없다는 거지?”‘그럼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되겠네. 시우 이놈은 겁도 없네, 감히 내 아내더러 자기 사촌 동생을 위로해달라는 거야?’이건은 차갑게 웃으며 이진의 핸드폰을 가지고 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시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진 씨, 제가 보낸 메시지를 보셨나요? 저도 어쩔 수 없어서 연락을 드린 거예요. 이 녀석이 술에 취해 밤새 이진 씨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또 뭐 했는데?”이건은 그의 말을 끊은 뒤 질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네 사촌 동생이 대단한 사랑꾼인가 봐.”‘윤이건?’전화 너머의 시우는 하마터면 심장이 터질 뻔했다.“이건아, 이진 씨 핸드폰이 왜 네 손에 있는 거야? 난.”“나랑 이진이가 부부인 걸 잊은 거야?”이건은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아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럼 내 아내를 좋아하는 사람마다 직접 가서 위로해 줘야 되는 거야? 내가 동의할지 말지는 둘째 치고, 이진이 정말 간다고 해도 네 동생이 괜찮아질 리는 없어.”마침 뭔가 생각난 이건은 잠시 망설이더니 협박하듯이 말했다.“술에서 깨면 네 동생한테 전해. 어제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이건은 다른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들러붙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윤이건? 윤이건이 어떻게?’시언은 도저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와 시우는 사촌 형제이기에, 이건과 시우가 친한 친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이건은 이미 결혼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설마.’시언은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건과 이진이 어떤 사이든, 이진이 이건을 얼마나 의지하든, 그는 자신이 이진을 좋아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시언은 몸 옆에 늘어진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이때 정신을 차린 그는 앞으로 나아가, 이건의 앞길을 막고 환한 미소를 선보였다.“윤 대표님, 전 민시언입니다. 시우 형의 사촌 동생이에요. 시우 형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너무 영광입니다. 혹시 이진 씨랑은.”“이건 씨, 나 돌아가고 싶어요.”시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진은 취기를 못 이겨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가볍게 문질렀다.이건의 차가운 표정은 순식간에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이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몸을 숙여 이진을 안았다. 그리고 시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이진을 조수석에 태웠다. 세심하게 안전벨트를 맨 후 무심코 뒤쪽을 스쳐보자, 시언은 방금 자세를 유지한 채 제 자리에 서 있었다.“이건 씨, 얼른 돌아가요.”이진은 아직도 이건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이건은 시선을 돌려 이진의 희고 정교한 얼굴을 보자 계획이 하나 떠올랐다.‘그동안 결혼식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했는데, 반드시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을 선물해 줄게.’이건이 직접 이진을 데려간 것을 목격한 시언은, 정신을 잃은 듯이 축 처진 채로 시우의 아파트를 찾았다. “민시언?”시우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시언을 보자 조금 놀란 듯했다.“네가 이곳엔 왜 온 거야?”시언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형, 술 한잔하실 래요?”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기에 술 한잔하는 것쯤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하지만 시우는 정희와 함께 임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최근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시언의 상
하룻밤 푹 자고 난 뒤, 다음날 아침 이진은 호텔에서 출발해 학교로 갔다.서현도 마찬가지로 이번 만남을 무척 중시하였다. 그녀는 이진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수업을 오후로 미뤘다.카페에 앉은 서현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이 대표님, 제가 오만해 보이긴 해도, 평범한 작가들과 비슷한 꿈을 꾸고 있거든요. 제가 쓴 시나리오를 대중들에게 알려, 널리 선보이는 게 제 꿈이에요. 하지만 제가 글을 쓸 때에는 저만의 요구가 있기에,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서현의 요구는 별로 지나치진 않았다. 그저 세훈이 제기했던 요구처럼 원칙적인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이 방면의 문제는 서현이 말하지 않아도 이진이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이진이 바로 동의하자 서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진의 시원시원한 성격은 전에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서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제 너무 지나친 행동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안 그러면 이진 씨처럼 훌륭하신 분을 놓치게 되었을 지도 몰라.’ 세부사항을 토론한 후, 이진은 세훈과 서현을 데리고 원작자를 찾아가 판권을 따냈다.그 후 배우의 캐스팅으로부터 촬영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였다.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는 물론, 배우들 사이의 호흡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몇 달 후, 영화는 이건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상영되었다.의 원작 팬이 워낙 많았고, 호기심으로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영화관을 나설 때 모두 영화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개봉 첫날, 전국의 영화관 티켓은 모두 매진되었다.심지어 대부분 영화관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예정했던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상영하였다.개봉한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는 수십 년간 1위를 차지했던 영화를 뛰어넘기도 했다.이 영화의 촬영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도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그들은 마치 다크호스처럼 갑자기 대중들의 시선 속에 나
이진은 말을 마친 후 정희를 데리고 성큼성큼 떠났다.“이진아, 넌 저분이 동의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한참을 걸은 뒤 정희가 호기심에 물었다.이진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현이 딱 봐도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작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굳이 모욕을 당하면서 저 여자를 선택할 필요는 없잖아.’정희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내가 연예계에 아는 사람이 꽤나 있는데, 그냥 이서현 말고 다른 작가 소개해 줄까?”“아직은 필요 없어.”이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아마 날 거절하지 않을 거야.”이진이 거절한 이상 정희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정희가 포기한 채 택시를 잡으려던 찰나, 앞에서 엄청난 비주얼을 가진 키 큰 남학생이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예쁜 누나들, 어디 가시려는 거예요?”두 사람을 향해 한 말이지만, 남학생은 줄곧 이진을 훔쳐보고 있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희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학생, 지금 대시하는 거예요?”생각이 들통난 남학생은 부인하기는커녕 겸연쩍은 듯 손을 들어 뒤통수를 긁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누나들은 저희 학교 학생이 아닌 것 같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연락처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두 사람 연락처를 모두 받아 가시려는 거예요? 생각보다 욕심이 많으시네요.”정희는 눈썹을 찡긋거리며 장난을 쳤다.그러자 남학생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용기를 내어 이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누나, 전화번호 주시면 안 될까요? 절대로 귀찮게 굴진 않을 게요!”‘지금 충분히 귀찮은 것 같은데.’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깔끔하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네요.”난생처음 대시를 시도해 본 남학생은, 자신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남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옆에 있던 정희는 차마 이대로 지나치기 힘들어, 가방에서 이진의 명함을 한 장 꺼내 남학생의 손에 쥐여 주었다.“연락처는
이진은 자신의 가장 진실된 생각을 전한 것은 물론, 판권을 반드시 따내려는 결심으로 원작자를 두 번이나 찾아갔다. 결국 원작자는 그녀에게 한 번 만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진은 이번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전에 조사한 자료들을 들고 사람을 찾으러 대학으로 향했다.그녀 스스로 배역을 연구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이진은 전문적인 작가를 찾아야 했다. 현재 대학교 교수인 이서현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출발하기 전에 이진은 특별히 학교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서현의 수업시간표를 찾았다. 그리고 교장에게 부탁하여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이진의 신분을 알게 된 교장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두 손 두 발 들어 환영했다.한편 이 일을 알게 된 정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애초에 이진이 연예계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경제 뉴스밖에 안 보던 이진이 정말 영화를 찍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진심이었던 거야? 왜 갑자기 영화를 찍으려는 거지?’정희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 네가 의 판권을 따내 영화로 제작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사실이야?”“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비행기 탑승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이진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 지금.”“너 지금 공항이야?”눈치 빠른 정희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침 한가하던 정희는 이진을 따라 서현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우리 이진이가 갑자기 영화를 찍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정희는 결정을 내린 듯이 말했다.“이진아, 좀만 기다려 금방 갈게!”정희는 줄곧 생각나는 대로 움직이는 성격이라, 이진은 핸드폰을 거두고 방금 정희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비행기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착륙했다.이진은 택시를 타고 바로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사전에 알아보았던 수업시간표를 따라 강의실을 찾았다. 분명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시간
이진은 별장을 나선 뒤 홀로 국장의 집으로 향했다.공교롭게도 여태껏 이진을 만나보고 싶어 하던 가정의도 국장의 집에 있었다.하지만 연이은 실패로 가정의도 이진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이진은 엄청 겸손한 데다가 이건의 아내다. 그녀가 어떤 신분이든 간에, 외부에 자신의 실력을 알릴 생각이 없다면, 가정의도 더 이상 묻진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자리에 앉은 후, 국장의 건강에 대해 자세히 토론하기 시작했다.옆에 있던 국장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때때로 몇 마디 맞장구를 치자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이진은 경계심을 내려놓고 많은 의견을 제기하였다. 국장은 모든 의견들을 자세히 기록하였다.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였다.“모두 이진 씨 덕분이에요. 이진 씨가 아니었다면 이 늙은이가 고질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생했을 거예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국장님, 곧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이진은 국장의 말을 얼른 끊은 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게다가 할아버지의 친구분이시니, 제가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에요. 전엔 제가 생각이 짧은 데다가 일 때문에 바쁘다 보니, 줄곧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너무 탓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탓하다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나한테 이렇게 큰 도움을 줬는데, 고마워하기도 모자랄 판에 탓할 리가 있겠어?’마을의 개발 프로젝트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이진도 마찬가지로 세훈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이 대표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워낙 조건이 후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진심 어린 이야기를 마친 후, 세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저한테 특별한 요구가 하나 있는데, 이 대표님께서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어떤 요구죠?”이진은 호기심에 눈썹을 찡긋거렸다.세훈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께서 절 좋게 봐주시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가 방영되었을 때 괜한 추측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방
오 감독은 전략을 바꾸기로 결정 내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진에게 사과하기로 한 것이다.이진은 전에 말했던 대로 마음에 들었던 감독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마저 몇 개 없는 신인 감독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 감독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처럼 유명한 감독을 마다하고 신인 감독과 합작한다는 거야? 내가 그동안 받은 상이 얼마인데! 이진 그년은 분명 사람 보는 눈이 삐뚤어진 거야! 신인 감독 주제에 얼마나 잘 찍을지 똑똑히 지켜봐야겠어.’오 감독은 불만이 가득했으나 자신의 앞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진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모두 이진이 예상했던 대로다. 전화를 받은 순간, 이진은 만만에게 눈빛을 보내 모 플랫폼에서 생방송을 시작했다.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오 감독은, 애써 웃으며 이진의 용서를 구하는 척했다.“이진 씨, 전엔 제가 너무 무례한 행동을 보였던 것 같네요. 의 촬영을 양세훈한테 맡길 생각인 거죠? 제가 양 감독을 소개해 줄 테니, 실시간 검색어의 글들을 내려 주시면.”“글을 내려달라고요?”이진은 오 감독이 뜻밖의 비장 카드라도 쥐고 있는 줄 알았다. 그가 이 정도로 파렴치한 인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말 같지 않은 조건으로 나와 협상하려는 거야?’이진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비웃고는 비꼬듯이 입을 열었다.“오 감독님, 본인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잊으신 거예요? 지금 저한테 조건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하셔야죠. 제가 양세훈 감독님을 선택한 건 사실이지만, 제 방식대로 촬영에 참여하도록 설득시킬 것이니, 당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요.” “당신,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넘어가지 그래?”오 감독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모욕을 당했기에, 이대로 참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위선적인 모습을 집어치우더니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굽신거려주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모두 윤이건 덕분이라는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마 윤 대표한테 들러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