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옷부터 살폈다. 다행히 옷은 멀쩡했다.그녀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뒤로 물러서며 당황한 표정으로 가면을 쓴 남자를 바라보았다.그녀의 기억이 맞다면 이 가면은 그날 백마 산장에서 봤던 가면이었다.그런데 그녀는 의식을 잃기 전에 분명 도호헌과 사업 얘기를 하고 있었다.백 선생은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온 거지?강우연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방에 들어온 뒤로 도호헌을 극도로 경계했던 게 기억났다.도호헌은 걱정과는 다르게 사업 얘기 외에 그 어떤 무례한 발언도 하지 않았다.그렇게 그녀는 천천히 경계를 풀었고 그가 건넨 차를 마셨다. 그런데 그 뒤로 기억이 없었다.방 안은 조금 어질러져 있었고 은은한 피비린내가 풍겼다. 게다가 창문도 깨진 상태였다.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한지훈은 긴장한 그녀의 표정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강우연 씨, 걱정 마세요. 조금 전에 복도를 지나가다가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길래 들어와 봤거든요. 도호헌 그놈이 우연 씨를 겁탈하려는 것을 봤어요.”“네? 도호헌이요?”그 말을 들은 강우연은 크게 당황하며 다시 자신의 몸을 살폈다.가면을 쓴 한지훈이 다급히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놈이 무슨 짓을 하기 전에 내가 쫓아냈으니까요. 지금쯤 아마 경찰에 잡혔을 겁니다.”강우연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백 선생에게 감사를 표했다.“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떻게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지….”그녀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 하자 한지훈은 다급히 다가가서 그녀를 잡았다.“별말씀을 다하시네요. 인사는 됐어요. 그냥 지나가다가 도와준 것뿐이에요. 다른 사람이었어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강우연은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만약 도호헌에게 더럽혀졌더라면 무슨 얼굴로 한지훈과 고운이를 마주해야 할지 막막했을 것이다.한지훈은 우는 그녀를 보자 안쓰러운 마음에 한마디 했다.“우연 씨는 일단 병원부터 가야 할 것 같아요. 도호헌 그 자식이 약을 탄 것 같은데 검사는 받아보는 게 좋을 것
강우연이 떠난 뒤, 용일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한지훈에게 다가갔다. 그는 가면을 벗는 한지훈에게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사령관님, 왜 꼭 가면을 써야 했나요? 사모님에게 신분을 들키는 게 두렵나요?”한지훈은 고개를 돌려 용일을 쏘아보며 말했다.“멍청하긴! 난 지금 이 시간에 상사인 도설현 씨랑 같이 업무를 보고 있어야 해. 이런 곳에 나타났다고 하면 우연이가 어떻게 생각하겠어? 우연이가 의심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거라고! 4대 가문 중에서 원씨 가문은 이미 수면으로 드러났는데 당연히 조심해야지! 놈들이 나를 흔들려고 우연이랑 고운이에게 접근해서 해를 가할 수도 있다고.”용일은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이제 알겠어요, 사령관님.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한지훈은 인상을 찌푸리고 가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가짜 신분이 꽤 유용하게 쓰일 때가 많을 거야. 적어도 앞으로 우연이를 대놓고 도와줄 수 있으니까.”“넌 이따가 백 선생의 신분으로 5년 전 한정그룹이 파산하기 전에 양도한 회사를 인수해. 난 다시 한정그룹을 되찾고 부모님이 계실 때처럼 최강 기업으로 만들 거야!”말을 마친 한지훈은 비장한 눈빛을 빛냈다.‘아버지, 필생의 소원을 제가 이루어 드릴게요.’“네, 사령관님!”용일은 공손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에게 물었다.“도호헌은 어떻게 할까요? 바로 죽일까요?”한지훈이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일단 경찰서에 보내서 콩밥 좀 먹게 해.”말을 마친 그는 호텔을 떠나 고운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갔다.잠시 후, 강우연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집에 도착했다.한지훈은 미리 준비해 둔 따뜻한 우유를 그녀에게 건넸다.“많이 피곤하지? 우유가 수면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데웠어. 이거 마시고 푹 쉬어.”강우연은 우유컵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히다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지훈 씨, 미안해요. 미안해요….”한지훈은 움찔하더니 부드럽게 그녀의 등을 다독여 주었다.“왜 그래? 누가 괴롭혔어? 나한테 말해. 내가 다 혼내줄 수
강우연은 난감해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그가 질투한다고 생각하고 다가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이상한 상상하는 거 아니죠? 진짜 단순히 내가 밥 한 끼 사고 싶어서 그래요. 장담할 수 있어요. 난 평생 당신을 떠나지 않아요. 당신이 고운이 아빠니까요. 이제 됐죠?”한지훈은 자신을 바라보는 순수하고 맑은 눈동자를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다.“알았어. 믿을게. 그 백 선생이랑은 며칠 지나서 연락하는 게 좋겠어.”그는 강우연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런데 백 선생 연락처는 알아?”강우연은 그제야 연락처조차 못 받았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그러네요. 워낙 신비주의라 연락처를 뿌리고 다니는 사람도 아니고… 나도 경황이 없어서 연락처 달라는 말을 못 했네요.”한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그럼 일단 그 일은 보류하자.”강우연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어쩔 수 없네요.”말을 마친 그녀는 씻어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녀가 욕실로 들어간 뒤, 한지훈은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용일에게 전화를 걸었다.“우연이에게 자연스럽게 백 선생의 연락처를 흘릴 방법을 생각해 봐. 내가 시켰다는 말은 하지 말고.”전화를 끊은 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쩌면 한 끼 식사가 끝나면 강우연은 더 이상 백 선생이라는 인물에 대해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어떻게 몰래 백 선생의 신분으로 그녀를 도와줄까?그 시각, 진우철은 밤새 KTX를 타고 H시에 있는 본가로 향했다.곧장 거실로 간 그는 울음을 터뜨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한 중년 남자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렸다.“아버지! 저 S시에서 못 살겠어요. 한지훈 그 녀석 너무 무식하고 건방져요. 감히 저를 공격하고… 게다가….”“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답답하게 굴 거야?”뒤돌아선 진정성이 싸늘하게 아들을 노려보며 다그쳤다. 그는 이 호화 저택의 주인이자 진양그룹의 회장이었다.진양그룹은 H시에서 일류 기업에 속하는 대기업이었다.진정성은 정치권에도
삼호는 호텔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한지훈은 그에게 악몽 그 자체였다.지금도 그 섬뜩한 눈빛을 떠올리면 소름이 돋았다.“가주님, 그 한지훈이라는 자 만만치 않아요. 실력을 보면 4성 천급 병왕 그 이상이에요. 큰형님은 제대로 공격도 못 해보고 돌아가셨고 둘째 형님도 마찬가지에요. 둘째 형님이 돌아가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삼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뭐라고 했는데?”진정성이 차갑게 물었다.“전신이라고 했어요.”삼호가 대답했다.전신?진정성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길게 심호흡하고 다시 물었다.“너도 그렇게 생각해?”어떻게 이럴 수 있지?전신급 실력이라니!정말 어마어마했다.일존 전신급 실력을 갖춘 인물이라면 부대에서 최소 군단장급이었다.그런 인물이 S시 같은 시골구석에서 남의 데릴사위나 하고 있다니!삼호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가주님, 둘째 형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확실히 그런 말을 했어요. 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전신이 아니라도 최소 군왕급 실력이라고 판단됩니다.”진정성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전신이 아니라도 한방에 대호와 이호를 죽여버렸으면 최소 군왕급 이상의 실력이겠지. 쉽게 건드려서는 안 될 상대야.”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돌려 싸늘한 눈빛으로 진우철을 바라보다가 다가가서 그의 귀뺨을 치며 말했다.“멍청한 녀석! 어쩌다가 그런 인물을 건드린 거냐!”진우철은 얼굴을 감싸며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버지, 저도 한지훈이 그렇게 대단한 줄은 몰랐어요. 분명 멸망한 가문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백수 녁석이었는데… 마누라 등쳐먹으면서 사는 놈이라고요….”“그래서 억울해?”진정성은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아들을 노려보며 다시 손을 들었다.진우철은 다급히 몸을 피했다.삼호가 말했다.“가주님, 유 선생을 보내 한지훈의 실력을 가늠해 보는 건 어떨까요? 만약 군왕급 이상이 아니라면 놈을 제거해서 큰형님과 둘째 형님의 복수를 해야죠. 만약 군왕급 이상이라면 거금을 들여 놈을 고
그 시각, 강운그룹 회의실에서는 도영그룹 관련해서 치열한 설전이 벌어지고 있었다.아침부터 그들은 협력을 중지하겠다는 도영그룹의 통보를 받았다.이유는 도호헌이 어제 잡혀가서 지금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강운그룹 임원들은 모든 화를 강우연에게 돌렸다.“우연아, 이게 대체 다 무슨 일이야? 어제 도 대표랑 같이 저녁 먹으며 사업 관련해서 얘기한다고 하지 않았어? 도 대표가 왜 갑자기 잡혀간 거야? 넌 그때 뭐 했어? 너랑 상관있는 거 아니야?”상석에 앉은 강문복이 음산한 표정으로 강우연을 추궁했다.강희연 역시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강우연을 비난했다.“강우연, 입 닫고 있는다고 일이 해결되지 않아! 어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우린 이번 사업을 위해 벌써 200억이 들어갔다고. 사업이 중단되면 이 손해는 어떡할 거야!”다른 임원들도 하나둘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강 부장, 솔직히 사실을 말해봐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도 대표가 갑자기 잡혀간 이유가 뭐에요?”“도 대표한테 무슨 무례한 발언을 해서 회사까지 덤터기를 쓰게 된 게 아닙니까!”“그러니까 왜 하필 강 부장을 보내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강우연은 사람들의 비난과 질책에도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이들에게 도호헌이 자신을 추행하려 하다가 백 선생이 나타나서 구해줬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그녀가 말이 없자 회장석에 앉아 있던 강준상이 굳은 표정으로 책상을 탕탕 두드렸다.“강우연! 입만 다물고 있지 말고 당장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안 그러면 회사에서 쫓겨날 줄 알아!”모두가 악의를 가득 품은 눈빛으로 강우연을 바라보았다.강우연은 압박감에 못 이겨 결국 얘기를 꺼냈다.“백 선생이….”“백 선생이라니? 누굴 말하는 거니?”강준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강문복이 벌떡 일어서더니 따지듯 물었다.“백마 산장 상회에 나타났던 그 백 선생 이야기하는 거야?”그 말
강우연은 눈물을 닦으며 그들에게 말했다.“저는… 백 선생 연락처를 가지고 있지 않아요.”그러자 사람들은 기가 차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웃겨! 자기 구해준 사람 연락처도 모르다니!”“이렇게 웃길 수가! 강우연 씨, 거짓말이 너무 티 나는 거 아니에요?”“황당하네! 백 선생같이 높으신 분이 지나가다가 구해줬다고요? 그 말을 누가 믿겠어요?”사람들은 너 한마디, 나 한마디 강우연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강우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강준상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호통쳤다.“강우연, 마지막 기회를 주지. 어떻게 된 건지 제대로 설명해.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할아버지도 널 지켜줄 수 없어. 200억이 걸린 사업이 파토났어. 이게 뭘 의미하는지 너도 잘 알겠지? 내가 지금 너를 회사에서 내쳐도 넌 할 말 없어!”“할아버지, 제 말은 모두 사실이에요. 저 정말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요.”강우연이 울며 말했다.강준상은 싸늘하게 코웃음 치며 지팡이를 치켜들었다.그런데 이때, 얼굴이 하얗게 질린 비서가 안으로 들어왔다.“회장님, 백… 백 선생께서 방문하셨어요.”순간 회의실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강준상은 의심의 눈초리로 비서를 바라보며 물었다.“누굴 말하는 거야?”“백마 산장 백 선생이요. 최근에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그분 말입니다.”비서가 다급히 말했다.임원들은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백 선생이 갑자기 강운에 방문했다고?강준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강우연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당장 마중을 나가야겠어!”강문복과 강희연, 그리고 나머지 임원들의 얼굴이 흥분으로 차올랐다.백 선생의 방문은 예상밖이었지만 회사에 어떤 이득을 가져다줄지 기대가 됐다.그들은 강우연을 내버려 두고 분분히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강우연은 홀로 자리에서 눈물을 닦고 조용히 일어섰다.회사 입구에 번쩍인 롤스로이스 한 대가 도착했다. 그 뒤에는 다섯 대의 마이바흐가 따르고 있었다.사기 충만해서 밖으로 나온 강운그룹 사람들은 저도
가면을 쓴 한지훈은 싸늘한 눈빛으로 강준상을 비롯한 강씨 가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그는 잠시 뜸을 들인 후, 강준상과 악수하며 당당히 말했다.“강 회장님, 협력 제안을 하러 찾아왔습니다만.”뭐라고?백 선생이 강운그룹에 사업 제안을 하러 친히 왔다고?그 말을 들은 강준상은 흥분하여 얼굴이 빨갛게 되었다.신비주의로 무장한 백 선생이 고작 사업 제안을 하러 회사까지 직접 찾아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하늘이 강운을 돕는 것일까?강준상은 공손한 태도로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백 선생, 들어가서 얘기 나누시죠.”강문복 역시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강준상의 뒤를 따랐다.강희연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한지훈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어떻게 저렇게 분위기가 멋있는 남자가 다 있지?’비록 가면을 썼지만 온몸에서 풍기는 우아한 분위기는 전혀 가려지지 않았다.어쩌면 이안그룹 회장 이한승보다 더 대단한 인물일지도 모른다.사람들이 백 선생을 이한승의 배후 투자자라고 얘기하고 다니는 것도 일리가 있었다.그렇다면 백 선생이야말로 숨겨진 최고 재력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강운의 임원들은 아부 섞인 웃음을 지으며 강준상 일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온 서경희는 멍하니 서 있는 강우연의 팔목을 잡으며 재촉했다.“봤지? 얼마나 위풍당당해? 이게 진짜 남자가 가져야 할 품위야! 넌 왜 그렇게 고집불통이니?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고!”조금 전 회의실에서는 그녀를 위해 말 한마디 하지 않았던 서경희였다.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흥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강우연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지난번에 없던 일로 하자고 했잖아요!”“너는 정말… 아이고! 됐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가만히 있어! 백 선생이야말로 너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야. 한지훈 그 백수 녀석은 그냥 버려!”서경희는 손으로 강우연의 어깨를 툭 밀치고는 사람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강학주는 다가와서 서글픈 표정을 짓고 있는
안으로 들어간 한지훈은 자연스럽게 상석으로 가서 앉았다.평소의 한지훈이었다면 여기 들어오지도 못하고 문전박대를 당했을 것이다.강준상과 다른 가족들에게 그는 여전히 무능한 백수에 지나지 않았다.하지만 백 선생의 신분으로 방문하니 모두가 우러러보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평소에 그만 보면 시비를 걸지 못해 안달이던 강희연이 직접 차를 따라 대접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백 선생님, 새로 들여온 우롱차인데 한번 마셔보세요.”강희연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실수인 척, 한지훈의 손을 쓰다듬었다.그러더니 매력적인 눈을 깜빡이며 한지훈에게 유혹의 신호를 보냈다.가면 속 한지훈은 냉소를 지으며 손길을 뿌리쳤다. 그러자 뜨거운 찻잔이 기울며 강희연의 명품 외투에 찻물이 그대로 쏟아졌다.“악!”강희연은 화들짝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한지훈은 짐짓 당황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죄송해요. 찻잔이 너무 뜨거워서… 강 실장님, 괜찮으시죠?”강희연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5백만 원이나 주고 산 명품 코트가 엉망이 되어버렸다.하지만 겉으로는 괜찮은 척,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죄송해요. 제가 물 온도를 제대로 체크하지 못했네요. 백 선생님은 괜찮으시죠?”이게 신분과 지위의 좋은 점이었다.한지훈은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분명히 그가 일부러 쳐냈다는 걸 알았을 텐데 오히려 강희연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만약 이 가면을 벗으면 강희연은 언제 그랬냐 싶게 온갖 욕설을 다 퍼부을 것이다.그를 죽이려고 달려들지도 모르는 일이다.한지훈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전 괜찮습니다.”강희연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뒤로 물러섰다.강문복이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희연아, 가서 따뜻한 물이라도 새로 가져와.”강희연은 물 심부름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한지훈에게서 시선을 뗄 줄 몰랐다.그녀는 백 선생의 외모가 무척이나 궁금했다.분명 잘생겼겠지?저 신분과 재력으로 가면을 쓰고 다닌다는 건 여자들이 꼬여 귀찮은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