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저편에 있는 사람은 엄진우가 며칠 전에 연락했던 인물이었다.이 노인은 용국이 현대에 접어들면서 한의학을 구하고 그 기틀을 마련한 사람이다.전쟁의 혼란 속에서 그는 자기의 전 재산을 쏟아부어 소중한 한의학 서적들을 지켜냈다.평생 한의학 연구에 헌신한 그는 현대에 들어서 한의학이 쇠퇴하는 상황에서 아낌없이 귀중한 고서와 처방을 공개하며 자기의 모든 의술을 많은 한의사들에게 가르쳤다.그가 강의를 할 때 전쟁 중 파괴된 의학 고서를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었는데 당시 엄진우도 그 자리에 있었다.그의 헌신적인 태도에 감동한 엄진우는 강의가 끝난 후 이 유명한 노인을 찾아갔다.엄진우의 어린 얼굴을 본 그는 전혀 깔보지 않고 오히려 동등한 태도로 대화를 나눴다.엄진우는 그가 평생 동안 갖고 있던 아쉬움을 해결해 주었다.그가 지켜내지 못한 의학 고서들이 이제는 영원히 사라진 줄 알았는데 엄진우가 그것을 복원해 준 것이다.그 후 두 사람은 나이를 초월한 친구가 되었다.며칠 전 엄진우가 그에게 전화를 건 이유는 바로 이번 한의학 포럼의 발기인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그의 명성과 의술이면 수많은 한의사가 호응할 것이 분명했고 일정제약에서 개최하는 한의학 포럼은 자연스럽게 초라해질 것이다.“영감님, 무슨 어려움이라도 있나요?”엄진우가 물었다.“어려운 건 없네. 내 몸이 허락하지 않을 뿐이야.”진 영감이 웃으며 말했다.“몸이요? 지난번에 뵀을 때는 건강하셨잖아요? 병이라도 생긴 건가요?”엄진우가 급히 물었다.진 영감은 용국 의학의 큰 보물 같은 존재이다.“우리 한의학에서는 병을 예방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지. 내가 이 나이에 병에 걸린다면 이 업계는 희망이 없어!”진 영감은 익살스럽게 농담하며 말했다.“매일 오금희를 하고, 수십 년 동안 꾸준히 건강을 관리해 왔으니 병에 걸릴 리는 없어. 다만, 생로병사의 자연스러운 이치에 따라 수명이 다 된 것뿐이지. 하지만 지금 용국 한의학에는 네가 있으니 내가 오늘 죽더라도 아무런
엄진우는 약간 의아했다.이 시간이면 이미 밤 9시가 넘었는데, 진 영감의 집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진 영감은 나이가 많고 현재 건강 상태도 좋지 않으니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할 때였다.의아함을 안고 엄진우는 문을 두드렸다.진 영감은 한의계에서 제자를 수없이 양성한 인물이고 한의학의 태산북두라고 불릴 만큼 존경받는 존재였지만 생활은 매우 검소했고 집에는 하인 하나 없었다.그의 손자가 문을 열었다.사실 진 영감은 돈을 적지 않게 벌어들였었다.이 동안 그는 여러 부유층 환자의 병을 치료했었고 그들은 거금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진 영감은 거절하지 않고 그 돈을 그대로 받았지만 그 돈은 모두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 쓰였다.정부에서 여러 차례 진 영감을 인터뷰하고 그에게 명예를 수여하며 공개적으로 표창하려 했지만 진 영감은 이를 모두 거절했다.그는 집도 있고 노후도 잘 보내고 있으며 생활이 풍족하고 행복한데 무엇을 찬양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했다.“영감님의 건강은 어떠신가요?”엄진우는 진 영감의 손자를 본 적이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다만 진 영감의 손자는 엄진우에 대해 별다른 인상이 없는 듯했으며 그저 그를 진 영감의 제자 중 한 명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통화하시고는 바로 잠드셨어요.”진 영감의 손자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를 들은 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집 안에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영감님께서 이미 주무신다면 왜 이렇게 시끄럽죠?”엄진우가 물었다.“괜찮아요.”진 영감의 손자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요즘 할아버지께서는 잠에 빠지시면 거의 혼수상태처럼 깨어나지 못하세요. 지금 하루에 깨어 있는 시간이 네 시간도 채 안 돼요.”엄진우의 표정은 더욱 무거워졌다.진 영감의 몸이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의 신체 장기가 이미 거의 다 쇠약해져서 최대한 오래 버티기 위해 자동으로 휴면 상태에 들어간 것이었다.어쩌면 이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그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진 영감의 한의학계에서의 위치와 실력을 고려하고 그들이 진 영감의 제자라고 자칭하며 진 영감을 치료한다면 곧 스승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아 단번에 한의계의 떠오르는 인물로 주목받을 것이다.그러니 처음에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본 것이었고 방 안의 분위기가 이렇게 긴장되어 있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이들은 오랜 세월 진심으로 진 영감을 걱정했던 것이 아니었다.그들의 마음에는 오직 돈, 명예, 그리고 지위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진 영감의 손자가 그들에게 차가운 태도를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아마 그 또한 이를 알아챘을 것이다.다만,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 때문에 그들을 내쫓지 못한 것이었다.혹시나 이들 중 정말 할아버지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에.아무리 작은 희망이라도 그는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환자 방은 조용하고 환기가 잘되어야 한다는 것도 모르나요?”열 명 넘는 사람들이 방 안에 모여 있으니 공기 중에는 땀 냄새가 가득했다.엄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그들에게 질책했다.“영감님이 지금 이런 상태인데 그게 뭐가 중요해? 치료하지 못하면 다 소용없어.”한 중년 남자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며칠이나 이곳에 머물렀으면서도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해 속이 타들어 갔지만 그래도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언젠간 영감이 떠오르면 해결책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맞아! 그리고 여기가 너 같은 사람이 나설 자리는 아니잖아?”또 다른 중년 남자가 차가운 목소리로 꾸짖었다.진 영감이 이미 백 세를 넘었고 그의 수업을 들었던 사람 중 가장 젊은 사람도 이미 50세가 넘었다.이들은 지금 한의계에서 전문가로 불리는 사람들이기에 자연히 엄진우와 같은 젊은이를 깔보았다.어쨌든 한의학은 나이와 경험이 쌓여야 하는 학문이니까.“실력은 별로인데 성깔만 대단하군요. 당신들 그렇게 대단한데 지금까지 방법 하나라도 생각해 냈어요? ”엄진우는 콧방귀를 뀌고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네가 뭘 안다고! 안석아, 어서
엄진우의 말을 듣고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붉어졌다.“네가 뭔데 짖어대는 거야? 우리는 너 같은 무식한 놈과 한방에 있는 게 부끄러울 뿐이야!””맞아! 맞아!”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쳤다.“당신들 전문가라면서 도대체 무슨 방법을 생각해 낸 건데요? 만약 당신들이 아무 방법이 없다면 나 같은 무식한 놈과 다를 바 없는데, 무슨 자격으로 나를 내쫓아낸다는 거죠?”엄진우rk 비웃으며 말했다.“누가 방법이 없다고 했어? 우리는... 우리는 영감님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그들은 언성을 높이며 외쳤다.여기서 그들이 아무 방법이 없다고 인정한다면 그건 곧 엄진우와 다를 바 없다는 걸 시인하는 셈이니까.“오? 역시 전문가네요! 이렇게 빨리 방법을 생각해 내다니요. 그럼, 어떤 방법인지 좀 말해봐요. 무식한 나도 배워보게.”엄진우는 눈을 크게 뜨고 일부러 놀란 척했다.진안석도 눈빛이 반짝이며 기대 어린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마침내 방 안에서 가장 나이 많은 의사가 입을 열었다.“내가 그럼 아낌없이 가르쳐주지. 잘 들어라...”그는 어렵고 복잡하게 이리저리 돌려가며 말했다. 황제내경에서부터 상한론, 고대 무의까지 이야기하다가 한서의학 융합까지 얘기를 돌렸다.엄진우는 듣고 나서 한마디로 요약할 수밖에 없었다.말도 안 되는 개소리!그런데도 방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그에게 연신 칭찬을 늘어놓았다.다른 사람들도 연이어 자기들의 견해를 늘어놓았다.엄진우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당신들의 치료 방안이 그렇게나 대단한데 지금 당장 영감님을 깨워서 치료를 시작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엄진우는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허튼소리 하지 마! 영감님은 지금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태야. 깨우면 안 돼!”사람들은 안색이 변하며 급히 말했다.사실 그들은 진 영감을 깨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알고는 있네요. 그런데도 영감님이 쉬고 있는 동안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건데요?”
진 영감이 깨어나자 방 안의 모든 사람이 침대 옆으로 몰려들었다.“영감님, 이 녀석이 무례하게 영감님을 깨웠습니다. 절대 화내지 마세요. 영감님의 몸은 지금 화를 감당할 수 없어요.”“맞아요. 우리가 이 녀석을 쫓아낼게요.”“걱정 마세요. 우리는 이미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 봤어요. 아마 영감님의 몸이 다시 좋아질 수 있을 거예요.”그들은 서로 얘기를 쏟아냈다.진 영감의 얼굴에는 실망감과 약간의 자책이 떠올랐다. 그는 평생 한의학을 위해 무엇을 배양했던가?“다들 나가. 얘만 있으면 돼.”진 영감이 한숨을 쉬며 담담하게 말했다.그 말이 나오자 방 안은 순간 조용해졌다.믿어지지 않았다.설마 진 영감이 이 녀석을 더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인가?“영감님, 이 녀석이 영감님을 깨웠다고 해서 그의 의술이 뛰어난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사실 이건 오히려 배움이 부족하다는 증거입니다. 저희처럼 한의학에 몰두한 사람들은 영감님 같은 상태에서는 절대 깨워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그들은 서둘러 말했다.만약 엄진우가 진 영감을 치료하게 된다면 그들은 얼굴이 깍일 게 뻔하다.전문가인 그들이 엄진우에게 밀릴 수는 없었다.설사 진 영감이 죽더라도 이 녀석에게 치료받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다.이것이 그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끓고 있는 생각이었다.“괜찮아요, 영감님. 이 사람들이 여기 있든 말든 그냥 두세요. 이 사람들도 알아야죠. 수준이 한의학 문턱도 넘지 못했다는 걸. 정신 차릴 때도 됐죠.”엄진우는 웃으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너 무슨 소리야? 어디 새파란 놈이 까불긴, 까불어?”“진짜 버릇없는 놈이네!”“절대 네가 영감님을 치료하는 걸 허락하지 않을 거야!”“영감님은 우리의 스승이야! 한의학의 살아있는 화석이지. 네가 영감님에게 손끝이라도 댄다면 가만두지 않을 테니 그렇게 알고 있어!”“비록 우리가 나이는 많지만, 힘을 합치면 너 같은 애송이 하나는 쉽게 처리할 수 있어.”그들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진 영감이 엄진우에
황제칠십이천명침은 무의 시대에서 기원한 것이다.현대에 와서는 이미 전해지지 않게 되었지만 황제 씨족은 여전히 그 기술을 이어가고 있었다. 다만 그들은 외부인에게 이를 절대 드러내지 않았으며 황제 씨족도 이미 쇠퇴하여 이 침법의 진수를 깨우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그들이 황제칠십이천명침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고대 서적에 남겨진 기록과 황제 씨족 사람들이 전한 설명뿐이었다.그러나 그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은 엄진우가 이 침법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이 침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이유는 황제칠십이천명침을 구사할 때, 마치 먼 고대에서 울려 퍼져오는 장엄한 속삭임과 왕의 기운이 흘러넘치기 때문이었다.이 순간 방 안에는 신비한 고대의 저음 속삭임이 울려 퍼졌고 이는 천지에서부터 나오는 소리였다.엄진우의 손짓 하나하나에 왕의 기운이 흘러넘쳐 사람들은 저절로 경외감을 느끼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황제칠십이천명침은 전설 속에서 천지와 수명을 다투고 귀신과 맞서는 침법으로 알려져 있었다.한 차례 침법을 마치고 나자 엄진우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깊게 숨을 몇 번 들이마셨다.“제 능력이 부족해서 황제칠십이천명침의 고대 위력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습니다. 그저 영감님이 마지막 여정을 건강하게 보내도록 도울 수 있을 뿐입니다.”엄진우는 한숨을 쉬며 무력하게 고개를 저었다.즉 황제칠십이천명침도 진 영감의 수명을 연장할 수는 없었다. 다만 수명을 유지하면서 건강 상태를 평상시처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었다.사실 이는 엄진우의 학문 부족 때문이 아니었다.현대의 천지는 이미 고대와 크게 달라졌으며 고대 무의학 시대에 황제가 사용한 은침은 만 년 이상 된 천재지변으로 연마한 것이었고 또한 고대의 기이한 짐승들의 피와 고기를 약재로 사용해야 최대한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그러나 현대에서는 엄진우가 어디서도 그런 것들을 구할 수 없었다.진 영감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정도면
“앞으로는 밖에서 내 제자라고 자칭하지 말고 스스로를 잘 돌보거라.”말을 마치고 진 영감은 손을 흔들었다.사람들은 입을 열어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진 영감이 눈을 감고 있어 아무도 말을 할 수 없었고 모두 조용히 방을 떠났다.“할아버지, 그 사람들이 다 떠났어요.”진안석은 문을 닫고 진 영감의 침대 곁에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진 영감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눈을 떴다.“엄진우, 내가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 건 이 아이뿐이야.”진 영감은 진안석의 손을 잡으며 엄진우에게 말했다.사실 진안석도 이미 서른이 넘었다.“할아버지, 저는 이미 가정을 이루고 자리도 잡았는데 무슨 걱정을 더 하십니까?”진안석은 할아버지가 유언을 남기는 듯한 어조를 들으며 눈가가 붉어졌고 얼굴에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가정을 이루고 자리도 잡았다고? 네가 한의학 협회에 들어가 작은 직책이라도 맡을 수 있었던 것은 내 체면을 봐준 덕분이지 않느냐? 내가 떠나면 누가 내 체면을 보고 네게 힘을 써주겠느냐?”진 영감은 눈을 부릅뜨며 가차 없이 꾸짖었다.“휴, 내가 평생 공정하고 사심 없이 살아왔지만 죽을 때쯤 되니 역시 자식들을 위해 무언가를 마련해 주고 싶은 욕심이 드는구나. 엄진우, 안석은 불쌍한 아이야! 이 아이의 아버지는 젊었을 때 내가 군대에 보냈는데 그곳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해 이 아이를 낳았어. 그런데 이 아이는 태어난 후부터 부모와 함께할 수 없었고 나만 따라다녔어. 그러다 미션을 수행하던 중 부모를 영원히 잃고 말았지. 그래서 말인데, 내가 이 늙은 얼굴을 내밀고 자네에게 부탁하면 안 될까. 이 아이가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한 도울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최대한 도와주게나.”진 영감은 진지하게 엄진우에게 말했다.엄진우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걱정 마세요. 제가 반드시 도울 겁니다.”엄진우는 마음만 먹으면 진안석을 단숨에 출세하게 할 수 있다.“만약 이 아이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억지로 끌
“여기까지면 됐어요. 더 이상 배웅하지 않아도 돼요. 내일 또 만나겠는데요 뭐.”진안석은 엄진우를 집 앞까지 배웅했고 엄진우는 웃으며 말했다.일정제약이 후원하는 무도 대회가 2날 후 열리기에 그는 진안석과 내일 창해시로 돌아갈 비행기 표를 이미 예약해 놓았다.“엄진우 씨, 돌아갈 때 조심하세요. 내일 뵙겠습니다.”진 영감은 엄진우를 집에 하룻밤 재워주고 싶어했지만 엄진우는 할 일이 있다고 거절했다.엄진우는 진안석에게 손을 흔들며 골목으로 들어갔다.어두운 골목으로 들어서자 엄진우의 표정은 변했고 눈빛은 날카로워졌다.“나와라.”그가 음침하게 말했다.검은 그림자가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언제부터 날 알아챘어?”그 그림자는 몸집이 작고 이상한 억양으로 말했다.“영감님 집에 온 순간부터 너를 발견했어. 영화국의 형편없는 닌자술은 내 눈에는 서커스 재주와 다를 게 없어.”엄진우는 차갑게 웃으며 경멸스럽게 말했다.“죽고 싶어? 감히 우리 영화국의 위대한 닌자술을 모욕하다니!”그는 바로 영화국 닌자 미야모토 타로였다.“웃기네! 닌자술은 그저 용국의 기문둔갑을 표절한 것에 불과해. 하지만 괜찮아. 한낱 하찮은 도둑이 약간의 기술을 배웠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니까.”엄진우는 차갑게 비웃었다.그들이 용국에서 표절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영화국의 글자조차 없었을 것이다.“오만한 용국 사람이로구나! 네가 조각나게 되면 우리 영화국의 닌자술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게 될 거야! 용국의 기문둔갑은 그저 사기술에 불과해. 정말 그렇게 대단하다면 왜 내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못 봤겠어?”미야모토 타로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손으로 인을 그리며 몸이 허공에서 사라지더니 순간 엄진우의 뒤에 나타났다.하지만 그의 몸이 나타난 바로 그 시점에 엄진우는 이미 그의 방향으로 발을 차고 있었다.미야모토 타로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몸은 또 사라졌다.그러나 엄진우는 그림자처럼 따라가며 미야모토 타로가 나타나는 위치에 정확하게 공격을 했다.“어떻게 이럴 수가!”
남자는 여전히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이때, 서관림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남자는 순간 멍해지더니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엄진우를 힐끗 쳐다보았다. 설마... 진짜일 리가 없겠지? 전화를 받자마자 쏟아지는 것은 거친 욕설이었다. 한편 제경에는 피를 동반한 권력 변화가 대대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보수파는 이용진을 잡은 후 야망이 커져 이 기회에 급진파의 장로들을 모두 제거하려 했다. 급진파의 장로들은 이용진 사건에서 이미 한발 물러섰지만 보수파의 끝없는 욕심을 보고 더는 참기 어려웠다. 양측은 격렬한 충돌을 벌이다 큰 전쟁으로 번졌다. 결국 제경 전역을 봉쇄하고 계엄령을 내렸지만 양측의 교전으로 제경 내부는 화약 냄새가 자욱했다. 하지만 이 충돌은 전 국토로 확산되어 전국적인 전란의 위기를 몰고 왔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대장로가 깨어났다. 몇 년 전, 대장로는 북강 명왕을 해임한 후 깊은 잠에 빠졌었다. 그러다 오늘 드디어 깨어난 것이다. 혼란스러운 제경과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두 파벌을 본 그는 상황이 되돌릴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반쪽짜리 명왕령을 당장 엄진우에게 가져가고 제경으로 불러들여라! 그때의 일은 내가 친히 설명할 것이다.” 대장로는 수십 년을 함께한 심복을 불러 명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진우는 반쪽짜리 명왕령을 손에 쥐게 되었다. 수년 전 그날, 엄진우는 명왕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이 반쪽 명왕령을 회수당했다. 이 순간, 명왕령은 드디어 온전한 하나가 되었고 이는 명왕이 다시 자리에 올랐음을 알리는 것이다. 제경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알게 된 엄진우는 아무 말 없이 갑옷을 입고 무장했다. 전투의 기운은 살벌하게 하늘을 찔러댔다. 그는 급히 북강으로 향했다. 북강 잠룡곡. 그곳에는 50만 북강 군대가 수년간 매복해 있었다. “북강군이여, 명령을 받들라!” 긴 외침과 함께 전쟁의 신, 북강 명왕의 모습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50만 북강군은 흥분에 휩싸여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시암은 용국의 동남쪽에 위치한 작은 나라인데 용국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시암의 많은 재벌은 지난 100~200년 동안 용국에서 이민으로 건너간 사람들이다. 현재 시암의 갑부 역시 그중 하나였다. “아버지 성이 서씨야?” 엄진우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뭐 좀 아는구나? 얼마면 되겠어? 가격부터 말해.” 남자는 손을 휘저으며 수표를 꺼냈고 엄진우의 얼굴은 순간 싸늘해졌다. “네 아버지 그까짓 재산으론 내 엉덩이를 닦기도 부족해. 그런데 어디서 감히 큰소리야? 당장 꺼져!” 엄진우는 이 재벌 2세가 그저 방탕한 자식일 뿐, 실지 가문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인간이란 걸 바로 알아챘다. 단지 남을 괴롭히고 돈으로 해결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저렴한 사람이니 더는 상대할 필요도 없었다.남자는 멍하니 엄진우를 쳐다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신 미쳤어? 우리 아버지 시암 갑부라고! 그런데 그까짓 재산이라고?”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맞아! 네 아버지 말이야! 서씨 가문 자산을 합쳐도 200조를 넘지 못해!” 엄진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아, 이 새끼 허세 장난 아니네? 너 200조가 어떤 개념인 줄 알기나 해? 현금으로 바꾸면 너 같은 건 몇천 번도 깔아 죽일 수 있어.”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됐고... 애송이, 당장 여기서 꺼지지 않는다면 시암에 있는 네 아버지가 당장 날아와 널 혼내줄 거야.” 엄진우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남자를 쫓아냈다. “이 새끼 봐라? 감히 누구 앞에서 잘난 척이야? 너 돈에 깔려 죽고 싶어?” “말귀 못 알아듣는 놈이군, 당장 네 아버지를 불러줄게.” 엄진우는 휴대폰을 꺼내 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서관림 알죠?” 엄진우가 물었다. “선생님, 서관림은 무슨 일로 찾으시는지요? 당장 연락드리라 알리겠습니다.” 전화기 너머의 사람은 다급하게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서관림의 아들이
그녀는 아들이 대체 밖에서 무슨 짓을 했길래 이런 원수를 사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고 아들이 정말 수많은 사람을 죽였는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아들이 그 수단들을 어디서 배웠는지, 긴 세월 동안 이렇게 숨 막히는 날들을 보냈는지 너무 걱정되었다. “집에 가서 얘기하자.” 엄진우는 하수희를 번쩍 안아 들고 회사를 떠났다. 가는 길에 엄진우는 가볍게 하수희의 머리를 쳤고, 곧 하수희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엄진우는 그녀의 일부 기억을 지워버렸다. 집에 돌아와 한참이 지나자 하수희도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진우야, 어쩐 일로 갑자기 돌아왔어?” 엄진우를 본 하수희는 반가움에 어쩔 줄 몰랐다. “나 일 때문에 먼 길 떠나기 전에 집에 좀 들러보려고. 근데 엄마는 왜 소파에서 자? 방에서 편히 자지.” 하수희는 몸을 일으켰다. 이상하다? 몸이 왜 이렇게 뻐근하지? “네 동생이랑 전화하다가 잠들었나 봐. 참 이상하네. 어떻게 말하다 말고 잠들었지?” 하수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손강호에게 납치된 기억은 전부 엄진우에 의해 지워졌다. 하수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젠 예전 같지가 않아. 좀 쉬고 있어. 엄마가 곧 밥 해줄게.” 말을 마친 하수희는 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엄진우는 바로 회사로 돌아갔다. 소지안은 아주 신속하고 깔끔하게 회사를 정리했다. 엄진우가 부순 벽은 이미 수리되었고 회사 로비도 완벽하게 청소가 끝나 있었다. “손강호는 창고에 가뒀어. 어떻게 처리할지는 진우 씨가 결정해.” 엄진우가 오자 소지안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손강호가 창고에서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회사에 영향이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요양원으로 보내. 쉽게 죽으면 안 되지.” 엄진우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손강호가 제대로 남은 삶을 ‘즐길’ 수 있게, 엄진우는 돈을 들여서라도 그를 요양원에 보내 죽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 바로 연락해
“그래, 빠져나간 쥐새끼가 없다면 지금쯤 손씨 가문은 16세 이하의 어린애와 70세 이상의 노인을 빼고 다 시체가 되었을걸.” 엄진우는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 무자비한 수단을 쓰지 않으면 어느 날인가 상대도 같은 방식으로 그를 해치려고 할 것이다. 손강호의 안색은 그대로 굳어져 버렸고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때 엄진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남궁민희였다. 엄진우는 전화를 연결하고 스피커폰을 켰다. “상황은 어때? 여기 손씨 가문의 장손이 들을 수 있게 상세하게 말해줘.” “손씨 가문 혈통 총 173명, 노인과 아이 52명을 제외한 나머지 100여 명은 이미 처단한 상탭니다.” 남궁민희가 단호하게 말했다. 풉! 손강호는 분노와 공포가 치솟아 피를 토해냈다. “말도 안 돼! 그럴 수 없어! 제경 손씨 가문이 어떻게!” 손강호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허겁지겁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지옥에서 확인해.” 엄진우가 싸늘하게 웃었다. “미친놈! 미친 새끼야!” 손강호는 넋을 잃고 절규했다. “난 단지 네 엄마를 납치했을 뿐 해치지 않았어. 하지만 넌 우리 가문 전부를 죽여버렸어. 넌 악마야! 이 개새끼야!!” “너 같은 쓰레기를 낳은 손씨 가문도 도긴개긴이야. 손씨 가문 사람이 천 명이든 만 명이든 우리 엄마의 땀 한 방울보다 하찮다는 걸 기억해. 그리고 이건 너한테 대한 내 보복일 뿐이야. 감히 내 가족을 건드렸으면 이만한 각오는 했었어야지.” 엄진우는 손강호의 욕설도 무시하고 차갑게 말했다. 미리 후과를 생각하지 못한 손강호의 어리석음 때문에 손씨 가문은 이대로 전멸했다. “그렇다면 다 같이 죽어!” 손강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기폭 장치를 눌렀다. 사람들은 너무 놀라 하나같이 두려움에 빠져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때, 불타는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지만 엄진우는 태연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용진 말이야... 끌려가기 직전까지 왜 나랑 정면으로 맞
“그 손 놔!” 이때,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강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두 눈을 의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름답다! 너무 아름답다! 심지어 소지안보다 더 아름다운 자태를 가졌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존재하다니! “나경 씨, 여긴 왜 내려왔어!” 소지안은 너무 놀라 두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내려오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건만. “제가 어떻게 마음 놓고 숨어있어요.” 공나경의 몸은 가늘게 떨렸다.비록 마음속엔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그녀는 용감하게 나서기로 했다. 절대 소지안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좋아, 아주 좋아. 엄진우 아주 복이 많은 놈이군. 하지만 이젠 다 내 여자들이야. 용국을 떠나기 전에 이런 행운이 생기다니.” 손강호는 저도 몰래 침을 흘렸다. 그는 소지안을 놓고 다급히 공나경에게로 다가갔다. 공나경은 뒷걸음질 쳤지만 곧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하하, 아주 곱군!” 손강호는 두 팔을 벌리고 공나경에게로 달려들었다. 곧 공나경을 품에 안으려는데...쿵!회사 건물 외벽이 갑자기 무너지더니 무너진 틈 사이로 엄진우가 빠르게 다가와 손강호를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손강호는 저만치 날아가며 빨간 피를 뿜어댔다. “네가 어떻게?” 엄진우를 본 손강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긴, 엄진우가 이용진을 무너뜨린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상대는 무려 용국 궁정의 장로인 이용진으로 엄진우의 가장 강력한 적수였다. 금방 승리를 거뒀으니 제경에서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어야 하는데... “널 빨리 죽이고 싶어서 말이야.” 엄진우가 싸늘하게 말했다. 여태 손강호를 살려둔 이유는 손강호가 창해시에 있는 한 이용진은 그를 어떻게 처리할지 계속 고민하느라 손을 대지 못할 것이고 그 사이에 엄진우는 이용진을 무너뜨릴 준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용진이 무너졌으니 더는 손강호를 남겨둘 이유가 없기에 그는 빠르게 비행기를 타고 창해시로 돌아왔다. “아쉽지만 늦었어
엄진우가 탄 비행기는 곧 착륙했고 휴대폰을 켜자마자 엄혜우에게서 온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를 발견했다. 순간 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큰일이 아니면 엄혜우가 이렇게 많은 전화를 할 리 없었다. 엄혜우에게 전화를 걸려던 찰나, 엄혜우의 전화가 다시 걸려 왔다. 엄진우는 다급히 전화를 받았는데 입을 떼기도 전에 엄혜우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엄마가 납치당했어!” 순간 엄진우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졌고 주변의 공기마저 살기로 가득 찼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 엄마는 무사할 거야.” 엄진우는 바로 전화를 끊고 남궁민희에게 연락했다. 남궁민희는 아직 제경에 있었는데 아직도 침대에 나른하게 누워있었다. “제경 손씨 가문 정보 가진 거 있어?” 엄진우는 이를 악물며 물었다. 그는 하수희를 납치한 사람이 손강호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창해시에 그와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용의자는 단 한 사람, 바로 손강호였다. 더군다나 이용진이 방금 체포된 상황에서 그의 어머니가 납치되었다면 손강호 이외에는 범인이 따로 없다. “있어요!” 화가 난 엄진우의 목소리에 남궁민희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손씨 가문은 이씨 가문 라인이죠. 우리가 날려 보낸 몇천 명의 사람 중에는 손씨 가문 사람도 있었어요.” “16세 이하의 애들과 70세 이상의 노인을 제외하고 전부 처형해.” 엄진우의 얼굴은 사나운 기색으로 가득 찼다. 이것이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 엄진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북강의 지배자였고 천 리를 피로 물들인 적이 있었다. 그의 행동은 항상 그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손강호 같은 패륜아를 길러낸 가문에 무고한 사람이 있을 리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노인과 어린아이를 살려둔 것만 해도 큰 자비였다. 만약 그가 여전히 북강을 통치하던 때였다면 손씨 가문의 개조차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네, 주인님.” 남궁민희는 굳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손씨 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소지안이 걸어 나왔다. 손강호는 소지안의 미모에 놀라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전에 사진으로 본 적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욱 아름다워 감탄한 것이다. “소 대표, 참 오래 걸리네.” 손강호는 소총을 들고 소지안에게 다가갔다. “날 찾은 이유가 뭐죠?” 소지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싸늘하게 물었다. 그녀는 이런 무법자들에게 겁에 질린 모습을 보여주면 그들이 더욱 날뛸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소 대표가 한 번 맞춰보지, 그래?” 손강호는 소지안의 턱에 총구를 대고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소지안은 전혀 두려운 기색 없이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돈이 필요해요? 회사에 현금 20억이 있으니 당장 가져가도 좋아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고 신고도 안 할 테니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약속해요. 회사 계좌의 돈은 내가 당신에게 이체하려고 해도 그 돈을 가져갈 수 없어요.” 소지안이 침착하게 말했다. “소 대표 아주 대단하네.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침착할 수 있다니. 아쉽지만 내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야.” 손강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뭘 원하죠?” 소지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내가 원하는 건 바로 당신이야.” 말을 끝낸 손강호는 바로 손을 뻗어 소지안의 얼굴을 어루만지려고 했다. 하지만 소지안은 그의 손을 거칠게 밀어내며 두 눈을 부릅떴다. “내 몸에 손댄다면 당신은 이 창해시를 살아 나갈 수 없어요.” “소 대표 아주 강단 있네. 근데 그 우월함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설마 엄진우?” 손강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 진우 씨를 노리고 왔네요.” 소지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갑게 물었다. “역시 소 대표 정말 똑똑해. 어쩔 수 없어. 그 자식이 날 궁지로 몰았으니 나도 이럴 수밖에.” 손강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엄진우가 그를 궁지로 몬 건 사실이다. 창해시에서 그가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엄진우는 그를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쾅!굉음과 함께 문이 강제로 열리더니 손강호가 부하들을 데리고 집으로 쳐들어왔다. “당신들... 당신들 누구야?” 하수희는 깜짝 놀라 크게 소리쳤다. “누구냐고? 아줌마 납치하려고.” 손강호는 앞으로 세 걸음 다가와 하수희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단숨에 부숴버렸다. “잘 묶어서 끌고 가!” 손강호는 바람처럼 나타나 바람처럼 사라졌다. 엄혜우는 깜짝 놀랐다. 방금 그 사람들 도대체 누구지? 다행히 엄혜우는 침착함을 잃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바로 엄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엄진우는 비행기에 탑승 중이라 휴대폰이 꺼져 있었다. “그쪽은 잘 진행되고 있어?” 손강호가 부하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비담 컴퍼니 외벽에 이미 폭약을 설치했습니다. 터트리는 동시 건물 전체는 완전히 잿더미가 될 겁니다.” 손강호의 부하가 보고했다. “좋아, 곧 갈게.” 손강호는 그제야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빠르게 비담 컴퍼니에 도착해 손에 배낭을 든 채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 “소 대표 만나러 왔어.” 예우림은 지금 제경에 있지만 손강호는 비담 컴퍼니의 부대표인 소지안도 엄진우의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예약은 하셨을까요?” 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손강호는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예약하지 않으셨다면 먼저 예약부터 하셔야 합니다. 일단 부대표님에게 보고드린 후 전화로 시간 알려드리겠습니다.” 말을 끝낸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예약 표를 손강호에게 내밀었다. 손강호는 직원의 손을 내치며 들고 있던 배낭을 프런트 데스크에 던지며 지퍼를 확 열었다. “이걸로 예약할 수 있을까?” 배낭 안의 물건을 확인한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배낭 안에는 뇌관이 가득했다. 손강호는 배낭에서 소총을 꺼내 들더니 천장에 무차별로 사격을 퍼부었다. “다들 쪼그리고 앉아! 소리 지르는 것들은 바로 죽여버릴 거야!” 사람들이 비명을 지
이용진은 공허하고 멍한 눈빛으로 뒤로 한 걸음 휘청거리며 물러섰다. “데려가!” 검찰청 고위 책임자가 명령을 내렸다. 곧 용국 궁정의 원로였던 이용진은 증인과 증거물과 함께 경찰정으로 연행되었다. “오늘이 지나면 이씨 가문은 더는 존재하지 않아. 당신도 이젠 자유야.” 엄진우는 쓴웃음을 지은 채 한숨을 내쉬며 오동방에게 말했다. 오동방은 멍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했다. 갑작스러운 자유에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왜? 인생의 목표를 못 찾겠어?” 엄진우가 장난스럽게 묻자 오동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3년 넘는 시간 동안 모든 포부와 열정이 사라져서 앞길이 막막하네요.” “그럼 내가 일자리 구해줘?” 엄진우가 가볍게 말했다.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다면 당연히 좋죠!” 오동방은 눈빛을 반짝이며 재빨리 대답했다. “내 손에 제약회사가 하나 있는데, 원한다면 수석 연구원의 자리를 주지.” 엄진우는 단지 농담으로 던진 말인데 오동방은 진심으로 그와 함께하길 바랐다. 비록 오동방의 의술은 엄진우의 지도하에 발전한 것이지만 그가 이를 완벽히 소화하고 응용하는 것을 보면 그의 의학적 재능과 능력은 충분히 입증된 것이다. 이런 인재가 합류한다면 회사는 반드시 더욱 강해질 것임이 분명했다. “좋아요! 전 무조건 선생님을 따를게요!” 오동방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엄진우의 말을 수락했다. “예우림이 지금 안강제약 인수 절차 때문에 제경으로 갔으니 오늘 바로 가서 합류하면 돼. 절차가 끝나면 함께 창해시로 돌아와 바로 취임해도 좋아.” 엄진우가 웃으며 말했다. 오동방이 합류한 건 생각지 못한 수확이었다. “선생님은 같이 하지 않는 건가요?” 오동방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난 마무리해야 할 일이 좀 있으니 먼저 가 있어야겠어.” 엄진우는 살짝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창해시. 손강호의 부하들은 완전히 당황한 기색이다. “도련님, 이용진은 이미 몰락했습니다! 듣자니 엄진우라는 그놈이 한 짓이랍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