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하랑은 먼저 씻으려고 일어나면서 부승민에게 말했다.“일단 가만히 있어. 시연 씨가 출근하고 나면 비서한테 연락해서 옷 가져다 달라고 해.”“알았어.”부승민은 이불 속에 누워있었다. 얼굴이 조금 불그스레 하고 입술도 창백한 것 같았다. 심지어 말하는 목소리마저 조금 쉬어 있었다.온하랑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부승민을 자세히 보았다.“너... 혹시 지금 열나는 거 아냐?”부승민은 손을 들어 자신의 이마에 올리곤 느릿하게 말했다.“그런 것 같아.”“...”온하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대로 방을 나간 뒤 다시 돌아왔을 때는 따듯한 물과 해열제가 있었다. 협탁 위에 올려두며 말했다.“일단 물부터 마셔. 이다가 비서한테 옷 가져다 달라고 하면서 아침도 사다 달라고 해. 아침을 먹고 약을 먹는 거야.”“응.”걱정 가득한 목소리에 부승민은 어딘가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고마워.”그녀는 비슷한 말을 예전에 그에게 자주 했었다.그러나 지금은 못 들은 지 오래되었다.그는 누운 채 그녀를 보며 말했다.“하랑아, 넌 참 나한테 잘해주는 것 같아.”온하랑은 눈을 부릅뜨며 그를 보다가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간단히 씻은 후 온하랑은 주방으로 들어가 아침을 만들었다.그녀가 방금 부승민에게 비서한테 연락해 아침을 사 오라고 했던 건 괜히 음식을 많이 하면 김시연이 의심할까 봐서였다.고민하던 온하랑은 결국 한 번에 계란 후라이를 네 개나 했고 네 개의 샌드위치를 만들었다.만약 김시연이 그녀에게 묻는다면 감독님에게 가져다줄 것이라고 핑계 댈 생각이었다.김시연이 여전히 코빼기도 보이지 않자 온하랑은 그녀의 방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시연 씨, 아침 먹어요!”3초 뒤, 방 안에선 김시연의 아주 피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 하랑 씨. 어제 깜박하고 말 안 했네요. 나 오늘 휴식이에요. 아침은 안 먹을게요.”온하랑은 그대로 굳어버렸다.“네... 알겠어요...”그녀는 만들어 둔 아침을 들고 방으로 왔다. 샌드위치 두 개와 우유 한잔을 부승
아니, 개자식이지!소파에 털썩 앉은 김시연은 눈을 빤히 뜨고 연민우가 온하랑의 방에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열리더니 슈트를 차려입은 부승민이 안에서 걸어나왔다. 옷차림새는 깔끔하고 단정했다. 연민우가 뒤에서 따라나왔다.소리를 듣고 시선을 옮긴 김시연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애써 분노를 가라앉힌 그녀는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부승민 씨는 언제 오셨길래 제가 못 봤죠? 혹시 은신술이라도 쓰셨나요?”김시연의 말 속에 담긴 비아냥을 눈치 챈 부승민은 옅게 웃으며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미안해요. 하랑이가 어젯밤 시연 씨가 잠들었다고 해서 방해하지 않았어요.”김시연의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려왔다.깜찍한 온하랑!부승민이 말을 이어갔다.“그동안 옆에서 하랑이를 챙겨주고 위로해줘서 고마워요. 시연 씨가 없었더라면 하랑이가 이렇게 빨리 벗어날 수 없었을 거예요. 감사하다는 의미에서 시연 씨가 원하시는 게 있으면 편하게 말씀하세요. 지나간 일들 때문에 시연 씨가 저한테 의견이 많다는 거 알아요. 짧은 시간 안에 저에 대한 편견을 버리기 힘드신 건 알지만 잠시 적의를 내려 놓으시길 바라요. 어쨌든 시연 씨는 하랑이 제일 친한 친구이고 전 하랑이 남편이니까요. 저희는 다 하랑이가 잘 되길 바라잖아요. 난처해지는 게 아니라.”김시연은 부승민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부승민 씨 언변이 이렇게 뛰어나신 걸 이제야 알았네요.”한마디도 반박할 수 없었다. 김시연은 근본적인 원인은 부승민이 아니라 온하랑에게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온하랑이 배신했다!말로는 부승민과 재결합 안 할거라고 했지만 실제 행동은 차츰 누그러지고 있었다. 김시연은 한탄스러웠지만 자신이 온하랑이 아니기에 똑같은 감정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감정이란 사람이 마시는 물처럼 찬가운지 따뜻한지는 본인만 안다. 김시연은 온하랑의 선택을 개변시킬 수 없다면 뒤에서 그녀를 격려해주고 위로해주는 버팀목이 되기로 했다.“칭찬 고마워요
이틀 동안 소민의 촬영 장면이 있었는데, 낮이면 온하랑은 촬영장에 머물면서 촬영도 하고 연기 공부도 했다.저녁 촬영을 마친 온하랑이 옷을 갈아입고 촬영장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밤 10시가 넘었다.드라마 촬영장은 여전히 등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촬영팀은 저녁 장면을 찍고 있었고, 엑스트라들은 옆에서 대기했다. 촬영장 밖에는 여러 음식점이 여전히 영업 중이었으며, 일부는 24시간 문을 여는 곳도 있었다. “하랑아?”온하랑은 주차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 발걸음을 멈춘 그녀가 뒤돌아보더니 그 사람의 옷차림을 살펴보며 미소를 지었다.“주혁아? 금방 촬영 끝났어?”이주혁은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다가갔다.“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조명 아래서 그녀의 얼굴에 여전히 남아있는 과장된 메이크업을 본 이주혁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너 아직도 여기서 촬영해?” “응. 추서윤 일 너도 들었지? 그 배역을 다른 사람으로 대체해야하는데 감독님이 단시간 내에 적절한 후보자를 찾지 못해 나를 불렀어.”이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촬영하느라 고생했는데 같이 야식이나 먹을까?”“그래.”온하랑은 저녁을 적게 먹었던지라 배가 몹시 고팠다. 그녀는 이주혁과 나란히 밖으로 걸어 나갔다.“너 이 근처는 빠삭하지 않아? 어서 맛집으로 안내해.”“그래. 나만 믿고 따라와.”이주혁은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추서윤의 일에 대해 나도 조금 듣긴 했는데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넌 괜찮은 거지?”온하랑은 짧게 말했다.“괜찮아. 추서윤이 이제 더는 문제를 일으킬 일은 없을 거야.”이주혁은 안도하며 미소를 지었다.“그나저나 네가 내 동료가 될 줄은 정말 생각도 못 했어. 다음에 함께 일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온하랑은 웃으며 말했다.“아마 그건 힘들 거야. 이번엔 어쩔 수 없이 그냥 대타로 출연하는 거라 다음이 있을지 모르겠네.”“에이, 그거야 모르지.”이주혁은 싱긋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온하랑 포토그래
이번 포럼에는 최동철도 참석했다. 임연지는 주최 측에 자원봉사자 자리를 요청했다. 최국환의 후처 임가희의 조카이자 최동철의 사촌 동생인 그녀에게 주최 측에서는 당연히 인색하게 굴지 않았다.임연지는 부승민도 참석할 거라고 짐작했지만, 이렇게 깊은 인상을 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는 무대에 서서 대본을 벗어난 흥미진진한 연설을 시작했고 그 내용이 하도 인상적이어서 사람들은 저도 모르는 새에 그의 사고방식을 따라갔다.그런 타고난 눈부신 아우라는 정말이지 무시할 수 없었다. 임연지의 마음속에서 부승민의 매력은 이미 연설의 내용을 뛰어넘었다. 연설 내내 부승민의 얼굴만 쳐다보던 임연지는 그의 연설 내용은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했다.처음 임연지에게 이런 황홀감을 안겨준 사람은 그녀의 명목상의 사촌 오빠인 최동철뿐이었다.어렸을 때 경주로 와서 처음 최동철을 만났을 때부터 그는 항상 뛰어나고 탁월하여 범접할 수 없는 그런 존재였다. 임연지는 그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비록 혈연관계는 아니었지만 그녀와 같은 배경을 가진 사람이 최동철과 결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최근 몇 년 동안 임가희는 그녀에게 많은 괜찮은 집안 자제들을 소개해 주었는데 모두 나름대로 훌륭했는데 최동철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임연지가 그들에게 느꼈던 약간의 신선함마저 금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인터넷에서 부승민의 사진을 보고 네티즌들이 그를 치켜세우자 임연지는 사촌 오빠를 닮은 이 남자에게 이유 없는 적대감을 느꼈고, 부승민의 연설도 별로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실제로 그를 보는 순간, 그리고 그가 최동철만큼이나 잘생긴 것을 알았을 때 임지연 저도 모르게 그의 관심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번 연설을 지켜보던 임연지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그의 인상적인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는 이미 부승민이 사촌 오빠에게 뒤처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만약 부승민과 결혼할 수 있다면...임연지는 얼굴을 살짝 붉히고 고개를 떨어
“둘이 잘 어울리네.”최동철이 빙긋 웃으며 말하자 임연지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마워요, 오빠.”임연지는 최동철을 사촌 오빠라고 말하지만 두 사람은 혈연관계가 없었고 그녀에 대한 최동철의 태도는 친밀하지 않았다. 이 최씨 가문의 사촌 아가씨는 실속이 없었다. 그러나 최동철이 그녀를 지지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강남은 괜찮은 곳이야. 넌 여기 있고 싶으면 더 있어도 돼.”“네.”임연지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고모도 여기 며칠 있을 거래요. 동림이가 주말에 놀러 오고 싶대요.”최동철은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고 부승민이 걸어간 방향을 보며 말했다.“가 봐.”“그럼 나 먼저 갈게요, 오빠.”임연지는 부승민이 간 방향으로 쫓아갔다. 임연지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눈을 가늘게 뜬 최동철이 비서를 불러 귀에 대고 몇 마디 지시를 내리자 고개를 끄덕인 비서는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임연지는 복도에서 부승민을 발견했다. 그는 창가에 서서 왼손을 주머니에 꽂고 오른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통화 중이었다. 들어 올린 팔에 의해 깔끔한 슈트에 몇 겹의 주름이 잡히며 어깨의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났다.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서 임연지는 관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부승민을 바라보았다. 넓은 어깨와 다부진 몸매, 전화를 받는 단순한 동작만으로도 매력이 철철 넘쳐흘렀다.서른이 되면 살이 찌기 시작하는 남자들을 아주 많이 봤지만 부승민은 여전히 완벽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한눈에 그가 정기적으로 헬스장에 다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주 운동하는 사람들만의 특유의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그의 목소리도 매우 듣기 좋았다. 중저음의 동굴 목소리는 남성적인 매력을 한껏 끌어올려 주었다. 임연지는 부승민이 듣기 좋은 목소리로 휴대폰 너머의 사람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불구속 상태라도 사건 수사는 중단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이 사건은 증거가 분명해서 바로 검찰에 송치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사건의 당사자인 추서윤과 최민식 조감독의 얘기였다.
“...”“다 말했으면 갈게요.”떠나는 부승민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임연지는 너무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는 자신이 부승민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온하랑은 결혼까지 했었는데 저라고 안 될 것도 없지 않나? 어디가 온하랑보다 못한데? 임연지가 부승민을 쫓아가려고 하는데 뒤에서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연지 씨.”고개를 돌려보니 최동철의 비서였다.“유 비서님? 무슨 일이죠? 오빠가 저를 찾으러 오라고 했나요?”“최 대표님께서 연지 씨더러 급하게 다가가지 말고 정보를 줄 테니 인내심을 가지고 위층 호텔 방에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임연지는 갑자기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기쁨이 차올랐다. 사촌 오빠가 나서서 도와주려는 걸까? 그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알았어요. 오빠 소식 기다릴게요.”강남 고위 인사들은 이미 자리를 떠났고, 부승민이 주최 측과 형식상의 대화를 주고받을 때 최동철이 천천히 다가왔다. 주최 측은 얼른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최동철 씨가 처음 강남에서 열린 포럼에 참석해 주셨는데 저희 대접이 소홀하지는 않았겠죠?”“그럼요.”최동철은 웃으며 말했다. “친절하고 세심한 배려에 감사드려요. 이번 포럼은 저에게도 매우 의미 있었어요. 만약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도 다시 오겠습니다.”“자리를 빛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참, 소개해 드릴게요. 이분은 부승민 씨에요. 포럼에서 보셨죠. 승민 씨도 최동철 씨에 대해 들어보셨을 테죠. 대단한 분들을 이 자리에 모시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부승민은 눈을 들어 처음 보는 사람처럼 인사했다.“최동철 씨,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저도요. 만나서 반갑습니다.”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던 최동철은 손에 와인잔을 들어 올렸다.“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부승민도 와인잔을 들어 올렸다.“감사합니다.”주최자는 두 사람의 훈훈한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오전 포럼에서 논의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했다.“지난 몇 년 동안 우리 모두 알다
유은정이 옆으로 스쳐 지나가며 임연지의 손에 객실 카드 한 장을 건넸다. 임연지가 로비로 나와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을 때 왼쪽 엘리베이터는 이미 올라가고 있었다.그녀가 올라가는 버튼을 누르자 오른쪽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32층에 도착한 임연지는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며 마침 김 비서와 마주쳤다. 부승민은 이미 방에 들어간 것 같았다.임연지는 다른 데 정신을 팔지 않고 카드와 일치하는 방 번호를 찾았다. 굳게 닫힌 객실 문을 보며 침대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부승민을 생각하니 임연지는 긴장되면서도 설렜다.몸도 좋으니까, 아마... 엄청나겠지...이런 최상급의 남자와 함께라면 원나잇도 가능했다. 게다가 임연지는 어차피 부승민과 결혼할 생각이었다.심호흡을 한 그녀는 카드로 문을 열고 객실에 들어가자마자 재빨리 문을 잠갔다. 방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임연지는 미간을 찌푸렸다.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새 방처럼 깨끗한 거실에는 사람이 없었다. 임연지의 시선이 침실로 향했다.부승민은 지금쯤 침실에서 쉬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얼른 침실 문으로 다가가 문고리를 조심스럽게 내렸다. 문이 살짝 열리자 임연지는 슬며시 안을 들여다보았다. 큰 침대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어리둥절해 있던 그녀는 문을 활짝 열었지만 침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닫혀 있는 욕실 문을 보며 앞으로 걸어간 임연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설마 방을 잘 못 찾아왔나? 임연지는 다시 객실 문 앞으로 가서 번호를 확인했다. 이 방이 틀림없는데 부승민이 왜 안에 없지? 설마 도망갔나?!안색이 어두워진 임연지는 이를 악물고 곧바로 최동철에게 전화했다. 휴대폰 화면을 흘긋 들여다본 최동철은 주최자에게 양해를 구했다.“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네.”최동철은 휴대폰을 들고 비상계단 입구로 걸어가 전화를 받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래?”“오빠, 그 사람 도망갔어요.”임연지는 방금 있었던 일을 말했다. 최동철의
잠시 주저하던 온하랑은 미간을 구긴 채 마지못해 대답했다.“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금방 갈게.”솔직히 정말 귀찮았지만 그녀는 하던 일을 멈추고 코트를 챙겨서 문을 나섰다. “하랑 씨,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디 가요?”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김시연이 갑자기 물었다. 발걸음을 멈춘 온하랑은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오늘 밤 저녁 촬영이 있어서요.”“아...”김시연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조심해서 가요.”온하랑은 현관에서 조용히 신발을 갈아 신고 있는데 김시연이 또 물었다.“밤에 돌아올 거예요?”“상황 봐서요.”“알았어요.”한 길만 지나면 온하랑은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녀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부승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제 거의 다 왔는데 지하 주차장으로 갈까, 아니면 밖에서 기다려?”“밖에서. 준경로까지 운전해서 들어오면 일레븐 편의점이 보일 거야. 그 맞은편에서 기다려.”온하랑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부승민의 말을 따랐다.“알았어.”전화를 끊고 나서야 부승민의 휴대폰에 아직 배터리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새 어디서 충전이라도 했나? 온하랑은 차를 운전해 지정된 장소로 가서 멈춰 섰다. 기다리는 동안 창문을 내리고 좌우를 살폈다.“가자.”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부승민이 재빨리 뒷좌석 문을 열고 차에 탔다. 그는 등받이에 힘없이 기대앉았다. 깜짝 놀란 온하랑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어디서 온 거야...”그녀는 말하다 말고 부승민을 유심히 살폈다. 그는 얼굴이 붉어진 채 심하게 숨을 헐떡이며 가슴이 격렬하게 오르내리고 있었고, 온몸에 힘이 쭉 빠진 듯했다. 옷은 지저분하고 주름과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오빠, 뭔 일 있었어?”온하랑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야.”부승민은 팔을 들어 눈을 가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더러운 속임수에 당했을 뿐이야.”“그럼 병원으로 갈까?”부승민은 잠시 멈칫하다가 갑자기 팔을 내렸다. 그녀를 응시하는 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