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든 지환이 이서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무의식중에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물었다.“왜 그렇게 쳐다봐?” 이서는 지환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어떻게 생겼는지 너무 궁금한데 만져봐도 될까요?” 그녀가 급히 말을 덧붙였다.“절대 훔쳐보지는 않을게요. 그냥... 만져만 보고 싶어요.” 소녀의 눈에 비친 갈망을 본 지환은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가 주위를 둘러보며 침대 옆에 있는 안대를 들어 올렸다.“정말 훔쳐보지 않을 거야?” “절대 훔쳐보지 않을 거예요!”이서가 네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맹세할게요!” 지환이 말했다.“그럼 안대 좀 써볼래?” “좋아요.”이서가 지환이 말한 대로 얌전히 안대를 썼다. 지환은 이서가 준비가 된 것을 보고서야 가면을 벗었다. “이제 됐어요?”조용히 1분을 기다린 이서가 물었다. 지환은 기다리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이 웃기기도 하면서 화가 나기도 했다. 그가 허리를 굽혀 이서와 눈높이를 같게 했다.“자.”이서가 손을 내밀어 기억 속의 높이를 따라 지환의 얼굴을 만졌다. 그녀가 손을 들어 올린 순간, 지환의 콧대가 만져졌다. ‘와, 콧대가 정말 높으시구나.’이것이 이서의 첫 번째 생각이었다. 잠시 후, 그녀의 손은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고, 곧 지환의 입술에 다다랐다. 그의 탐스러운 입술은 이서가 지난번 지환과 키스를 나누었을 때의 느낌을 단번에 떠올리게 했다.그녀의 귓불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서는 볼 수 없었지만, 지환은 이서의 사소한 변화를 모두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특히 그녀의 빨간 귓불은 두 사람의 아름다운 추억을... 꿈틀꿈틀 되살아나게 했다. “이서야, 됐어?”지환의 목소리를 낮고 자성적이었으며, 인기척을 느낄 수 없는 깊은 밤의 위험을 뿜어내고 있었다.이서가 말했다.“아직이에요, 눈은 아직 안 만졌잖아요. 잠시 눈 좀 감아주시겠어요? 사실,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가장 궁금했거든요.” “눈은 평소에
이서는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났고, 하나와 함께 새 회사에 도착했다. 화려하게 꾸며진 윤씨 그룹을 본 이서는 꿈속을 걷는 것만 같았다. 이서는 과거의 윤씨 그룹에 대한 기억이 없었으나, 지금의 윤씨 그룹은 그녀의 부모님이 묘사한 것과 똑같았다. 이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고급스러운 분위기는 바닥의 벽돌 하나마저도 귀중하고 값지게 보이도록 했다. ‘부모님과 주주분들도 늘 과거를 그리워하셨었는데...’“엄마 아빠도 내가 다시 윤씨 그룹을 되찾은 걸 알면 아주 기뻐하시겠지?”이서가 문득 윤재하와 성지영 이야기를 꺼냈다. 순간, 하나의 안색이 바뀌었다.‘이서가 형부도 서서히 받아들이고 있으니까 이 이야기도 말해도 되겠지?’ “이서야, 그동안 많은 일이 있으면서 사람들이 좀 변했어. 너희 부모님도 마찬가지고. 그리고...”이서가 궁금해하며 물었다.“그리고 뭐?” 곰곰이 생각하던 하나가 입을 열었다.“됐어, 너무 깊이 알 필요 없어. 그냥 너희 부모님과 거리를 둬야 한다는 것만 기억해 둬, 나 믿지?”이서의 텅 빈 머릿속에는 부모님에 대한 나쁜 기억이 전혀 없었으나, 그녀는 하나에 대한 굳은 신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알았어.”이서를 바라보던 하나가 어떠한 말을 하려다 멈추었다. ‘아쉽지만 지금의 윤수정은 식물인간이 되어서 이서의 신분에 대한 수수께끼를 설명할 수 없어.’‘게다가 기억을 잃은 이서를 함부로 자극해서도 안 될 일이고...’‘그래, 도대체 이서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내가 철저히 알아보는 거야!”두 사람이 건물의 최고층에 도착하자, 하나가 이서에게 소희를 소개했다. 이서는 소희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는데, 자신이 없는 시간 동안 소희 혼자서 버텼다는 것을 들은 그녀는 감격스럽다는 듯 소희의 손을 잡았다.소희는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 “자, 계속 이렇게 입구에 서 있을 수는 없잖아? 주주분들께서 기다리고 계실 텐데 얼른 들어가 봐.”이서와 소희를 회의실로 밀어 넣은 하나는 문밖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기
“후에 여러분들의 후배가 이 일에 관해서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이서의 이 한마디를 들은 나이 든 사람들은 피가 끓는 듯했다. 그들은 모두 부귀영화를 누린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명예였다. ‘그래, 행여 패배할지라도 노력했다는 것만으로도 창피당하는 꼴은 피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우리가 승리하기라도 한다면, 하씨 가문의 압력을 견딘 우리의 이야기는 후배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전설이 될 수 있겠지.’“그래요, 우리는 결코 겁쟁이가 아니잖아요? 하씨 그룹이 H국에서 가장 큰 가문이면 어쩔 겁니까? 큰 가문이라고 해서 사람을 괴롭혀도 된다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나도 우리가 하씨 그룹에 강경하게 맞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우리가 못 만나본 사람이 어디 있고, 겪어보지 못한 일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맞습니다! 맞아요! 행여 우리가 진다고 한들 퇴직하고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것밖에 더 하겠어요? 요즘 같은 시대에 굶어 죽을 일은 없으니 하씨 그룹과 맞서 싸웁시다!” “...”흥분한 주주들의 말을 듣던 소희는 부러움이 서린 눈빛으로 이서를 바라볼 뿐이었다. ‘만약 내가 저런 말을 했다면... 전혀 효과가 없었을 거야.’ ‘하긴... 매번 놀라운 기적을 이뤄낸 이서 언니가 하는 말이니까 저분들도 하씨 그룹에 맞설 용기를 낼 수 있으셨던 거겠지.’ 주주들의 마음을 움직인 이서는 하은철의 현재 움직임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가 윤씨 그룹의 압박하는 방법을 아주 간단하고 난폭했는데, 그것은 바로 다른 회사가 윤씨 그룹과 협력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은 하씨 그룹의 이런 방법이 통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압력을 가하는 몇 개의 회사를 살펴보니까 이 방법은 곧 효력을 잃을 것 같더군요.” “왜냐하면 하씨 그룹이 압박하고 있는 회사의 대부분은 우리 윤씨 그룹과 협력하면서 적은 투자로 큰 이윤을 벌어들이고 있거든요.”
하나는 회의실을 나서는 두 사람을 긴장감과 불안감이 서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는데, 그녀는 소희가 자신을 향해 성공적인 회의였다는 손짓을 보내는 것을 보고서야 걱정하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하나가 이서에게 다가서며 물었다.“어땠어? 주주들과 총회를 한 첫날이었잖아. 괜찮았던 것 같아?”“음... 생각했던 것처럼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아. 이미 이런 회의를 여러 번 개최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고나 할까?”“그리고... 지난 1년여 간의 시간 동안 나한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더 궁금해졌어. 다시 태어난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 특히 내가 하은철과 대립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야.” “하나야, 너는 지금 이 상황이 믿어져?”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나도 1년여 전에는 믿기 어려웠어.”“어머,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나는 이제 출근해야 할 것 같아. 너는 이제 뭐 할 거야?” “나도 마침 가려던 참이었어. 마침 가는 길도 같은데, 잠시만 기다려 줄래?” “그래.”문어귀에 서서 5분을 기다리던 하나는 이서가 큰 가방을 메고 나오는 것을 보았다. “왜 그렇게 큰 가방을 가지고 온 거야?”“각 회사의 상황이 담긴 자료들인데, 그 회사들을 방문하기 전에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챙겨봤어. 나를 알고 상대를 알아야만 백전백승할 수 있는 법이잖아?” 활력이 넘치는 이서를 본 하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바로 이 모습이 지난 1년여간의 네 모습이었어.”“그랬어?”빙그레 웃던 이서가 하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나야, 있잖아...” “왜 그래?”“저번에 내기했던 거 기억하지?” 이서의 말을 들은 하나가 두 사람의 내기를 떠올렸다. “그 내기에서 결국 내가 이겼잖아. 그럼 약속대로...”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말해봐, 네가 원하는 거라면 불평 없이 뭐든 들어줄 테니까.” “음...”이서가 일부러 말을 길게 끌며 하나의 궁금증을 증폭시켰다.“그래도 먼 길을 달려온 상언 오빠한테
이서가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으며 그 리치푸드 대표의 비서에게 명함을 건넸다. 하지만 그녀의 비서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짧은 대답을 할 뿐이었다. “윤 대표님, 죄송하지만 강 대표님의 오늘 일정은 꽉 찬 상황입니다.” 이서가 물었다.“그럼 내일은요?” “내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레는요?”비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 윤 대표님, 정말 죄송합니다. 강 대표님의 3개월간의 일정은 이미 꽉 찬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강 대표님을 만나 뵙고 싶으시다면, 3개월 후의 일정을 조율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리치푸드는 기껏해야 중소기업에 불과하였으나, 윤씨 그룹은 현재 H국의 4대 가문 중 하나로 초대형 기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중소기업의 대표가 대기업의 대표를 만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었으나, 오늘의 이서는 정반대의 상황을 맞이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서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으며, 오히려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그래요? 하지만 강 대표님의 오늘 일정을 찾아보니, 본래 약속이 잡혀 있던 광고회사 담당자의 아들이 갑자기 입원하는 바람에 일정이 취소되었다고 하던걸요?”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이라 다른 일정을 잡을 수도 없었을 텐데...” “제가 그 시간에 강 대표님과 대화를 나눌 수는 없는 걸까요?” 순간 비서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뭐야, 이렇게까지 자세히 알고 있을 줄이야...’ “윤 대표님,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강 대표님께 한 번 여쭤보겠습니다.” 이 말을 마친 비서는 강명철에게 전화를 걸어 낮은 목소리로 문밖의 상황을 간단히 보고했다. 이 말을 들은 강명철은 이서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호기심을 느낀 그가 비서에게 말했다.“들어오라고 해.” 한숨을 돌린 비서가 전화를 내려놓고 이서에게 말했다.“윤 대표님, 들어오시죠.” 이서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곧장 강명철의 사무실로 걸어 들어갔다.리치푸드의 대표는 계량 한복을 입은 60대 초반의 노
이서가 자료 더미를 펼쳐 놓았다. “어젯밤, 강 대표님 회사의 모든 광고를 살펴보았습니다. 강 대표님께서는 이 광고들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강명철이 무심코 물었다.“문제점이 뭐요?” “가장 큰 문제점은 제품의 특징을 부각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강명철이 콧방귀를 뀌었다.“윤 대표, 윤 대표의 전공은 광고에 관련된 것도 아니지 않소?” 하지만 이서는 미소를 지은 채 개의치 않고 계속 말했다.“네, 비록 제 전공이 광고에 관련된 것이 아니지만, 저는 대기업의 대표로서 각종 업계의 관계자들과 깊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 법이죠.” “광고 건에 대해서는 줄곧 미광 기업과 협력해 오셨죠? 물론 미광 기업은 광고계의 선두 주자였죠. 하지만 그건 이제 20여 년 전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최근 몇 년간 미광 기업의 업계 내 순위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는데,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은 없으신가요?” 이서가 물었다.강명철이 몸을 곧게 펴고 앉았다.“내 회사로도 모자라, 미광 기업도 한바탕 비판하겠다는 거요?! 허, 얼마나 함부로 떠들어댈 수 있는지 한번 들어나 보겠소!” “미광 기업이 한때 선두 주자로서 광고계를 풍미했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요 몇 년간 미광 기업의 작품을 살펴보면, 그들이 만든 광고가 20여년 전의 스타일에 머물러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소비 주력군은 더 이상 20여년 전의 그 사람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현재의 소비 주력군의 20년 전만 해도 어린 아이였던 사람들이죠.” “어린 아이였던 그들은 이제 성인이 되어 사회의 경제를 이끌고 있습니다.” “즉, 광고가 지향하는 집단은 그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미광 기업의 작품은 어떻습니까? 노인 집단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습니까? 설탕이 함유되지 않아 소화가 쉬운 제품이라니... 이게 노인을 겨냥하는 광고가 아니면 뭐란 말입니까?” “게다가 이 제품의 포장은...” 이서는 광
비서는 가슴이 두근거렸다.“어머, 그럼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꼴인 거네요.” “무슨 소리! 우리가 윤씨 그룹과 협력하지 않는 한, 하씨 그룹이 우리를 공격할 일은 없을 거야.”강명철의 말이 끝나자마자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비서가 급히 전화를 들며 말했다.“네, 안녕하세요, 리치푸드 강 대표님의 사무실입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어떤 말이 들려온 것일까. 순간, 비서가 머뭇거리며 강명철을 바라보았다. 강명철이 물었다.“어디서 온 전화야?” “하씨 가문이요...”강명철은 비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받았다. 그의 태도는 방금 이서를 대할 때의 태도와는 확연히 달랐는데, 수화기 너머 사람의 신분을 들은 강명철의 얼굴에는 아첨하는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 그러니까 지금 제게 전화를 거신 분이 하 사장님의 작은 아버지인... YS그룹의 대표님이란 말씀이십니까?!” 차분한 지환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짜증이 서려 있었다.[못 믿겠다면, 지금 당장 만나보면 되겠네요.]“아이고, 못 믿다니요, 절대 아닙니다. 누가 감히 YS 그룹의 대표님을 사칭할 수 있겠습니까.”“그나저나 대표님께서 어쩐 일로 제게 전화를 다 주신 건지... 아, 혹시 윤 대표가 저를 찾아왔다는 걸 알고 계신 건가요? 그런 거라면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저희는 단지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눈 게 전부니까요.”“물론 윤 대표의 말이 청산유수이긴 했지만, 저는 하 사장님의 편에 서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그녀의 방안이 일리 있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지환이 차가운 어투로 강명철의 말을 끊었다. 강명철이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예... 꽤 날카로운 분석이긴 했습니다만, 전혀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저는 여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는데, 왜 그녀와 협력하지 않겠다는 겁니까?] 지환의 질문을 들은 강명철은 순간 어리둥절해졌으나, 이내 그가 자신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명철이 다시 한번 확신에 찬 어투로 말했다.“
이서는 리치푸드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지환의 전화를 받았다. [지금 뭐 해?] 지환이 뻔히 알면서 물었다.“다음 회사로 가보려고요.”이서가 말했다.[그렇구나, 첫 번째 회사 상황은 어땠어?] “꽤 완강한 태도를 보이시더라고요. 아마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아요.” 지환이 말했다.[힘들면 내 부하 직원들을 시켜도 돼.] 만약 그들이 윤씨 그룹과의 협력을 원치 않는다고 하더라도, 지환은 그들이 윤씨 그룹과의 협력을 결심하게 할 수단과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 H국 내의 YS 그룹의 세력도 만만치 않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MH 그룹의 힘까지 합친다면, 지환은 하씨 가문이라는 거대한 것을 철저히 짓밟아버릴 자신이 있었다. “그건 싫어요.”이서가 웃으며 말했다. “이럴 때 제가 자리를 굳히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이 저를 도와 일하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겠어요. 비록 어려운 일일지라도... 이건 제가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예요.” 그렇다. 그녀가 그 회사 중 단 한 곳의 마음을 돌릴 수만 있다면, 그것은 그녀의 부하직원들에게 큰 고무적인 일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네가 너무 고생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아서 그래.] 이서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하 선생님, 이전에도... 저를 이렇게 걱정하셨어요?”‘이전...?’이 두 글자를 들은 지환의 눈동자에 아련함이 스쳤다. 사실, 이서는 지환이 자신과 옛날이야기를 하는 것을 별로 원치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애써 미련을 버린 채 미소를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느낌이 꽤 괜찮은 것 같거든요.” “오히려 외국에 있을 때보다도 더 후련한 것 같아요.” “적어도 지금의 저에게는 할 일이 있으니까요.” [그래.]지환이 아쉬워하며 당부했다. [제때 끼니 챙겨 먹는 거 잊지 말고, 절대 조급해하지 마.]“네.”이서는 지환이 전화를 끊은 것을 확인하고서야 핸드폰을 내려놓았고, 창밖을 한 번 보고는 입꼬리를 살짝 치켜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