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환아, 나는...”임준호는 또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됐어요, 이제 그만 해요. 연기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담담히 말을 끊은 임유환은 무정한 표정으로 채수빈을 바라보았다.“당신이 무슨 수로 임준호 씨를 구워삶았길래 저 사람이 이렇게 지극정성인진 모르겠는데.”“내가 여자를 안 죽이는 걸 다행으로 알아. 적어도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전엔 안 죽이니까.”“아니었으면 당신은 임준호 씨가 보호해줘도 이 자리에서 죽었을 거야. 내가 죽이고 싶으면 나한테 어려운 일은 아니거든.”“유환아, 이 일은 저 사람과는 상관없는 일이야. 화는 나한테 내, 저 사람 다치게 하지 말고.”임유환 말에 바로 불안한 기색을 드러내는 임준호에 임유환은 점점 더 실망하며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전에는 안 죽인다니까요.”“그리고 임준호 씨, 다음부턴 제 이름 똑바로 불러주세요.”“우리 엄마가 죽고 내가 쫓겨나던 그때부터 나랑 임씨 집안은 아무 상관도 없어졌어요.”“내가 아직도 임씨 성을 유지하는 건 엄마와 한 약속 때문에, 우리 엄마 눈 편히 감으시라고 안 바꾸는 거예요.”임유환의 말에 임준호는 심장이 세차게 떨리며 호흡까지 가빠졌다.임준호는 깊은 한숨을 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유... 임유환, 아빠 말 들어. 얼른 연경을 떠나. 그날 일은 네 생각처럼 그리 간단하지가 않아.”“떠나라고요? 왜요, 제가 여기서 당신 가족들의 행복을 망치기라도 할까 두려우세요?”임유환은 임준호를 보며 입꼬리를 올려 차갑게 웃어 보였다.“내가 이번에 여길 온 건 원래부터 엄마 것이었던 것들을 되찾기 위해서예요.”“임씨 집안, 정씨 집안, 그리고 나머지 6대 가문, 그딴 건 다 신경 안 쓸 거예요.”“그날 어머니를 죽이는 데 가담한 사람이라면 그게 누구든지 그날 일을 후회하게 만들어 줄 거에요.”“그 사람들에는 당연히 임준호 씨와 당신 아내도 포함이고요.”“난 한다면 하는 사람이에요.”단호하게 마지막 말을 마친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있는 임준호는 죄책감, 억울함, 그리고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것 같았다.채수빈은 그런 임준호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오빠, 오빠는 할 만큼 했어요, 그러니까 자책하지 마요.”“수빈아, 너는 나랑 결혼한 거 후회해?”갑작스러운 임준호의 질문에 채수빈은 잠시 자책과 함께 당황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확신에 찬 듯 고개를 저었다.“아니요.”“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네, 없어요.”채수빈은 대답을 번복하지 않고 웃으며 임준호를 향해 말했다.“오빠는 나한테 언제나 남자다운 모습만 보여줬어요. 또 엄청 잘해줬고요.”15년 동안 임준호는 억지로 끌려온 채수빈이 힘들지 않게 물심양면으로 보살펴주었고 혼자서 임씨 집안의 막중한 책임을 떠안았었다.그러니 채수빈 눈에는 임준호만큼 남자다운 사람도 없어 보였다.“고마워, 수빈아...”감동한 얼굴을 하고 있던 임준호는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것인지 다시 고통스러워했다.“하연 언니 생각나서 그래요?”그 모습에 채수빈이 조심스레 물었다.지난 15년간 임준호가 이따금 이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일 때면 십중팔구는 사별한 아내를 떠올리고 있었다.아까 임유환과의 대화 때문인지 오늘은 그 표정이 더욱더 선명했다.“응.”임준호는 한숨을 시작으로 대답을 했다.“내가 살면서 제일 미안한 사람이 하연이야.”“나 따라 평생을 고생만 하다가 드디어 내가 우리 가문 수장이 되었는데, 그럼 하연이랑 장모님 모시고 행복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럴 줄 정말 몰랐어.”여기까지 말한 임준호는 저를 위해 죽음을 선택한 고하연이 떠올라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그렇게 고하연이 죽을 때까지 남편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 했다고 생각한 임준호는 어떨 때는 그때 죽은 게 고하연이 아닌 자신이었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오빠, 인제 그만 힘들어해요. 언니도 하늘에서 오빠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거예요.”부드럽게 위로를 하던
호텔 앞에서는 임유환이 바람을 맞으며 찌푸린 미간을 한 채 서 있었다.그 얼굴에 감도는 분위기가 그다지 좋지 않은 임유환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었다.조명주, 최서우, 흑제가 한참을 기다려서야 밖으로 나오는 임유환을 볼 수 있었다.조명주는 어두워진 임유환의 표정을 보고 물었다.“괜찮아요?”“네.”임유환은 애써 입꼬리를 올려봤지만 마지못해 웃는 게 뻔히 보였다.“진짜 괜찮아요? 밖에서 산책이라도 좀 할래요? 같이 가 줄게요.”“고마워요, 조 중령님. 근데 저 진짜 괜찮아요. 오늘은 좀 피곤해서 호텔로 가서 쉬고 싶어요.”힘들어 보이는 임유환에 조명주가 걱정스레 물었지만 임유환은 고개를 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오늘 말고 내일 저녁은 어때요?”“그래요, 그럼 내일 저녁에 봐요.”오늘 하루 많은 일을 겪었으니 임유환에게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조명주도 더 권하지는 않았다.그리고 조명주도 오늘은 피곤하기도 했으니 내일 보는 게 서로에게 더 좋을 것 같았다.“그런 내일 봐요, 오늘 일은 정말 고마웠어요.”오늘 조명주가 의리있게 나서준 모습에 정말 감동을 한 임유환이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임유환은 아버지와 매정한 임씨 집안보다 옆에 있어 주는 친구들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우리 사이에 뭐 그렇게 인사까지 해요. 그럼 내일 저녁이나 같이 먹을까요?”조명주와 최서우는 원래도 연경에서 며칠 놀고 가려고 했는데 마침 임유환한테 궁금한 것도 있으니 오늘보다는 내일 밥을 먹으면서 천천히 물어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그래요.”대답을 마친 임유환은 최서우와 조명주에게 작별인사를 하고는 흑제가 예약해둔 7성급 호텔로 향했다.스위트룸 앞에 선 흑제가 임유환을 향해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주인님, 그럼 오늘은 이만 쉬세요. 무슨 일 있으시면 저 부르시고요, 저 바로 옆방이에요.”“응, 그래. 너도 쉬어, 오늘 고생했어.”말을 마친 임유환은 방으로 들어가 샤워부터 했다.그리고 침대에 누웠지만 늦은 시각임에도 잠이 오지 않아 자
그날 밤, 정씨 집안 도련님의 혼사가 깨졌다는 소식과 임씨 집안의 버려진 아들이 연경으로 돌아왔다는 소문이 연경의 골목마다 파다하게 퍼졌다.윤씨 집안 아가씨의 방.윤여진은 거울 앞에 서서 오늘 새로 산 카키색 미니스커트를 몸에 대보고 있었다.짙은 검은색의 머리카락이 어깨를 쓸어내리며 찰랑거렸고 빨갛고 도톰한 입술 위로 초롱초롱 빛나는 눈은 감았다 뜰 때마다 반짝여 보는 이를 홀릴 정도였다.그중에서도 제일 이목을 끄는 것은 단연 예쁨 몸매였는데 하나도 처지지 않고 볼록하게 솟아오른 가슴은 못 해도 E컵은 돼 보였다.엉덩이도 그에 어울리게 풍만했는데 이런 얼굴, 이런 몸매에 미니스커트까지 입는다면 남자 여럿 울리는 건 어렵지 않을 듯했다.그때 방문이 열리더니 집사 윤영준이 고개를 숙이며 들어와서는 윤여진에게 오늘 결혼식장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알려주었다.“그럼 정우빈이 결혼식을 못 올렸단 얘기야?”윤여진은 하던 행동을 멈추고 도톰한 입술을 움직이며 놀라운 듯 물었다.이 연경에서 정우빈의 결혼식을 망치고 그의 여자를 넘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네.”“어머, 누가 감히 그런 짓을 해?”집사의 긍정에 윤여진은 흥미가 생긴 듯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그게... 임씨 집안의 버려진 도련님이랍니다.”“임씨 집안 버려진 도련님?”윤 집사의 말에 윤여진은 잠시 벙쪄있다가 이내 매혹적인 얼굴에 놀라운 기색이 역력해졌다.윤여진은 흔들리는 눈동자를 한 채 집사에게 물었다.“그럼 설마... 임유환?”“네, 그렇답니다.”“후...”윤여진이 깊은 한숨을 내뱉으니 그 가슴이 덩달아 위아래로 움직이며 큰 호선을 그렸다.“역시, 내가 살아있을 줄 알았어.”잠깐의 놀라움 뒤에 윤여진은 중얼거리며 웃고는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이 윤여진이 찜한 남자인데, 당연히 그러고도 남지.”“오늘 결혼식에 유환 오빠도 올 줄 알았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가는 건데.”말을 하던 윤여진은 스트레칭을 하며 요염한 몸매를 뽐냈다.그 모습을 곁눈질로만 쳐다본 윤
한편 정씨 집안에서는 정서진이 임유환에게 맞아 누운 정우빈을 구겨진 표정으로 응시하고 있었다.증기단까지 먹인 아들이 임유환에게 밀려나 허리까지 다쳐 이렇게 앓아누우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정서진이다.아까 신의를 불러 상태를 물었었는데 허리가 골절되고 증기단의 부작용까지 더해져 한동안은 누워서 치료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상처가 다 낫는다 해도 전처럼 격렬한 수련은 못 할 거라 덧붙였다.“임유환 이 개자식, 내가 꼭 이 두 손으로 그놈을 죽일 거야, 그런 놈도 안 죽이면 내가 정서진이 아니지.”음침한 표정 뒤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가 깔려있었다.“아버지, 꼭 저 대신 그놈 죽여주세요!”오늘 그 많은 하객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고 영영 불구가 될 뻔했던 정우빈은 이를 악물며 분노를 뿜어냈다.정우빈은 지금 임유환에게 복수하지 않으면 밥도 잘 넘어가지 않을 만큼 분했다.“걱정 마, 우빈아. 네 복수는 이 아빠가 꼭 해줄게.”정서진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말했다.“너는 치료에만 집중해. 내일 아침에 신의가 와서 수술 진행할 거야.”“고마워요, 아버지.”정우빈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에는 아직도 현실을 믿기 힘들다는 듯 억울함이 가득했다.한낱 하루살이 정도로 여겼던 임유환이 어떻게 무제의 실력을 갖췄는지 믿기지 않았고 그래서 자신이 그딴 놈에게 졌다는 것도 분하기 짝이 없었다.“아들, 자꾸 그놈 생각하지마. 그놈이 널 이긴 건 말 못 할 수법을 쓴 거야. 너한테는 대적도 안 되는 보잘것 없는 놈이니까 신경 쓰지 마.”정서진은 그런 아들의 생각을 눈치채고 달래듯 말했다.“가주님, 임유환의 신분에 대해 이미 다 알아봤는데, 그게...”“그게 뭐?”한 하인이 들어와 임유환에 대해 보고하자 정서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고 누워있던 정우빈도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제 조사에 따르면 그놈의 신분은 평범합니다. 5년 전에 허유나라는 여자와 결혼을 해서 5년 동안 그 여자에게 빌붙어 살다가 얼마 전에 이혼당했답니다.”“근데 그
이런 대규모의 군대라면 임유환도 두 번이나 흑제한테 부탁하진 못할 거라 생각한 정서진의 눈빛이 섬뜩해졌다.“아버지 말씀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정서진의 말을 듣던 정우빈은 임유환이 자신을 이긴 게 이상한 수법을 쓴 덕분이라 확신했다.자신이 가장 빛나야 할 순간을 망쳐버리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하게 한 임유환에 대한 분노로 정우빈의 두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아들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정서진은 살기 가득한 눈으로 나지막하게 정우빈을 향해 말했다.“아들, 너는 일단 치료에만 집중해.”“그놈 신분에 대해서도 이미 조사했고 아무런 뒷배경도 없는 게 확인됐으니 내가 반드시 그놈더러 오늘 한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그리고 그 몸에 어르신이 원하는 게 있을 수도 있으니까.”“어르신이요?”어르신을 언급하는 정서진에 정우빈의 동공이 갑자기 작아지면서 초조한 기색이 비쳤다.15년 전에도 그 어르신의 도움으로 삼류가문에 머물러있던 정씨 가문이 급속도로 성장해 오늘날의 최고 명문가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이다.“아버지, 그 어르신은 도대체 뭘 원하시는 걸까요?”정우빈은 실력이 어마어마한 그분이 임씨 집안에서 탐낼만한 게 무엇인지 몰라 호기심에 차 물었다.“옥 팔찌를 찾는다고 하던데, 자세한 건 나도 잘 모르겠어.”그때 어르신이 임준호의 아내 고하연을 죽이라 지시한 것도 고하연에게서 그 옥 팔찌를 얻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옥 팔찌는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었다.“옥 팔찌요?”정우빈은 아버지의 말을 듣더니 더 놀라운 표정을 하고 물었다.“응.”정서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아무튼 그 어르신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 게 좋아. 우리는 그냥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하면 돼.”“우빈아, 너는 일단 좀 쉬어. 임유환 일은 아빠한테 맡기고 신경 쓰지 마.”말을 마친 정서진이 정우빈의 방을 나섰다....그때 임유환은 스위트룸 침대에 누워있었다.한참을 뒤척여봐도 오지 않는 잠에 임유환은
문자 소리에 생각을 멈춘 임유환이 침대에서 일어나 핸드폰을 집어 들어보니 윤서린에게서 문자가 와있었다.그에 순간 당황한 임유환이 얼른 문자 창을 클릭했다.[유환 씨, 오늘 별일 없었어요?]내용은 간단했지만 임유환은 윤서린이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얼른 답장했다.[응, 아무 일도 없었어.][다행이네요.]윤서린의 대답에서 임유환은 그녀가 숨을 내쉬며 안도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해 서둘러 전화를 걸어보았다.수신음이 울리기도 전에 바로 받은 전화 너머로 윤서린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유환 씨만 괜찮으면 됐어요.”“미안해, 또 너 걱정시켰네.”임유환의 다정한 말에 윤서린의 기분이 눈에 띄게 나아진 듯했다.“아무 일 없으면 된 거죠 뭐.”“아, 유환 씨 지금은 어디 있어요?”“호텔에 있어.”“혼자요?”“응.”“흥!”임유환의 말을 들은 윤서린은 갑자기 화가 난 듯 볼멘소리를 냈다.“왜 그래, 서린아?”갑자기 변한 말투에 의아해진 임유환이 물었다.“무사히 호텔에 갔으면서 왜 나한테 연락 하나 안 해요?”윤서린이 서운한 티를 내며 말하자 그제야 왜 화가 났는지 알아챈 임유환이 얼른 사과하며 윤서린을 달랬다.“미안해, 서린아.”“됐어요, 이젠 날 다 잊은 거죠!”“그게 아니라 나는...”삐진 윤서린에 임유환은 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아니면 뭔데요?”“그게...”정말 모르겠다는 듯 묻는 윤서린에 임유환은 다시 입을 열었다.“오늘 결혼식장에서 아버지를 봤어. 지금 와이프랑 같이 있더라.”임유환의 한마디에 윤서린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가 다시 미안한 듯 말했다.“미안해요,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나 잊은 줄 알고...”“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다 잊어도 너를 어떻게 잊어.”임유환도 윤서린이 온종일 걱정했던 걸 알기에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리고 미안하단 말은 내가 해야지. 내가 빨리 전화 안 해서 네가 더 걱정했잖아.”임유환은 진심으로 윤서린을 걱정 시킨 게 미안했다.“바보예요 진짜? 유환 씨도
“서린아, 나한테 뭐 할 말 있어?”임유환의 목소리에는 관심이 묻어나 있었다.“아니에요...”수화기 너머의 윤서린은 이내 눈을 반짝이며 말을 돌렸다.“그냥 몸조심하라고요. 다른 할 말은 없어요.”“그래.”임유환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내가 약속할게. 꼭 무사하게 돌아갈게.”“네.”임유환의 약속에 윤서린도 부드럽게 대꾸했다.“나 이젠 진짜 방해 안 할게요. 잘 자요.”“잘자.”전화를 끊은 임유환은 눈앞에 윤서린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어머니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신경 쓰는 여자가 바로 윤서린이었기에 임유환도 하루빨리 S 시로 돌아가고 싶었다.하지만 지금 상황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복잡해져 있어 아마도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았다.임유환은 옥 팔찌를 거두고 이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한편 윤서린도 임유환 생각에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사실 일주일 뒤에 엄마 따라 연경에 간다고, 연경 윤씨 집안에 가서 처리할 일이 있으니 일을 마치면 얼굴이라도 보자고 얘기하려 했지만 윤서린은 임유환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결국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임유환이 지금 어머니와 아버지 일 때문에 생각도 많아지고 심경이 복잡할 거란 걸 알기에 윤서린도 그에게 시간을 주고 싶었다.그리고 윤서린 본인의 사정도 그리 여의치 않았다.연경에 가면 또 윤씨 집안 사람들이 윤서린의 엄마를 박대하고 아니꼽게 볼 걸 알지만 그래도 어쨌든 감당해내야 하는 일이었다.그래서 윤서린은 그저 이번에는 제 어머니를 좀 따뜻하게 맞아주었으면 하는 말도 안 되는 기대만 할 뿐이었다.그렇게 한숨을 쉰 윤서린도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이튿날 점심, 임유환은 약속대로 서씨 집안 저택에 도착했다.눈앞의 으리으리한 저택 입구에는 7년 전처럼 사자 조각상이 놓여있었는데 7년 전보다 세월의 흔적이 좀 더 느껴지는 모습이었다.그걸 보고 있으니 다시는 서씨 집안에 발을 붙이지 않을 거라 다짐했던 7년 전의 그 새벽이 떠올랐다.“임유환 씨 되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