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뒤에 있던 지환이 이서를 부축한 덕분에 그녀는 겨우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 역시 한쪽으로 밀려났는데, 그들은 고개를 돌리고 나서야 그들은 밀었던 사람이 경호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순간,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소란스러운 방향을 향해 시선을 옮긴 그들은 경호원들이 어떤 스타를 위해서 크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았으며, 입구로부터 들려오는 팬의 미친 함성을 들을 수 있었다!“아아악! 희령! 희령!”하이먼 스웨이는 유명한 극작가였기 때문에 많은 스타들이 그녀의 작품을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을 큰 영광으로 여겼다. 이를 알고 있던 배미희가 바삐 하이먼 스웨이에게 물었다.“스웨이 여사, 제법 유명한 스타인가 본데, 누구길래 저렇게 인기가 많은 거예요?”하이먼 스웨이는 이미 수많은 팬들의 미친 함성을 통해 그녀가 누구인지 알게 된 참이었다. 게다가 장희령은 일찍이 그녀에게 가은을 가족으로 인정하라고 한 사람이었기에 하이먼 스웨이가 그녀를 기억하지 못할 리는 없었다. “한물간 배우예요.”하이먼 스웨이가 희령에 대해 좋지 않은 평가를 했다. 이 말을 들은 배미희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한물간 배우가 저렇게 크게 겉치레한다고요? 저렇게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국제적인 톱스타인 줄 알겠어요.”두 사람이 희령에 관해서 이야기하던 찰나, 장희령이 득의양양하게 통로에서 걸어 나왔다. 가은이 심씨 가문의 일원이 된 이후로, 심씨 가문의 두 어른은 딸을 찾는 데에 온 신경을 쏟았기 때문에 자연히 그녀와 심동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그래서 희령은 특별한 장애물이 없는 이상,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하이먼 스웨이 작품의 여주인공 자리를 꿰차지 못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녀의 모든 일이 순조로운 셈이었기에, 그녀는 득의양양할 수밖에 없었다. 단지...이서와 지환의 곁을 지나던 희령은 지금 외국에 있어야 할 이서가 자신의 눈앞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뭐야, 내가 잘 못 본
매니저는 이해할 수 없었다.“령아, 그게 왜 필요한 거야?” “뭘 그렇게 자세히 물어봐?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되잖아!” 매니저는 차가 일정 거리를 벗어나기를 기다린 후에야 차에서 내려 공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같은 시각.희령에 관한 파문의 영향을 받은 이서의 일행도 공항 입구에 다다랐다. 상언과 하나는 이미 입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들을 발견한 하나는 흥분하며 두 손을 흔들었다. 이서 역시 격동되어 빠른 걸음으로 하나에게 다가갔다.두 사람은 보름간 만나지 못한 것이 다였지만, 자신도 모르게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그녀들을 지켜보던 상언이 지환을 안으며 말했다.“잘 선택했다, 지환아.”상언이 말은 이서의 곁에 남기로 한 지환의 결정을 두고 한 것이었다. ‘어쨌든 좋은 일이 하나 생긴 셈이야.’ “녀석아, 이 엄마는 안 보이고 지환이만 보이는 거야?”배미희가 서운한 듯이 말했다. 이서가 지환의 진짜 이름을 받아들인 후부터, 배미희는 이서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지환의 진짜 이름을 불렀다. “엄마, 나오자마자 저랑 눈이 마주치셨잖아요. 우리 모자 사이에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 있어서 따로 인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거라고요.”“말이나 못 하면.”하나에게 다가간 배미희가 다정하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하나 씨, 솔직히 말해봐요. 그동안 상언이가 괴롭히지는 않았어요?” 하나의 안색이 약간 붉어졌다.“아니에요, 전혀 아니에요...” 하나의 볼이 붉어지는 것을 본 배미희는 상언과 하나의 관계에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까 안색이 저렇게 밝아진 거겠지?’“아니면 됐고요.”상언을 바라본 배미희가 그의 경고를 떠올리며 결혼을 재촉하는 말을 간신히 삼켰다. “아이고, 여기서 이렇게 서 있지만 말고 어서 이동하는 게 낫지 않겠니?” 이서와 하나가 못다 한 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배미희가 상언을 끌고 다른 차에 올랐다. 그녀는 차에 오르자마자 상언에게 물었는데, 옆에
그들은 함께 호텔에 가서 식사하고 각자의 휴식처로 돌아갔다. 하지만 지환은 지금 당장 이서를 데리고 그들이 과거에 머물던 집으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당분간 호텔에서 묵어야 할 것 같아.’하나는 지환의 의견을 물어본 후에야 이서를 끌고 MH그룹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내가 MH그룹을 인수했다고?!” 이서는 1년 전의 일은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MH그룹이 윤씨 그룹을 밀어내고 4대 가문이 되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정말 내가 MH그룹을 다시 인수했다고? 말도 안 돼!’ “내가... 정말 그렇게 대단했다고?”이서가 하나의 옷자락을 잡으며 물었다.“하나야, 어서 말해 봐. 내가 어떻게 MH그룹을 인수할 수 있었던 거야?”하나는 이서에게 아무런 이상한 점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대담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그녀가 입 밖으로 꺼내는 모든 것은 진실이 아니었으며, 약간의 거짓이 가미된 것이었다. “네가 윤씨 그룹의 대표가 된 이후에 윤씨 그룹을 크게 발전시켰거든. 그래서 자연스럽게 MH그룹을 인수할 돈이 생겼던 거지.” 하나가 선량한 미소를 지으며 이서가 자신의 거짓말을 믿을 수 있도록 했다.이서가 물었다.“정말... 내가 그렇게 대단했다는 거야?” ‘아직도 믿기지 않아.’ 하나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어휴, 정말 그렇다니까? 네가 못 믿을 줄 알고 내가 모든 증명서를 가져왔어.” 하나가 두꺼운 자료 더미를 이서 앞에 밀어 보였다. 찬찬히 그 자료들을 살피던 이서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지난 1년을 정말 알차게 보냈었구나...”이서의 말을 들은 하나는 꽤 감개무량했다.“그래.” ‘확실히 알찬 1년을 보냈었지.’‘한 남자도 만났고...’“그래, 지난 일을 회상하는 건 이 정도면 됐어. 사실 내가 너한테 그런 걸 말해줬던 건...” 하나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 나갔다. ‘형부도 이서의 현재 상황을 모르겠다고 하셨어. 그리고 만약 지난 이야기를 꺼내
기억을 잃기 전의 이서라면 이런 큰 회사를 관리할 자신감이 없었을 것이었다. 하나가 소희에게 건네받은 자료를 이서에게 주었다. “모두 큰 회사들이야. 만약에 그들이 윤씨 그룹과 협력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우리는 큰 손실을 겪게 될 거야.” 이서가 자료를 힐끗 보았다. ‘다 유명한 회사들이잖아?’ 그 회사들은 각 분야의 제일가는 회사였으며, 그 분야에서 강력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하씨 가문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일 뿐이었다. 그래서 하은철의 압력을 받은 그들은 꼬리를 내리는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그래... 충분히 그럴만하지.’ 이서가 자료를 꼼꼼히 훑어보는 것을 본 하나가 그녀를 방해하지 않으려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호텔 아래층에서 하나를 기다리던 소희와 나나가 그녀를 맞이해주었다. “어떻게 됐어요? 이서 언니랑 회사 이야기는 좀 해보셨어요? 별일 없었던 거예요?”두 사람의 마음은 아주 뒤숭숭했다. 하나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응, 지금은 자료를 훑어보는 중이야.”들뜬 소희가 나나를 바라보았는데, 나나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고 있었다. “그럼 이서 언니가 직접 회사를 운영할 수 있게 된 거야?”소희가 물었다.“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그 회사들이랑 계속 합작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볼 것 같아.”“소희야,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며칠 동안은 이서의 상태를 지켜보는 게 어떨까?”“그래, 알겠어.”소희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복잡하던 마음이 조금은 해결된 것 같아.’‘단지...’“왜, 또 뭐가 문제야?”아랫입술을 깨문 채 침묵을 지키던 소희가 겨우 입을 열었다.“하나 언니, 이번에 이서 언니랑 형부만 돌아온 거야?”그녀의 쑥스러운 표정을 본 하나가 참지 못하고 피식 웃었다.“임현태 씨는 같이 안 온 거냐고 묻고 싶은 거지?”속마음을 들킨 소희가 즉시 머리를 숙였다. “이 선생님이 그러시더라.”하나가 말했다. “임현태 씨도 오실 거래. 하지만 언제 오시는지는 잘 모르겠어.”“
하나는 오랫동안 직장에서 일해 오면서, 세상 사람들의 일부는 이유 없이 못된 짓을 하고, 직장 내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즐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게다가 몇 번이나 촬영 현장에 방문하여 제작진을 마주한 그녀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언제든지 다양한 문제와 갈등이 발생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상대방이 인기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사람을 대하고,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유명한 사람은 공손하게 대하는 반면, 훌륭한 명성과 배경 없는 사람에게는 각종 힘든 일과 지저분한 일을 시키며 비참하게 하는 것이 그들의 특기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약간의 유명세를 가진 사람도 자신보다 더 유명한 사람을 만나면 주눅 들기 일쑤였다. “장희령이 그런 거야?”나나가 이번에 들어간 작품은 희령과 함께 촬영하는 것이었다. 사실, 하나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최근 희령이 과도하게 날뛴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으니...그녀의 배후에는 심씨 가문이 있었으며, 최근에는 하씨 가문과 심씨 가문이 함께 지원하려는 연예인이 없었다. 그래서 이서가 나나를 지원하려던 것이었는데, 이서가 기억을 잃으면서 모든 일이 보류된 것이었다.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나나가 잠시 인기를 끌었을 뿐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자연스레 예전처럼 뜨겁지 않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되다 보니, 4대 가문 중에 한 가문만이 지원력을 쏟을 수 있었고, 연예계의 지원도 모두 희령에게 쏠렸다. 그녀는 현재 연예계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기에, 다른 스타들은 그녀를 보면 길을 돌아가야 할 정도였다. 거짓말을 할 수 없었던 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말을 들은 하나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떻게 다치게 된 건지 당장 말하지 못해?!”나나의 옷깃을 붙잡은 그녀는 대답을 들을 때까지 나나를 보내주지 않을 기세였다. “장희령 씨가 제가 이전에 무술을 연마했다는 걸 알고 있더라고요... 차
하나는 나나의 말을 듣고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세 사람이 장희령에 대한 논의를 펼치던 그때, 장희령은 VIP 통로의 CCTV 자료를 보고 있었는데, 그 영상에는 이서의 곁에 서 있는 하이먼 스웨이가 분명히 찍혀 있었다. 추측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으나, 희령은 여전히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심가은 씨가 윤이서랑 하이먼 스웨이 작가님이 만나는 걸 허락했을 리가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던 희령이 또 한 번 가은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끊임없이 가은에 대해 생각하던 그녀가 지엽을 떠올렸다. ‘소지엽 씨랑 가은 씨는 지금 같은 곳에 있어.’‘그리고 가은 씨는 소지엽 씨에게 자주 매달렸을 거고...’ ‘그래, 그 남자에게서 가은 씨의 행방에 대한 열쇠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핸드폰을 꺼낸 희령이 천천히 지엽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그녀는 심동을 따라간 이후로 한 번도 그에게 전화한 적이 없었는데,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심동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두려웠고, 자신의 생각이 깊어질까 봐 두려웠던 것이었다. 잠시 고심하던 희령이 마침내 용기를 내어 지엽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화기 너머에서 지엽의 멋진 목소리가 들려왔다.다만 그의 목소리는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한 것처럼 피곤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저예요.” 희령이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누르며 말했다.“장희령, 저 기억해요?”그녀조차도 자신의 말에 서린 기대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네.] 지엽이 다리를 꼬았다.[무슨 일이죠?]“그렇구나...” 희령은 기쁨을 억누를 수 없었다.“가... 가은 씨랑 연락이 안 돼서요.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죽었어요, 그 여자.] 지엽이 심란한 어투로 말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며칠 전에.]그는 불과 어제 이서가 얼마나 아슬아슬한 일을 겪었는지 알게 되었다. 제자리에 얼어붙은 희령은 정신이 멍해지는 듯했다.“뭐라고요?” ‘가은 씨가
호텔 안.이미 11시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서는 여전히 잠을 자지 않았다. 살며시 문을 연 지환은 마침 이서가 정신을 집중하여 자료를 보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 장면은 그를 어렴풋이 과거로 끌고 간 것 같았다.그녀는 윤씨 그룹을 인수한 이후 늘 침실에서 자료를 보았다. “여긴 왜 오셨어요?”고개를 들어 물컵을 향해 손을 뻗던 이서가 지환을 보고 물었다. 지환이 그녀를 응시했다.“왜 이렇게 늦게까지 안 자고 있는 거야?”이서가 시계를 힐끗 보았다.“이제 겨우 11시인데요? 아직은 안 졸려요.” 지환은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그래, 이서는 한 가지 일을 끝내지 못하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었지.’ “뭐길래 그렇게 열심히 보는 거야?” “회사 자료요.”이서가 갑자기 흥분하며 말했다.“지환 선생님, 그거 아셨어요? 제가 원래 큰 회사의 대표였대요!”‘아무리 그래도 내 회사가 4대 가문의 회사 중 하나라고 말할 수는 없어.’‘지환 선생님께서 깜짝 놀라실지도 모를 일이니까...’하지만 그녀는 이내 자기가 뱉은 말이 웃긴다고 생각했다. ‘하긴... 내가 기억을 잃어가는 동안 일어난 일인데, 어떻게 지환 선생님이 모르실 수가 있겠어.’ 이서의 얼굴에 만연한 감미로운 미소를 본 지환은 온 걱정이 사라지는 듯했다.‘역시 이서를 데리고 오길 잘한 것 같아.’‘M국에 있을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해 보여. 내가 옳은 결정을 한 것 같아서 뿌듯하네.’ “돌아오자마자 일에 집중하는 거야?”자료를 받아본 지환은 그것이 협력 회사와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을 곧장 알아차렸다.“네, 하나가 그러는데, 하은철이 윤씨 그룹을 괴롭히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협력 회사들도 윤씨 그룹과 협력하기를 꺼리고 있고요... 저는 회사의 대표로서 이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어요.” “그래서 돌파구는 찾았어?”이서가 턱을 만지며 말했다.“그런 것 같아요.” 그녀가 한 자료를 지환에게 건넸다.“이 식품 회사를
고개를 든 지환이 이서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무의식중에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물었다.“왜 그렇게 쳐다봐?” 이서는 지환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어떻게 생겼는지 너무 궁금한데 만져봐도 될까요?” 그녀가 급히 말을 덧붙였다.“절대 훔쳐보지는 않을게요. 그냥... 만져만 보고 싶어요.” 소녀의 눈에 비친 갈망을 본 지환은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가 주위를 둘러보며 침대 옆에 있는 안대를 들어 올렸다.“정말 훔쳐보지 않을 거야?” “절대 훔쳐보지 않을 거예요!”이서가 네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맹세할게요!” 지환이 말했다.“그럼 안대 좀 써볼래?” “좋아요.”이서가 지환이 말한 대로 얌전히 안대를 썼다. 지환은 이서가 준비가 된 것을 보고서야 가면을 벗었다. “이제 됐어요?”조용히 1분을 기다린 이서가 물었다. 지환은 기다리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이 웃기기도 하면서 화가 나기도 했다. 그가 허리를 굽혀 이서와 눈높이를 같게 했다.“자.”이서가 손을 내밀어 기억 속의 높이를 따라 지환의 얼굴을 만졌다. 그녀가 손을 들어 올린 순간, 지환의 콧대가 만져졌다. ‘와, 콧대가 정말 높으시구나.’이것이 이서의 첫 번째 생각이었다. 잠시 후, 그녀의 손은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고, 곧 지환의 입술에 다다랐다. 그의 탐스러운 입술은 이서가 지난번 지환과 키스를 나누었을 때의 느낌을 단번에 떠올리게 했다.그녀의 귓불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서는 볼 수 없었지만, 지환은 이서의 사소한 변화를 모두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특히 그녀의 빨간 귓불은 두 사람의 아름다운 추억을... 꿈틀꿈틀 되살아나게 했다. “이서야, 됐어?”지환의 목소리를 낮고 자성적이었으며, 인기척을 느낄 수 없는 깊은 밤의 위험을 뿜어내고 있었다.이서가 말했다.“아직이에요, 눈은 아직 안 만졌잖아요. 잠시 눈 좀 감아주시겠어요? 사실,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가장 궁금했거든요.” “눈은 평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