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주저하던 온하랑은 미간을 구긴 채 마지못해 대답했다.“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금방 갈게.”솔직히 정말 귀찮았지만 그녀는 하던 일을 멈추고 코트를 챙겨서 문을 나섰다. “하랑 씨,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디 가요?”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김시연이 갑자기 물었다. 발걸음을 멈춘 온하랑은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오늘 밤 저녁 촬영이 있어서요.”“아...”김시연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조심해서 가요.”온하랑은 현관에서 조용히 신발을 갈아 신고 있는데 김시연이 또 물었다.“밤에 돌아올 거예요?”“상황 봐서요.”“알았어요.”한 길만 지나면 온하랑은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녀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부승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제 거의 다 왔는데 지하 주차장으로 갈까, 아니면 밖에서 기다려?”“밖에서. 준경로까지 운전해서 들어오면 일레븐 편의점이 보일 거야. 그 맞은편에서 기다려.”온하랑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부승민의 말을 따랐다.“알았어.”전화를 끊고 나서야 부승민의 휴대폰에 아직 배터리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새 어디서 충전이라도 했나? 온하랑은 차를 운전해 지정된 장소로 가서 멈춰 섰다. 기다리는 동안 창문을 내리고 좌우를 살폈다.“가자.”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부승민이 재빨리 뒷좌석 문을 열고 차에 탔다. 그는 등받이에 힘없이 기대앉았다. 깜짝 놀란 온하랑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어디서 온 거야...”그녀는 말하다 말고 부승민을 유심히 살폈다. 그는 얼굴이 붉어진 채 심하게 숨을 헐떡이며 가슴이 격렬하게 오르내리고 있었고, 온몸에 힘이 쭉 빠진 듯했다. 옷은 지저분하고 주름과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오빠, 뭔 일 있었어?”온하랑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야.”부승민은 팔을 들어 눈을 가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더러운 속임수에 당했을 뿐이야.”“그럼 병원으로 갈까?”부승민은 잠시 멈칫하다가 갑자기 팔을 내렸다. 그녀를 응시하는 칠
온하랑의 귀가 빨개졌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부승민을 흘긋 쳐다보더니 곧바로 거절했다.“무슨 헛소리야?! 더 빨리 운전할 테니까 집에 가서 직접 해결해!”어떻게... 이렇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게 어떤 도움인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도와줄 수 있단 말이지?호흡이 거칠어진 부승민은 목울대가 위아래로 오르내리더니 힘겹게 말했다.“집에 갈 때까지 못 버틸 것 같아... 앞 교차로에서 우회전해 중앙공원으로 가.” 잠깐 망설이던 온하랑은 핸들을 꺾어 우회전 차선으로 들어갔다. 3분 후, 차가 공원에 들어섰다.중앙공원은 지금 개방되어 있었다. 아직 날도 춥고 밤이라서 한 사람도 없었다. 온하랑은 차를 길가에 주차하고 서둘러 안전벨트를 풀었다.“밖에 나가 있을게. 알아서 해결해.”그녀가 정말 차 문을 밀려고 하자 부승민이 뒤에서 그녀의 손목을 그러쥐고 애원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하랑아, 제발 부탁이야. 좀 도와주면 안 돼? 너무 힘들어...”부승민은 온몸이 불덩이었고 커다란 손도 엄청 뜨거웠다. 그가 온하랑의 손목을 잡았을 때 그녀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그의 불타오르는 시선을 마주한 온하랑은 온몸이 나른해지며 아랫입술을 깨물고 시선을 피했다.“...안 돼. 혼자 해결해...”부승민은 온하랑의 손바닥을 지그시 눌렀다. 가늘게 뜬 눈에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널 어떻게 안 할게.”온하랑은 반사적으로 다섯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그녀는 알고 싶지 않았지만 부승민이 손바닥을 누르는 순간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부끄럽기도 하고 분하기도 했다. 왜 하필 이런 엉뚱한 타이밍에 알아차린 것인지!입술을 감쳐문 온하랑은 아무 말도 없이 부승민에게서 손을 빼내고 차에서 내렸다. 부승민은 가슴이 조여오며 눈빛에 실망감이 드러났다. 그러나 뒷좌석 문이 열리더니 온하랑이 옆에 앉아서 문을 닫았다. 괜한 걱정을 한 부승민은 안색이 밝아지며 불꽃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온하랑을 응시했다.“고마워, 하랑아.”부승
부승민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키득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차에서 역겨운 냄새가 났다. 온하랑은 시동을 걸고 창문을 내리면서 내일 꼭 세차장에 갈 거라고 결심했다.“오늘 밤 무슨 일이 있었어?”방금 뒷좌석에 앉았을 때 그녀는 그의 슈트에 있는 벽에 마찰한 흔적을 보았다.“누가 날 음해하려고 했는데 내가 호텔 방을 나간 걸 알고 사람을 시켜서 호텔 출구와 비상계단을 지키고 있어서 벽을 타고 밖으로 나왔어.”방에 들어간 후 김 비서가 나가자마자 부승민은 발코니로 나갔다. 그는 32층 발코니에서 31층 발코니로 내려갔다. 31층 객실은 비어있었다. 최동철이 쉽게 내보낼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정문으로 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일부러 시간차를 두고 3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서 내려 화장실에 숨었다.최동철의 사람들이 화장실을 찾으려고 할 때 그는 창문으로 나가 화장실과 가장 가까운 방의 발코니로 이동했다.그 사람들은 그가 계단을 이용할 것이라고만 생각했고, 그렇게 빨리 내려올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기에 아래층은 감시가 소홀해서 부승민이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연민우도 포럼에 참석했지만 최동철이 사람을 시켜 연민우를 감시할 게 분명했고 만약 연민우와 통화하면 자신의 위치가 발각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온하랑에게 데리러 오라고 부탁했다.길가에서 그를 기다리던 온하랑은 앞길과 뒷길에만 신경을 썼다. 부승민은 옆 2층 화장실에서 내려왔다. 온하랑은 흥, 코웃음을 치며 비아냥거렸다.“인기가 참 많으시네. 수많은 여자가 자고 싶어 안달인 걸 보면.”“넌 안 자고 싶어?”“꺼져.”“누가 나를 음해하려고 했는지는 궁금하지 않아?” “라이벌 아니면 위로 올라가고 싶은 사람이겠지.”부승민은 가부를 말하지 않았다.만약 자신에게 약을 먹인 사람이 최동철이라고 하면 온하랑이 믿을까?그는 앞에 있는 도로를 보며 화제를 돌렸다.“너희 아파트로 가.”온하랑은 백미러로 그를 흘겨보았다.“오빠 운전하면 안 돼.”그녀는 자신이 차에서 내리면 그가
호텔 방 안에서 임연지는 짜증이 나서 거실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거의 다 왔는데 놓쳐버리고 말았다. 흥, 그래 어디까지 도망칠 수 있는지 두고 보자. 어차피 쓸모없는 몸부림일 텐데. 최동철이 이미 이 건물에 사람들을 배치했기에 부승민은 조만간 그녀의 손아귀에 들어온다.임연지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비상계단 입구로 걸어갔다. 내부는 어둡고 으스스한 기운이 감돌았다. 30층이 넘는데 부승민이 정말 여기로 내려올까?“저기요?”갑자기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임연지는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그녀는 가슴을 부여잡고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나서야 계단 모퉁이에 어두운 그림자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천천히 앞으로 다가가자 센서 등이 켜졌다. 그제야 임연지는 검은 그림자가 젊은 여자라는 것을 알았다. 창백한 얼굴과 빨간 눈시울을 보니 아마도 기분이 좋지 않아 이곳에 숨어 있었던 것 같다.“깜짝 놀랐네.”임연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젊은 여자가 말했다. “당신이 계속 들여다보는 걸 봤어요.”“여기 얼마나 있었어요?”“30분 정도요.”임연지는 그 말에 다급히 물었다.“그럼 어떤 남자가 여기를 지나가는 걸 보셨나요? 키도 크고 잘생겼어요!”여자는 어리둥절해서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제가 온 이후로 아무도 지나간 적 없어요. 30층이 넘는데 누가 계단을 이용하겠어요?”임연지는 당황해서 입을 크게 벌렸다.“확실해요?”“그럼요.”부승민이 계단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어디로 갔을까?서둘러 방으로 돌아온 임연지는 등잔 밑이 어둡다고 설마 방에 숨어 있는 건 아닐지 생각하며 옷장을 하나씩 열어보았지만 옷장 안은 텅텅 비어있었다. 여기도 없고 계단도 이용하지 않았다면 어딘가에 숨어 그녀가 방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용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을지도 모른다. 이 경우 최동철의 사람들이 제때 지키지 못해 이미 탈출했을 가능성이 높았다...아니면 다른 층의 방에 들어가 숨었을 수도 있었다. 임연지는 서둘러 최동
“숙모, 저 놀이동산 가고 싶어요.”부시아는 다른 애들보다 일찍 철들었지만 그래도 아인지라 요즘 유치원만 다녀서 나가서 놀고 싶은 모양이었다.온하랑은 요 며칠 계속 비가 부슬부슬 내렸던 터라 날씨부터 확인했다.오늘 아침에도 비가 내려 햇빛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리기만 했다. 또다시 비가 올 가능성이 컸다.“숙모가 맛있는 거 사줄까? 오전에 놀이동산 가서 놀고 점심에 맛있는 거 먹는 거 어때?”“네!”“그래, 숙모랑 놀이동산에 놀러 가자. 그런데 비가 오면 바로 집으로 오는 거야. 알았지?”“네.”부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가는 길 내내 녀석은 최근에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거리더니 결국 지치고 말았다.온하랑은 피식 웃더니 음악을 틀었다.놀이동산에 도착한 부시아는 마음껏 즐겼다.회전목마에서 내려오자마자 또 롤러코스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하지만 키 제한으로 탈 수가 없었다.부시아는 주위를 살피더니 미끄럼틀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달려갔다.미끄럼틀은 그네, 시소 등이 있는 무료 체험 구역에 있었다.그 옆은 바로 음식 코너라 달려가던 중 발걸음을 멈추고 온하랑을 쳐다보았다.“숙모, 저 소떡소떡 먹고 싶어요.”마침 온하랑도 먹고 싶었던 찰나였다.2인분 주문을 마치고 뒤돌아보았을 때, 부시아는 이미 미끄럼틀에서 놀고 있었다.“조심해.”온하랑이 당부했다.“알겠어요.”부시아는 대답하자마자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왔다.소떡소떡은 바로 이 자리에서 만드는 거라 오래 기다려야 했다. 온하랑은 기다리는 동안 부시아한테서 눈을 떼지 못했다.“고객님, 소떡소떡 완성되었습니다.”온하랑은 포장을 건네받으면서 계좌이체 하려고 했다.바로 이때 갑자기 멀지 않은 곳에서 비명이 들려왔고 뒤돌아보았을 때 부시아는 바닥에 넘어져 힘겹게 일어서려고 했다.그래서 바로 달려가 부시아를 부축했다.“시아야, 괜찮아? 어디 다친 곳 없어? 안 아파?”부시아는 놀란 표정으로 껍질이 까여 피가 보이는 손바닥을 내밀었다.“다른 곳은?”부시아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이 부모님이세요? 마침 잘 오셨네요. 방금 이 아이가 우리 아이를 미끄럼틀 위에서 밀었거든요. 당장 사과하세요!”아줌마는 온하랑을 힐끔 보더니 피식 웃었다.“어떻게 제 아이가 밀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거죠? 미끄럼틀 위에 우리 아이만 있었던 것도 아닌데!”“방금 아이가 직접 인정했어요.”아줌마는 남자아이를 쳐다보더니 말했다.“쳇, 어른이 무섭게 따지니까 두려운 마음에 인정한 거겠죠.”“그러면 CCTV 확인해 보시든가요!”“아유, 정말 깐깐하긴. 우리 아이가 밀었으면 뭐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그리고, 당신 따님 멀쩡한 것 같은데 설마 돈 뜯어내려는 수작은 아니죠?”아줌마가 말했다.남자아이의 옷차림이 비싸 보이긴 했지만 온하랑과 부시아도 꿀리지 않았다. 그래서 도대체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아무리 돈 많는 집안이라고 해도 사람을 밀쳤으면 사과해야 하는 법이다.말다툼 끝에 온하랑은 계속 말해봤자 말이 안 통하겠다는 느낌에 결국 경찰에 신고했다.온하랑은 그러다 어릴 적 할머니 할아버지와 시골에서 지냈던 시절이 떠올랐다.두 분 다 순수한 시골분이라 쓸데없는 일에 휘말리는 것을 싫어했다. 매번 온하랑이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을 때도 늘 사고를 저지르지 말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하고, 참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그럴 때마다 온하랑은 자신을 위해 나서는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농촌에서 살다 보면 학문적 시야가 국한되기 마련이라 할머니 할아버지를 탓할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부시아에게까지 억울하게 똑같은 경험을 당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온하랑이 전화를 들자 아줌마가 비웃었다.“왜요. 사람을 부르게요?”전화 연결음이 울리고, 온하랑이 말했다.“여보세요, 경찰서죠?”아줌마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어머, 바로 신고하셨어요? 제가 무서워할 줄 알고?”온하랑은 자세한 상황설명 후 전화를 끊었다.“두렵지 않으면 경찰분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시든가요.”“그까짓 거 기다리면 되죠.”두 사람의 다툼 소리에 사람들이 몰
유은정에게 연락했을 때 분명 경찰서에 말해놓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했는데 말이다.나이 많은 형사가 온하랑을 힐끔 보더니 마른기침하면서 말했다.“그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CCTV가 떡하니 있는데 밀었으면 민 거죠. 얼른 사과하세요.”아줌마는 표정이 어두워졌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유은정 씨가 말해놓는다고 했는데?’남자아이는 충격이 컸는지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호흡이 가빠졌다.“저희가 사과하지 않으면요?”“그러면 같이 경찰서로 갈까요? 어차피 구치소에 빈자리도 많은데.”남자아이는 불안감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온하랑은 이 신분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 아줌마가 방금 아는 사람을 통해 경찰서에 전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하지만 신고자가 온하랑이라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온하랑은 아무리 부승민과 멀어지려고 해도 멀어질 수가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옆에 있는 사람들이 자꾸만 이 둘을 엮어놓으려고 했기 때문이다.온하랑은 부승민의 전처이자 동생이었다.아무리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부승민 덕에 순조롭게 넘어갈 수 있었다.만약 그저 일반인이었다면, 오늘 이 일은 이대로 끝나지도 못했다.형사는 CCTV를 통해 부시아가 확실히 남자아이한테 치여 미끄럼틀에서 굴러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남자라면 당당해야 하는 거야. 일부러 그런 거 아니잖아. 동생이 다쳤다는데 사과 정도는 해야지. 그러면 아무 일도 없을 거야.”방금 형사들이 CCTV를 확인하는 동안, 아줌마는 또 누군가에게 전화했다.“저희는 사과할 수 없어요. 그냥 경찰서로 잡아가시든가요. 정직 처분당하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요.”“정말 살다 살다 별꼴을 다 보네요. 돈 있으면 싹수가 없어도 되나? 사람을 밀쳤으면 사과하는 것이 당연한 거지. 사과도 못 할망정 경찰을 협박해? 정말 겁도 없이.”온하랑이 차갑게 말했다.“누구보고 싹수없다고 하는 거야!”온하랑이 말했다.“바로 당신을 말했어. 어른이라는 것이 소질도 없고, 행패만 부리기만 하고. 어른이 이모양 이 꼴이니
“저한테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시대요?”온하랑은 미간을 찌푸린 채 주스를 마셨다.“저 지금 시간 없어요.”이때, 혼란을 틈타 전화기 너머에서 한 여자의 분노한 말투가 들려왔다.“온하랑 씨 맞죠? 제 아이가 당신 때문에 천식이 발작해서 죽을 뻔했잖아요! 당장 병원으로 와서 사과하세요!”아까 그 말이 안 통하는 아줌마와는 목소리가 달라 보였다.‘하지만 싹수없는 걸 보니 딱 봐도 한집 식구네.’온하랑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당신 아들 천식 발작한 것이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 제... 딸을... 밀치고도 사과 안했잖아요. 제가 병원까지 쫓아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세요.”상대방이 피식 웃었다.“그러면 제가 고마워해야 하나요? 그쪽 따님은 그저 살짝 껍질이 까인 거로 알고 있는데. 아이들끼리 장난친 거 가지고 너무 꼬치꼬치 캐묻는 거 아니에요? 경찰을 이용해 우리 아들을 협박하기나 하고! 그러니까 우리 아들이 천식이 발작한 거죠! 이래도 할 말 있어요?”“그러면 제가 뭐 없는 말 했어요? 제 딸을 밀쳤으면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천식이 있으면 뭐, 잘못해도 책임 안 져도 되나?”진작에 사과했으면 경찰에 신고했을 일도 없었다.“다시 한번 물을게요. 사과할 거예요 안 할 거예요? 다시 잘 생각해 보고 말씀하세요. 나중에 제가 기회를 안 줬다고 하지 마시고.”온하랑은 아예 전화를 끊어버리고 핸드폰을 한쪽에 내팽개쳤다.건방진 말투를 보니 신분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데 그렇다고 해서 온하랑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부시아는 온하랑의 말만 듣고도 상대방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녀석은 입을 삐쭉 내밀더니 말했다.“숙모, 그 사람들 정말 너무해요. 삼촌한테 이를 거예요!”온하랑이 피식 웃었다.“시아야, 화내지 마. 이런 사람들 때문에 기분 상할 필요 없어.”“숙모도 화내지 말고 얼른 고기나 드세요.”부시아는 포크로 온하랑에게 스테이크 한 조각을 건넸다.“고마워, 시아야.”이제 막 숟가락을 들려던 참에 또 불쾌한 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