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가 중요한 돌파구를 맞이했다.전담반은 시청으로 돌아왔고 시청 전체 층은 전담반의 사무실로 비워두었다.벽에는 찍힌 혈흔 사진들이 주찬호에 의해 위에서 아래로 순서대로 붙여졌다. 그 혈흔 사진들을 응시하면서 주찬호는 미간을 찌푸렸다.엄진우가 말한 대로 범인이 출입한 경로는 모든 CCTV를 완벽하게 피했다.이 혈흔 사진들이 그들에게 더 많은 단서를 제공할 수는 없었다.엄진우는 의자에 앉아 전담반의 의견을 기다렸다. 그러나 기다리는 동안 오랜 침묵만이 흘렀다.그는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사실 그는 지나치게 주목받고 싶지 않았다. 지나치게 주목받는 것은 적을 만들기 마련이니까.“엄진우 씨, 뭘 알아내셨나요?”한숨 소리가 주찬호의 귀에 다소 거슬리게 들려서 마음이 좀 불편했다. 엄진우의 기술과 용기는 그를 감명시켰지만 단서의 해석에서는 아직 누구에게도 져본 적 없었다.그러나 이 혈흔이 엄진우 덕분에 발견된 것이어서 그는 감정을 눌러야 했다.“이 혈흔은 이미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엄진우는 일어나 사진 앞으로 걸어갔다.“이 사진 중 유리 외벽에서 발견된 혈흔은 범인의 발끝이 남긴 것입니다.”말하면서 그는 사진을 떼어내어 다른 쪽의 빈 공간에 붙였다.“우리는 이 발자국을 아주 쉽게 복원할 수 있어요.”엄진우는 펜을 들어 발바닥 전체를 그리기 시작했다.발끝과 혈흔이 완벽하게 일치했다.복원된 부분은 발끝과 완벽하게 통합되어 이상함이 전혀 없었다.마치 발끝 부분이 이 발바닥에서 잘라낸 것처럼 보였다.“동아시아인과 유럽인의 발바닥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이 발바닥을 관찰하면 이것이 전형적인 유럽인의 발바닥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범인의 범위를 창해시의 유럽인으로 좁힐 수 있습니다.”엄진우의 추론에 모든 사람은 충격을 받았다. 범인의 발자국을 간단히 복원했다? 그게 간단한 일이었던가? 그들의 인식으로는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는
“월리엄, 우리가 사람을 죽이고 나서 다시 이 건물에 돌아온 건 너무 대담한 짓 아니야?”침대 머리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던 여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헤이, 앨리스, 좀 편하게 생각해. 그 용국 놈들 10년이 지나도 우리를 못 찾을 거야.”월리엄이 비웃으며 대답했다.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들이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도 당당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사건이 벌어진 같은 아파트의 민박에 체크인할 줄은. 전담반이 아파트 내의 수상한 인물들을 조사할 때 두 사람은 사건 후에 체크인했고 사건 전에는 CCTV에 이들이 드나드는 모습이 찍히지 않았기에 첫 번째로 이들을 용의자에서 제외했다.“왠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이 들어.”앨리스는 연기를 내뿜으며 그녀의 표정은 연기 속에서 흐릿하게 보였다.“아마도 피에 대한 갈망이 네 욕망을 자극하고 아직 만족하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월리엄은 와인잔을 내려놓고 앨리스 쪽으로 걸어갔다.“하지만 앨리스, 우리는 피를 갈망하는 뱀파이어지만 그 저질 잡종들과는 달라. 우리는 가장 고귀하고 오래된 순혈 뱀파이어야! 이 용국 사람들의 피는 너무 저급하고 비리비리해서 우리 같은 고귀한 존재가 먹을 수 없어.”월리엄은 앨리스의 어깨를 잡고 단호하게 말했다.“네 말이 맞을지도.”앨리스는 담배를 비벼 끄고 어깨를 으쓱했다.“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네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는 있어.”월리엄의 잘생긴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떠올랐다.“우리에겐 아직 완료하지 않은 임무가 있어.”앨리스는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고작 몇 마리의 저급한 돼지들일 뿐이야. 그 신비한 조직이 왜 그들의 몸을 필요로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야 뭐 오늘 밤 잠깐 시간 내서 그들을 모두 죽이면 돼.”월리엄은 허리띠를 풀며 히죽거렸다.“이제 우리 마음껏 즐기자.”그는 웃으며 말했다.앨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표정하게 옷을 벗었다.월리엄은 그녀를 덮쳤지만 앨리스는 끝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힘이
월리엄이 창문을 열었다.밑에 서 있는 집행관을 보자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비록 이 아파트는 이미 봉쇄된 지 오래였지만 그동안은 출입구만 봉쇄된 상태였다.그런데 지금 월리엄이 서 있는 창문 아래쪽 벽에는 출입구가 없었고 집행관이 서 있는 자리가 바로 그가 오르내리던 지점이었다.“앨리스, 뭔가 이상해.”월리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앨리스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알몸인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창가로 달려갔다.곧 그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아무리 10년을 줘도 이 멍청한 용국 사람들은 우리가 어떻게 범죄를 저질렀는지 절대 알 수 없을 거라며?”앨리스는 월리엄을 노려보며 물었다.“이건...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야. 물론 우리가 잡힌다고 해도 그들이 우리에게 어쩌지도 못하겠지만. 귀찮은 일은 피하는 게 좋겠지. 그러니 우선 여기서 벗어나자.”월리엄은 코를 만지며 약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지금 이 건물은 360도 빈틈없는 감시 상태야. 그런데 어떻게 나가?”앨리스는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그 말을 들은 월리엄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우린 고귀한 뱀파이어잖아. 설마 네가 그 멍청한 용국 사람들한테 동화된 건 아니겠지? 당연히 뚫고 나가야지!”앨리스는 곧 옷을 입고 월리엄과 함께 방을 나섰다.두 사람은 캐리어를 끌며 빠르게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죄송한데요. 지금 건물은 봉쇄 중이라 나가실 수 없습니다.”시청에 들어온 지 1년도 안 된 집행관 조이현이 그들을 가로막으며 경계하는 눈빛을 보였다.“우리 급한 일이 있어서 꼭 나가야 해요.”앨리스는 월리엄의 손을 잡고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오만한 월리엄과는 달리 앨리스는 여전히 상당히 신중했다.가능하면 큰 소동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고 불필요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죄송합니다. 특수 상황이므로 지금은 아무도 출입할 수 없습니다.”조이현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우린 외국인이에요. 당신들에게 우리를 억류할 권한은 없어요!”앨리스는 미간을 찌푸
총성이 울리자 아파트 건물 안팎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모든 집행원이 주목했다. 내부 통신 채널은 쉴 새 없이 울렸고 모든 집행원은 총성이 들린 방향으로 달려갔다.엘리베이터는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고 그와 동시에 전담반도 아파트로 향하고 있었다.“뭐라고? 범인이 움직였다고? 무조건 막아야 해! 우리 곧 도착할 거야.”주찬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그는 범인이 이렇게 자진해서 모습을 드러내고 대담하게 행동에 나설 줄은 꿈에도 몰랐다.이 말을 듣고 엄진우는 문손잡이를 당겼다. 그러나 고속으로 달리는 차 문이 자동 잠금 되어 있었기에 열리지 않았다.“뭐 하려는 거요?”주찬호는 놀라서 물었다. 차는 현재 시속 90km 이상으로 달리고 있었는데 이 속도에서 뛰어내린다면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하지만 엄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얘기를 나눌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쾅!엄진우는 힘을 주어 문을 밀어내더니 차 문을 뜯어냈다. 운전 중이던 집행원은 반사적으로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뒤를 돌아보니 엄진우는 이미 차에서 뛰어내렸다.“엄진우!”주찬호는 놀라서 크게 외쳤다.그는 이를 꽉 깨문 채 이 끔찍한 장면을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했다.그러나 엄진우는 깃털처럼 가볍게 착지했고 발끝으로 바닥을 살짝 디딘 후 마치 표범처럼 빠르게 뛰어갔다. 곧 몇 번의 도약만으로 주찬호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이... 이게...”차에 있던 모든 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할 말을 잃었다.주찬호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엄진우는 전력을 다해 속도를 내며 아파트로 향했다.아파트 안.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고 문이 천천히 열렸다.“손들어! 너희는 이미 포위됐다!”문밖에서는 수십 명의 집행원이 권총을 들고 크게 외쳤다.월리엄은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엘리스와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당장 멈춰! 그렇지 않으면 쏠 것이다!”집행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월리엄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빵!한 집행원이
엄진우는 23층에 도착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의 눈앞에는 바닥에 흐르는 핏물과 핏속에 쓰러져 있는 조이현이 보였다.조이현의 가슴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고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엄진우는 한숨을 내쉬었다.이 정도 상황에서는 그가 무쌍의 의술을 가지고 있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그는 신이 아니어서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능력은 없다.엄진우는 조심스럽게 조이현의 눈을 감겨주었다.아래층에서는 주찬호와 그의 팀이 막 도착했다.아파트로 들어온 그들은 눈앞의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바닥은 피와 탄피로 뒤덮여 있었고 수십 명의 집행원들이 쓰러져 있었다.“빨리! 구급차 불러.”잠시 후 주찬호는 꿈에서 깨어난 듯 소리쳤다.“우리는... 우리는 괜찮아요.”한 집행원이 힘없이 말했다.주찬호가 그를 바라보니 그의 가슴에는 총알로 인한 구멍이 있었다.“지금은 참을 때가 아니야. 가슴에 총알이 박혔잖아.”주찬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단호하게 꾸짖었다.“팀장님, 저희 진짜 괜찮아요.””맞아요. 아까 그 엄진우라는 청년이 우리 몸에서 총알을 꺼내주고 지혈도 해줬어요.””보세요. 아까 심장에 총알이 박혔는데도 지금 팀장님이랑 이렇게 얘기하고 있잖아요. 조금만 있으면 다시 팔팔해질 거예요.”집행원들은 저마다 떠들며 설명했다.주찬호는 입을 벌렸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이건 무슨 신화 같은 소리야?총알이 심장에 박혔는데도 살렸다고?게다가 여기는 수술실도 아니고 그런 전문 장비도 없을 텐데.도대체 엄진우가 못하는 게 뭐지?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범인은 두 명뿐이라며? 그리고 엄진우는 어디 있어?”주찬호는 깊은숨을 들이쉬고 나서야 마음속의 충격을 억눌렀다.“조이현은 어디 있어?”이때 주변을 둘러보던 조연설은 조이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다급히 물었다.이 말을 듣고 모두가 침묵했다.그들의 반응을 보자 조연설은 마음속에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딩.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엄진우가 조이현의 시신을 안고 나왔다
조이현은 영안실로 옮겨졌다.다친 집행원들도 병원으로 실려 갔지만 그들은 자기의 부상이 별일 아니라며 계속해서 현장에 남아 범인을 직접 잡겠다고 고집을 부렸다.비록 그들이 어떤 괴물과 싸우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지만 조이현의 죽음은 그들 마음속에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그 분노는 그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버리게 했고 심지어 생사도 개의치 않게 만들었다.전담반은 감시 카메라 영상을 가지고 집행청으로 돌아갔다.월리엄이 날개를 펼치는 장면을 본 모든 사람은 눈을 크게 뜨며 경악했다.“이... 이게 대체 뭐야?”주찬호는 할 말을 잃었다.“이건 혈족입니다. 쉽게 말해서 영화 속의 뱀파이어 같은 거지요.”엄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물론 그의 말투는 주찬호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조이현의 죽음 역시 그의 마음에 분노를 일으켰다.“혈족? 엄진우 씨는 어떻게 그걸 알았어요?”주찬호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물었다.“이 사건은 당신들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에요. 당신들이 처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내가 찾아낼 겁니다.”엄진우는 그의 질문을 대답하지 않고 그냥 돌아서서 떠났다.“잠깐만요! 우리가 처리 못 하는 걸 당신이 처리할 수 있어요? 엄진우 씨는 이미 충분히 했어요. 엄진우 씨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지금도 범인을 찾지 못했을 거예요. 오늘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나왔을지도 모르고요. 이 일은 내가 상부에 보고할 테니까 상부에서 처리할 거예요. 엄진우 씨는 돌아가 푹 쉬세요. 더 이상의 피해자는 보고 싶지 않아요.”주찬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엄진우는 미소를 지었다.“걱정 마세요. 오늘 밤 그 두 마리 커다란 나방의 사체를 가져올 테니까요.”말을 마친 엄진우는 창문을 열고 곧 하늘로 떠올랐다.모두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엄진우는 창해시의 하늘 위로 올라갔다.그는 마치 하늘 위에서 온 신처럼 아래의 모든 생명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엄청난 진기가 그의 몸에서 폭발하듯 퍼져나갔다.그 진기는 창해시의 구석구석을
“조이현의 심장은 어디 있어?”엄진우는 월리엄을 바라보며 차갑게 물었다.“조이현? 그 멍청하게 혼자서 나를 막으려고 했던 그놈 말이야? 심장은 이미 혈족 본부로 보내졌어. 그놈 심장은 신선하고 활력이 넘쳐서 우리 최고의 실험 재료가 될 거야.”월리엄은 입가에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사실 조이현의 심장은 이미 윌리엄이 완전히 으스러뜨렸다.그는 단지 엄진우를 자극하려고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월리엄은 엄진우의 힘이 그들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그를 격분하게 만들어 이성을 잃게 한다면 그들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엄진우는 눈을 가늘게 뜨며 강렬한 살기를 드러냈다.분명 월리엄은 엄진우를 성공적으로 화나게 만들었다.하지만 월리엄은 알지 못했다. 압도적인 실력 차이 앞에서 적을 격분시키는 것은 단지 더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할 뿐이라는 것을.월리엄은 더더욱 몰랐다. 그의 말 한마디가 혈족 전체에 어떤 재앙을 불러올지 말이다.쾅!엄진우는 최대 속도를 발휘하며 거의 순간 이동하듯이 월리엄 앞에 나타났다.월리엄이 반응하기도 전에 엄진우의 주먹이 그를 세차게 날려버렸다.앨리스의 얼굴은 순간 창백해졌고 그녀는 급히 날개를 펼치며 후퇴했다.그러나 엄진우의 속도는 그녀보다 훨씬 빨랐다.월리엄의 몸이 아직 땅에 떨어지기 전에 엄진우는 이미 앨리스를 따라잡았다. 한 손으로 그녀의 새하얀 목을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날개를 잡았다.촤악!피가 쏟아져 나왔다.엄진우가 앨리스의 한쪽 날개를 찢자 앨리스는 비명을 지르며 하늘에서 떨어졌다.이때 월리엄의 몸도 땅에 떨어졌다.엄진우는 다시 한번 하늘로 솟구쳐 월리엄의 척추에 양 주먹을 내리쳤다.빠각빠각!월리엄의 척추는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고 척추에 연결된 날개도 힘없이 늘어져 더는 날 수 없게 되었다.순간 거만했던 두 순혈 혈족은 땅에 힘없이 쓰러졌고 그들의 눈에는 절망과 공포만이 가득했다.엄진우는 그들 앞에 서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혈족 본부에 가야겠어
이때, 주찬호가 초대한 특이 사건 처리청의 인원들은 이미 창해시에 도착했다.주찬호는 전담반 전원과 함께 공항에서 그들을 맞이했다.특이 사건 처리청은 용국의 막 설립한 새로운 부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권력과 자율권을 보유하고 있다.출구통로에서 몇 명의 남녀가 나왔다.가장 앞서 걷는 것은 중년 남자였다.“장 팀장님, 안녕하세요.”주찬호는 빠르게 다가가며 두 손을 내밀었다.장준식은 이 팀의 대장으로 다소 냉담하게 주찬호와 악수했다.“잡담은 줄이고 바로 사무실로 가서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해 주세요.”장준식은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성격임을 알 수 있었다.“이쪽으로 오세요.”주찬호는 그들을 코스터 버스에 태우고 곧 집행청으로 도착했다.“범인 두 명은 혈족이라면서요? 범인을 찾아낸 그 사람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사람에게 상황을 좀 물어봐야겠어요.”집행청에 가는 도중 장준식이 물었다.주찬호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장 팀장님, 그분은 범인을 추적하러 갔어요. 오늘 밤 안에 범인들을 처치하겠다고 했어요.”그 말을 듣고 장준식의 안색이 변했다.“무모한 짓이군요. 범인들은 혈족이라고요. 여러분의 설명으로 봤을 때 순혈 혈족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순혈 혈족이라면 우리 팀도 조심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런데 혼자서 찾아간다니, 이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습니다. 지금 바로 전화해서 돌아오게 하세요.”장준식이 무거운 어조로 지시했다.“전화할 필요 없어요. 이미 돌아왔으니까.”그때 엄진우의 목소리가 들렸다.모두 일제히 고개를 돌렸고 엄진우는 두 손으로 축 처진 월리엄과 앨리스를 들고 있었다.모두가 깜짝 놀랐다. “두 범인은 이미 처치했어요.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엄진우는 월리엄과 앨리스를 바닥에 내던지며 담담하게 말했다.장준식은 미간을 찌푸렸다.월리엄과 앨리스의 외모로 봤을 때 그들은 명백히 순혈 혈족이었다.순혈 혈족의 실력은 일반 혈족보다 훨씬 강력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진우는 그들을 개처럼 처치한 것처럼 보였다.
남자는 여전히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이때, 서관림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남자는 순간 멍해지더니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엄진우를 힐끗 쳐다보았다. 설마... 진짜일 리가 없겠지? 전화를 받자마자 쏟아지는 것은 거친 욕설이었다. 한편 제경에는 피를 동반한 권력 변화가 대대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보수파는 이용진을 잡은 후 야망이 커져 이 기회에 급진파의 장로들을 모두 제거하려 했다. 급진파의 장로들은 이용진 사건에서 이미 한발 물러섰지만 보수파의 끝없는 욕심을 보고 더는 참기 어려웠다. 양측은 격렬한 충돌을 벌이다 큰 전쟁으로 번졌다. 결국 제경 전역을 봉쇄하고 계엄령을 내렸지만 양측의 교전으로 제경 내부는 화약 냄새가 자욱했다. 하지만 이 충돌은 전 국토로 확산되어 전국적인 전란의 위기를 몰고 왔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대장로가 깨어났다. 몇 년 전, 대장로는 북강 명왕을 해임한 후 깊은 잠에 빠졌었다. 그러다 오늘 드디어 깨어난 것이다. 혼란스러운 제경과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두 파벌을 본 그는 상황이 되돌릴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반쪽짜리 명왕령을 당장 엄진우에게 가져가고 제경으로 불러들여라! 그때의 일은 내가 친히 설명할 것이다.” 대장로는 수십 년을 함께한 심복을 불러 명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진우는 반쪽짜리 명왕령을 손에 쥐게 되었다. 수년 전 그날, 엄진우는 명왕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이 반쪽 명왕령을 회수당했다. 이 순간, 명왕령은 드디어 온전한 하나가 되었고 이는 명왕이 다시 자리에 올랐음을 알리는 것이다. 제경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알게 된 엄진우는 아무 말 없이 갑옷을 입고 무장했다. 전투의 기운은 살벌하게 하늘을 찔러댔다. 그는 급히 북강으로 향했다. 북강 잠룡곡. 그곳에는 50만 북강 군대가 수년간 매복해 있었다. “북강군이여, 명령을 받들라!” 긴 외침과 함께 전쟁의 신, 북강 명왕의 모습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50만 북강군은 흥분에 휩싸여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시암은 용국의 동남쪽에 위치한 작은 나라인데 용국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시암의 많은 재벌은 지난 100~200년 동안 용국에서 이민으로 건너간 사람들이다. 현재 시암의 갑부 역시 그중 하나였다. “아버지 성이 서씨야?” 엄진우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뭐 좀 아는구나? 얼마면 되겠어? 가격부터 말해.” 남자는 손을 휘저으며 수표를 꺼냈고 엄진우의 얼굴은 순간 싸늘해졌다. “네 아버지 그까짓 재산으론 내 엉덩이를 닦기도 부족해. 그런데 어디서 감히 큰소리야? 당장 꺼져!” 엄진우는 이 재벌 2세가 그저 방탕한 자식일 뿐, 실지 가문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인간이란 걸 바로 알아챘다. 단지 남을 괴롭히고 돈으로 해결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저렴한 사람이니 더는 상대할 필요도 없었다.남자는 멍하니 엄진우를 쳐다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신 미쳤어? 우리 아버지 시암 갑부라고! 그런데 그까짓 재산이라고?”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맞아! 네 아버지 말이야! 서씨 가문 자산을 합쳐도 200조를 넘지 못해!” 엄진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아, 이 새끼 허세 장난 아니네? 너 200조가 어떤 개념인 줄 알기나 해? 현금으로 바꾸면 너 같은 건 몇천 번도 깔아 죽일 수 있어.”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됐고... 애송이, 당장 여기서 꺼지지 않는다면 시암에 있는 네 아버지가 당장 날아와 널 혼내줄 거야.” 엄진우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남자를 쫓아냈다. “이 새끼 봐라? 감히 누구 앞에서 잘난 척이야? 너 돈에 깔려 죽고 싶어?” “말귀 못 알아듣는 놈이군, 당장 네 아버지를 불러줄게.” 엄진우는 휴대폰을 꺼내 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서관림 알죠?” 엄진우가 물었다. “선생님, 서관림은 무슨 일로 찾으시는지요? 당장 연락드리라 알리겠습니다.” 전화기 너머의 사람은 다급하게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서관림의 아들이
그녀는 아들이 대체 밖에서 무슨 짓을 했길래 이런 원수를 사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고 아들이 정말 수많은 사람을 죽였는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아들이 그 수단들을 어디서 배웠는지, 긴 세월 동안 이렇게 숨 막히는 날들을 보냈는지 너무 걱정되었다. “집에 가서 얘기하자.” 엄진우는 하수희를 번쩍 안아 들고 회사를 떠났다. 가는 길에 엄진우는 가볍게 하수희의 머리를 쳤고, 곧 하수희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엄진우는 그녀의 일부 기억을 지워버렸다. 집에 돌아와 한참이 지나자 하수희도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진우야, 어쩐 일로 갑자기 돌아왔어?” 엄진우를 본 하수희는 반가움에 어쩔 줄 몰랐다. “나 일 때문에 먼 길 떠나기 전에 집에 좀 들러보려고. 근데 엄마는 왜 소파에서 자? 방에서 편히 자지.” 하수희는 몸을 일으켰다. 이상하다? 몸이 왜 이렇게 뻐근하지? “네 동생이랑 전화하다가 잠들었나 봐. 참 이상하네. 어떻게 말하다 말고 잠들었지?” 하수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손강호에게 납치된 기억은 전부 엄진우에 의해 지워졌다. 하수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젠 예전 같지가 않아. 좀 쉬고 있어. 엄마가 곧 밥 해줄게.” 말을 마친 하수희는 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엄진우는 바로 회사로 돌아갔다. 소지안은 아주 신속하고 깔끔하게 회사를 정리했다. 엄진우가 부순 벽은 이미 수리되었고 회사 로비도 완벽하게 청소가 끝나 있었다. “손강호는 창고에 가뒀어. 어떻게 처리할지는 진우 씨가 결정해.” 엄진우가 오자 소지안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손강호가 창고에서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회사에 영향이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요양원으로 보내. 쉽게 죽으면 안 되지.” 엄진우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손강호가 제대로 남은 삶을 ‘즐길’ 수 있게, 엄진우는 돈을 들여서라도 그를 요양원에 보내 죽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 바로 연락해
“그래, 빠져나간 쥐새끼가 없다면 지금쯤 손씨 가문은 16세 이하의 어린애와 70세 이상의 노인을 빼고 다 시체가 되었을걸.” 엄진우는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 무자비한 수단을 쓰지 않으면 어느 날인가 상대도 같은 방식으로 그를 해치려고 할 것이다. 손강호의 안색은 그대로 굳어져 버렸고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때 엄진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남궁민희였다. 엄진우는 전화를 연결하고 스피커폰을 켰다. “상황은 어때? 여기 손씨 가문의 장손이 들을 수 있게 상세하게 말해줘.” “손씨 가문 혈통 총 173명, 노인과 아이 52명을 제외한 나머지 100여 명은 이미 처단한 상탭니다.” 남궁민희가 단호하게 말했다. 풉! 손강호는 분노와 공포가 치솟아 피를 토해냈다. “말도 안 돼! 그럴 수 없어! 제경 손씨 가문이 어떻게!” 손강호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허겁지겁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지옥에서 확인해.” 엄진우가 싸늘하게 웃었다. “미친놈! 미친 새끼야!” 손강호는 넋을 잃고 절규했다. “난 단지 네 엄마를 납치했을 뿐 해치지 않았어. 하지만 넌 우리 가문 전부를 죽여버렸어. 넌 악마야! 이 개새끼야!!” “너 같은 쓰레기를 낳은 손씨 가문도 도긴개긴이야. 손씨 가문 사람이 천 명이든 만 명이든 우리 엄마의 땀 한 방울보다 하찮다는 걸 기억해. 그리고 이건 너한테 대한 내 보복일 뿐이야. 감히 내 가족을 건드렸으면 이만한 각오는 했었어야지.” 엄진우는 손강호의 욕설도 무시하고 차갑게 말했다. 미리 후과를 생각하지 못한 손강호의 어리석음 때문에 손씨 가문은 이대로 전멸했다. “그렇다면 다 같이 죽어!” 손강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기폭 장치를 눌렀다. 사람들은 너무 놀라 하나같이 두려움에 빠져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때, 불타는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지만 엄진우는 태연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용진 말이야... 끌려가기 직전까지 왜 나랑 정면으로 맞
“그 손 놔!” 이때,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강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두 눈을 의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름답다! 너무 아름답다! 심지어 소지안보다 더 아름다운 자태를 가졌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존재하다니! “나경 씨, 여긴 왜 내려왔어!” 소지안은 너무 놀라 두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내려오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건만. “제가 어떻게 마음 놓고 숨어있어요.” 공나경의 몸은 가늘게 떨렸다.비록 마음속엔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그녀는 용감하게 나서기로 했다. 절대 소지안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좋아, 아주 좋아. 엄진우 아주 복이 많은 놈이군. 하지만 이젠 다 내 여자들이야. 용국을 떠나기 전에 이런 행운이 생기다니.” 손강호는 저도 몰래 침을 흘렸다. 그는 소지안을 놓고 다급히 공나경에게로 다가갔다. 공나경은 뒷걸음질 쳤지만 곧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하하, 아주 곱군!” 손강호는 두 팔을 벌리고 공나경에게로 달려들었다. 곧 공나경을 품에 안으려는데...쿵!회사 건물 외벽이 갑자기 무너지더니 무너진 틈 사이로 엄진우가 빠르게 다가와 손강호를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손강호는 저만치 날아가며 빨간 피를 뿜어댔다. “네가 어떻게?” 엄진우를 본 손강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긴, 엄진우가 이용진을 무너뜨린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상대는 무려 용국 궁정의 장로인 이용진으로 엄진우의 가장 강력한 적수였다. 금방 승리를 거뒀으니 제경에서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어야 하는데... “널 빨리 죽이고 싶어서 말이야.” 엄진우가 싸늘하게 말했다. 여태 손강호를 살려둔 이유는 손강호가 창해시에 있는 한 이용진은 그를 어떻게 처리할지 계속 고민하느라 손을 대지 못할 것이고 그 사이에 엄진우는 이용진을 무너뜨릴 준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용진이 무너졌으니 더는 손강호를 남겨둘 이유가 없기에 그는 빠르게 비행기를 타고 창해시로 돌아왔다. “아쉽지만 늦었어
엄진우가 탄 비행기는 곧 착륙했고 휴대폰을 켜자마자 엄혜우에게서 온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를 발견했다. 순간 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큰일이 아니면 엄혜우가 이렇게 많은 전화를 할 리 없었다. 엄혜우에게 전화를 걸려던 찰나, 엄혜우의 전화가 다시 걸려 왔다. 엄진우는 다급히 전화를 받았는데 입을 떼기도 전에 엄혜우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엄마가 납치당했어!” 순간 엄진우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졌고 주변의 공기마저 살기로 가득 찼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 엄마는 무사할 거야.” 엄진우는 바로 전화를 끊고 남궁민희에게 연락했다. 남궁민희는 아직 제경에 있었는데 아직도 침대에 나른하게 누워있었다. “제경 손씨 가문 정보 가진 거 있어?” 엄진우는 이를 악물며 물었다. 그는 하수희를 납치한 사람이 손강호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창해시에 그와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용의자는 단 한 사람, 바로 손강호였다. 더군다나 이용진이 방금 체포된 상황에서 그의 어머니가 납치되었다면 손강호 이외에는 범인이 따로 없다. “있어요!” 화가 난 엄진우의 목소리에 남궁민희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손씨 가문은 이씨 가문 라인이죠. 우리가 날려 보낸 몇천 명의 사람 중에는 손씨 가문 사람도 있었어요.” “16세 이하의 애들과 70세 이상의 노인을 제외하고 전부 처형해.” 엄진우의 얼굴은 사나운 기색으로 가득 찼다. 이것이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 엄진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북강의 지배자였고 천 리를 피로 물들인 적이 있었다. 그의 행동은 항상 그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손강호 같은 패륜아를 길러낸 가문에 무고한 사람이 있을 리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노인과 어린아이를 살려둔 것만 해도 큰 자비였다. 만약 그가 여전히 북강을 통치하던 때였다면 손씨 가문의 개조차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네, 주인님.” 남궁민희는 굳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손씨 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소지안이 걸어 나왔다. 손강호는 소지안의 미모에 놀라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전에 사진으로 본 적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욱 아름다워 감탄한 것이다. “소 대표, 참 오래 걸리네.” 손강호는 소총을 들고 소지안에게 다가갔다. “날 찾은 이유가 뭐죠?” 소지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싸늘하게 물었다. 그녀는 이런 무법자들에게 겁에 질린 모습을 보여주면 그들이 더욱 날뛸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소 대표가 한 번 맞춰보지, 그래?” 손강호는 소지안의 턱에 총구를 대고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소지안은 전혀 두려운 기색 없이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돈이 필요해요? 회사에 현금 20억이 있으니 당장 가져가도 좋아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고 신고도 안 할 테니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약속해요. 회사 계좌의 돈은 내가 당신에게 이체하려고 해도 그 돈을 가져갈 수 없어요.” 소지안이 침착하게 말했다. “소 대표 아주 대단하네.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침착할 수 있다니. 아쉽지만 내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야.” 손강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뭘 원하죠?” 소지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내가 원하는 건 바로 당신이야.” 말을 끝낸 손강호는 바로 손을 뻗어 소지안의 얼굴을 어루만지려고 했다. 하지만 소지안은 그의 손을 거칠게 밀어내며 두 눈을 부릅떴다. “내 몸에 손댄다면 당신은 이 창해시를 살아 나갈 수 없어요.” “소 대표 아주 강단 있네. 근데 그 우월함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설마 엄진우?” 손강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 진우 씨를 노리고 왔네요.” 소지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갑게 물었다. “역시 소 대표 정말 똑똑해. 어쩔 수 없어. 그 자식이 날 궁지로 몰았으니 나도 이럴 수밖에.” 손강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엄진우가 그를 궁지로 몬 건 사실이다. 창해시에서 그가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엄진우는 그를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쾅!굉음과 함께 문이 강제로 열리더니 손강호가 부하들을 데리고 집으로 쳐들어왔다. “당신들... 당신들 누구야?” 하수희는 깜짝 놀라 크게 소리쳤다. “누구냐고? 아줌마 납치하려고.” 손강호는 앞으로 세 걸음 다가와 하수희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단숨에 부숴버렸다. “잘 묶어서 끌고 가!” 손강호는 바람처럼 나타나 바람처럼 사라졌다. 엄혜우는 깜짝 놀랐다. 방금 그 사람들 도대체 누구지? 다행히 엄혜우는 침착함을 잃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바로 엄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엄진우는 비행기에 탑승 중이라 휴대폰이 꺼져 있었다. “그쪽은 잘 진행되고 있어?” 손강호가 부하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비담 컴퍼니 외벽에 이미 폭약을 설치했습니다. 터트리는 동시 건물 전체는 완전히 잿더미가 될 겁니다.” 손강호의 부하가 보고했다. “좋아, 곧 갈게.” 손강호는 그제야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빠르게 비담 컴퍼니에 도착해 손에 배낭을 든 채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 “소 대표 만나러 왔어.” 예우림은 지금 제경에 있지만 손강호는 비담 컴퍼니의 부대표인 소지안도 엄진우의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예약은 하셨을까요?” 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손강호는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예약하지 않으셨다면 먼저 예약부터 하셔야 합니다. 일단 부대표님에게 보고드린 후 전화로 시간 알려드리겠습니다.” 말을 끝낸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예약 표를 손강호에게 내밀었다. 손강호는 직원의 손을 내치며 들고 있던 배낭을 프런트 데스크에 던지며 지퍼를 확 열었다. “이걸로 예약할 수 있을까?” 배낭 안의 물건을 확인한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배낭 안에는 뇌관이 가득했다. 손강호는 배낭에서 소총을 꺼내 들더니 천장에 무차별로 사격을 퍼부었다. “다들 쪼그리고 앉아! 소리 지르는 것들은 바로 죽여버릴 거야!” 사람들이 비명을 지
이용진은 공허하고 멍한 눈빛으로 뒤로 한 걸음 휘청거리며 물러섰다. “데려가!” 검찰청 고위 책임자가 명령을 내렸다. 곧 용국 궁정의 원로였던 이용진은 증인과 증거물과 함께 경찰정으로 연행되었다. “오늘이 지나면 이씨 가문은 더는 존재하지 않아. 당신도 이젠 자유야.” 엄진우는 쓴웃음을 지은 채 한숨을 내쉬며 오동방에게 말했다. 오동방은 멍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했다. 갑작스러운 자유에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왜? 인생의 목표를 못 찾겠어?” 엄진우가 장난스럽게 묻자 오동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3년 넘는 시간 동안 모든 포부와 열정이 사라져서 앞길이 막막하네요.” “그럼 내가 일자리 구해줘?” 엄진우가 가볍게 말했다.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다면 당연히 좋죠!” 오동방은 눈빛을 반짝이며 재빨리 대답했다. “내 손에 제약회사가 하나 있는데, 원한다면 수석 연구원의 자리를 주지.” 엄진우는 단지 농담으로 던진 말인데 오동방은 진심으로 그와 함께하길 바랐다. 비록 오동방의 의술은 엄진우의 지도하에 발전한 것이지만 그가 이를 완벽히 소화하고 응용하는 것을 보면 그의 의학적 재능과 능력은 충분히 입증된 것이다. 이런 인재가 합류한다면 회사는 반드시 더욱 강해질 것임이 분명했다. “좋아요! 전 무조건 선생님을 따를게요!” 오동방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엄진우의 말을 수락했다. “예우림이 지금 안강제약 인수 절차 때문에 제경으로 갔으니 오늘 바로 가서 합류하면 돼. 절차가 끝나면 함께 창해시로 돌아와 바로 취임해도 좋아.” 엄진우가 웃으며 말했다. 오동방이 합류한 건 생각지 못한 수확이었다. “선생님은 같이 하지 않는 건가요?” 오동방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난 마무리해야 할 일이 좀 있으니 먼저 가 있어야겠어.” 엄진우는 살짝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창해시. 손강호의 부하들은 완전히 당황한 기색이다. “도련님, 이용진은 이미 몰락했습니다! 듣자니 엄진우라는 그놈이 한 짓이랍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