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는 이미 밟았으니 저 여자는 보스의 물건이 되는 거지.” 마정미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본 듯 말했고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운천명이 가격을 외친 뒤 현장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아무리 배짱이 큰 놈이라고 해도 감히 홍의회의 보스인 운천명에게 맞서지는 못할 것이다. 고다겸도 물론 잘 알고 있었다. 홍의회에서 운천명의 말은 마치 성지와도 같다는 것을. 하여 그녀는 빠르게 진행을 이어갔다. “1조 원 한 번! 1조 원 두 번! 1조 원 세... 응?” 고다겸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옆에 우람한 검은 그림자가 불쑥 나타나더니 곧장 철장으로 걸어갔다. “엄진우 씨!”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고 모용준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체 언제 저기까지 이동한 거지? 왜 난 하나도 몰랐지? 엄진우는 몸을 숙이고 한쪽 무릎을 꿇더니 손을 내밀어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저 사람들이 많이 괴롭혔어? 걱정마. 내가 왔으니까 곧 괜찮아 질 거야.” 엄진우는 예우림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예우림은 그저 공허한 두 눈만 크게 뜰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순간 엄진우는 심장이 마치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늘 도도하던 예우림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가? 대체 누가 이렇게 만든 거야! 억눌려 있던 분노가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듯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야, 이 새끼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감히 우리 보스의 물건에 손을 대다니! 손가락 잘리고 싶어?” 홍의회 멤버들은 경악에서 깨어나 모두 발끈하며 소리를 질렀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운천명의 눈동자에는 음흉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는 1조 원 이상을 쓴 엄진우가 더는 말썽을 피우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었다. 그는 앞으로 걸어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기요. 봉관하피는 선물로 드릴게요. 돈은 필요 없으니까 물건 가지고 떠나세요. 홍의회는 그쪽을 곤란하게 하지 않을 겁니다. 지금 나가면 살아
험한 꼴을 많이 봐왔다고 자부했던 고다겸도 너무 놀라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꺅! 엄진우 씨,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죠?” 그러자 엄진우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쪽을 겨냥하는 건 아니에요. 내 상대는 홍의회죠. 아, 그리고 난 홍의회에 한 푼도 줄 생각이 없어. 그 소행성도 봉관하피도, 당신들이 나한테 넘기지 않는다면 내가 다 빼앗아 버릴 거야.” 엄진우가 다섯 손가락을 쩍 벌리자 철장이 그대로 열려졌다. 다행히 예우림은 기가 허약하고 기억이 몽롱한 외에 다른 외상은 없어 보였다. 엄진우는 그녀를 품에 안고 훌쩍 뛰어올라 바로 100미터 떨어진 위치로 이동했다. 엄진우의 무례한 행동에 홍의회 멤버들은 하나같이 화가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 뭐? 한 푼도 줄 생각이 없다고? 넘기지 않으면 빼앗겠다고? 오만하고 거만한 놈! “보스, 저 새끼 정체 알아냈어요. 저 새끼 엄씨 가문 소주가 아니라 고작 창해시 사대 고대 무가 엄씨 가문에서 버려진 자식일 뿐이에요.” 이때 마정미가 다급히 달려와 보고를 올렸다. “하지만 얼마 전 엄씨 가문 후손의 백일상에서 전체 엄씨 가문의 고수들을 이겼고 나중에는 창해시의 모든 고대무가가 저놈에게 굴복했다고 해요.” 노현무는 씩씩거리며 말했다. “명문가 도련님은 개뿔, 도처에서 사람을 무는 미친개일 뿐입니다.” 운천명의 안색에는 이미 먹구름이 가득 끼었다. “넌 죽을 거야.” 그의 손짓 하나에 모든 홍의회의 멤버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엄진우를 에워쌌다. “보스, 제발 화를 거두어주세요.” 모용준은 다급히 엄진우의 앞을 가로막고 무릎을 꿇었다. “엄진우 씨는 제가 데리고 들어왔으니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차라리 절 죽여주세요.” 그러자 운천명은 흉악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 목숨에 가치가 있어? 그리고 왜 내가 널 죽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거지?” 늑대를 데리고 들어왔으니 모용준도 반드시 죽인다! 하지만 이때, 멀지 않은 곳에 있던 고다겸이 불쑥 입을
늦은 밤의 성안은 유난히 시끄러웠다. 소씨 가문. 소지안은 마지못해 소씨 저택으로 돌아와 미간을 찌푸린 채 소학정을 쳐다봤다. “할아버지! 왜 또 멀리서 저 부르신 거죠? 지금 비담이 얼마나 중요한 시긴지 아시잖아요!” 불야성 프로젝트가 끝난 후, 소지안은 다시 라이브 커머스로 발전 중심을 옮겼다. 마침 나라에서도 전자상거래 라이브에 대한 지원 정책이 있었기에 비담은 빠른 속도로 매출을 올려 어느새 전체 강남성 30%의 시장을 점유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는 말이 있듯이 소지안은 이 기회에 시장을 성 밖으로 확대할 계획이었다. “설마 또 맞선 때문에 저 부르신 거라면 얘기 꺼내지도 마세요!” 소지안은 잔뜩 불쾌한 말투로 쏘아붙였다. 소학정은 의자에 앉아 한 손으로 차를 내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담배를 들고 태연자약하게 입을 열었다. “지안아. 상황이 이 지경까지 됐는데 넌 정말 모르는 거니, 아니면 모른 척하는 거니? 성안에 큰 소동이 일어났다는 걸 몰라?” “소동이요? 무슨 소동이요?” 소지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홍의회라고 들어봤어?” 소학정은 소지안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그럼요, 알죠. 명문가 자제들로 구성된 신비로운 조직 아닌가요? 9대 수진 가문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어요.” “이미 역사가 되어버렸어.” 소학정은 왠지 두려움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하룻밤 사이에 홍의회는 한 남자로 인해 멸망했어.” “남자요? 누구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있었어요?” “네가 좋아하는 남자, 몰라?” 소학정은 두 눈을 번쩍 뜨고 소지안을 노려보며 말했다. 순간 소지안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설마...” 한 시간 전, 홍의회 경매장. “엄진우!!” 찢어진 옷에 만신창이가 된 운천명은 바닥에 엎드린 채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이는 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는 감정이다. 그의 앞에는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4백 여명의 홍의회 멤버들의 머리통이 산처럼 쌓였고 엄진우는 그 중앙에 선 채 그를 날
“아니다. 15%로 가.” 엄진우가 계속 말했다. “확실히 기억하게 만들어야지.” 이보향은 엄진우의 명령을 깍듯이 받아들였다.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9대 수진 가문에 잊지 못할 하루를 선물하겠습니다.” 다음날, 성안은 천지가 흔들리는 듯한 큰 패닉에 빠져버렸다. 명문가들은 엄진우라는 남자가 혼자의 힘으로 홍의회를 멸망시켰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비록 성부는 모두에게 입을 막을 것을 명령했지만 이는 단지 민간에 제한되어 있을 뿐 상류 계층의 입은 절대 통제할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9대 수진 가문은 도무지 화를 참을 수 없었다. 자제들이 죽은 것도 모자라 수조 원의 가치가 증발하다니! 그들은 당장 엄진우를 찾기에 돌입하려고 했지만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바로 북강 제일 가족, 오씨 가문의 오윤하였다. 그녀는 엄진우에게 맞서는 자는 오씨 가문의 적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9대 수진 가문은 비록 강남성에서 내놓으라 하는 명문가들이지만 북강의 오씨 가문과 비교했을 때는 미약한 존재들이었다. 결국 국면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호텔 안에서. 소파에 앉아 있는 예우림은 여전히 아름답고 단아하며 깨끗했다. 다만 눈길이 공허한 것이 예전의 날카로움과 싸늘함을 잃어버렸을 뿐이다. 엄진우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치료를 시도했으나 전혀 효력이 생기지 않았다. “이상하다. 독소는 분명 제거되었고 외상도 거의 나았는데 왜 호전되지 않는 거지?” 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스스로 깨어나길 거부하는 건가? 현실을 도피하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왜?” 엄진우는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인상 속의 그녀는 만년불변의 빙산녀로 뼛속부터 싸늘함을 풍기는 여자였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는 겉만 차가울 뿐 마음은 뜨거운 여자다. 지극히 민감하고 여린 여자... 어쩌면 이번 오해로 그녀는 상처를 받고 모든 걸 포기한 채 자기를 지키기 위해 깨어나지 않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면 안
“진우 씨, 나 할 말 있어서 찾아온 거니 이러지 마.” 소지안은 제대로 당황했다. 백주대낮에 이렇게 박력이 터지다니. 이러다 누가 들어오면 어떡하려고. “저녁에 하면 안 될까? 내가 직접...” 소지안은 거의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하지만 엄진우는 목마른 짐승처럼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천천히 소지안의 방어선은 결국 무너지고 몸에는 엄진우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남았다. 그제야 엄진우는 만족스러운 듯 옷을 입고 통창 앞에 앉아 조용히 밖을 내다보았다. 소지안은 어이없다는 듯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 “짐승 같은 놈.” 역시 남자는 섹스를 할 때만 모든 위장을 벗어버린다. 하지만 엄진우는 여전히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우림이가 많이 아파. 마음에 병인데 나도 고칠 수 없을 것 같아.” 방금 소지안과 뜨거운 시간을 보낸 건 단순히 답답함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것이었다. 소지안은 바지를 입으며 물었다. “전에 있던 오해 때문에 그런 거야? 세상에, 그 일로 그렇게까지 모순이 생긴 거야?”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이런 무기력함을 느낀 건 엄진우도 처음이다. 소지안은 맨발로 엄진우에게 다가가 그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진우 씨, 너무 걱정하지 마. 적어도 우림이 일단 데려왔잖아. 이젠 우리가 천천히 우림이를 깨어나게 하는 수밖에 없어. 우림이는 반드시 깨날 거야.” 엄진우는 몸을 돌려 소지안을 꼭 끌어안고 말했다. “그러길 바랄 뿐이야. 나 너무 지친다. 힘들어...” 창해시에서 성안으로 오기까지, 이 모든 것은 예우림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예우림은 산송장이 되어버렸다. 지칠 대로 지친 엄진우는 소지안의 품에 안겨 펑펑 울고 싶었다. 그런데 이때 오윤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무슨 일인데?”“어디죠?” “볼 일 좀 있어서 밖에 나왔어.” “밖이요. 두 여자와 함께 호텔에 있는데 밖이라고요? 한 번에 두 여자를 품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오윤하의 싸늘한 말에 엄진우는 순간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별거 아니야. 미친 여자한테서 걸려 온 전화니 신경 쓸 것 없어.” 엄진우는 손을 가로저었다. 오윤하는 워낙 성질이 더러운 여자라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에 괜히 놀랄 것 없었다. 게다가 그는 9대 수진 가문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우림이 병세야.” 엄진우는 곰곰이 생각하고 말했다. “지금은 실성 상태라 회혼단만이 효과가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이 단약을 만드는 약재 12가지 중 8가지는 강남성에서 구할 수 없어. 예를 들면 회혼초는 북강에만 있는 약재이고 화혈삼은 남양의 특산이지...” “그건 모르죠.” 소지안이 말했다. “신약당에 있을 수도 있어. 신약당은 성안에서 가장 큰 약국으로 전 세계의 귀중한 약재가 아주 많아. 그리고 그 뒤에는 9대 수진 가문과 성부가 있지. 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아. 터무니없을 정도로 가격이 비싸거든. 진료비만 해도 천문학적인 액수야.” 하지만 엄진우는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원하는 약재만 있다면 얼마든 상관없어. 주소 알려줘. 내가 우림이 데리고 직접 찾아갈 거야.” 이보향이나 다른 사람을 보내기엔 시름이 놓이지 않았다. 어떤 약재는 엄지우만이 진위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소지안은 바로 엄진우에게 주소를 알려주었고 엄진우는 예우림을 차에 태웠다. 신약당으로 떠나려는데 갑자기 엄혜우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오빠! 나 지금 성안이야! 방금 차에서 내렸어.” 전화기 저편에서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혜우야, 너 왜 집에 안 있고 성안으로 온 거야?” 엄진우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러자 엄혜우는 발랄하게 말했다. “에잇, 너무하네. 잊은 거야? 나 학교 성안이고 방학은 끝났어. 그러니 당연히 성안으로 돌아와야지!” 엄진우는 이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하지만 엄혜우의 몸에는 아직도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비밀이 있기에 창해시를 떠나면 그는 그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혜우야, 너 어디야? 내가 지금 데리러 갈게.” 엄진우는 걱정되는 마음
“교통사고야?” 남자의 울부짖음에 진찰을 받으러 온 사람들은 일제히 남자를 둘러싸고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한 소박한 셔츠를 입은 남자가 거의 죽어가는 백발의 노부인을 품에 안고 펑펑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제발 우리 엄마 좀 살려주세요. 우리 엄마 이러다 죽어요.” “쯧쯧. 심하게 다쳤네. 저 정도면 오장육부가 다 터졌을 텐데.” “안쓰럽군. 엄마의 생명이 위협을 받지 않는다면 어떤 성인이 이런 장소에서 무너지겠냐고. 다 생활에 떠밀려 이렇게 된 거지.” “그래도 다행히 바로 신약당에 찾아왔으니 살릴 수도 있어.” “하지만 여기 비용이...” 사람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고 있는 그때, 노란 가운 차림에 찻주전자를 들고 구레나루가 진하게 자란 남자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걸어왔다. “시끄럽긴 짝이 없군! 제가 왔습니다!” “어머, 신약당의 사장 마 선생님이시네. 신약당에서 의술이 가장 뛰어나신 분이라 상류층 사람들도 많이 진찰했다고 하더라고.” 사람들은 저도 몰래 흥분하기 시작했다. 마원지는 미간을 찌푸렸다. 고가에 약재를 사겠다는 손님이 나타났다는 말에 기분이 아주 좋았었는데 이런 재수 없는 일이 생기다니. 만약 그가 손을 쓰기도 전에 상대가 죽어버린다면 신약당의 명예는 그대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는 허리를 굽히고 손을 뻗어 노부인의 호흡을 살피고 맥을 짚더니 진지하게 말했다. “비록 내장 파열이 심하지만 완전히 파열된 건 아니군. 생명력이 아주 대단하신 노부인이네. 당장 수술을 준비하겠습니다. 하지만 살 가망은 50%입니다.”노부인의 아들이 다급히 말했다. “마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제발 우리 어머니를 살려주세요.”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저도 누군가의 자식으로서 당연히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마원지는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말했다. “우선 프런트에서 진찰비로 2천만 원 지불하시죠.” 남자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네? 2천만 원이요?” “나 마원지는 신약당 최고의 의원입니다. 그러니 진찰비 2천만 원은 절
“이건 또 어디서 나온 미친년이야? 비켜!” 신약당 사람들은 갑자기 흠칫하더니 두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질렀다. 순간 신약당 사람들은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엄진우가 천천히 걸어와 따져 물었다. “미친년이라니? 말 다 했어?” 그러자 마원지는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당신은 또 뭐야?” “모르는 척 지나치려고 했는데....” 엄진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젓더니 단호한 표정의 예우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여자가 무의식중에 이 모자를 지키려는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나서는 거야.” 아내 바보인 걸 누굴 탓하겠어. 순간 엄진우의 손끝에 수많은 은침이 나타났다. 마원지는 안색이 살짝 변했다. “당신도 의원이야?” “사장님, 아까 고가로 약재를 사려고 했던 손님이십니다.” 이때 프런트 직원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마원지는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었어? 하하! 알고 보니 오지랖이 아주 넓은 사람이었군. 하지만 저 노친네는 이미 오장육부가 파열되어 숨만 붙어있는 상태야. 내가 직접해도 반드시 살린다는 보장이 없지. 그런데 당신 같은 애송이가 살릴 수 있겠어?” 하지만 엄진우는 마원지의 말을 듣는 척도 하지 않고 노부인을 훑어보더니 고개를 들어 남자에게 말했다. “난 성모가 아니니 공짜로는 도와줄 수 없어요. 그러니까 20만 원만 줘요.” 그러자 상대는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20만 원? 20만 원이면 우리 엄마 살릴 수 있어요? 거짓말 아니죠?” 50%의 가능성만 있다고 했던 마원지도 수억을 요구했었다. 그런데 20만 원이면 가능하다고? “마음대로 생각해요. 아무튼 돈만 주면 살려줄게요.” 엄진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생각 없으면 말고요.” “할 게요! 돈 드릴게요!” 상대는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엄진우를 바라보더니 꼬깃꼬깃한 지갑에서 돈을 전부 꺼내 들었고 마침 20만 원이 조금 넘어 있었다. “제가 가진 전부의 돈이에요.” 남자는 바싹 마른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비록 돈은 아까웠지
남자는 여전히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이때, 서관림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남자는 순간 멍해지더니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엄진우를 힐끗 쳐다보았다. 설마... 진짜일 리가 없겠지? 전화를 받자마자 쏟아지는 것은 거친 욕설이었다. 한편 제경에는 피를 동반한 권력 변화가 대대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보수파는 이용진을 잡은 후 야망이 커져 이 기회에 급진파의 장로들을 모두 제거하려 했다. 급진파의 장로들은 이용진 사건에서 이미 한발 물러섰지만 보수파의 끝없는 욕심을 보고 더는 참기 어려웠다. 양측은 격렬한 충돌을 벌이다 큰 전쟁으로 번졌다. 결국 제경 전역을 봉쇄하고 계엄령을 내렸지만 양측의 교전으로 제경 내부는 화약 냄새가 자욱했다. 하지만 이 충돌은 전 국토로 확산되어 전국적인 전란의 위기를 몰고 왔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대장로가 깨어났다. 몇 년 전, 대장로는 북강 명왕을 해임한 후 깊은 잠에 빠졌었다. 그러다 오늘 드디어 깨어난 것이다. 혼란스러운 제경과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두 파벌을 본 그는 상황이 되돌릴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반쪽짜리 명왕령을 당장 엄진우에게 가져가고 제경으로 불러들여라! 그때의 일은 내가 친히 설명할 것이다.” 대장로는 수십 년을 함께한 심복을 불러 명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진우는 반쪽짜리 명왕령을 손에 쥐게 되었다. 수년 전 그날, 엄진우는 명왕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이 반쪽 명왕령을 회수당했다. 이 순간, 명왕령은 드디어 온전한 하나가 되었고 이는 명왕이 다시 자리에 올랐음을 알리는 것이다. 제경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알게 된 엄진우는 아무 말 없이 갑옷을 입고 무장했다. 전투의 기운은 살벌하게 하늘을 찔러댔다. 그는 급히 북강으로 향했다. 북강 잠룡곡. 그곳에는 50만 북강 군대가 수년간 매복해 있었다. “북강군이여, 명령을 받들라!” 긴 외침과 함께 전쟁의 신, 북강 명왕의 모습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50만 북강군은 흥분에 휩싸여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시암은 용국의 동남쪽에 위치한 작은 나라인데 용국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시암의 많은 재벌은 지난 100~200년 동안 용국에서 이민으로 건너간 사람들이다. 현재 시암의 갑부 역시 그중 하나였다. “아버지 성이 서씨야?” 엄진우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뭐 좀 아는구나? 얼마면 되겠어? 가격부터 말해.” 남자는 손을 휘저으며 수표를 꺼냈고 엄진우의 얼굴은 순간 싸늘해졌다. “네 아버지 그까짓 재산으론 내 엉덩이를 닦기도 부족해. 그런데 어디서 감히 큰소리야? 당장 꺼져!” 엄진우는 이 재벌 2세가 그저 방탕한 자식일 뿐, 실지 가문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인간이란 걸 바로 알아챘다. 단지 남을 괴롭히고 돈으로 해결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저렴한 사람이니 더는 상대할 필요도 없었다.남자는 멍하니 엄진우를 쳐다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신 미쳤어? 우리 아버지 시암 갑부라고! 그런데 그까짓 재산이라고?”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맞아! 네 아버지 말이야! 서씨 가문 자산을 합쳐도 200조를 넘지 못해!” 엄진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아, 이 새끼 허세 장난 아니네? 너 200조가 어떤 개념인 줄 알기나 해? 현금으로 바꾸면 너 같은 건 몇천 번도 깔아 죽일 수 있어.”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됐고... 애송이, 당장 여기서 꺼지지 않는다면 시암에 있는 네 아버지가 당장 날아와 널 혼내줄 거야.” 엄진우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남자를 쫓아냈다. “이 새끼 봐라? 감히 누구 앞에서 잘난 척이야? 너 돈에 깔려 죽고 싶어?” “말귀 못 알아듣는 놈이군, 당장 네 아버지를 불러줄게.” 엄진우는 휴대폰을 꺼내 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서관림 알죠?” 엄진우가 물었다. “선생님, 서관림은 무슨 일로 찾으시는지요? 당장 연락드리라 알리겠습니다.” 전화기 너머의 사람은 다급하게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서관림의 아들이
그녀는 아들이 대체 밖에서 무슨 짓을 했길래 이런 원수를 사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고 아들이 정말 수많은 사람을 죽였는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아들이 그 수단들을 어디서 배웠는지, 긴 세월 동안 이렇게 숨 막히는 날들을 보냈는지 너무 걱정되었다. “집에 가서 얘기하자.” 엄진우는 하수희를 번쩍 안아 들고 회사를 떠났다. 가는 길에 엄진우는 가볍게 하수희의 머리를 쳤고, 곧 하수희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엄진우는 그녀의 일부 기억을 지워버렸다. 집에 돌아와 한참이 지나자 하수희도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진우야, 어쩐 일로 갑자기 돌아왔어?” 엄진우를 본 하수희는 반가움에 어쩔 줄 몰랐다. “나 일 때문에 먼 길 떠나기 전에 집에 좀 들러보려고. 근데 엄마는 왜 소파에서 자? 방에서 편히 자지.” 하수희는 몸을 일으켰다. 이상하다? 몸이 왜 이렇게 뻐근하지? “네 동생이랑 전화하다가 잠들었나 봐. 참 이상하네. 어떻게 말하다 말고 잠들었지?” 하수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손강호에게 납치된 기억은 전부 엄진우에 의해 지워졌다. 하수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젠 예전 같지가 않아. 좀 쉬고 있어. 엄마가 곧 밥 해줄게.” 말을 마친 하수희는 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엄진우는 바로 회사로 돌아갔다. 소지안은 아주 신속하고 깔끔하게 회사를 정리했다. 엄진우가 부순 벽은 이미 수리되었고 회사 로비도 완벽하게 청소가 끝나 있었다. “손강호는 창고에 가뒀어. 어떻게 처리할지는 진우 씨가 결정해.” 엄진우가 오자 소지안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손강호가 창고에서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회사에 영향이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요양원으로 보내. 쉽게 죽으면 안 되지.” 엄진우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손강호가 제대로 남은 삶을 ‘즐길’ 수 있게, 엄진우는 돈을 들여서라도 그를 요양원에 보내 죽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 바로 연락해
“그래, 빠져나간 쥐새끼가 없다면 지금쯤 손씨 가문은 16세 이하의 어린애와 70세 이상의 노인을 빼고 다 시체가 되었을걸.” 엄진우는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 무자비한 수단을 쓰지 않으면 어느 날인가 상대도 같은 방식으로 그를 해치려고 할 것이다. 손강호의 안색은 그대로 굳어져 버렸고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때 엄진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남궁민희였다. 엄진우는 전화를 연결하고 스피커폰을 켰다. “상황은 어때? 여기 손씨 가문의 장손이 들을 수 있게 상세하게 말해줘.” “손씨 가문 혈통 총 173명, 노인과 아이 52명을 제외한 나머지 100여 명은 이미 처단한 상탭니다.” 남궁민희가 단호하게 말했다. 풉! 손강호는 분노와 공포가 치솟아 피를 토해냈다. “말도 안 돼! 그럴 수 없어! 제경 손씨 가문이 어떻게!” 손강호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허겁지겁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지옥에서 확인해.” 엄진우가 싸늘하게 웃었다. “미친놈! 미친 새끼야!” 손강호는 넋을 잃고 절규했다. “난 단지 네 엄마를 납치했을 뿐 해치지 않았어. 하지만 넌 우리 가문 전부를 죽여버렸어. 넌 악마야! 이 개새끼야!!” “너 같은 쓰레기를 낳은 손씨 가문도 도긴개긴이야. 손씨 가문 사람이 천 명이든 만 명이든 우리 엄마의 땀 한 방울보다 하찮다는 걸 기억해. 그리고 이건 너한테 대한 내 보복일 뿐이야. 감히 내 가족을 건드렸으면 이만한 각오는 했었어야지.” 엄진우는 손강호의 욕설도 무시하고 차갑게 말했다. 미리 후과를 생각하지 못한 손강호의 어리석음 때문에 손씨 가문은 이대로 전멸했다. “그렇다면 다 같이 죽어!” 손강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기폭 장치를 눌렀다. 사람들은 너무 놀라 하나같이 두려움에 빠져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때, 불타는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지만 엄진우는 태연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용진 말이야... 끌려가기 직전까지 왜 나랑 정면으로 맞
“그 손 놔!” 이때,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강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두 눈을 의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름답다! 너무 아름답다! 심지어 소지안보다 더 아름다운 자태를 가졌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존재하다니! “나경 씨, 여긴 왜 내려왔어!” 소지안은 너무 놀라 두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내려오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건만. “제가 어떻게 마음 놓고 숨어있어요.” 공나경의 몸은 가늘게 떨렸다.비록 마음속엔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그녀는 용감하게 나서기로 했다. 절대 소지안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좋아, 아주 좋아. 엄진우 아주 복이 많은 놈이군. 하지만 이젠 다 내 여자들이야. 용국을 떠나기 전에 이런 행운이 생기다니.” 손강호는 저도 몰래 침을 흘렸다. 그는 소지안을 놓고 다급히 공나경에게로 다가갔다. 공나경은 뒷걸음질 쳤지만 곧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하하, 아주 곱군!” 손강호는 두 팔을 벌리고 공나경에게로 달려들었다. 곧 공나경을 품에 안으려는데...쿵!회사 건물 외벽이 갑자기 무너지더니 무너진 틈 사이로 엄진우가 빠르게 다가와 손강호를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손강호는 저만치 날아가며 빨간 피를 뿜어댔다. “네가 어떻게?” 엄진우를 본 손강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긴, 엄진우가 이용진을 무너뜨린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상대는 무려 용국 궁정의 장로인 이용진으로 엄진우의 가장 강력한 적수였다. 금방 승리를 거뒀으니 제경에서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어야 하는데... “널 빨리 죽이고 싶어서 말이야.” 엄진우가 싸늘하게 말했다. 여태 손강호를 살려둔 이유는 손강호가 창해시에 있는 한 이용진은 그를 어떻게 처리할지 계속 고민하느라 손을 대지 못할 것이고 그 사이에 엄진우는 이용진을 무너뜨릴 준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용진이 무너졌으니 더는 손강호를 남겨둘 이유가 없기에 그는 빠르게 비행기를 타고 창해시로 돌아왔다. “아쉽지만 늦었어
엄진우가 탄 비행기는 곧 착륙했고 휴대폰을 켜자마자 엄혜우에게서 온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를 발견했다. 순간 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큰일이 아니면 엄혜우가 이렇게 많은 전화를 할 리 없었다. 엄혜우에게 전화를 걸려던 찰나, 엄혜우의 전화가 다시 걸려 왔다. 엄진우는 다급히 전화를 받았는데 입을 떼기도 전에 엄혜우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엄마가 납치당했어!” 순간 엄진우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졌고 주변의 공기마저 살기로 가득 찼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 엄마는 무사할 거야.” 엄진우는 바로 전화를 끊고 남궁민희에게 연락했다. 남궁민희는 아직 제경에 있었는데 아직도 침대에 나른하게 누워있었다. “제경 손씨 가문 정보 가진 거 있어?” 엄진우는 이를 악물며 물었다. 그는 하수희를 납치한 사람이 손강호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창해시에 그와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용의자는 단 한 사람, 바로 손강호였다. 더군다나 이용진이 방금 체포된 상황에서 그의 어머니가 납치되었다면 손강호 이외에는 범인이 따로 없다. “있어요!” 화가 난 엄진우의 목소리에 남궁민희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손씨 가문은 이씨 가문 라인이죠. 우리가 날려 보낸 몇천 명의 사람 중에는 손씨 가문 사람도 있었어요.” “16세 이하의 애들과 70세 이상의 노인을 제외하고 전부 처형해.” 엄진우의 얼굴은 사나운 기색으로 가득 찼다. 이것이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 엄진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북강의 지배자였고 천 리를 피로 물들인 적이 있었다. 그의 행동은 항상 그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손강호 같은 패륜아를 길러낸 가문에 무고한 사람이 있을 리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노인과 어린아이를 살려둔 것만 해도 큰 자비였다. 만약 그가 여전히 북강을 통치하던 때였다면 손씨 가문의 개조차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네, 주인님.” 남궁민희는 굳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손씨 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소지안이 걸어 나왔다. 손강호는 소지안의 미모에 놀라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전에 사진으로 본 적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욱 아름다워 감탄한 것이다. “소 대표, 참 오래 걸리네.” 손강호는 소총을 들고 소지안에게 다가갔다. “날 찾은 이유가 뭐죠?” 소지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싸늘하게 물었다. 그녀는 이런 무법자들에게 겁에 질린 모습을 보여주면 그들이 더욱 날뛸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소 대표가 한 번 맞춰보지, 그래?” 손강호는 소지안의 턱에 총구를 대고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소지안은 전혀 두려운 기색 없이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돈이 필요해요? 회사에 현금 20억이 있으니 당장 가져가도 좋아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고 신고도 안 할 테니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약속해요. 회사 계좌의 돈은 내가 당신에게 이체하려고 해도 그 돈을 가져갈 수 없어요.” 소지안이 침착하게 말했다. “소 대표 아주 대단하네.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침착할 수 있다니. 아쉽지만 내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야.” 손강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뭘 원하죠?” 소지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내가 원하는 건 바로 당신이야.” 말을 끝낸 손강호는 바로 손을 뻗어 소지안의 얼굴을 어루만지려고 했다. 하지만 소지안은 그의 손을 거칠게 밀어내며 두 눈을 부릅떴다. “내 몸에 손댄다면 당신은 이 창해시를 살아 나갈 수 없어요.” “소 대표 아주 강단 있네. 근데 그 우월함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설마 엄진우?” 손강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 진우 씨를 노리고 왔네요.” 소지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갑게 물었다. “역시 소 대표 정말 똑똑해. 어쩔 수 없어. 그 자식이 날 궁지로 몰았으니 나도 이럴 수밖에.” 손강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엄진우가 그를 궁지로 몬 건 사실이다. 창해시에서 그가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엄진우는 그를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쾅!굉음과 함께 문이 강제로 열리더니 손강호가 부하들을 데리고 집으로 쳐들어왔다. “당신들... 당신들 누구야?” 하수희는 깜짝 놀라 크게 소리쳤다. “누구냐고? 아줌마 납치하려고.” 손강호는 앞으로 세 걸음 다가와 하수희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단숨에 부숴버렸다. “잘 묶어서 끌고 가!” 손강호는 바람처럼 나타나 바람처럼 사라졌다. 엄혜우는 깜짝 놀랐다. 방금 그 사람들 도대체 누구지? 다행히 엄혜우는 침착함을 잃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바로 엄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엄진우는 비행기에 탑승 중이라 휴대폰이 꺼져 있었다. “그쪽은 잘 진행되고 있어?” 손강호가 부하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비담 컴퍼니 외벽에 이미 폭약을 설치했습니다. 터트리는 동시 건물 전체는 완전히 잿더미가 될 겁니다.” 손강호의 부하가 보고했다. “좋아, 곧 갈게.” 손강호는 그제야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빠르게 비담 컴퍼니에 도착해 손에 배낭을 든 채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 “소 대표 만나러 왔어.” 예우림은 지금 제경에 있지만 손강호는 비담 컴퍼니의 부대표인 소지안도 엄진우의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예약은 하셨을까요?” 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손강호는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예약하지 않으셨다면 먼저 예약부터 하셔야 합니다. 일단 부대표님에게 보고드린 후 전화로 시간 알려드리겠습니다.” 말을 끝낸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예약 표를 손강호에게 내밀었다. 손강호는 직원의 손을 내치며 들고 있던 배낭을 프런트 데스크에 던지며 지퍼를 확 열었다. “이걸로 예약할 수 있을까?” 배낭 안의 물건을 확인한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배낭 안에는 뇌관이 가득했다. 손강호는 배낭에서 소총을 꺼내 들더니 천장에 무차별로 사격을 퍼부었다. “다들 쪼그리고 앉아! 소리 지르는 것들은 바로 죽여버릴 거야!” 사람들이 비명을 지
이용진은 공허하고 멍한 눈빛으로 뒤로 한 걸음 휘청거리며 물러섰다. “데려가!” 검찰청 고위 책임자가 명령을 내렸다. 곧 용국 궁정의 원로였던 이용진은 증인과 증거물과 함께 경찰정으로 연행되었다. “오늘이 지나면 이씨 가문은 더는 존재하지 않아. 당신도 이젠 자유야.” 엄진우는 쓴웃음을 지은 채 한숨을 내쉬며 오동방에게 말했다. 오동방은 멍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했다. 갑작스러운 자유에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왜? 인생의 목표를 못 찾겠어?” 엄진우가 장난스럽게 묻자 오동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3년 넘는 시간 동안 모든 포부와 열정이 사라져서 앞길이 막막하네요.” “그럼 내가 일자리 구해줘?” 엄진우가 가볍게 말했다.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다면 당연히 좋죠!” 오동방은 눈빛을 반짝이며 재빨리 대답했다. “내 손에 제약회사가 하나 있는데, 원한다면 수석 연구원의 자리를 주지.” 엄진우는 단지 농담으로 던진 말인데 오동방은 진심으로 그와 함께하길 바랐다. 비록 오동방의 의술은 엄진우의 지도하에 발전한 것이지만 그가 이를 완벽히 소화하고 응용하는 것을 보면 그의 의학적 재능과 능력은 충분히 입증된 것이다. 이런 인재가 합류한다면 회사는 반드시 더욱 강해질 것임이 분명했다. “좋아요! 전 무조건 선생님을 따를게요!” 오동방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엄진우의 말을 수락했다. “예우림이 지금 안강제약 인수 절차 때문에 제경으로 갔으니 오늘 바로 가서 합류하면 돼. 절차가 끝나면 함께 창해시로 돌아와 바로 취임해도 좋아.” 엄진우가 웃으며 말했다. 오동방이 합류한 건 생각지 못한 수확이었다. “선생님은 같이 하지 않는 건가요?” 오동방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난 마무리해야 할 일이 좀 있으니 먼저 가 있어야겠어.” 엄진우는 살짝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창해시. 손강호의 부하들은 완전히 당황한 기색이다. “도련님, 이용진은 이미 몰락했습니다! 듣자니 엄진우라는 그놈이 한 짓이랍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