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미 오빠가 말한 대로 했으니까 오빠도 약속 꼭 지켜. 내 의견을 존중해 줬으면 좋겠어.”부승민은 앞만 보면서 운전에 집중했다.의견을 존중해 달라고? 그게 무슨 의견인지 봐야지.두 사람은 본가에 도착했다.부민재네 가족과 둘째 삼촌네 가족들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평소 하던 대로 오늘 밤은 모든 가족이 모여서 식사할 것이다.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 가족 모임은 평소보다 한 사람이 줄었다는 것이다.이 점을 생각하니 온하랑은 문득 슬퍼졌다.거실에서 할머니 옆에 소청하와 둘째 숙모가 앉아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부민재는 다른 쪽 소파에 앉아 옆에 있는 부현승과 무언가를 의논하고 있었다.그리고 부시아와 부윤민은 주방에 있는 식탁에 앉아 함께 놀고 있었다.그들과 인사를 나눈 온하랑은 소청하 옆에 다가가 앉았다.“형님, 안녕하세요.”소청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다소 부자연스러운 그 미소는 억지로 짜낸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얼굴을 보니 눈가가 거무스름한 게 몹시 피곤해 보였다.온하랑은 소청하가 걱정되어 물었다.“형님, 어디 편찮으세요?”부민재가 듣고 고개를 돌려 소청하를 힐끔 쳐다봤다. 놀란 소청하는 온하랑을 보며 다시 미소를 지었다.“아니. 괜찮아요.”소청하는 온하랑 뒤에서 따라오는 부승민을 보더니 온하랑에게 몸을 붙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도련님이랑 화해했어요?”“아니요.”온하랑은 고개를 들어 부승민을 흘끗 봤다.그는 부현승 옆에 다가가 앉았다. 부민재는 분명 부승민과 친형제이지만 지금 보니 부현승과 더 닮아 있었다. 오히려 부승민은 그 누구와도 닮은 구석이 없었다.할머니와 둘째 숙모도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그런데 갑자기 둘째 숙모가 듣기 싫은 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벌써 스물일곱인데 여자 친구도 없다니.”부현승은 소파에 기대어 어색하게 웃으며 목을 주물럭거렸다. 온천에서 긁힌 상처가 아직 남아있었다. 부현승이 말했다.“엄마, 조급해하지 마세요. 이제 곧 여자 친구가 생
온하랑은 그 말을 듣고 살짝 당황했다.그렇게 부시아와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저녁 준비할 시간이 되자 내려가서 일손을 거들었다.둘째 숙모와 소청하는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부승민과 부현승, 부민재도 안에서 새우를 손질하고 갈비를 잘랐다.거실에는 할머니와 두 아이만 남았다.온하랑은 소청하를 쳐다보고는 다시 닭 다리를 재우고 있는 부민재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한마디도 교류가 없는 것을 보니 부부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소청하는 아예 부민재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고, 부민재는 소청하를 힐끔 보다가도 곧바로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식탁에 음식을 가득 차려놓았다. 식사 시간이 되자 가족들은 하나둘씩 원형 테이블 앞에 둘러앉았다. 자리에 앉을 때 소청하는 일부러 온하랑 옆자리를 짚으며 말했다.“여기에 어린이 의자 두 개 추가하고 윤민이랑 시아 앉혀요.”온하랑은 그녀가 부민재와 같이 앉기 싫어서 그러는 것이란 걸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부선월이 아래층으로 내려왔을 때 부시아는 이미 온하랑 옆에 앉아서 부윤민과 이야기하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부선월의 표정은 몹시 언짢아 보였는데 할머니 옆자리에 앉으며 부시아에게 말했다.“시아야, 할머니 옆으로 와!”부시아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할머니, 저는 숙모 옆에 앉고 싶어요.”온하랑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청하가 먼저 말했다.“고모님, 시아 여기 앉아서 윤민이랑 같이 놀게 해요.”소청하는 아이를 핑계로 옆자리에 앉았으니 이때 당연히 온하랑 대신 나서서 말해야 했다.부선월이 다시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할머니가 그녀의 손목을 잡으며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명절인데 적당히 해.”그러자 부선월은 차가운 눈빛으로 온하랑을 바라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식사할 때 부민재는 소청하에게 음식을 집어주었지만 소청하는 못 본 척하며 그에게 음식을 집어주지 않았다.식사가 끝난 후 부씨 가문 사람들은 거실에서 윷놀이도 하고 체스도 두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미 불만이 자리 잡았다. 이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속해서 부민재와 함께 지내고 싶지 않았다.그렇다고 이혼을 하면 부씨 가문 핏줄인 부윤민은 이 집에 남아있어야 했다. 그렇게 되면 소청하는 자신의 아이와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저도 제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그녀는 넋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저번 달에 부민재랑 통화 중이던 여자 목소리를 들었어요. 그런데도 저한테 따로 무슨 일인지 얘기 해주지도 않고 계속 피하기만 하더라고요… 전엔 단 한 번도 저 몰래 여자랑 통화한 적 없었거든요. 여자 비서든, 여사친이든 제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요… 그때도 별로 신경은 안 썼는데 그 후로 어느 날 갑자기 부민재 몸에서 여자 향수 냄새가 나는 거 있죠? 그리고 머리카락, 손, 목덜미 쪽 손자국까지… 딱 봐도 여자 손톱자국이었어요.”“제가 부민재한테 따졌을 때는, 그 여자랑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했거든요… 하… 근데 그 여자가 누구냐고 직접 물었을 땐 또 아무 말도 못 하더라고요… 제가 정말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보죠?”딱 들어도 지금 소청하는 부민재에게 아직 감정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다만 마음속에 진 응어리가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이런 상황에 온하랑이 소청하 대신 결정을 내려줄 수는 없었다.온하랑이 부씨 가문으로 들어왔던 그때도 소청하와 부민재는 이미 연애 중이었다. 온하랑이 대학교 신입생이 되던 그해에 둘은 성대 하고도 낭만적인 결혼식을 올렸다. 온하랑은 두 사람의 연애부터 결혼까지 모든 것을 다 지켜보았다.결혼 후, 소청하는 임신에 성공했지만 아이를 한 번 잃은 경험이 있다. 그 후로 오랜 시간 동안 정성스레 공을 들여 비로소 부윤민을 얻은 것이다.온하랑은 한 때 소청하가 너무 부러웠다. 소청하와 부민재의 금실 좋은 부부 사이가 부러웠고 화목하고 아름다운 그 가족이 부러웠다.하지만 지금, 화목하기만 할 줄 알았던 그 가정에 금이 갔다.부승민, 부민재 누가 형제 아니랄까 봐.온하랑은
온하랑은 이상한 사람이라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부승민을 바라보며 대답했다.“너도 새해 복 많이 받든지.”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돌려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다.“어디 가?”부승민이 뒤따라 오며 온하랑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기 시작했다.“그냥 산책 좀 하는 거야.”온하랑이 성가시다는 듯한 말투로 대꾸했다.“방금 형수님이랑 얘기하고 있던데. 뭔 얘기하고 있었어?”부승민이 무심코 질문을 던졌다.온하랑이 눈썹을 찌푸리더니 부승민을 흘겨보며 말했다.“넌 모르겠어? 아주버님 오늘따라 형님한테 말도 잘 안 걸고, 평소랑 다른 게 뻔한데.”“난 몰랐지. 너만 보느라.”온하랑이 눈을 부릅뜨고 부승민을 째려보았다.“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게.”“그래?”부승민은 억울하다는 듯 눈썹을 으쓱 치켜들었다.온하랑이 고개를 홱 돌리더니 잠깐 멈칫하다가 물었다.“아무래도 아주버님한테 다른 여자가 생긴 것 같은데. 넌 뭐 아는 거 있어?”“몰라.”부승민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무슨 오해가 생긴 건 아닐까?”부승민은 여전히 두 사람의 관계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먼저 좋다고 쫓아다닌 쪽은 부민재였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같이 자라온 사람으로서 부승민이 아는 부민재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부민재는 소청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고 오랜 시간 결혼 생활을 해오며 부부 사이도 아주 화목했다. 게다가 두 사람 사이에는 귀여운 아이까지 있는데 이렇게 갑자기 바람이 난다고?온하랑이 비웃었다.“형님이 아주버님한테서 나는 여자 향수 냄새를 맡으셨대. 여자 머리카락도 같이 발견했고. 게다가 몸에서 여자 손톱에 긁힌 자국까지 있는데 그 여자랑은 아무 사이 아니라고 잡아떼셨다더라. 그래서 그 여자가 누구냐고 형님이 물어보니까 막상 대답은 안 하고. 왜? 이래도 형님이 지금 오해 하는 것 같아?”온하랑의 대답에 부승민이 입을 다물었다.온하랑이 우습다는 듯 부승민을 바라보며 조롱 섞인 말투로 말했다.“역시 두 사람 형제 맞네. 이렇게나 서로한테
온하랑은 2층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부승민은 뒤따라 가지 않았다.방으로 돌아와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던 그녀는 자신이 절대 밤을 새우지 못 할 것을 직감했다. 온하랑은 자리에서 일어나 잠자리에 들기 위해 씻으러 화장실로 향했다.잠옷을 입고 화장실을 나선 온하랑이 침대 위에 누웠을 때였다. 갑자기 방문 밖에서 누군가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온하랑은 부시아가 돌아온 줄로만 알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문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방문 앞에 서 있던 사람은 부시아가 아니라 부승민이었다.온하랑이 미처 알아채기도 전에 부승민은 열린 문틈을 통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왜 들어온 거야?”온하랑이 뒤늦게 부승민이 들어오려는 것을 눈치채고 발걸음을 옮겨 두 팔을 뻗은 채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부승민은 평온한 표정으로 온하랑의 질문에 대답했다.“자려고.”온하랑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내 방에서 자겠다고? 지금 장난해?”“여긴 우리 방이야.”부승민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온하랑의 표정이 부승민의 말에 멍해졌다.둘이 이혼을 하기 전, 이 방은 두 사람이 함께 밤을 보내던 장소이긴 했다.“우리 이미 이혼했어. 잘 거면 다른 방 가서 자.”“없던데.”“뭐가 없다는 거야?”“둘째 삼촌이랑 둘째 숙모가 한 방, 부현승이 한 방, 고모가 한 방, 큰 형이 한 방, 형수님이랑 윤민이 한 방. 이렇게 해서 손님방은 이미 다 찼어. 남은 방 두 개는 이불도 없고 청소도 안 했던데.”도우미 아주머니가 부민재와 소청하의 각방 생활을 미처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온하랑이 부승민의 답변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큰 형님이든 셋째 형님이든 아무나 찾아서 같이 자든지 해. 나 찾아와서 이러지 말고.”“갔었어. 부현승은 여자친구랑 밤 새 통화한다 그러고, 큰 형은 지금 다른 사람이랑 영상통화나 하고 있고. 소리 들어보니까 여자랑 통화 중인 것 같던데…”부승민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부승민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부민재는 정말로
“음?”목울대 깊은 곳에서 울리는 듯한, 짧고 간결하면서도 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왜 그래?”묵직하고 매력적인 몸짓이 귓가를 스치더니 가까이에서 온하랑의 고막을 두드렸다. 한 줄기의 전류가 몸 안을 뚫고 흐르듯 뼈 사이 사이가 짜릿짜릿했다.창밖에서 터지는 폭죽의 불꽃이 어두운 방을 환하게 비추었다.몸을 뒤척인 온하랑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부승민의 섹시한 목울대와 각이 선명한 턱선이었다.그대로 멈칫한 온하랑은 숨을 깊게 들이쉬더니 몸을 일으켰다.“왜 내 이불 속까지 기어들어 온 거야?”부승민은 비몽사몽 한 상태로 실눈을 뜬 채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그랬어?”온하랑은 덮고 있던 이불을 끌어당기며 말했다.“그럼 아니야? 눈 크게 뜨고 한 번 봐…”온하랑은 하던 말을 채 끝내지도 못하고 그만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손에 쥔 이불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서 멍을 때리고 있었다.이 이불… 아무래도… 부승민 것 같은데…온하랑은 다급하게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다가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이불을 발견했다.그 순간, 바닥에 발을 딛고 선 온하랑의 발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마음 같아서는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었다.부승민은 침대에 누운 채 웃는 것 같으면서도 정작 웃음기는 없는 표정으로 물었다.“뭘 봐?”“… 아무것도 아니야…”온하랑은 조용히 몸을 돌려 침대를 벗어나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이불을 끌어안고 다시 침대 위에 누웠다.부승민이 낮게 웃음을 흘렸다.온하랑은 생각할 수록 민망하고 수치스러워 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더는 참을 수 없었던 그녀는 손을 뻗어 부승민을 한 번 내리치더니 말했다.“웃지 마!”온하랑은 표정을 굳힌 채 잔뜩 화난 모습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부승민의 귀에는 그저 귀여운 투정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웃고 싶은 걸 어떡해.”부승민은 온하랑의 말에 더 크게 웃어 보였다. 일부러 정갈하고 새하얀 이빨까지 내보이며 해맑게 웃었다.온하랑은 부승민의 웃음에 잠깐
부승민은 곧바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큰 보폭으로 문 쪽으로 걸어가더니 방문을 활짝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부시아가 울면서 자신에게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이의 눈망울이 눈물로 인해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삼촌 으아아앙…”부승민은 부시아의 등 너머를 바라보았다. 부선월이 한 손님방 입구에 가만히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녀의 표정이 어두웠다.부승민의 냉랭한 눈빛과 부선월의 눈이 마주쳤다. 그는 앞으로 걸어가 부시아를 끌어안고 방으로 들어와 물었다.“시아야, 왜 그래?”부시아가 이렇게 우는 모습은 처음 보는지라 부승민의 마음이 아파왔다.온하랑은 진작에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빠른 걸음으로 부시아에게 다가갔다.“시아야, 왜 울어? 숙모한테 얘기해줄래?”“으아앙…”부시아의 두 눈은 하도 울어 벌겋게 부어있었다. 아직 울음기가 남아있는 아이는 계속해서 훌쩍이며 온하랑을 향해 팔을 뻗었다.자신에게 의지하는 아이의 표정을 마주하자 순간적으로 마음이 약해진 온하랑이 부시아를 끌어안고 침대맡에 걸터앉았다.부시아는 온하랑의 품속에 고개를 파묻고 조심스레 그녀의 잠옷 옷자락을 꼭 쥔 채 훌쩍대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온하랑은 부시아가 이렇게 우는 것에 분명 부선월이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굳이 아이에게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그저 아직도 훌쩍대며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부시아의 등을 살살 토닥일 뿐이었다.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부시아가 점점 울음을 멈추고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아이의 얼굴에는 기분 나쁜 기색이 역력했지만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온하랑은 부승민에게 따뜻한 수건 한 장을 갖고 전해달라 부탁했다. 그녀는 부승민에게서 건네받은 수건으로 부시아의 얼굴을 살살 닦아주며 말했다.“시아야, 불꽃놀이 보러 가지 않을래?”부시아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럼 우리 같이 자자. 어때? 시아는 삼촌이랑 숙모 사이에서 자는 거야.”부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부시아는 자리에 누운 후에도 여전히 온하랑의
온하랑이 가볍게 “응.”이라는 대답을 내놓았다.보아하니 부승민은 이미 부시아를 곁에 두기로 결정을 내린 모양이다.온하랑은 눈을 내리깔아 부시아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손에 한 움큼의 신사임당을 쥐고 소파에 앉아 열심히 돈을 세고 있었다.“삼촌은 얼마 줬어?”아이는 돈을 세며 대답했다.“200만 원 될걸요? 아직 다 못 세어봤어요.”“그럼 우리 시아한테 천만 원 있는 거야? 부자네!”부시아는 고개를 들어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다시 돈을 세는 데 집중했다.온하랑은 부시아가 돈을 안 센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아침 먹어야 하니까 돈 봉투는 일단 내려놓을까?”“싫어요.”부시아는 보물이라도 숨기듯 돈 봉투를 옷 주머니에 하나씩 쑤셔 넣었다.그 순간, 위층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온하랑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온하랑은 위층에서 내려오던 부선월과 눈이 마주쳤다.온하랑은 옅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고모님.”부선월은 온하랑의 인사를 가볍게 무시하고 코웃음을 치며 계속해서 계단을 내려왔다.고개를 들어 부선월의 얼굴을 확인한 부시아의 표정이 긴장감으로 물 들었다.“할머니.”부시아는 부선월을 부르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호주머니에 숨겨뒀던 돈 봉투들을 꺼냈다.“시아야, 할머니한테 와.”부선월은 부시아의 맞은 편에 있는 소파 위에 앉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부시아가 고개를 들고 잠시 머뭇거렸다.부선월은 품에서 돈 봉투를 꺼내더니 부시아에게 흔들어 보였다.“할머니가 세뱃돈 줄게.”부시아는 그제야 천천히 부선월에게 다가가 나어린 목소리로 말했다.“할머니, 고맙습니다. 세배 올릴게요. 할머니, 새로운 한 해에도 건강하고 행복하세요.”“착하지.”부선월은 부시아를 끌어당겨 자신의 품속에 끌어안았다.“시아야, 할머니가 사과하마. 어젯밤에는 할머니가 너무 흥분해서 시아를 다치게 했어. 한 번만 할미 용서해주지 않으련?”부시아는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더니 이내 대답했다.“할머니, 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