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요, 저희 친구 사이도 못돼요. 그러니 오해하지 마세요, 민 선생님.”나는 한마디 더 보태며 배인호의 표정을 더욱 일그러뜨렸다.민설아는 일부러 아쉬운 척 말했다.“그래도 한때는 부부였었는데 이렇게까지 서로 냉담할 필요는 없잖아요. 앞으로 그냥친구라도 해요.”그녀는 보기에는 좋은 뜻으로 하는 말 같았지만, 사실상은 내 앞에서 자랑하는 거나 다름없었다.나와 배인호 사이가 멀어질수록 가장 좋아할 사람은 그녀가 아니겠는가?“친구가 되든 말든 별 의미 없어요. 저 아직 아침을 먹지 않아서 먼저 가볼게요.”나는 더는 민설아의 연기에 맞춰주지 않고 내 차에 장 본 재료를 싣고 집으로 돌아갔다.만약 나와 배인호가 조금 전 말한 일반 친구 사이가 되었다면, 내가 굳이 제주도까지 올 필요가 있었을까?집에 돌아와 보니, 로아와 승현이는 이미 깨어있었다. 희선 언니는 그들에게 스트레칭을 시켜주고 있었고, 내가 온 걸 보고는 얼른 장 본 재료를 받아들었다.“가서 아침 준비할게요.”그렇게 희선 언니는 주방에 가고, 나는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요 며칠 동안 엄마는 나에게 영상통화 한번 보냈었고, 통화로 아이들 얼굴 한번 보고,작은 삼촌 장례에 관해 이야기들을 했었다. 내가 더 의외였던 것은 삼촌이 죽기 전에 유언장을 작성했다는 것이었다. 유언장에는 정상적인 순서 외에 엄마가 마지막에 있었다고 한다.그 뜻인즉, 삼촌네 한 가족이 모두 죽으면, 그 모든 재산은 우리 엄마에게 넘어간다는것이었다.이는 우리 가족 중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작은 삼촌은 생전에 우리 엄마와 아빠를 크게 원망했었고, 사업적인 문제로 아빠가 공정처리 했더니, 그 뒤로 우리 엄마와 아빠를 아예 좋게 보지 않았던 사람이었다.그 뒤로 우리 집과 작은 삼촌네 집안은 거의 원수 사이나 다름없었다.큰 삼촌은 아마 쭉 연락이 크게 없었던 것 같다.“그러면…”나는 어떻게 대답할지 몰랐다.“네 이모도 아직 ICU에 누워계셔. 그 돈은 아마 나에게 넘겨주지 않을 수도 있는거고, 나
그 아침밥은 말 그대로 너무나 불편한 식사시간이었다.비록 이우범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더는 그와 눈을 마주할 수 없었다.다행히 아침밥을 먹은 뒤 이우범은 다시 옆집으로 휴식하러 돌아갔다. 온 저녁 일하고 자지 않았으니, 그가 피곤할 만도 했다“언니, 저 점심 친구네로 가서 먹어요~”나는 간단히 꾸민 뒤 희선 언니를 향해 말했다.오늘 점심은 정아가 나와 아이들을 자기 집에 초대했다.밖에 나간 후, 나는 로아와 승현이를 베이비 전용 안전 시트에 태우고 차로 정아네집으로 운전해 갔다. 그녀의 집은 우리 집과 조금 거리가 있었으며, 차로 약 30분이 걸렸다.정아네 집에 도착한 타이밍에 때마침 노성민과 정아가 싸우고 있었다.“너 빡 대가리야? 내가 너 보고 하라는 일은 왜 매번 그따위로 하는 거야? 너 분명 오늘 내가 지영이 초대하는 거 알면서 그걸 배인호한테 알려줘?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정아가 분노에 차오른 큰 목소리로 노성민에게 밀어붙였다. 노성민도 화를 참으며 좋게 정아를 타일렀다.“아니야, 나 처음부터 인호 형이랑 오늘 점심 약속 잡았어. 인호 형뿐만 아니라 또 다른 두 명의 비즈니스 파트너도 있어. 그래서 네가 지영 씨 초대한 거 깜빡 잊은 거야. 그러니 화내지마, 여보. 만약 지영 씨랑 인호 형이 만날까 봐 걱정되는 거면, 여보랑 지영 씨가 만나는 시간 좀 고치면 안될까?”“안돼!”정아는 언제나 노성민 앞에서 공주처럼 행동했고, 그 어떠한 일이든 노성민이 그녀의 뜻대로 해주며 어르고 달랬다. 그 때문에 정아도 날이 가면 갈수록 제멋대로 행동하는 듯했다.그런 그녀가 나는 부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나는 그들 집 문 앞에 도착은 했지만 차마 들어갈 수 없었고, 유리 창문으로는 노성민의 굳은 얼굴이 비쳤다.정아는 계속하여 노성민을 뭐라 하였다. 내가 들어가서 정아를 말리려고 하던 찰나, 노성민이 참지 못하고 폭발하였다.“그만해!”그 순간 정아는 그 자리에 놀란 듯 멍하니 서 있었고, 나도 심장
“네 그 말은...”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설마 성민 씨와 다른 여자 사이에 뭔 관계라도 있다고 확신하는 거야?”정아는 잠시 멈칫하더니,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확신하는 건 아닌데, 그냥 그런 여자가 하나 있어. 내가 노성민 핸드폰에서 둘의 채팅 기록 봤거든.”그 소식은 나로 하여금 꿈을 꾸고 있는듯한 느낌을 주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노성민에게 이런 문제가 생길 줄 생각지도 못했다. 전에 노성민도 이미 놀 만큼 놀았으니 재미없다고 말했다. 나는 정아가 우리 중에서 가장 시집을 잘 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생활이란 겉으로 보기에는 행복해 보일 뿐이지 현실은 각종 일이 많다는걸 알게 되었다. 정아는 나에게 그 여자와의 채팅 기록 내용을 말해주었다. 정아의 말로는 채팅 기록으로 봤을 때 둘 사이에 별다른 썸씽은 없는 것 같았지만 왠지 모르게 찝찝하다고 했다. 게다가 저 어이가 없는 부분은, 그 여자의 나이가 정아보다도 몇 살 더 많고 이혼녀에 두 명의 애까지 가지고 있다고 했다... 나는 너무도 놀라 멍해졌다.“그 여자는 계속 그 프로젝트 팀인 거야?”나는 내 생각을 정리한 후 그제야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너 그 여자 본 적 있어?”“아니, 근데 이따가 아마 올 거야.”정아는 머리를 저었다.나는 그 자리에서 당장 폭발할 것만 같았다. 때마침 오늘 나도 정아네 집에 온 겸, 대체 그녀가 어떤 매력을 가졌는지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이때 문 앞 유모차에 누워있던 로아와 승현이가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소리로 들었을 때는, 아마 배가 고픈 듯했고, 나는 바로 우유를 타주러 나갔다.거실에서는 노성민이 가만히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고, 배인호는 문 앞 위치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 둘이 조금 전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배인호를 놓고 보면 그의 친구들도 그와 다 비슷하기에, 배인호 또한 노성민이 어디가 잘못됐는지를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도와줄까요?”내가 나온 걸 본 노성민은 나에게 다가오며 먼저 말을 건
최소연은 사실 그냥 평범하게 생긴 여자였고, 한눈에 봐도 노성민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하지만 분위기는 있는 편이었고 아주 부드러운 느낌을 주었다. 그녀 옆에는 동료인듯한 또 다른 남자도 같이 서 있었다.최소연은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물었다.“어머, 이분은 새 동료인가요?”노성민은 다소 어색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조금 전까지 최소연의 일 때문에 불안해하더니, 이제는 그녀가 눈앞에 나타났으니 말이다.나는 그녀가 좋게 보이지 않았다.그녀가 노성민을 바라보는 그 눈빛은 일반 동료 사이를 떠나 아주 물처럼 부드러운 느낌이었다.“저 아닌데요.”내가 차갑게 답했다.“저는 이런 관계의 동료가 될 자신이 없거든요.”내 말에 노성민의 얼굴은 급격히 굳어졌다. 내가 명백히 말하지 않았다 해도 그는 내 말뜻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었다.다만, 이 최소연이라는 여자가 사람의 말귀를 잘 알아듣는지가 문제이다. 역시나 그녀는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고, 아무런 어색함 없이 오히려 웃어 보이며 내 유모차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 시각, 로아가 유모차에 누워있었다.“어머, 노 대표님. 아이가 두 명 더 늘었네요?”최소연은 손을 뻗어 로아를 만지려 하였다.“친구 집 아이예요.”노성민은 재빨리 그녀에게 설명해줬다.그러고는 바로 최소연에게 그의 가족을 소개했다.“여기는 제 와이프와 아이예요. 사진으로만 봤을 텐데 이제 실물로 보게 되네요.”정아는 조금 전의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최소연이 온 걸 보고는 바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며 얼굴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소연 언니죠? 가끔 남편한테서 많이 들었어요.”최소연은 깜짝 놀라며 노성민을 바라봤다.“노 대표, 진짜예요? 집에서 가끔 제 얘기도 해요? 진짜로 절 친구로 생각하나 보다.”나는 그녀의 그런 여우 짓에 참을 수 없었다. 결국은 이리저리 말 돌리며 본인이 노성민과의 사이가 좋다는 걸 과시하려는 뜻 아닌가?“그냥 가끔이요.”노성민이 재빨리 해명했다.“가끔 업무상의 일 때문에 말이
“그래요, 고마워요. 아이들이 인호 씨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아요.”나는 살짝 미소 지으며 어색하게 답했다.그러자 옆에 있던 최소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그러게요. 애들이 배인호 대표님을 진짜 좋아하는 것 같아요. 우리 집 아들도 배인호 대표님 엄청나게 좋아해요. 한두 번만 봤는데도 배인호 대표님을 잊지 못하더라고요.”그러면서 최소연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배인호를 바라봤다.그녀는 그냥 남자를 볼 때면 이러한 눈빛으로 보는 듯했다. 나와 정아를 바라볼 때는 전혀 그런 눈빛이 아니었고 말이다.하지만 배인호의 반응은 노성민과 사뭇 달랐다. 그는 최소연의 그 칭찬을 아예 듣지 못한 듯 바로 몸을 돌려 거실로 나갔다.최소연은 더욱 어색한 상황에 놓였다. 조금 전에 내가 그녀한테 한 소리 했고, 이번에는 배인호한테 무시당했으니 어떻게 생각해도 쪽팔릴 것이다.나도 그녀를 무시한 채 로아와 승현이를 안고 안방 침대에 눕혔다.최소연도 눈치껏 그 자리를 떠났고, 진짜로 화장실을 찾으러 갔는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나는 문을 조용히 닫았다. 정아 품속의 아이도 서서히 잠이 들었고 정아도 아이를 눕힌 뒤, 갑자기 나에게 말했다.“지영아, 나 이혼하고 싶어.”“뭐?”나는 그 말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비록 노성민에게 지금 작은 문제가 있다 해도, 굳이 이혼까지 할 정도는 아니었으니 말이다.“나 이혼하고 싶다고. 나 도저히 이런 거 못 견디겠어.”정아는 잠이 든 아이를 바라보며 마음이 약해지는 듯하더니 다시금 마음을 굳게 먹은 듯 보였다.“너희들 평소에 내가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줄 알지? 사실 이렇게 의심하기 시작한 지 꽤 오래됐어. 나 지금 큰 감정 소모에 빠져서 너무 힘들어.”정아는 살짝 울먹이며 말했고, 나는 그 말에 마음 한쪽이 쑤시며 아파 났다.평소 정아의 성격이 호탕하고 직설적인 지라, 사람들은 그녀의 속마음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정아가 지금까지 우리한테 말해주지 않은 이유 또한 우리가 걱정할까 봐 말해주지 않은 듯했다.그러다 결
“알면 됐어요.”배인호는 핸드폰을 꺼내 들며 말했다.“은행 계좌로 돈 보냈어요. 난 그만할 겁니다.”최소연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돈을 받았다. 배인호는 바로 거실 밖으로 가서 담배를 피웠다.옆에서 지켜보던 노성민의 표정은 덤덤했지만 최소연의 시선이 그로 향하자 시선을 피하며 주방으로 갔다.정아의 행복을 위해 나는 결국 몸을 일으켰다. 거실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배인호를 찾아갔다. 그는 심플한 블랙 반팔 티를 입고 있었다. 너무 마르지도 두껍지도 않은 탄탄한 팔 근육 라인이 보기 좋게 드러나 있었다. 그는 점점 더 담배에 중독되어 가는지 시도 때도 없이 담배를 피웠다.내가 나오는 것을 보더니 배인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자리를 옮겼다.나는 계속 그를 따라갔다.“너 담배 냄새 안 좋아하잖아?”그는 내가 따라오는 것을 느끼고서는 놀라며 물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 비친 나의 모습은 조금 불쾌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나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바로 물었다.“물어볼 게 있어서요. 노성민하고 최소연 사이에 무슨 일 있었는지 알죠?”배인호는 그 말을 듣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거실 안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담배를 바닥에 던져 발로 비벼 껐다.“낌새가 조금 이상한 정도. 왜?”“두 사람 어디까지 갔어요?”나는 계속 추궁했다.“내가 말했잖아. 느낌이 조금 다른 것 같다고. 두 사람이 어디까지 갔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배인호는 어이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허지영, 좀 부드러운 태도로 말할 순 없어?”정아 부부의 행복에 관한 문제라 조급한 마음에 내 말투가 별로 좋지 않았나 보다.배인호가 알려주니 나도 그제야 알아차렸다.“미안해요. 내가 너무 급했네요.”나는 말투를 조금 바꾸며 다시 말했다.“지금 성민 씨하고 인호 씨가 함께 파트너로 일하고 있잖아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을 테니 물어본 거예요.”배인호는 퍽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분명 이미 서른이 넘은 남자인데 얼굴에 주름 하나 없었다. 오히려 나이가 들
그래도 양심은 남아 있는지 예전에 자기가 한 일부 행동들이 과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나는 지나간 일에 더 신경 쓰고 싶지 않아 그에게 기한을 정해주었다.“제일 늦어도 3일 이내에 최소연에 관한 정보를 봐야겠어요.”“내일 줄게.”배인호의 속도는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좋아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먼저 들어갈게요. 핸드폰으로 보내주면 돼요.”“알겠어. 나도 요구 조건 생각나면 연락할 테니까 내 전화 거절하지 마. 못 본 척도 하지 말고.”배인호는 나에 대한 불신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말했다.“알겠어요.”나는 말을 마치고 들어갔다. 노성민은 이때 주방에서 그릇을 나르고 있었다. 정아와 결혼한 뒤 그는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려고 요리를 연습했다. 오늘 점심도 그가 직접 요리했다. 최소연도 어느 순간 주방에서 돕고 있었다. 그녀는 생선찜 한 접시를 테이블에 가져다 놓더니 노성민에게 말했다.“노 대표님, 여기에 파채를 얹으면 플레이팅이 더 예쁠 것 같아요.”“나도 알아요. 근데 시간이 늦어서 하지 못했네요. 이대로 먹죠.”노성민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왜 날 안 불렀어요? 나도 음식 잘하는데. 내가 도울게요.”최소연은 말하면서 주방으로 가서 파채를 썰려고 했다. 그녀는 머리를 깔끔하게 묶은 뒤 앞치마를 가져와서 입으려 했다.두 개의 앞치마는 커플 아이템일 것이다. 비록 정아는 요리를 잘하지 못했지만 간단한 음식을 만드는 건 문제가 없었다.나는 얼른 달려가서 최소연이 손에 든 앞치마를 뺏어 들었다.“내가 할게요. 손님인데 가서 앉아 있어요.”“저... 지영 씨도 손님 아니세요?”최소연은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물었다.“난 이 집 주인의 가장 친한 친구예요. 성민 씨하고도 잘 아는 사이인데 손님이라고 할 수 있나요. 그러니까 내가 할게요.”나는 냉랭하게 대답했다.노성민도 그제야 알아차린 듯 상황을 정리했다.“그렇게 해요, 지영 씨한테 부탁하면 돼요. 소연 씨는 가서 앉아 있어요.”최소연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아닌 척할 필요 없어요.”나는 일부러 배인호에게 말했다.“난 그냥 왜 당신이 이런 짓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요.”배인호는 침착하게 대답했다.“난 단지 네가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아서.”“알겠어요.”나는 더 따지고 싶지 않았다. 만약 배인호가 일부러 그렇게 한 거라고 말한다면 도리어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돌아오는 길에 배인호의 핸드폰이 울렸다. 민설아에게서 전화가 왔다.그는 이어폰 없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그래서 그들의 대화가 내게도 또렷하게 들렸다.“인호 씨, 성민 씨네 집에 있어요?”부드러운 민설아의 목소리가 들렸다.“어, 무슨 일이야?”배인호의 태도는 말로 표현할 순 없었지만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가끔 그가 진심으로 민설아를 사랑하는 것 같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정말 그가 책임감 때문에 민설아와 함께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가끔 보는 민설아를 보는 그의 시선은 다른 사람을 대할 때와는 또 달랐다.나는 더 이상 알 수가 없었다.민설아는 병원 복도를 지나고 있는 것 같았다. 가끔 간호사가 목소리와 잡음들이 들렸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또렷하게 들렸다.“그럼, 저녁에는 집에 와서 밥 먹을 거예요? 빈이가 계속 당신하고 놀이공원 가고 싶다고 해서요. 오늘 밤에 거기서 이벤트가 있대요.”배인호가 대답하려는 데 나의 핸드폰이 울렸다. 엄마에게서 온 전화였다. 나는 먼저 거절을 누른 뒤 문자를 보냈다.하지만 민설아는 똑똑했다. 그녀는 잠깐 침묵하더니 물었다.“지영 씨가 왜 거기 있어요?”나와 배인호는 서로를 쳐다봤다. 민설아가 이어서 말했다.“괜찮아요. 오해 같은 거 안 했어요. 전에 지영 씨 핸드폰 벨 소리 들었던 기억이 나서요. 정아씨 하고도 친구인데 함께 식사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죠.”“알겠어. 저녁은 돌아가서 먹을게.”배인호는 민설아의 질문에 더 대답하지 않고 말을 바꿨다.“그래요. 빈이랑 기다리고 있을게요.”민설아는 말을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