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도 지환이야말로 세력의 우두머리였기 때문에 앤서니는 부하들에게 정신 차리라고 분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차량은 이씨 가문의 저택으로 향했다. 같은 시각.이서는 이씨 가문 저택의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주방으로 들어온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그녀에게 물었다. “이서야, 너 오늘 대체 왜 그래? 요리는 요리사한테 맡기고, 우리랑 앉아서 푹 쉬는 게 어떻겠니?”고개를 젓는 이서는 마치 마수에 빠진 것 같았다.“아니에요, H선생님께서 오늘 저녁을 먹으러 오겠다고 하셨거든요. 제가 직접 풍성한 저녁상을 준비해 드리고 싶어요.”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는 서로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아무래도 이서의 마음을 꺾을 수는 없을 것 같지?’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주방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하이먼 스웨이는 거실에 도착해서야 작은 목소리로 배미희에게 말했다.“하 서방 쪽은 어떻게 됐을까요?” 배미희가 눈썹을 비틀었다. 대회장을 나서던 그녀는 예솔과 지호가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는 줄곧 불길한 예감을 느끼던 참이었다. 그녀는 예솔이 어떻게 지호와 엮이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씨 가문을 풍비박산으로 만들 뻔한 지호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아무 일도 없이 돌아올 거예요. 지환이는 정말 착한 아이니까 하늘이 도울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배미희의 이 말은 하이먼 스웨이를 위로하는 동시에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하이먼 스웨이가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긴장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입구를 바라보며 지환을 기다렸다.같은 시각.지호는 앤서니의 예상대로 부하들을 시켜 이씨 가문의 저택으로 가는 길에 매복을 설치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각오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거침없이 어둠의 세력 차량을 들이받기 시작했다.“보스!”앤서니는 여러 대의 차량이 공중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는 지환이 몸을 실은 차량의 운전석으로 뛰어올라 운전대를 빼앗았다.“이씨 가문의 저택으로 가는 길은 이미 막혔
앤서니의 질문을 들은 지환이 물었다.“이 길에만 매복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 말을 들은 앤서니는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하지호라면 M국의 다른 길의 사정도 잘 알고 있을 거야.’ ‘우리가 아무리 다른 길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이 사람들은 곧장 달려와 우리를 포위하고, 추격하고, 차단할 거란 말이지!’ ‘이왕 이렇게 된 거...’지환에 의해 처참히 찌그러진 채 꼼짝도 할 수 없는 상대의 차들을 본 앤서니는 두려워할 것이 없었다. ‘설령 문제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난 보스와 함께 죽을 거야. 이렇게 대단한 인물과 함께 죽을 수 있는 기회도 아무에게나 오는 게 아닐 테니까.’ 여기까지 생각한 앤서니가 액셀러레이터를 바닥까지 밟았고, 차량은 화살처럼 날아갔다. 상황을 지켜보던 지호의 부하들은 전력을 다해 그들을 밀어냈고, 유성처럼 지환을 추격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환의 사격술은 완벽할 만큼 정확한 것을. 그렇다. 지환의 사격술을 빠르게 달리는 차 안에서도 아주 정확했다. 곧 상대의 차들은 처참히 퍼지기 시작했고, 차 안에 있던 운전자들은 악을 쓰며 엑셀러레이터를 밟았지만, 끝내 초조하다는 듯 운전대에 주먹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백미러를 통해 뒤를 살피던 앤서니는 갈수록 적어지는 상대의 차량을 보고는 기뻐하며 모퉁이를 돌았다.바로 그때, 갑자기 튀어나온 차 한 대가 앤서니의 차량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그 차량은 다시 한번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왔는데, 평범한 사람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속도였다.앤서니는 자신의 차량보다 두 배나 큰 승합차를 보고는 오직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다 끝났구나.’ 비록 그는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운전대를 돌리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죽음을 맞이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펑!펑!두 번의 큰 소리가 앤서니의 귓가에 울렸지만, 그가 예상했던 통증은 밀려오지 않았다. 두 눈을 질끈 감았던 앤서니가 천천히 눈을 뜨고 눈앞의 거대한 차량을
이씨 가문의 저택.이서가 줄곧 식탁 위의 음식을 쳐다보며 전혀 숟갈을 뜨지 않는 것을 본 배미희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이서야, 너는 오늘 하루 종일 밥을 먹지도 않았잖아. 그냥 먼저 먹고 있는 건 어떨까? 너의 몸이 견딜 수 없을까 봐 걱정돼서 그래.” 이서가 고개를 저었다.“엄마, 지금은 입맛이 없어요. H선생님이 무사히 돌아오는 걸 봐야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배미희가 또 몇 마디 권하려던 찰나, 하이먼 스웨이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래, 그럼 우리도 그렇게 하마.” 이 말을 마친 하이먼 스웨이와 배미희가 그릇 옆에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이서가 바삐 입을 열었다.“스웨이 작가님, 그리고 엄마, 저는 아직 젊어서 밥을 몇 끼 굶는 것쯤이야 아무런 문제가 없다지만, 두 분은...” “우리도 입맛이 없으니 너랑 같이 기다리는 게 낫겠구나.”배미희의 말이 끝나자마자 흥분한 집사가 뛰어 들어왔다. “사모님, 하... 아니, H선생님! H선생님이 돌아오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이서는 손에 든 젓가락을 내려놓고 즉시 밖을 향해 뛰쳐나갔는데, 몇 번이고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질 뻔했다. 입구에 도착한 이서는 완전히 망가진 차에서 내리는 지환을 보고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녀는 어미의 품을 찾은 아기 새처럼 곧장 지환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드디어 오셨네요, 약속을 지키러 오셨다고요!”지환의 품에 안긴 이서가 끊임없이 이 문장을 중얼거렸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터프한 성격의 앤서니도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듯했다.뒤이어 나온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도 지환이 다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이먼 스웨이가 말했다.“이서야, 얼른 H선생님께 식사를 대접하려무나. 우리는 몰라도 H선생님은 엄청 출출하시지 않겠어?” 이서는 그제야 자신이 추태를 부렸다는 것을 깨닫고는 서둘러 고개를 들어 눈을 깜빡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눈가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는데, 누구라도 이 장
지환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 그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를 본 앤서니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저 고기 한 조각 때문에 저렇게 큰 감동을 하신 거야?’ 하지만 이서와 지환의 과거를 알고 있는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는 지환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이서가 기억을 잃은 후에 처음으로 H국의 음식을 먹은 건 아닐 테지만, 이는 이서가 그를 위하여 준비한 식사이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는 것임이 분명했다. “그럼 다 같이 식사하시죠.”배미희가 제안했다. 하이먼 스웨이와 앤서니도 다른 의견이 없었으며, 이서 역시 음식을 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아직 따뜻한 편이야.’‘그리고 H선생님이 옆에 앉아 있는 것만큼 식욕을 돋우는 건 없을 테니까 바로 식사를 진행하는 게 좋겠어.’ 사람들이 조용히 식사를 이어 나갔다. 한 시간가량의 시간이 흐른 후, 사람들의 접시는 깨끗이 비워지자, 앤서니가 몰래 트림했다. 그는 이전부터 많은 사람이 화영의 음식이 매우 맛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왔는데, 정통적이지 않은 화영의 음식을 몇 번 맛본 것이 전부였으며, 이번에 처음으로 화영의 정통 음식을 먹어본 셈이었다. ‘맛있는 H국의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훌륭한 레시피뿐만이 아니라 능숙한 요리사가 필요했던 거였어. 능숙한 요리사가 만들지 않는 음식이었다면 내가 먹어본 H국의 음식처럼 맛이 없었을 거야.’ 식사를 마친 이서는 지환을 당기면서 돌아오는 길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물었다. “별일 없었어.”하지만 처참히 부서진 차가 돌아오는 길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기에, 바보가 아닌 이상 지환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었다.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앤서니를 바라보았다. “앤서니가 말해줄 거야.” 앤서니가 의아해했다.“제가요?”이서는 그제야 앤서니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한 후에야 길에서 발생한 일을 낱낱이 털어놓았다. 생사의 고비를 넘긴 앤서니는 시종일관 아주
“앤서니가 하는 말이 재미있지 않은 거야?”이서의 뒤로 다가온 지환이 두 팔로 그녀를 끌어안으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길래 이렇게 넋을 놓고 있는 거지?’ 이서가 고개를 들어 지환을 바라보며 억지 웃음을 지었다. “아니요, 앤서니 씨의 말씀은 아주 재미있었어요.”이서가 또 한 번 먼 곳을 바라보았다. “단지 H선생님의 총알이 조금이라도 빗나갔다면... 우리가 다시는 만나지 못했을 거란 생각에 심란했을 뿐이에요.” 이서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지환을 바라보았는데, 그녀의 고집스러운 눈빛은 답을 원하고 있는 듯했다. 순간, 지환의 마음이 살짝 일렁였다. ‘이서는 단 한 순간도 나를 향한 마음이 변한 적이 없었구나.’ 다른 사람들이 전설적인 무용담에 매료되어 있을 때, 이서는 마음속의 장애물을 뚫고 지환을 더욱 사랑하게 된 것이었다. “아니야, 우리는 반드시 다시 만났을 거야.”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 거예요?”이서가 손가락을 꽉 쥐었다.“만약에...” “만약이라는 건 없어.”지환은 이서의 손을 자신의 가슴 위에 올려놓은 채 그녀가 자학하지 못하게 했다.“네가 반드시 무사히 돌아오라고 했잖아. 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무사히 돌아왔을 거야. 나에 대한 너의 믿음을 깨버리고 싶지는 않거든.” 지환의 눈동자를 응시하는 이서의 마음에 또 한 번 익숙한 느낌이 밀려왔다. 그녀가 눈살을 찌푸리자, 수많은 장면이 주마등이 되어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는 듯했는데, 셀 수 없이 많은 손이 그녀의 머리를 잡아당기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아파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곧바로 이서의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지환이 그녀를 껴안으며 물었다.“이서야, 왜 그래?”한참 만에 이서의 괴로운 표정을 마주한 지환은 질문을 한 후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얼른 이서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며 목에 핏대를 세운 채 토론하는 세 사람을 향해 말했다. “어서 마이클 천 선생님에게 연락해 주세
다만, 이서의 일그러진 표정은 여전히 그녀가 얼마나 큰 고통을 받고 있는지 드러내고 있었다. “이러다 큰일이라도 나는 거 아니에요?”배미희는 애가 탔다.“선생님은 왜 아직도 안 오시는 걸까요?!”하이먼 스웨이도 수많은 칼이 심장에 박힌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순간, 서서히 평온한 표정을 되찾은 이서는 정신을 잃고 기절했고,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심지어 앤서니조차도 깜짝 놀랐다. 그는 이서와 지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으며, 다른 조직원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서의 등장으로 인해 조직 전체는 모든 자원을 이서에게 총동원했다. 하지만 그의 눈에 이서는 한 명의 여자일 뿐이었고, 여자는 언제든지 갈아치울 수 있는 소모품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환이 왜 그렇게 그녀를 주시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 보스가 여기로 오신 후에 내린 결정들은 온통 저 여자를 위한 거였어.’‘하지호를 상대하는 것도, 상대하지 않는 것도 다 여자를 위한 거였다고.’ ‘확실히 보스가 변했어. 정말이지 일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던 보스가 여자에게 빠져서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단 말이지...’ 그러나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지환의 손을 놓지 않는 이서를 본 앤서니는 사랑에 대한 동경을 느꼈고, 마음이 움직이는 듯했다. ‘왜 보스의 모든 결정이 저 여자와 관련이 있는 건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해.’“무슨 일입니까?”급하게 들어온 마이클 천이 이서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가까이 다가가서야 지환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안색이 약간 변했는데, 이서가 그의 팔을 꽉 잡고 있는 것을 보고는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방금 잠들었어요.”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는 마이클 천의 안색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초조하게 말했다. “얼른 진찰을 좀 해주세요.” 마이클 천이 침대에 누워있는 이서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지금은 기절하신 상태라 진찰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
마이클 천은 정신과 의사로서 지환이 지금 얼마나 고통스러운 심경일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섣불리 어떠한 말을 꺼낼 수 없었고, 잠시 후에야 침묵을 깨며 말했다. “대표님, 지금은...”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침대에 누워 있던 이서가 서서히 깨어났다. 이서가 깨어난 것을 본 지환의 눈동자가 밝아졌는데, 그는 모든 것을 완전히 잊은 듯 몸을 낮추어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이서야...”그는 그제야 두 사람의 거리가 얼마나 가까운지 깨달았고, 즉시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이서가 그의 팔을 더욱 거세게 잡았다. “가지 마세요. 절대 가지 마세요.” 그녀는 조금도 힘이 없는 목소리로 느릿느릿 말하고 있었다. 지환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이미 알고 있었어요...” 입술을 굳게 깨물었던 이서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왜... 왜 H선생님이 저에게서 멀어졌을까 생각을 해봤거든요... 제... 제가 기억을 잃은 이유가... 선생님이랑 관련이 있었던 거죠? 그렇죠?” 지환은 무언가에 홀린 듯 이서의 손을 꽉 잡고 말을 잇지 못했다. “선생님께서 마음에 품고 있다는 그 사람도... 저인 거죠?” 그렇다. 사랑이 담긴 눈빛만큼은 그녀를 속일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이서의 말을 들은 지환은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그는 이서의 손을 놓으려 애썼지만, 그녀는 한사코 그의 손을 잡을 뿐이었다. 이서의 두 눈동자에는 이미 눈물이 고여 있었다. “H선생님, 도대체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제발 말씀 좀 해주세요! 저는 감당할 수 있단 말이에요!” ‘더 이상 바보처럼 살고 싶지 않아.’ ‘설령 고통을 겪게 될지라도...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야.’ ‘나는 단지... 나의 삶을 살고 싶을 뿐이라고!’ 지환이 모질게 이서를 밀쳤다.“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일도 없었어. 우리의 감정이 시작된 건... 그 교통사고 이후였다고!”이서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아니잖아요! 저를 속이고 있는 게 분명해
이서가 불안을 느끼는 아이처럼 붉은 입술을 살짝 내밀고 지환을 바라보았다.“꼭 돌아오셔야 해요.”그녀의 안쓰러운 모습을 본 지환은 차마 미소를 지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이 입구에 도착하자, 하인은 즉시 의자를 들고 왔고, 이서가 두 사람을 편히 볼 수 있도록 창가에 자리를 잡아 주었다. 그녀는 두 사람이 입구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심하고 침대에 다시 누웠다. “말해보세요, 지금 도대체 어떤 상황인 겁니까?”먼저 침묵을 깬 지환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행여나 이서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지 못하게 하려는 듯했다. 마이클 천이 입술을 오므렸다.“솔직히... 이서 아가씨의 상태는 제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최면 치료를 하면 당분간의 기억은 잃게 되겠지만, 서서히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가씨의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인 하씨 가문 어르신의 사망에 관한 부분도 뇌의 자가 보호 기능을 통해 걸러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이렇게 되면 아가씨께서 언젠가 모든 것을 기억해 내더라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아가씨가 겪은 진실들은 이미 미화되고 걸러진 기억이 되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지금 상황은 좀...” “저도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곤란합니다.” “저도 최후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지환이 분노를 터뜨리며 마이클 천의 멱살을 잡았다.“최면, 그리고 전기 충격도 다 선생님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모르겠다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심리학 전문가조차 이런 태도를 보이면... 도대체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는 겁니까?!” 마이클 천이 멋쩍게 웃었다.“대표님, 심리학은 원래 복잡한 학문입니다. 게다가 저는 의사일 뿐이지, 신선이 아니지 않습니까.”지환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마이클 천이 얼른 말했다.“대표님, 지금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이서 아가씨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심하는 겁니다.