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진우는 약간 의아했다.이 시간이면 이미 밤 9시가 넘었는데, 진 영감의 집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진 영감은 나이가 많고 현재 건강 상태도 좋지 않으니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할 때였다.의아함을 안고 엄진우는 문을 두드렸다.진 영감은 한의계에서 제자를 수없이 양성한 인물이고 한의학의 태산북두라고 불릴 만큼 존경받는 존재였지만 생활은 매우 검소했고 집에는 하인 하나 없었다.그의 손자가 문을 열었다.사실 진 영감은 돈을 적지 않게 벌어들였었다.이 동안 그는 여러 부유층 환자의 병을 치료했었고 그들은 거금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진 영감은 거절하지 않고 그 돈을 그대로 받았지만 그 돈은 모두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 쓰였다.정부에서 여러 차례 진 영감을 인터뷰하고 그에게 명예를 수여하며 공개적으로 표창하려 했지만 진 영감은 이를 모두 거절했다.그는 집도 있고 노후도 잘 보내고 있으며 생활이 풍족하고 행복한데 무엇을 찬양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했다.“영감님의 건강은 어떠신가요?”엄진우는 진 영감의 손자를 본 적이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다만 진 영감의 손자는 엄진우에 대해 별다른 인상이 없는 듯했으며 그저 그를 진 영감의 제자 중 한 명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통화하시고는 바로 잠드셨어요.”진 영감의 손자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를 들은 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집 안에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영감님께서 이미 주무신다면 왜 이렇게 시끄럽죠?”엄진우가 물었다.“괜찮아요.”진 영감의 손자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요즘 할아버지께서는 잠에 빠지시면 거의 혼수상태처럼 깨어나지 못하세요. 지금 하루에 깨어 있는 시간이 네 시간도 채 안 돼요.”엄진우의 표정은 더욱 무거워졌다.진 영감의 몸이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의 신체 장기가 이미 거의 다 쇠약해져서 최대한 오래 버티기 위해 자동으로 휴면 상태에 들어간 것이었다.어쩌면 이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그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진 영감의 한의학계에서의 위치와 실력을 고려하고 그들이 진 영감의 제자라고 자칭하며 진 영감을 치료한다면 곧 스승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아 단번에 한의계의 떠오르는 인물로 주목받을 것이다.그러니 처음에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본 것이었고 방 안의 분위기가 이렇게 긴장되어 있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이들은 오랜 세월 진심으로 진 영감을 걱정했던 것이 아니었다.그들의 마음에는 오직 돈, 명예, 그리고 지위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진 영감의 손자가 그들에게 차가운 태도를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아마 그 또한 이를 알아챘을 것이다.다만,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 때문에 그들을 내쫓지 못한 것이었다.혹시나 이들 중 정말 할아버지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에.아무리 작은 희망이라도 그는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환자 방은 조용하고 환기가 잘되어야 한다는 것도 모르나요?”열 명 넘는 사람들이 방 안에 모여 있으니 공기 중에는 땀 냄새가 가득했다.엄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그들에게 질책했다.“영감님이 지금 이런 상태인데 그게 뭐가 중요해? 치료하지 못하면 다 소용없어.”한 중년 남자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며칠이나 이곳에 머물렀으면서도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해 속이 타들어 갔지만 그래도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언젠간 영감이 떠오르면 해결책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맞아! 그리고 여기가 너 같은 사람이 나설 자리는 아니잖아?”또 다른 중년 남자가 차가운 목소리로 꾸짖었다.진 영감이 이미 백 세를 넘었고 그의 수업을 들었던 사람 중 가장 젊은 사람도 이미 50세가 넘었다.이들은 지금 한의계에서 전문가로 불리는 사람들이기에 자연히 엄진우와 같은 젊은이를 깔보았다.어쨌든 한의학은 나이와 경험이 쌓여야 하는 학문이니까.“실력은 별로인데 성깔만 대단하군요. 당신들 그렇게 대단한데 지금까지 방법 하나라도 생각해 냈어요? ”엄진우는 콧방귀를 뀌고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네가 뭘 안다고! 안석아, 어서
엄진우의 말을 듣고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붉어졌다.“네가 뭔데 짖어대는 거야? 우리는 너 같은 무식한 놈과 한방에 있는 게 부끄러울 뿐이야!””맞아! 맞아!”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쳤다.“당신들 전문가라면서 도대체 무슨 방법을 생각해 낸 건데요? 만약 당신들이 아무 방법이 없다면 나 같은 무식한 놈과 다를 바 없는데, 무슨 자격으로 나를 내쫓아낸다는 거죠?”엄진우rk 비웃으며 말했다.“누가 방법이 없다고 했어? 우리는... 우리는 영감님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그들은 언성을 높이며 외쳤다.여기서 그들이 아무 방법이 없다고 인정한다면 그건 곧 엄진우와 다를 바 없다는 걸 시인하는 셈이니까.“오? 역시 전문가네요! 이렇게 빨리 방법을 생각해 내다니요. 그럼, 어떤 방법인지 좀 말해봐요. 무식한 나도 배워보게.”엄진우는 눈을 크게 뜨고 일부러 놀란 척했다.진안석도 눈빛이 반짝이며 기대 어린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마침내 방 안에서 가장 나이 많은 의사가 입을 열었다.“내가 그럼 아낌없이 가르쳐주지. 잘 들어라...”그는 어렵고 복잡하게 이리저리 돌려가며 말했다. 황제내경에서부터 상한론, 고대 무의까지 이야기하다가 한서의학 융합까지 얘기를 돌렸다.엄진우는 듣고 나서 한마디로 요약할 수밖에 없었다.말도 안 되는 개소리!그런데도 방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그에게 연신 칭찬을 늘어놓았다.다른 사람들도 연이어 자기들의 견해를 늘어놓았다.엄진우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당신들의 치료 방안이 그렇게나 대단한데 지금 당장 영감님을 깨워서 치료를 시작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엄진우는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허튼소리 하지 마! 영감님은 지금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태야. 깨우면 안 돼!”사람들은 안색이 변하며 급히 말했다.사실 그들은 진 영감을 깨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알고는 있네요. 그런데도 영감님이 쉬고 있는 동안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건데요?”
진 영감이 깨어나자 방 안의 모든 사람이 침대 옆으로 몰려들었다.“영감님, 이 녀석이 무례하게 영감님을 깨웠습니다. 절대 화내지 마세요. 영감님의 몸은 지금 화를 감당할 수 없어요.”“맞아요. 우리가 이 녀석을 쫓아낼게요.”“걱정 마세요. 우리는 이미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 봤어요. 아마 영감님의 몸이 다시 좋아질 수 있을 거예요.”그들은 서로 얘기를 쏟아냈다.진 영감의 얼굴에는 실망감과 약간의 자책이 떠올랐다. 그는 평생 한의학을 위해 무엇을 배양했던가?“다들 나가. 얘만 있으면 돼.”진 영감이 한숨을 쉬며 담담하게 말했다.그 말이 나오자 방 안은 순간 조용해졌다.믿어지지 않았다.설마 진 영감이 이 녀석을 더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인가?“영감님, 이 녀석이 영감님을 깨웠다고 해서 그의 의술이 뛰어난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사실 이건 오히려 배움이 부족하다는 증거입니다. 저희처럼 한의학에 몰두한 사람들은 영감님 같은 상태에서는 절대 깨워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그들은 서둘러 말했다.만약 엄진우가 진 영감을 치료하게 된다면 그들은 얼굴이 깍일 게 뻔하다.전문가인 그들이 엄진우에게 밀릴 수는 없었다.설사 진 영감이 죽더라도 이 녀석에게 치료받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다.이것이 그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끓고 있는 생각이었다.“괜찮아요, 영감님. 이 사람들이 여기 있든 말든 그냥 두세요. 이 사람들도 알아야죠. 수준이 한의학 문턱도 넘지 못했다는 걸. 정신 차릴 때도 됐죠.”엄진우는 웃으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너 무슨 소리야? 어디 새파란 놈이 까불긴, 까불어?”“진짜 버릇없는 놈이네!”“절대 네가 영감님을 치료하는 걸 허락하지 않을 거야!”“영감님은 우리의 스승이야! 한의학의 살아있는 화석이지. 네가 영감님에게 손끝이라도 댄다면 가만두지 않을 테니 그렇게 알고 있어!”“비록 우리가 나이는 많지만, 힘을 합치면 너 같은 애송이 하나는 쉽게 처리할 수 있어.”그들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진 영감이 엄진우에
황제칠십이천명침은 무의 시대에서 기원한 것이다.현대에 와서는 이미 전해지지 않게 되었지만 황제 씨족은 여전히 그 기술을 이어가고 있었다. 다만 그들은 외부인에게 이를 절대 드러내지 않았으며 황제 씨족도 이미 쇠퇴하여 이 침법의 진수를 깨우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그들이 황제칠십이천명침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고대 서적에 남겨진 기록과 황제 씨족 사람들이 전한 설명뿐이었다.그러나 그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은 엄진우가 이 침법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이 침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이유는 황제칠십이천명침을 구사할 때, 마치 먼 고대에서 울려 퍼져오는 장엄한 속삭임과 왕의 기운이 흘러넘치기 때문이었다.이 순간 방 안에는 신비한 고대의 저음 속삭임이 울려 퍼졌고 이는 천지에서부터 나오는 소리였다.엄진우의 손짓 하나하나에 왕의 기운이 흘러넘쳐 사람들은 저절로 경외감을 느끼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황제칠십이천명침은 전설 속에서 천지와 수명을 다투고 귀신과 맞서는 침법으로 알려져 있었다.한 차례 침법을 마치고 나자 엄진우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깊게 숨을 몇 번 들이마셨다.“제 능력이 부족해서 황제칠십이천명침의 고대 위력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습니다. 그저 영감님이 마지막 여정을 건강하게 보내도록 도울 수 있을 뿐입니다.”엄진우는 한숨을 쉬며 무력하게 고개를 저었다.즉 황제칠십이천명침도 진 영감의 수명을 연장할 수는 없었다. 다만 수명을 유지하면서 건강 상태를 평상시처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었다.사실 이는 엄진우의 학문 부족 때문이 아니었다.현대의 천지는 이미 고대와 크게 달라졌으며 고대 무의학 시대에 황제가 사용한 은침은 만 년 이상 된 천재지변으로 연마한 것이었고 또한 고대의 기이한 짐승들의 피와 고기를 약재로 사용해야 최대한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그러나 현대에서는 엄진우가 어디서도 그런 것들을 구할 수 없었다.진 영감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정도면
“앞으로는 밖에서 내 제자라고 자칭하지 말고 스스로를 잘 돌보거라.”말을 마치고 진 영감은 손을 흔들었다.사람들은 입을 열어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진 영감이 눈을 감고 있어 아무도 말을 할 수 없었고 모두 조용히 방을 떠났다.“할아버지, 그 사람들이 다 떠났어요.”진안석은 문을 닫고 진 영감의 침대 곁에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진 영감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눈을 떴다.“엄진우, 내가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 건 이 아이뿐이야.”진 영감은 진안석의 손을 잡으며 엄진우에게 말했다.사실 진안석도 이미 서른이 넘었다.“할아버지, 저는 이미 가정을 이루고 자리도 잡았는데 무슨 걱정을 더 하십니까?”진안석은 할아버지가 유언을 남기는 듯한 어조를 들으며 눈가가 붉어졌고 얼굴에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가정을 이루고 자리도 잡았다고? 네가 한의학 협회에 들어가 작은 직책이라도 맡을 수 있었던 것은 내 체면을 봐준 덕분이지 않느냐? 내가 떠나면 누가 내 체면을 보고 네게 힘을 써주겠느냐?”진 영감은 눈을 부릅뜨며 가차 없이 꾸짖었다.“휴, 내가 평생 공정하고 사심 없이 살아왔지만 죽을 때쯤 되니 역시 자식들을 위해 무언가를 마련해 주고 싶은 욕심이 드는구나. 엄진우, 안석은 불쌍한 아이야! 이 아이의 아버지는 젊었을 때 내가 군대에 보냈는데 그곳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해 이 아이를 낳았어. 그런데 이 아이는 태어난 후부터 부모와 함께할 수 없었고 나만 따라다녔어. 그러다 미션을 수행하던 중 부모를 영원히 잃고 말았지. 그래서 말인데, 내가 이 늙은 얼굴을 내밀고 자네에게 부탁하면 안 될까. 이 아이가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한 도울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최대한 도와주게나.”진 영감은 진지하게 엄진우에게 말했다.엄진우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걱정 마세요. 제가 반드시 도울 겁니다.”엄진우는 마음만 먹으면 진안석을 단숨에 출세하게 할 수 있다.“만약 이 아이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억지로 끌
“당신 해고야!”검은 정장스커트에 늘씬하고 굴곡 있는 몸매를 뽐내는 여자가 차갑게 말했다.섹시하고 화끈한 D컵의 소유자를 바라보던 엄진우는 저도 몰래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그녀는 갑자기 나타난 낙하산 부대표, 엄진우의 직속 상사인 예우림이다.나이는 스물일곱, 해외파 박사학위 소유자로 연봉이 무려 2천억에 달한다고 한다.출근 첫날, 그녀는 대대적으로 인사조정을 시작했다.“엄진우 씨 차례예요.”인사부 직원이 엄진우를 불렀다.엄진우는 초조하게 사무실로 들어갔다.“부대표님, 찾으셨습니까?”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바닥에 엎드린 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아름다운 육신을 미친 듯이 떨고 있는 예우림이 보였다.순간, 뜨거운 피가 엄진우의 정수리까지 솟구쳤다.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하고 싶은 충동에 입이 바싹 말라오며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아름다운 몸매보다 더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당장 나가!”엄진우를 발견한 예우림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버럭 화를 냈다.깜짝 놀란 엄진우가 그대로 나가려는 그때, 뒤에서 예우림의 고통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잠깐! 이리 와서...... 나 좀 도와줘.”엄진우는 하는 수 없이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가 익숙하게 맥을 짚었다.사실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예우림은 몸이 잔뜩 달아오른 채 가쁜 숨을 내쉬더니 저도 몰래 레이스 브래지어를 당기고 있었다.엄진우는 엄숙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부대표님, 이건 독입니다. 합환산이라고 불리는 이 독은 독성이 너무 강해 이대로 계속되면 3분 안에 온몸으로 독이 퍼져 자체 발화로 사망하게 될 겁니다. 지금 부대표님을 구하는 단 한 가지 방법은 바로 제 몸으로 해독을 돕는 겁니다.”예우림은 순간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엄진우는 표정이 돌변하더니 그녀의 양해를 구했다.“그럼 실례하겠습니다.”엄진우는 그녀의 옷을 마구 찢더니 미친 듯이 몸을 탐하기 시작했다.“잠깐......”예우림은 깜짝 놀랐다. ‘해독’이
진미령은 가방을 들고 일어서며 차갑게 비웃었다.“난 명문대 졸업했고 대기업 임원이야. 연봉 오천에 차 두 대, 집도 자가라고! 어디서 월급 200만 원도 안 되는 찌질이가 감히 나와 맞선을 봐? 재벌 2세인 줄 알고 나왔는데 이게 뭐야? 스물다섯에 차도 없고 집도 없는 쓰레기가 무슨 낯짝으로 아직도 살아 있어?”진미령은 엄진우에게 삿대질하며 귀에 거슬리는 말을 마구 내뱉었다.엄진우의 표정은 순식간에 싸늘하게 변했다.만약 이곳이 북강이라면 그녀는 물론, 그녀의 가족까지도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이때 하수희가 다급히 말렸다.“아가씨, 우리 진우가 지금은 비록 가진 게 없지만 누구보다 착실하고 부지런한 아이라 반드시 성공할 거예요......”“이거 놓고 꺼져요! 어디 늙은이가 감히!”진미령은 하수희를 거칠게 밀쳤다.“우리 엄마 건드리지 마!”엄진우의 눈은 이미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이때 옆에 화장을 짙게 한 늙은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차갑게 말했다.“이봐, 창해댁. 우리 미령이가 얼마나 귀한 아인데 이런 조건으로 우리 미령이와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해? 하도 창해댁이 애걸복걸해서 내가 하는 수 없이 우리 딸 데리고 나오긴 했는데, 이건 너무 무성의한 거 아니야?”진미령의 어머니인 최란화가 거들먹거리며 말했다.하수희는 심장이 철렁하더니 입술이 파르르 떨려왔다.“아니, 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창해댁네 땅 말인데. 만약 그 땅을 예물로 준다면 우리 딸도 아마 한 번 더 생각해 볼 거야.”최란화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계속 말했다.“아, 그리고 지금 사는 그 집 처리하고 그 돈으로 애들 신혼집이라도 마련해줘야겠지?”엄진우는 어이가 없었다.“땅도 주고 집도 처리하면 우리 엄마는요? 뭐 밖에서 자게 내버려둬요?”“이것 봐, 이제 첫 번째 조건만 제기했을 뿐인데 이런 태도로 나오면 우리 딸 마음 얻을 수나 있겠어?”최란화는 이내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하수희는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언니, 그러지 마세요.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