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하지만 넌 믿지 않잖아.”“나도 널 믿고 싶어. 하지만...”온하랑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부승민, 그날 회사에 있었을 때 넌 이미 부민재가 연관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맞아?”그녀도 그를 믿고 싶었다. 하지만 부선월이 청장에게 한 말을 들었는데 어떻게 그를 믿겠는가?“응.”“그럼 부민재가 자수하기 며칠 전까지 넌 뭐 했어?”부승민은 멈칫하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게 무슨 말이야? 혹시 내가 지금 부민재 혐의를 풀어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정말이야?”“그럼 아니야? 부민재는 추서윤에게 책임을 떠넘긴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거야.”부승민이 추서윤과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어서 이러는 것으로 생각했다...“아닐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부승민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내가 하랑이 마음속에 정말로 이런 사람이었던 거야?'‘날 조금이라도 믿어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온하랑은 그의 시선을 피해버렸다.“네가 그랬지. 누군가 장국호를 매수했다고. 누가 매수하는데? 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매수하는데?”온하랑의 냉담한 얼굴에 부승민은 씁쓸함이 밀려왔다.“매수한 사람은 최동철일 거야. 최동철은 오래전부터 우리 일가에 적의를 보였거든.”그 말을 들은 온하랑은 어처구니가 없는 듯 웃어버렸다.“최동철이라고? 최동철은 장국호를 붙잡아 경찰에 넘긴 사람이야. 우리도 부민재가 그 사건과 연관이 있었다는 걸 몰랐는데 최동철이 알고 있었다고?”“만약 정말로 최동철이 알고 부씨 일가를 겨냥하기 위해 그런 거라면 부민재가 자수하는 그 날 이미 기사가 쫙 퍼졌을 거야.”그러나 지금 기사 하나 올라온 것이 없었다.이 부분에 대해선 부승민도 설명할 수가 없었다.그도 그저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다.“그날 내가 너한테 했던 말은 전부 부민재가 직접 나한테 해준 말이었다. 정말로 부민재가 주모자였다고 해도 나랑 연관 없어. 하랑아, 그분은 너의 아버지셔. 나도 네가 장인어른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고 있어. 그런 내가 왜
“내가 결백하다는 걸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지금은 이 방법밖엔 없어...”“너 정말!”온하랑은 화가 치밀었다.“너 지금 날 협박하는 거지?”“난 그런 의미가 아니야...”“서 있는 말든 마음대로 해!”온하랑은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리고 그대로 책상 위로 던지곤 주방으로 들어가 저녁을 만들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온하랑이 주방에서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현관엔 김시연이 캐리어를 끌며 들어오고 있었다.“하랑 씨! 나 왔어요!”“어서 와요. 저녁은 먹었어요?”김시연은 주방에 있는 온하랑을 보곤 바로 손을 들었다.“아뇨, 아직이에요! 저도 주세요!”“알겠어요.”펄펄 끓은 물에 온하랑은 새우 물만두를 2인분 넣었다.뜨거운 물이 그녀의 손에 튀었다.“앗, 쓰읍.”온하랑은 얼른 손을 털며 입으로 후후 불었다.집안을 둘러보던 김시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왜 그래요? 다쳤어요?”“네, 조금요.”“예전에는 이런 실수도 안 하던 사람이었잖아요.”김시연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온하랑은 그녀를 힐긋 보았다.“네?”“아녜요.”김시연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전 들어가서 짐 좀 정리하고 있을게요. 다 되면 불러줘요.”“네.”물만두가 완성되고 온하랑은 여러 밑반찬을 그릇에 옮겨 담아 식탁으로 가져갔다. 그러면서 김시연을 불렀다.“시연 씨, 저녁 먹어요!”“네! 가요!”김시연은 방에서 나와 바로 온하랑의 맞은편에 앉았다. 맛있는 냄새에 김시연은 바로 너스레를 떨었다.“세상에, 하랑 씨. 내가 그동안 하랑 씨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요? 며칠 동안 도시락만 먹어서 이것 좀 봐요. 배가 홀쭉해졌단 말이에요.”“괜찮아요. 며칠 후면 다시 볼록해질 거예요.”“음... 냄새 엄청 좋아...”김시연은 혼잣말을 하곤 바로 물만두를 입에 넣었다. 그녀는 이내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물만두를 꼭꼭 씹어 삼킨 그녀는 온하랑을 보았다.“하랑 씨, 그날 소파는 왜 바꾼 거예요?”
가까이에서 보니 그의 옷은 이미 빗물에 흠뻑 젖은 상태였고 앞머리에선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부승민은 그녀가 건넨 우산을 보았다. 받지 않고 그저 가만히 온하랑을 보았다.“고마워, 하랑아. 네가 나와줘서 난 기뻐. 하지만 받지 않을래.”은은한 가로등 불빛 아래 그가 입을 열자 뽀얀 입김이 나왔다.온하랑은 고개를 떨군 채 우산을 그래도 부승민의 품으로 밀어 넣었다.“가져가! 차로 돌아가라고!”그녀가 손을 빼자 우산은 그대로 바닥에 툭 떨어졌다.온하랑의 안색이 변하고 바닥에 떨어져 버린 우산을 보다가 부승민을 보았다.“싫으면 말아! 비 맞고 싶은 거라면 다른 곳에 가서 맞아. 괜히 우리 집 아래에서 맞았다고 무슨 일이 생기면 내 탓할 생각하지 말고.”“알았어. 아파트 입구에 서 있을게.”“...”온하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몸을 틀어 걸음을 옮겼다.비를 맞으며 말이다.올곧은 그의 자세를 보니 더 처량해 보이기도 했다.온하랑은 속에서 화가 치밀어 그대로 집으로 올라가려 했다.우산을 챙겨 줬는데도 그는 받지 않았으니까.‘어디에 서 있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해!'‘나랑 상관없는 일이고 상관할 생각도 없어!'하지만 얼마 못 가 온하랑은 걸음을 멈추었다. 아랫입술을 틀어 물며 몸을 돌려 부승민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를 쳤다.“부승민, 너 정말 머리에 문제가 있는 거지?!”부승민은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그녀를 보았다.빗속을 뚫고 말이다.“하랑아, 난 네가 왜 내가 그런 짓을 했다고 믿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너에게 알려주고 싶었어. 난 부민재는 돕지 않았다고. 설령 나를 믿지 못한다고 해도 경찰을 믿어주리라 생각했어. 아직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인데 내가 그런 짓을 했다고 확정 지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난 확정 지은 적 없어. 그러니까 얼른 돌아가.”온하랑은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사건이 아직 해결되기 전이었지만 판사는 이미 판결서를 준비하고 있었다.조사 결과만 나온다면 정식 판결서가 나올 것이다.“정말?
그녀는 화가 난 모습으로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간다면서! 왜 안 가고 계속 서 있는 건데!”부승민은 넋을 잃은 표정을 지었다.“왜... 다시 내려온 거야?”온하랑은 여전히 씩씩대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틀어 걸음을 옮겼다.그녀는 사실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복도에 서서 그가 가는지 안 가는지 지켜보고 있었다.역시나 그는 가지 않았다.만약 그녀가 그대로 집으로 올라갔다면 그는 분명 밤새 내내 그곳에 서 있으리라 생각했다.온하랑은 부승민의 목적이 달성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이 약해졌으니 말이다.부승민은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다.두어 걸을 움직이던 온하랑은 멈춰 서더니 몸을 돌려 그를 째려보았다.“올라가고 싶다며?”말을 마친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부승민은 입꼬리를 올리며 그녀를 뒤따라 갔다.온하랑은 먼저 엘리베이터에 들어가곤 부승민을 째려보았다.엘리베이터 안에선 그의 옷에서 떨어지는 빗물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하랑아, 나한테 기회를 주는 거 맞지? 그렇지?”온하랑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른 대답을 들려줬다.“시연 씨는 이미 자고 있으니까 이따가 조용히 들어와. 바로 내 방으로 오는 거야. 거실에 머물 생각하지 마, 알았어?”“응.”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이건 전부 그가 뻔뻔하게 버틴 탓에 얻은 기회였다.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온하랑은 현관 비밀번호를 꾹꾹 눌렀다.부승민은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움직이는 그녀의 모습이 웃겨 저도 모르게 눈웃음을 짓게 되었다.온하랑은 고개를 돌려 부승민을 보면서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보인 뒤 조심스럽게 현관을 열곤 부승민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부승민은 조용히 들어간 뒤 바로 온하랑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온하랑은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닫은 뒤 빠르게 방으로 돌아왔다.방 문을 닫기 전 그녀는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했다. 그러곤 한숨을 내쉬었다.현관부터 그녀의 방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돌려 방 중간에 우뚝 서 있는 부승민을 보았다. 머리를 헝클어져 있었고 알몸 상태였던 지라 굴곡이 선명한 복근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수건 한 장만 몸에 걸치고 있었다.그가 걸치고 있는 수건은 분홍색이었다. 온하랑의 수건 중 하나였다. 원래부터 하얀 피부는 분홍색 수건을 걸쳐도 아주 잘 어울렸다.부승민은 올해가 지나면 서른이 되었다.자기주장이 뚜렷한 이목구비와 상처 하나 없이 깔끔한 그의 몸은 누가 봐도 젊고 활력이 있어 보였다.온하랑의 귀가 빨갛게 물들었다. 그녀는 급히 시선을 돌렸다.“뭘 그렇게 멍하니 서 있어? 얼른 가서 샤워해.”부승민은 다소 웃음기가 담긴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알았어. 그런데 시연 씨 자고 있을 거라고 하지 않았어?”“자다가 깰 수 있잖아.”온하랑은 그를 째려보았다.‘뭘 그렇게 자꾸 묻는 거야?!'“응, 그럴 수 있지.”부승민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고 이내 욕실로 들어갔다.온하랑은 그제야 한숨을 돌리며 침대에 앉았다.욕실에선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심란했다. 뭘 해야 할지 몰랐던 그녀는 대충 대본을 들고 두어 장 넘겼다.분명 더는 부승민에게 홀리지 않겠다고, 더는 가깝게 지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온하랑은 뒤로 벌러덩 누워 소리 없이 울부짖었다.그녀는 마치 부승민이라는 덫에 걸려 빠져나오려고 해도 빠져나올 수 없게 된 것 같았다.미로에 갇힌 것처럼 계속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었다.이때 밖에서 김시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랑 씨, 물 다시 끓였는데 마실래요?”온하랑은 원래 거절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무언가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다시 생각을 바꾸었다.“네, 한잔 남겨 줘요.”한참 후, 부승민은 욕실에서 나왔다. 머리칼에선 여전히 물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고 온몸엔 수건 한 장을 걸치고 있었다.머리칼에서 떨어진 물기 때문인지 몸에 남았던 물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물방울이 그의 하얀 피부를 따라 그대로 탄탄한 근육까지 흘러내렸다.온하랑은
온하랑은 그가 제일 처음 연락한 사람이 연민우가 아님을 발견하고 물었다.“연 비서님한테는 연락 안 해봤어?”“연 비서는 아직도 회사에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지금 해볼게.”부승민이 말했다.그는 연민우에게 전화를 걸었다.몇십 초가 지났지만 받지 않았고 결국 끊겨버렸다.부승민은 그 화면은 온하랑에게 보여주었다.“알았어.”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일단 앉아 있어. 난 대본을 봐야 하니까 방해할 생각은 하지 마. 비서한테는 이따가 다시 연락해 봐.”“대본을 본다고?”부승민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그녀의 손끝에 놓여 있는 대본으로 시선을 돌렸다.“영화 찍으려고?”“응.”“어떤 영환데?”“지난번에 그거야. 원래는 추서윤이 맡은 건데 지금 찍을 수 없게 되었잖아. 배역에 맞는 배우를 찾기 힘들어서 감독님이 나한테 해달라고 부탁하셨어.”그 말은 들은 부승민의 안색이 조금 굳어졌다.그의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그 캐릭터는 구미호라는 수인이었고 노출이 조금 심한 옷을 입는 설정이었다.“연기하고 싶은 거라면 내가 더 좋은 배역을 알아봐 줄 수 있는데.”“괜찮아.”온하랑은 바로 거절했다.“나도 감독님이 급하다고 해서 맡은 것뿐이야. 그리고 구미호지만 소민이라는 캐릭터도 좋은 캐릭터야.”비록 악역이었지만 멍청한 악역은 아니었다.부승민은 시선을 떨구었다.이혼을 한 뒤 그녀는 사진에 관심을 보였고 지금은 연기에 관심을 보이었다. 전보다 취미 생활이 풍부해졌다.예전의 그녀는 취미도 없었고 퇴근한 뒤에는 별다른 약속이 없으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었다.부승민은 침대에 앉았다.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방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온하랑은 대본을 내려놓고 잠옷을 든 채 샤워하러 갔다.머리를 말리고 나오니 부승민은 여전히 침대에 앉아 있었고 그녀의 대본을 보고 있었다.“연락은 해봤어?”“응, 해봤는데 다들 안 받아.”부승민은 고개를 들었다.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방금 샤워한 터라 그녀의 눈가는 촉촉해져 있었고 하얀 피부는 어느
온하랑은 먼저 씻으려고 일어나면서 부승민에게 말했다.“일단 가만히 있어. 시연 씨가 출근하고 나면 비서한테 연락해서 옷 가져다 달라고 해.”“알았어.”부승민은 이불 속에 누워있었다. 얼굴이 조금 불그스레 하고 입술도 창백한 것 같았다. 심지어 말하는 목소리마저 조금 쉬어 있었다.온하랑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부승민을 자세히 보았다.“너... 혹시 지금 열나는 거 아냐?”부승민은 손을 들어 자신의 이마에 올리곤 느릿하게 말했다.“그런 것 같아.”“...”온하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대로 방을 나간 뒤 다시 돌아왔을 때는 따듯한 물과 해열제가 있었다. 협탁 위에 올려두며 말했다.“일단 물부터 마셔. 이다가 비서한테 옷 가져다 달라고 하면서 아침도 사다 달라고 해. 아침을 먹고 약을 먹는 거야.”“응.”걱정 가득한 목소리에 부승민은 어딘가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고마워.”그녀는 비슷한 말을 예전에 그에게 자주 했었다.그러나 지금은 못 들은 지 오래되었다.그는 누운 채 그녀를 보며 말했다.“하랑아, 넌 참 나한테 잘해주는 것 같아.”온하랑은 눈을 부릅뜨며 그를 보다가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간단히 씻은 후 온하랑은 주방으로 들어가 아침을 만들었다.그녀가 방금 부승민에게 비서한테 연락해 아침을 사 오라고 했던 건 괜히 음식을 많이 하면 김시연이 의심할까 봐서였다.고민하던 온하랑은 결국 한 번에 계란 후라이를 네 개나 했고 네 개의 샌드위치를 만들었다.만약 김시연이 그녀에게 묻는다면 감독님에게 가져다줄 것이라고 핑계 댈 생각이었다.김시연이 여전히 코빼기도 보이지 않자 온하랑은 그녀의 방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시연 씨, 아침 먹어요!”3초 뒤, 방 안에선 김시연의 아주 피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 하랑 씨. 어제 깜박하고 말 안 했네요. 나 오늘 휴식이에요. 아침은 안 먹을게요.”온하랑은 그대로 굳어버렸다.“네... 알겠어요...”그녀는 만들어 둔 아침을 들고 방으로 왔다. 샌드위치 두 개와 우유 한잔을 부승
아니, 개자식이지!소파에 털썩 앉은 김시연은 눈을 빤히 뜨고 연민우가 온하랑의 방에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열리더니 슈트를 차려입은 부승민이 안에서 걸어나왔다. 옷차림새는 깔끔하고 단정했다. 연민우가 뒤에서 따라나왔다.소리를 듣고 시선을 옮긴 김시연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애써 분노를 가라앉힌 그녀는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부승민 씨는 언제 오셨길래 제가 못 봤죠? 혹시 은신술이라도 쓰셨나요?”김시연의 말 속에 담긴 비아냥을 눈치 챈 부승민은 옅게 웃으며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미안해요. 하랑이가 어젯밤 시연 씨가 잠들었다고 해서 방해하지 않았어요.”김시연의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려왔다.깜찍한 온하랑!부승민이 말을 이어갔다.“그동안 옆에서 하랑이를 챙겨주고 위로해줘서 고마워요. 시연 씨가 없었더라면 하랑이가 이렇게 빨리 벗어날 수 없었을 거예요. 감사하다는 의미에서 시연 씨가 원하시는 게 있으면 편하게 말씀하세요. 지나간 일들 때문에 시연 씨가 저한테 의견이 많다는 거 알아요. 짧은 시간 안에 저에 대한 편견을 버리기 힘드신 건 알지만 잠시 적의를 내려 놓으시길 바라요. 어쨌든 시연 씨는 하랑이 제일 친한 친구이고 전 하랑이 남편이니까요. 저희는 다 하랑이가 잘 되길 바라잖아요. 난처해지는 게 아니라.”김시연은 부승민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부승민 씨 언변이 이렇게 뛰어나신 걸 이제야 알았네요.”한마디도 반박할 수 없었다. 김시연은 근본적인 원인은 부승민이 아니라 온하랑에게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온하랑이 배신했다!말로는 부승민과 재결합 안 할거라고 했지만 실제 행동은 차츰 누그러지고 있었다. 김시연은 한탄스러웠지만 자신이 온하랑이 아니기에 똑같은 감정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감정이란 사람이 마시는 물처럼 찬가운지 따뜻한지는 본인만 안다. 김시연은 온하랑의 선택을 개변시킬 수 없다면 뒤에서 그녀를 격려해주고 위로해주는 버팀목이 되기로 했다.“칭찬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