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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고슴도치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1-01 20:30:30
내 몸은 산산조각이 나듯 바닥에 널브러졌고 본모습은 아예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만 나의 영혼은 허공에 붕 뜬 채 부서진 내 몸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전혀 슬프다거나 속상하진 않았다. 죽음은 지금 내게 일종의 해탈이니까.

그렇게 한참 허공을 떠다니고 있을 때 장은후가 도착했다.

그는 한 무리 경찰들 뒤에서 사진 찍고 기록하며 주변 사람들과 소통했다.

이때 경찰 중 한 명이 말했다.

“현장에서 일부 화약을 발견했습니다. 누군가가 직접 폭탄을 제작한 것 같습니다. 다만 아직 사망자 신원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장은후는 미간을 찌푸리고 내 시신을 바라봤다.

뜻밖에도 나는 가당치도 않은 갈망이 샘솟으며 가슴이 움찔거렸다.

나인 걸 알아보고 후회하진 않을까?

결국 나는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그를 빤히 쳐다봤다. 그의 두 눈동자에서 일말의 친숙함이라도 느끼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난 장은후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여자인 것 같군요. 입고 있는 옷 조각들이 최근에 유행하는 옷 스타일이에요. 20대에서 30대 사이의 실종자 여성분들을 조사해보세요.”

“자, 감식반 이리로 오세요.”

나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장은후는 끝내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랬다. 그는 애초에 나를 신경 쓰지 않으니 알아볼 리도 없었다.

사체수습을 마친 후 내 시신은 경찰서로 인도받았다.

내 영혼도 허공을 떠돌다가 장은후와 함께 차 뒷좌석에 올라탔다.

장은후는 조수석에 앉고 운전은 안시완이 했다. 이 남자는 그의 동료이자 그와 가장 친한 친구였다.

“은후야, 너 휴대폰 꺼놨어? 아까 서장님께서 너 연락 안 돼서 나한테 전화 오셨어.”

장은후는 불쾌한 일이라도 떠오른 듯 미간을 구겼다.

“이게 다 반서윤 걔 때문이잖아. 귀찮아 죽겠어 정말. 근무 시간에 전화하지 말라고 그렇게 경고했는데 한사코 전화 오는 거야.”

물론 귀가 닳도록 들어온 그의 말투이지만 혐오에 찬 얼굴까지 보고 있자니 여전히 질식할 따름이었다. 마치 누가 내 심장을 움켜쥐기라도 한 듯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안시완은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말했다.

“그래도 서윤 씨는 다 널 관심해서 그런 거겠지. 너무 뭐라 하진 마.”

장은후는 코웃음만 칠뿐 아무 말도 없었다.

휴대폰 전원을 켜자 내가 보낸 메시지가 가장 먼저 화면에 떴다.

이제 드디어 나의 이상한 낌새를 알아챈 걸까? 나는 저도 몰래 가슴이 움찔거렸다.

이때 장은후가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이런 게 관심이라고? 영원히 보지 말자는데?”

그는 곧장 내게 전화를 걸었지만 알다시피 난 이젠 받을 수가 없었다.

통화가 연결되지 않으니 그의 표정이 더 일그러졌다.

“그래 알았어. 웬만하면 썩 멀리 꺼져버려. 평생 돌아오지 마!”

곧이어 내 번호를 서슴없이 블랙리스트에 넣어버렸다.

내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단 일 초라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심장을 바늘로 콕콕 찌르듯 아팠지만 나는 그 어떤 리액션도 할 수가 없었다.

진작 알아챘어야 했다.

장은후는 내가 안중에 없고 내게 신경을 쓰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이미 다 죽은 몸인데 왜 아직도 가당치 않은 환상을 품고 있는 걸까?

나는 시신과 함께 경찰서에 도착했다. 부검 명령이 떨어진 후 장은후가 나를 밀고 해부실로 들어갔다.

내 영혼은 허공에 붕 뜬 채 그와 함께 이동했다. 이어서 그가 내 시신을 해부하는 걸 직접 지켜봤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장은후를 보고 나서부터 내 영혼은 줄곧 그를 따라다녔다. 그의 옆에서 꼼짝달싹할 수 없었고 어디로 도망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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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은후는 한참 넋 놓고 있다가 끝내 휴대폰을 챙겨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나도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장은후가 진실을 알게 되면 나도 이만 벗어날 수 있겠지.웨딩숍 화장실은 남녀 구분이 없어 모두가 들어갈 수 있었다.이때 오인아의 거만을 떠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난 그저 안정원이 폭탄을 터트려서 반서윤 죽이면 속이 후련해질 줄 알았는데 그 여자 하도 부질없는 존재인 거야. 오빠는 아예 반서윤 사랑하지도 않았어. 오빠가 사랑한 사람은 결국 나였지. 그래서 안정원도 끝내 또다시 날 납치해간 거야.”“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그렇게 진지하게 나오지도 않았을 텐데, 괜한 짓만 했잖아.”얘기를 다 들은 후 장은후는 다시 드레스 숍 홀에 돌아왔다.이때 나는 충격적인 현상을 발견했다. 내가 더 이상 장은후를 따라간 게 아니라 되레 오인아 옆에 남아버린 것이다.순식간에 내 시점이 뒤바뀌어버렸다.오인아와 몇몇 친구들이 홀에 돌아왔을 때 장은후는 한창 드레스를 둘러보고 있었다.그녀를 본 장은후가 뜻밖에도 활짝 웃으며 말했다.“자기야, 아까 이거 입으니까 예쁘던데 그냥 이거로 정할까?”오인아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지만 곧이어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그래, 여보 말 들을게. 드레스는 원래 여보한테만 보여주는 거잖아.”드레스를 다 고른 후 이어진 며칠 동안 장은후는 아예 딴 사람으로 변해버린 것만 같았다.결혼식 준비에 매우 열성적이었고 오인아한테도 너무 자상했다.오인아는 그런 장은후가 갑자기 철든 거라 여기며 더욱 거만을 떨었다.그렇게 다가온 결혼식 전날, 장은후가 그녀에게 전화해 빅 이벤트를 준비했다면서 지금 바로 집으로 오라고 했다.오인아는 이 남자가 결혼식 전에 프러포즈라도 준비한 줄 알았다. 둘 사이에 늘 그녀만 적극적이었으니까.결국 풀 메이크업을 마치고 장은후의 집으로 달려갔는데 집안이 온통 어둠으로 뒤덮였다.장은후도 어두컴컴한 곳에 떡하니 서서 그녀를 보더니 거실 한가운데 놓인 의자를 가리켰다.“자기야, 저기 가서 앉아.”오인아

  • 이 사랑을 폭파한 건 너야   제9화

    1년 뒤, 장은후는 오인아와 함께 결혼 준비에 돌입했다.정확하게 말하자면 오인아 홀로 열정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다.장은후는 수사에 완전히 빠져들어 밤낮없이 바삐 돌아쳤다.안시완은 그런 장은후가 너무 걱정되어 좀 쉬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장은후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 다시 시신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나는 1년 동안 줄곧 그를 따라다녔다. 이 남자는 낮에 아무 일 없듯이 멀쩡한 사람처럼 지내지만 밤만 되면 내 사진을 부둥켜안고 서글프게 울었다.나를 사랑한다고 수없이 말하고는 또다시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다만 나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고 심지어 원망의 감정도 차오르지 않았다.오직 그를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하지만 갖은 방법을 써봐도 그의 곁을 떠날 수 없었다.신비한 힘이 꼭 마치 나를 그의 옆에 묶어두는 것만 같았다.나도 서서히 절망감에 휩싸였다. 어쩌면 나랑 장은후는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악연인가 보다. 이 남자가 죽어야 나도 해탈할 수 있을 듯싶었다.안시완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경찰서장에게 장은후의 현재 상황을 보고드렸고 서장은 그 자리에서 장은후에게 한 달 동안 휴식하라는 강제 명령을 내렸다. 한 달간 결혼 준비나 잘하라고 그를 타일렀다.왜냐하면 오인아가 일찌감치 경찰서에 찾아와 청첩장을 돌렸으니까.1년 전 폭파 사고에서 도망쳐 나온 이후로 오인아는 곧장 경찰서에 찾아와 장은후와 결혼할 거라며 동네방네 소문냈다.그 뒤로 모두가 이 혼사를 서서히 받아들이며 장은후에게 결혼을 서두르라고 종일 다그쳤다.장은후는 너무 귀찮은 나머지 마침내 결혼에 동의했다.그가 한 달 동안 휴식한다는 소식에 제일 기뻐하는 사람은 바로 오인아였다.그녀는 장은후를 데리고 백화점에 가서 결혼식에 입을 웨딩드레스를 골랐다.한편 장은후는 정신이 딴 데 팔려있어 그녀에게 제멋대로 휘둘려 다녔다.오인아는 오늘 또 절친들을 몇 명 데려와 신부 들러리 드레스를 골라주었다.피팅을 마친 몇 사람들은 나란히 화장실로 향했다.지난 1년 동안 나의 활

  • 이 사랑을 폭파한 건 너야   제8화

    한편 장은후는 아무것도 못 본 척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그 순간 나는 이 인간을 때려죽이고 싶은 충동이 생겨났다.이때 오인아가 앙칼진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오빠! 5분 뒤에 폭탄이 터진다고! 일단 나부터 좀 구해줘!”장은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달려가서 오인아의 몸에 장치한 폭탄을 제거했다.그 시각 안정원은 자리에 앉아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우리 다 같이 지옥 가는 거야.”일촉즉발의 순간 문밖에서 경찰들이 뛰쳐 들어오며 안정원을 바로 사살했다.또 다른 사람들은 오인아에게 달려가 얼른 폭탄을 제거했다.폭탄은 다 제거했지만 타이머를 멈추지 않았던지라 오인아는 폭탄에서 벗어나자마자 창고 밖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행여나 폭발 사고로 죽을까 봐...옆에서 안시완이 장은후를 잡아당기며 말했다.“가자, 은후야. 3분밖에 안 남았어. 얼른 여길 떠나야 해.”다들 신속하게 밖으로 철수했지만 장은후는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폭탄만 멍하니 쳐다봤다.안시완은 이를 악물고 그를 힘껏 잡아당기며 창고를 벗어났다.곧이어 창고에 폭탄이 폭파했다.안정원이 말했던 것처럼 이 폭탄의 위력은 정말 창고를 평지로 쓸어버렸다.폭발하는 마지막 순간, 안시완은 장은후를 몸 아래에 깔아 눕히고 여파의 공격을 당해 상처를 입고 말았다.그는 즉시 병원으로 이송됐고 장은후는 털끝 하나 다친 데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이를 본 오인아가 재빨리 달려오며 장은후의 품에 안겼다.“오빠, 방금 창고 안에서 오빠 마음 다 알았어. 살아남기만 한다면 무조건 오빠랑 결혼하겠다고 다짐했어!”드디어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나를 해친 살인마도 죽었다.이젠 장은후한테서 벗어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아니었다.나는 그의 옆에서 너무 멀리 떨어질 수가 없었다.그 순간 온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대체 하늘은 왜 나한테 이토록 불공평한 걸까? 이제 그만 자유롭게 풀어줄 때도 됐잖아?! 대체 왜 이렇게 나를 구속하는 거냐고?사건이 해결된 후 장은후와 안시완 모두 표

  • 이 사랑을 폭파한 건 너야   제7화

    바로 이때 장은후의 휴대폰이 또다시 울렸다.그는 넋이 나간 채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전화기 너머로 앙칼진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은후 오빠! 살려줘! 나 지금 납치당했어!”“납치범들이 오빠더러 당장 오래! 얼른 나 좀 구해줘 오빠. 내 몸에 폭탄까지 달았다고!”그녀는 바로 오인아였다.장은후는 흠칫 놀라더니 재빨리 밖으로 뛰쳐나갔다.“거기 누구 없어요? 당장 나 따라와요! 안정원이 다시 나타났어요!”오인아는 그의 목소리를 듣더니 연신 거부했다.“아니야, 오빠 혼자 와야 해. 놈들이 오빠가 딴 사람 데리고 오면 바로 폭탄을 터트리겠다고 했어. 나 너무 무서워 오빠...”장은후는 끝내 홀로 차를 타고 오인아가 말한 주소로 출발했다.다른 경찰들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저 멀리서 그를 따라왔다.나는 장은후의 차에 앉아 그의 표정을 살폈다.이 남자는 마음이 재가 되었는지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전혀 반응할 새도 없이 경찰의 직책에 따라 기계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따름이었다.그는 액셀을 꾹 밟고 30분도 채 안 돼 오인아가 말한 곳에 도착했다.저 멀리서부터 그녀의 고함이 들려왔다.장은후는 소리를 따라 폐기된 창고 앞에 도착해 문을 열어젖혔다.그 시각 오인아는 몸에 폭탄을 두른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그녀의 뒤에는 바로 안정원이 떡하니 서 있었다.장은후를 본 안정원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역시 전에 그 애는 납치해도 소용없었다니까. 네가 신경 쓰는 건 이 여자였어.”장은후는 그의 말을 듣더니 표정이 복잡하게 변했다.“서윤이 네가 죽였어?”안정원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그 여자 진짜 멍청하더라. 너보고 오지 말라고 했잖아.”“네가 그 여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바로 알아챘어. 넌 아예 그 여자가 안중에 없었던 거야. 그럼 나도 반서윤 남겨둘 필요가 없겠다 싶어 폭탄을 터트렸지.”여기까지 말한 안정원이 장은후를 힐긋 살폈다.“솔직히 말해서 너야말로 그 여자를 죽인 진짜 범인이야.”

  • 이 사랑을 폭파한 건 너야   제6화

    나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이젠 정말 후회가 밀려왔다. 장은후를 만난 것도, 그 뒤로 발생한 이 모든 일도, 또한 죽기 전에 아빠랑 대판 싸운 것까지 사무치게 후회됐다.장은후는 몇 년 동안 나랑 연애하면서 좀처럼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아빠는 그런 나에게 이별을 권했고 이 못난 딸이 부모님 마음에 대못을 박으며 대판 싸웠다.부모님은 절대 나를 해치지 않는다. 결국 나 스스로 이 궁지에 몰아붙인 것이다.엄마, 아빠가 허리가 구부정한 채 서로를 부축하며 돌아가는 뒷모습에 나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장은후가 밉고 안정원도 밉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제일 원망스러웠다.한편 장은후는 문을 닫고 인상을 찌푸린 채 잠깐 고민하더니 또다시 내게 전화를 걸었다.통화는 당연히 연결되지 않았고 음성사서함으로 변경됐다.“반서윤, 언제까지 투정 부릴래? 연로하신 부모님까지 속상하게 할 거야? 네가 이러고도 인간이야?”전화를 끊고 장은후는 성큼성큼 경찰서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안시완과 정면으로 마주쳤는데 안정원이 여태껏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소식을 접했다.그의 집 앞에서 잠복하던 사람은 줄곧 안정원의 그림자도 못 봤다고 한다.장은후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이 사람 분명 뭔가 있어. 아무 일 없는데 왜 집에 안 돌아와?”“맞아. 그래서 이미 주요 용의자로 내걸고 도시 전역을 수색하고 있어.”장은후는 한숨을 내쉰 후 안시완에게 물었다.“딸 실종 됐다고 제보 들어오는 사람은 또 없었어?”안시완이 고개를 내저었다.“몇 가구가 있었는데 시신 확인하러 왔다가 다들 본인 딸이 아니라고 부인했어.”장은후의 미간이 저절로 구겨졌다.“급선무는 안정원 잡는 거야. 일단 걔부터 잡아야 모든 진실이 밝혀져.”바로 이때 경위 한 명이 성급하게 달려왔다.“어떤 노부부한테서 신고가 들어왔는데 사망자가 본인들 딸과 너무 유사하다고 하네요. 시신 확인하러 모셔올까요?”안시완이 머리를 끄덕였다.“그래요, 들어오라고 하세요.”5분 뒤, 나의 부모님이 여경과 함께 나

  • 이 사랑을 폭파한 건 너야   제5화

    안시완은 주소를 건네받고 곧장 장은후와 함께 그리로 향했다.그곳은 시내 안의 한 마을인데 도착한 순간 나는 저도 몰래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여기가 바로 안정원이 나를 납치해온 곳이니까. 그는 이곳에서 내게 비인간적인 악행을 저지르다가 장은후의 행방을 대라고 했다.내가 한사코 입을 안 열자 그는 결국 내 몸에 폭탄을 장착하고 도시 외곽의 폐기된 창고로 끌고 갔다.안시완은 어느 한 방 문 앞에 도착한 후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발로 힘껏 문을 걷어찼다.나도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갔는데 안정원은 어느새 이 방에서 나를 학대했던 모든 증거를 없애고 일말의 단서도 남기지 않았다.안시완은 방안을 쭉 둘러보았다.나는 마침내 옷장 구석에서 단추를 하나 발견했는데 바로 내 옷에 달려있던 단추였다.장은후가 이걸 보면 범인을 바로 특정 지을 수 있다.나는 두 사람의 주의를 끌려고 필사적으로 액션을 취했다.하지만 모든 게 부질없는 노력인 것을... 두 사람은 발견하지 못했을뿐더러 끝내 이 방을 나서고 말았다.밖으로 나온 후 안시완이 장은후에게 말했다.“폭탄 제작한 흔적을 못 봤는데 설마 안정원이 아니라고?”이에 장은후가 머리를 흔들었다.“아직 단정 지을 순 없어. 사건이 발생한 지도 며칠이 지났으니 다시 돌아와서 흔적을 없앴을 수도 있잖아. 가장 중요한 건 안정원의 행방이야. 그 방에 분명 걔가 살고 있던 흔적이 남아있었는데...”“일단 여기에 몇 사람 잠복시킬게. 우린 가서 또 다른 폭탄 제작하는 사람들 만나봐야지.”안시완이 말했다.꼬박 며칠 동안 안정원은 돌아오지 않았고 감식반 출신인 장은후도 체력이 고갈 났다. 이건 원래 그의 분야가 아닌데 덩달아 분주히 돌아쳤으니 지칠 만도 했다.경찰서 서장이 참다못해 장은후에게 강제로 휴가를 내주었다.나머지 몇몇 사람들은 계속 단서를 찾아 나섰다.우리의 월세방으로 돌아온 장은후는 침대에 눕자마자 잠들었다.깨난 후 그는 습관처럼 내 이름을 불렀다.“서윤아, 물 좀 떠와. 목말라 죽겠어.”아무런

  • 이 사랑을 폭파한 건 너야   제4화

    나는 멍하니 넋 놓고 있다가 눈물이 다시 앞을 가렸다.‘엄마, 아빠 미안해. 이생에 못 해드린 효도 다음 생에 꼭 보상할게요.’장은후는 며칠 밤을 꼬박 지새우다 보니 한창 피곤하고 짜증이 밀려온 상태였다.“본인 딸은 본인이 알아서 찾아야죠 왜 나한테 뭐라고 해요?!”“지금 수사 중이라 엄청 바쁘다고요.”아빠는 착잡한 마음에 시큰둥한 장은후의 말투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너 경찰이잖아. 지금 신고할게. 얼른 가서 우리 서윤이 찾아. 애가 진짜 안 보여. 벌써 며칠째 내 전화도 안 받아!”장은후는 점점 더 짜증이 밀려와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그래요? 실종된 애가 나한테 문자 와서 평생 안 보겠다고 하는 건 뭐죠? 세상에 어떤 실종자가 이딴 짓을 벌여요? 걔 그냥 일부러 숨은 거예요.”“그리고 난 단지 감식반 경찰이지 실종 신고를 받는 경찰이 아니에요.”“서윤이 다시 나타나거든 바로 헤어질 거예요. 앞으로 더 이상 서윤의 일로 날 찾아오지 마세요. 걔 때문에 공적인 일로 사욕을 채울 순 없잖아요!”나는 부모님 목소리를 더 듣고 싶었지만 장은후가 전화를 툭 꺼버렸다.당장 다시 걸라고 그에게 외치고 싶었다.부모님께 남은 생을 나 때문에 슬퍼하시지 말라고 전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내 목소리가 안 들렸다.장은후는 의아한 눈길로 뒤를 힐긋 쳐다봤다.“왜 꼭 뒤에 누가 있는 것 같지?”그는 내 몸을 한참 보다가 목에 건 목걸이를 대뜸 잡아당겼다.이 목걸이가 아직 그대로였다니.이건 장은후가 생일선물로 내게 준 목걸이이니 아마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이렇게 되뇌고 있을 때 안시완이 그에게 물었다.“왜 그래? 목걸이에 무슨 문제 있어?”장은후는 고개를 내저었다.“아니, 그냥 좀 눈에 익어서.”이때 또 다른 여경 한 명이 목걸이를 힐긋 살폈다.“그럴 수 있죠. 길바닥에 널리고 널린 디자인이니까요.”장은후는 그제야 목걸이를 내려놓고 돌아서서 다른 일에 몰두했다.나는 피식 웃으며 다 잊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내 생일날 장은후와 함께

  • 이 사랑을 폭파한 건 너야   제3화

    곧이어 부검 결과가 나왔다.“사망자 나이는 26세 좌우예요. 납치범이 피해자에게 큰 원한을 품은 것 같아요. 생전에 극심한 학대를 당하다가 폭탄 폭파로 사망했어요.”“가장 중요한 건 사망자 뱃속에 임신 2개월 된 아기가 있었어요...”이 말이 떨어진 순간 모든 이가 침묵했다.학대와 폭파로 두 생명이 사망하다니.그야말로 섬뜩할 따름이었다.나는 장은후의 말을 들으며 멍하니 넋 놓고 있다가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나의 배를 내려다보았다.내가 임신을 했었다고?작고 소중한 새 생명을, 심지어 나조차도 몰랐던 새 생명을 강제로 몰살해버린 걸까?문득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장은후는 옅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딱한 분이네요. 다들 서두르시고 얼른 이 사건 마무리합시다. 고인에게 정의를 되돌려드려야죠. 저도 마침 맡은 사건이 없으니 여러분들과 함께 이 사건 진행하겠습니다.”나는 장은후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이 사망자가 나란 걸 알아도 지금처럼 똑같이 말할 수 있을까?부검을 마친 후 장은후는 어두운 표정으로 안시완과 함께 마당에 움츠려 앉아 담배를 피웠다.안시완이 먼저 그를 타일렀다.“은후야,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하잖아. 서윤 씨가 화났으면 네가 먼저 달래주면 될 거 아니야.”이에 장은후가 피식 웃었다.“달래? 걔는 그러면 점점 더 심하게 굴 거야. 오늘은 근무 시간에 나한테 전화해서 협박했지. 두고 봐, 다음번엔 아예 죽었다고 거짓말할걸.”그가 모르는 일이 하나 있다면 이번엔 내가 정말 죽었다는 사실이다.나중에 진실을 알게 되면 과연 오늘 한 말을 후회할까?물론 나도 딱히 신경 쓰이진 않았다. 이젠 정말 그의 곁에서 완전히 떠나버렸으면 하는 바람뿐이니까.안시완은 고집스러운 그의 모습에 옅은 한숨만 내쉬었다.이번 사건은 우선 실종자 명단에서부터 수사를 착수했다. 안시완은 사무실에서 며칠이나 조사했지만 조건에 부합되는 실종 여성을 몇 명밖에 색출하지 못했다.이때 장은후의 휴대폰이 울렸다.그의 소꿉친구이자 단짝인 오인아한테서

  • 이 사랑을 폭파한 건 너야   제2화

    내 몸은 산산조각이 나듯 바닥에 널브러졌고 본모습은 아예 찾아볼 수가 없었다.다만 나의 영혼은 허공에 붕 뜬 채 부서진 내 몸을 지켜보고 있었다.나는 전혀 슬프다거나 속상하진 않았다. 죽음은 지금 내게 일종의 해탈이니까.그렇게 한참 허공을 떠다니고 있을 때 장은후가 도착했다.그는 한 무리 경찰들 뒤에서 사진 찍고 기록하며 주변 사람들과 소통했다.이때 경찰 중 한 명이 말했다.“현장에서 일부 화약을 발견했습니다. 누군가가 직접 폭탄을 제작한 것 같습니다. 다만 아직 사망자 신원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장은후는 미간을 찌푸리고 내 시신을 바라봤다.뜻밖에도 나는 가당치도 않은 갈망이 샘솟으며 가슴이 움찔거렸다.나인 걸 알아보고 후회하진 않을까?결국 나는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그를 빤히 쳐다봤다. 그의 두 눈동자에서 일말의 친숙함이라도 느끼고 싶었으니까.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난 장은후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여자인 것 같군요. 입고 있는 옷 조각들이 최근에 유행하는 옷 스타일이에요. 20대에서 30대 사이의 실종자 여성분들을 조사해보세요.”“자, 감식반 이리로 오세요.”나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장은후는 끝내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그랬다. 그는 애초에 나를 신경 쓰지 않으니 알아볼 리도 없었다.사체수습을 마친 후 내 시신은 경찰서로 인도받았다.내 영혼도 허공을 떠돌다가 장은후와 함께 차 뒷좌석에 올라탔다.장은후는 조수석에 앉고 운전은 안시완이 했다. 이 남자는 그의 동료이자 그와 가장 친한 친구였다.“은후야, 너 휴대폰 꺼놨어? 아까 서장님께서 너 연락 안 돼서 나한테 전화 오셨어.”장은후는 불쾌한 일이라도 떠오른 듯 미간을 구겼다.“이게 다 반서윤 걔 때문이잖아. 귀찮아 죽겠어 정말. 근무 시간에 전화하지 말라고 그렇게 경고했는데 한사코 전화 오는 거야.”물론 귀가 닳도록 들어온 그의 말투이지만 혐오에 찬 얼굴까지 보고 있자니 여전히 질식할 따름이었다. 마치 누가 내 심장을 움켜쥐기라도 한 듯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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