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정보를 배인호에게 보여줘야 할지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유정이 보험을 들어 놓으려고 서란에 관한 정보들을 많이 모아 놓았다. 그중에 제일 흥미로웠던 것은 유정이 우연히 들은 샤인그룹 자금 세탁에 대한 서란과 민예솔의 대화였다. 비록 대화가 잘 들리진 않았지만 자금 세탁에 대해 알고 있었고 참여했음을 인정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었다.고민 끝에 USB를 복사해서 배인호에게 보냈다.30분 정도 후에 배인호에게서 전화가 왔다.“이거 어디서 났어?”“유정이 줬어요.”나는 솔직하게 말했다.“전에 한 번 유정이 날 찾아와서 이걸 전해 줬어요. 지금 유정은 내가 데리고 있고요. 그렇지 않으면 서란이 분명히 유정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그래, 알겠어.”배인호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그 여자가 언제 너에게 전해 준 거야?”나는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시간을 말했다.배인호는 잠깐 침묵하더니 웃음을 터트렸다.“전에는 나한테 알려주지 않으려고 한 거야? 날 경계해?”그의 질문에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실제로 나는 배인호를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 며칠간 그를 지켜본 후 이 정보를 넘겨주려고 결정했다. 이건 그와 나 사이의 마지막 비밀이었다.나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배인호는 이미 나의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나를 비난하거나 조롱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더 이상 당신한테 숨기는 거 없어요.”배인호가 거세게 몰아붙이지 않고 조용히 한숨을 쉬니 나는 더욱 죄책감이 들었다.“알겠어. 난 널 믿어.”배인호의 목소리가 많이 부드러워졌다.“기억해. 난 영원히 너에게 가장 든든한 빽이 되어 줄 거야.”배인호가 이렇게 지나치게 나에게 맞춰주는 것이 나는 조금 익숙하지 않았다. 다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만족하고 있었다.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느낌을 드디어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많은 일을 겪었다고 해도 여전히 느낄 수 있었다.“네.”나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바쁜 업무 속에서 기간은 매우 빠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는 순간 동공이 흔들렸다.한 사람이 호텔의 옥상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급격하게 추락하고 있었고 그 사람의 머리가 아래로 향해 있었다. 1, 2초 사이에 시선을 마주쳤는데 나는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공포를 느꼈다.도시아였다.도시아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고 잠시 후 ‘쾅’ 하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이미 바닥에 추락했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녀의 머리가 심하게 부딪쳤기에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눈을 감지 않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순간 나의 얼굴에 피가 튄 것을 느꼈다. 그녀는 나와 너무 가까웠다. 가까운...나는 비명을 지르는 것조차 잊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이어서 공포와 메스꺼움을 느꼈다.“아!”나의 뒤에 있던 정아가 소리를 질렀고 노성민도 이상했는지 바로 달려와 그녀를 품에 안았다.어지러움에 휘청이며 몇 걸음 뒤로 물러났는데 다행히 한 손이 나를 넘어지지 않도록 잡아 주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 나의 눈을 가려주었다.“보지 마.”나는 온몸이 심하게 떨렸고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나는 도시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이우범은 그녀를 설득해 주는 조건으로 나와 밥을 먹었다. 그래서 그녀가 오늘 일부러 나에게 한 끼 식사를 산 것일까?아니면 그녀는 자기 목숨이 이우범의 마음속에서는 한 끼 식사 정도의 가치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일까?이때 나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호흡이 가빠졌다.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피 냄새가 났다.“욱.”나는 참지 못하고 뒤돌아 토했다.배인호는 내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내가 데려다줄게.”나는 아무것도 토하지 못했지만, 위경련이 일어났고 시야가 흐릿해지며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배인호는 팔을 내 어깨에 두르고 손바닥으로 내 팔을 잡고 자기 차로 향했다. 그리고 나를 조수석에 앉혔다.“기억해.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아까 본 건 그냥 사고야.”배인호는 나의 얼굴을 잡고 부드럽지만 엄숙하게 말했다.“
“응, 나도 알아. 만약 정말로 나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명확히 밝힐 거야.”지금은 별 생각이 없었다. 오늘 받은 충격이 커서 일시적으로 머릿속이 텅텅 비었다.정아와 나는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배인호에 대해 언급했다.배인호가 나를 데리고 가는 장면을 정아와 노성민이 목격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또 배인호가 아직도 나에게 감정이 남아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지영아, 너 잘 생각해야 해. 배인호는 정말 나쁜 남자야.”배인호에 대한 정아의 의견은 이미 최고봉에 이르렀다. 나에게 절대로 뒤돌아 보지 말라고 반복해서 당부했다.나도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많은 일들은 더 이상 나의 생각대로 할 수 없었고 한단계 한단계 상황을 봐야했다.“그래, 알겠어. 일찍 자.”나는 조금 피곤해서 눈꺼풀이 내려왔다.정아도 하품을 했다.“응, 잘자.”통화를 끝내고 나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하지만 조금 자다가 악몽을 꾸었다. 꿈에서 나는 피범벅이 된 채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도시아를 봤다. 나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깨어났을 때 등은 이미 젖어 있었고 밖에는 찬란한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함숨을 쉬고 서둘러 샤워를 했다.샤워를 마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기사를 검색하는 것이었다. 여전히 도시아의 자살에 관한 소식은 없었다. 고민을 하다가 배인호에게 전화를 걸었다.나의 목적은 간단했다. 배인호에게 막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다. 도시아가 자기 목숨으로 내게 복수를 했다면 나도 모른척 할 수는 없었다. 사실이 밝혀지면 옳고 그름은 자연스럽게 결과가 날 것이다. 이렇게 계속 막고 피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 터지기만 하면 내가 받을 의심과 타격은 더욱 심각할 것이다.배인호는 나의 이유를 듣고 반대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나보다 더 이성적인 사람이니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알겠어. 만약 감당하지 못하겠으면 꼭 나한테 말해.”배인호는 더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에게서 전생에 그가 서란
다른 사람들의 의심과 비난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나는 오직 재계에서 나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지 않게 신경 썼다.만약 도시아의 죽음이 우리 회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마침 오늘 재계 인사들이 모두 모여 있으니 나는 바로 증거를 보여주며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루머들을 뒤집었다.도시아가 나를 만나러 온 날, 회사에서 있었던 모든 일이 CCTV에 담겨 있었다. 목소리까지 전부 선명하게 들렸다. 도시아가 나에게 자기를 살려준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고집했다는 것을 증명했다.이것으로 다른 루머들은 기본적으로 정리가 되었다.“여러분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더 심각해지는 것을 막고 진실이 묻히는 것을 막기 위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김서형의 도움으로 나는 침착하게 설명했다.“어떤 사람들은 다른 의도를 가지고 이 사건을 이용하여 저를 비방하고 제 개인적인 명예를 훼손하려고 합니다.”나는 민예솔을 흘끗 보았고 다른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눈치를 챘을 것이다. 방금 내가 오자마자 민예솔이 큰 소리로 내게 묻는 것을 많은 사람이 들었을 것이다.민예솔은 표정이 굳어졌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든지 신경 쓰지 않고 꿋꿋이 서 있었다.오히려 민예솔 옆에 있던 서란이 그녀보다 더 창피해하며 시선을 피했다.현재 서울시에서 나는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우리 가문의 기업을 내가 이끌고 있었기에 일부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다. 나의 말이 끝나자, 누군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나를 믿고 응원해 주었다.오늘 밤 나의 목적은 회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미 달성했으니 더 이상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마침 모임도 끝났고 나는 자리를 떠났다.“허지영 씨.”엘리베이터가 도착하니 민예솔이 나를 불러세웠다. 하미선과 서란도 그녀의 뒤에 있었다. 우리 세 사람은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올랐다.한순간 짜증 나는 세 사람과 좁은 공간에 있게 되어 참
“집에 도착했어?”전화를 받자, 배인호는 바로 내게 물었다.“방금 도착했어요. 왜요?”나는 영문을 몰라 물었다. 사실 마음속으로 배인호가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이때 거실은 매우 조용했고,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배인호의 목소리가 매력적으로 들렸다.“보고 싶어. 이쪽으로 와.”늘 이성을 유지하고 싶었지만 요즘 들어 힘든 일이 많아서 가끔 우울해지기도 했다. 나와 배인호는 비밀 없는 친구가 되었고 어느새 많이 가까워졌다.배인호의 말을 듣자 나도 모르게 심장이 빨리 뛰었다. 처음에 설레던 감정을 되찾은 듯 그가 조금만 반응을 해주면 기쁘고 설레었다.나는 깊은 한숨을 쉬며 머릿속의 쓸데없는 설렘을 잠재우려고 했다.“됐어요. 너무 늦었어요. 샤워하고 쉴래요.”배인호는 잠시 머뭇거렸다.“와서 얼굴 보고 샤워하면 되잖아. 나한테 하고 싶은 얘기 없어?”하고 싶은 얘기는 있었다. 오늘 밤에 있었던 일에 대한 배인호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일단 저지르고 알려주는 느낌이 있었지만 내가 잘 못한 건 없다고 생각했다.민예솔은 앞으로 내 앞에 나타날 기회가 없을 것이다. 서란이 그녀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서란은 분명 방법을 찾아 눈엣가시 같은 사람을 없애 버릴 것이다.나는 만날 핑계를 찾은 듯 옆집으로 향했다.배인호는 정원의 벤치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원에 있는 아름다운 디자인의 가로등이 연한 노란색의 불빛을 내고 있었다. 몽롱한 베일이 그를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한 폭의 유화처럼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양심적으로 말해서 눈은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이 남자를 죽도록 미워하지만, 그의 지나치게 매력적인 외모를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아는 전에 내가 단순하게 남자 외모를 좋아해서 배인호의 겉모습에 반한 것이라고 솔직하게 평가했었다.그 평가는 여전히 정확했다.“가만히 서서 뭐 해? 이리 와. 안아보게.”배인호는 나를 보고 손가락을 들어 올려 오라고 손짓했다. 그 모습이 마치 사람을
배인호는 나의 옆구리를 힘을 적당하게 주어 매혹적으로 문질렀다.그는 한숨을 쉬었다.“나도 네 앞에서 성숙한 남자처럼 보이고 싶어. 그런데 그런 건 다 소용없더라고. 10년 전에도 그렇게 보였지만 결국 이혼하게 됐잖아. 나는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고 싶지 않아.”“그렇게 괴로워하지 말아요. 예전에 내가 당신을 조금만 건드려도 당신은 질색했어요.”나는 예전에 꼬리를 흔들던 시절을 생각했다. 죽음을 겪은 기억도 다시 떠올라 괴로웠다.배인호의 눈빛에 무력감이 스쳐 지나갔고 웃으며 말했다.“지금 복수하는 거야? 괜찮아. 이제부터 나에게 복수 할 기회를 더 많이 찾아보는 게 어때?”그는 나의 대답 따위는 기다리지 않았다. 배인호는 손을 뻗어 나의 뒷머리를 잡은 뒤, 살짝 힘을 주어 끌어당겨 고개를 숙이게 만들고 자기 입술에 닿게 만들었다. 나의 입술 사이로 바로 담배 냄새가 가득 퍼졌다.2, 3분 만에 나는 그를 밀쳐내던 것을 멈추고 그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배인호도 나의 반응을 알아차린 뒤 가볍게 나를 안아 들고 거실로 들어갔다.이젠 거실 소파를 보기만 해도 다리에 힘이 빠졌다. 또다시 여운이 남는 밤이 될 것 같았다.기선혜는 내가 아침 일찍 밖에서 돌아오는 상황이 익숙한 것 같았다.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나에게 인사를 하고 더 묻지 않았다. 조금 불안하던 마음이 그녀의 담담한 모습을 보고 더는 안절부절하지 않았다.그날 밤, 홍보부는 내가 지시한 모든 일을 거의 다 마쳤다. 도시아의 부모님은 폭풍우처럼 쏟아지는 비난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나는 방관자일 뿐이고 이제 더는 다른 사람을 동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도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반대로 이우범은 이번 사건으로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그의 이미지가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많은 사람은 그가 마음속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나뿐이고, 도시아와의 약혼은 강제로 하게 된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도시아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비관하여 죽음을 택
“억지로 속일 필요 없어.”배인호가 퍽 난감한 듯 웃더니 말했다.“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내가 모를 줄 알아? 내 이용 가치가 끝나면 떠날 생각 하고 있었던 거지? 근데 내가 너무 많은 걸 해주면 너 못 떠나게 할까 봐 걱정하는 거고?”나는 가끔 배인호가 심리 상담의를 하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한다.이렇게 대놓고 까밝혀지니 나도 뻘쭘했다. 비록 만나서 얘기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 얼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원해서 당하는 상황이어서 눈감아 주면 몰라도 배인호처럼 총명한 사람이 쉽게 이용당할 리가 없었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무슨 말을 하든 가식적으로 보일 게 뻔하기 때문이다.“너랑 너희 어머니가 아버지 만날 수 있게 손은 써둘게. 근데 한 3일 후여야 해. 나 아직 해외거든.”배인호는 나에게 이 사실을 인정하라고 하지 않았고 오히려 먼저 입을 열어 나를 안심시켰다.이렇게 세심하게 배려를 해주니 나는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었다.나는 매일 전생의 비극과 잃어버린 그 아이를 생각하며 이성적이어야 한다고 다짐했다.“알겠어요, 고마워요.”나는 최대한 당당해 보이게 말했다. 그냥 이 모든 게 그가 나에게 주는 보상이라 생각하기로 했다.“너랑 나 사이에 고맙다고 할 필요 없어. 날 떠날 계획인 거 알지만 그래도 최대한 그 생각을 바꿀 수 있게 노력해 볼 거니까.”배인호의 목소리는 여유로우면서도 부드러웠다.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배인호가 딱히 다른 방법을 생각하지 않아도 나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간단하게 몇 마디 더 얘기를 나누다가 전화를 끊었다.배인호는 늘 업무 효율이 빠른 편이었다. 3일 후 나와 엄마는 아빠를 만날 수 있었다. 주로는 두 분이 얘기를 나누고 나는 옆에서 기다렸다.아빠는 안에서 크게 고생하지 않는다고 했고 오히려 예전에 출근할 때보다 더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일부러 괴롭히고 꼽주는 사람만 없으면 거의 심신 수양과 마찬가지라고 했다.아빠가 걱정하는 건 감옥살이하면서 아빠의 명예에
나는 말문이 막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배인호가 병원에 엄마를 보러 간 적은 있다. 전에 간병인 아줌마가 말해준 적 있었다.하지만 엄마가 다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러면 이웃집 일도...“전에 배인호가 자주 옆집에 와서 쉬던데, 만나러 갔었지?”역시 엄마는 이것도 다 알고 있었다.나는 이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예 몰랐다. 그래서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그러자 순간 엄마의 안색이 나빠지기 시작했고 화가 난 듯 보였다.엄마는 얼굴을 굳히고 한참을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고 결국은 내가 다 털어놨다.“엄마, 그냥 내가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아빠 일 도와줄 수 있는 사람 인호 씨뿐이에요.”“너 설마 너를 조건으로 건 거야?”엄마의 화가 더 깊어졌다.“아니, 아니에요. 우리 별다른 일 없었어요. 그냥 인호 씨는 지금 전에 한 잘못들을 만회하고 싶은 것뿐이에요.”나는 엄마가 흥분할까 봐 두려워 얼른 해명했다. 거짓말하기는 했지만, 엄마가 화병이 나는 것보다는 나았다.엄마는 내 말을 듣더니 한시름 놓은 듯 보였다. 하지만 안색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지영아, 아빠가 계속 감옥에 있더라도 난 네가 그런 짓까지 하는 건 싫어.”하지만 난 아빠가 감옥에 계속 있는 게 싫었다. 그리고 기선우 일도 나는 진실을 밝혀 제대로 눈감을 수 있게 해주고 싶다.기선우와 아빠의 일은 모두 서란과 엮어있고 피해 갈 수 없다.나는 잠깐 침묵하고는 대답했다.“엄마, 아빠뿐만이 아니에요. 선우도 있어요. 엄마도 알잖아요. 내가 선우를 동생처럼 생각했다는 거. 걱정하지 마세요. 진짜 인호 씨와 사귀는 일은 없을 거예요. 일이 다 잘 해결되면 그때 제가 인호 씨한테 잘 얘기하면 돼요.”“그래, 꼭 말한 대로 해. 난 네가 배인호와 선만 잘 그을 수 있다면 회사도 필요 없어. 그냥 우리 세 가족이 여기를 떠나면 돼.”회사도 필요 없다니, 엄마의 말에 나는 크게 놀랐다.내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엄마가 진지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