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럼에는 최동철도 참석했다. 임연지는 주최 측에 자원봉사자 자리를 요청했다. 최국환의 후처 임가희의 조카이자 최동철의 사촌 동생인 그녀에게 주최 측에서는 당연히 인색하게 굴지 않았다.임연지는 부승민도 참석할 거라고 짐작했지만, 이렇게 깊은 인상을 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는 무대에 서서 대본을 벗어난 흥미진진한 연설을 시작했고 그 내용이 하도 인상적이어서 사람들은 저도 모르는 새에 그의 사고방식을 따라갔다.그런 타고난 눈부신 아우라는 정말이지 무시할 수 없었다. 임연지의 마음속에서 부승민의 매력은 이미 연설의 내용을 뛰어넘었다. 연설 내내 부승민의 얼굴만 쳐다보던 임연지는 그의 연설 내용은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했다.처음 임연지에게 이런 황홀감을 안겨준 사람은 그녀의 명목상의 사촌 오빠인 최동철뿐이었다.어렸을 때 경주로 와서 처음 최동철을 만났을 때부터 그는 항상 뛰어나고 탁월하여 범접할 수 없는 그런 존재였다. 임연지는 그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비록 혈연관계는 아니었지만 그녀와 같은 배경을 가진 사람이 최동철과 결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최근 몇 년 동안 임가희는 그녀에게 많은 괜찮은 집안 자제들을 소개해 주었는데 모두 나름대로 훌륭했는데 최동철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임연지가 그들에게 느꼈던 약간의 신선함마저 금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인터넷에서 부승민의 사진을 보고 네티즌들이 그를 치켜세우자 임연지는 사촌 오빠를 닮은 이 남자에게 이유 없는 적대감을 느꼈고, 부승민의 연설도 별로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실제로 그를 보는 순간, 그리고 그가 최동철만큼이나 잘생긴 것을 알았을 때 임지연 저도 모르게 그의 관심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번 연설을 지켜보던 임연지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그의 인상적인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는 이미 부승민이 사촌 오빠에게 뒤처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만약 부승민과 결혼할 수 있다면...임연지는 얼굴을 살짝 붉히고 고개를 떨어
“둘이 잘 어울리네.”최동철이 빙긋 웃으며 말하자 임연지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마워요, 오빠.”임연지는 최동철을 사촌 오빠라고 말하지만 두 사람은 혈연관계가 없었고 그녀에 대한 최동철의 태도는 친밀하지 않았다. 이 최씨 가문의 사촌 아가씨는 실속이 없었다. 그러나 최동철이 그녀를 지지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강남은 괜찮은 곳이야. 넌 여기 있고 싶으면 더 있어도 돼.”“네.”임연지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고모도 여기 며칠 있을 거래요. 동림이가 주말에 놀러 오고 싶대요.”최동철은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고 부승민이 걸어간 방향을 보며 말했다.“가 봐.”“그럼 나 먼저 갈게요, 오빠.”임연지는 부승민이 간 방향으로 쫓아갔다. 임연지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눈을 가늘게 뜬 최동철이 비서를 불러 귀에 대고 몇 마디 지시를 내리자 고개를 끄덕인 비서는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임연지는 복도에서 부승민을 발견했다. 그는 창가에 서서 왼손을 주머니에 꽂고 오른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통화 중이었다. 들어 올린 팔에 의해 깔끔한 슈트에 몇 겹의 주름이 잡히며 어깨의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났다.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서 임연지는 관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부승민을 바라보았다. 넓은 어깨와 다부진 몸매, 전화를 받는 단순한 동작만으로도 매력이 철철 넘쳐흘렀다.서른이 되면 살이 찌기 시작하는 남자들을 아주 많이 봤지만 부승민은 여전히 완벽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한눈에 그가 정기적으로 헬스장에 다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주 운동하는 사람들만의 특유의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그의 목소리도 매우 듣기 좋았다. 중저음의 동굴 목소리는 남성적인 매력을 한껏 끌어올려 주었다. 임연지는 부승민이 듣기 좋은 목소리로 휴대폰 너머의 사람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불구속 상태라도 사건 수사는 중단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이 사건은 증거가 분명해서 바로 검찰에 송치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사건의 당사자인 추서윤과 최민식 조감독의 얘기였다.
“...”“다 말했으면 갈게요.”떠나는 부승민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임연지는 너무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는 자신이 부승민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온하랑은 결혼까지 했었는데 저라고 안 될 것도 없지 않나? 어디가 온하랑보다 못한데? 임연지가 부승민을 쫓아가려고 하는데 뒤에서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연지 씨.”고개를 돌려보니 최동철의 비서였다.“유 비서님? 무슨 일이죠? 오빠가 저를 찾으러 오라고 했나요?”“최 대표님께서 연지 씨더러 급하게 다가가지 말고 정보를 줄 테니 인내심을 가지고 위층 호텔 방에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임연지는 갑자기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기쁨이 차올랐다. 사촌 오빠가 나서서 도와주려는 걸까? 그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알았어요. 오빠 소식 기다릴게요.”강남 고위 인사들은 이미 자리를 떠났고, 부승민이 주최 측과 형식상의 대화를 주고받을 때 최동철이 천천히 다가왔다. 주최 측은 얼른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최동철 씨가 처음 강남에서 열린 포럼에 참석해 주셨는데 저희 대접이 소홀하지는 않았겠죠?”“그럼요.”최동철은 웃으며 말했다. “친절하고 세심한 배려에 감사드려요. 이번 포럼은 저에게도 매우 의미 있었어요. 만약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도 다시 오겠습니다.”“자리를 빛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참, 소개해 드릴게요. 이분은 부승민 씨에요. 포럼에서 보셨죠. 승민 씨도 최동철 씨에 대해 들어보셨을 테죠. 대단한 분들을 이 자리에 모시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부승민은 눈을 들어 처음 보는 사람처럼 인사했다.“최동철 씨,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저도요. 만나서 반갑습니다.”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던 최동철은 손에 와인잔을 들어 올렸다.“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부승민도 와인잔을 들어 올렸다.“감사합니다.”주최자는 두 사람의 훈훈한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오전 포럼에서 논의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했다.“지난 몇 년 동안 우리 모두 알다
유은정이 옆으로 스쳐 지나가며 임연지의 손에 객실 카드 한 장을 건넸다. 임연지가 로비로 나와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을 때 왼쪽 엘리베이터는 이미 올라가고 있었다.그녀가 올라가는 버튼을 누르자 오른쪽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32층에 도착한 임연지는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며 마침 김 비서와 마주쳤다. 부승민은 이미 방에 들어간 것 같았다.임연지는 다른 데 정신을 팔지 않고 카드와 일치하는 방 번호를 찾았다. 굳게 닫힌 객실 문을 보며 침대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부승민을 생각하니 임연지는 긴장되면서도 설렜다.몸도 좋으니까, 아마... 엄청나겠지...이런 최상급의 남자와 함께라면 원나잇도 가능했다. 게다가 임연지는 어차피 부승민과 결혼할 생각이었다.심호흡을 한 그녀는 카드로 문을 열고 객실에 들어가자마자 재빨리 문을 잠갔다. 방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임연지는 미간을 찌푸렸다.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새 방처럼 깨끗한 거실에는 사람이 없었다. 임연지의 시선이 침실로 향했다.부승민은 지금쯤 침실에서 쉬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얼른 침실 문으로 다가가 문고리를 조심스럽게 내렸다. 문이 살짝 열리자 임연지는 슬며시 안을 들여다보았다. 큰 침대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어리둥절해 있던 그녀는 문을 활짝 열었지만 침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닫혀 있는 욕실 문을 보며 앞으로 걸어간 임연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설마 방을 잘 못 찾아왔나? 임연지는 다시 객실 문 앞으로 가서 번호를 확인했다. 이 방이 틀림없는데 부승민이 왜 안에 없지? 설마 도망갔나?!안색이 어두워진 임연지는 이를 악물고 곧바로 최동철에게 전화했다. 휴대폰 화면을 흘긋 들여다본 최동철은 주최자에게 양해를 구했다.“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네.”최동철은 휴대폰을 들고 비상계단 입구로 걸어가 전화를 받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래?”“오빠, 그 사람 도망갔어요.”임연지는 방금 있었던 일을 말했다. 최동철의
잠시 주저하던 온하랑은 미간을 구긴 채 마지못해 대답했다.“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금방 갈게.”솔직히 정말 귀찮았지만 그녀는 하던 일을 멈추고 코트를 챙겨서 문을 나섰다. “하랑 씨,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디 가요?”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김시연이 갑자기 물었다. 발걸음을 멈춘 온하랑은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오늘 밤 저녁 촬영이 있어서요.”“아...”김시연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조심해서 가요.”온하랑은 현관에서 조용히 신발을 갈아 신고 있는데 김시연이 또 물었다.“밤에 돌아올 거예요?”“상황 봐서요.”“알았어요.”한 길만 지나면 온하랑은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녀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부승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제 거의 다 왔는데 지하 주차장으로 갈까, 아니면 밖에서 기다려?”“밖에서. 준경로까지 운전해서 들어오면 일레븐 편의점이 보일 거야. 그 맞은편에서 기다려.”온하랑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부승민의 말을 따랐다.“알았어.”전화를 끊고 나서야 부승민의 휴대폰에 아직 배터리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새 어디서 충전이라도 했나? 온하랑은 차를 운전해 지정된 장소로 가서 멈춰 섰다. 기다리는 동안 창문을 내리고 좌우를 살폈다.“가자.”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부승민이 재빨리 뒷좌석 문을 열고 차에 탔다. 그는 등받이에 힘없이 기대앉았다. 깜짝 놀란 온하랑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어디서 온 거야...”그녀는 말하다 말고 부승민을 유심히 살폈다. 그는 얼굴이 붉어진 채 심하게 숨을 헐떡이며 가슴이 격렬하게 오르내리고 있었고, 온몸에 힘이 쭉 빠진 듯했다. 옷은 지저분하고 주름과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오빠, 뭔 일 있었어?”온하랑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야.”부승민은 팔을 들어 눈을 가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더러운 속임수에 당했을 뿐이야.”“그럼 병원으로 갈까?”부승민은 잠시 멈칫하다가 갑자기 팔을 내렸다. 그녀를 응시하는 칠
온하랑의 귀가 빨개졌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부승민을 흘긋 쳐다보더니 곧바로 거절했다.“무슨 헛소리야?! 더 빨리 운전할 테니까 집에 가서 직접 해결해!”어떻게... 이렇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게 어떤 도움인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도와줄 수 있단 말이지?호흡이 거칠어진 부승민은 목울대가 위아래로 오르내리더니 힘겹게 말했다.“집에 갈 때까지 못 버틸 것 같아... 앞 교차로에서 우회전해 중앙공원으로 가.” 잠깐 망설이던 온하랑은 핸들을 꺾어 우회전 차선으로 들어갔다. 3분 후, 차가 공원에 들어섰다.중앙공원은 지금 개방되어 있었다. 아직 날도 춥고 밤이라서 한 사람도 없었다. 온하랑은 차를 길가에 주차하고 서둘러 안전벨트를 풀었다.“밖에 나가 있을게. 알아서 해결해.”그녀가 정말 차 문을 밀려고 하자 부승민이 뒤에서 그녀의 손목을 그러쥐고 애원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하랑아, 제발 부탁이야. 좀 도와주면 안 돼? 너무 힘들어...”부승민은 온몸이 불덩이었고 커다란 손도 엄청 뜨거웠다. 그가 온하랑의 손목을 잡았을 때 그녀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그의 불타오르는 시선을 마주한 온하랑은 온몸이 나른해지며 아랫입술을 깨물고 시선을 피했다.“...안 돼. 혼자 해결해...”부승민은 온하랑의 손바닥을 지그시 눌렀다. 가늘게 뜬 눈에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널 어떻게 안 할게.”온하랑은 반사적으로 다섯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그녀는 알고 싶지 않았지만 부승민이 손바닥을 누르는 순간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부끄럽기도 하고 분하기도 했다. 왜 하필 이런 엉뚱한 타이밍에 알아차린 것인지!입술을 감쳐문 온하랑은 아무 말도 없이 부승민에게서 손을 빼내고 차에서 내렸다. 부승민은 가슴이 조여오며 눈빛에 실망감이 드러났다. 그러나 뒷좌석 문이 열리더니 온하랑이 옆에 앉아서 문을 닫았다. 괜한 걱정을 한 부승민은 안색이 밝아지며 불꽃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온하랑을 응시했다.“고마워, 하랑아.”부승
부승민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키득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차에서 역겨운 냄새가 났다. 온하랑은 시동을 걸고 창문을 내리면서 내일 꼭 세차장에 갈 거라고 결심했다.“오늘 밤 무슨 일이 있었어?”방금 뒷좌석에 앉았을 때 그녀는 그의 슈트에 있는 벽에 마찰한 흔적을 보았다.“누가 날 음해하려고 했는데 내가 호텔 방을 나간 걸 알고 사람을 시켜서 호텔 출구와 비상계단을 지키고 있어서 벽을 타고 밖으로 나왔어.”방에 들어간 후 김 비서가 나가자마자 부승민은 발코니로 나갔다. 그는 32층 발코니에서 31층 발코니로 내려갔다. 31층 객실은 비어있었다. 최동철이 쉽게 내보낼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정문으로 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일부러 시간차를 두고 3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서 내려 화장실에 숨었다.최동철의 사람들이 화장실을 찾으려고 할 때 그는 창문으로 나가 화장실과 가장 가까운 방의 발코니로 이동했다.그 사람들은 그가 계단을 이용할 것이라고만 생각했고, 그렇게 빨리 내려올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기에 아래층은 감시가 소홀해서 부승민이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연민우도 포럼에 참석했지만 최동철이 사람을 시켜 연민우를 감시할 게 분명했고 만약 연민우와 통화하면 자신의 위치가 발각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온하랑에게 데리러 오라고 부탁했다.길가에서 그를 기다리던 온하랑은 앞길과 뒷길에만 신경을 썼다. 부승민은 옆 2층 화장실에서 내려왔다. 온하랑은 흥, 코웃음을 치며 비아냥거렸다.“인기가 참 많으시네. 수많은 여자가 자고 싶어 안달인 걸 보면.”“넌 안 자고 싶어?”“꺼져.”“누가 나를 음해하려고 했는지는 궁금하지 않아?” “라이벌 아니면 위로 올라가고 싶은 사람이겠지.”부승민은 가부를 말하지 않았다.만약 자신에게 약을 먹인 사람이 최동철이라고 하면 온하랑이 믿을까?그는 앞에 있는 도로를 보며 화제를 돌렸다.“너희 아파트로 가.”온하랑은 백미러로 그를 흘겨보았다.“오빠 운전하면 안 돼.”그녀는 자신이 차에서 내리면 그가
호텔 방 안에서 임연지는 짜증이 나서 거실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거의 다 왔는데 놓쳐버리고 말았다. 흥, 그래 어디까지 도망칠 수 있는지 두고 보자. 어차피 쓸모없는 몸부림일 텐데. 최동철이 이미 이 건물에 사람들을 배치했기에 부승민은 조만간 그녀의 손아귀에 들어온다.임연지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비상계단 입구로 걸어갔다. 내부는 어둡고 으스스한 기운이 감돌았다. 30층이 넘는데 부승민이 정말 여기로 내려올까?“저기요?”갑자기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임연지는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그녀는 가슴을 부여잡고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나서야 계단 모퉁이에 어두운 그림자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천천히 앞으로 다가가자 센서 등이 켜졌다. 그제야 임연지는 검은 그림자가 젊은 여자라는 것을 알았다. 창백한 얼굴과 빨간 눈시울을 보니 아마도 기분이 좋지 않아 이곳에 숨어 있었던 것 같다.“깜짝 놀랐네.”임연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젊은 여자가 말했다. “당신이 계속 들여다보는 걸 봤어요.”“여기 얼마나 있었어요?”“30분 정도요.”임연지는 그 말에 다급히 물었다.“그럼 어떤 남자가 여기를 지나가는 걸 보셨나요? 키도 크고 잘생겼어요!”여자는 어리둥절해서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제가 온 이후로 아무도 지나간 적 없어요. 30층이 넘는데 누가 계단을 이용하겠어요?”임연지는 당황해서 입을 크게 벌렸다.“확실해요?”“그럼요.”부승민이 계단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어디로 갔을까?서둘러 방으로 돌아온 임연지는 등잔 밑이 어둡다고 설마 방에 숨어 있는 건 아닐지 생각하며 옷장을 하나씩 열어보았지만 옷장 안은 텅텅 비어있었다. 여기도 없고 계단도 이용하지 않았다면 어딘가에 숨어 그녀가 방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용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을지도 모른다. 이 경우 최동철의 사람들이 제때 지키지 못해 이미 탈출했을 가능성이 높았다...아니면 다른 층의 방에 들어가 숨었을 수도 있었다. 임연지는 서둘러 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