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알고 있었던 거야?’“고민하실 필요 없어요.”이서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제가 선생님께서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으니까요.” “이서야...” “제 곁에 남아주세요. 저는 전혀 두렵지 않으니까... 제발, 제발 남아주세요.”이서가 지환의 팔을 힘껏 잡았다. “안돼.”굳은 결심이 무너져 내릴까 봐 두려웠던 지환이 거세게 고개를 내저었다.“이서야, 안돼... 넌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게 될 거야...” “저는 두렵지 않아요, 저는 정말 괜찮다고요...”이서의 눈동자에는 애원이 서려 있었다.“H선생님, 제발요... 선생님께서 이대로 저를 떠나시면, 저는 밤낮으로 고통스러울 거예요... 그러니까 제발 제 곁에 남아주세요. 선생님과 함께라면 찰나의 고통만 겪으면 될 뿐이잖아요.”이 말을 마친 이서가 쓸쓸하고도 환한 미소를 지었다.“잘 생각해 보세요, 제 곁에 남는 게 더 낫지 않겠어요?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데요?”이서의 쓸쓸한 미소를 본 지환은 가슴에 큰 구멍이 뚫리는 듯했으며, 그곳에서 새빨간 선혈이 콸콸 흘러넘치는 것만 같았다. “이서야, 우선 이것 좀 놔줘.”이서가 거절하려던 찰나,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가서 잘 생각해 볼게.” 이서는 그제야 순순히 지환의 손을 놓았다.“그럼 잘 생각해 보시고 대답해 주세요. 그리고... 제가 겪을 고통이 아니라 제 마음을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그녀가 말했다. 지환이 아무렇게나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섰다. 그가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는 거실에 앉아 있었는데, 인기척을 느낀 두 사람이 고개를 들어 지환을 바라보았다. 그의 온몸이 위축된 것을 본 두 사람이 목청을 돋우며 말했다.“왜 그래? 대체 무슨 일이야? 이서한테 문제라도 생긴 거야?”지환은 고개를 살짝 내저을 뿐,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에게 아무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니? 어서 말해봐, 정말 답답해 죽겠구나!”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는 그동안 지
이미 동요되었던 지환의 마음은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의 권유에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몸을 돌린 지환이 2층의 열린 문을 바라보았는데, 그 문을 통해 간절히 고대하고 있는 이서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생각하자, 그의 발걸음은 절로 빨라졌다. 방으로 들어선 지환은 이서의 근처에 이르러서야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늦추었다. 돌아온 그를 본 이서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해졌다. “H선생님...”지환이 손끝으로 이서의 입술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그녀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결정했어, 네 곁에 남기로.” 이 말을 들은 이서의 아름다운 눈동자 반짝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웃음이 만연한 그녀의 눈동자를 본 지환이 모질게 말했다.“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어.”“무슨 조건이요?”이서가 물었다. 그녀가 기대할수록 지환의 마음은 더욱 괴로워졌다. “내 진짜 이름을 듣고도 후유증이 일으키지 않는다면... 네 곁에 남을게.”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이서는 정신이 멍해졌다. ‘그래서 여태 진짜 이름을 밝히지 않으셨던 거야?’‘그게 아주 중요한 거라서?’ ‘어쩌면 H선생님의 진짜 이름을 들으면... 내가 고통에 몸부림치게 될지도 몰라.’이서가 대답하지 않자, 지환이 목소리를 낮추었다.“두려운 거야?”“이서야, 두려우면 거절해도 돼.” 이서가 몸을 꼿꼿하게 세우며 말했다.“누가 무섭다고 했어요? 저는 괜찮을 거라고요!”지환은 두려운 기색이 전혀 없는 이서를 보면서 더욱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 몸을 일으킨 지환이 고개를 돌리며 이서의 시선을 피했다.“그럼 잘 들어, 내 이름은...”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던 이서는 이불 속에 숨겨진 손으로 허벅지 안쪽의 살을 한사코 쥐었는데, 물밀듯 밀려오는 통증은 지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집중할 수 없게 했다.이서는 아파 죽을 지경인데도 이를 악물고 버티며 줄곧 스스로를 상기시켰다. ‘꼭 버텨야 해, 꼭.’“하지환이야.”이 세 글자를 들은 이서의 머릿속에는 폭풍우와 비바람이 치는 듯했고, 숨이 멎는 것
이서가 지나치게 뚜렷한 시선으로 지환을 바라보았다. 마른침을 삼키며 침묵을 지키던 지환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그래...그래.”이서는 그제야 안심하고 눈을 감았다. 그녀의 콧방울에 맺힌 식은땀을 본 지환은 심장이 조여오는 듯했고, 손을 떨며 이서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지환의 마지막 선택을 본 마이클 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전혀 예상이 가질 않아.’‘기왕 이렇게 된 이상... 대표님께서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는 게 더 낫겠어.’ ...“두 사람, 이제 귀국할 생각이야?”소파에 앉은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거의 동시에 눈살을 찌푸렸다. 며칠 간의 휴식을 가진 이서는 이미 기력을 회복했으며, 지환이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그녀를 돌보는 동안 더 이상 자극을 받아 기절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지환이 마이클 천의 말을 상기시켰다.“아무래도 이서 아가씨의 한계치가 높아진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과거의 인연이나 기억을 언급하는 게 그녀의 민감한 신경을 자극하는 요소가 되었다면, 지금은 하이먼 스웨이 작가님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과 많이 접촉하면서 눈에 띄게 호전된 거죠.” “아마 대표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겁니다.”“그동안 대표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대표님에 대한 한계치가 많이 높아진 거죠. 대표님의 진짜 이름을 알고도 버틸 수 있었던 걸 보면... 확실히 그런 것 같습니다.”“아마... 조만간 이서 아가씨의 앞에서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될 겁니다.”“네, 귀국할 생각이에요.”이서가 말했다.“엄마, 그리고 스웨이 작가님, 두 분도 그날 대회장 밖의 상황을 보셨겠지만... 저희 손에 인질이 있지 않았다면 이렇게 순조롭게 집에 돌아올 수는 없었을 거예요.”이서는 아직도 지호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지환과 마찬가지로 가면을 쓰고 있어서 이목구비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 남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그 느낌은 지환 선생님과는 완전히 다른 거
두 사람은 이 말을 끝으로 곧바로 결정을 내렸는데, 옆에 있던 이서와 지환을 할 말을 잃었다.“스웨이 여사, 지난번에 H국의 4대 가문 안에 스웨이 여사의 딸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번 기회에 진짜 딸을 찾을 수 있게 될지도 몰라요. 우리가 같이 꼼꼼히 알아봐 줄 수 있으니까요.” 딸을 찾는다는 말을 들은 하이먼 스웨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정말 진짜 딸을 찾을 수 있을까?’ 하이먼 스웨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간파한 배미희가 좋은 친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요, 이번에는 진짜 딸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스웨이 여사, 우리 상언이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잊은 거예요?”“이번 DNA 검사는 절대 문제가 없을 거예요.”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를 힐끗 바라보았다. ‘애초에 이서도 DNA 검사 결과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했었는데...’‘하지만 지금의 이서는 기억을 잃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전혀 기억하지 못해.’‘이서가 기억을 잃지만 않았더라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그래요, 그럼 H국으로 갈 준비부터 해볼까요?”이 말을 마친 두 사람은 곧바로 각자의 방으로 향하여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의 행동력은 이미 귀국을 결정한 이서와 지환보다도 더 적극적이었다. 귀국을 결정한 이서가 이 소식을 하나에게 알려주었다. 이 소식을 들은 하나와 소희, 그리고 나나는 매우 기뻐했는데, 특히 소희가 그러했다.‘이서 언니가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귀국하겠다는 걸 보면 언니한테 자기만의 생각이 생긴 게 분명해!’ ‘그동안은 이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에 하은철이 눈에 띄게 날뛰지 않았지만, 또 언제 갑자기 발톱을 드러낼지 모를 일이잖아?’ 은철을 떠올린 소희는 끓어오르는 경멸감을 느꼈다. ‘이전에는 하은철이 명망 높은 하씨 가문의 도련님이라고만 생각했어. 하지만 지금은 이서가 자신과 결혼하지 않고, 자신의 삼촌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미친 듯이 보복하는 구질구질
하지만 뒤에 있던 지환이 이서를 부축한 덕분에 그녀는 겨우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 역시 한쪽으로 밀려났는데, 그들은 고개를 돌리고 나서야 그들은 밀었던 사람이 경호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순간,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소란스러운 방향을 향해 시선을 옮긴 그들은 경호원들이 어떤 스타를 위해서 크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았으며, 입구로부터 들려오는 팬의 미친 함성을 들을 수 있었다!“아아악! 희령! 희령!”하이먼 스웨이는 유명한 극작가였기 때문에 많은 스타들이 그녀의 작품을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을 큰 영광으로 여겼다. 이를 알고 있던 배미희가 바삐 하이먼 스웨이에게 물었다.“스웨이 여사, 제법 유명한 스타인가 본데, 누구길래 저렇게 인기가 많은 거예요?”하이먼 스웨이는 이미 수많은 팬들의 미친 함성을 통해 그녀가 누구인지 알게 된 참이었다. 게다가 장희령은 일찍이 그녀에게 가은을 가족으로 인정하라고 한 사람이었기에 하이먼 스웨이가 그녀를 기억하지 못할 리는 없었다. “한물간 배우예요.”하이먼 스웨이가 희령에 대해 좋지 않은 평가를 했다. 이 말을 들은 배미희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한물간 배우가 저렇게 크게 겉치레한다고요? 저렇게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국제적인 톱스타인 줄 알겠어요.”두 사람이 희령에 관해서 이야기하던 찰나, 장희령이 득의양양하게 통로에서 걸어 나왔다. 가은이 심씨 가문의 일원이 된 이후로, 심씨 가문의 두 어른은 딸을 찾는 데에 온 신경을 쏟았기 때문에 자연히 그녀와 심동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그래서 희령은 특별한 장애물이 없는 이상,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하이먼 스웨이 작품의 여주인공 자리를 꿰차지 못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녀의 모든 일이 순조로운 셈이었기에, 그녀는 득의양양할 수밖에 없었다. 단지...이서와 지환의 곁을 지나던 희령은 지금 외국에 있어야 할 이서가 자신의 눈앞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뭐야, 내가 잘 못 본
매니저는 이해할 수 없었다.“령아, 그게 왜 필요한 거야?” “뭘 그렇게 자세히 물어봐?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되잖아!” 매니저는 차가 일정 거리를 벗어나기를 기다린 후에야 차에서 내려 공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같은 시각.희령에 관한 파문의 영향을 받은 이서의 일행도 공항 입구에 다다랐다. 상언과 하나는 이미 입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들을 발견한 하나는 흥분하며 두 손을 흔들었다. 이서 역시 격동되어 빠른 걸음으로 하나에게 다가갔다.두 사람은 보름간 만나지 못한 것이 다였지만, 자신도 모르게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그녀들을 지켜보던 상언이 지환을 안으며 말했다.“잘 선택했다, 지환아.”상언이 말은 이서의 곁에 남기로 한 지환의 결정을 두고 한 것이었다. ‘어쨌든 좋은 일이 하나 생긴 셈이야.’ “녀석아, 이 엄마는 안 보이고 지환이만 보이는 거야?”배미희가 서운한 듯이 말했다. 이서가 지환의 진짜 이름을 받아들인 후부터, 배미희는 이서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지환의 진짜 이름을 불렀다. “엄마, 나오자마자 저랑 눈이 마주치셨잖아요. 우리 모자 사이에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 있어서 따로 인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거라고요.”“말이나 못 하면.”하나에게 다가간 배미희가 다정하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하나 씨, 솔직히 말해봐요. 그동안 상언이가 괴롭히지는 않았어요?” 하나의 안색이 약간 붉어졌다.“아니에요, 전혀 아니에요...” 하나의 볼이 붉어지는 것을 본 배미희는 상언과 하나의 관계에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까 안색이 저렇게 밝아진 거겠지?’“아니면 됐고요.”상언을 바라본 배미희가 그의 경고를 떠올리며 결혼을 재촉하는 말을 간신히 삼켰다. “아이고, 여기서 이렇게 서 있지만 말고 어서 이동하는 게 낫지 않겠니?” 이서와 하나가 못다 한 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배미희가 상언을 끌고 다른 차에 올랐다. 그녀는 차에 오르자마자 상언에게 물었는데, 옆에
그들은 함께 호텔에 가서 식사하고 각자의 휴식처로 돌아갔다. 하지만 지환은 지금 당장 이서를 데리고 그들이 과거에 머물던 집으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당분간 호텔에서 묵어야 할 것 같아.’하나는 지환의 의견을 물어본 후에야 이서를 끌고 MH그룹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내가 MH그룹을 인수했다고?!” 이서는 1년 전의 일은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MH그룹이 윤씨 그룹을 밀어내고 4대 가문이 되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정말 내가 MH그룹을 다시 인수했다고? 말도 안 돼!’ “내가... 정말 그렇게 대단했다고?”이서가 하나의 옷자락을 잡으며 물었다.“하나야, 어서 말해 봐. 내가 어떻게 MH그룹을 인수할 수 있었던 거야?”하나는 이서에게 아무런 이상한 점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대담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그녀가 입 밖으로 꺼내는 모든 것은 진실이 아니었으며, 약간의 거짓이 가미된 것이었다. “네가 윤씨 그룹의 대표가 된 이후에 윤씨 그룹을 크게 발전시켰거든. 그래서 자연스럽게 MH그룹을 인수할 돈이 생겼던 거지.” 하나가 선량한 미소를 지으며 이서가 자신의 거짓말을 믿을 수 있도록 했다.이서가 물었다.“정말... 내가 그렇게 대단했다는 거야?” ‘아직도 믿기지 않아.’ 하나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어휴, 정말 그렇다니까? 네가 못 믿을 줄 알고 내가 모든 증명서를 가져왔어.” 하나가 두꺼운 자료 더미를 이서 앞에 밀어 보였다. 찬찬히 그 자료들을 살피던 이서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지난 1년을 정말 알차게 보냈었구나...”이서의 말을 들은 하나는 꽤 감개무량했다.“그래.” ‘확실히 알찬 1년을 보냈었지.’‘한 남자도 만났고...’“그래, 지난 일을 회상하는 건 이 정도면 됐어. 사실 내가 너한테 그런 걸 말해줬던 건...” 하나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 나갔다. ‘형부도 이서의 현재 상황을 모르겠다고 하셨어. 그리고 만약 지난 이야기를 꺼내
기억을 잃기 전의 이서라면 이런 큰 회사를 관리할 자신감이 없었을 것이었다. 하나가 소희에게 건네받은 자료를 이서에게 주었다. “모두 큰 회사들이야. 만약에 그들이 윤씨 그룹과 협력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우리는 큰 손실을 겪게 될 거야.” 이서가 자료를 힐끗 보았다. ‘다 유명한 회사들이잖아?’ 그 회사들은 각 분야의 제일가는 회사였으며, 그 분야에서 강력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하씨 가문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일 뿐이었다. 그래서 하은철의 압력을 받은 그들은 꼬리를 내리는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그래... 충분히 그럴만하지.’ 이서가 자료를 꼼꼼히 훑어보는 것을 본 하나가 그녀를 방해하지 않으려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호텔 아래층에서 하나를 기다리던 소희와 나나가 그녀를 맞이해주었다. “어떻게 됐어요? 이서 언니랑 회사 이야기는 좀 해보셨어요? 별일 없었던 거예요?”두 사람의 마음은 아주 뒤숭숭했다. 하나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응, 지금은 자료를 훑어보는 중이야.”들뜬 소희가 나나를 바라보았는데, 나나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고 있었다. “그럼 이서 언니가 직접 회사를 운영할 수 있게 된 거야?”소희가 물었다.“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그 회사들이랑 계속 합작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볼 것 같아.”“소희야,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며칠 동안은 이서의 상태를 지켜보는 게 어떨까?”“그래, 알겠어.”소희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복잡하던 마음이 조금은 해결된 것 같아.’‘단지...’“왜, 또 뭐가 문제야?”아랫입술을 깨문 채 침묵을 지키던 소희가 겨우 입을 열었다.“하나 언니, 이번에 이서 언니랑 형부만 돌아온 거야?”그녀의 쑥스러운 표정을 본 하나가 참지 못하고 피식 웃었다.“임현태 씨는 같이 안 온 거냐고 묻고 싶은 거지?”속마음을 들킨 소희가 즉시 머리를 숙였다. “이 선생님이 그러시더라.”하나가 말했다. “임현태 씨도 오실 거래. 하지만 언제 오시는지는 잘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