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칸은 다행히도 어느 정도 상황 판단 능력은 있는 놈이었다.힘의 차이를 알기에 그는 주저없이 머리를 숙이는 것을 택했다.한지훈은 냉소를 지으며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계속하라는 의미였다.왕칸은 바닥에 쓰러진 부하들을 보고 있자니 온몸에 피가 얼어버리는 것 같았다.결국 그는 천천히 무릎을 꿇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한지훈에게 큰절을 올리고 기어서 레스토랑을 나갔다.“당장 안 꺼져?”한지훈이 소리쳤다.바닥에 쓰러져 죽은 척하고 있던 양아치들은 그 소리를 듣고 걸음아 나 살려라 재빨리 레스토랑을 빠져나갔다.사람들은 뒤에 누가 쫓아 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내뺴는 그들을 보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유현빈은 이미 덜덜 떨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한지훈이 이 정도로 강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물론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한지훈이 그를 바라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넌 어떻게 할 거야?”유현빈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그의 앞에 무릎을 꿇은 뒤, 엉금엉금 기어서 레스토랑을 나갔다.가장 놀란 사람은 소예민이었다. 그녀는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대단하신 명의의 제자인 것도 모자라 훌륭한 싸움 기술까지 갖고 있을 줄은 몰랐다.정말 산에서 무예를 수련하다가 내려온 사람인가?“혹시 무공을 수련했었어요?”소예민이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한지훈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죠. 왜요? 관심 있어요? 가르쳐 줄까요?”그러자 소예민이 활짝 웃으며 그의 팔짱을 꼈다.“좋죠. 저는 싸움 잘하는 남자가 그렇게 좋더라고요. 좋아하는 배우도 성룡이에요.”한지훈은 얼굴을 확 붉히며 어색하게 기침했다. 그녀가 팔에 달라붙다시피 하고 있어서 여자의 부드러운 신체구조가 촉감으로 느껴졌다.소예민은 뒤늦게 실책을 알아차리고 다급히 물러섰다. 그리고 긴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쑥스럽게 말했다.“당분간은 이화동에서 머물 예정이에요. 저 보고 싶으면 언제든 연락하고 와요.”한지훈은 대놓고 하는 초대에 당황했다.“선생님,
이런 불평 불만도 한지훈 앞이라서 가능한 것이었다.“피곤하면 며칠 휴가 내고 쉬어. 고운이 데리고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자.”한지훈이 웃으며 말했다.강우연의 눈동자가 반짝하나 싶더니 이내 어두워졌다.“됐어요. 회사가 그렇게 바쁜데 나까지 휴가 낼 수는 없죠. 큰아버지가 알면 또 뭐라고 하실 거예요. 백 선생과의 협력 프로젝트도 곧 시작이잖아요.”백 선생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오자 강우연이 머뭇거리며 물었다.“지훈 씨, 백 선생한테 밥 한끼 사야 할까 고민 중인데 어떻게 생각해요?”한지훈은 내심 뜨끔했지만 티 내지 않고 대답했다.“당신이 사고 싶으면 사는 거지.”강우연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하지만 그렇게 높으신 분이 우리와 밥을 먹으려 할까요?”“해보면 알 거 아니야.”한지훈이 웃으며 말했다.잠시 고민하던 강우연이 결심을 굳힌 듯, 백 선생의 연락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잠시 후, 수화기 너머로 남자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백 선생님이시죠? 저 강우연이에요. 강운그룹 강우연이요.”강우연이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백 선생님은 지금 바쁘세요. 급한 용건 있으면 저한테 얘기하세요. 제가 전달해 드릴게요.”남자가 담담하게 말했다.“백 선생이랑 식사 한끼 대접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강우연은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이따가 선생께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소식 있으면 그때 연락드릴게요.”말을 마친 남자는 전화를 끊었다.강우연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약간 당황한 얼굴로 한지훈을 바라보았다.한지훈이 웃으며 말했다.“그만 고민하고 밥 먹자. 당신 좋아하는 것들로 준비했어.”강우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식탁으로 다가갔다. 풍성한 밥상을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행복한 미소가 지어졌다.한지훈은 기회를 봐서 조용히 정원으로 나왔다. 용일에게서 연락이 왔다.“사령관님, 사모님께서 식사 약속을 잡고 싶으시다는데 어떻게 할가요?”“알아. 그렇게 하자고 해.”한지훈이 담담히 말했다.“네, 알겠습
박 대사의 진위 여부를 놓고 소란을 벌였던 그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한지훈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다른 일 없으면 이만 돌아가 보세요.”한지훈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학주는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그를 바라보더니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렸다.한지훈이 인상을 확 찌푸리며 물었다.“다른 볼일 남았습니까?”강학주는 차마 말을 못 꺼내겠는지 서경희를 부추겼다.“당신이 얘기할래?”서경희는 남편을 힐끗 노려보고는 작은 소리로 투덜거렸다.“말도 못 꺼낼 줄 알았어.”말을 마친 그녀는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더니 말했다.“하나 더 부탁할 일이 있어. 오찬그룹 오관우 대표 말이야. 가짜 박 대사를 데리고 온 거, 오관우 씨도 피해자야. 속았대. 하지만 지금도 경찰서에 잡혀 있지. 박 대사께서 직접 나서주지 않으면 계속 감방에 있어야 할지도 몰라. 회장님이랑 큰댁에서는 자네가 나서서 이 일을 마무리해 줬으면 해. 박 대사한테 말 몇 마디만 전해주면 되는 일 아닌가.”그 말을 들은 한지훈의 몸에서 폭발적인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하지만 눈치 없는 서경희는 계속해서 떠들어댔다.“희연이랑 곧 결혼식을 올리는데 감방에서 식을 올리게 할 수는 없잖아?”말을 마친 그녀가 고개를 들자 자신을 싸늘하게 바라보는 한지훈이 보였다.“이게 끝입니까?”서경희가 멈칫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빨리 좀 해결해 주게. 안 그러면 회장님께서 또 우리한테 뭐라고 하실 거란 말이야.”“볼일 끝났으면 당장 꺼지세요.”한지훈이 싸늘하게 말했다.그 말에 참고 있던 서경희가 분노를 터뜨렸다.“한지훈,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이게 어른 대하는 태도야?”서경희의 앙칼진 목소리는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다.“이건 우리 뜻이 아니라 회장님과 큰댁 부탁이야. 우리가 오고 싶어서 온 줄 알아? 주제도 모르는 녀석이!”“당신 그만해! 말을 뭐 그렇게 해?”다급해진 강학주가 인상을 쓰며 서경희를 말리더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한지훈에게 말했다.“자네가 내
“넘어가? 그렇게는 못 하지. 내가 거기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오관우는 미친 사람처럼 포효하며 분노를 터뜨렸다.그 모습을 본 강희연조차 화들짝 놀랄 정도였다.뒤늦게 정신을 차린 오관우가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말했다.“걱정 마. 내가 다 알아서 할게.”말을 마친 그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싸움 잘하는 애들 좀 찾아봐. 무조건 싸움을 잘해야 해. 돈은 얼마든지 줄 수 있어. 어떤 놈팽이 하나 죽여버려야겠어!”전화를 끊은 오관우의 두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한편, 출근하려는 한지훈의 앞을 외제차 한 대가 가로막았다.차에서 내린 소예민이 그를 향해 생긋 미소 지었다.“내가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알았습니까?”한지훈은 팔짱을 끼며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참 여우 같은 여자였다. 어제는 청순 가련한 외모를 강조해서 나타나더니 오늘은 섹시함을 강조했다.물론 어떤 스타일이든 타고난 외모가 완벽하게 소화했다.오늘은 화장까지 하고 왔는데 미모가 TV에 나오는 아이돌과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당신에 대해 조사를 좀 해봤다고 했잖아요. 어디 사는지도 알아요.”소예민이 하얀 이를 드러내고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서 무슨 일인데요?”한지훈이 시큰둥하게 물었다.소예민은 차 문을 열더니 웃으며 말했다.“타요. 타면 알려줄게요.”한지훈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확 찌푸렸다. 미인과 함께하는 시간은 즐겁지만 어쩐지 이 여자는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 같았다.‘그래. 어차피 한가한데.’소예민은 한지훈을 데리고 주선 빌딩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왔다.S시에서도 비싸기로 소문난 회원제 레스토랑이었다.물론 돈만 있다고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VIP카드가 있어야 출입이 가능했다.주선 레스토랑의 회원 심사도 상당히 까다로웠다.그냥 철없는 여자로 보였던 소예민이 이 정도로 재력가인 줄은 몰랐다. 지난번에 의사 가문의 3세라고 들었는데 꽤 대단한 가문인 것 같았다.“어디서 온 시골 촌뜨기가 길을 막고 있어? 당장 안 비켜?”
“현우 너 무례하게 뭐 하는 짓이야!”이때 근엄한 얼굴의 한 백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이쪽으로 다가왔다.그의 뒤에는 화려하게 차려입은 남녀가 따르고 있었다.“할아버지, 저 눈치 없는 자식이 지금 길을 막고 있잖아요. 그래서 꺼지라고 했어요.”거만이 하늘을 찌르는 이 재벌3세는 한지훈을 힘껏 노려보고는 다가가서 노인을 부축했다.한지훈은 싸늘한 표정을 하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예전이었다면 저 역겨운 얼굴에 주먹이라도 꽂았을 것이다.“어허!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다 잊었어? 사람이 귀천이 어디 있어? 겉으로만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내 그렇게 타일렀거늘! 지난번에 매까지 맞았으면서 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 당장 저분께 사과 드려!”노인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손자를 호되게 꾸짖었다.“할아버지, 저는 그냥….”거만한 재벌3세도 할아버지 앞에서는 겁에 질린 초식동물처럼 바들바들 떨었다.“당장 사과하라는데도!”노인이 재차 강조했다.남자는 인상을 확 찌푸리고 한참 머뭇거리더니 이를 갈며 한지훈에게 사과했다.“미안해. 내가 아까 좀 심했네.”말을 마친 그는 경멸이 담긴 눈빛으로 한지훈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젠장! 저런 거렁뱅이한테 사과를 다 하다니!’그는 이 일이 소문이라도 퍼지면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할까 봐 더 자존심이 상했다.“젊은 친구, 정말 미안하네. 내가 애들 교육을 잘못 해서 실례를 끼쳤네. 불쾌한 점이 있다면 나한테 얘기하게. 내가 잘 타이르겠네.”노인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한지훈은 한숨이 나왔다. 이렇게까지 사려 깊은 노인이 부탁하는데 뭐라고 불만을 얘기할 수도 없었다.“나이가 어려서 덜 성숙해서 그런 거니 신경 쓰지 않습니다.”“하, 자란 척은! 자기가 나보다 어른인 것처럼!”현우라는 남자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지만 노인의 따가운 시선에 입을 다물었다.한지훈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노인을 바라보다가 안색이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두 눈은 부어 있었고 얼굴이 누런 것이
“됐어. 그냥 둬.”노인은 손사래를 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그 시각.“지훈 씨 진짜 의술을 할 줄 알았네요? 아까 그 어르신 안색만 보고 질병이 있다는 걸 알아냈잖아요.”소예민이 팔짱을 낀 채 묘한 눈빛으로 한지훈을 바라보며 말했다.‘생각보다 실력이 대단한데? 절대 나보다 떨어지는 실력은 아니야!’한눈에 술을 조심하라고 알려줄 수 있었던 건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절대 알아내지 못할 내용이었다.한지훈은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입을 다물었다.“예민아!”이때, 맞은편에서 화려하게 차려입은 여자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긴 생머리를 허리까지 길게 늘어뜨리고 검은색 롱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조막만한 얼굴에 단아한 매력을 가진 미인이었다.게다가 나올데 나오고 들어갈데 들어간 완벽한 몸매는 거기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소예민도 물론 미인이었지만 그녀와는 다르게 성숙미까지 겸비한 화려한 매력의 여인이었다.“려한 언니.”소예민이 활짝 웃으며 달려가서 여자를 와락 끌어안았다.“드디어 만나네. 여기 왔으면서 왜 연락 한번 안 했어.”여자는 사랑스럽다는 듯이 소예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이분은 누구야?”한지훈을 발견한 그녀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새로 사귄 친구야.”소예민은 다급히 한지훈을 소개하며 그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주었다.한지훈은 살짝 당황했지만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친구?”여자가 살짝 놀라며 한지훈을 아래위로 훑었다.그러더니 미소를 지으며 하얀 손을 그에게 내밀었다.“안녕하세요. 림려한입니다. 예민이 사촌언니에요.”“한지훈입니다.”한지훈은 예의상 악수해 주고 얼른 손을 놓았다.“예민이 언제 너 남성 친구가 생겼어? 난 왜 몰랐지?”림려한이 장난스러운 얼굴로 소예민에게 물었다.“말할 기회가 없었지. 어쨌든 이렇게 만났으니 됐잖아.”소예민이 림려한의 팔에 매달리며 애교를 부렸다.십여 분 뒤.소예민은 한지훈의 팔짱을 끼고 림려한과 함께 룸으로 들어섰다.“
룸 안에는 열 명 남짓한 청춘 남녀들이 수다를 떨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물론 겉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남자들은 파트너와 함께 오지 않은 여자들을 훑었고 여자들은 비싼 옷을 걸친 남자들에게 접근하려고 아양을 떨었다.이곳에 모인 대부분이 재벌 2세들이었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바람둥이거나 신분상승을 꿈꾸는 여우들이었다.“예민이 드디어 왔구나. 다들 너만 기다렸잖아.”소예민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자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외모는 평균보다 조금 괜찮은 편인데 소예민이나 림려한에 비하면 많이 부족했다.진한 화장에 섹시함을 강조한 타이트한 옷차림이 오히려 술집 여자처럼 보이게 만들었다.“저쪽은 조설련, 저와는 대학 동기예요. 저 친구가 이번 모임을 주최했어요. 거의 일년 만에 보는 거죠.”소예민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한지훈에게 친구들을 소개해 주었다.조설련은 한지훈에게는 시선 한번 주지 않고 림려한을 바라보며 물었다.“예민아, 이분이 네 사촌언니지? 정말 예쁘시다. 너희 가문은 정말 우월한 유전자를 타고났나 봐. 너희 때문에 내가 다 못생겨 보이잖아.”웃으며 다가온 조설련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녀를 소개했다.“다들 조용히 해봐. 내가 소개할게. 이쪽은 나랑 같은 의대 다니던 캠퍼스 여신 소예민. 의학자 가문으로 알려진 소씨 가문의 외동딸이야. 어때? 예쁘지? 여자친구 없는 사람들 오늘 노력 좀 해봐.”장난처럼 한 말이겠지만 어쩐지 뼈대가 느껴지는 말이었다.“이쪽은 예민이 사촌언니. 완전 여신이야!”소개가 끝나자 림려한은 대범하게 사람들을 바라보며 자기소개를 했다.“안녕, 림려한이라고 해.”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는 모습에 남자들은 벌써부터 가슴이 간질거렸다.사람들은 분분히 일어서서 열정적으로 인사를 주고받았다.“안녕, 소예민이라고 해.”소예민도 간단히 자기소개를 한 뒤, 한지훈을 가리키며 말했다.“이분은 내가 여기 와서 새로 사귄 친구, 한지훈 씨야.”사람들은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만 끄
그리고 이때, 검은색 정장에 느끼한 인상을 가진 한 남자가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소예민에게 술을 권했다.그는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빛을 하고 소예민과 림려한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생긴 건 꽤 깔끔하고 준수한 외모에 피부가 하얘서 귀티가 났다.행동거지에서도 교육을 잘 받고 자란 티가 났다.소예민과 림려한을 바라볼 때 눈에 욕망이 가득했지만 입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홍철수는 갑자기 잔을 들더니 한모금에 술잔을 비워버렸다.소예민은 그의 행동에 약간 당황하며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일면식도 없는 남자였다.“예민아, 뭐 해? 철수 씨도 잔을 비웠는데 너도 비워야지? 홍철수 씨 H시에서 인정받는 청년 기업가 출신이잖아. 너 얼굴 본다고 여기까지 온 분이야.”조설련이 소예민의 어깨를 툭 치며 재촉했다.사실 그녀는 혼자 주목 받는 소예민이 얄미웠다.상대는 H시의 F4라고 불리는 인기남 중 한 명이었다. 준수한 외모에 재력까지 갖춘 완벽한 신랑감이라고 할 수 있었다.자존심만 아니라면 나 한번 만나달라고 들이대고 싶었다.하지만 홍철수는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고 소예민에게는 진한 흥미를 보였다.한지훈은 인상을 찌푸리며 조설련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이 여자, 뭔가 억지로 소예민과 홍철수를 이어주려는 의도가 보였다.유현빈은 구석에서 굳은 표정으로 술만 마시고 있었다.그는 소예민을 좋아해서 H시에서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좋아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의 사냥감이 되었는데 지켜줄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러웠다.홍철수는 H시의 홍씨 무술관 후계자로 그가 건드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현빈이 오늘 좀 이상하네. 너 예민이 좋다고 쫓아온 거 아니었어? 철수가 예민이한테 대놓고 호감 드러내는데 왜 가만히 있어?”옆에 있던 재벌2세 한 명이 장난끼 어린 얼굴로 말했다.“닥쳐!”유현빈은 소예민이 안으로 들어온 뒤부터 술만 마시고 있었다.그는 분노한 눈빛으로 자신에게 장난을 친 사내를 노려보며 말했다.“네가 뭘 알아?
그러자 창월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러셀로란 가문을 상대하기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을 거야. 사실 이미 도망간 에먼로 그놈이 가장 문제야. 아니면 차라리 우리가 그놈을 찾아내서 죽이자고!”“아니면, 이 놈을 이용해서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어!”이내 창월은 다시 단도를 꺼내 제이슨의 얼굴을 겨누었다. 그러나 한지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놓고 에먼로를 추격하는 건 하책이야. 그놈은 조만간 알아서 스스로 찾아올 거야. 일단 내일 아침, 제이슨더러 가문에 전화 한 통 넣으라고 해!”월영은 혼수상태에 빠진 제이슨을 차갑게 쳐다보았다. “그래도 어찌 됐든 이 놈은 아시란치 가문의 외련 두목이야. 어떻게 이용하든지 너무 과하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아니면 그 수사자가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거든!”아시란치 가문 족장의 별명이 바로 수사자왕이었다. 그는 도통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인물로 이미 천신계의 실력에 다다르기도 했다. 다만 여태 아무도 그와 대결을 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유럽의 몇 대 가문의 배후에는 모두 매우 강력한 세력이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다들 잘 알고 있었고, 그로 인해 무도와 세속 사이에는 규칙 또한 존재했다. 천신계의 강자는 멋대로 세속에 개입할 수 없고, 더우기는 멋대로 일반인에게 손을 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일단 그 규칙을 어기게 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두 번 벤다고 해서, 뭐 딱히 고통을 느끼기야 할까?”이내 창월은 손에 든 날카로운 단도로 제이슨의 얼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렇게 제이슨의 얼굴에는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미 혼수상태에 빠진 제이슨이었지만, 떨어진 살 가죽에 그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뒤이어 월영이 땅 위의 피를 밟으며 천천히 다가가 분홍색 작은 도자기 병을 꺼내더니, 이내 그 안의 가루약을 꺼내 시체에 뿌렸다. 곧바로 온 땅에 널브러진 시체는 농혈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농혈은 맑고 투명한 액
“그 말은, 유회원이 너희들로부터 구속을 받은 적은 없다는 거야?”이내 한지훈이 물었다. 방금 제이슨의 말로부터, 한지훈은 유회원의 지위가 결코 낮지 않고 또한 아시란치 가문과의 협력도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닐 거라 본능적으로 추측했다. “구속?”그러자 제이슨은 쓴웃음을 드러냈다. “한 선생, 당신이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유회원이 먼저 주동적으로 우리 아시란치 가문을 찾아와서 같이 협력할 것을 요구했어!”“게다가 나조차도 그의 행방을 모르는데, 어떻게 우리가 그놈을 구속할 수가 있어!”“그의 배후의 세력이 우리 아시란치 가문을 증오하여 우리가 그를 납치했다는 소문을 내고 다닌 거야. 그것은 제대로 헛소리에 불과해. 한 선생, 나... 나는 이미 내가 아는 것에 대해 모두 털어놨어!”뭐라고? “유회원의 뒤에 또 세력이 있다는 거야?”한지훈의 표정이 더욱 굳어지기 시작했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바, 유회원은 틀림없이 여러 가지 신분을 갖고 있을 것이고 흑병대 간첩은 그의 많은 신분 중의 하나일 것이라 예상했다. “맞아. 광명존이라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 하지만 난 그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게다가 우리 할아버지조차도 딱 한 번밖에 보지 못했어. 그래서... 내... 내가 알고 있는 건 정말 이게 다야. 난 그저 평범한 아시란치 가문의 자제일 뿐이라고!”“이렇게 지위가 낮은 나를 잡아가서는, 당신한테 아무런 쓸모가 없잖아!”제이슨은 필사적으로 아시란치 가문을 내다 팔았음에도 불구하고, 한지훈은 여전히 마음을 열 의사가 없어 보였다. 광명존? 설마 광명 십존! 순간 한지훈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떨려났다. 제이슨의 말은 충분히 신빙성이 높았다. 광명파는 줄곧 용족 유적을 찾고 있었고, 용심이야말로 용족 유적의 비밀을 여는 유일한 열쇠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집트에 바로 남은 반쪽의 검은 용심이 있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이번 작전이 광명존과 연관이 있다는 거야? 그럼 러셀로란 가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집트의 고수들은 저주를 받게 된 후로, 천왕계를 돌파한 후 화성의 장악에만 집중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산토스는 쉽게 5성 용급 천왕계를 돌파해 버렸다. 화성에 대한 그들의 장악과 운용은, 이미 두펑과는 아예 차원이 다를 정도로 비교할 수 조차 없었다. 그 기세는 에먼로도 막아낼 수 없을 정도였다. 이내 눈 깜짝할 사이에 에먼로의 두루마기에는 큰 불이 붙어버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하얀 두루마기는 아예 거지 꼴이 되었다. “죽여버릴 거야!”에먼로는 자신의 주교 두루마기가 불타는 모습에, 이성을 잃고는 소리를 지르며 두 사람에게로 달려들었다. 곧바로 그중 한 제사장을 칼로 찔렀고, 동시에 그의 뒤에서는 산토스가 단도를 든 채 그의 뒤통수를 노리고 있었다. “으윽!”잇달아 두 번의 신음 소리가 들렸고, 에먼로와 그 제사장은 거의 동시에 온몸에 피를 묻히게 됐다. 에먼로의 칼은 제사장의 아랫배에 박혔고, 산토스의 칼은 에먼로의 어깨에 박히게 됐는데 그 칼은 당장이라도 뼈에 닿을 정도였다. 겨우 고통을 참아가고 있는 에먼로의 손은 끊임없이 떨리고 있었다. 다시 한번 움직이게 되면 그에게는 죽음의 길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산토스! 오늘 네가 벌인 짓에 위해, 언젠가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에먼로는 모진 말 한마디를 던지고는 더 이상 잠시도 머물지 않고 고개를 돌려 어둠 속으로 도망쳤다. 다른 한 켠에서는, 아슬아슬하게 한지훈의 오릉군 가시를 스쳐 지나간 카푸아의 눈앞에는 또 다른 악풍이 몰아쳤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꼼짝도 할 수가 없어, 월영이 단칼에 자신을 찌르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푸!”이내 카푸아는 피를 내뿜고는 몸이 옆으로 쏠리더니, 술상 두 개를 와르르 쓰러뜨렸다. 그가 다시 일어나기도 전에, 오릉군 가시는 강력한 기세와 함께 또다시 순식간에 그의 눈앞으로 날아올랐다. “푸!”순간 약간의 한기가 카푸아의 눈앞에서 번쩍이더니 곧바로 그의 미간을 뚫어버
“한 선생, 당신도 방금 들었다시피 지금 유회원 그 사람은 여기에 없어. 만약 정말 그를 만나고 싶다면, 우리랑 함께 수십 킬로미터 밖에 떨어진 카만으로 가도 돼!”에먼로는 애써 가슴속의 노기를 억누르고는 이를 갈며 말했다. “뭐? 유회원이 카만에 있다고? 그 말은 너희들, 나를 유럽까지 끌고 갈 생각이야?”그 말에 한지훈은 차갑게 웃었다. 사실 그는 두 제사장의 힘을 빌어 에먼로와 카푸아를 제거하고 제이슨까지 생포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렇게 손 안 대고 쉽게 코를 풀 생각이었다. 필경 아시란치 같은 강력한 가문을 상대하려면 수중에 당연히 회심의 카드가 있어야만 했다. 한편 어느새 한지훈의 의도를 알아차린 월영과 창월 두 사람은 잇달아 뒤로 몇 걸음 물러나 한지훈의 옆에 서며, 자신들은 아시란치 가문과 무관하다는 뜻을 밝혔다. “산토스, 너도 알잖아. 내가 가기 싫은 게 아니라...”“그건 네 핑계고! 너희 교황청은 여태 천 년이란 시간 동안 자선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을 죽여왔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선량한 신도들이 너희 손에서 죽게 됐는데!”“그렇게 참담한 천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이 감히 천년 전 이 성도에 발을 들여놓는 것 자체가 명신에 대한 모독이야!”산토스의 목소리는 매우 차가웠다. 한지훈은 그의 말투에서 뼈에 사무치는 원한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렇다. 그동안 십자군이 죽인 사람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리고 그 배후의 진정한 장본인은 바로 교황청이었다. 산토스는 이 피맺힌 원수 관계를 생각하게 되면, 저도 모르게 이성을 잃게 된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한지훈이 반격하기 가장 좋은 시기였다. “내가 알기로는 교황청은 지금도 줄곧 비육을 노리고 있다고 하던데. 그러므로 교황청과 손을 잡고 있는 가문들은, 어떻게든 이 기회를 노려 비육의 신앙을 짓밟으려 할 거야! 난 동양인으로서 비육의 이 비참한 처지를 가만히 지켜볼 수가 없어!”에먼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지훈이 바로 반박해 버
3자 국면이 어느새 4자 국면으로 바뀌게 되자 에먼로의 눈에는 달갑지 않은 기색이 역력했다. 한지훈과 월영 두 사람만을 죽이는 일이었다면 딱히 어려울 건 없었지만, 이집트 대제사가 끼어들게 된 이상 일은 완전히 커질게 뻔했다. 만약 여기서 자칫했다가 선을 넘게 된다면, 이집트의 대제사가 충분히 끼어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자고로 열 명의 대제사들은 최소 천신계의 경지에 다다른 상황이었다. 그들은 얼마든지 손가락 하나로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잿더미로 만들 수 있었다. “당신들 뭐야? 얼마나 한가한 사람들이기에 우리 아시란치 가문의 일에도 참견을...”제이슨이 화를 내며 말했다. “제이슨 도련님!”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에먼로가 급히 그를 제지했다. 상황이 너무 복잡했기에, 지금은 절대 그 어느 쪽도 쉽게 건드려서는 안 된다. 설사 한지훈과 결전을 치르려 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당장의 번거로움을 일단 해결해야만 손을 댈 수 있었다. “애먼로! 너... 무슨 뜻이야?”제이슨은 여전히 현재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방금 그들은 또 월영과 창월을 상대로 도발을 했기에, 지금 그들에게 있어서 우세란 전혀 우세가 없었고 2대 5의 결전이 펼쳐질 상황이었다. 사실 에먼로 또한 전세가 이렇게 순식간에 반전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제이슨, 만약 너희 아시란치 가문의 사람들이 모두 너 같은 병신들로 가득하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가문이 멸망할 것 같은데?”이때 한지훈이 빙그레 웃으며 제이슨을 보고는 조롱했다. 그제야 카푸아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고개를 돌려 한지훈을 호되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감히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이 상황에 조금만 방심하고 움직 했다 가는 도화선에 불을 지피는 격이 될 테니까. “젠장...”제이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에먼로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한지훈과 두 대제사를 마주하고는 말했다. “다들 대체 어떻게 할 작정인 건데? 우리랑 죽을 각오로 한 판 붙을 거야,
하물며 세가의 실력만 놓고 보아도, 그들과도 같은 역사가 유구한 가문들은 종래로 동방의 문파들을 안중에 두지를 않았다. 동황이랑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긴 했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졸개에 불과한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 졸개 중 한 명이, 감히 주인 앞에서 왈왈 짖으며 겁도 없이 달려들다니. “그렇게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거면, 내가 너희들을 도와줄게!” 이내 에먼로는 십자검을 손에 쥐고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차가운 표정을 한 채 말했다. 한편 카푸아도 문어귀를 굳건히 지키며 그 젊은 남자를 그윽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감히... 우리랑 한 판 겨루겠다는 거야?”월영은 다소 놀란 표정으로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동황과 유럽 가문이 십여 년 동안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내내, 쌍방은 줄곧 평등한 관계를 지켜왔었다. 게다가 유럽 가문들은, 동황이 숨기고 있는 은밀한 신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월영, 더 이상 저 놈들이랑 쓸데없는 말 하지 마. 말로는 안 통하고 이젠 검을 사용할 수밖에 없어!”이때 손에 칼을 쥔 젊은 남자가 온몸의 살기를 뿜어내며 말했다. 그는 평소에 보기에는 그저 아주 평범했지만, 실력은 절대 약하지 않았다. 적어도 반보 4성 천 급 천왕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었다. 즉 월영보다도 더욱 강하다는 것이다. “창월!”반면 월영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한지훈을 보호하기 위해 아시란치 가문과 한 판붙게 되면 동황의 뜻에 어긋나는 건 아닌가 걱정 됐다. 만일 정말 동황이 따지기라도 한다면, 간단한 처벌로 끝날 것 같지도 않았다. “흥! 두 사람, 한지훈이랑 함께 하면 뭐라도 될 줄...”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입구에서는 갑자기 하늘을 찌를 듯한 큰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입구와 뒷문에 주차해 있던 차량들은 갑자기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시에 엄청난 불빛이 술집 안을 비췄다. “누구야!”카푸아가 가장 먼저 술집을 뛰쳐나와 상황을 확인했지만, 눈앞은 순식간에 어둠으로 가득했다. 생각
이 젊은 남자의 이름은 제이슨, 바로 이번 아시란치 가문이 파견한 대표 중 한 명이었다. 몇 개의 가문이 회의 장소를 굳이 멤피스로 선택한 이유는, 이곳의 용병들을 모두 제거하는 한편 겸사겸사 자신들의 용병들로 점령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 후 이곳에서 아예 판을 짜고 한지훈이 오기만을 조용히 기다리기로 했다. 설사 용국이 한지훈을 파견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어떻게든 용국을 핍박하여 한지훈을 유인할 계획이었다. 다만 그들은 한지훈이 자신들과 함께 어느새 멤피스에 도착하고, 지금 같은 술집에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다들 진강 일행은 더 이상 신경 쓰지도 않았고 심지어 제이슨은 그들이 순순히 도망가게끔 완전히 방임했다. 그것은 그가 너그러운 것이 아니라, 진강과 양령아가 도망가는 길을 가로막게끔 진작에 살인범들을 매복시켰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곧 죽을 사람들이었기에 제이슨은 당연히 상대할 필요가 없었다. “어? 그러고 보니 너 아시란치 가문 사람이지?”한지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맞아, 난 제이슨이라고 해! 내 이름 똑똑히 기억해!”이내 키 큰 백인 남성 한 명과 교회 수사복을 걸친 한 남자가 천천히 제이슨 뒤로 다가왔다. “왜냐하면 오늘이 바로 네가 이 세상에서 숨 쉬게 되는 마지막 날이 될 거거든!” 말이 떨어지기도 바쁘게 제이슨은 뒤에 있는 두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4성 천 급 천왕계의 강자 두 명을 동시에 마주하게 된 이 상황은, 한지훈에게 있어서 승리가 거의 불가능한 국면이었다. 한 명은 교황청 주교인 에먼로, 다른 한 명은 아시란치 가문의 금메달 타자인 카푸아였다. 두 사람은 유럽 대륙에서는 그다지 유명하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강력한 실력파 인물들이었다. 특히 에먼로는 유럽 10대 천왕 중 한 명으로 불릴 정도였다. “한 선생, 라이언 킹을 죽인 것도 모자라 금사갑을 빼앗으려 하는 건 안되지! 게다가, 공공연히 아시란치 가문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다니!”이번 기회에 아시란치 가문은
이내 웬 컵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통화는 바로 끊어졌다. 곧이어 술집 뒷문 쪽에서는 갑자기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한지훈은 조용히 귀를 기울이며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때, 교회 두루마기를 걸친 한 중년 남자가 정장을 걸친 몇 명의 남자 뒤를 따라 재빠른 걸음으로 술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안돼!”한지훈은 급히 손에 든 핸드폰을 내려놓고는 빠른 걸음으로 술집으로 뛰어들었다. 그 시각, 틸라는 다른 한 백인 남자와 함께 진상이 앉아있는 책상 앞에 둘러앉아 있었다. “틸라, 우리 사이에는 이젠 더 이상 아무런 거래도 없어. 게다가, 나는 이미 너의 아버지와 제대로 끝을 맺었어. 그러니 너도 이젠 만족하지 않아?”진강은 고개를 들어 틸라를 응시했다. “허허!”그러자 틸라는 손가락을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진강, 너 한 가지 일을 잊은 것 같은데. 그때 네가 내 뺨을 때린 건 언제 정산할 건데?” 그리고는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세 사람을 힐끗 쳐다보았고, 그 시선의 끝은 양령아의 몸으로 향했다. 음흉하기 그지없는 그 눈빛은 양령아를 몹시 불편하게 했다. 그 순간, 술집의 분위기는 이미 매우 숙연해있었다. 용병들뿐만 아니라 양령아조차도 점점 다가오는 죽음의 기운을 느끼게 됐다. “너한테 사과할게. 그럼 내 친구 몇 명들, 이젠 보내주지 그래?”진강은 말하면서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하하하!”그 말을 들은 틸라는 크게 웃으며 뒤에 있는 백인 남자 몇 명을 힐끗 보았다. “방금 한 말 다들 똑똑히 들었지? 자기 친구들을 보내달라고 하네? 진강, 설령 우리가 원수 관계가 아니라 하더라도 오늘 그 누구도 이 술집을 나설 수 없어!”말이 떨어지기도 바쁘게, 그는 옆에 있는 백인 남자에게 눈짓을 했다. 백인 남자의 손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비수가 들려 있었다. 그의 유령처럼 살기 어린 눈빛으로 무표정하게 진강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그가 손을 쓰려는 순간, 웬 돌멩이 하나가 날려와 그의 비수를 때렸다. “땡!”
월영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히 본 적 있지. 만약 너랑 상관없는 일이었다면 난 평생 너한테 말할 생각이 없었어. 사실 너 이 사람 구하든 안 구하든 별 의미가 없어!”그 말을 들은 한지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너 그게 무슨 말이야? 설마, 죽기라도 했어?”“아니, 유회원 그 사람 아직 죽지는 않았어. 단지, 이 사람은 이미 용국을 배신하고 지금은 아시란치 가문의 오른팔로 돼있어. 게다가, 그가 납치되었다는 소식도 사실은 가짜야!”“그들은 단지 납치를 통해 용국을 위협하려고 하려는 것뿐이야!”“그 말은 즉, 유회원 그 사람은 미끼가 된 셈이야!”한지훈은 뜻밖에도 이렇게나 많은 내막이 있을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유회원이 배신을 했다고? “월영, 우리가 알게 된 지도 이젠 무려 3년이 되어가지. 그동안 난 널 진심으로 친구로 받아들였어. 그러니 나한테 솔직하게 말해. 유회원이 용국을 배신했다는 거, 정말 사실이야?”한지훈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다시 물었다. “정말 확실해! 만약 네가 못 믿겠으면 일단 믿지 않아도 돼. 어쨌든 천천히 그 변화를 보아내게 될 테니까! 그리고 바로 오늘 밤, 너는 아마 유회원을 만날 수 있을 거야!”월영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뜻밖의 소식에 한지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오늘 저녁부터 새벽 1시까지, 아시란치 가문의 대표와 유회원이 직접 멤피스로 향하여 몇 명의 석유계 거물들 그리고 러셀로란 가문의 사람들과 만남을 가지게 될 거야!”“내가 한 말이 정말 사실인지 아닌지는, 넌 직접 이제 알게 될 거야!”말을 마친 월영은 이내 몸을 돌려 술집으로 걸어갔다. 사실 그녀는 한지훈에게 가능한 한 빨리 이곳을 떠나라고 권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 한지훈은 어디로 도망가든 반드시 아시란치 가문에 의해 발각될게 뻔했다. 이리저리 피하느니 차라리 정면승부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한지훈은 월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 뒤, 곧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