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예가 자신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하예와 서원준이 헤어진 지 6년째 되던 해였고 한가족이 된 지 6년째 되던 해였다.하예는 급히 집으로 가서 원준의 서재로 달려갔다.“정말 고씨 집안 아가씨랑 결혼해?”원준은 차갑게 웃으며 대답했다.“넌 내가 잘되는 꼴을 못 보니?”하예는 무슨 말로 반박할지 몰라 그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원준의 차가운 눈빛에 하예는 원준이 예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자신을 미워한다고 느꼈다.하예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근데 고씨 집안 아가씨 좋은 사람 아닌데?”하예는 원준을 좋아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원준의 미래 아내는 악명이 자자한 사교계의 꽃이면 안 된다.“너는? 불륜녀의 딸이 그럼 좋은 사람인가?”원준은 마치 하예의 마음을 들여다보듯 그녀를 째려보았다.원준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불빛이 그의 몸을 내리비췄다.얼굴이 반만 불빛에 비쳤고 머리에 가려져 하예는 원준의 표정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송하예, 서씨 집안의 모든 일은 너랑 상관없어.”“근데 나 한 번도...!”하예는 자신이 서씨 집안의 재산을 탐내지 않는다고 해석하고 싶었다.그러나 원준은 하예의 설명을 듣지도 않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오빠.”정장을 차려입은 원준이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승냥이처럼 하예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방금 뭐라고 했어?”하예는 전에 어머니인 김설아가 재혼한다고 해서 상대방 가족을 만나러 갔을 때, 사람 중에 원준이 있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그녀는 그 뒤로 원준과 잘 지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원준이 계속 하예를 미워하고 있었다.원준은 학교의 사람들을 시켜 하예를 괴롭히고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며 나쁜 소문을 퍼뜨렸다.그래도 하예는 자존심 때문에 원준을 오빠라고 부르지 않았다.오빠라고 부르면 두 사람한테 정말 미래가 없을까 봐 두려웠다.“오빠, 우리 그만 싸우자. 응?”하예는
김설아는 하예한테 원준과 싸웠냐고 물어보지 않고 그저 얼굴에 왜 피가 묻어있냐고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하예는 익숙한 듯 무서운 장면이 떠올랐다.그때는 김설아가 재혼하기 전, 친아버지인 송권호가 가정 폭력을 해서 남긴 흔적이었다.하예는 김설아를 걱정시키기 싫어 웃으며 몸에 열이 나서 코피가 난 것이라고 둘러댔다.그 말을 들은 김설아는 한숨을 돌리고 하예 보고 얼른 가서 쉬라고 했다.하예는 고통을 참으며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웠지만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진통제를 먹고 눈을 감은 뒤, 하예는 잠을 자려고 노력했다.‘잠이 들면 안 아플 거야.’꿈속에는 자꾸 화를 내는 원준도 없을 것이고 자꾸 우는 김설아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얕은 잠에 들자, 하예는 원준과 가장 달콤했던 시기로 돌아간 것 같았다.그때, 하예는 남부의 못 사는 동네에서 살고 있었고 원준과 순수하게 연애했었다.그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목적 없이 거리를 돌아다녔다.하예는 집안 상황을 설명하지 않았고 원준도 집에 돈이 많다고 얘기하지 않았다.두 아이는 다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났기에 서로 의지했다.원준은 자신이 미래에 노력해서 아버지가 자신을 우러러보게 만들겠다고 했고 하예는 김설아가 가정 폭력을 행사하는 송권호와 이혼했으면 좋겠다고 했다.하예가 이런 말을 했을 때, 원준은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원준은 하예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그녀를 품에 안고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원준이 하예에게 맹세했다.“송하예, 내가 있으니까, 앞으로 무서워하지 마.”하예는 그때의 감정을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그저 심장이 아주 아팠다.그날 원준의 셔츠가 하예의 눈물에 가득 젖어버렸다.하예는 원준과 이렇게 한평생 행복하게 살 거로 생각했는데, 원준이 어느 날 갑자기 이별을 통보했다.하예는 헤어지기 싫어 울며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원준은 그저 하예가 싫어졌다고 했다.하예는 이런 말을 믿을 수 없어 다시 원준을 쫓아다니기 시작했다.산에 가서 밤을 캐다가 손으로 껍질을 깠고 피가
‘원준이 내가 그렇게 죽었으면 하는데, 마지막으로 서프라이즈 해주지 뭐.’“누가 너 다이어트 하지 말래? 굶어 죽어!”원준은 하예를 건너 물 한 컵 떠서 탁자 위에 놓았다.“너 봐서 정말 짜증 나. 이럴 줄 알았으면 안 오는 건데!”원준은 하예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을 증오해서 부어놓은 물도 마시는 것을 깜빡하고 급히 외투를 챙겨 저택에서 나갔다.원준의 미움을 받는 생활을 하예는 6년이나 겪었다.‘난 도대체 무슨 힘으로 버텨낸 거지?’컵의 물이 일렁이는 것을 본 하예는 참지 못하고 한 모금 마셨다. 익숙한 온도였다.그 순간 하예의 시야가 흐릿해졌다. 사실 하예도 원준과 헤어진 뒤에 예전처럼 원준을 따라다닌 이유가 뭔지 알지 못했다.진흙탕 속에 빠져있던 하예에게 구원의 손길을 건네줘서? 아니면 고통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서?원준이 하예에게 준 일 년이 6년의 고통을 이기게 해 주었다.하예는 자신이 간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정말 원준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곧 죽기 때문에 하예는 그냥 계속 사랑하기로 했다.마치 자신이 쓴 각본처럼,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이 정말 순수한 사랑을 했었다고 소리칠 수 있다고 말이다. 병원의 산부인과에서 원준을 다시 만났다.하예는 친구 허안나의 검진을 위해 왔고 원준은 예비 아내인 고유미의 검진을 위해 왔다.하예는 빛을 보면 안 되는 쥐처럼 숨을 곳을 찾았다. 그러나 행동이 너무 이상해서 주위의 사람들이 다 이상한 눈길로 하예를 바라보았다.어떤 사람은 하예를 피하고자 돌아서 갔다.그러나 하예는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머릿속에 원준이 웃으며 유미를 바라보던 모습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하예는 아주 오랫동안 원준이 그렇게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원준은 항상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고 목소리도 차가웠다.하예는 일을 시작하면 누구나 다 그렇게 차가워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하예의 착각이었다.원준은 그저 하예한테만 차갑게 대했다.
안나는 웃으며 대답했다.“응, 꼭 더 살아.”‘미안해, 나 거짓말했어.’하예는 미안한 듯 속으로 사과했다. 그녀는 자신의 병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친구에게도 거짓말을 했다. 하예에게 제일 길어 아직도 한 달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피곤함에 찌들어 방에 돌아왔을 때,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인물이 있는 것이었다.방에는 토가 나올 듯한 담배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하예가 습관적으로,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했다.그래서 하예는 원준의 발걸음 소리도 듣지 못했다.그녀는 꿇고 앉아 변기의 물을 내렸다.“너 임신했어? 나 몰래 언제 임신한 거야? 짐승 데리고 들어와 재산 나눠 가지게?”원준은 하예를 벽으로 밀쳤다. 그는 눈가가 빨개서 하예의 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송하예, 너 우리 집안에 남고 싶으면 그 아이 당장 없애! 안 그러면 너랑 너희 엄마 다음 달에 내쫓을 거야!”말을 마친 원준은 더럽다는 듯이 하예의 손을 뿌리쳤다.“온몸에 뼈밖에 안 남은 게 어떤 놈이 좋다고.”구토해서인지 하예의 머리가 제대로 돌지 않았다. 그녀는 한참 지나서야 원준이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됐다.‘원준이 내가 산부인과 가서 임신한 줄 알았나? 그럼, 걔는? 원준은 고유미랑 아이가 생겨서 기쁘겠지. 원준이 아까 한 말을 통해서 확실히 알겠네. 6년 전에 우리 아이를 없애라고 했을 때, 내가 싫어졌으니, 뱃속의 아이도 싫었겠지.’행복 속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이 세상에 와도 고통만 받는다.하예는 홀쭉해진 배를 만지며 속삭였다.“아기야, 미안해. 6년 전에는 엄마가 잘못했어.”“너 혼자서 저승에서 잘 지내야 해. 엄마도 곧 갈 거니까, 더 이상 외로워하지 않아도 돼.”하예는 벽을 짚고 힘겹게 일어났다. 방금 토해낸 피를 보고 하예는 조금 당황했다.‘서원준이 설마 이거 봤을까?’하예는 변기의 물을 내리고 입가의 피를 닦고 천천히 화장실에서 나왔다.그러나 원준이 아직 가지 않을 것을 발견했다.원준은 조용히 하예
이 사진은 하예와 원준이 같이 찍은 유일한 사진이다.‘이거 남겼다가 내가 죽은 다음에 태워야지. 아기가 아빠 어떻게 생겼냐고 물으면 이 사진 꺼내서 보여줄 수 있잖아? 아기한테 너한테는 이렇게 사랑하던 엄마, 아빠가 있었다고 얘기해 줄 거야.’원준을 다시 만났을 때, 원준은 멋있고 예의 바른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원준은 손님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유미한테도 수시로 간식을 챙겨주었다.유미가 이런 자리에 있기 싫다는 티를 내자, 원준이 유미에게 귓속말로 무슨 얘기를 하자, 그녀는 바로 표정이 밝아졌다.하예는 유미가 돌아가서 휴식을 할 줄 알았는데, 하예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다.“하예 동생? 원준이가 저 심심할까 봐 와서 놀래요.”유미는 온실 안의 화초처럼 해맑게 웃고 있었다.그러나 하예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조금 불러있는 유미의 배로 향했다.“유미 씨, 오빠랑 행복하게 사시고 예쁜 아기 낳으세요.”하예는 유미가 좋아할 줄 알았는데, 유미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어떻게 알았어요? 원준이 얘기했어요? 이 일도 얘기했어요?”유미는 짜증 난다는 듯이 치마를 들고 원준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하예는 유미가 화가 난 것을 보고 작은 소리로 사과했다.‘원준이 드디어 원하던 행복한 가정을 꾸렸으니 내가 기뻐해야 하는데.’유미가 원준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두 사람이 베란다에서 싸우기 시작했다.곧이어 원준이 하예한테로 다가오더니 손목을 끌면서 사람이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송하예, 넌 내가 안 좋은 꼴 당했으면 좋겠어?”하예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알지 못했다.“내가 특별히 너 보고 예쁘게 입고 오랬는데, 이렇게 나한테 복수해?”원준은 하예를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말했다.“우리 집에서 너 적게 먹이고 적게 입혔어?”하예는 미안한 듯 고개를 숙였다.‘나 최선 다했어.’여자라면 누구나 다 예뻐 보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간암 말기가 하예의 정신을 빼앗아 갔고 예쁘던 몸매까지 앗아갔다. 하예는 점점 추위를 타서 패딩을 꺼내 입
‘나?’하예는 코를 한번 만져보고는 익숙한 듯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닦기 시작했다.그러나 이번에는 전보다 훨씬 심해서 그런지 아무리 막아도 멈추지 않았다.“몸에 열나서 그래? 이렇게 나이 먹고도 아직도 자기 몸 제대로 못 챙기냐?”원준은 하예의 손에 들었던 휴지를 가져다가 세심하게 하예의 얼굴을 닦아주었다.원준의 세심한 모습에 하예는 의아했다.하예의 눈은 깊이 들어가 있었고 창백한 낯빛에 두꺼운 패딩에 피 묻은 얼굴까지, 이런 그녀지만 원준의 챙김을 받은 것이다.원준은 항상 이렇게 차가웠다가 따듯했다. 하예가 포기하려고 하면 따듯하게 대해줘서 그녀가 용기를 가질 수 있게 했다.“됐어, 다음에는 나 좀 기 살려줘!”원준은 결혼식 때도 하예가 패딩을 입고 올까 봐 시름이 안 놓인다는 듯 재차 강조했다. 말을 마친 원준이 그 자리를 떠났다.하예는 멀어져가는 원준의 뒷모습을 보고 자신의 병을 알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얼마 남지 않은 날 동안 하예는 원준과 함께이고 싶었다.하예는 높은 소리로 원준을 불렀다.“서원준!”원준이 차가운 얼굴을 하고 고개를 돌렸다.하예는 유미가 원준의 팔짱을 끼고 웃으며 애교를 부리는 모습을 보고 용기가 사라졌다.“뭐 중요한 일이라도?”“아니야, 그냥 한 번 더 보고 싶어서.”‘나 얼마나 오랫동안 원준을 자세히 보지 못했지?’원준은 예전의 원준이 아니다. 예전의 순수함이 사라졌다.“왜? 앞으로 나랑 연락 안 하게? 너희 엄마랑 네가 나한테 빚진 거 평생 갚아도 다 못 갚을걸?”‘이번 생에 다 못 갚으면 다음 생에 계속 갚지, 뭐.’시야가 희미해졌지만, 하예는 원준이 오른손을 조물조물하는 것을 발견했다.이것은 원준이 거짓말을 할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하예는 원준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응.”하예는 원준이 곧 결혼하니까 자신의 병 때문에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하예는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병실의 침대에서 보냈다. 원래 혼자 조용히 죽으려고 했는데, 안나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병원에
안나는 하예의 마지막 유언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안나는 하예가 말을 마치자마자 화가 난 호랑이처럼 말했다.“다른 사람들은 다 고려해 놓고 넌? 너 자신은 고려했어?”안나는 예전의 꾸미기 좋아하던 모습은 다 사라지고 슬프게 울고 있었다.하예는 안나의 눈물을 닦아주며 울지 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너무 피곤해서 다른 세상으로 가야 했다.하예는 자신을 위해 울어주는 안나를 보고 마음이 아팠지만, 너무 힘들어서 위로해 줄 수 없었다. 하예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뜰 때, 천국에 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하예는 죽은 뒤, 영혼으로 이 세상에서 떠돌았다.하예는 자신의 시체에 엎드려 울면서 욕하고 있는 안나를 보았다.“송하예, 아기가 이모 안아주길 기다리는데, 왜 먼저 죽냐고!”하예는 평평해진 심전도의 선을 보고 한숨을 돌렸다. 왜냐하면 간암 치료를 받을 때 너무 고통스러웠다. 부분적인 간을 베어내고 의사가 해라는 치료는 다 했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머리는 한 줌씩 빠졌지만, 하예는 머리를 밀고 싶지 않았다.하예는 자신이 죽은 뒤의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났다.‘너무 못생겼는데? 안나는 왜 내 이런 모습을 보고 안 웃었지?’그러나 하예는 자신이 정말 죽었다는 것을 깨달은 뒤에 안쓰러운 듯 안나를 끌어안았다.안나는 무슨 느낌을 받은 듯 하예가 있는 곳을 보면서 말했다.“송하예, 너 혹시 여기 있으면 나한테 바람 불어 봐.”‘쟤는 정말 순진하네. 내가 귀신이 돼서 뭐 바람을 불 수 있겠어? 내가 뭐 신도 아니고.”그러나 이때 마침 바람이 불어왔다. 그러자 안나의 눈에서 빛이 났다.“나 그럴 줄 알았어. 네가 어떻게 날 혼자 두고 갔겠어?”안나는 울면서 또 웃었다.“걱정하지 마, 내가 어머니 잘 보살펴 드릴게. 아기도 잘 보고 할게. 남자 아기든 여자 아기든 이름은 서예로 지을게. 응?”안나는 바람이 불어온 곳에 대고 혼잣말을 했다. ‘만약 남자 아기라면 이제 큰 다음에 이런 여성스러운 이름 싫어할 거야.’바람이 더 이상 불어오지 않
“내가 하고 싶어서 그런다, 왜? 누구처럼 지나간 일 갖고 안 그래.”여기까지 말한 안나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목이 메어 소리가 점점 낮아졌다.원준은 입술을 깨물며 안나가 들고 있는 물건을 바라보았다. 제일 위에 놓인 두 사람이 같이 찍은 사진을 보고 원준은 깜짝 놀랐다.“송하예가 그 사진 예전에 버렸는데?”“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 먼저 갈게!”안나는 하예가 원준 앞에서 그 사진을 버린 일을 모르고 있었기에 그저 하예와 한 약속을 지키는 데 집중했다.원준은 재빨리 그 사진을 빼앗아 갔다.“이거 진작에 버려야 되는 건데, 네가 왜 가져가!”“너! 나쁜 자식! 넌 이게 하예한테...!”안나는 뒤에 하려던 말을 삼켜버렸다.“걔 뭔데?”원준이 물었다.“아니야, 네가 갖고 싶으면 가져! 아무튼 하예는 이런 거 다시는 아끼지 않을 테니까!”안나는 더 이상 아무렇지 않은 듯 연기하기 어려워 남은 물건을 들고 저택에서 도망쳤다.원준은 하예와 찍었던 사진을 보고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진 위에는 채 닦지 못한 피가 묻어 있었는데, 마침 하예의 얼굴에 묻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빨갛던 피가 진한 빨간색으로 변해 있었다.하예는 왜 영혼이 안나를 따라 저택을 떠나지 않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어떠한 예감이 왔다. 하예는 자신이 다음 생에 원준의 곁에 있는 어떤 인물로 다시 태어날 것 같았다.하예는 원준이 사진을 바로 쓰레기통에 버릴 줄 알았다. 그러나 원준은 손에 들었던 사진을 꾸깃꾸깃 접어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 서재로 갔다.원준의 서재는 저택에서 누구도 드나들 수 없는 곳이다.원준이 문을 열었을 때, 너무 놀라 코를 잡고 저번에 하예가 넘어졌던 곳을 바라보았다.그때 하예가 너무 힘들어서 채 닦지 못하고 나왔다. 그곳은 마치 살인 현장처럼 피가 아무렇게 발라져 있었다.원준은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한참 지난 뒤, 원준은 그 피를 피해 탁자 앞에 앉아 핸드폰을 들고 한참 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