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호의 그 말에 나는 갑자기 뭐라고 답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그 말을 들은 뒤, 조금 전까지 좋지 않았던 내 기분이 조금은 풀린듯했다.“일부러 저에게 이런 말 할 필요 없어요.”한참 뒤, 나는 겨우 이 한마디를 내뱉었다.“일부러 아니야. 여기 온 것도 너 보려고 온 거야. 그러니 내려와.”배인호의 말투에는 명령조가 섞여 있었지만 전혀 싫지만은 않았다.나는 원래는 내려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의 그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렸다.전화를 끊은 뒤, 나는 엄마가 깰까 봐 발끝을 들고 살금살금 밖으로 나갔다. 정원을 통해 큰 대문 앞에 도착하니, 배인호의 그림자가 가로등 불빛에 의해 비쳐 있었고, 그는 손에 담배 한 대를 들고 있었다.그는 나를 보더니 바로 담뱃불을 끄고는 옆 휴지통에 버렸고, 팔을 벌려 포옹의 사인을 보냈다.“안 달려와?”내가 어떻게 달려가서 그에게 안길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조용히 걸어가 그에게 살며시 안겼다.배인호는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로 나를 꽉 끌어안았고, 나는 거의 그 가슴팍에 몸이 붙어져 배인호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지경이였다.“오늘 질투할 줄도 알고. 잘했어.”배인호의 목소리에는 기쁨이 서려 있었고, 그는 기쁜 표정을 숨길 수 없는 듯했다. 그는 나의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언제쯤이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어? 희망이 있는 건가?”나는 몇초간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모르겠어요.”“모르는 거면 가능성은 있는 거네.”배인호는 나를 안고 있던 팔을 풀며,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그러기만 한다면 난 뭘 해도 좋을 것 같아. 나보고 큰길에서 바닥 청소하라고 해도 난 괜찮을 것 같아.”나는 바로 배인호가 큰길을 청소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는 아마 대표님의 이미지는 완전히 사라진 채 잘생긴 청소부라는 검색어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굴 것만 같았다.그 화면은 왠지 모르게 웃겼고, 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더 웃기도 전에 내 입술에는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졌고, 배인호는 내 허리를 감싸
“나도 몰라.”나는 미간을 찌푸렸고, 다소 무거운 말투로 답했다.사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미 알고 있다. 이우범은 나를 진퇴양난의 경지까지 몰고 가려는 듯했다. 만약 이우범이 파혼한 이유가 나 때문이라고 외부에서 알게라도 된다면, 나는 또 각종 여론몰이에 휩싸일 것이다.세희는 한숨을 내쉬었다.“지영아, 너 예전에 배인호를 그렇게 수년간 쫓아다녀도 끄떡없더니. 이혼하고 난 뒤에야 너에게 다시 돌아왔다는 게 말이 돼? 게다가 배인호의 가장 친한 친구까지도 지금 널 좋아하게 됐는데. 이게 대체 뭔 일이야?”나는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몰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배인호가 나에게 마음이 흔들린 시점부터 현생은 전생과 달라지기 시작했다.그래서 많은 일들은 나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인 거다.이렇게 우리들 모임은 나의 침묵 속에서 끝이 났고, 나는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집에 돌아간 뒤, 나는 빠르게 이우범과 도시아의 기사에 대해 찾아봤다.하지만 그 둘은 아직 외부에는 공개하지 않았기에, 그들과 관련된 소식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한창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쯤, 도시아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허지영 씨, 저 다시 좀 도와주면 안 돼요? ”도시아는 울먹이며 나에게 말했다.“제가 뭘 도와줄 수 있죠?”나는 차분하게 되물었다.“우범 씨가 저와 파혼하려 해요. 제가 그걸 동의하지 않으니 우범 씨가 저를 협박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저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요!”그 말을 하는 도시아는 약간 이미 미쳐있는 상태였다.하지만 그녀의 그런 미쳐있는 상태가 나도 낯설지만은 않았다.전생에 나도 배인호를 붙잡을 때 엄마와 아빠에게 똑같은 말을 했었고, 이런 이유로 우리 부모님은 할 수 없이 나를 도와주었지만, 결말은 그런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전에 배인호가 한 말이 맞았다. 누가 친구 아니랄까 봐 이우범도 그와 똑같았다. 심지어 협박하는 방식도 거의 비슷했다.“미안해요. 이건 도시아 씨와 이우범 씨 사이의 일이라
“도시아 씨가 자살소동 일으키는 거 때문에 전화했어요?”이우범은 담담하게 나에게 물었고, 그의 차분한 태도에 나는 알 수 없는 서늘함을 느꼈다.“그래요. 지금 약혼녀가 죽으려 하는데 한번 와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내가 차갑게 되물었다.“그 사람도 이제 성인이니, 자기 목숨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하는 거예요. 그러니 전 상관하지 않을 거예요.”이우범의 그 차갑고 냉담함이 나는 전혀 믿기지 않았다.그는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여자에 대해서는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마치 전생의 배인호와 똑같았다. “어찌 됐든 간에, 도시아 씨가 우범 씨에 대한 감정은 진심이잖아요. 사람 한번 살린다 치면 안 돼요?”나는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도시아 씨도 제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요. 이 모든 건 그 사람이 자초한 거라고요. 아닌가요?”이우범은 이 상황에서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이게 진짜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이 맞나? 이우범은 현재도 의사지만, 그의 그 자애로운 마음은 다 어디로 간 건가? 자기 약혼녀에게 이 정도로 대하는 사람이 평소에 다른 사람에게는 과연 어떻게 대할까?전생에 그와 손잡았다는 사실이 나는 후회스러웠고, 만약 내가 마지막에 불치병으로 죽지만 않았더라면, 그와도 갈등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으니 자연스레 아무런 결과도 없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고, 이우범을 재촉했다.“와서 도시아 씨 좀 말려줘요. 도시아 씨 부모님도 동의했어요. 이우범 씨가 도시아 씨 자살만 막으면 반드시 파혼할 수 있게 도시아 씨를 설득하겠다고요.”“굳이 그 사람들의 동의 따윈 필요 없어요.”이우범은 목소리를 내리깔며 말했다.“아니면 지영 씨가 제 부탁을 들어주는 건 어때요?”그 말에 내 가슴이 갑자기 죄어왔다.“그럼, 제가 뭘 들어줬으면 하는데요?”“저와 밥 먹는 거 어때요?”이우범의 제안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나 간단하다고?하지만 나의 속마음에는 알
“왜... 그렇게 흥분해요?”내가 말을 멈추자, 이우범이 물었다.“지영 씨와 인호 사이의 일이 떠올랐나요?”그는 다 알면서 일부러 내게 묻는 것이다. 나와 배인호 사이의 일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나는 깊은 한숨을 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눈앞에 있는 것은 이우범이고 기억 속의 배인호와 구분하려고 노력했다.“어쩌면 나와 조금 비슷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도시아는 우범 씨한테 잘했잖아요. 시아 씨는 아무것도 잘 못 한 게 없어요.”이우범은 냉정하게 비웃었다. “허허. 나를 속여 갇히게 만든 사람이 바로 도시아에요. 그 여자가 없었다면 우리 부모님도 그런 생각까진 하지 않으셨을 거고요. 나와 사이가 더 나빠지는 걸 부모님은 싫어하셨어요.”전에 그는 한동안 갇혀 있었다. 도시아가 나를 찾아와서 서류를 넘겨주는 대가로 그와 헤어져 달라고 했다.그것들이 도시아의 아이디어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한순간 도시아에 대한 생각이 조금 복잡해졌다. 그녀가 이우범을 좋아하는 감정이 내가 배인호를 좋아하는 감정과 비슷하다지만 나는 그런 방법까지 사용한 적은 없었다.적어도 나는 배인호를 함정에 빠뜨리진 않았다.“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해 더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결국 나는 할 말이 없어 간단하게 대답했다.이우범은 이미 주문했고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전에 잠깐 만났을 때 그는 나를 많이 챙겨주었다.하지만 나는 지금 입맛이 별로 없어서 몇 젓가락 먹고는 먹지 못했다.“지영 씨하고 인호는 더 이상 아무것도 없어요?”그는 나에게 물었다.“그걸 물어볼 필요가 있어요?”나는 눈을 내리깔고 이우범을 쳐다보지 않고 애매모호하게 대답했다.이우범은 웃기 시작했고 그의 웃음소리에 나는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나는 어쩔 수 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천천히 콧대에 걸려 있던 안경을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가늘고 얇은 손가락을 교차시키며 나를 바라보았다.“진명수에게 접근하기 위해서가 아닌가?”그가 이 말을 했을 때 내 마음속의 모든 추측이
이우범은 조금 의식이 남아 있는지 겨우 중심을 잡고 섰지만, 여전히 내가 부축해야 했다.엘리베이터에 도착하고 문이 천천히 닫히는데 한 손이 뻗어와 문을 다시 열었다.“잠깐만요.”박준의 목소리가 들렸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후 나는 박준의 얼굴이 불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았다.그 뒤에는 배인호와 서란이 있었다.서란은 작은 새처럼 배인호의 팔을 잡고 있었다.“허지영 씨?”박준은 나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짓더니, 옆에 있는 술에 취한 이우범에게 시선을 돌렸다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배인호를 바라보았다.배인호의 미간이 자기도 모르게 찌푸려졌다가 빠르게 다시 펴졌다.“우연이네요. 지영 언니 이 선생님하고 데이트했어요?”서란은 배인호를 잡고 들어와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물었다.나는 이우범을 부축하며 대답하지 않았다.배인호는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이때 다른 사람은 그의 눈빛을 볼 수 없었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압박감과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내가 이우범과 무슨 일이 있었다고 또 오해하는 것은 아니겠지? 나는 머리가 아파졌다.“지영 언니, 이 선생님 왜 이렇게 취하셨어요? 언니가 안 말렸어요?”서란은 일부러 나와 이우범의 관계를 썸타는 것처럼 몰아갔다.“이우범 씨가 술을 얼마나 마시든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잖아? 그냥 친구 사이에 내가 데려다주는 것뿐이야.”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어머, 둘이 같이 밥 먹었어요?”서란은 일부러 놀라는 척 말했다.“우범 씨를 데려다 줄 사람은 언니밖에 없긴 하네요.”이때 박준이 입을 열었다.“누가 그래? 내가 우범이를 데려다주면 안 되는 거야?”아까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박준의 말투에 분노가 가득했다.서란은 박준의 말에 약간 당황스러워하며 억울한 표정으로 배인호를 올려다보았다.배인호는 쭉 아무 말도 없었다. 그는 기분이 몹시 나쁠 때면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엘리베이터는 빠르게 도착했고 박준은 나를 도와 이우범을 부축하며 나왔다. 서란과 배인호도
“인호 씨, 이 얘기는 그만 얘기해요. 네?”나는 더 이상 이 일에 관해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이우범하고 만나지 마. 그게 내 유일한 부탁인 걸 넌 몰라?”배인호의 싸늘하게 굳은 표정에 틈이 벌어지더니 거기에서 분노가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이 일 때문에 좋아져 가던 그와 나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는 것 같았다.거실 분위기는 딱딱해졌고 나는 계속 서 있고 배인호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누구도 침묵을 깨기 위해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어 배인호에게 말도 하지 않고 바로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배인호는 빨랐고 나는 현관문을 나서기도 전에 이미 그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그는 화를 내며 내게 물었다.“이젠 화도 내네. 다른 남자와 단둘이 밥을 먹었으면서, 뭘 잘했다고?”“배인호 씨,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그만해 줄래요?”나는 정말로 화가 났다.“그때 도시아의 상황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알아요? 그런데도 정말 도시아가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해요?”“그 여자가 죽든지 말든지 도대체 너하고 무슨 상관인데?”배인호는 여전히 뜻을 굽히지 않았다.“배인호 씨. 이렇게 냉정할 필요 있어요?”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마음을 가라앉히며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도시아를 보니깐 옛날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어요. 인호 씨도 도시아와 내가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도시아가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랐어요.”최선을 다해 나의 감정을 자제했지만, 배인호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는지 눈살을 찌푸렸다.“같은 실수를 반복하다니? 너 자살하려고 한 적 있어?”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당황하며 배인호의 시선을 피했다.내가 자살 시도를 한 건 맞지만 그건 전생의 일이었고 주위 사람들은 아무도 모른다.배인호 이상함을 눈치챈 듯 다시 나에게 물었다.“대답해.”“아니에요. 그냥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는 상황이 나와 같아서요. 이우범도 당신하고 똑같아요. 처음
결국 함께 가자는 배인호를 거절했다. 조만간 엄마가 아시게 되더라도 최대한 천천히 알리고 싶었다.전에 엄마가 혼수상태에 빠진 일은 나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감히 그런 도박을 할 수 없었다.나는 혼자서 집으로 돌아왔고 기선혜는 일어나서 아침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밖에서 돌아오는 것을 보고 그녀는 더 묻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지영 씨, 아침 운동 다녀왔어요?”“네.”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아까 아주머니가 지영 씨 어디 갔느냐고 물으셔서 조깅하러 갔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드디어 몸 생각해서 운동 시작했다고 칭찬하시던데요.”기선혜가 알려주었다.나는 그녀가 나와 배인호가 몰래 만나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나 기선혜는 센스가 있기에 알아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매일 우리 집에 머물며 외부와는 거의 접촉하지 않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조깅을 다녀왔다고 했으니, 샤워라도 해야 할 것 같아 큰 걸음으로 위층으로 올라갔다.“지영아, 왔니?”마침 엄마가 내려오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보고 웃으시며 한마디 하셨다. 그러고는 내가 입은 옷을 몇 초간 바라보시더니 물으셨다.“아침에 조깅하러 그렇게 입고 간 거니?”지금 나의 옷차림은 조깅을 다녀온 복장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어젯밤 옆 빌라에서 뜨거웠던 순간이 떠올라 마음에 찔렸고 얼굴이 뜨거워졌다.나는 핑계를 댔다.“네, 잠깐 운동한 건데요. 옷을 따로 챙겨 입지 않았어요. 이틀 후에 운동할 때 입는 옷 좀 장만하려고요.”“얘 좀 봐. 예전에는 운동하는 걸 싫어하더니. 인제야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지?”엄마는 별 생각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안도하셨다.“그럼요. 엄마, 나 땀을 많이 흘려서 씻고 밥 먹을게요.”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재빨리 핑계를 대고 자리를 피했다.땀을 많이 흘리긴 했지만, 아침에 조깅해서 흘린 것이 아니라 어젯밤에 체력을 많이 썼기 때문이다.샤워하고 나니 한결 편안해졌다. 배인호에게서 문자가
나는 이 정보를 배인호에게 보여줘야 할지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유정이 보험을 들어 놓으려고 서란에 관한 정보들을 많이 모아 놓았다. 그중에 제일 흥미로웠던 것은 유정이 우연히 들은 샤인그룹 자금 세탁에 대한 서란과 민예솔의 대화였다. 비록 대화가 잘 들리진 않았지만 자금 세탁에 대해 알고 있었고 참여했음을 인정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었다.고민 끝에 USB를 복사해서 배인호에게 보냈다.30분 정도 후에 배인호에게서 전화가 왔다.“이거 어디서 났어?”“유정이 줬어요.”나는 솔직하게 말했다.“전에 한 번 유정이 날 찾아와서 이걸 전해 줬어요. 지금 유정은 내가 데리고 있고요. 그렇지 않으면 서란이 분명히 유정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그래, 알겠어.”배인호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그 여자가 언제 너에게 전해 준 거야?”나는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시간을 말했다.배인호는 잠깐 침묵하더니 웃음을 터트렸다.“전에는 나한테 알려주지 않으려고 한 거야? 날 경계해?”그의 질문에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실제로 나는 배인호를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 며칠간 그를 지켜본 후 이 정보를 넘겨주려고 결정했다. 이건 그와 나 사이의 마지막 비밀이었다.나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배인호는 이미 나의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나를 비난하거나 조롱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더 이상 당신한테 숨기는 거 없어요.”배인호가 거세게 몰아붙이지 않고 조용히 한숨을 쉬니 나는 더욱 죄책감이 들었다.“알겠어. 난 널 믿어.”배인호의 목소리가 많이 부드러워졌다.“기억해. 난 영원히 너에게 가장 든든한 빽이 되어 줄 거야.”배인호가 이렇게 지나치게 나에게 맞춰주는 것이 나는 조금 익숙하지 않았다. 다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만족하고 있었다.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느낌을 드디어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많은 일을 겪었다고 해도 여전히 느낄 수 있었다.“네.”나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바쁜 업무 속에서 기간은 매우 빠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