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은 하예와 원준이 같이 찍은 유일한 사진이다.‘이거 남겼다가 내가 죽은 다음에 태워야지. 아기가 아빠 어떻게 생겼냐고 물으면 이 사진 꺼내서 보여줄 수 있잖아? 아기한테 너한테는 이렇게 사랑하던 엄마, 아빠가 있었다고 얘기해 줄 거야.’원준을 다시 만났을 때, 원준은 멋있고 예의 바른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원준은 손님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유미한테도 수시로 간식을 챙겨주었다.유미가 이런 자리에 있기 싫다는 티를 내자, 원준이 유미에게 귓속말로 무슨 얘기를 하자, 그녀는 바로 표정이 밝아졌다.하예는 유미가 돌아가서 휴식을 할 줄 알았는데, 하예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다.“하예 동생? 원준이가 저 심심할까 봐 와서 놀래요.”유미는 온실 안의 화초처럼 해맑게 웃고 있었다.그러나 하예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조금 불러있는 유미의 배로 향했다.“유미 씨, 오빠랑 행복하게 사시고 예쁜 아기 낳으세요.”하예는 유미가 좋아할 줄 알았는데, 유미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어떻게 알았어요? 원준이 얘기했어요? 이 일도 얘기했어요?”유미는 짜증 난다는 듯이 치마를 들고 원준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하예는 유미가 화가 난 것을 보고 작은 소리로 사과했다.‘원준이 드디어 원하던 행복한 가정을 꾸렸으니 내가 기뻐해야 하는데.’유미가 원준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두 사람이 베란다에서 싸우기 시작했다.곧이어 원준이 하예한테로 다가오더니 손목을 끌면서 사람이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송하예, 넌 내가 안 좋은 꼴 당했으면 좋겠어?”하예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알지 못했다.“내가 특별히 너 보고 예쁘게 입고 오랬는데, 이렇게 나한테 복수해?”원준은 하예를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말했다.“우리 집에서 너 적게 먹이고 적게 입혔어?”하예는 미안한 듯 고개를 숙였다.‘나 최선 다했어.’여자라면 누구나 다 예뻐 보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간암 말기가 하예의 정신을 빼앗아 갔고 예쁘던 몸매까지 앗아갔다. 하예는 점점 추위를 타서 패딩을 꺼내 입
‘나?’하예는 코를 한번 만져보고는 익숙한 듯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닦기 시작했다.그러나 이번에는 전보다 훨씬 심해서 그런지 아무리 막아도 멈추지 않았다.“몸에 열나서 그래? 이렇게 나이 먹고도 아직도 자기 몸 제대로 못 챙기냐?”원준은 하예의 손에 들었던 휴지를 가져다가 세심하게 하예의 얼굴을 닦아주었다.원준의 세심한 모습에 하예는 의아했다.하예의 눈은 깊이 들어가 있었고 창백한 낯빛에 두꺼운 패딩에 피 묻은 얼굴까지, 이런 그녀지만 원준의 챙김을 받은 것이다.원준은 항상 이렇게 차가웠다가 따듯했다. 하예가 포기하려고 하면 따듯하게 대해줘서 그녀가 용기를 가질 수 있게 했다.“됐어, 다음에는 나 좀 기 살려줘!”원준은 결혼식 때도 하예가 패딩을 입고 올까 봐 시름이 안 놓인다는 듯 재차 강조했다. 말을 마친 원준이 그 자리를 떠났다.하예는 멀어져가는 원준의 뒷모습을 보고 자신의 병을 알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얼마 남지 않은 날 동안 하예는 원준과 함께이고 싶었다.하예는 높은 소리로 원준을 불렀다.“서원준!”원준이 차가운 얼굴을 하고 고개를 돌렸다.하예는 유미가 원준의 팔짱을 끼고 웃으며 애교를 부리는 모습을 보고 용기가 사라졌다.“뭐 중요한 일이라도?”“아니야, 그냥 한 번 더 보고 싶어서.”‘나 얼마나 오랫동안 원준을 자세히 보지 못했지?’원준은 예전의 원준이 아니다. 예전의 순수함이 사라졌다.“왜? 앞으로 나랑 연락 안 하게? 너희 엄마랑 네가 나한테 빚진 거 평생 갚아도 다 못 갚을걸?”‘이번 생에 다 못 갚으면 다음 생에 계속 갚지, 뭐.’시야가 희미해졌지만, 하예는 원준이 오른손을 조물조물하는 것을 발견했다.이것은 원준이 거짓말을 할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하예는 원준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응.”하예는 원준이 곧 결혼하니까 자신의 병 때문에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하예는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병실의 침대에서 보냈다. 원래 혼자 조용히 죽으려고 했는데, 안나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병원에
안나는 하예의 마지막 유언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안나는 하예가 말을 마치자마자 화가 난 호랑이처럼 말했다.“다른 사람들은 다 고려해 놓고 넌? 너 자신은 고려했어?”안나는 예전의 꾸미기 좋아하던 모습은 다 사라지고 슬프게 울고 있었다.하예는 안나의 눈물을 닦아주며 울지 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너무 피곤해서 다른 세상으로 가야 했다.하예는 자신을 위해 울어주는 안나를 보고 마음이 아팠지만, 너무 힘들어서 위로해 줄 수 없었다. 하예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뜰 때, 천국에 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하예는 죽은 뒤, 영혼으로 이 세상에서 떠돌았다.하예는 자신의 시체에 엎드려 울면서 욕하고 있는 안나를 보았다.“송하예, 아기가 이모 안아주길 기다리는데, 왜 먼저 죽냐고!”하예는 평평해진 심전도의 선을 보고 한숨을 돌렸다. 왜냐하면 간암 치료를 받을 때 너무 고통스러웠다. 부분적인 간을 베어내고 의사가 해라는 치료는 다 했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머리는 한 줌씩 빠졌지만, 하예는 머리를 밀고 싶지 않았다.하예는 자신이 죽은 뒤의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났다.‘너무 못생겼는데? 안나는 왜 내 이런 모습을 보고 안 웃었지?’그러나 하예는 자신이 정말 죽었다는 것을 깨달은 뒤에 안쓰러운 듯 안나를 끌어안았다.안나는 무슨 느낌을 받은 듯 하예가 있는 곳을 보면서 말했다.“송하예, 너 혹시 여기 있으면 나한테 바람 불어 봐.”‘쟤는 정말 순진하네. 내가 귀신이 돼서 뭐 바람을 불 수 있겠어? 내가 뭐 신도 아니고.”그러나 이때 마침 바람이 불어왔다. 그러자 안나의 눈에서 빛이 났다.“나 그럴 줄 알았어. 네가 어떻게 날 혼자 두고 갔겠어?”안나는 울면서 또 웃었다.“걱정하지 마, 내가 어머니 잘 보살펴 드릴게. 아기도 잘 보고 할게. 남자 아기든 여자 아기든 이름은 서예로 지을게. 응?”안나는 바람이 불어온 곳에 대고 혼잣말을 했다. ‘만약 남자 아기라면 이제 큰 다음에 이런 여성스러운 이름 싫어할 거야.’바람이 더 이상 불어오지 않
“내가 하고 싶어서 그런다, 왜? 누구처럼 지나간 일 갖고 안 그래.”여기까지 말한 안나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목이 메어 소리가 점점 낮아졌다.원준은 입술을 깨물며 안나가 들고 있는 물건을 바라보았다. 제일 위에 놓인 두 사람이 같이 찍은 사진을 보고 원준은 깜짝 놀랐다.“송하예가 그 사진 예전에 버렸는데?”“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 먼저 갈게!”안나는 하예가 원준 앞에서 그 사진을 버린 일을 모르고 있었기에 그저 하예와 한 약속을 지키는 데 집중했다.원준은 재빨리 그 사진을 빼앗아 갔다.“이거 진작에 버려야 되는 건데, 네가 왜 가져가!”“너! 나쁜 자식! 넌 이게 하예한테...!”안나는 뒤에 하려던 말을 삼켜버렸다.“걔 뭔데?”원준이 물었다.“아니야, 네가 갖고 싶으면 가져! 아무튼 하예는 이런 거 다시는 아끼지 않을 테니까!”안나는 더 이상 아무렇지 않은 듯 연기하기 어려워 남은 물건을 들고 저택에서 도망쳤다.원준은 하예와 찍었던 사진을 보고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진 위에는 채 닦지 못한 피가 묻어 있었는데, 마침 하예의 얼굴에 묻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빨갛던 피가 진한 빨간색으로 변해 있었다.하예는 왜 영혼이 안나를 따라 저택을 떠나지 않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어떠한 예감이 왔다. 하예는 자신이 다음 생에 원준의 곁에 있는 어떤 인물로 다시 태어날 것 같았다.하예는 원준이 사진을 바로 쓰레기통에 버릴 줄 알았다. 그러나 원준은 손에 들었던 사진을 꾸깃꾸깃 접어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 서재로 갔다.원준의 서재는 저택에서 누구도 드나들 수 없는 곳이다.원준이 문을 열었을 때, 너무 놀라 코를 잡고 저번에 하예가 넘어졌던 곳을 바라보았다.그때 하예가 너무 힘들어서 채 닦지 못하고 나왔다. 그곳은 마치 살인 현장처럼 피가 아무렇게 발라져 있었다.원준은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한참 지난 뒤, 원준은 그 피를 피해 탁자 앞에 앉아 핸드폰을 들고 한참 멍
“하예는요? 오빠가 결혼하는데, 안 와요?”원준은 자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 앞에서 숨길 줄 아는 사람이다.서은택 앞에서는 오빠 역할 잘하는 원준이었고 김설아 앞에서는 착한 큰아들이었다.“하예? 걔는 내 메시지 답장도 안 해. 출국한다고 얘기도 없고, 통화도 안 하고.”김설아는 하예를 무척 걱정해 보였지만, 원준의 결혼식이라는 생각에 곧바로 말을 바꿨다.“안나가 하예 요즘 엄청나게 바쁘댔어. 교수님한테서 프로젝트 하나 맡아서 하느라고.”김설아가 웃는 모습을 보고 하예도 같이 웃었다.하예는 이 거짓말이 얼마나 더 유지될진 모르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버틸 수 있길 바랐다.“그래요? 하예 보고 와서 좀 도와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제 메시지도 답장을 안 해서요.”원준의 말투에는 실망이 담겨 있었다.김설아는 어렵게 쌓인 감정이 이렇게 깨질까 봐 다급히 하예를 위해 말했다. “얘는 독립적인 애라 그래. 너 너무 화내진 마.”“알겠어요.”원준은 예의 격식 차리며 대답한 듯 보이지만 사실 다 거짓말이었다. 하예가 원준을 따라 이렇게 여러 날 다녔는데, 한 번도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비록 하예가 답장을 보내지 않을 거지만 말이다.원준은 대충 대답하고 이층에 올라가 손님을 보았다. 이때 그의 눈에서 갑자기 빛이 났다.하예는 원준이 바라보는 곳을 보았다. 그곳에는 배가 나온 안나가 있었다.“네가 임신한 거야? 송하예가 아니고?”“무슨 소리야?”안나는 그런 원준을 노려보았다.“송하예는? 걔 출국했다면서 넌 왜 같이 안 갔는데?”“하예?”안나는 미소를 지으며 점차 원준의 의도를 알았다.“서원준, 너 다시는 송하예 못 보니까 속이 시원해?”“난 걔가 나한테서 멀리 떨어졌으면 좋겠어. 넌 이런 말로 날 자극할 수 있을 거 같아? 그러니까 너랑 하예가 같이 놀지, 다 상간녀 딸이니까!”원준은 또다시 오른손을 조물조물했다.“난 그저 걔가 또 갑자기 돌아와서 내 결혼식 망칠까 봐 그래.”“걱정하지 마, 하예 안 올 거
“그래서 너 아직도 못 믿는 거야?”안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만약 정말 안 믿으면 그러면 그냥 출국했다고 생각해.”안나가 하예가 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믿게 하고 싶었지만, 원준은 이 모든 것이 안나와 하예가 짠 판이라고 생각했다.“허안나, 너 지금 거짓말하는 거지?”“응, 내가 그냥 거짓말한다고 생각해. 어차피 안 믿을 거잖아.”안나는 더 이상 설명하기 싫었다. 하예의 일로 뒤처리하느라 힘들어서 임신 때문에 동글했던 얼굴이 갸름해졌다.안나가 가려고 하자, 원준이 안나의 손목을 잡았다.“이거 놔!”“안 돼. 송하예 일 제대로 얘기 안 해주면 가려고 하지 마!”원준이 목소리가 떨렸고 호흡도 가빠졌다.“나 말할 건 다 말했어. 너 남은 인생 송하예 볼 생각도 하지 마, 겁쟁이 자식!”“너 이렇게 말하고 입 다물지 마, 송하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나 다 얘기했어.”안나는 힘겹게 원준의 손을 떼내고 물티슈를 꺼내 원준이 만졌던 부분을 닦았다.“서원준, 나쁜 자식. 너희 엄마, 아빠가 전부터 감정이 안 좋은 줄 알면서 가정을 지킬 수 있을 줄 알았어? 너희 아버지께서 재혼한 게 하예랑 무슨 상관인데? 아버지를 탓하지는 못하면서 하예만 뭐라고 했잖아. 하예가 전생에 너한테 뭐 빚진 거라도 있어? 너 같은 걸 좋아한 하예가 무슨 죄야?”안나의 말은 점차 빨라졌고 점점 듣기 거북한 말이 나왔다. 그러나 안나는 말하다가 울기 시작했다.“서원준, 다 너 때문이야!”안나가 간 뒤, 원준은 그 자리에 한참 서 있었다.주위의 시끄러운 소리에 원준은 정신을 차렸다.하예는 순서에 따라 원준과 유미의 결혼식을 지켜보았다. 목사가 유미를 한평생 사랑할 거냐는 질문에 원준은 세 번째에서야 쉰 목소리로 그럴 거라고 대답했다.원준의 대답에 하예는 자신의 몸이 더욱 투명해진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이 곧 이 세상을 떠날 것 같았다.그날 밤, 원준은 혼자 서재에서 오랫동안 담배를 피웠다. 갑자기 무엇인가 떠오른 듯 서랍에서
원준은 깜짝 놀랐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서은택이 원준과 재혼에 대한 말을 꺼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서은택은 원준에게 자신과 이수지는 원래 계약 결혼이라 사랑하는 감정이 없었다고 얘기했다.그때 이수지가 여행을 가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이혼하자고 얘기해서 서은택이 동의했다. 그리고서 서은택이 김설아를 만났다. 그래서 사랑이 없는 혼인 관계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서은택의 말을 들은 원준은 눈이 빨개져 이를 악물고 서은택의 얼굴에서 거짓말을 한 흔적을 찾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찾지 못했다.서은택이 처음으로 원준에게 진지한 말을 꺼냈는데, 이 말에 원준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그래서 아줌마를 만났을 때, 아버지는 이미 어머니랑 이혼하신 상태였던 거예요?”서은택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네가 아직 어려서 말 못 했어. 근데 나랑 아줌마 곧 여행 가기로 했고 유학간 하예도 보려고.”“네.”원준은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아버지, 아줌마랑 잘 놀다 오세요. 전 일 때문에 먼저 가볼게요.”말을 마친 원준은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지, 차 키를 들고 급히 저택에서 도망쳤다.원준은 차를 엄청나게 빨리 몰아, 안나의 집에 도착했다.문이 열렸을 때, 두꺼운 옷을 입은 안나가 잠에 덜 깬 모습으로 서 있었다.원준이 찾아온 것을 보고 안나는 문을 닫으려 했다. 그러나 원준이 문을 못 닫게 팔로 막았다.“왜 왔어?”안나는 짜증이 난다는 듯 물었다.“너 아내랑 가서 놀지 여긴 왜 왔냐고?”“송하예 어디 갔어? 어디 숨은 거야?”원준은 하예가 정말 죽었는지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안나는 원준이 물은 의도를 파악했다.안나는 원준을 비웃으며 말했다.“서원준, 너 마음속에 답안 다 있잖아. 아니야?”“너 지금 거짓말하는 거잖아.”원준의 입술이 떨렸다. 원준은 안나의 두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원준의 차갑던 목소리가 갈라졌다.“송하예가 그렇게 아줌마를 사랑하는데, 왜 죽은 거 얘기 못 하게 했어?”하예는
말을 마친 안나는 원준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다급히 방에 들어가 우는 아이를 달랬다.그러나 하예와 안나의 예상 밖으로 원준도 따라서 들어간 것이다. 원준은 안나 품속에 있는 아이를 보고 힘겹게 웃으며 말했다.“예쁘게 생겼네, 이름 지었어?”“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가. 송하예에 대한 건 안 알려줄 거니까!”안나는 원준에 대해 경각심을 세웠다.“요 몇 달 너 송하예 보러 가지도 않았잖아. 넌 걔가 너 원망할 거라고 생각 안 해?”원준은 미친 듯이 소리쳤다.“송하예 어디다 묻었어? 당장 얘기해.”잔잔했던 분위기가 원준의 고함에 급격히 공포스러워졌다.안나 품속에 안겨있던 아기가 무엇을 감지한 듯 울기 시작했다. 아기의 울음소리에 원준은 정신을 차리고 사과했다.“미, 미안해.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난 그냥 송하예 보러 가고 싶어서.”원준은 귀여운 아기를 안으려고 손을 내밀었는데, 안나가 불안한 듯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결국 안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원준에게 다 알려주었다.안나가 원준을 데리고 하예가 묻힌 곳으로 왔을 때, 땅에는 이미 예쁜 꽃들이 가득 피어있었다.하예가 좋아하는 장미였다.하늘에서 갑자기 작은 비가 내려 조금 춥고 스산해 보였다.원준은 무릎을 꿇고 무덤 앞에 앉아 웃으며 말했다.“하예가 정말 아무 말도 안 남겼어?”“몇 번 물어보는 거야? 하예가 너 보고 더 이상 하예 미워하지 말래. 너 할 수 있겠어?”“나 할 수 없어. 어떡해?”원준은 한평생 자신과 함께하겠다던 여자가 이렇게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할 수 없으면 가서 죽던가!”안나는 심한 말을 하려다가 삼켜버렸다.“하예가 너 쫓아다닐 때 너 어떻게 행동했어? 하예가 자존심 다 버리고 했을 때, 넌 어떻게 하예한테 행동했는데? 하예를 비웃었던 것도 너고, 지금 후회하는 사람도 너야. 송하예 돌아오게 하고 싶으면 죽어서 갚아!”안나는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다 뱉었다.원준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안나는 미쳐가는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