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승민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키득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차에서 역겨운 냄새가 났다. 온하랑은 시동을 걸고 창문을 내리면서 내일 꼭 세차장에 갈 거라고 결심했다.“오늘 밤 무슨 일이 있었어?”방금 뒷좌석에 앉았을 때 그녀는 그의 슈트에 있는 벽에 마찰한 흔적을 보았다.“누가 날 음해하려고 했는데 내가 호텔 방을 나간 걸 알고 사람을 시켜서 호텔 출구와 비상계단을 지키고 있어서 벽을 타고 밖으로 나왔어.”방에 들어간 후 김 비서가 나가자마자 부승민은 발코니로 나갔다. 그는 32층 발코니에서 31층 발코니로 내려갔다. 31층 객실은 비어있었다. 최동철이 쉽게 내보낼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정문으로 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일부러 시간차를 두고 3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서 내려 화장실에 숨었다.최동철의 사람들이 화장실을 찾으려고 할 때 그는 창문으로 나가 화장실과 가장 가까운 방의 발코니로 이동했다.그 사람들은 그가 계단을 이용할 것이라고만 생각했고, 그렇게 빨리 내려올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기에 아래층은 감시가 소홀해서 부승민이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연민우도 포럼에 참석했지만 최동철이 사람을 시켜 연민우를 감시할 게 분명했고 만약 연민우와 통화하면 자신의 위치가 발각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온하랑에게 데리러 오라고 부탁했다.길가에서 그를 기다리던 온하랑은 앞길과 뒷길에만 신경을 썼다. 부승민은 옆 2층 화장실에서 내려왔다. 온하랑은 흥, 코웃음을 치며 비아냥거렸다.“인기가 참 많으시네. 수많은 여자가 자고 싶어 안달인 걸 보면.”“넌 안 자고 싶어?”“꺼져.”“누가 나를 음해하려고 했는지는 궁금하지 않아?” “라이벌 아니면 위로 올라가고 싶은 사람이겠지.”부승민은 가부를 말하지 않았다.만약 자신에게 약을 먹인 사람이 최동철이라고 하면 온하랑이 믿을까?그는 앞에 있는 도로를 보며 화제를 돌렸다.“너희 아파트로 가.”온하랑은 백미러로 그를 흘겨보았다.“오빠 운전하면 안 돼.”그녀는 자신이 차에서 내리면 그가
호텔 방 안에서 임연지는 짜증이 나서 거실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거의 다 왔는데 놓쳐버리고 말았다. 흥, 그래 어디까지 도망칠 수 있는지 두고 보자. 어차피 쓸모없는 몸부림일 텐데. 최동철이 이미 이 건물에 사람들을 배치했기에 부승민은 조만간 그녀의 손아귀에 들어온다.임연지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비상계단 입구로 걸어갔다. 내부는 어둡고 으스스한 기운이 감돌았다. 30층이 넘는데 부승민이 정말 여기로 내려올까?“저기요?”갑자기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임연지는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그녀는 가슴을 부여잡고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나서야 계단 모퉁이에 어두운 그림자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천천히 앞으로 다가가자 센서 등이 켜졌다. 그제야 임연지는 검은 그림자가 젊은 여자라는 것을 알았다. 창백한 얼굴과 빨간 눈시울을 보니 아마도 기분이 좋지 않아 이곳에 숨어 있었던 것 같다.“깜짝 놀랐네.”임연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젊은 여자가 말했다. “당신이 계속 들여다보는 걸 봤어요.”“여기 얼마나 있었어요?”“30분 정도요.”임연지는 그 말에 다급히 물었다.“그럼 어떤 남자가 여기를 지나가는 걸 보셨나요? 키도 크고 잘생겼어요!”여자는 어리둥절해서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제가 온 이후로 아무도 지나간 적 없어요. 30층이 넘는데 누가 계단을 이용하겠어요?”임연지는 당황해서 입을 크게 벌렸다.“확실해요?”“그럼요.”부승민이 계단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어디로 갔을까?서둘러 방으로 돌아온 임연지는 등잔 밑이 어둡다고 설마 방에 숨어 있는 건 아닐지 생각하며 옷장을 하나씩 열어보았지만 옷장 안은 텅텅 비어있었다. 여기도 없고 계단도 이용하지 않았다면 어딘가에 숨어 그녀가 방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용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을지도 모른다. 이 경우 최동철의 사람들이 제때 지키지 못해 이미 탈출했을 가능성이 높았다...아니면 다른 층의 방에 들어가 숨었을 수도 있었다. 임연지는 서둘러 최동
“숙모, 저 놀이동산 가고 싶어요.”부시아는 다른 애들보다 일찍 철들었지만 그래도 아인지라 요즘 유치원만 다녀서 나가서 놀고 싶은 모양이었다.온하랑은 요 며칠 계속 비가 부슬부슬 내렸던 터라 날씨부터 확인했다.오늘 아침에도 비가 내려 햇빛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리기만 했다. 또다시 비가 올 가능성이 컸다.“숙모가 맛있는 거 사줄까? 오전에 놀이동산 가서 놀고 점심에 맛있는 거 먹는 거 어때?”“네!”“그래, 숙모랑 놀이동산에 놀러 가자. 그런데 비가 오면 바로 집으로 오는 거야. 알았지?”“네.”부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가는 길 내내 녀석은 최근에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거리더니 결국 지치고 말았다.온하랑은 피식 웃더니 음악을 틀었다.놀이동산에 도착한 부시아는 마음껏 즐겼다.회전목마에서 내려오자마자 또 롤러코스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하지만 키 제한으로 탈 수가 없었다.부시아는 주위를 살피더니 미끄럼틀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달려갔다.미끄럼틀은 그네, 시소 등이 있는 무료 체험 구역에 있었다.그 옆은 바로 음식 코너라 달려가던 중 발걸음을 멈추고 온하랑을 쳐다보았다.“숙모, 저 소떡소떡 먹고 싶어요.”마침 온하랑도 먹고 싶었던 찰나였다.2인분 주문을 마치고 뒤돌아보았을 때, 부시아는 이미 미끄럼틀에서 놀고 있었다.“조심해.”온하랑이 당부했다.“알겠어요.”부시아는 대답하자마자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왔다.소떡소떡은 바로 이 자리에서 만드는 거라 오래 기다려야 했다. 온하랑은 기다리는 동안 부시아한테서 눈을 떼지 못했다.“고객님, 소떡소떡 완성되었습니다.”온하랑은 포장을 건네받으면서 계좌이체 하려고 했다.바로 이때 갑자기 멀지 않은 곳에서 비명이 들려왔고 뒤돌아보았을 때 부시아는 바닥에 넘어져 힘겹게 일어서려고 했다.그래서 바로 달려가 부시아를 부축했다.“시아야, 괜찮아? 어디 다친 곳 없어? 안 아파?”부시아는 놀란 표정으로 껍질이 까여 피가 보이는 손바닥을 내밀었다.“다른 곳은?”부시아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이 부모님이세요? 마침 잘 오셨네요. 방금 이 아이가 우리 아이를 미끄럼틀 위에서 밀었거든요. 당장 사과하세요!”아줌마는 온하랑을 힐끔 보더니 피식 웃었다.“어떻게 제 아이가 밀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거죠? 미끄럼틀 위에 우리 아이만 있었던 것도 아닌데!”“방금 아이가 직접 인정했어요.”아줌마는 남자아이를 쳐다보더니 말했다.“쳇, 어른이 무섭게 따지니까 두려운 마음에 인정한 거겠죠.”“그러면 CCTV 확인해 보시든가요!”“아유, 정말 깐깐하긴. 우리 아이가 밀었으면 뭐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그리고, 당신 따님 멀쩡한 것 같은데 설마 돈 뜯어내려는 수작은 아니죠?”아줌마가 말했다.남자아이의 옷차림이 비싸 보이긴 했지만 온하랑과 부시아도 꿀리지 않았다. 그래서 도대체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아무리 돈 많는 집안이라고 해도 사람을 밀쳤으면 사과해야 하는 법이다.말다툼 끝에 온하랑은 계속 말해봤자 말이 안 통하겠다는 느낌에 결국 경찰에 신고했다.온하랑은 그러다 어릴 적 할머니 할아버지와 시골에서 지냈던 시절이 떠올랐다.두 분 다 순수한 시골분이라 쓸데없는 일에 휘말리는 것을 싫어했다. 매번 온하랑이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을 때도 늘 사고를 저지르지 말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하고, 참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그럴 때마다 온하랑은 자신을 위해 나서는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농촌에서 살다 보면 학문적 시야가 국한되기 마련이라 할머니 할아버지를 탓할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부시아에게까지 억울하게 똑같은 경험을 당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온하랑이 전화를 들자 아줌마가 비웃었다.“왜요. 사람을 부르게요?”전화 연결음이 울리고, 온하랑이 말했다.“여보세요, 경찰서죠?”아줌마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어머, 바로 신고하셨어요? 제가 무서워할 줄 알고?”온하랑은 자세한 상황설명 후 전화를 끊었다.“두렵지 않으면 경찰분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시든가요.”“그까짓 거 기다리면 되죠.”두 사람의 다툼 소리에 사람들이 몰
유은정에게 연락했을 때 분명 경찰서에 말해놓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했는데 말이다.나이 많은 형사가 온하랑을 힐끔 보더니 마른기침하면서 말했다.“그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CCTV가 떡하니 있는데 밀었으면 민 거죠. 얼른 사과하세요.”아줌마는 표정이 어두워졌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유은정 씨가 말해놓는다고 했는데?’남자아이는 충격이 컸는지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호흡이 가빠졌다.“저희가 사과하지 않으면요?”“그러면 같이 경찰서로 갈까요? 어차피 구치소에 빈자리도 많은데.”남자아이는 불안감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온하랑은 이 신분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 아줌마가 방금 아는 사람을 통해 경찰서에 전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하지만 신고자가 온하랑이라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온하랑은 아무리 부승민과 멀어지려고 해도 멀어질 수가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옆에 있는 사람들이 자꾸만 이 둘을 엮어놓으려고 했기 때문이다.온하랑은 부승민의 전처이자 동생이었다.아무리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부승민 덕에 순조롭게 넘어갈 수 있었다.만약 그저 일반인이었다면, 오늘 이 일은 이대로 끝나지도 못했다.형사는 CCTV를 통해 부시아가 확실히 남자아이한테 치여 미끄럼틀에서 굴러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남자라면 당당해야 하는 거야. 일부러 그런 거 아니잖아. 동생이 다쳤다는데 사과 정도는 해야지. 그러면 아무 일도 없을 거야.”방금 형사들이 CCTV를 확인하는 동안, 아줌마는 또 누군가에게 전화했다.“저희는 사과할 수 없어요. 그냥 경찰서로 잡아가시든가요. 정직 처분당하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요.”“정말 살다 살다 별꼴을 다 보네요. 돈 있으면 싹수가 없어도 되나? 사람을 밀쳤으면 사과하는 것이 당연한 거지. 사과도 못 할망정 경찰을 협박해? 정말 겁도 없이.”온하랑이 차갑게 말했다.“누구보고 싹수없다고 하는 거야!”온하랑이 말했다.“바로 당신을 말했어. 어른이라는 것이 소질도 없고, 행패만 부리기만 하고. 어른이 이모양 이 꼴이니
“저한테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시대요?”온하랑은 미간을 찌푸린 채 주스를 마셨다.“저 지금 시간 없어요.”이때, 혼란을 틈타 전화기 너머에서 한 여자의 분노한 말투가 들려왔다.“온하랑 씨 맞죠? 제 아이가 당신 때문에 천식이 발작해서 죽을 뻔했잖아요! 당장 병원으로 와서 사과하세요!”아까 그 말이 안 통하는 아줌마와는 목소리가 달라 보였다.‘하지만 싹수없는 걸 보니 딱 봐도 한집 식구네.’온하랑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당신 아들 천식 발작한 것이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 제... 딸을... 밀치고도 사과 안했잖아요. 제가 병원까지 쫓아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세요.”상대방이 피식 웃었다.“그러면 제가 고마워해야 하나요? 그쪽 따님은 그저 살짝 껍질이 까인 거로 알고 있는데. 아이들끼리 장난친 거 가지고 너무 꼬치꼬치 캐묻는 거 아니에요? 경찰을 이용해 우리 아들을 협박하기나 하고! 그러니까 우리 아들이 천식이 발작한 거죠! 이래도 할 말 있어요?”“그러면 제가 뭐 없는 말 했어요? 제 딸을 밀쳤으면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천식이 있으면 뭐, 잘못해도 책임 안 져도 되나?”진작에 사과했으면 경찰에 신고했을 일도 없었다.“다시 한번 물을게요. 사과할 거예요 안 할 거예요? 다시 잘 생각해 보고 말씀하세요. 나중에 제가 기회를 안 줬다고 하지 마시고.”온하랑은 아예 전화를 끊어버리고 핸드폰을 한쪽에 내팽개쳤다.건방진 말투를 보니 신분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데 그렇다고 해서 온하랑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부시아는 온하랑의 말만 듣고도 상대방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녀석은 입을 삐쭉 내밀더니 말했다.“숙모, 그 사람들 정말 너무해요. 삼촌한테 이를 거예요!”온하랑이 피식 웃었다.“시아야, 화내지 마. 이런 사람들 때문에 기분 상할 필요 없어.”“숙모도 화내지 말고 얼른 고기나 드세요.”부시아는 포크로 온하랑에게 스테이크 한 조각을 건넸다.“고마워, 시아야.”이제 막 숟가락을 들려던 참에 또 불쾌한 문자
“하랑 씨가 어떤 분을 건드렸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온하랑은 그제야 오전의 일을 떠올리게 되었다.‘행동도 빠르네.’“그래요. 따라갈 테니까 먼저 차에 짐부터 내려놓읍시다.”“그러세요.”온하랑은 먼저 쇼핑백을 차에 넣어두고는 부시아의 손을 잡고 상대방의 봉고차에 올라탔다.“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온하랑이 낮은 목소리로 위로했다.부시아는 온하랑의 품에서 사나워 보이는 이 남자들을 쳐다보더니 속삭였다.“숙모. 저희 어디로 가요?”부시아는 스마트 워치로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삼촌, 살려주세요. 저랑 숙모가 납치당했어요.]“음... 아마도 병원일 거야.”추측하던 온하랑은 고개 들어 조수석에 앉아있는 남자한테 호기심에 물었다.“말투를 들어보니 현지인이 아닌가 봐요?”그는 못 들은 척 전방만 주시할 뿐이다.따라서 다른 사람들도 침묵을 지켰고, 차 안은 고요하다 못해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온하랑이 또 물었다.“혹시 누가 보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오전에 누군가와 시비가 붙긴 했지만 아직 상대방 신분을 몰라서요.”온하랑은 어렴풋이 경찰한테서 들은 남자아이의 이름을 떠올렸다.“동림이라고 했나...”여전히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아이는 어떻게 되었어요? 괜찮아요? 저희 어디로 데려가는 거예요? 병원 맞아요?”차 안에는 온하량의 목소리만 들렸다.봉고차는 어느새 어느 병원의 병원동 앞에 세워졌다.이 남자들은 여전히 사나운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저희랑 가시죠.”온하랑은 먼저 차에서 내려 부시아를 안아서 내려주었다. 결국 이들의 뒤를 따라 입원동 4층에 있는 한 환자실에 도착하게 되었다.앞장서던 남자가 온하랑더러 밖에서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사모님, 오셨습니다.”“들어오라고 해.”병실 안에서 통화하면서 들었던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부시아와 함께 병실로 들어가자 그 남자아이가 얼굴이 창백한 채 침대에 누워있었다.그 옆에는 정갈한 메이크업, 흰색 정장에 10cm짜리 하이힐까지 신고, 뒤로 머리를 묶은 4
“네가 진심으로 사과하면 쟤는 놓아줄게. 만약 그게 싫다면 저 여자애는 내가 알아서 처리하고. 내 아들은 병원에 누워있는데 쟤가 저렇게 나대는 꼴을 내가 보고 싶겠어?”“부승민 대표님이 알게 돼도 아무렇지 않은가 봐요?”“복수할 거면 하라 그래!”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코웃음을 치는 여자는 부씨 일가가 강남에서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전혀 두려워하고 있지 않았다.여자는 눈썹을 까딱이며 웃었다.“어때, 사과할 거야?”검은 눈동자를 여자에게 한참 동안 고정하고 있던 온하랑은 주먹을 꽉 쥐고 한 자 한 자 말을 내뱉었다.“미안해요, 사과할게요.”그리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를 보면서 시선을 내리깔고는 말을 이었다.“미안해요, 내가 너무 몰아붙였어요. 사과할게요 이렇게. 몸은... 빨리 회복되길 바라요.”그제야 여자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제라도 말귀를 알아들어서 다행이야. 사람이 가끔은 굽힐 줄도 알고 그래야 하는 거야. 안 그러면 너도 네 아빠 꼴 난다.”갑자기 제 아버지를 언급하는 여자에 온하랑은 따지고 싶었지만 여자 손에 잡혀있는 부시아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온하랑은 남자 곁에 다가가 부시아를 품에 넣고는 말했다.“이제 가도 되죠?”여자가 귀찮다는 듯 손을 젓자 온하랑은 부시아를 안고 병실을 빠져나왔다.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해서야 온하랑은 그 작은 얼굴을 뜯어보며 조심스레 물었다.“시아야, 아까 무서웠지?”부시아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몸은 자꾸만 온하랑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괜찮아요, 이제 숙모 있으니까 안 무서워요.”부시아도 오늘의 일은 전적으로 제 잘못임을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온하랑은 부시아가 그런 취급을 당하는 게 싫어 억지로 그 남자에게 사과를 시켰기에 이런 수모까지 당하게 된 것이다.“안 무서우면 됐어.”온하랑은 부시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이제 집에 가자.”“네.”온하랑이 부시아의 손을 잡고 병원을 나서는데 맞은 편에서 부승민이 경호원 몇 명을 대동하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