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연이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죄송하지만 저랑 남편은 사랑해서 한 결혼이에요. 우리 사이 좋아요.”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돌려 양천엽에게 말했다.“우린 그만 돌아갈게요.”말을 마친 그녀는 표정이 음침하게 굳은 한지훈의 팔을 잡아끌었다.조급해진 양천엽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우연 씨, 저 친구들 그냥 농담한 거예요. 오랜만에 나온 건데 이렇게 가면 내가 뭐가 돼요.”“하지만 저 사람들이 저랑 제 남편한테 심한 말을 했잖아요.”강우연이 불쾌한 기색으로 말했다.그녀는 대놓고 한지훈을 무시하는 그들의 언행이 아주 불편했다.양천엽이 다급히 사과했다.“미안해요. 내가 대신 사과할게요. 평소에도 저러고 놀아요. 내가 잘 얘기할 테니까 걱정 말아요.”강우연이 굳은 얼굴로 눈치를 살피자 한지훈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어차피 여기까지 왔는데 좀만 더 놀다 가자.”그렇게 그들은 양천엽과 다른 재벌가 자제들을 따라 호화 요트에 올라갔다.그들이 배에 오르자 양천엽의 얼굴이 음산하게 빛났다.그는 이 틈을 타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요트에 올랐으니까 다들 준비하세요.”“걱정 마세요, 양 대표님. 우리 애들 일 하나는 기가 막혀요. 바다로 나가면 애들 시켜서 보트로 요트에 접근할게요. 그리고 대표님은 적당한 때에 나서서 미인을 구한 영웅이 되는 거죠.”수화기 너머로 남자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양천엽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일이 성사되면 바로 돈을 입금하죠.”말을 마친 그는 전화를 끊고 길게 심호흡한 뒤, 사람들의 뒤를 따라갔다.그런데 등 뒤에서 갑자기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온 건지, 한지훈이 팔짱을 끼고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한지훈 씨? 왜 여기 있어요?”당황한 양천엽이 시선을 회피하며 물었다.한지훈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다가 서서히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양 대표님, 조금 전에 누구랑 통화했어요?”“아, 회사 일 때문에 전화한 거예요.”양천엽
남자들이 한지훈을 에워싼 틈을 타서 여자들이 강우연을 구석으로 끌고 가서 말을 걸었다.한지훈은 분위기를 슥 훑어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양천엽이 그에게 술잔을 건네며 말했다.“걱정 마세요. 다 같이 요트 위에서 노는 건데 무슨 일 있겠어요? 우린 술이나 마셔요.”잠시 고민한 한지훈은 호기롭게 그들이 주는 술을 받아서 마셨다.“우연 씨한테 들었는데 도영그룹에서 경호원 일을 한다면서요?”양천엽이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그 말을 들은 다른 재벌가 도련님들이 비웃음을 지었다.“뭐라고요? 지훈 씨 경호원이었어요?”“도영그룹은 들어봤어요. 거기 대표가 도설현이었나? 얼굴이 꽤 예뻤던 걸로 기억해요.”“지훈 씨, 여자 복 터졌네요. 도설현이랑 친해요? 연락처 좀 줄 수 있어요?”몇몇이 한지훈에게 농담을 건네는 사이, 하얀색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고 이쪽으로 다가왔다.그는 한지훈에게 곧장 다가가더니 불쾌한 어투로 말했다.“한지훈 씨, 난 말을 돌려서 말하는 법을 몰라요. 난 한지훈 씨가 강우연 씨랑 이혼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강우연 씨한테 반했으니까요.”주변에 순식간에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양천엽과 다른 재벌가 자제들은 흥미롭다는 듯이 피식피식 웃고 있었다.그는 H시 백영그룹 오너 일가의 셋째 백청강이었는데 가장 예쁨 받는 도련님이었다.그리고 거만하고 폭력을 좋아하기로 악명 높은 인간이기도 했다.백청강의 눈에 난 사람들은 그의 일방적인 폭력을 피해가지 못하고 병원신세를 졌다고 한다.게다가 H시에서 백영그룹은 4대 기업 중 하나였는데 시가 총액 수조를 자랑하는 대기업이었다.약재 사업을 주로 하는 백영그룹은 H시의 절반 가량 되는 약재 시장을 독식하고 있었다.현재는 인근 도시로까지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다.그만큼 세력이 방대한 가문이라는 의미였다.백청강은 한지훈을 망신 주기 위해 양천엽이 일부러 불러온 인물이었다. 부잣집 아가씨들에게 이끌려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강우연의 얼굴에도 걱정이 가득했다. 잠시 고민하던
그 말을 들은 주변 사람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미친놈 아닌가?감히 백청강을 상대로 저런 불손한 말이나 내뱉다니!백청강이 똥 씹은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너 지금 뭐라고 했어?”한지훈은 싸늘한 표정을 유지한 채, 상대를 날카롭게 노려보며 말했다.“다시 말해줘? 그 더러운 손가락으로 다시 한번 내 몸에 손을 대면 그 망할 손가락 부러뜨린다고 했어!”“하하!”그 말을 들은 백청강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더니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했다.“한지훈, 아주 거만한 녀석이네? 하지만 나한테 그런 말할 자격이나 돼? 나 백영그룹 셋째라니까? 너 같은 경호원이랑은 비교도 안 되는 신분이라고!”“내가 너 하나 죽이는 건 벌레를 죽이는 것보다 더 쉬워! 이제 조금 전 했던 네 말에 대해 사과해야겠지? 당장 꿇어! 안 그러면 평생 후회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백청강 추종자들이 입을 모아 소리쳤다.“맞아! 당장 사과해!”“어디 주제도 모르고 감히 백영그룹 황태자한테 그 따위 말을 지껄여?”“우리 도련님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넌 오늘 죽었어!”사람들의 질책과 비난에도 한지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느긋하게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고 싸늘한 눈빛으로 백청강을 쏘아보며 말했다.“백영그룹 셋째라고 했나?”백청강이 피식 웃더니 거만한 얼굴로 말했다.“그래. 이제 너와 나의 신분 차이를 알겠어? 하지만 이미 늦었어! 조금 전 네가 뱉었던 말에 대해 무릎 꿇고 사과하고 강우연 씨한테서 멀리 떨어져!”말을 마친 백청강은 다시 손가락으로 한지훈의 가슴을 밀쳤다.그 순간!우드득!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소름 끼치게 들렸다.한지훈은 그대로 손을 뻗어 백청강의 손가락을 뒤로 꺾어버렸다.“악!”백청강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손가락을 감쌌다. 90도로 꺾인 손가락에서 극심한 통증이 전해지면서 이마에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감히 내 손가락을!”백청강의 두 눈이 시뻘겋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당황한 그의 추종자들도
"내가 나설 필요도 없게 됐잖아?"백영그룹 황태자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으니 한지훈은 오늘 제 무덤을 판 것이다.“백 대표, 괜찮아요?”그는 앞으로 나서서 백청강의 상처를 살피고는 뒤돌아서 한지훈을 비난했다.“한지훈 씨!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어떻게 이런 짓을…. 백 대표가 얼마나 귀한 손님인지 몰라요? 좋은 마음에 초대했더니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른 거예요!”한지훈은 냉랭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난 이미 경고했고 저쪽에서 먼저 경고를 무시한 겁니다. 와이프 체면을 생각해서 봐준 거예요. 아니었으면 이렇게 간단히 끝나지 않았을 거예요!”북양 총사령관의 존엄을 건드린 자의 말로는 죽음뿐이었다.고작 대기업 후계자 주제에 감히 북양 총사령관의 위엄에 도전하다니!예전이었다면 지금쯤 백영그룹은 지구 상에서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말을 들은 주변인들은 모두가 합세해서 한지훈의 오만함을 비난했다.백청강은 얼굴이 푸르뎅뎅해서 한지훈 노려보며 고함쳤다.“한지훈! 넌 죽었어! 절대 용서 못해! 다들 뭐 하고 있어? 당장 달려가서 저 놈의 손모가지를 부러뜨리지 않고!”지시를 들은 그의 추종자들이 한지훈에게 달려들었다.하지만 그들은 한지훈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우당탕탕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들이 힘없이 갑판에 쓰러져 신음을 흘렸다.다른 사람들은 한지훈의 거친 행동을 보고 겁에 질려 구석으로 도망쳤다.그 시각, 여자들과 같이 있던 강우연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다 같이 이쪽으로 다가왔다.“백 대표님, 손 왜 그래요?”“어떻게 된 거예요? 어쩌다가 싸움이 났어요?”“한지훈, 당신이 그런 거야?”여자들의 추궁에도 한지훈은 담담하게 강우연의 앞으로 다가가서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지훈 씨, 어떻게 된 거예요? 사람들이랑 왜 싸웠어요?”겁에 질린 강우연이 작은 소리로 그에게 물었다.한지훈은 단답형으로 대꾸했다.“맞을 짓을 해서 좀 때렸어.”두 눈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백청강이 한지훈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한지훈이 다시 움직이려는 기미가 보이자 백청강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겁에 질린 얼굴로 한지훈을 바라보며 물었다.“뭘 어쩌려는 거야? 나 잘못 건들면 네 마누라, 그리고 네 가족들 모두 좋은 꼴 못본다니까?”다른 재벌가 자제들도 한지훈이 싸늘한 얼굴을 하고 다가가자 모두 겁에 질려 뒷걸음질치며 백청강의 뒤로 숨었다.당황한 백청강은 떨고 있는 친구들을 보고 욕을 한바가지 퍼붓고 싶었지만 한지훈이 다가가서 그의 멱살을 잡아 공중으로 들어올렸다.“이… 이거 놔!”목이 졸린 느낌에 백청강이 쿨럭거리며 발버둥질쳤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도 경악했다.저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진 자였나?“경고하는데 선 넘지 마. 그리고 내 아내와 가족들 건드릴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 안 그러면 죽여 버릴 테니까. 너 말고 네 뒤에 있는 백영그룹도 너 때문에 망하게 될 거야.”한지훈은 한마디 한마디 힘을 주어 또박또박 말했다.그의 살벌한 눈빛을 마주한 백청강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만큼 한지훈이 그에게 주는 압박감은 상당했다.백청강은 살아오면서 이렇게까지 압박감을 주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한지훈은 피식 비웃음을 터뜨리며 그를 바닥에 던졌다. 바닥에 쓰러진 백청강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는 주먹을 불끈 쥐고 한지훈을 노려보았다.양천엽이 다가와서 그를 부축해서 일으켰다.“백 대표님, 화 풀어요.”짝!백청강은 짜증스럽게 양천엽의 귀뺨을 때리고는 얼 빠진 양천엽을 남겨두고 홀로 선실로 들어갔다.양천엽은 다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다행히 요트에는 의료진까지 대기하고 있어서 신속히 백청강에게 기본적인 처치를 해주었다. 남은 건 요트가 부두로 돌아가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기로 했다.백청강은 씩씩거리며 소파에 앉아 연거푸 위스키를 들이켰다. 그의 주변으로 술잔이 나뒹굴었고 겁에 질린 서비스 직원은 그의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양천엽이 다가와서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
갑판에 있던 재벌가 자제들과 직원들이 겁에 질려 벌벌 떨었다.선장이 다급히 소리쳤다.“해적입니다! 일단은 반항하지 말고 그들의 말을 들으세요!”“뭐? 해적?”“세상에! 살면서 해적을 만나는 날이 오다니!”“우리 여기서 죽는 건가? 난 아직 젋어! 죽고 싶지 않다고!”일부 재벌가 자제들이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강우연도 하얗게 질린 얼굴로 한지훈의 팔을 꽉 붙잡으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어떡하죠? 어쩌다가 해적들이….”한지훈은 싸늘한 눈빛을 빛내며 그녀에게 말했다.“걱정 마. 아무 일 없을 거야.”그 시각, 총을 든 해적들이 요트에 오르기 시작했다.그들은 검은 피부에 알아듣지 못할 말을 지껄이며 선장과 직원들, 그리고 재벌가 자제들을 갑판 위로 몰았다.우두머리로 보이는 30대 사내가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안녕, 머저리들? 만나서 반가워.”사내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그의 부하들이 허공에 대고 총질을 해댔다.갑판 위의 사람들은 겁에 질려 귀를 틀어막고 비명을 질러댔다.해적들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배를 끌어안고 웃기 시작했다.“살고 싶으면 돈 되는 거 다 내와!”우두머리가 유창한 한국어로 그들에게 말했다.그 뒤로 부하로 보이는 총을 든 해적이 큰 가마니를 가지고 오더니 물건을 쓸어담기 시작했다.일부는 내놓기 싫어 꼼수를 부리다가 해적의 주먹질에 피투성이가 되었다.그들은 예쁘장한 여자를 보면 끌고 한쪽으로 갔다.현장에 비명이 자자했다.강우연은 한지훈의 옆에 웅크리고 앉아 귀를 틀어막고 온몸을 떨었다.한지훈은 싸늘한 눈빛으로 해적무리를 유심히 관찰했다. 총 열네 명에 총을 든 놈 여섯 명, 나머지는 칼을 들고 있었다.하지만 놀랍게도 갑판 위에는 양천엽과 백청강이 보이지 않았다.한지훈은 바로 영문을 알아차렸다.그 시각, 한 해적이 그의 앞으로 다가와서 욕설을 퍼부었다.“야, 돈 내놔!”한지훈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나 돈 없어.”말을 마친 그는 양팔을 벌리고 몸 수색을 허락했다.“이런,
한지훈은 한숨에 총을 든 해적들을 전부 쓰러뜨렸다.그들은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몸에 총을 맞고 피를 뿜으며 갑판에 쓰러졌다.남은 해적들은 손에 든 칼을 내려놓고 바닥에 주저앉아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순식간에 반전된 상황에 모두가 놀랐다.한지훈은 날렵하게 몸을 날려 놈들의 무기를 전부 수거한 뒤, 선장에게 던졌다.그가 말했다.“다들 꼼짝 말고 여기 있어. 이따가 너희를 데리러 올 거야.”말을 마친 한지훈은 곧장 선실로 뛰어들어갔다.그 시각, 선실 내부에서 양천엽과 백청강은 음침한 미소를 띤 채, 상황이 정리되기를 기다렸다.“밖에 시끄러운 걸 보니 내 사람들이 벌써 도착했나 보군요.”양천엽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따가 애들이 강우연 데리고 이쪽으로 들어올 거예요. 즐거운 밤 보내세요.”백청강은 술기운에 취해 강우연을 품에 안는 상상을 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그때, 사신을 닮은 싸늘한 목소리가 입구에서 전해졌다.“누구랑 즐거운 밤을 보낸다고?”손에 총을 든 한지훈이 한발 한발 계단을 내려왔다. 그의 주변으로 진한 살기가 흩어지고 있었다.고개를 돌린 양천엽과 백청강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너… 어떻게 내려왔어? 애들이 널….”당황한 양천엽이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횡설수설했다.“바깥에 있는 해적들이 날 꼼짝도 못하게 만들고 너희는 이 기회에 밖에 있는 여자들한테 몹쓸 짓을 하려고 한 거야?”한지훈은 싸늘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지며 그들의 가까이로 다가갔다.양천엽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설마 네가 밖에 있는 해적들 해치웠어?”한지훈은 피식 웃고는 총구로 양천엽의 머리를 쳐서 쓰러뜨렸다.“쓰레기 같은 놈.”그가 차갑게 욕설을 내뱉었다.양천엽은 피가 흐르는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진 채,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정녕 한지훈 혼자서 밖에 있는 해적들을 전부 해치웠단 말인가!반면 이미 취기가 오른 백청강은 상황 파악이 덜 된 건지, 자리에서 일어서서 한지훈에게 욕
양천엽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어! 한지훈,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 감히 내 요트에서 사람을 때리다니! 게다가 상대는 백영그룹 황태자라고!”짝!한지훈은 다가가서 놈의 귀뺨을 날렸다. 강력한 한방에 양천엽은 그 자리에서 이빨이 부러지며 피를 토했다.“다시 한번 묻는다. 네가 했어?”한지훈이 싸늘하게 물었다.“아니야!”양천엽은 지금 잘못을 인정하면 끝장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한지훈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밖에서 해적 한 명을 끌고 들어왔다. 그리고 놈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물었다.“누가 보내서 왔어?”겁에 질린 해적이 울먹이며 말했다.“해성 형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형님,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저도 돈을 받고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절대 사람을 해칠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머릿수만 채우려고 온 거라고요….”“해성 형님이 누구지? 이 요트에 있어?”한지훈이 물었다.해적이 다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있긴 한데 형님이 죽여버렸잖아요…..”한지훈은 처음으로 당황했다.일이 이렇게 흘러간다고?그 시각,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양천엽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와 거래를 한 자가 죽었으니 증거는 사라진 셈이었다.다행인 건 아직 돈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다.하마터면 이대로 꼬리가 밟힐 뻔했다.한지훈도 더 이상 증거를 캐낼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한지훈! 어떻게 날 의심할 수가 있어? 내가 그런 비겁한 사람으로 보여?”양천엽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소리쳤다.한지훈은 인상을 찌푸리고 양천엽을 노려보며 말했다.“적당히 해.”말을 마친 그는 다시 갑판으로 나갔다.그 시각 요트 주변에는 이미 경찰을 태운 보트가 배회하고 있었다.보트에서 무장 해경들이 요트로 올라왔다.그들은 신속하게 현장을 정리했다.한지훈을 발견한 강우연이 울먹이며 달려와서 그의 품에 안겼다.“지훈 씨, 정말 무서웠어요….”한지훈은 웃으며 그녀의 등을 다독여 주었다.“괜찮아
“찌익! 쾅!”한지훈의 오릉군 가시가 구만리의 검신에 닿는 순간, 연이어 두 번의 굉음이 울려 퍼졌다.특히 두 번째 폭음이 끝난 후, 구만리의 검을 중심으로 강렬한 빛이 사방으로 퍼졌다.구만리는 손바닥이 저릿해지는 감각을 느끼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이럴 수가?!방금 전의 그 강렬한 빛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한지훈은 지금 진법도 사용할 수 없고, 천성대진에 의해 모든 힘이 봉인된 상태였기에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이어야 했다.설마...아니, 말도 안 돼!천성대진은 단해룡의 절기로, 천신계 강자라 해도 천성대진에 들어가면 힘이 절반으로 줄어든다.하물며 한지훈은 겨우 오성 용급 천왕계일 뿐인데, 진법이 통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하지만 그 순간, 구만리의 머릿속에 한 단어가 번뜩였다.자기장!“네... 네놈이 설마 인체 내 자기장을 사용할 수 있다니?!”구만리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말을 더듬었다.자신뿐만 아니라, 조룡의 비술을 전수받은 장씨 집안이라 해도 이런 경지는 불가능했다!비록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방법은 자기장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구만리가 충격에서 헤어 나오기도 전에, 한지훈은 이미 몸을 날려 그의 앞에 다가갔다!오릉군 가시는 허공에서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구만리의 등 뒤로 돌아가 다시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이 모든 과정은 겉보기에는 간단해 보였지만, 실상은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었다.현재 한지훈은 물체를 조종하는 것은 커녕, 병왕급의 실력조차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구 씨 형님! 등 뒤를 조심하십시오!”단해룡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외쳤지만, 모든 것이 이미 늦어버렸다. 오릉군 가시는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구만리의 어깨를 강타했다.“퍽!”둔탁한 소리와 함께 구만리는 강한 충격에 의해 앞으로 튕겨 나갔고, 그의 어깨에는 달걀만 한 크기의 혈흔이 생겨났다.“쿵!”구만리는 바위 위로 거칠게 떨어졌다가 다시 한번 튕겨 오른 후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단 한
검의를 깨달은 자만이 비로소 완전히 새로운 경지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아무리 강력한 검경이라 해도 검의 앞에서는 정오의 태양 아래 녹아내리는 얼음과 같았고, 모든 살기는 즉시 소멸하고 만다.“큰소리를 잘도 치는구나? 구만리, 네가 방금 뱉은 말로도 이미 죽어 마땅하다! 검의라 한들 어떠하냐? 하늘의 도리를 거스르는 자를 하늘이 돕겠느냐!”한지훈은 차분한 표정으로 손을 늘어뜨린 채 서 있었고, 그의 손에 쥔 오릉군 가시에서는 희미한 백색의 광채가 번져 나오고 있었다.“흥, 말이 많구나. 네놈에게 이 검의의 위력을 보여주마! 내 검의 아래 죽는 것이라면, 너도 죽어서 영광스러운 줄 알아라!”구만리는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날려 화살처럼 한지훈을 향해 돌진했다!이 순간, 한지훈은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기에 보통 사람의 몸으로는 구만리의 살수를 피할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였다.“죽어라!”구만리가 포효하며 외치자, 사람들은 눈앞에 번쩍이는 흰빛을 보았다.구만리의 몸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검으로 변한 듯, 한지훈을 향해 똑바로 찔러 들어갔다!그와 동시에 공기 중에서는 휘몰아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검기는 해일처럼 밀려왔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파도처럼 한지훈에게 몰아쳤다.이것이 바로 검의의 위력이었고, 주변의 모든 것을 찢어버릴 수 있는 검기로 변화시키는 능력이었다.그러나 한지훈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마치 구만리의 위력에 놀란 듯 다가오는 그의 모습만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한지훈이 겁에 질려 움직이지 못하는 건가?”“흥, 겁먹지 않았다 한들 무슨 소용이냐? 주변의 공기마저 검기로 바뀌었으니, 그가 피할 수나 있을까?”“그가 아직도 오성 용급 천왕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절대 불가능해!”주변 사람들이 저마다 차가운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구만리의 검 끝이 한지훈의 목에 불과 한 치도 못 미치는 순간, 한지훈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발뒤꿈치를
구만리는 뒷짐을 진 채 곧장 한지훈을 공격하지 않았고, 대신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한지훈, 네가 정말 대단한 인물임은 인정하겠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것을 보면, 나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구나!”“용국 백전명장이라 불릴 만하다만, 유감스럽게도 너의 용맹함은 내 앞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단 말이다! 지금의 너는 그저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니 나의 충고를 듣거라.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길일 테니!”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구만리의 손에 삼척 길이의 장검이 나타났다.검날은 차가운 빛을 반짝이며 마치 검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 보였다.구만리가 손목을 살짝 돌리자 은백색의 검화가 번뜩였고, 공중에는 허공을 찢는 듯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순식간에 검광이 번쩍이더니, 주변에 서 있던 몇 그루의 소나무가 허리 높이에서 단숨에 잘려 나갔다!이 검술은 단순해 보였으나, 검기를 외부로 뻗어나가 주변의 몇십 그루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를 자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게다가 나무가 잘려 나갔음에도 쓰러지지 않는다는 점은 검기가 얼마나 정밀한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구만리의 검술은 역시 절묘하군! 검기를 몇 미터 밖으로 뻗어나가면서도 이렇게 순수하게 유지할 수 있다니, 우리가 평생을 바친다 해도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일세!”주변에서 지켜보던 이들이 감탄하며 말했다.그들이 감탄의 말을 마치기도 전에, “까직!”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구만리의 발아래 바위로 된 지면이 마치 머리카락처럼 가늘게 몇 미터 깊이로 갈라졌다!습!이곳 창릉산의 제단은 만 년 전 화산암이 자연적으로 형성된 곳으로, 그 단단함은 말할 것도 없었다.검은커녕 포탄을 쏘아도 하얀 자국 정도만 남길 수 있을 뿐이었다.“이것이야말로 현세 제일의 검경 대사이군!”“그렇소. 구만리의 검경은 장도령을 훨씬 능가한다고 들었는데, 그 소문이 사실이었네!”“한지훈이 천성대진의 제약을 받지 않았다고 해도, 구만리의 상대가 될 수 없겠지!”구만리의 절기를
한지훈은 저도 모르게 내심 놀랐다. 이 천성대진은 정말 대처하기 만만치 않았다. 비록 그 또한 미리 대처할 준비를 하긴 했지만, 역시나 상대방의 수에 걸려들고 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지훈의 온몸을 감싸던 기운이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일반인이랑 별다를 바 없게 되었다. 축대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대장로 또한 한지훈의 변화를 알아채게 됐고, 이내 앞으로 나아가 도와주려 하자 동방소가 손을 내밀어 그를 가로막았다. “대장로, 이제 너 혼자만의 힘으로는 절대 멀쩡히 돌아갈 수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마 또 맹주의 따귀를 한 대 더 때리려는 거야?”그 말을 들은 대장로는 몸을 살짝 떨게 됐다. 처음 날린 따귀는 단지 단해룡의 경고일 뿐이었고, 만약 그가 다시 손을 대게 된다면 무맹과 무종은 관계는 철저히 끊어지게 된다. 때가 되면 용국의 종무는 필연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대장로님, 사실 저희 또한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희 원 씨 집안 또한 북양 왕이 이대로 죽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필경 인원이 적고 발언권이 별로 없으니 멋대로 상황을 좌우할 수는 없습니다!”이때 원상용이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대장로를 향해 말했다. “너희들...”답답한 이 상황에 대장로는 발만 동동 구를뿐이었다. 사실 그들이 말한 대로, 설사 대장로가 목숨 바쳐 나선다 하더라도 이 결말을 장담할 수는 없었다. “내가...”순간 그는 과거의 자신을 회상하게 되었다. 한 씨 별장을 떠나게 될 당시, 대장로는 무종 장로의 인부를 꺼내고는 바로 깨뜨려 버렸었다. 자신은 더 이상 무종 장로가 아니라고, 무종과는 이젠 무관하다고 밝힌 것이었다. 무종 대장로의 신분을 벗게 됐지만, 그는 언제나 한지훈과 함께 생사를 같이할 것이라고 뒷말을 덧붙였다. “죽고 싶어?”그의 단호한 태도에, 단해룡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대장로의 뒷모습을 주시하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대장로가 입을 떼려는 순간, 한지훈이 고개를 들어 대장로를 향해
대장로가 이렇게까지 날뛰는 이유는, 그는 방금 단해룡과 구만리가 주고받는 눈빛을 통해 이미 낌새를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렇게나 악랄한 사람들이 어떻게 선배라는 이유로 존경심을 받고 있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특히나 단해룡은 무맹의 맹주라는 신분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런 수단으로 사람을 해치려는 건 정말 납득이 안 됐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한지훈 한 사람을 겨냥하는 것 자체가 기가 찼다. 게다가 무맹 맹주와 구만리뿐만 아니라 십여 명의 5대 명산 고수들도 있었다. 그들은 단순한 기선제압에 그치지 않고, 천성대진으로 한지훈의 모든 실력까지 빼앗아내 일반인으로 만들 작정이었다. 심지어 마지막엔 구만리가 깨끗이 한지훈을 처단하게 만들려는, 그야말로 염치없는 발상들이었다. “뭐라고? 그럼 대장로 말은, 나더러 이 대결에서 져주라는 거야?”단해룡는 마냥 차가운 눈빛으로 대장로를 바라보았다. “단해룡, 넌 엄연히 무맹 맹주야. 신분과 지위가 다 어느 정도 높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한지훈 한 사람을 포위 공격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파렴치하기 짝이 없어서 그래. 게다가 천성대진까지 이용하여...”대장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단해룡은 갑자기 손을 들어 강하게 뺨을 내려쳤다. “팍!”대장로는 단해룡이 감히 자신의 따귀를 때릴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전혀 무방비하고 있었던 그는 그 따귀에 몸이 5~6 미터 밖으로 밀려났다. 대장로 또한 삼성 지급 천왕계의 실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결코 단해룡의 상대는 아니었다. 설사 그가 단해룡과 같은 급수에 있다 하더라도 진법 면에서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 무섭도록 강력한 따귀에 대장로는 멍해졌을 뿐만 아니라, 축대 아랫사람들마저도 이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래전부터 무맹과 무종은 비등한 실력을 갖고 있었고, 그중 단해룡과 대장로의 지위도 매우 비슷했다. 그러므로 방금 단해룡이 날린 이 따귀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무맹이 무종에게 던지는 도전장이 된 것이다. “대장로, 너 명심
일제히 울리는 북소리는, 바로 전신 치우의 제사 의식이 정식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의식을 치르는 동안 그 누구든지 속삭여서는 안 되고, 더욱이는 소란을 피워서도 안 된다. 대장로는 이를 악문 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단해룡을 노려보았다. 반면 무덤덤한 표정의 단해룡은 한 백발노인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이내 그 백발노인은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더니, 손에는 제천 격문을 든 채 큰 소리로 낭독하기 시작했다. “전신 치우님께 말씀 올립니다. 오늘 이 대결을 통해 그동안 맺힌 원한과 복수를 풀어낼 것입니다.”약 십여 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노인은 마지막 구절을 읽었다. “뭐라고?”바로 이때 대장로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그가 본 격문에는 전혀 이런 내용이 쓰여있지 않았다. 실제로 격문에 적힌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오늘 이 대결은, 서로에 대한 원한은 품지 않은 채 그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그런데 어떻게 이 문장과 바로 정반대 되는 말을 할 수가 있는걸가? 그러나 백발노인은 대장로에게 반박할 기회조차 전혀 주지 않았고, 바로 고개를 돌려 축대 아래로 돌진했다. “이로서 격문 낭독을 끝마치겠습니다!” “다음 순서로는, 여러분들이 직접 상대를 선택하여 제단 위에서 대결을 펼치는 것입니다.”“오래전 과거의 원한이든, 최근에 맺힌 원한이든 모두 얼마든지 이곳에서 해결해도 됩니다. 그리고 이곳을 떠나고 나서는 더 이상 원한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는 앙심을 품고 보복해서도 안 됩니다!”“만약 위반하는 사람이 있다면, 천하 무종 사람들이 주살하게 될 겁니다!”노인의 말이 끝나기도 바쁘게, 이천릉은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고는 주먹을 쥐고 말했다. “어르신, 저 한지훈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싶습니다!”그러자 노인이 차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래! 좋아, 그럼 이번 첫 경기는 항산 이천릉과 북양 왕이 맞붙는 걸로...”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찬가지로 축대 위에 앉아 있던 대장로가 벌떡 일어나
“고작 입문 제자인 주제에 왜 그리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하는 건데?”한지훈은 차갑게 웃으며 비꼬았다. 뭐라고? 그 말을 들은 주위 사람들은 모두 멍하니 한지훈을 바라보았다. 이천릉이 입문 제자인 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또 다른 하나의 신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5대 명산 중 10위권에 드는 절세의 천재라는 것이다. 심지어 실력으로 말하자면, 임비양에게 지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가 가장 처음으로 나서서 목소리를 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는 이미 자신의 태도를 명확히 밝힌 것이다. 오늘 항산에서 파견된 제자들 중 오직 그만이 막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어 한지훈과 나름 비길만한 적수였다. 그리하여 이천릉은 이번 기회를 빌어 한지훈을 짓밟고는 이름을 날려 위세를 떨칠 계획이었다. 더 나아가 자신이 임비양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첫마디부터 한지훈에 의해 무시당하게 될 줄이야. 한편 축대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4대 가문 대표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격이었다. 한지훈은 이천릉에게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동시에 항산 제자들의 자존심을 크게 타격하였다. “에이, 이천릉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다고? 한지훈 저 사람, 비록 북양 왕이긴 하지만 무종에 대해서는 아는 게 너무나도 적네!”“오늘 아마 이 시련을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 같아!”이때 군중 속 사람들은 웅성대기 시작했다. “흥, 넌 정말 못하는 말이 없구나.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넌 곧 항산 입문 제자들의 대단함에 대해 알게 될 거야! 오늘 난 이 수만 명이 보는 앞에서 너의 두 팔과 두 다리를 부러뜨릴 거거든!”“나는 세상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네가 우리 항산으로부터 얼마나 처참하게 짓밟히게 되는지 제대로 보여줄 거야!” 말을 마치자마자 이천릉은 창안백을 일으켜 다시 축대 위로 걸어갔다. 천천히 걸어가면서 이천릉은 창안백에게 말했다. “어르신, 어차피 한지훈은 곧 죽을 사람인데 굳이 그와 따질 필요가 있겠습니까. 저희 항산이 화산
“그 축대 위에서 아무나 한 사람이 내려와도 너를 사지를 한방에 찢을 수 있어!”“너도 오늘이 네 제삿날이 될 거라는 거 잘 알고 있지? 설마 아직까지도 눈치를 못 챈 건 아니겠지?”“어찌 됐든 용국은 너를 구할 수 없고 국왕 또한 너를 구할 수 없어. 당연히 무종은 더욱 말할 것도 없겠지! 게다가 오늘 이곳에 모인 사람들 중 너를 도와줄 사람은 한 명도 없어. 심지어 무종 장로도 오늘은 발언권이 없어!”“과연 너의 그까짓 능력으로 이렇게나 많은 고수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이 수천수만 명의 무종 사람들을 죽일 수 있겠냐고! 너 저 부러진 칼이랑 방패 잘 봐봐!”창안백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치우의 검과 방패를 가리키고는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다. “이것은 바로 상고 전신의 성물이야. 설령 내가 여기서 너를 참살한다 하더라도 용국의 국왕은 감히 나서지도 못할 테고, 더욱이는 너를 위해 복수를 하지도 못할 거야. 어때, 한지훈? 이젠 두렵지?”창안백은 한지훈을 기선제압하면서 그동안 용경에서 잃어버린 자신의 체면을 되찾고 싶었다. “꺼져!”그러나 한지훈은 여전히 창안백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차갑게 한마디 했다. “너 지금 나더러 꺼지라고 한 거야?” 스스로 모욕을 자초하게 된 이 상황에 창안백은 잔뜩 화가 나 얼굴이 푸르게 번졌다. 수만 명이 보는 앞에서 다시 한번 무시를 당하게 되다니. “꺼지든지, 죽든지!”한지훈의 태도는 여전히 차가웠다. 바로 이때, 5성 용급 천왕계의 강대한 기운이 갑자기 한지훈의 발밑에서 솟아올랐다. 이내 그의 손에 있던 그 적색 장총에서는 갑자기 잉잉하는 소리가 났다. “잉!”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주위의 공기가 뒤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사람들은 차가운 한기를 느끼게 됐다. 창안백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끼고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 기운은 정말 끔찍했다. 심지어 실력이 다소 약한 종문 제자들은 저도 모르게 무릎까지 꿇게 됐다. 이것이 바로 천왕의 위엄이다. 진법과 무도를 결합한 진
누군가 대답하기도 전에, 산기슭 오솔길에서 마침내 한 줄기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손에는 적색 장총 한 자루가 들려있었고, 총끝은 반짝이는 금빛을 뿜어내면서 위엄을 돋보였다. 한걸음 한걸음 발을 내디딜 때마다 비할 데 없는 영무의 기운을 띠고 있는 그 모습은, 마치 자연과 하나로 융합된 것 같았다. 그의 등장은 모두의 주목을 이끌었다. 수만 개의 눈빛이 일제히 산 아래의 사람에게로 향했다. 심지어 축대 위에 있던 오성 용급 천왕계 강자들도, 갑자기 알 수 없는 기운을 느끼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동시에 그 사람을 노려보았다. 이내 천위에 버금가는 강한 위압이, 산길을 따라 걷고 있는 그 젊은 남자에게로 갑자기 덮쳤다. 그러나 이 위압은 젊은 남자에게 접근하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그 말은 즉 이 남자 역시 최소 5성 용급 천왕계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5대 명산 제자 외에 이 세상에서 이러한 실력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한지훈 외에 또 누가 있을까? “설마 한지훈?”차가운 눈빛을 한 구만리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느릿느릿 걸어오는 젊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맞아! 바로 저 놈이야!”창안백은 이를 갈며 단번에 한지훈을 알아보았다. 드디어 한지훈을 다시 만나게 된 창안백은 결국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당장이라도 나서서 돌진하여 한지훈의 따귀를 호되게 몇 대 때리고 싶었다. 그러나 다행히 이성을 되찾고는 그의 충동을 억눌렀다. “훗, 이 자식 확실히 심상치는 않네. 이렇게나 큰 전투를 마주하고도 끝까지 침착할 수 있다니. 역시 내가 오길 잘했어!”임비양은 뒷짐을 진 채 오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저 놈 또한 천재라고 할 수 있어. 용국에 있는 5성 천왕 중 20대의 나이는 손에 꼽힐 정도였지!”“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장 씨 집안을 건드려서는 안 됐어. 더욱이는 5대 명산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됐지. 오늘 용국은 결국 이렇게 인재 한 명을 잃게 되는 거야!”단해룡은 여유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얼핏 보면 한지훈을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